'고전 classic'이라 불리우는 작품들에 대해, 우리는 그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그 정확한/전체적인 내용은 물론, 그것이 담고 있는 진짜 메세지까지는 거의 전혀!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이유는 아마도 - 제가 「돈키호테」를 읽고 가지게 된 생각인 - 우리가 어릴 적에 그것들을 단순한 요약본들로 접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 또한, '지킬 박사가 약을 먹고 악마인 하이드로 변한다'까지는 알고 있었었지만, 대체 그러한 내용이 왜!!! 이 작품을 '고전'이라 불리우게 하는지까지는 (이해해보려 하지도 않았었기에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었지요. (아직까지의 다짐으로는) 올 2015년에는 이러한 (제 안목이 아닌, 출판사들에서 '고전/클래식'이란 타이틀을 붙여놓은) '고전 작품'들을 좀 읽어보겠노라!라는 사뭇 '있어보이고 싶은' 이유로 「위대한 유산」의 다음 독서로 이 책을 골랐었거늘 오...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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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법과 도덕, 그리고 남의 평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적어도 외면적으로나마 욕망을 자제하고 선을 지향하는 삶을 선택할까? (p157) - <작품 해설> 중
길지 않은, 하지만 위에 인용해놓은 역자가 던져주고 있는 의문에 충실한, 상당히 임팩트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줄거리는 예상대로 간단해요. 예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지킬 박사라는 사람이 자신이 발명한 약물을 마시고 하이드라는 악인으로 변신한다라는, 그리곤 다시 또 다른 약물을 마시면 원래의 지킬 박사로 되돌아 온다는 지극히 단순한 설정이니까요. (지킬 박사가 - 혹은 작가가 - 자신이 변신한 모습의 이름을 왜 Mr. Hyde라 명명했는지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습니다만, 하이드를 찾으러 다닌 어터슨 변호사의 다음 말, '그자가 하이드(Hide)라면, 나는 시크(Seek)가 되겠다.(pp29-30) If he be Mr. Hyde, I shall be Mr. Seek.(영문판 p26)'로 미루어 보아, '숨겨진 모습'이라는 의미에서 hide란 단어를 선택했고, 그와 동음인 Hyde라는 단어로 이름을 삼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우리가 이 작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혹은 끄집어내야 하는 메세지는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런 감상문을 적어내기 위해선 줄이고 줄여야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도 말해야 할 정도니까요. 자... 그렇다면 위 질문에 대한 독자의 대답은, 이 작품을 읽기 이전과 다 읽고 났을 때 과연 어떻게/혹은 달라지게 될까요?
① 가면의 고통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명석한 두뇌를 지녔던 지킬 박사는 의학박사이며 민법학 박사, 법학 박사에 왕립 학사원 회원(p23)이라는 명예까지도 지니고 있는, 말 그대로 더 이상 원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단!!! 그는 선천적으로 향락에 쉽게 빠지는 기질의 소유자였죠. 하지만 그, 지킬 박사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와 명예로 인해 그러한 자신의 기질을 숨기며 살아와야 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선천적 기질이란 걸 숨길 수는 있어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던 그는 결국 분별을 가릴 줄 아는 나이에 이르러 주위를 의식하고 출세와 사회적 지위를 따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이중생활에 깊이 빠져(p123) 버리고 맙니다.
세상에는 내가 죄의식을 느끼는 방탕한 행위들을 오히려 떠벌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설정한 높은 기준 때문에 그런 행위를 거의 병적이라 할 정도의 수치심을 가지고 보았고 또 숨겨 왔다. …… 내가 지금의 이 모습이 된 것은 특별한 타락 때문이라기보다 이처럼 높은 지위를 열망하는 나의 본성 때문이다. (p123)
「호모 코레아니쿠스」라는 책에서 저자 진중권은 '인간의 몸에는 타고난 자연의 바탕 위에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층위'가 얹혀 있으며, 그 구성된 층위를 '하비투스(habitus)'라 부른다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선천적인 본성과 후천적으로 습득된 하비투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근대 사회로 접어들며 '인간'이라는 용어 대신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in+dividual)"를 의미하는 '개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가, 현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이 근대적 의미의 '개인'은 해체되어 왔다라고도 했지요.
188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해체되기 이전의 '개인' 즉, 본성과 하비투스의 결합체인 한 인간을 '개인'이라는 불가분의 존재로 간주하던 시기에 쓰여진, 그렇게 불가분의 존재이어야만 했던 '개인'에게 생길 수 있는 내적 갈등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꼬집어내고 있는 소설입니다. --- 자신의 개인적 갈등 - 본성과 하비투스 사이의 괴리 - 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지킬 박사는 '인간은 실제로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자아로 이루어진 존재(p123)'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지요. (소설 속에서 그는 이것을 '진리'라고 표현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무려! 1886년에 말이죠.) 더 나아가 그는 '서로 조화될 수 없는 요소들이 이렇게 한 다발로 묶여 있는 것은 인류에게 재앙이 아닐 수 없다(p125)'라 생각하고 '만약 이 요소가 별개의 두 실체에 들어가 각각 그것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인생의 모든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것(p125)'고 결론짓게 되지요.
나는 무미건조한 학문 생활의 지겨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가끔씩 신나게 놀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쾌락을 즐긴다는 것은 아주 관대하게 봐도 점잖지 못한 짓이었다.(p131) …… (하지만) 한 잔의 약을 마시기만 하면 나는 즉시 유명한 교수의 몸에서 벗어나 두꺼운 망토를 껴입듯이 에드워드 하이드의 몸으로 바뀔 수 있었다.(p132)
이 짜릿!한 두 개의 문장은 2014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존재했었던, 그리고 실제로 시현되기도 했었던 것들이지요. 현직 지검장이 그 '점잖지 못한 짓'들을, 돈만 내면 얼마든지 사서 마실 수 있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하이드로 변신했었으니까요. 단!!! 지킬 박사의 하이드(Hyde)에게는 자신을 완벽하게 숨길(hide)수 있는 망토가 있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없었다라는 차이점만이 있을 뿐이었었죠. ('인간은 두 개의 자아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그 두 개의 자아는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것들이며 그로부터 인간의 참기 어려운 고통이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지킬 박사의 논리대로라면 모 지검장의 경우, 그의 행위만으로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는 것은 사실 온당치 않다 말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는 그저 그의 본성을 이겨내지 못했었을 뿐이니까요. 그럼 그렇다고 과연... 그에게 그 본성의 분출을 단지 숨기지(hide) 못했다는 죄만이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가 했다는 행위를 그 혼자 있는 장소에서 했었다면 그건 죄가 되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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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본성과 제가 습득한 하비투스 사이에 아무런 괴리/충돌이 없다라고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건 아마도... 그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것이기도 할 것 같지요. 다만! 스스로 설정한 기준 - 그것의 높낮이를 떠나 - 에 지극히 충실하게 살아왔노라고, 그러해왔기에 (이것이 지킬 박사의 표현처럼 '인생의 모든 참기 어려운 고통'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러한 괴리/충돌로부터의 '고통'을 최소한 겉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으며 살아올 수 있었노라까지는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모 지검장처럼 그 고통 해소의 현장이 타인의 시선에 확인되는 불상사만 없었을 뿐, 저 스스로도 겉으로 드러내놓았던 적이 적잖이 있었었을지도요. --;;)
물론! 약간씩의 일탈들이 그러한 고통을 잠시나마 가라앉혀주었기도, 혹은 그 분출을 뒤로 미루어주기도 했었었겠지요. 그러한 일탈들이 기껏해야 술마시며 지하 술집에 갔던 것들이었을 때엔, 그로 인해 제가 '안으로는 난폭한 흥분, 무질서한 관능의 환상이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줄기처럼 분출했다. 의무의 구속은 소멸되고, 뭔지 모르겠지만 순수하지 못한 영혼의 자유(pp127-128)'까지를 느꼈었던 건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 사실 이런 상황, 그러니까 일탈에의 유혹을 심각하게 받는 경우 가장 마약스러운 꼬득임은 다름 아닌 '한 번 사는 인생~'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걸겁니다. 우리는 정말... 이 '한 번 사는 인생'을 굳이 이처럼 나의 타고난 본성을 꽉꽉 눌러가며 후천적으로 습득된 하비투스에 맞춰서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② 자발적 선택
옛날에도 사람들은 자객을 고용하여 죄를 저지르게 하고, 본인의 몸과 명성은 안전하게 보호했다. 하지만 쾌락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대중 앞에서는 품위 유지의 책임이라는 짐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다가 잠시 후 학생처럼 이런 빌린 옷을 벗어 버리고 자유의 바다로 뛰어든 사람도 내가 처음이었다. (p133)
학부 시절, 군복을 입고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오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고삐리도 안할 것 같은 유치한 장난을 하며 신촌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뭐, '군복 입으면 개 된다'라는 말을 몸소 시현해보고팠던 건 결코 아니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군복을 입고 나니 'OO대학교 OO학과 학생'이라는 나/우리들 스스로의, 그리고 타인들이 바라보아주는 시선 속 하비투스를 우리들 모두가 너무도 자연스레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진짜 '나/우리들'은 그 지하철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않는다라 생각했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걸 자랑스레 말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의 우리들이 벗어던질 수 있었던 하비투스는 그저 남에게 심한 폐는 끼치지 않는, 하지만 평상복에 가방을 메고는 절대로 할 수 없었던/하지 않을 그런 장난스런 행동들 몇 개를 했었던 것 뿐이었던 거지요. 왜... 그래야 했던/그럴 수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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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의 인생 중 10분의 9는 노력과 미덕, 자제심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악의 본성이 활동하거나 사용되는 일은 훨씬 적었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하이드가 헨리 지킬보다 훨씬 작고 홀쭉하며 젊었다고 생각된다. (p129) …… (그러나) 내 힘으로 불러낼 수 있는 사악한 부분은 최근에 활동을 많이 한 탓인지 발육이 좋아졌다. (p138)
행복... 했었을겁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때까지 최소한 저의 삶은 행복했었었구요. 그러하다보니 내재되어 있는 본성이건, 혹은 스트레스로부터 파생된 것이건 당시의 저에게는 - 그리고 제 친구들에게도 아마 - 분출하고 싶었던 욕망이란 게, 끄집어내 보이고 싶었던 악마성이란 게 아주 작게만 있었던 걸겁니다. 평소의 모습을 군복이라는 망토로 가려냈다 한들, 굳이 '커다란 변신'이 필요하지는 않았었던 거란 거지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 살아가는 반경이 넓어질수록, 얽히게 되는 인간관계가 많아질수록, 그러다보니 제 눈이 보이는 세상이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 이게 제 본성의 뒤늦은 깨어남인건지 아니면 쌓여가는 스트레스로 인한 것인지 암튼!!! 분출하고 싶은 욕망이란 것도, 끄집어내 보이고 싶은 악마성이란 것도 점점 더 커져만 가더군요. 물론! 아직까지는 잘 참아내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너무도 잘 참아내고 있기에 그 탄성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도 할 정도입니다. 본성을 억누르고, 커져가는 악마성을 끝내 꾹꾹 눌러내다보니 오히려... 사람이 자꾸만 안으로 움츠러드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만약 이 상태가 더 지속된다면 본성의 균형이 깨져 …… 결국 에드워드 하이드의 성격이 돌이킬 수 없는 나의 성격으로 굳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험(p138)'이 아닌, 그 최소한의 (욕망이 아닌 울분의) 분출인 '눈물'까지도 저에게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아닌 걱정을 하게도 되는 요즈음의 저의 모습을 보노라니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 지검장의 경우, 그에게는 한 인간으로서는 견디어내기 힘들만큼 커다란 본성이 있었을 수도, 혹은 하비투스조차 이겨낼 수 없는 스트레스의 축적이 있었을 지 모른다라는 변명을 해줄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의 행동이 권장되어진다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할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동정정도는 받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라는 거지요. 좀 과하게 나아가본다면 --- 「위대한 유산」을 읽고 제가 가졌었던, '오로지 나만 그런 건 아니었었어!'라는 심리적 도피가 주는 위로를 그 지검장에게도 '당신만 그런 건 아니에요!'로 바꾸어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어쨌든!
지킬 박사의 하이드가 되겠다는 선택도, 또한 저의 요즈음과 같은 움츠러듬도 모두... 분명 각자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라는 건 부인할 수 없을겁니다. 다만!!!
죄책감이 점점 누그러지면서 환희의 기분이 이어졌다. ……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살인범이 하이드였다라는 증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기뻐했던 것 같다. 처형의 공포 때문에 선한 쪽의 자아를 유지하려는 나의 의지가 더 강해지고 보호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지킬은 이제 나의 은신처가 되었다. (p144)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지킬 박사의 그 자발적 선택은 이처럼 외부로부터의 압력인 '공포심'에 의해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그 종지부의 시현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을 띨 수밖엔 없었었지만!!! 저의 자발적인 선택은 여전히 저의 또 다른 자발적 선택으로 되돌려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점이 다른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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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읽고 나면 …… 유혹을 참으면 명성은 쌓일테지만 재미와 쾌락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불가피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악행과 타락을 일삼으면 궁극적으로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맥 빠진 결론밖에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p160)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결국 뻔하디 뻔한 교훈적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안겨주는 것을 끝맺음을 하였기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노라 적었었거늘, 이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주제 또한 역자의 표현처럼 '맥빠진 결론'만을 남겨주는 것일까요? --- 절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입니다.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Strange Case'라 표현했었을까요? --- 하이드가 될 것이냐, 아니면 하이드를 버릴 것이냐의 선택에서 지킬 박사의 선택은 하이드가 되겠다라는 것이었었고, 그것은 분명! 그의 자발적 선택이었었지요. 저의 심한 오해/오역이라는 말을 듣게된다 하더라도, 여기서 전... 지킬 박사의 하이드가 되고싶다/되겠다라는 선택은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인 것이며, 단지!!! 그 스스로 그 욕망에 지나치게 탐닉했었다라는 것과 더 중요하게는! 그 종지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내었다라는 것이 결국 'Strange Case'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만 됩니다. 즉!!!
우리가 후천적으로 습득하게 된, 어쩌면 우리의 타고난 본성보다 더 강하게 일상의 우리를 제어하고 있는 하비투스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탐닉과 파멸로 우리의 삶이 끝맺음지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도와주는, 본성의 적이 아닌 본성의 조력자라는 사실을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지요. 반면 그 둘간의 관계를 조화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던 소설 속 주인공인 지킬 박사의 경우엔 하비투스의 조력을 끝내 그의 본성이 아예 물리쳐 사라지게 해버린 것이었구요. (이처럼 작가가 자신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서 역설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작품으로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저의 해석이 옳다는 가정을 필요로 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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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법과 도덕, 그리고 남의 평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적어도 외면적으로나마 욕망을 자제하고 선을 지향하는 삶을 선택할까? (p157) - <작품 해설> 중
자 이제...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을 써야겠네요. 우리의 삶이, 또 그런 우리들의 집합체인 이 세상의 흘러감이 지금과 같을 수 있는 이유는 --- 결코 'Strange Case'가 아닌,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평범하게 이제까지 제가 살아왔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 좋게 말하자면 제가 습득한 하비투스의 조력이 저의 본성을 잘 인도해줄 수 있을만큼 훌륭하다라는 것이고,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해보자면 저의 본성이 이겨내기엔 이미! 제 몸에 체화되어 있는 하비투스의 힘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역자가 건네주고 있는 위의 질문 중, '……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의 상황은 최소한 저에게는, 그리고 아마도 99%의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예 성립조차 될 수 없다라는 것이지요. 물론!!!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1%가 꼭... '경제적인 수준'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기에 이 세상엔, 선과 악의 혼합체가 아닌 '모든 인류의 속성 중에서 순전히 악으로만 구성된 존재(p130)'인 하이드와 같은 인물이 1%정도는 실제로 존재하기도 하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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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크게 기대하지는 않고 집어들었던 책이었거늘, 이토록 짧고 간단한 이야기 속에 이렇게나 커다란 메세지가 담겨 있어서 놀라웠으며 이 작품의 작가가, 예의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 읽었던 요약본을 통해 왠지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보물섬」의 작가이기도 하다라는 것에 한 번 더 놀랐었습니다...만!!! 더더욱 놀라웠던 건, 한글판과 영문판이 함께 있는, 독특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이 책들이 (홈쇼핑스러운 표현을 빌자면) 단돈! 3,960원이라는 사실이었었지요. 이 출판사에서 나온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중 총 세 권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만과 편견」, 「지킬박사와 하이드」 - 을 읽어보았는데, 번역도 (일반적으로 읽어내기엔) 깔끔하고 영문판이 함께 있어 혹 미심쩍은/궁금한 부분이 있더라도 원문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라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값이 싸서!!! 참 좋더군요. 다른 출판사들 책은... 대체 왜 그리 비싼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