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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평점 :
얼마 전 종원군을 데리고 정말로 오랫만에 노래방엘 갔었는데 '이거 내가 키우는 아들 맞아?'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로 이 녀석... 랩을 꽤! 잘하는겁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랩을 잘하고 오로지! 랩이 있는 노래만 부르더군요. 아빠인 저에겐 그 많은 가사를 다 외우고, 박자 맞게 다 따라한다라는 게 정말로 신기해 보일 따름이었지만, (예전 누군가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자면) 이 녀석에겐 태어나서 접해온 '노래'라는 유희가 온전히/거의 랩으로만 되어있어왔으니, 그가 '노래란 원.래. 이런 거야!'라 생각하게 된 것이 이상할 것도없겠지요. --- 범위를 좀 더 넓혀보자면, 종원군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TV라는 것이, 컴퓨터라는 것이, 또한 인터넷이라는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사물들이었기에 그것들이 없었던 시절이란 걸 (아직은) 상상해볼 수 없는 게 당연한 걸 겁니다. 이는 아빠인 저의 세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던 것이기도 해,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말씀해주셨었던, 당신께서는 버스가 없어 몇십 리 길을 걸어 등하교를 해야했었다라는 상황 또한 당시의 제가 이해하기엔 사뭇 쉽지 않은 이야기였었었지요.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저희 아버지(세대)에게도 또한 당신(들)께서 이해 할 수 없었던 과거의 상황들이란 게 분명 있었을거라 추측해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라는 건, (종원군과 저, 그리고 저의 아버지에게도 적용되는 시간으로서의)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우리의 선조들은 분명 (성공적으로) 살아내었었던 덕택임 또한 분명하지요. 그 어떤 상황 하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갈/낼 수 있었던 것이고,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단지 약간/매우/지극히 불편한 삶을 살았었다라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단지 '삶이 불편하다'라는 수준은 여차저차하여 이겨낼 수는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삶의 지속'이 불가능해져버릴 수도 있는 꽤나 심각한 상황이,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로 인해 발생될 수도 있었다라는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러한 시대를 살았었던 선조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될/가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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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라는 등식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이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가져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A≡A'라는 항등식으로 표현해도 무방하겠죠.) 이 등식은 「나란 무엇인가」에서 보았던 분인이라는 개념을 적용시킨다해도 여전히 성립되는 항등식입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말대로 분인이란 그저 A={A1, A2, A3, … An}의 집합개념일 뿐이니까요. 그 어떠한 경우라도 A가 그 자신인 A와 같지 않게되는 상황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겁니다. 또한, 만약 'A=B'가 성립하고, 'B=C' 또한 성립된다면 우리는 'A=C'임을 확인할 수 있다라 배웠더랬습니다. 이 역시 부인할 수 없는 논리적 추론의 결과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어느 지역에서 이 '논리적 추론의 결과'를 놓고 화제의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우선 이 재판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해 놓은 개요를 보자면...
1540년대 랑그독에서 (마르탱 게르라는 이름의) 한 부유한 농민이 아내와 아이, 재산을 버리고 떠나 수년간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왔지만 - 또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 삼사년간의 평온한 결혼 생활 후에, 그의 아내가 자신이 사기꾼에게 속았다면서 그를 재판에 회부했다. 남자는 자신이 마르탱 게르임을 법정에서 납득시키는 데 거의 성공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진짜 마르탱 게르가 나타났다.(p4)
그러니까! 'A=B' 이고 'C=B'라고 하는데 'A=C'는 또 성립되지 않는, 아예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두 명의 사람이 자신이 진짜 마르탱 게르라 주장하는 이 기이한 일은 대체 왜/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요?
【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함 】
도장이 아닌 싸인만이 등록되어 있는 통장만 들고 은행에 가서,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내 통장이고 내 싸인이니 돈을 내주시오라 하면 현행법상 그는 100% 그 돈을 인출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는 한, 은행은 그 통장의 주인이 나임을 그의 말만으로는 인정해주지 않으니까요. 이처럼 '내가 나임'을 증명해주는 수단은 '지금'의 시대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신분증 이외에도 지문을 확인해 본다거나 심지어 유전자 확인을 동원해볼 수도 있으니까요. 자! 이제... 시계를 한 번 거꾸로 돌려보죠. : 유전자 확인이라는 기술이 세상에 존재하기 이전, 지문 인식이 존재하기 이전, 더 거슬러 올라가 사진으로 나의 모습을 보존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렇다면 '내가 나임'을 과연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을까요?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어느 지역에서 일어났던 실제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2015년을 '지금'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겐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내가 나임'의 항등식에 관한 역사서입니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이라는 책에서 처음 만나보았던 학문 분야인 '미시사微視史' 전공의 사학자인 저자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는, 당시 기록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구성하였으며, 그럼에도 비어있는 약간의 공간에는 예의 엄밀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신의 상상을 더해놓고 있지요.
역사를 읽고 쓰는 행위는 일종의 '게임'이다. ……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된 게임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상상 게임'이라 불릴 만하다. '상상 게임'을 하는 데는 팩션이 빠질 수 없다. 내가 말하는 팩션은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허구라 해도 역사적 상상이 빚어낸 허구라 하겠다. …… 역사적 지식을 통해 얻어진 상상이 개입된 허구는 말 그대로의 허구가 절대 아니다. …… 이 경우의 허구란 깨진 청자 조각과 조각 사이를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것, 달아난 부분을 메워 항아리의 원형을 보여주는 보철 같은 것이다.
- 백승종 著,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중
【 겉으로 보여지는 사건의 전모 】
①갑돌이가 열너댓 살쯤 되었을 때, 그의 부모는 '이 녀석, 짬지에 털도 났으니 이제 장가보내도 되겠어'라며 마땅한 신부감을 찾습니다. 마침 그 때 '첫 생리를 했으니 이제 시집 보내야겠네'라 생각하고 있었던 갑순이의 부모가 한 동네에 살고 있었으니 그렇게 갑돌이와 갑순이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니! 결국 보자면 그들의 의지에 반했던 결혼을 하게 되었었지요. 뭐 암튼 그렇게 식을 올리고 합방을 하고보니 갑돌이 이 자식이 글쎄... 성 불능. --;;
뭐... 아직 어리니까 그런걸지도 몰라,하며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렸거늘 --- 어느덧 아리따운 한 송이의 만개한 꽃다운 처녀가 된 갑순이와의 사이에 여전히 아이가 없자, 갑돌이의 성 불능이 회복되길 기다리기 포기한 갑순이의 부모와 친척들은 그녀에게 어서 이혼하라 재촉을 합니다. ②당시의 법은 결혼 후 3년 이내에 아이가 없을 경우엔 결혼 자체를 취소할 수 있었고, 당연히 갑순이는 재혼을 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③자신의 평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모로부터의 독립심이 컸었던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은 섹스를 즐기려는 욕망 자체가 없었던 갑순이는 그러한 주위의 재촉을 모두 뿌리쳤고 --- 드디어 결혼한 지 8년 만에 삼신할매의 점지를 받아 떡두꺼비같은 아들이 둘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이제 갑돌이와 갑순이 앞에는 행복한 미래만이 펼쳐질 것 같았거늘 ④갑돌이 이 자식이 글쎄... 어느 날 느닷없이 덜컥 어디 간다 말도 없이 도망가듯 가출을 해버리지요.
⑤갑돌이로부터 소식이 끊어진 지 8년 후 어느 날, 개똥이란 녀석이 '내가 갑돌이요~'하고 갑순이 앞에 떡하니 나타납니다. 한 동네에서 살고 있었던 갑돌이의 누나들과 삼촌은 갑돌이의 외모가 좀 변해 있는 것에 의아해했었지만, 이내 개똥이가 자신의 이야기인 양 늘어놓는 갑돌이의 과거사들을 들어보고는 '내 동생/조카 갑돌이 맞구나!'를 외칩니다. ⑥하지만 (비록 함께 살았던 기간보다 헤어져 있는 기간이 더 길었다해도) 부인인 갑순이마저도 그렇게 간단하게 갑돌이라 자칭하는 개똥이를 정말 자신의 남편 갑돌이라고 믿었을까요?
암튼... 그렇게 3년이 좀 넘는 시간동안 개똥이와 갑순이는 부부로 살며 애까지 둘 씩이나 낳고 나름 잘 살아가고 있었던 어느 날. 갑돌이와 갑돌이 삼촌인 길동 사이에 재산을 놓고 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그간 갑돌이의 정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던 길동이는 이때다 싶게 '이 녀석은 가짜 갑돌이다!'라며 소송을 겁니다. --- ⑦1심에서 재판부는 삼촌 길동의 손을 들어, 개똥이에게 '너는 가짜 갑돌이다'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만, ⑧더 많은 증인들과 정황 증거들을 검토해 본 2심에서는 삼촌인 길동이가 집안의 재산에 욕심이 나 조카의 정체를 의심하였노라고, 그러니까 개똥이가 '진짜 갑돌이'라는 내부결론을 잠정적으로 정해놓습니다. ⑨그런데 이때!!! 난데없이 '내가 진짜 갑돌이요!'라는 한 사람이 등장하지요. --- 재판부는 이 사건을 다시 원점에서부터 조사하였고 결국! 그간 갑돌이 행세를 했던 사람이 사실은 개똥이라는 인물이었음을 밝혀냅니다. 결국 개똥이는 '사기, 이름과 신원의 사칭, 간음'의 죄명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답니다.
【 사건에 대한 역사가의 이해 】
③ 갑돌이가 성 불능이라는 것을 갑돌이의 아버지가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최소한 그가 그 사실이 갑돌이의 결혼을 완성하는 데 커다란 문제를 야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즉 곧 갑돌이의 성 불능이 치유되리라 기대했을 것(p38)이라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다른 남자들에게 구애 의식을 받아보기도 전에 부모의 강요로 결혼을 해야했던 갑순이에게도 또한, 신랑 갑돌이의 성 불능으로 인해 자신들이 당분간은 (일종의 의무인듯한) 성관계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어느 정도 그녀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한 요인으로 작용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요.
갑돌이의 성 불능을 이유로 부모와 친척들이 계속 이혼 권유를 했어도, 갑순이가 이를 거절한 것을 두고 저자는 갑순이의 성격상 특징을 '여자로서의 평판에 대한 관심, 확고한 독립심, 자신의 성(性)에 대한 재빠른 현실 감각(p49)'이라 파악하고 있는데 --- 저자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낯선 집으로 옮겨와야했던 그녀 또한 성 불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지않은 성적 불안을 경험(p48)했었을 것이라 추측하면서, 만약 그녀가 결혼의 무효화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따랐더라면 이내 곧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야 했을 것이지만, - 따라서 또 다시 (부부간에는 반드시 섹스를 해야 한다는) 성적 불안에 시달려야했을지도 모를 -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아내의 특정한 의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정조를 지킨다는 평판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pp48-49)라 적고 있습니다.
④ 갑돌이네는 사실 이 지역으로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더랬습니다. 이전에 살았던 곳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비하면 한적한 시골 같은 곳이었지요. --- 예전에 살았던 곳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었던 갑돌이라는 이름마저도, 새로 이사해 온 이 곳에서는 매우 촌스러운 이름이 되는 겁니다. 게다가 갑돌이가 원래부터 좋아했었던 칼 싸움이나 곡예 말고는 그의 흥미를 끌만한 것들이 이 지역에는 전혀 없었었지요. 이내 갑돌이는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 농사일, 기와 공장, 결혼 - 너머의 생활을 동경하게 됩니다. 예전에 살던 곳이라면 이러한 속박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한 것들이 전무한 이 곳에서 결국 갑돌이는 유학이나 군입대 등을 일종의 탈출구로 아버지에게 제시하나 그마저도 단칼에 거절당하게 되지요.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차, 갑돌이가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대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당시의 법률로는 처벌의 대상이었기에 결국 갑돌이는 아버지의 가혹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p43)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자신의 부모, 아들, 아내로부터 떠나버리고맙니다. 이후 갑돌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인 갑돌이를 용서하고 자신의 재산을 갑돌이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지요.
당시의 법에 따르면 남편이 부재한 경우 그가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그 아내는 자유롭게 재혼할 수 없(p56)었었는데, 갑순이가 갑돌이의 오랜 부재라는 이 상황에서 재혼을 하지 않았던 것이 굳이 이 법 때문이 아닌, 유산 상속과 자신의 평판등을 고려했을 때 차라리 정조를 지키며 정숙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라 저자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짜장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 갑순이 아빠가 사망하자 갑순이의 엄마가 갑돌이의 작은 아버지와 결혼을 해버린 겁니다. 가장이었던 갑돌이 아버지의 사망과 가장이 되어야 할 갑돌이의 부재로 인해 임시적으로나마 집안의 가장이 된 갑돌이 작은 아버지의 집에서 살게 된 갑순이는 졸지에 숙모님이 되어버린 자신의 어머니와 다시 한 지붕 아래에서 살게 된 거죠. --;;)
⑥ '내가 갑돌이요'하고 나타난 개똥이를 본 갑순이는 처음에는 그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쳤다(p6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내 갑돌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항들을 술술 이야기하는 그를 보고 결국 그를 갑돌이라 믿게 되지요. 초상화 한 점 없었던 당시, 여러 해 동안의 군 생활로 살이 찌고 모습이 변한 것이라 말하는 개똥이의 변명에, 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갑돌이의 누이들과 삼촌은 일말의 의심을 의식적으로 감추었고, 그러는 사이 개똥이는 성공적으로 갑돌이로의 변신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닮았다 한들, 갑순이가 그렇게 쉽게 개똥이를 자신의 남편인 갑돌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었을까요? 이에 대한 저자의 추측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마도 처음에, 즉 그가 도착해 자신의 표시들과 증거를 제시하던 그때에는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 그를 침대에 받아들였을 때쯤 그녀는 분명히 차이를 깨달았을 것이다. …… "아내에 대한 남편의 손길"을 착각할 수는 없다. 명백한 동의에 의해서든 암묵적인 도의에 의해서든, 그녀는 그가 남편이 되는 것을 도와 주었다. 갑순이가 (갑돌이라 주장하는) 개똥이에게서 발견한 것은 자신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16세기의 가치를 인용하자면) 평화롭고 화목하게,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함게 살 수 있는 남자였다. 그것은 18년 전 자신의 결혼처럼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것도 …… 관습에 따라 이루어진 것도 아닌, 창안된 결혼(invented marriage)이었다. 그것은 거짓말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갑순이가 묘사했던 것처럼 그들은 "진짜 결혼한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함께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pp69-70)
이 '창안된 결혼', 좀 더 풀어쓰자면 둘 사이의 합의하에 둘 이외의 모든 사람들 속이기로 한 결혼 생활이 지속되자, 어느덧 개똥이는 연극이 아닌 진심으로 갑순이를 사랑하게 되었고, 갑순이 또한 자신을 불시에 차지해 버린 남편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됩니다. (둘의 속마음까지를 알 수는 없으나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수없이 많다라며, 그 일례로) 둘 사이에서는 3년 만에 두 딸이 태어나기도 했지요.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저자는 그들이 이 '창안된 결혼'을 지속시키기로 결심했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교회법 또한 결혼을 유효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당사자들의 동의였고 오직 그들의 동의만이 필요했(pp72-73)었었기에, 개똥이와 갑순이가 서로의 합의를 깨지만 않는다면 둘은 법적으로도 완벽히 인정받는 부부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⑧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본 과거가 살기에 매우 불편했었음은 틀림없겠으나, 과거 사람들의 이성마저도 그들의 일상처럼 낡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고가 진짜 갑돌이다 아니다를 놓고 양측의 증언이 서로 팽팽한 상황에서 2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법논리로 개똥이에게 무죄를, 즉 그가 진짜 갑돌이임을 선언한다는 내부적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다음 부분의 법철학이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었습니다.)
법정이 어떤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범죄가 실제로 저질러졌고 피고가 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했다. 자백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이 두 가지 사실을입증하는 데 충분치 못했다.(p113) ……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무고한 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보다 죄인 한 사람을 벌하지 않고 놓아주는 것이 낫다"는 로마법의 원칙을 드러내는 것이 될 것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 16세기 프랑스의 법정이 매우 중요시하는 민법상의 정신을 강화하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혼과 그 산물인 자녀들을 보호할 것이었다. 재판에 참여했던 한 판사에 따르면)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상황에서 판단을 좌우하는 것은 결혼이나 자녀들에 대한 보호이다." 갑순이는 남편을, 철수와 영희는 아버지를 갖게 될 것이었다.(pp117-118)
⑨ 저자는 지난 12년간 종적을 감췄던 갑돌이가 왜 그 먼 길을 걸어 다시 옛 생활로의 복귀를 선택했었을까가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미스테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갑돌이가 이런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귀향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라 적고 있지만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즉, 그가 돌아오기 전에 이미 이러한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사실을 어디에선가 미리 들었었을꺼라는 거지요.
다른 남자가 내가 남겨둔 삶을 살아 왔고, 내 아버지의 상속자이고 내 아내의 남편이며 내 아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라고 그는 자문했을 것이다. 진짜 갑돌이는 너무 늦기 전에 자신의 정체, 자신의 자아를 되찾기 위해 돌아왔을 것이다.(p121)
결국 갑돌이는 누이들과 삼촌,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내 갑순이의 증언으로 인해 그가 진짜 갑돌이임을 증명해 냅니다. 이 과정을 읽어보면,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데 있어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극히 제한적이었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즉 그저 '내가 진짜 나, 갑돌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거지요. 어쨌든 이후 개똥이는 '사기, 이름과 신원의 사칭, 간음'의 죄로 사형에 처해진 후, 그토록 파렴치하고 혐오스러운 사람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 소멸되도록(p127) 시신이 불태워지는 판결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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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보았듯, '지금'은 너무도 간단하게 당연하다라 증명될 수 있는 것들이 언젠가의 과거에는 한 사람의 목숨을 걸고서 입증해내었어야 하는, 혹은 타인에 의해 입증되어지는 일들이었다라는 걸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간단하게 증명해낼 수 있다라 생각하고 있는 당연한 것이 정말로 간단하게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인가라는 느닷없는 반문에 대해 과연 우리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걸까요? ---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 「나는 무엇인가」에서도 지적했었듯, 인터넷 상의 나 혹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의 기억과 전혀 다른 모습의 내가 보여졌을 때 접하게 되는 흔한 반응, '알고보니 저 녀석 원래는 이런 놈이었구나'라는 그들/세간의 시선이야말로 '내가 나임'을 우리 스스로 증명해낸다는 것이 사실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드리아누스 :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에픽테투스 :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입니다.(p145)
이 말은 곧, 내가 다른 사람이 마음과 생각을 볼 수 없듯이, 나의 마음과 생각도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없는 것이며, 보여줄 수도 없다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외양만으로 '내가 나임'을 충분히 증명해낼 수 있다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은행에서 돈을 찾거나 인감증명서를 발급하는 등의 기계적 일상 이외의 상황에서 '내가 나임'을 증명해내는 것은 (그것이 갑돌이에게 그러했듯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위의 짤막한 대화에 온전히 담겨져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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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갑돌이는 자신의 죄를 눈물로 뉘우치는 갑순이를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법정은 갑돌이가 여러 해동안 가족을 버린 것에 대해서 그의 안에서 들끓고 있던 젊음의 열기와 경솔함(p129) 때문이었다 판단하고, 어쨌든 그간 그의 다리, 재산, 아내에게 일어난 일들로 판단하건데 이미 충분히 벌을 받은 것(p129)이라 결론 내립니다. 법정은 또한 갑순이에 대해서도 따로 죄를 묻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그 이유가 사뭇 놀랍기만 하지요. "결국 여성은 약한 존재이다"라는 단 한 마디만으로 그녀의 (돌아온 갑돌이에게 그간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것에 대한) 진실됨을 믿어주겠다라는 겁니다. 그리곤 두 사람에게 과거를 잊으라고 충고하면서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자 애를 쓰기도 했지요. 이후 갑돌이와 갑순이는 다시 본래의 부부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저자 데이비스는 이에 대해서 불구가 된 자신을 돌보아 줄 아내가 필요했던 갑돌이와 남편과 아이들의 아버지가 필요했던 갑순이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서로의 과거에 대한 암묵적 망각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이상의 이야기가 별 대단치 않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서적들이 탄생한 것에 대해 저자는 이 사건이 '놀랄 만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p173)'이라 적고 있습니다. --- 경제학에서도 '거시'보다는 '미시 경제학'을 훨씬 더 재미있어 했던, 그래서 이후의 전공도 그쪽으로 정했던 저로서는,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으로 처음 접했보았던, 그리고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만나게 된 이 '미시사微視史'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상당한 흥미를 아니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한 사건에 대한 기록과 해석 뿐 아니라 그 미시사의 연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지는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 '역사 연구의 일 방법'에 관한 책으로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와 재미를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특히 오래전 과거의 역사를 읽을 때면 항상 제 머리에 떠오르는 구절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 구절이 그때 그 시절 그곳에서의 이야기인 이 책 「마르탱 게르의 귀향」의 모든 내용을 너무도 정확하게 대변해 주고 있더군요. 정말... (아래 인용문에서와는 다른 의미의) '경탄'을 아니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은 꾸며 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著, 「곰브리치 세계사」 중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
- 백승종 著,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