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말리'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삼바 시세 --- 공사장 인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작업 도중 크게 다쳤으나 적절한 치료도 받아보지 못한 채, (말리의 병원에서 가장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돌아갔(p89)던 장례 절차를 통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만약 유럽에 있었더라 목숨은 지킬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자, 결국 그는 정의롭지 않은 자기 나라를 혐오했고, 다른 나라, 프랑스를 꿈꾸(p89)게 되었죠. --- 이것이 삼바 시세가 그의 나이 열아홉 살때 프랑스에 밀입국을 하게 된 계기였었습니다.
삼바는 임시 체류허가증을 계속 갱신해가며 지난 10여 년동안 프랑스에서 일해왔습니다만, 지연되고 있는 정식 체류증의 발급상황을 알아보러 경찰서에 갔다가 느닷없이 불법체류자로 체포를 당하게 되지요. --- 이 소설은 이후 주인공 삼바 시세가 프랑스에서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약간의 읽는 재미를 빼면) 스토리 자체만으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마저도 쌍팔년도 스타일의 감성이라 느꼈었던 감성의 소유자인) 저에게 울컥~한 감동같은 감정적 변화를 딱히 주지는 못했었지만!
…………………………………………………
①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라는 책에서 저자 마틴 자크는 1800년 무렵까지만 해도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었다라 말할 수는 없던 서구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갑자기 앞서나갈 수 있었던 이유를 '석탄의 집약적 사용과 식민지의 존재'라는 두 가지의 매우 우연적 요소 덕택이었다 주장했습니다. 그 중 '식민지의 존재'는 노예로 대표되는 값싼 노동력과 원재료 획득을 가능케 해주었고, 이로 인해 서유럽에서의 '산업화'가 가능해졌었다라는 거지요.
②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 저는 이 소설의 핵심주제를 '필요악'이라 읽었더랬습니다.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악 /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조직 따위의 운영 상, 또는 사회 생활 상, 부득이 필요한 것으로 되어 있는 사물1"로 정의되는 이 필요악(이었던 매춘)을 놓고 군부와 판토하 대위 사이에 벌어졌던 인식/시각의 차이가 그 소설의 주요 흐름이었다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죠.
·
과거 (삼바의 조국 말리도 포함된)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로 지배했었던 프랑스에게 아프리카로부터 밀입국해 들어오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존재 - 이것이 프랑스의 역사로부터 기인되는 업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가 매우 심각한 사회·경제2적 문제가 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이제는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닌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 온 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라는 이득을 보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다른 한 쪽의 사실이지요. 한 마디로 프랑스에게 불법이민자들은 '필요악'의 정의(definition)에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존재라고나 할까요?
서른 개의 직종에 한해서는 이민자들에게 공식 체류증을 발급해주겠다는 프랑스의 정책3은 이러한 역설적/상반된 입장 -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VS 부득이 필요한 - 에서 내놓은 일종의 고육지책이었을 겁니다. 그러나/또한! --- '더 크게 되고 싶었고, 더 탄탄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p6)' 프랑스에 왔었었던, 하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청소부일 밖에 없었기에 공식 체류증조차 발급받을 수 없게된 삼바 시세에게 이 정책은 여전히 그로 하여금 '필요악'의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하게 되었죠.
그는 함께 쓰레기를 분류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공식적으로는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 프랑스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류하고, 노인네의 똥을 닦아 주고, 밤에 사무실 바닥을 청소했다. 낮이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게, 마치 때, 노쇠, 쓰레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그들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pp282-283)
소설은 삼바 시세와 그의 삼촌인 라무나를 통해 프랑스의 이러한 (프랑스에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부득이 필요한' 필요악'중 '필요'에 해당하는 일부분을 채워주고 있는) 불법이민자 추방정책에 대해 불만/비판의 목소리를/만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 프랑스에 온 이유 중 하나가 프랑스의 정의를 믿기 때문이었다라 말하는 삼바 시세와 자유·혁명·문화·인권의 나라(p196)인 프랑스가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게 해줄 거라 믿었던 그라시외즈. 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생활했었던 라무나가 깨닫게 된,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더 이상 인권의 나라 프랑스가 아닌 눅눅해져 곰팡이가 슨 프랑스(p268)일 뿐인 현실이었다라는 걸 통해서 말이죠.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난 삼바 시세는 (그리고 작가의 흐름을 따라 온 독자 또한 어쩌면) 결국 '곰팡이가 슨 프랑스가 승리를 거두었다'라는 삼촌 라무나의 말을 나중에야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이 나라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낸다고 생각했다. …… 이 나라에서 그의 삶은 현실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정의되었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잇었다.(p284)
이처럼 이 소설에 나타나 있는 프랑스 정부의 공식적 정책,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여전히 불법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이라는 유혹을 완전히 뿌리치지 못한 채 암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현실적인 면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가능하며 심지어 합당하기도 하다라 생각합니다. '낮이 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수 있게, 마치 때, 노쇠, 쓰레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치 그들 자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pp282-283)' 살아야 하는 그들이, 그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내 '부정否定으로만 정의'되는 존재이어야만 하는 상황은 굳이 프랑스를 '인권의 나라'라 칭하지 않는다해도 얼마든지 옳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소설은 이러한 좋은 소재를 오히려 자신의 결정적 약점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라 생각됩니다. --- 프랑스의 이민자 정책을 오로지! 이민자들, 그것도 합법이 아닌 불법 이민자들의 시선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에 있다라는 점이지요.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프랑스인은 문화와 근본적인 가치들에 충실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가치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고 살아가며, 평등한 권리를 갖습니다4(p300)'라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프랑스가 왜! 1년에 2만 8천명이나 되는 불법이민자들을 추방시켜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프랑스 내에 얼마나 많은 수의 불법이민자들이 있다라는 건가... 등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하지 않은 채5, 그런 - 불법이민자들을 추방하는 - 프랑스를 향해 '더 이상 공동의 정의를 믿지 않았다. 나란히 붙어 있는 <정의>와 <프랑스>라는 두 낱말을 떠올리면 이제는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p275)'라 말하는 (타인의 체류증을 빌리거나 훔친, 고로 두 번 더!의 불법의 저지른) 삼바 시세에게 은근히 응원의 박수를 쳐주기 바라고/유도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프랑스의 현실을 더 가려버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에서의 군부와 판토하 대위의 갈등을 유발시켰던 '필요악', 바로 그 필요악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 소설의 핵심으로 밀고 나갔어야 하지 않나 전 생각합니다. ---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에서의 필요악이 오로지 군부의 필요에 의해서만 발생된 것이었다면, 이 작품 「웰컴, 삼바」에서는 양 측이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는 어떻게/왜 다른 결말이 도출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주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거지요.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그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이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바뀔 수 있는지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이라도 차선책이 굶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일을 선택할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한 선택을 '자유 의지'로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먹어야 한다는 생리적 조건 때문에) 그 일자리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한 게 아닌가? …… 가난한 사람들이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 절박하게 만든 환경을 용인할 것인가를 물어야하는지도 모른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장하준 교수는 이처럼 (주로 열악한 작업·경제적 조건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이 진정 자발적인 것인가에 대해 묻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자발적 선택'이라도 여타의 선택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비록 그 선택이 노동자 자신의 자유 의지를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자발적'이 될 수 없다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삼바 시세와 라무나 등,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불법이민자들의 선택 또한 이런 '강요된 자발'이었던 것일까요?
삼바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 말리를 떠난 이후 닥쳤던 모든 고난들을 '프랑스에 거주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p247)'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이겨내왔었습니다. 이 고난들을 잘 이겨내기만 하면 언젠가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죠. 또한! 그가 애초에 말리를 떠나 프랑스로 오기로 했었던 이유 - 정의롭지 않은 자기 나라를 혐오했고, 다른 나라, 프랑스를 꿈꾸(p89)기 시작하였었으며, 프랑스의 정의를 믿었기에 그곳에서 더 크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꺼라는 결심은 오로지 삼바 시세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었더랬습니다. 심지어 경찰에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십 년 전부터 그6의 나라는 프랑스였다. …… 창살 뒤에 갇혀 있어도 손목에 수갑을 차고 있어도, 그는 프랑스를 사랑했다(pp25-26)'라 말하며, '사람들은 그들이 태어난 장소에 의해 정의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은 다른 곳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벌 받을 수 없었다(p47)'라 생각하는 그의 앞에 펼쳐진 현실은 불법이민자로 체포되어 그가 '태어난 나라'로 '자발적' 귀환뿐이었지요. 이미! 마음 속에선 자신을 프랑스인이라 생각하고 있는 삼바 시세에게 말입니다.
유치소에 억류된 사람에게는, 도무지 거부할 방도가 없는 <자발적 귀환>을 받아들일 권리만 있었다. 이 경우에 <자발적인>이라는 낱말은 도대체 뭘 뜻하는 것일까? …… 어떤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그는 그런 식으로 갇히게 되었을까? 다른 곳을 꿈꿨기 때문에? 꿈도 범죄일까? …… 그곳에서는 나라 이름이 사람 이름이 되었고, <자발적인>이나 <꿈>처럼 간단한 낱말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다. 낱말의 의미가 바뀐다면, 인간은 똑같은 인간으로 남아 있을까?(p48)
삼촌 라무이의 체류증을 빌려, 삼바 시세가 아닌 라무이로 하루하루를 살아간 삼바는, 검문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타인의 체류증으로부터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유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평온도 잠시 뿐, 삼촌 라무이마저 직장에서 해고되고 그의 체류증이 더 이상 유효한 것이 아니게 되자 삼바는 다시 절망하게 됩니다.
그가 장장 십 년 동안 일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그에게는 체류증도 일거리도 없었다. 그곳에 머물 권리도 없었다. 그는 이제 불법 체류자였다.(p112) …… 그에게는 더 이상 외출할 권리가 없었다. 일할 권리도 없었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모든 것을 제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p113) …… 가끔 그는 자신이 이 도시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p116)
이러한 상황을 맞이했어도 삼바가 끝내 자신의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 '마쿰바의 사내'로 상징되는, 실패한 귀향자라는 이미지가 자신에게 씌어지는 것이 두려웠다라는 거, 그리고 10년 여의 생활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프랑스인이라 생각하게 된 동화(同化)7가 제가 찾아낼 수 있었던 유이!한 이유들이었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실제로 그 전부라면) 뭔가... 많이 약하죠. 이어지는 삼바 시세의 자조어린 반복되는 한탄에 선뜻 공감의 감정을 가지게 되기엔 말입니다.
● 그의 미래는 아득했다. …… 그에제 정말 중요한 모든 것은(어머니,누이들, 집, 그의 나라) 거기에 없었다. 그의 삶이 텅 빈 가짜처럼 보였다.(p118)
●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신분증도, 일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곧 거처마저 잃게 될 것이다. 신분증이 없는 그에게는 삶도 없었다.(p270)
● 그는 죄수처럼 일을 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잠을 자러 돌아갔다. 그의 삶은 더 이상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이름조차 없었다.(p282)
● 그는 …… 어릴 적 자신을 떠올렸다. …… 그 시절에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그는 분명히 누군가였다. 그 시절에 그는 사람이 아무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p289)
더욱 중요한 점은 --- 프랑스에서의 삶에 결국 지쳐, 가족들이 있는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는 삼촌 라무나의 선택, 그리고 그와는 다른 삼바의 선택. 정녕 우리가 그들의 선택이 '자발적'이 아니었었노라고, 한 발 더 나아가 '강요된 자발적 선택' 또한 될 수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말해도 되는 걸까요? 전 절대 아니라 생각합니다.
프랑스 사회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법이 요구하는 체류증이고, 그들이 가진 노동력(p349)일 뿐이니까요. (이것이 가혹하다라 생각하느냐의 차이가 어쩌면 이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 삼바는 이름까지 바꾸어 '내가 나임'을 부정해가면서까지 지내야 한다라는 것에 심적 동요를 일으키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이 곳 프랑스에서 사는 것을 견딜 만은 하다8라 말하고 있습니다. 즉!!! 프랑스에게 불법이민자들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값싼 노동력 또한 필요한 '필요악'이다라면, 삼바에게도 프랑스는 자신이 수행해야하는 '필요악'의 역할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돌아가는 것 --- 이보다는 차라리! 프랑스에 머무는 것이 나은, 엄연한 그 스스로의 (의지가 곁들어 있는) 자발적 선택이었던 것이며, 이 선택을 '강요된 자발'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 그리고 그러한 환경이 삼바 시세에게 주어진 것이 전적으로 '프랑스'의 책임9이라는 걸 역시 이 작품은 딱히 보여주고 있지 않/못하기 때문이지요.10 비록!
"여기 계속 있다가는 우린 사라지고 말 거다. 우리가 지금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는 걸 모르겠니?"(p269)
라는 삼촌 라무나의 말에서처럼, 그들이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그것이 증명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까지를 맞이했을 때 갖게 되는 자괴감을 가벼이 생각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되겠으나, 바로 이 점에서 이 소설을 아쉽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생각합니다. --- 프랑스의 불법이민자 추방정책으로부터만 소설의 감동/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려 했다보니 정작! i)프랑스와 불법이민자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필요악'의 각 역할을 (최소한 어느 한 쪽은 비자발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라는 점,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어진 ii)'나는 무엇이다(something)'라는 방식이 아닌, '나는 무엇이 아니다(not something)'라는 방식11으로밖에는 정의될 수 없는, 그러다 마지막엔 '나는 무엇도 아니다(not anything)'까지 가야만하는 삼바 시세의 삶의 변화 과정 등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일 수 있었던) 감동을 거의/최소한으로 밖에는 뽑아내지 못했다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왜 먹잇감이 그토록 풍부한 대양을 떠났을까? 왜 그토록 힘들게 강들을 거슬러 올라갔을까? 왜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늘 꿈꿔야만 했을까."(p253)
글쎄요, 그 답이 이 책에 나와 있기는 한 걸까요? 전... 못찾겠더군요. --- 사실 이 부분에서 전 이 소설의 한국어판 제목 「웰컴, 삼바」가 의미하는 바가 i)삼바가 그의 <태어난 나라>에서 환대를 받는다라거나 ii)극적으로 프랑스 사회가 그를 자신들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준다라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했었었거늘, 그렇다면 위의 질문에 대한 작가의 생각 깃든 대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더랬거늘... 결국 이 두 가지는 아닌 결론으로 끝나고 있더군요. 그럼 대체 제목의 '웰컴'은 어떤 의미로 쓰여진 걸까요?
삼바의 마지막 선택이 정녕 어떤 모습의 끝맺음을 하게 될까라는 의문에 전... 아마도 그 역시 삼촌 라무나의 선택과 다르지 않을거라 추측해봅니다. 결국... '웰컴'이란 단어는 삼바에게는 주어지지 않게 되는 그런 결말 말이죠. --;;
……………………………………………………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누군가에 의해 이러한 문제제기가 되었다라는 것 자체까지를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고, 그러한 문제제기 자체를 또한 폄하해서는 안되겠습니다만 이 소설은 뭐랄까...일을 저질렀는데, 제대로 저지른 것도 아니고 게다가 뒷수습마저도 해놓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랄까요? --- 행여 이러한 문제제기가 제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었던/글이나 말로 표현해낼 수 없었었던, 하지만 듣고보니 머리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었다라면 저 스스로라도 어떤 이후의 생각을 이어가보려는 독서를 하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앞서 말한대로 이 소설의 문제제기 방식이 지극히 편파적이었다라는, 좀 심하게 말해도 된다면 일종의 쌍팔년도식 '감성팔이'일 뿐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는 저로서는 글쎄요...
이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동명의 영화12도 곧 개봉된다더군요. 영화를 보지 않고 내리는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 영화가 그려내는 삼바가 지극히 순박하고 착한 인물이고, 그를 추방하려는 프랑스 경찰/관리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악한 경찰'이라면 그 편파성은... 어쩌면 작가의 문제제기보다 더 커다란 문제제기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도 싶네요.
※ 본문과 각주에 등장하는 책들의 감상문
- 마틴 자크 著,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 장하준 著,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박민규 作, 「지구영웅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