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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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2일'의 발행일이 적혀 있는 '3판 1쇄'의 책이니, 이 책을 샀었던 건 최소한 그 이후 시점의 일이었겠으나, 책의 종이가 꽤나 누렇게 바래져 있는 걸 보면, 책을 사놓고 (비록 의도적은 아니나) 일정 기간 묵혀두었다 읽는 걸 마치 취미로 갖고 있는 듯한 저에게도, 이 책은 그 정도가 좀 심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 책장을 쭉 둘러보니, 현재 가지고 있는 책들 중, 읽지 않은 것 중에서 이 책보다 더 이전에 산 책이 딱히 눈에 띄지도 않더군요 . --;;) ---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지만, 문득! 좀 야한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란 생각이, 그토록 오래 전에 초대해 놓았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결정적 계기였었습니다. 그래... 그 야한 소설에의 원(願)은 이루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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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이가 그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가리켜 특히 그걸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항상 그러하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내가 열아홉 나이를 넘긴 강진에서의 열 달 남짓이 바로 그러하였다.(p9)

저의 '젊은 날'이 이 소설로부터 실질적인 영향을 받았다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정서/사상적 영향만큼은 분명!히 남겨져 있는, 그렇게 마흔일곱의 나이가 되어서까지도 저에게, 그 때의 (이걸 뭐라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감동이랄까, 충격이었다랄까? 뭐 암튼 그런 것을 분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작품인 작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연!히도 제게 있는 '3판 1쇄'의 「젊은날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3판 1쇄'의 「상실의 시대」 또한... 주인공이 동일한 나이 때의 자신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더군요.


나는 고개를 들어 북해(北海)의 하늘에 떠 있는 어두운 구름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는 여러 길목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또는 사라져 간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그 모든 상실의 아픔들을. …… 때는 1969년 가을이었고, 내가 곧 스무 살을 맞이하는 열아홉의 고개를 넘고 있을 무렵이었다.(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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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그 줄거리에 대한 소개가 자칫, 많고 많은 연예기획사에서 내놓는 많고 많으며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아이돌 그룹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소설의 가장 뼈대인 줄거리를 빼고 써낼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1이, 그럼에도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는, 혹은 그렇기에 굉장히 짧아질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는, 또한 막상 타이핑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써내어 보고 싶은 것들이, 문득문득 새롭게 생겨나고도 있기도 합니다. 대체 왜 이런 걸까요? --- 그건 단연코!!!


어언 20년이 지나, 저는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 무렵엔, 잘 이해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스무 살 청년이 20년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p8)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의 서문>에 나와있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두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고 쓴 것과 비슷한 형식을 갖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 내용은 매우 구체적 혹은 솔직해져야함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 역시 스무 살이었던 때가 분명 있었었거늘, 그로부터 27년이 지나고 나니 무슨 요술이라도 부려진 것처럼 마흔일곱의 나이가 되어 있더군요. 그 27년이란 시간 속엔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었을 것이고 만약!!! 그 수많은 선택의 결과들이 마흔일곱 살 저의 지금 모습/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선택들 중의 일부, 예를 들어 연애사에 한해 몇몇을 바꾸어 상상해본다면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지게 될까?, 혹 그게 너무 광범위하다면, 지금도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내 아내와의 연애감정이 여전!히 우리의 첫 키스때와 동일하다면?이란 상상은 어떨까... 같은 일탈/재고(再考)에의 유혹을 이 작품이 저에게 너무도 강하게 던져 주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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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시점에선, 이 책의 제목인 「상실의 시대2」를 따라,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상실'이 무엇인가에만 초점을 맞춘 감상문을 써야겠다라 생각했더랬지요. 근데 그 대강의 그림을 막상 그리고 써내어 보니, 이런 식의 frame으로만 완성해낸다면, 이 작품을 한낱 흔해 빠진, 그렇고 그렇게 전개되는 연애 소설로 전락시켜버릴 것 같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차라리!!! 이 소설의 주인공인 와타나베, 그리고 그가 겪었던 '인생의 그 어느 순간들'을 '나'와 '내 지나온 인생의 어느 순간들'과 비교해보며, 실제로 이 작품을 읽어가며 느꼈었던/받았었던 --- 공감을 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했으며, 언뜻언뜻 후회? 아쉬움? 뭐 그렇게 스쳐갔던 여러 감정들의 일부(혹은 대부분)를 함께 적어보는 것이, '책을 읽기는 읽었는데 대체 그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 막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이 감상문이란 것이었음에도, 여기에서만큼은 어차피 줄거리를 빼놓고 가기로 작정한 바에얀 훨씬 더... 의미 있는, 어쩌면! '기억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져 가고,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p24)'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잊혀지게 될(지도 모를, 다만 지금 기억하고 있는 수준으로나마의) '그때 그 시절'들에 조금이라도 더 긴 들숨과 날숨을 안겨주는 일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저... 지금 뭔 소릴 적고 있는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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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인 '와타나베'를 '나'로 바꾸어본다면 --- 이 작품이 이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고, 지금도 읽히고 있다하며, 그런 독자의 숫자만이 아닌, 뭔가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공감을 발하고 있는 건 아마도... 와타나베의 주변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을 바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건 결코 스무 살의 나이에 이 작품을 읽어선 받지 못한 느낌일 것이고, 최소한! 마흔 일곱살이 되어있는 저의 경우엔... 그러한 느낌이 너무도 강렬했었다라는 거지요​.

지난 27년의 제 과거 속에는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인 나가사와도, 미도리도, 그리고 레이코도 있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못한 사랑'으로 규정짓는다면 나오코마저도 등장합니다. 허나... 이젠 이름마저도 가물해진 그들, 어느 순간에선 적지 않은 후회로 남아있기도 한, 또는 나름 그 어떤 것을 뿌리치고 다른/올바른 것을 선택했다라는 뿌듯해 해도 될만하다라 생각하는 그 모든 순간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결국 '선택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 선택/실현되는 않은 과거들'이란 점이 되겠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나는 이제 곧 스무 살이 되고, 나와 기즈키가 열여섯 살과 열일곱 살 나이에 공유했던 것 중 어떤 것은 이미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건 아무리 한탄해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야.(p337)

그 모든 선택될 수 있었으나, 결국 선택되지도 실현되지도 않은 과거들이 전부 다 한탄스러운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전부 다 만족스러운 것도 분명 아닙니다.--- 역사에 있어 가정이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는 말이 일 개인사에까지 적용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때 내 옆에 있었던 미도리와의 어느 결정적 순간을 그 때완 다르게 선택했었더라면? 서로 반대편 벽에 기댄 채 멀리 마주앉아 있었던 레이코에게, 당시 나의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한 마디를 결국 내보낼 수 있었더라면?... 과 같은 '가정'은 지금의 이 시점에선 완전히 '상상'의 영역에만 머물 수밖엔 없겠지만, 지금 제 아내가 되어있는 그녀와의 연애 시절, 그리고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라 결심했었던 그 순간의 간절함 같은 걸 지금도 여전히 내가 간직하고 있다면?과 같은 '가정'은, 최소한 제 경우엔 지금이라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라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그걸 현실로 만들어내고 싶느냐 아니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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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동시에 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自我)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 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pp8-9)

​어느 한 구절도 버리고 싶지 않을만큼, 절절하게 공감되는 작가의 말입니다. ('살아 남는다'라는 표현의 초점을 작가완 약간만 다르게 맞춰본다면) 지금의 제 현실은 분명, 저를 둘러싸고 있던 그 모든 것들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은 것이어야겠지만, 마흔일곱 살이 되어 읽어본 이 작품 「상실의 시대」는 끝내... 그 살아 남지 못한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라 말하고 있었다라 생각됩니다. 물론! 지금의 제 현실을 '행복'이라 말할 수 있기에, 상상해본 다른 선택의 '살아 남지 못한 모습'들이 결코 상실이라 표현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안타깝게도 혹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가슴아픈 '상실'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구요.) 이는 곧! 저 개인적으로는 --- '스무 살 청년이 27년이 지나면 마흔일곱 살이 된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이 작품을 읽었다라는 것과, 그 27년이 아직 미래형으로 남아있었을 스무 살 청년이었을 때 이 작품을 읽었었다라는 것이 정말로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주었을/줄 것이라는 걸, 지난 27년의 되돌아보니 마치 확신이라도 하듯 받아들이게 되었다라는 걸 의미합니다. 작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이 제게 남겨준 것이 정서/사상적 영향이었다라면, 언뜻 '나비효과'라는 것이 떠올려지게도 되는 「상실의 시대」는 --- 이 소설을 제 나이 스무 살 때 읽지 않았다라는 것이 그나마 저의 현재가 '지금은 완료형'이 되어있다라는 것에 차마 --;; 아쉬움이라기보다는 다행이야~란 말을 어쨌!든 하게된다라 말할만큼 정말로... 엄청난/엄청났었을 수도 있는 ---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여운을 안겨주는 작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상실의 시대」란 소설 한 편을 읽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또 다른 한 편의 소설을 상상해보자라는 거 --- 이 멋진!!!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이렇게 밖엔 마무리해내지 못하겠네요. 주말 내내, 정말... 로 여러 번의 고심을 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던, 하지만 여전히 완성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어쩌면! 끝내 완성본을 적어낼 수 없을 것같다라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할 듯 싶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많고 많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던 처음의 의도완 달리, 예의... 저의 밖으로 보여내기보다는 '여전히/그저 하고 싶은 말들'로만 남겨놓는 것이 오히려 이 작품에 대한 여운을 해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길게 써놓았던 이 감상문을 이렇게 횡설수설식의 짧은(?) 글로 마무리해놓은 게, 뭐 쉽게 말하자면 --- 많고 많은 연예기획사에서 내놓는, 많고 많으며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저까지 나서서 더할 필요야 없지않겠냐는거지요.  


​<덧붙임>

1. 이 작품을 읽고나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음악들과 책들이 다 궁금은 해졌지만, 최소한 「위대한 개츠비」는 반드시 읽어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나는 개츠비가 강 건너편의 작은 불빛을 매일 밤 지켜보던 것처럼, 가늘게 흔들리는 그 불빛을 오래오래 보고 있었다."(p184)의 장면이 왠지 모르게 저에게 그런 생각을 안겨주더군요.


2. "만일 현실 세계에 이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일은 편할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 옴짝달짝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이 위에서 스르르 내려와 와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요.(p296)"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인생에 있어서, 이런 찬스!가... 한 번쯤은 제 주머니 속에 남겨져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건... 누구나 다 느끼는 거겠죠?

3. 우리나라에 처음 나왔던 1989년에야 상당히 충격적이었겠으나, 마흔일곱 살이 되어 읽어 본 이 책 --- 그닥! 야하지는 않던데요? 제가 좀... 쎈가요? --;;

4.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인적 취향인지, 아님 저의 지나치게 예민한 시선인지 모르겠으나 --- 이 소설을 읽고 얻은 '실용적 교훈' 하나를 말해보라 한다면 단연코!!! '이는 꼭 닦고 자자'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암튼... 양치 하나는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하더군요. ^^;;

5. 이 작품에도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의미의 ★표시를 붙여놓긴 했습니다만, 최소한... (그 이하의 나이임에도 이미 파란만장한 연애사를 겪었다면 또 모를까) 삼십 대 중반 이상의 분들에게만 그것이 유효할 듯 하다는 저 개인적 의견을 꼭! 잊지 말아주시기도 바래어 봅니다.


 


※ 같은 나이의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길의 인생 : 이문열 作, 「젊은날의 초상


 

 

 

 

  


 

  1. 그러한 이유로, 이 감상문은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읽어본 분에게도 전혀 공감되지 않을 수도, 심지언 재미없는 글로 읽혀질지도 모르겠네요.
  2. 이 책의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과는 전혀 관계 없이 지어진 이 제목 --- 저 개인적으론 영화 <Ghost>의 원제가 우리나라에선 <사랑과 영혼>으로 바뀌어졌던 것처럼, 나름... 설득력있는 개연성을 갖춘 작명이었다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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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식사전 - 경제뉴스가 말랑말랑해지는 핵심 키워드 146! 길벗 상식 사전 12
김민구 지음 / 길벗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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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제가 굉장히 옛날 사람인 듯한 표현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최소한 제가 그 대학생이었었을 때의 기성세대분들에겐 사뭇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다라는 걸 여러 번 느꼈더랬었습니다. 쌩판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생 시절, '임수경이 북한 간거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해?'란 질문을 꽤나 여러 번 받았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 걸 보면, 저 또한 나름 '대학생'이라는, 저에게 주어져 있던 그 뭔가의 의미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건 아닌듯 한데, 그럼에도... 당시엔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었었었죠. --;;


거기에 더해져, '경제학과 학생'이라는 서브 타이틀 또한! 우리나라 경제에 뭔가 문제가 있다라는 뉴스가 거론될 때마다, 그것에 대한 저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일종의 '사회적 의무감' 같은 걸 부여하기도 했었었거늘, (다시 한번 더) 그럼에도 예의... '뭘 알아야 면장을 하죠'란 식의 대답 밖에는 할 수가 없었었지요.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고등학교 동창들과 나갔던 미팅에서 치대, 심지어 화학과 녀석마저도 맞은 편 여학생들로부터, 사람 이빨이 몇 개냐, 아스피린 진짜 만들 줄 아냐 등등의 질문을 받았었거늘 그 누.구.도! (그런 차례가 오길 은근 기다리기까지도 했었던) 저에겐 요즘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다는 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든가 수요와 공급은 정말로 항상 균형을 이루나요? 등의 질문을 하지는 않더군요. (허긴, 미팅 나와 그런 질문하는 여학생을 제정신이라 볼 수도 없겠지만서도. --;;)

솔직히 말하자면... (최소한 89학번 경제학과의 시절엔) 제 아무리 학부 3,4학년생이라 해도 실물 경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름 해석하고 누군가에게 그 원인부터해서 이럴 수밖에 없는 결과가 되는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전혀 없었다라 봐도 무방하다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제 또래의 경제학도들을 무시해서가 아닌, (당시의) '경제학과'에서 배웠던 것들이 '경제학 (이론)'이었지 '경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뭐가 달라?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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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막! 제대하고 나서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동기는 아니었지만 저랑 동갑이었던, 통신실에서 근무했기에 제가 종종 시내전화 연결을 부탁하곤 했던 (군대에서 알게 된) 친구가 휴가를 나왔다해 각자의 여자친구와 함께 신촌의 어느 술집에서 만났었었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가 제가 갑자기 묻더군요. "야, 근데 그 돈세탁이란 건 대체 어떻게 하는거냐?" --- 경제학과에선... 결코 '돈세탁'은 어떻게 하는거다라는 걸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혹! 제가 배우지 안았던 과목에선 배웠을지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그 친군... 제가 경제학과 학생이니까! 당연히 '돈세탁'이란 걸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였죠. 헌데 정작!!! 그 질문에 먼저 입을 열었던 건 제가 아닌, 제 옆에 있던 당시의 (미대생이었던) 여자친구였었습니다. --- "그거 되게 쉬워요. 세탁기에 동전 넣고 거기 쓰여져 있는대로만 하면 다 되요." 제 여자친구는... 제 군인 친구의 질문이 '코인세탁'을 어떻게 하는건줄 알았던 거죠. (뭐... 그땐 그것마저도 오부지게 사랑스러웠었습니다만... ^^;;)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학부생 때 시험감독 들어오는 조교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이 답 다 알고 있겠지?라 생각했었었기에, 드디어... 제가 그 조교가 되었다라는 게 참 많이 뿌듯했었었지요. 근데 처음으로 저에게 배정된 시험감독의 과목이 하필!이면... 제가 학부때 배우지도 않았던 <국제금융론>인겁니다. 뭐... 그냥 문제지랑 답안지 나눠주고 제출받고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한 학생이 어느 문제가 좀 이상하다며 잘못된 게 아니냐,란 질문을 하더군요. 도무지 문제를 봐도 뭔 소린지 나도 모르겠거늘, 그런 질문을 받고보니 그럼에도! '사실 저... 이 문제들이 뭔 소린지 하나도 몰라요'란 말을 '저 사람들은 이 답 다 알고 있겠지?'의 학부시절을 보냈던 제가 차마 할 수가 없는겁니다. 그래... 뭐 좀 읽어보는 척 하다가 '한 번 더 잘 생각해보세요'류의 대답으로 그 순간을 모면했었었죠. 경제학과 졸업했다 해서... 경제학을 다 아는 것도 아니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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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을 읽다 보면 경제이론 못지않게 독특한, 그래서 이해하기 힘든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p200)

저도 예전에 이런 책 몇 권 사서 읽어보다말다 했었었기에, 게다가 경제학 공부를 할만큼은 다 했다라 생각하는 (아직은 죽지않은) 핵존심에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만, 목차를 살펴보니 유난히 '주식시장'과 관련된 부분들에 급! 흥미가 생기더군요. (예의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학생이었을 때의 경제학과 커리큘럼엔 '주식시장'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과목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암튼! 「권력의 종말」을 버거워하며 읽어낸 후, 나름... 각 좀 풀어도 되는 독서를 하고 싶어 곧장 이 책을 펼쳤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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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초체력 쌓기 - 재테크에 도움되는 금융상식 - 한국경제 이슈 따라잡기 - 세계경제 시야 넓히기>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첫 번째 장인 <경제 기초체력 쌓기>는 말 그대로 경제학에 등장하는 몇몇 용어들을 설명해주고 있는 장이지요.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로는 '매몰비용, 대체재와 보완재, 유동성, 기회비용, 지니계수, 독점과 과점, 정보의 비대칭성'등, 이 밖에도 언급하지 않은 것들을 다 포함한다면 이 짧은 내용 속에 넣을 수 있는 <경제원론> 속 최대한의 핵심들을 거의 다 담아놓았다라 말해도 될 듯 합니다. 물론!!! 경제원론 교과서에 등장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간단간단하면서도 실제 경제신문에서 보여지는 현실들과 적절히 연결시켜 설명해주고 있기에, 경제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도 별 어려움없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죠. (그렇다고 이 책의 수준이 굉장히 낮고 그런 건 또 아닙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가졌었던 두 번째 장인 <재테크에 도움되는 금융상식>에서는 거의 모든 내용들이 저에겐 처음 보게/배우게 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주식을 하겠다거나, 주식시장에 대해 정신차리고 배워보겠다는 게 아니었기에 그저... 이러이러한 지표들이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작성되며 그것들이 어떻게/왜 주식시장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가에 대해 배우는 정도만을 기대했었었고, 예의 이 책은 딱! 제가 원했던 수준에서 그 대부분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던 용어들 - 불마켓(bull market)/베어마켓(bear market), 공매도, 유상증자/무상증자, 주식소각 등등 - 혹은 박사과정에서 지극히 수학적으로만 배웠었던 것들 - 헤징(hedging), 선물(futures) 등 - 에 관해 (물론! 전 모두 난생 처음 듣고 보는 용어들이었던) '콘탱고(contango), 백워데이션(backwardation), 베이시스(basis)'등 현실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을 동원해 그것이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당히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다음의 <한국경제 이슈 따라잡기> <세계경제 시야 넓히기> 두 장은 제목 그대로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상들과, 세계경제가 흘러가는 현황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빅맥지수'라고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전 뭐... 이게 그저 각국의 물가 수준을 가장 간단하게 비교해볼 수 있는 지표 정도로 생각했더랬습니다만! 이번에 인상된 담배값의 책정에 이 빅맥지수가 참조되었다라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이런 건... 경제학과 백 년 다녀도 수업시간엔 배울 수 없을겁니다.


2015년 1월 1일부터 실시된 담배값 2,000원 인상도 빅맥지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빅맥지수를 활용해 52개국의 빅맥가격과 담배 가격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분석 국가들의 빅맥 평균가격은 4,190원이고 담배 평균가격은 4,851원으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20개비 담배 1갑의 가격이 평균 2,500원이라면 이는 빅맥 가격의 절반 수준입니다. 즉 햄버거 하나 가격으로 담배를 1갑 이상 구매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조사결과에 따라 담배 가격 2,000원 인상안이 추진되었고, 2015년 1월 1일 시행되었습니다. 이처럼 빅맥지수는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p298)

세계경제를 다룬 장에서는 특히나/역시나 중국에 관한 부분들이 무척이나 흥미롭더군요. --- 2010년 장시중공업이란 회사가 미국 자동차부품업체인 델파이를 인수한 것이나, 하이얼이 일본 산요의 백색가전 사업을 인수한 것 등을 저자는 '역(逆)마르코폴로 효과'라는 용어로 설명해줍니다. 과거에 마르코폴로가 중국으로부터 나침반, 화약, 종이등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것과는 반대로, 선진기술과 글로벌 브랜드를 확보하기 위해 국적이나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해외 유명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는 현재 중국 정부와 기업들의 경영전략을 이렇게 부른다 하네요.


'차이나플레이션(Chinaflation)'은 중국에서 시작된 물가상승 압력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1979년부터 시작된 '1가구 1자녀'정책으로 말미암아 현재 주된 노동자 연령층인 20-39세의 수가 크게 줄었는데 반해, 급격한 산업화로 노동력의 수요는 늘어나 결국 이것이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게 되어 중국의 물가가 상승하게 되었다는 게 그 주요 내용입니다...만!!! --- 이 책이 매력적인 건, 이러한 '차이나플레이션'의 이면, 그러니까 수출주도형인 현재의 중국경제를 내수중심형으로 전환시키려는 중국 정부가 이러한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은근히 부추키고 있다는 것과, 심지어는 노동자 파업까지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그 실례로 팍스콘 같은 외국기업의 파업에 대해 중국 정부가 과거에 비해 훨씬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것들이 다... 이러한 내수진작에의 속내를 가지고 있다라는 설명을 해주고 있는 부분이었으며, 이런 것들은 '경제'만을 가르치는 경제학과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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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대통령 선거 때... TV 토론회에서 당시 후보였었던 YS에게 어느 패널이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을 아느냐 물었더랬습니다. YS는 대답을 못했었지요. 다음 날 신문에 그게 어쩌니 저쩌니하는 기사들이 나왔었는데 전... 그거 보면서 참 한심하다라 생각했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왜!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을 반드시 알아야 하느냐에 대한 당위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그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란 비판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의문 때문이었더랬지요. 물론... 패널의 그 질문이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훗날 YS가 대통령이 되어 말했던 "지도자는 머리를 빌려쓸 수 있다"라는 말이 오히려! 훨씬 더 일국의 지도자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좀 지나친 비유 대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이 책을 한 번쯤 정독 하고나면, 그 내용들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지 않더라도, 나중에 언제나라도 그 중 일부가 궁금하다면 다시금 이 책을 뒤적거려 해당 부분을 읽어볼 수 있다라는 의미1에서, 게다가! 개정판의 속도를 보니 저자 또한 '현재'에 뒤떨어지지 않게 계속 책의 내용들을 수정·보완2하고 있기에 시대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훌륭한 '경제 참고서'가 될 수 있다라 생각됩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요즘 한창 유행하고 있는 '얇지만 넓은 지식'이라는 면에서도 --- 개방으로 인해 한 국가의 금융업계 주도권이 외국 자본에게로 넘어가는 현상을 일컫는 '윔블던 효과'를, 최근 들어 관심사가 되고 있는 중국 자본의 제주도 진출에 엮어 한 번쯤 툭하고 내뱉는, '지적으로 보이는 대화'를 하는 것에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지요. (어쩌면 조만간... <퀴즈 아카데미> 7주 우승!!!에 빛나는 회계학 전공의 감사해요님 앞에서 회계원리 C 받았던 제가 다리 꼬고 앉아 '더블 아이리쉬(Double Irish)'에 대해 블라블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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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단순히 '이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을 쓰겠다 했다면 사실... 책 전부를 읽어보지 않더라도, 아니! 그저 목차만 살펴보았더라도 그런 글을 쓸 수는 있었을 겁니다.(추측컨데 아마도... 우리나라 저자가 쓴 경제관련 서적에 붙어있는 경제학과 교수들의 추천사들은 대부분 그렇게 쓰여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헌데 다 읽고 나니 말이죠...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 나왔던, 경제 정책 입안자나 경제학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의 수동적이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경제학 (내 여러 학파들의 이론/주장)에 대해, 비록 개략적이나마 반드시 알고 있어야한다라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도 분명! 의심의 여지 없이 타당한 말이라 생각합니다만 ---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물론!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뭔가 나아도 낫겠지만) 반드시 자동차 엔진의 작동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란 말 또한 유효하기에, 운전석에 앉아 손에 닿는 버튼들의 매뉴얼만 읽어보겠다라는 생각에 견주어질 수 있는, 이 책에 나와 있는 것들 같이 간단하고 피부에 더 와닿는 내용들부터라도 알아가겠다라는 시도 역시 충분히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더군요.


 

뭔가 현실 경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척/알고 싶은 경제학도라면, 혹은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이라면, 또는 이미 취직이 된 직장이라 할지라도 내가 아둥바둥하며 살아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떠한 원리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심지어! 뭔가 집 밖의 '경제'란 것에선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듯 오해받는, 집에서 가사일로 하루 온종일을 보내는 주부일지라도! (남편이 증권회사엘 다닌다면 더더욱!!!) 이 책은... '반드시'라고도 말하고 싶을만큼, 그 대상에 상관없이 읽어볼 만한 가치를 충분히 가진 책이라 생각합니다. '안다라는 것'이 꼭... 면장같은 걸 하기위해서만 필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경제/경제학 관련 책들

- 유시민 著,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유시민의 시각에서 정리한 규범경제학.

- 장하준 著,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경제학'이 아닌, '장하준의 경제학'. 하지만 '역시 장하준!'.

- 홍기빈 著,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인간의 욕망은 과연 무한한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

- 류동민 著, 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 :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소개.

- 이준구 著,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 MB정부의 경제정책들에 대한 합리적 비판.

- 손해용 著, 다시쓰는 경제교과서」 : (상당히라 말해질 수도 있을만큼) 보수적인 시각에서 근현대 한국경제사의 매우 적절한 토픽들만을 뽑아 정리한 책.



 

 





 

  1. 이 책의 말미엔 잘 정리된 용어목록까지 있습니다.
  2.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각종 통계수치들과 실례들은 매우 최근의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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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종말 - 다른 세상의 시작
모이제스 나임 지음, 김병순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독서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 「권력의 종말」이 왜 세간의 이목을 끌게되었는지 다들 아실겁니다.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2015년을 맞아 개설한 'A Year of Books' 페이지의 첫 독서로 이 책을 꼽았었기 때문이죠. 책의 저자인 모이제스 나임이 저커버그에게 고맙단 인사말을 남겼을 정도로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더군요.


자기 박사학위 논문을 여전히 이해하고 있는 50대의 경제학과 교수는 아마 거의 없을거다란 농담을 대학원시절 했었더랬습니다만, 제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차마 생각조차 못했었거늘 --- 그래도 한때 나도 사회과학도였었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책을 읽어가면선 '아! 머리가 안도네'라는 좌절감을 종종 느껴야 했더랬습니다. 책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건 아닌데, 부분부분 독자로서 자신만의 생각을 해보아야할 곳들에서 그... '자신만의 생각'을 해본다라는 게 꽤나 버거운 겁니다. 마치 공학도 출신의 아빠가 아이의 중학교 1학년 수학문제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암튼! 저커버그가 아니었으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커다랗게 주목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이 책은 예의... 그렇게 저커버그가 아니었으면 읽었었을 책이었고,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그가 아니었다면 읽었었을 책이기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비슷한 맥락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지루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독자의 성향에 따라선 매우 매우 흥미롭게 읽혀지는 책일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제 경우엔... (둘 중 하나의 표현만 선택하라 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다라, 읽었더라면 꽤나 아쉬웠었을 거란 말을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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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두 단어, '권력'과 '종말'에 대한 저자의 정의(definition)부터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작이어야 한다라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권력의 종말'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워야 하며,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개별 독자가 생각하고 있는 '권력의 종말'이라는 개념과의 상이함으로부터 생겨나는 충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즉! 이 책을 별 거부감없이/무사히 읽어나가려면, 크게 봐서 '권력의 정의(definition) - 권력의 쇠퇴 - 대체권력의 등장'이라는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저자 모이제스 나임이 내리고 있는 '권력'과 '종말'이라는 단어들의 정의에 일단!은 동의하여야 한다라는 겁니다.


권력의 정의(definition)

"이 책은 권력에 관한 책이다'(p21)"라 말하고 있는 저자는, 그 '권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p50) 

이 정의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니라 생각하는데, 저자는 여기에 더해 '권력'과 '영향력'을 다시 구분해놓고 있습니다. --- "권력과 영향력은 둘 다 타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은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하지, 상황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p69)

​이처럼 '권력'과 '영향력'을 구분해 놓는 세심함에 더해, 저자는 자신이 이 책에서 정의하고 있는 '권력'이라는 개념 앞에 '실용적'이라는 단어를 붙여놓고 있기도 합니다. 즉! 이로 인해 자칫 제기될 수 있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사상과의 충돌을 일단은 피해가겠다란 것이지요. 우리나라 헌법에도 나와 있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권력의 이상적 표현과는 맥락이 많이 다른, 말 그대로 지극히 실용적인 의미에서의 '권력'에 대해서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겠다라는 게 저자 모이제스 나임의 생각인 겁니다. 주권재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권력'에는 종말이라는 단계가 있을 수는 없는거니까요.1

​이처럼 '정의(definition)'을 통한 범위의 제약이 사회과학에서 생소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배웠던 경제학에서도 경제원론의 수준에서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가정들을 죄다 모아놓고 논의를 시작했었으니까요. 물론! 이처럼 단순한 수준에서 전개된 모형도 나름의 현실 설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후 그러한 가정들의 완화를 통해 더 고급 단계의 수준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단계이기도 하겠습니다만 ---- 예의! 저자의 이러한 권력에 대한 정의가 (그의 표현을 따라보면) 지나치게 '실용적'이라는 아쉬움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2 '나 개인'에게 무엇을 지시하거나 행동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로만 권력을 정의한다면, 예를 들어 죄를 짓지 않는 한, 법원의 부장판사와 '나 개인'간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권력의 작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라 말할 수도 있게 되지요. 이는 저자가 말한 '영향력'과도 별 관계가 있지 못하며, 차라리! (뭔가 많이 허전한 개념이긴 합니다만) '권력이 지닌 위엄', 혹은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통해 진중권이 표현했던 '한국의 천민성' - 현재에도 판사와 같은 일부 직업을 판사를 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판사 스스로조차도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신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 - 과 관련이 있어보이지만, 이같은 실제 (한국적인) 현실은 저자가 내린 '권력'의 정의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3 뭐 어쨌든! 저자가 내려놓고 있는 수준으로만 '권력'을 이해하고 이제 그 '권력의 종말'이라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권력의 종말


표현은 '권력의 종말'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 엄밀하게 적용시키자면 '(내용과 주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의 변화'가 더 합당할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변화'라는 것의 내용이 시각에 따라서는 '종말'로 보일 수도 있다라는, 그리고 저자는 철저히 그러한 시각에서 내내 '권력의 변화'를 '종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 받았습니다. 약간의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를 한 마디로 간단하게 표현해보자면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이라 노래했던 이선희C의 노래를 수많은 권력자들을 대신해 저자 모이제스 나임이 불러주고 있다는 거지요.


저자는 "권력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으며 점점 더 덧없는 것, 제한된 것이 되고 있다는 사실(p12)"을 먼저 강조합니다. 즉 권력의 쇠퇴, 그러니까 권력이 사라졌다거나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없다(p23)는 주장이 아닌, 전임자들이 행사했던 권력보다는 약하다(p23)라는 거지요.  


이처럼 권력을 쇠퇴하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저자는 기존의 권력자들이 경쟁자의 공격을 막으려고 쳐놓았던 장벽들이 인구 구성과 경제의 변화, 정보 기술의 확산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화와 장래에 대한 기대, 가치관, 사회 규범의 근본적 방향 전환,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전반적인 범위와 상태, 가능성와 변화와 관련이 있다(pp38-39) (뭔가 심히 어지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한 마디로 예전에는 기존의 권력자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권력을 다투던 경쟁자들이 적었을 뿐 아니라 권력에 제약을 가하는 요소들, 예를 들어 시민운동이나 세계 시장, 언론 감시같은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하여 그처럼 권력을 감시하고 있는 수단들이 너무도 많아졌기에 권력 자체가 약해졌을 뿐 아니라, 권력자가 그러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들 또한 점점 더 제한되고 있다라는 겁니다.


저자의 논의를 더 살펴보기 전에! --- 여기에 저자는 '쇠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과연 '쇠퇴'라는, 지극히 주관적 가치관이 개입될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마땅히 가져봐야한다라 생각합니다. 기존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분명! 그것이 쇠퇴이겠지만, 그 반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분산' 혹은 '제한' 등의 확연히 다른 뉘앙스의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4 이와 관련하여, 저커버그가 이 책을 소개하면서 했다는 "오늘날 세계가 전통적으로 정부와 군대 같은 거대한 조직만 보유했던 권력을 개인들에게 더 많이 주는 쪽으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책"이라는 말은, (이것이 번역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더 많이 주는5 쪽'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저커버그 스스로 '정부와 군대'라는 기존의 권력자들을 향해 자신을 그 대척점, 그러니까 새로운 대체권력(counterpower)에 포지셔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암튼!


저자는 오늘날 권력에 영향을 미친 변화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후 정치·국가(군사력과 소프트 파워)·기업, 심지어 종교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권력의 '쇠퇴'를 모두 일관되게 이 세가지의 변화로 해석해내고 있지요. 그 세 가지는 '양적 증가 혁명, 이동 혁명, 의식 혁명'인데, "첫 번째 변화는 권력의 장벽을 수렁에 빠뜨리고, 두 번째 변화는 장벽을 에워싸고, 세 번째 변화는 장벽의 밑동을 잘라내고 있다(p118)"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주장을 요약해 보자면...


권력은 네 개의 서로 다른 통로, 즉 어떤 일을 강제로 하게 하는 완력, 윤리적 의무감을 부여하는 규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선전,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보상을 통해서 작동한다. 이 가운데 완력과 보상은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려고 유인책을 바꾸고 상황을 새롭게 만든다. 반면에 선전과 규범은 유인책을 바꾸는 일 없이,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바꾼다. 권력의 장벽은 완력, 규범, 선전, 보상이 효과를 발휘하는 한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양적 증가 혁명, 이동 혁명, 의식 혁명은 그러한 장벽을 약하게 만든다.(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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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약해진 (기존) 권력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미시권력micropower'입니다. 이 미시권력은 기존의 권력들처럼 강력하고 압도적이며 강압적인 권력이 아닌, "혁신과 독창력에서 나오는 권력(p52)"이지요. 이제 저자는 크게 나눠 정치·국가·기업의 수준에서 이러한 미시권력이 어떻게 (기존의) 거대권력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을 강제로 내쫒고 있는지까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극복할 수 없으며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 통념은 우리 모두를 어느 정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만든다. 그러나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베버와 그의 추종자들이 그동안 현대적 삶의 핵심인 경쟁과 경영에 가장 잘 맞는 조직 모델이라고 했던 것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폐물이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권력의 형태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예전에 보잘것없었던 다수의 작은 세력들이 움직이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해서 권력이 분산되는 반면에, 거대한 기존의 관료 체제에 자리 잡은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했던 권력의 특성이 점차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의문들은 미시권력의 출현과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미시권력의 출현은 권력이 크기와 규모라는 족쇄에서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p111)

먼저 기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저자는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자본, 기술력, 브랜드 이름 등 '강력하고 압도적인'이라 표현될 수 있었던 기존의 진입 장벽들이 "기존 시장에서 경쟁이 격화되면서 어떤 희소 자원에 대한 통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거나, 기존 권력의 장벽을 약화시키는 것들이 나타나거나, 다른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쉽게 하는 새로운 기술이 발명될 때 일어(p74)"난 것이 아님에도!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습니다. 즉 과거에는 규모가 속도보다 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었었으나, 지금은 바로 속도가 규모를 이기기 때문에 현재 기업에서 '권력의 쇠퇴'가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는 심지어 "이제 규모는 장점이 아니라 부담이 되고 있다(p348)"라고까지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어가는 상황을 저자는 막스 베버 이론의 무용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6 일례로 막스 베버는 분권화된 군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군대의 지나친 중앙집권이 오히려 약점이 되어버렸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한 발 더 나아가, 막스 베버가 주장했었던 국가의 존립 근거 중 하나인 "폭력의 합법적 사용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기구(p230)"로서의 국가 독점 또한 다양한 차원에서 이미 깨져버렸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라는 거지요. 뭐... 여기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고, 딱히 거부감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헌데 말이죠...

이들 주제보다 앞서 논의하고 있는 정치의 측면은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저자가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이라 노래했던 이선희C의 노래를 수많은 권력자들을 대신해 불러주고 있다는 느낌을 제가 갖게 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 정치에서의 '권력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에 나타났었기 때문이지요.

권력의 중심은 "다수"의 권력으로 분산되었다. 다수에게 분산된 권력은 제각각 정치나 정부의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만, 그러한 결정에 일방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의 권력은 안 된다. 그것은 건강한 민주주의, 바람직한 견제와 균형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말은 맞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정치 치제가 파편화되면서, 최종 순간에 늘 최소주의에 입각한 의사 결정만 내리는 성향과 교착 상태를 낳고 있다. 그 결과 공공 정책의 질은 떨어지고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긴급한 현안을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pp166-167)

얼핏 보면 여기까지의 주장은 여전히 흥미롭고, 현실적으로도 유용하다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은 이제 정당들이 가장 중요하게 신봉하는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자신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단일 쟁점에 더 잘 움직이죠(p210)"라는 레나 헬름-발렌 스웨덴 전임 총리의 말은 마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호남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것을 극단적으로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바로 다음에 위치시켜 놓음으로써 은연중에 '그러나'로 시작되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지요.

전반적으로 NGO는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구성원들과 후원자들에게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문제를 포괄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 때문에 편협해질 수 있어요.(p211) - 칠레 전임 대통령 리카르도 라고스의 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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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나친 집중'과 이로 인한 소수의 권력 장악이 엄연한 현실인데, 어떻게 오늘날 권력이 쇠퇴하였고 분권화 되었으며, 권력자들이 포위되었다라 말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저자는 "오늘날 권력자들은 과거보다 더 제한을 받고 있다. 그들의 권력 장악력은 전임자들과 견주어 훨씬 떨어진다.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기간은 더 짧아졌다.(p424)"라는 대답을 통해 이 책에 나타나 있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 '앵커 효과(anchor effect)'라는 게 있지요. 예를 들어 담배값이 오르게 되면 한동안은 사람들이 새로운 담배값을 '비싸다'라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르게 되면 사람들의 기준점(anchor)이 아예 이동해 버리게 되어 더 이상 그것을 '비싸다'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책의 저자 모이제스 나임은 철저하게 과거의 기준점에 고착해 있는 채 '권력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전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었던/행사했었던 권력에 기준을 놓고 보니, 그것이 '권력의 쇠퇴'이고 결국엔 '권력의 종말'로 밖엔 보여지지 않는다라는 거죠.7 물론!!!

저자는 ​"한때 전통적인 세력이 지배했던 인간 활동의 많은 무대가 새로운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주기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다 마침내 기득권 세력은 권력을 잃는다. 좋은 소식이다.(p425)"라는 말로, 이러한 자신의 anchor를 (교묘하게) 가려내려 하고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분야를 막론하고 권력의 쇠퇴는 단기적으로 사회 안녕과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격렬한 반발과 심지어 재난을 초래할 여러 위기를 낳는다(p441)"라는, 다시 말해 '권력의 내용과 주체가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 생각엔 과거의 방식이 훨씬 더 안전하다'라 말하고 있다라 전 생각합니다. 비록, 그 다음에 각 개인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라"라는 메세지를 이 새로운 권력의 쇠퇴기에 대처하는 일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는 여전히...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함일 뿐이라는 거지요.

……………………………………………………………

이처럼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느냐의 여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를 떠나 2014년 초반에 쓰여진 이 책에서 보여지고 있는 '권력의 변화'라는 여러 현상들 중 적지 않는 부분들이 현재의 우리나라에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독서였었습니다. --- 지방 정부의 득세, 그리고 권력의 중심축 혹은 최소한 적지 않는 부분이 행정부로부터 사법부로 이전되고 있다라는 진단이나, "아웃사이더들이 성장, 또한 기존 정당 구조의 밖에 있는 사람들도 많은 지지자들을 얻어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새로운 길을 닦고 있다(p161)"는 점, 더 크게 보아선 '관료제의 몰락'을 국제정치와 연관지어내는 부분 등은 가치관을 떠나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또한 저자의 이러한 지적들이 대부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라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관료들에겐 필독서라고까지 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정치인도 아니고 고위 관료도 아니며,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는 다른 의미의 '권력'도 아니라는 게, '이 책을 읽긴 읽었는데, 그랬다고 뭐가?"와 같은, 사뭇 허망하게도 느껴지더라!라는 감정은 이런 류의 책을 읽고 나면 항상 그러했었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착찹한 뒷맛을 남겨주기는 하더군요. --;; 

 

 

 


 




 

 



 

  1. 이와 관련하여 --- 국민주권이라 함은 정치의 최종적 결정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하는 의미이며 반드시 국민 각자가 직접 정치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민은 선거에 의하여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국가의 정치를 대행시키고 헌법개정시의 국민투표등에 의하여 정치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수한 간접민주제국가(間接民主制國家)에서 국민주권(國民主權)을 부인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국민주권' 중
  2.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서술이 바로 "정치의 본질은 권력이다. 권력의 진수는 정치다. 자고이래로, 권력자가 되는 전형적인 방법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다.(p159)"가 아닐까 싶습니다.
  3.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의 일부는 지극히 미국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기에 한국의 독자인 저로서는 그저 대충 읽어넘기게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사고의 차이가 이러한 아쉬움을 낳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4. 심지어 기존권력에 대항해 생겨난 대체권력(counterpower)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권력의 생성'이 되기도 할테니까요.
  5. 한가지 더 보자면, '주는'이라는 말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지요. 어법상으로만 보자면 '세계'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하겠지만, 과연 '주는'의 주체를 '세계'로 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
  6. "크기는 권력을 낳고 권력은 다시 크기를 낳았다.(pp88-89) …… (하지만) 권력이 규모와 무관해지면서 베버의 주장처럼 권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했던 거대한 관료 조직이 무의미해지는 현상은 이제 세상을 바꾸고 있다.(p114)"
  7. 그러하기에, 기존의 권력층들에게는 이 책이 자신들의 향수/아쉬움을 달래어주는 일종의 청량제와 같은 위안을 줄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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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난 오래 전부터 밤마다 당신이 나타나는 악몽을 꾸었어. 당신이 내 삶을 망가뜨린 그 날부터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p96)  

눈을 떠보니 낯선 장소, 그것도 어느 지하실의 철창 속이고, 나를 그곳에 가두어 둔 여인은 다름아닌 어젯 밤 처음 만나 술 한잔 같이 걸쳤던 사람이었으며, 그녀의 입에서 위와 같은 증오 어린 말을 듣게 된다면? ---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형사 브누이는 퇴근길, 길에 정차해 있던 고장난 차를 발견하고는 그 차주가 매력적인 미모의 여성이라는 이유로 좀 도와 주는 척 하다가 수작을 부렸고 에 또... 암튼 그의 타고난 바람기는 결국 그녀의 집으로 그의 발걸음을 옮기게 했으며 결국엔 약을 탄 술을 마시곤 다음 날 아침, 느닷없이 지하실에 있는 철창 속에서 깨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리디아라는 이름의 그녀가 다짜고자 자신을 향해 "당신이 오렐라이를 죽였다는 걸 알고 있어. …… 넌 살인자야! 악질적인 살인마지! 미성년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추악한 인간이지!(pp124-125)"라 외친다라는 거였죠. 하지만 브누이 경감 또한 이에 지지않고 맞섭니다. "당신은 단단히 미친 여자야. 난 오렐리아가 누군지도 몰라. 평생 단 한 번도 강간같은 건 하지 않았어.(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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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만의 한 분야라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암튼) 한 분야인 <게임이론>을 처음 배울 때 만나게 되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많이들 들어보셨을 '용의자1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죠. --- 길동이와 꺽정이가 어떤 범죄의 공범 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이 둘을 각기 다른 방에서 따로 취조하면서 경찰은 다음과 같은 오퍼2를 합니다. : 만약 너희 둘이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면 증거가 없는 우리로서는 너희를 풀어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둘 다 자백을 하면 정상참작을 해 각 2년씩의 감옥살이만 시키겠다. 근데, 만약 한 놈은 자백을 하고, 한 놈은 끝까지 부인하다면 자백한 놈은 1년만, 부인한 놈은 괘씸죄로 3년의 감옥살이를 시키겠다. 이를 표3로 만들어보면, .

 

꺽정이가 자백했을 때 

꺽정이가 끝까지 부인했을 때 

 길동이가 자백을 했을 때

-2,-2 

-1,-3

 길동이가 끝까지 부인했을 때

-3.-1 

0,0


길동이의 입장을 먼저 보죠. --- 최고의 결과는 길동이와 꺽정이가 끝까지 의리를 지켜 둘 다 범행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명 모두 곧장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0,0) 헌데 만약에, 길동이는 의리를 지켜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거늘, 꺽정이 녀석이 배신이건 마음이 약해서건 어떤 이유로 만약 범행 사실을 털어놓기라도 한다면, 졸지에 길동이만 미운털이 박혀 3년의 최고형을 받게 되는 겁니다.(-3,-1) 하지만 길동이가 (꺽정이의 행동과 관계 없이) 무조건 자백을 해버리면! : 꺽정이가 의리를 지켜 끝까지 부인했다면 차선인 1년형을(-1,-3), 꺽정이도 자백을 했다해도 법정 최고형은 면한 2년의 형(-2,-2)을 선고 받게 되는 거지요. 이러한 추론은 꺽정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고 그 결과!!! --- 길동이와 꺽정이는 둘 다 끝까지 범행 사실을 부인하면 곧장 석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둘 다 자백을 하여 각각 2년의 옥살이를 하게 되는, 둘 다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둘 다 불행해지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게 바로 이 '용의자의 딜레마'의 결론입니다. 아니... 소설 한 권 읽고 쓰는 감상문에 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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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임을 하자는 거요?", "당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임이죠."(p16)


'프랑스 심리 스릴러의 아이콘(p351)'이라 불리운다는 작가 카린 지에벨을 처음 알게 해준 이 작품 「너는 모른다」의 전체적인 구도는 바로 위와 같은 '딜레마의 연속' 혹은 '여러 딜레마의 등장'을 띠고 있습니다. 

자신이 왜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브누이 경감에게 리디아는 "당신은 대가를 치러야 할 일이 있어요. ……최대한 오래도록 당신을 그 안에 가두고 지켜볼 생각이에요. 물론 당신에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겠죠(p36)"라는 대답만을 해줍니다. 브누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쳐 환장할 노릇인거죠.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오직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라는 결과만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4 시간이 지나면서 리디아는 결국 브누이에게 왜 그가 철창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자신의 쌍동이 자매인 오렐리아를 브누이가 15년전에 강간하고 살해했다라는 겁니다. 브누이는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며 펄쩍 뛰었고, 이후의 육체적·정신적 고문에도 끝내 그 주장을 굽히지 않지요. 여기서 이 소설에 담겨 있는 첫 번째 게임이 나옵니다.5

 

 

리디아는 브누이가 이 지하실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어서 빨리 자신에게 자백하고, "오렐라이를 살해하고 묻은 장소를 실토하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죽도록 해(p162)"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브누이 또한 알고 있었죠. "거짓으로라도 오렐리아를 죽였다고 자백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p150)"걸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브누이는 이후 (죽음보다는 나은 선택으로서) 리디아의 무자비한 육체적·정신적 고문들을 당하게 됩니다.


리디아 입장에서도 고민은 있습니다. 비록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어. 당신이 목숨을 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뿐이야.(p83)"라 말을 하긴 했지만,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오렐라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를 브누이로부터 알아내는 것이지, 브누이의 목숨이나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니었었죠. 즉, 리디아 입장에서는 브누이가 죽어버리면 자신이 원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브누이를 극한까지 고문하는 선택권은 쥐고 있어도, 죽여버리는 선택권까지는 원하지 않는 이 상황을 그녀/작가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p197)"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이렇게만 보면, 자신이 (그것이 거짓이건 진심이건에 상관없이) 자백을 하는 순간 죽게 될 것이라는 브누이의 예상/패는 정확했습니다...만!!! 그 선택의 대가로 그가 받아야 했던 이후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은 너무도 처절했었었지요. 여기서 하나!!!

<게임이론>은 두 플레이어(길동이와 꺽정)가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에 대한 완벽한 정보까지를 모두 가지고/알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즉, 내가 A라는 선택을 하면(A) 너는 B를 선택할 것이고(B), 이 사실을 너 또한 알고 있으며(B'), 나는 또한 A-B-B'으로 이어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 서로의 '알고 있음'은 이후로도 무한히 유지된다는 (약간은 비현실적인) 상황6이지요.

갇힌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누이에게 철창 밖 리디아를 잡아 목을 조르고 있는, 그러니까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브누이는 리디아에게 철창 열쇠를 내놓으라 말했지만, 당시 리디아의 몸에는 열쇠가 없었었지요. 즉! 그 순간, 브누이가 열쇠가 없는 리디아를 죽여버린다면 자신 또한 그 철장 밖으로 나갈 가능성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겁니다. 그 생각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리디아는 브누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브누이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더욱 처참하고 가혹한 고문을 리디아로부터 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란 생각7을 잠시 해보기도 하지만, (여차저차한 이야기의 전개 뒤에) 결국 브누이는 자신이 오렐리아를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자백을 하고 말지요.


이후의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문득!!! --- 브누이가 리디아의 목을 조르고 있던 그 상황에서 만약 자신이 철창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죽였더라면, 그러니까 자신의 탈출 가능성마저 포기하는 대가로 이후 자신에게 가해질 극악한 고문을 면하려 했었다면 과연 이 소설은 어떻게 흘러갔었을까하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보게 되지요. 헌데 말입니다...


이 소설을 쭉 읽어가다보면, 작가가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데 정말로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상황을 아~주 야금야금 진행8시켜나가고 있을 뿐 아니라, 마지막에 벌어지는 (약간은 짜장스럽게 생겨났던) 돌발상황 이후 결국! 위의 '과연 이 소설은 어떻게 흘러갔었을까하는 의문'에 대한 결말까지를 기어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독자를 향해 작가가 (마치,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두 플레이어는 그 게임의 시작에서 각자의 전략만을 가지고 있을 뿐, 그 게임의 결말에 대해선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지적 관점의 인물은 그 결말까지를 모두 알고, 그 두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지켜보고 있는 식의)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너는 모른다9! 하지만 나는 니가 무슨 생각/예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라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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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음을 알고 있는 브누이 경감은 상황의 진행에서 내내 리디아와의 심리 게임을 벌입니다. 리디아에게 때로는 저자세로, 때로는 '너무 고분고분 온순하게 굴면 가지고 노는 게 재미없다며 죽일 수도 있을(p65)'지 모른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기도 하지요. 결과적으로 브누이 경감의 전략을 성공을 하게 되나, 상황 자체가 성공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이게 뭔 말인가 싶겠지만, 이 소설의 재미가 바로 이 점에 있기에 그걸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암튼!


브누이 경감과 리디아의 게임은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되며, 이로 인해 리디아에게는 새로운 딜레마가 생겨나게 되지요. --- "브누아를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 하지만 그를 내보내면 나는 즉시 경찰에 체포돼 감옥에 끌려가야 하겠지. …… 브누아를 살려야 할까? 아니면 나를?(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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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의 딜레마'에서 길동이와 꺽정이에게 가장 좋은 결과는 물론 둘 다 끝까지 범행을 부인해 (0,0)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 게임의 디자이너는 그 둘의 최종 선택이 (-2,-2)가 될 수 밖에 없도록 게임을 설계해 놓았습니다. --- 이 소설에도 리디아와 브누아의 게임이 분명! (0,0)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국엔! (-2,-2)도 아닌, (-1,-3) 혹은 (-3,-1)이라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도출될 수 밖에 없도록 설계해 놓은 한 사람의 게임 디자이너가 숨어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작가는 (위에서 언급했던 짜장스럽게 생겨난) 돌발적인 어떤 상황을 동원해 결국... 이 게임이 (-3,-3)이라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끝맺음을 하도록 만들어놓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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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중반부까지를 읽어내면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10 대박이겠다. 단! 그 감독은 <올드보이> 정서의 박찬욱 감독이어야만 한다'라 생각했더랬거늘!!! --- '복수'라는 짧은 한 단어,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는 「고백」, 「방황하는 칼날」, 「천사의 나이프」, 「13계단」, 「뫼비우스의 띠」, 「사망추정시각」 등등등, 제가 읽어본 소설들에서만도 제각기 다른 면모들을 볼 수 있었듯, 매우 복잡다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허나, 제가 가장 통쾌!하고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생각하는 건 단연코 원신역 감독의 <세븐 데이즈>라는 영화였지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 소설의 이야기가 결국은 '복수'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이걸 영화로 만든다면 <올드보이> 정서의 박찬욱 감독이 아닌 원신연 감독이어야겠다라 마음이 바뀌더군요. 물론 <올드보이> 또한 '복수'를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고, 그 '복수'의 방식 역시 매우 극단적이라는 면에서는 <세븐 데이즈>와 동일합니다만!11


<세븐 데이즈>에서 그 게임의 설계자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가운데 최고의 고통은 산 채로 불에 타는 것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복수를 실현시킵니다. 이 작품 「너는 모른다」 또한! 바로 그와 똑같은 정서12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정 자체도 너무나 흡사한 소설이기 때문!에 만약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면 그 감독은 원신연 감독이 되어야 한다라 생각하게 된 거지요. (써놓고 보니, 별 이유 없이 괜한 변덕만 부린 것 같기도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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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불륜'에 관한 소설을 한 권 읽고 싶었습니다. 단! 어찌어찌하여 서로의 가정을 찾아간다는 교훈적 결말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불륜'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리하여 결말 또한 불륜의 당사자들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진정 원하는 것, 가급적이면 가정을 깨고 둘의 사랑을 이어간다라든다 하는 식으로 끝맺음되어지는 그런 소설 말이죠. --- 「방황하는 칼날」이나 「천사의 나이프」에서처럼, 이 소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독자들에게 흔치않은 생각할꺼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무슨 심오한 메세지가 있었다거나, 엄청난 감동을 선사해주는... 그런 소설은 분명 아닙니다만! <세븐 데이즈>식의 결말에 지극한 환호성을 올렸던 정서를 가진 저로서는 (비록 몇몇 불필요하다라 생각되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긴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 소설의 끝맺음에도 똑같은 환호를 하게만 됩니다. '복수'란 것에 아무리 복잡한 심리적인 면들이 내재되어 있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복수'란건 (이 소설의 결말을 '통쾌하다'라 표현하기엔 약!간 미진한 면이 없지않아 있긴 합니다만) 통쾌!해야만 한다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하기에 이 책의 표지에 나와 있는 "비정한 살인인가? 복수의 완성인가?"라는 질문에 전 지체없이 '복수의 완성'이라 답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과연... 어떠할른지요.



 



※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들.

- 히가시노 게이고 作, 「방황하는 칼날

- 미나토 가나에 作, 「고백

- 야쿠마루 가쿠 作, 「천사의 나이프

- 조세희 作, 「뫼비우스의 띠」

- 다카노 가즈아키 作, 「13계단

- 사쿠 다쓰키 作, 「사망추정시각


 

 

 

 

 

  


 

  1. 'prisoner'라는 영단어를 죄수로 번역하느냐 용의자로 번역하느냐의 문제는 이 예화의 본질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니 제 맘대로 선택했습니다.
  2. 이 오퍼에 제시되는 형량은 교과서마다 거의 다 다릅니다만, 중요한 건 형량의 절대치가 아니라 경우에 따른 경중이므로 여기에서의 숫자는 가장 간단한 경우로 적용시켰습니다
  3. 징역형으로 표현한다면 (-)부호가 붙으면 안되겠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여전히 절대값이 커질수록 더 안좋은 결과라는 핵심은 유지되지요. 앞쪽 값이 길동이 것이고 뒤쪽 값이 꺽정이 것입니다.
  4.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지?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리디아의 증요대상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알 수만 있어도 이토록 답답하지는 않을 텐데. …… 무엇이 리디아를 복수심에 불타는 악녀로 만들었을까? 리디아가 나를 어떻게 처리할까? 단지 굴욕감만 안겨 주고 끝낼까? 아니면 정말 죽일 수도 있을까?(p93)"
  5. 리디아와 브누아 경감 사이의 게임 이외에도,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두 사람간의 게임'이 등장합니다. 평생의 수치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냐를 선택해야하는 일종의 '치킨게임'과도 같은 구조인데, 이 게임의 당사자와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6. 이것의 가장 간단한 예는, 가위바위보 직전 A가 '난 가위를 낼꺼야!'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B는 그럼 난 주먹을 내볼까?라 생각할 것이고, 그런 예상을 하는 A는 생각을 바꿔 보자기를 낼 수도, 또한 B는 이를 예상해 가위를 낼 수도 …… 이런 상대방의 행동에 따른 반응의 변화가 정해진 횟수 모두에서 모두 (혹은 무한히) 반복된다라는 거지요.
  7. 브누이 경감은 소설의 끝까지 "아직 자살할 용기는 없었다.(p320)"에서 알 수 있듯이 '자살'이라는 선택을 자신의 선택지에 넣어놓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서술해놓고 있지요. : '브누아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참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여전히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태초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갖고 있기 마련이었다.'(p237)
  8.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을 한 번 읽기 시작하니, 어지간해서는 끊지를 못하겠더군요.
  9. 물론! 이 책의 제목에서의 '너는 모른다'가 이런 의미는 아닙니다.
  10. 실제로 --- "시종일관 밀고 당기는 팽팽한 신경전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허를 찌르는 반전과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 되는 이 소설은 프랑스 현지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p351)
  11. 게다가 <올드보이>에 등장했던 두 개의 섹스씬이 보여주었던 (물론 정서적 거부감이야 대단했지만) 야릇한 낯설음 또한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반드시 들어가야할 요소라고도 생각합니다. ^^;;
  12. "그 개자식이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어. 조만간 세상에서 아예 사라져버릴 거야. 아주 영원히!"(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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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8.0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미술 선생님은 좋아했었습니다만, 미술이란 과목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멀어만 지더군요. (저... 유치원 때 전국 미술대회에서 대상 받았던, 하지만, 고등학교 때 미술 실기에선 '미'를 받기도 했던 그런 사람입. --;;) 대학생 때, 대학로에서 소개팅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는 데, 마침 제가 참 '멋진 여성!'이라 생각했었던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다음 정거장에서 그 버스에 타셨었고, 당신께서도 친구의 전시회가 있어 대학로에 가시는 길이시라고, 시간 되면 같이 가서 잠깐 구경해보지 않겠냐셔서 난생 처음 갤러리란 곳을 갔거늘 선생님께선 주구장창 지인분들과 담소만 나누시는 겁니다. 그래 조용히 다가가, '선생님, 저... 그림 설명 좀 해주세요.'했더니, 선생님 대답해주시길 '미술 작품은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느끼는 거란다.' --- 다시 한번 더,아니 이번엔 아예! 미술이란 예술 자체와 멀어지게 되는 순간이었었지요. --;;

 

'미술 치료'라는 생소한 분야의 책입니다. 사실 조교수가 결혼 전에 '음악 치료'란 걸 공부하기는 했었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했던 메마른 감정의 전 '대체 음악으로 뭘 치료한다는/할 수 있다는 거야!'했었었었지요. 마찬가지로 이 책을 펼치기 전, 제가 가졌던 '미술 치료'란 것에 대한 예상은 --- ①미술 작품을 통해 개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한다. ②미술 작품을 이용해 개인의 정신적 질병을 치료한다. : 이 두 가지 일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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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자기계발서'라 분류되는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힐링'을 준다는 류의 책들도 마찬가지구요. --- 자기계발서는 딱! 그 목차만 봐도 더 이상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써낸 책으로부터의 '힐링'이라는 건 '목마른 사람에게 한 덩어리의 바게트 빵'을 안겨줄 뿐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이 책 역시 "그림은 소통과 치유를 가능케 합니다(p4)"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 예의 '내가 너를 위로해주마'류의 책입니다. 헌데!!! '그림'이라는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이 책은... 정말로 찌릿!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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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 Young Man at His Wondow>라는 그림을 통해 저자는 '의미 있는 무의미의 시간'을 말해줍니다. :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는, 잠시 손을 놓고 다른 무언가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한 노력이 드는 무언가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약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일이면 됩니다.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 무의미의 시간을 게으름으로 치부하지 마세요. 사색을 통한 창조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p25)" --- 지난 달, 강원도 영진항의 한 카페에 앉아 그야말로 멍 때리며 바다를 바라 보았던, 하지만 막상 그런 시간을 저 스스로도 오랫동안 즐길 (시간적 여유는 차치한다해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그런 저에게 저자의 이 별 특별하지 않은 말들로 조합된 조언은 시작부터 뭔가 시큼한 감정의 동요를 주더군요.


존 밀레이의 <눈 먼 소녀 The Blind Girl>이란 그림을 통해선 "나보다 더 힘없고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그런 사람의 존재가 우리에겐 생각지도 못한 큰 힘이 되어(p34)"준다라는 말로 나의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줘 주었기도, 에드가 드가의 <시골 경마장 At the Races in the Countryside>를 통해서는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 아홉 가지를 해야만 한다는 말처럼,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p55)"다라는, 일종의 '너만 그런 거 아니란다'류의 위로1를 안겨주었기도 했습니다.


칭찬도 여러 분 들으면 지겹다고, 이런 수준의 위로가 계속 반복되어 나왔다라면, 그리고 그렇게 이 책의 독서가 끝이 났던 거였다면!!! 이 책을 읽고난 후 쓰고 있는 이 감상문도 여기서 끝맺음을 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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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정확히 인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만약 일 때문이라고 해도, 정확히 어떤 일 때문에 받는지, 왜 일이 많을 때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데, 적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보수까지, 여러 요인이 같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렇기에 자기가 꺼낼 이야기를 정확히 준비해서 "이런 문제 때문입니다"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때 사람의 무의식을 끌어내는 중간 매체로 '그림'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p208) …… 미술치료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는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쳐다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거든요.(p255)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 부분이 '미술 치료'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부분이라 생각했던 구절입니다. 하지만!!! 유명한 그림 한 점 보여주고, 그에 이어 적절히 '그 누구에게든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러니까 전혀 구체적이지 못한, 그저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위로의 말을 늘어놓은 책이었다면 그것을 가리켜 차마! "그림의 힘"이라는 말을 쓰지는 못했겠지요.


다음 그림은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운다는 디에고 리베라의 <꽃 노점상 The Flower Seller>라는 작품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디에고 리베라' 검색)

 

예전에 읽었던 「미술관 옆 인문학2」이란 책에서도 이 그림을 볼 수 있었었지요. 그 책에 나타난, '인문학의 렌즈'를 통해 감상한 이 작품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여인의 머리 위로 백합 비슷한 모양의 거대한 꽃송이들이 만개해 있다. 어깨에 둘러맨 끈이 여성을 졸라매는 듯이 팽팽하다. 있는 힘을 다해서 들어 올리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인지 꽃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인을 괴롭히는 괴물처럼 느껴지기조차 한다. 여자는 이 꽃을 지고 어느 길가에 앉아 꽃을 사줄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 그림 속의 노동이 전혀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노동과 연관되어 있는 화려한 꽃은 우리 마음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차라리 철근이나 벽돌을 나르거나 용접을 하고 있는 모습이면 덜 참혹해 보였을 것 같다. 노동의 대상이, 노동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꽃이기에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 꽃이 아름답듯이 노동도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pp235-236) ……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꽃을 나르는 노동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린다.(p239)

저자의 주관이 다분히 개입되어 있다,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 어쨌든 이것이 '인문학의 렌즈'를 통해 본/볼 수 있는, 그리하여 감상자의 마음 속에 남겨주는 '무언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자는 이후 '노동이 아름다울 수는 없는가'라는 논지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독자를 안내했지요. 그렇다면!!!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쳐다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도록 도와준다는 미술 치료의 관점에선 위 작품을 과연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고 좋은 꽃을 팔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꽃을 파는 이 여인에게,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무게만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 이렇듯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모든 일에는 노동의 고충이 숨어 있습니다. ……꽃 파는 일도 그렇습니다. '꽃 보면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라고만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남들이 자는 새벽에 꽃시장에 갔다 와야지, 신선도도 유지해야지, 개인 주문이 들어오면 그 시간에 맞춰야지, 그 나름의 힘듦이 있거든요.(p217)

뭐야? 다를 게 없잖아! --- 아닙니다. '인문학의 렌즈'는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을 설명하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었지만, '미술 치료'는 이 말 이후 다음과 같은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남들이 겉만 보고 여러모로 '부럽다' '좋겠다'를 연발하곤 하는데, 정작 스스로는 각종 부담과 걱정거리로 짓눌리고 있을 때가 있지 않나요. 그럴 때의 외로움을 묵묵히 달래주는 그림입니다. 네가 힘든 것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요. 칼라3의 눈부심과 뒤의 조력자도 아주 절망적이 아닌 느낌을 주지요.(p217)

얼마 전 어느 분께서 (전화로 한 번, 이후 직접 만나서 또 한 번) 제게 '당신은 이제껏 내가 본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란 말을 해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음 날, 제 블로그의 대문 멘트를 "그때 우리는 행복했다"로 바꾸었었죠. --- (그렇담, 지금의 넌 불행하다라거나, 최소한 행복하지는 않은거냐라는 질문에 여기서 대답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때 우리는 행복했다"라는 멘트의 블로그 대문을 가진 이에게 디에고 리베라의 <꽃 노점상>이라는 미술 작품을 놓고, 최소한 지금의 이 상황에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럴 때의 외로움'이라 (저자의 표현 그대로) "달래주는" 위로는 결코! 목이 말라 죽겠는 저에게 한 덩어리의 바게트 빵은 아닌, 목 말라 죽겠는 저에게 건네어진 한 모금의 시원한 생수였었었지요. 그런...데 말이죠 , 이것이 다가 아니라 이후, 목말라 죽겠는 저에게 시~원한 한 통의 포카리스웨트가 주어졌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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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그랬답니다. '화가 날땐 그 마음을 바로 열일곱 자로 표현해보라. 열일곱 자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화가 이미 타인의 화로 변(p305)'한다라면서요. --- 이 책, 「그림의 힘」의 저자는 '아픔을 밖으로 꺼낼수록 자꾸 덧나기만 하는 게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숨기면 평생 그 안에 들어 있겠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면 사라지고 흩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만들고, 말하면서 내면의 응어리를 발산(p305)"해야만 그 아픔이 진정 치료가 된다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조지 클로젠의 다음 작품 <울고 있는 젊은이 Youth Mourning>을 보여줍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슬픈 스트레스 상담자들은 이 그림을 보며 그렇게 펑펑 울곤 합니다(p299)"란 멘트를 마지막으로 페이지를 넘겼을 때 보여졌던 이 그림!


(이미지 출처 : 구글 'youth mourning' 검색) 


이제까지 정말!로, 대학로의 어느 갤러리에서 들었던 이후 사실일거라 믿어왔었던, '미술 작품은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느끼는 거란다'라는 미술 선생님의 이 말씀이 최소한 저에게만큼은 완전히! 틀린 말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었습니다. 아~무 설명 없이, 저 혼자 이 그림을 보았더라면 '벌거벗은 한 여인이 벌판위에 있는 누군가의 묘지앞에 엎드려 울고 있다. 대체 뭘까? 대체 뭐야!' 이상의 그 어떤 감정도 못느꼈을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만! --- 299쪽을 넘겨낸 순간 보여진 이 그림, 그리고 그에 달려 있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저 역시... 종원군만 마주앉아 있지 않았더라면 고개를 파묻어 울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더랬지요.

 

 

 

 

 

슬플 땐 이 그림에 와서 한껏 울어버리세요.

눈물도, 콧물도 쏟고, 가슴과 어깨가 들썩이다

끝내 잦아들 때까지요.


울음은 영혼이 회복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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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란 어차피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그보다 더한 개인적 감정의 작동일 것이기에, 저의 개인적 감정을 써놓은 이 감상문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어느 정도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혹시 지금 당신이 다음과 같은 경우들 중 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혹은 가까운 과거에 그러한 경험을 했었더라면 혹, 흥미 내지는 (제가 이 책에서 받았던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이 또한 저 개인적인 선택일 수 밖에 없는, 이 책에 나와있는 몇 가지의 '미술 치료'의 예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해당 미술 작품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은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싶어 (아쉽지만) 생략한 채로 말이죠.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모른 채 바쁜 걸음을 걷는 이들에게 그림이라는 거울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책" --- 노래도 환장할 만큼 좋아하거늘, 이 책에 대한 여러 명의 추천사들 중 가장 맘에 들었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더, 윤덕원C의 글이야말로, '시간이 많아도 길게만 쓰고마는' 제가 표현해내지 못하는, 이 책에 대한 가장 간결하면서도 핵심이 들어있는 멘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 여러분은 과연? (그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종종 너무 뻔하거나, 심지언 작위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꼈던 것들을 모두 제외한 채, 꽤나 인상깊었던 작품들의 경우만 모아봤습니다만, 사람에 따라선 아래의 글들 중에서도 '너무 뻔하다'거나 '작위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슬럼프에 빠져 힘들거나 결과에 낙심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그림에서 천사와 같이 쉬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p78)

● 이 그림은 나의 문제를 내려다봄으로써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차분한 사색을 가능케 합니다.(p257)

● 이렇게 성실하게 일을 하다보면 그런 매일 매일이 쌓여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긍정적 느낌을 받게 됩니다.(p278)

● 이 그림은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라'는 얼얼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p285)

● 이 그림은 깊은 상처를 지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너의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라고 등을 밀어주는 응원가입니다.(p305)

● 이 그림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게 일어나는 일들은 너의 책임이 아냐. 네가 의도하지 않아도 우주와 세월이 모두 함께 움직이고 있어. 너의 강렬한 슬픔들에서 언젠간 회복될 수 있을 거야."(p315)

● 이 그림은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림이 주는 다채로운 자극을 온몸으로 즐겨보세요.(p317)

● 이 그림은 특히 자신감이 떨어질 때 보면 좋습니다. 색깔과 형태가 과감하여 에너지와 역동감을 주기 때문입니다.(p333)

 

 



 

  1. 신기한 게, 저에겐... 이런 게 참 크게 위로가 될 때가 종종 있더군요. 예를 들어, 「위대한 유산」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등의 소설이 저에게 그런 위로를 주었었지요.
  2. 박홍순 著, 서해문집, 2011.1.5.
  3. calla. 아프리카 원산의 천남성(天南星)과의 원예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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