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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ㅣ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8.0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미술 선생님은 좋아했었습니다만, 미술이란 과목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멀어만 지더군요. (저... 유치원 때 전국 미술대회에서 대상 받았던, 하지만, 고등학교 때 미술 실기에선 '미'를 받기도 했던 그런 사람입. --;;) 대학생 때, 대학로에서 소개팅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는 데, 마침 제가 참 '멋진 여성!'이라 생각했었던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다음 정거장에서 그 버스에 타셨었고, 당신께서도 친구의 전시회가 있어 대학로에 가시는 길이시라고, 시간 되면 같이 가서 잠깐 구경해보지 않겠냐셔서 난생 처음 갤러리란 곳을 갔거늘 선생님께선 주구장창 지인분들과 담소만 나누시는 겁니다. 그래 조용히 다가가, '선생님, 저... 그림 설명 좀 해주세요.'했더니, 선생님 대답해주시길 '미술 작품은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느끼는 거란다.' --- 다시 한번 더,아니 이번엔 아예! 미술이란 예술 자체와 멀어지게 되는 순간이었었지요. --;;
'미술 치료'라는 생소한 분야의 책입니다. 사실 조교수가 결혼 전에 '음악 치료'란 걸 공부하기는 했었었지만, 경제학을 공부했던 메마른 감정의 전 '대체 음악으로 뭘 치료한다는/할 수 있다는 거야!'했었었었지요. 마찬가지로 이 책을 펼치기 전, 제가 가졌던 '미술 치료'란 것에 대한 예상은 --- ①미술 작품을 통해 개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한다. ②미술 작품을 이용해 개인의 정신적 질병을 치료한다. : 이 두 가지 일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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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자기계발서'라 분류되는 책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힐링'을 준다는 류의 책들도 마찬가지구요. --- 자기계발서는 딱! 그 목차만 봐도 더 이상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써낸 책으로부터의 '힐링'이라는 건 '목마른 사람에게 한 덩어리의 바게트 빵'을 안겨줄 뿐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이 책 역시 "그림은 소통과 치유를 가능케 합니다(p4)"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 예의 '내가 너를 위로해주마'류의 책입니다. 헌데!!! '그림'이라는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이 책은... 정말로 찌릿!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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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 Young Man at His Wondow>라는 그림을 통해 저자는 '의미 있는 무의미의 시간'을 말해줍니다. :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는, 잠시 손을 놓고 다른 무언가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한 노력이 드는 무언가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약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일이면 됩니다.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은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 무의미의 시간을 게으름으로 치부하지 마세요. 사색을 통한 창조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p25)" --- 지난 달, 강원도 영진항의 한 카페에 앉아 그야말로 멍 때리며 바다를 바라 보았던, 하지만 막상 그런 시간을 저 스스로도 오랫동안 즐길 (시간적 여유는 차치한다해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그런 저에게 저자의 이 별 특별하지 않은 말들로 조합된 조언은 시작부터 뭔가 시큼한 감정의 동요를 주더군요.
존 밀레이의 <눈 먼 소녀 The Blind Girl>이란 그림을 통해선 "나보다 더 힘없고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그런 사람의 존재가 우리에겐 생각지도 못한 큰 힘이 되어(p34)"준다라는 말로 나의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줘 주었기도, 에드가 드가의 <시골 경마장 At the Races in the Countryside>를 통해서는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 아홉 가지를 해야만 한다는 말처럼,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p55)"다라는, 일종의 '너만 그런 거 아니란다'류의 위로를 안겨주었기도 했습니다.
칭찬도 여러 분 들으면 지겹다고, 이런 수준의 위로가 계속 반복되어 나왔다라면, 그리고 그렇게 이 책의 독서가 끝이 났던 거였다면!!! 이 책을 읽고난 후 쓰고 있는 이 감상문도 여기서 끝맺음을 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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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정확히 인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만약 일 때문이라고 해도, 정확히 어떤 일 때문에 받는지, 왜 일이 많을 때도 스트레스를 안 받는데, 적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보수까지, 여러 요인이 같이 있을 수 있거든요. 그렇기에 자기가 꺼낼 이야기를 정확히 준비해서 "이런 문제 때문입니다"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때 사람의 무의식을 끌어내는 중간 매체로 '그림'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p208) …… 미술치료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는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쳐다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이거든요.(p255)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 부분이 '미술 치료'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부분이라 생각했던 구절입니다. 하지만!!! 유명한 그림 한 점 보여주고, 그에 이어 적절히 '그 누구에게든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러니까 전혀 구체적이지 못한, 그저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위로의 말을 늘어놓은 책이었다면 그것을 가리켜 차마! "그림의 힘"이라는 말을 쓰지는 못했겠지요.
다음 그림은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운다는 디에고 리베라의 <꽃 노점상 The Flower Seller>라는 작품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디에고 리베라' 검색)
예전에 읽었던 「미술관 옆 인문학」이란 책에서도 이 그림을 볼 수 있었었지요. 그 책에 나타난, '인문학의 렌즈'를 통해 감상한 이 작품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여인의 머리 위로 백합 비슷한 모양의 거대한 꽃송이들이 만개해 있다. 어깨에 둘러맨 끈이 여성을 졸라매는 듯이 팽팽하다. 있는 힘을 다해서 들어 올리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인지 꽃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인을 괴롭히는 괴물처럼 느껴지기조차 한다. 여자는 이 꽃을 지고 어느 길가에 앉아 꽃을 사줄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 그림 속의 노동이 전혀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다. 노동과 연관되어 있는 화려한 꽃은 우리 마음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차라리 철근이나 벽돌을 나르거나 용접을 하고 있는 모습이면 덜 참혹해 보였을 것 같다. 노동의 대상이, 노동자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꽃이기에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 꽃이 아름답듯이 노동도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pp235-236) ……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꽃을 나르는 노동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린다.(p239)
저자의 주관이 다분히 개입되어 있다,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 어쨌든 이것이 '인문학의 렌즈'를 통해 본/볼 수 있는, 그리하여 감상자의 마음 속에 남겨주는 '무언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자는 이후 '노동이 아름다울 수는 없는가'라는 논지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독자를 안내했지요. 그렇다면!!!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쳐다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도록 도와준다는 미술 치료의 관점에선 위 작품을 과연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고 좋은 꽃을 팔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꽃을 파는 이 여인에게,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 무게만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 이렇듯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모든 일에는 노동의 고충이 숨어 있습니다. ……꽃 파는 일도 그렇습니다. '꽃 보면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라고만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남들이 자는 새벽에 꽃시장에 갔다 와야지, 신선도도 유지해야지, 개인 주문이 들어오면 그 시간에 맞춰야지, 그 나름의 힘듦이 있거든요.(p217)
뭐야? 다를 게 없잖아! --- 아닙니다. '인문학의 렌즈'는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을 설명하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었지만, '미술 치료'는 이 말 이후 다음과 같은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남들이 겉만 보고 여러모로 '부럽다' '좋겠다'를 연발하곤 하는데, 정작 스스로는 각종 부담과 걱정거리로 짓눌리고 있을 때가 있지 않나요. 그럴 때의 외로움을 묵묵히 달래주는 그림입니다. 네가 힘든 것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요. 칼라의 눈부심과 뒤의 조력자도 아주 절망적이 아닌 느낌을 주지요.(p217)
얼마 전 어느 분께서 (전화로 한 번, 이후 직접 만나서 또 한 번) 제게 '당신은 이제껏 내가 본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란 말을 해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음 날, 제 블로그의 대문 멘트를 "그때 우리는 행복했다"로 바꾸었었죠. --- (그렇담, 지금의 넌 불행하다라거나, 최소한 행복하지는 않은거냐라는 질문에 여기서 대답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때 우리는 행복했다"라는 멘트의 블로그 대문을 가진 이에게 디에고 리베라의 <꽃 노점상>이라는 미술 작품을 놓고, 최소한 지금의 이 상황에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럴 때의 외로움'이라 (저자의 표현 그대로) "달래주는" 위로는 결코! 목이 말라 죽겠는 저에게 한 덩어리의 바게트 빵은 아닌, 목 말라 죽겠는 저에게 건네어진 한 모금의 시원한 생수였었었지요. 그런...데 말이죠 , 이것이 다가 아니라 이후, 목말라 죽겠는 저에게 시~원한 한 통의 포카리스웨트가 주어졌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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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그랬답니다. '화가 날땐 그 마음을 바로 열일곱 자로 표현해보라. 열일곱 자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화가 이미 타인의 화로 변(p305)'한다라면서요. --- 이 책, 「그림의 힘」의 저자는 '아픔을 밖으로 꺼낼수록 자꾸 덧나기만 하는 게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숨기면 평생 그 안에 들어 있겠지만, 그것을 밖으로 꺼내면 사라지고 흩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만들고, 말하면서 내면의 응어리를 발산(p305)"해야만 그 아픔이 진정 치료가 된다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조지 클로젠의 다음 작품 <울고 있는 젊은이 Youth Mourning>을 보여줍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슬픈 스트레스 상담자들은 이 그림을 보며 그렇게 펑펑 울곤 합니다(p299)"란 멘트를 마지막으로 페이지를 넘겼을 때 보여졌던 이 그림!

(이미지 출처 : 구글 'youth mourning' 검색)
이제까지 정말!로, 대학로의 어느 갤러리에서 들었던 이후 사실일거라 믿어왔었던, '미술 작품은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느끼는 거란다'라는 미술 선생님의 이 말씀이 최소한 저에게만큼은 완전히! 틀린 말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었습니다. 아~무 설명 없이, 저 혼자 이 그림을 보았더라면 '벌거벗은 한 여인이 벌판위에 있는 누군가의 묘지앞에 엎드려 울고 있다. 대체 뭘까? 대체 뭐야!' 이상의 그 어떤 감정도 못느꼈을 것임이 틀림 없습니다만! --- 299쪽을 넘겨낸 순간 보여진 이 그림, 그리고 그에 달려 있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 저 역시... 종원군만 마주앉아 있지 않았더라면 고개를 파묻어 울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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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플 땐 이 그림에 와서 한껏 울어버리세요. 눈물도, 콧물도 쏟고, 가슴과 어깨가 들썩이다 끝내 잦아들 때까지요.
울음은 영혼이 회복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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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란 어차피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은 그보다 더한 개인적 감정의 작동일 것이기에, 저의 개인적 감정을 써놓은 이 감상문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어느 정도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혹시 지금 당신이 다음과 같은 경우들 중 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혹은 가까운 과거에 그러한 경험을 했었더라면 혹, 흥미 내지는 (제가 이 책에서 받았던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이 또한 저 개인적인 선택일 수 밖에 없는, 이 책에 나와있는 몇 가지의 '미술 치료'의 예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해당 미술 작품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은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 싶어 (아쉽지만) 생략한 채로 말이죠.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모른 채 바쁜 걸음을 걷는 이들에게 그림이라는 거울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책" --- 노래도 환장할 만큼 좋아하거늘, 이 책에 대한 여러 명의 추천사들 중 가장 맘에 들었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리더, 윤덕원C의 글이야말로, '시간이 많아도 길게만 쓰고마는' 제가 표현해내지 못하는, 이 책에 대한 가장 간결하면서도 핵심이 들어있는 멘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 여러분은 과연? (그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종종 너무 뻔하거나, 심지언 작위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느꼈던 것들을 모두 제외한 채, 꽤나 인상깊었던 작품들의 경우만 모아봤습니다만, 사람에 따라선 아래의 글들 중에서도 '너무 뻔하다'거나 '작위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지금 슬럼프에 빠져 힘들거나 결과에 낙심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그림에서 천사와 같이 쉬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p78)
● 이 그림은 나의 문제를 내려다봄으로써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차분한 사색을 가능케 합니다.(p257)
● 이렇게 성실하게 일을 하다보면 그런 매일 매일이 쌓여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긍정적 느낌을 받게 됩니다.(p278)
● 이 그림은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라'는 얼얼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p285)
● 이 그림은 깊은 상처를 지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너의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라고 등을 밀어주는 응원가입니다.(p305)
● 이 그림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게 일어나는 일들은 너의 책임이 아냐. 네가 의도하지 않아도 우주와 세월이 모두 함께 움직이고 있어. 너의 강렬한 슬픔들에서 언젠간 회복될 수 있을 거야."(p315)
● 이 그림은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림이 주는 다채로운 자극을 온몸으로 즐겨보세요.(p317)
● 이 그림은 특히 자신감이 떨어질 때 보면 좋습니다. 색깔과 형태가 과감하여 에너지와 역동감을 주기 때문입니다.(p333)
- 신기한 게, 저에겐... 이런 게 참 크게 위로가 될 때가 종종 있더군요. 예를 들어, 「위대한 유산」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등의 소설이 저에게 그런 위로를 주었었지요.
- 박홍순 著, 서해문집, 2011.1.5.
- calla. 아프리카 원산의 천남성(天南星)과의 원예 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