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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종말 - 다른 세상의 시작
모이제스 나임 지음, 김병순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독서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책 「권력의 종말」이 왜 세간의 이목을 끌게되었는지 다들 아실겁니다.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2015년을 맞아 개설한 'A Year of Books' 페이지의 첫 독서로 이 책을 꼽았었기 때문이죠. 책의 저자인 모이제스 나임이 저커버그에게 고맙단 인사말을 남겼을 정도로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더군요.
자기 박사학위 논문을 여전히 이해하고 있는 50대의 경제학과 교수는 아마 거의 없을거다란 농담을 대학원시절 했었더랬습니다만, 제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차마 생각조차 못했었거늘 --- 그래도 한때 나도 사회과학도였었다!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책을 읽어가면선 '아! 머리가 안도네'라는 좌절감을 종종 느껴야 했더랬습니다. 책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건 아닌데, 부분부분 독자로서 자신만의 생각을 해보아야할 곳들에서 그... '자신만의 생각'을 해본다라는 게 꽤나 버거운 겁니다. 마치 공학도 출신의 아빠가 아이의 중학교 1학년 수학문제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암튼! 저커버그가 아니었으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커다랗게 주목을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이 책은 예의... 그렇게 저커버그가 아니었으면 안 읽었었을 책이었고,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그가 아니었다면 못 읽었었을 책이기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비슷한 맥락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지루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독자의 성향에 따라선 매우 매우 흥미롭게 읽혀지는 책일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제 경우엔... (둘 중 하나의 표현만 선택하라 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었다라, 못 읽었더라면 꽤나 아쉬웠었을 거란 말을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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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두 단어, '권력'과 '종말'에 대한 저자의 정의(definition)부터 확실하게 인지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작이어야 한다라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권력의 종말'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워야 하며,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개별 독자가 생각하고 있는 '권력의 종말'이라는 개념과의 상이함으로부터 생겨나는 충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즉! 이 책을 별 거부감없이/무사히 읽어나가려면, 크게 봐서 '권력의 정의(definition) - 권력의 쇠퇴 - 대체권력의 등장'이라는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저자 모이제스 나임이 내리고 있는 '권력'과 '종말'이라는 단어들의 정의에 일단!은 동의하여야 한다라는 겁니다.
【 권력의 정의(definition) 】
"이 책은 권력에 관한 책이다'(p21)"라 말하고 있는 저자는, 그 '권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p50)
이 정의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니라 생각하는데, 저자는 여기에 더해 '권력'과 '영향력'을 다시 구분해놓고 있습니다. --- "권력과 영향력은 둘 다 타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은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하지, 상황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p69)
이처럼 '권력'과 '영향력'을 구분해 놓는 세심함에 더해, 저자는 자신이 이 책에서 정의하고 있는 '권력'이라는 개념 앞에 '실용적'이라는 단어를 붙여놓고 있기도 합니다. 즉! 이로 인해 자칫 제기될 수 있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사상과의 충돌을 일단은 피해가겠다란 것이지요. 우리나라 헌법에도 나와 있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권력의 이상적 표현과는 맥락이 많이 다른, 말 그대로 지극히 실용적인 의미에서의 '권력'에 대해서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겠다라는 게 저자 모이제스 나임의 생각인 겁니다. 주권재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권력'에는 종말이라는 단계가 있을 수는 없는거니까요.
이처럼 '정의(definition)'을 통한 범위의 제약이 사회과학에서 생소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배웠던 경제학에서도 경제원론의 수준에서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가정들을 죄다 모아놓고 논의를 시작했었으니까요. 물론! 이처럼 단순한 수준에서 전개된 모형도 나름의 현실 설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후 그러한 가정들의 완화를 통해 더 고급 단계의 수준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단계이기도 하겠습니다만 ---- 예의! 저자의 이러한 권력에 대한 정의가 (그의 표현을 따라보면) 지나치게 '실용적'이라는 아쉬움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나 개인'에게 무엇을 지시하거나 행동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로만 권력을 정의한다면, 예를 들어 죄를 짓지 않는 한, 법원의 부장판사와 '나 개인'간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권력의 작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라 말할 수도 있게 되지요. 이는 저자가 말한 '영향력'과도 별 관계가 있지 못하며, 차라리! (뭔가 많이 허전한 개념이긴 합니다만) '권력이 지닌 위엄', 혹은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통해 진중권이 표현했던 '한국의 천민성' - 현재에도 판사와 같은 일부 직업을 판사를 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판사 스스로조차도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신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현실 - 과 관련이 있어보이지만, 이같은 실제 (한국적인) 현실은 저자가 내린 '권력'의 정의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뭐 어쨌든! 저자가 내려놓고 있는 수준으로만 '권력'을 이해하고 이제 그 '권력의 종말'이라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 권력의 종말 】
표현은 '권력의 종말'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 엄밀하게 적용시키자면 '(내용과 주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의 변화'가 더 합당할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변화'라는 것의 내용이 시각에 따라서는 '종말'로 보일 수도 있다라는, 그리고 저자는 철저히 그러한 시각에서 내내 '권력의 변화'를 '종말'로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 받았습니다. 약간의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를 한 마디로 간단하게 표현해보자면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이라 노래했던 이선희C의 노래를 수많은 권력자들을 대신해 저자 모이제스 나임이 불러주고 있다는 거지요.
저자는 "권력은 점점 더 약해지고 있으며 점점 더 덧없는 것, 제한된 것이 되고 있다는 사실(p12)"을 먼저 강조합니다. 즉 권력의 쇠퇴, 그러니까 권력이 사라졌다거나 강력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없다(p23)는 주장이 아닌, 전임자들이 행사했던 권력보다는 약하다(p23)라는 거지요.
이처럼 권력을 쇠퇴하게 만든 주요 원인으로 저자는 기존의 권력자들이 경쟁자의 공격을 막으려고 쳐놓았던 장벽들이 인구 구성과 경제의 변화, 정보 기술의 확산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화와 장래에 대한 기대, 가치관, 사회 규범의 근본적 방향 전환,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전반적인 범위와 상태, 가능성와 변화와 관련이 있다(pp38-39)고 (뭔가 심히 어지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한 마디로 예전에는 기존의 권력자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권력을 다투던 경쟁자들이 적었을 뿐 아니라 권력에 제약을 가하는 요소들, 예를 들어 시민운동이나 세계 시장, 언론 감시같은 것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하여 그처럼 권력을 감시하고 있는 수단들이 너무도 많아졌기에 권력 자체가 약해졌을 뿐 아니라, 권력자가 그러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들 또한 점점 더 제한되고 있다라는 겁니다.
저자의 논의를 더 살펴보기 전에! --- 여기에 저자는 '쇠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과연 '쇠퇴'라는, 지극히 주관적 가치관이 개입될 수도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마땅히 가져봐야한다라 생각합니다. 기존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분명! 그것이 쇠퇴이겠지만, 그 반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분산' 혹은 '제한' 등의 확연히 다른 뉘앙스의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저커버그가 이 책을 소개하면서 했다는 "오늘날 세계가 전통적으로 정부와 군대 같은 거대한 조직만 보유했던 권력을 개인들에게 더 많이 주는 쪽으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책"이라는 말은, (이것이 번역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더 많이 주는 쪽'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저커버그 스스로 '정부와 군대'라는 기존의 권력자들을 향해 자신을 그 대척점, 그러니까 새로운 대체권력(counterpower)에 포지셔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암튼!
저자는 오늘날 권력에 영향을 미친 변화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후 정치·국가(군사력과 소프트 파워)·기업, 심지어 종교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권력의 '쇠퇴'를 모두 일관되게 이 세가지의 변화로 해석해내고 있지요. 그 세 가지는 '양적 증가 혁명, 이동 혁명, 의식 혁명'인데, "첫 번째 변화는 권력의 장벽을 수렁에 빠뜨리고, 두 번째 변화는 장벽을 에워싸고, 세 번째 변화는 장벽의 밑동을 잘라내고 있다(p118)"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주장을 요약해 보자면...
권력은 네 개의 서로 다른 통로, 즉 어떤 일을 강제로 하게 하는 완력, 윤리적 의무감을 부여하는 규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선전,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보상을 통해서 작동한다. 이 가운데 완력과 보상은 사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려고 유인책을 바꾸고 상황을 새롭게 만든다. 반면에 선전과 규범은 유인책을 바꾸는 일 없이,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바꾼다. 권력의 장벽은 완력, 규범, 선전, 보상이 효과를 발휘하는 한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양적 증가 혁명, 이동 혁명, 의식 혁명은 그러한 장벽을 약하게 만든다.(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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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약해진 (기존) 권력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미시권력micropower'입니다. 이 미시권력은 기존의 권력들처럼 강력하고 압도적이며 강압적인 권력이 아닌, "혁신과 독창력에서 나오는 권력(p52)"이지요. 이제 저자는 크게 나눠 정치·국가·기업의 수준에서 이러한 미시권력이 어떻게 (기존의) 거대권력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을 강제로 내쫒고 있는지까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극복할 수 없으며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 통념은 우리 모두를 어느 정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만든다. 그러나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베버와 그의 추종자들이 그동안 현대적 삶의 핵심인 경쟁과 경영에 가장 잘 맞는 조직 모델이라고 했던 것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폐물이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권력의 형태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예전에 보잘것없었던 다수의 작은 세력들이 움직이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통해서 권력이 분산되는 반면에, 거대한 기존의 관료 체제에 자리 잡은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했던 권력의 특성이 점차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의문들은 미시권력의 출현과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미시권력의 출현은 권력이 크기와 규모라는 족쇄에서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p111)
먼저 기업의 측면에서 보자면 저자는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자본, 기술력, 브랜드 이름 등 '강력하고 압도적인'이라 표현될 수 있었던 기존의 진입 장벽들이 "기존 시장에서 경쟁이 격화되면서 어떤 희소 자원에 대한 통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거나, 기존 권력의 장벽을 약화시키는 것들이 나타나거나, 다른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쉽게 하는 새로운 기술이 발명될 때 일어(p74)"난 것이 아님에도!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습니다. 즉 과거에는 규모가 속도보다 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었었으나, 지금은 바로 속도가 규모를 이기기 때문에 현재 기업에서 '권력의 쇠퇴'가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는 심지어 "이제 규모는 장점이 아니라 부담이 되고 있다(p348)"라고까지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어가는 상황을 저자는 막스 베버 이론의 무용화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막스 베버는 분권화된 군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군대의 지나친 중앙집권이 오히려 약점이 되어버렸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한 발 더 나아가, 막스 베버가 주장했었던 국가의 존립 근거 중 하나인 "폭력의 합법적 사용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기구(p230)"로서의 국가 독점 또한 다양한 차원에서 이미 깨져버렸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라는 거지요. 뭐... 여기까지는 상당히 재미있고, 딱히 거부감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헌데 말이죠...
이들 주제보다 앞서 논의하고 있는 정치의 측면은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저자가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이라 노래했던 이선희C의 노래를 수많은 권력자들을 대신해 불러주고 있다는 느낌을 제가 갖게 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 정치에서의 '권력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에 나타났었기 때문이지요.
권력의 중심은 "다수"의 권력으로 분산되었다. 다수에게 분산된 권력은 제각각 정치나 정부의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만, 그러한 결정에 일방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의 권력은 안 된다. 그것은 건강한 민주주의, 바람직한 견제와 균형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말은 맞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정치 치제가 파편화되면서, 최종 순간에 늘 최소주의에 입각한 의사 결정만 내리는 성향과 교착 상태를 낳고 있다. 그 결과 공공 정책의 질은 떨어지고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긴급한 현안을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pp166-167)
얼핏 보면 여기까지의 주장은 여전히 흥미롭고, 현실적으로도 유용하다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은 이제 정당들이 가장 중요하게 신봉하는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자신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단일 쟁점에 더 잘 움직이죠(p210)"라는 레나 헬름-발렌 스웨덴 전임 총리의 말은 마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호남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것을 극단적으로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바로 다음에 위치시켜 놓음으로써 은연중에 '그러나'로 시작되는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지요.
전반적으로 NGO는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구성원들과 후원자들에게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문제를 포괄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 때문에 편협해질 수 있어요.(p211) - 칠레 전임 대통령 리카르도 라고스의 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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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나친 집중'과 이로 인한 소수의 권력 장악이 엄연한 현실인데, 어떻게 오늘날 권력이 쇠퇴하였고 분권화 되었으며, 권력자들이 포위되었다라 말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저자는 "오늘날 권력자들은 과거보다 더 제한을 받고 있다. 그들의 권력 장악력은 전임자들과 견주어 훨씬 떨어진다. 그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기간은 더 짧아졌다.(p424)"라는 대답을 통해 이 책에 나타나 있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 '앵커 효과(anchor effect)'라는 게 있지요. 예를 들어 담배값이 오르게 되면 한동안은 사람들이 새로운 담배값을 '비싸다'라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르게 되면 사람들의 기준점(anchor)이 아예 이동해 버리게 되어 더 이상 그것을 '비싸다'라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책의 저자 모이제스 나임은 철저하게 과거의 기준점에 고착해 있는 채 '권력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전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었던/행사했었던 권력에 기준을 놓고 보니, 그것이 '권력의 쇠퇴'이고 결국엔 '권력의 종말'로 밖엔 보여지지 않는다라는 거죠. 물론!!!
저자는 "한때 전통적인 세력이 지배했던 인간 활동의 많은 무대가 새로운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주기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다 마침내 기득권 세력은 권력을 잃는다. 좋은 소식이다.(p425)"라는 말로, 이러한 자신의 anchor를 (교묘하게) 가려내려 하고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의심의 여지 없이 "분야를 막론하고 권력의 쇠퇴는 단기적으로 사회 안녕과 개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격렬한 반발과 심지어 재난을 초래할 여러 위기를 낳는다(p441)"라는, 다시 말해 '권력의 내용과 주체가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 생각엔 과거의 방식이 훨씬 더 안전하다'라 말하고 있다라 전 생각합니다. 비록, 그 다음에 각 개인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라"라는 메세지를 이 새로운 권력의 쇠퇴기에 대처하는 일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는 여전히...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함일 뿐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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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느냐의 여부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를 떠나 2014년 초반에 쓰여진 이 책에서 보여지고 있는 '권력의 변화'라는 여러 현상들 중 적지 않는 부분들이 현재의 우리나라에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라는 점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독서였었습니다. --- 지방 정부의 득세, 그리고 권력의 중심축 혹은 최소한 적지 않는 부분이 행정부로부터 사법부로 이전되고 있다라는 진단이나, "아웃사이더들이 성장, 또한 기존 정당 구조의 밖에 있는 사람들도 많은 지지자들을 얻어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새로운 길을 닦고 있다(p161)"는 점, 더 크게 보아선 '관료제의 몰락'을 국제정치와 연관지어내는 부분 등은 가치관을 떠나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었으며 우리나라에도 또한 저자의 이러한 지적들이 대부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라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관료들에겐 필독서라고까지 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만!!! 제가 정치인도 아니고 고위 관료도 아니며,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있는 다른 의미의 '권력'도 아니라는 게, '이 책을 읽긴 읽었는데, 그랬다고 뭐가?"와 같은, 사뭇 허망하게도 느껴지더라!라는 감정은 이런 류의 책을 읽고 나면 항상 그러했었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착찹한 뒷맛을 남겨주기는 하더군요. --;;
- 이와 관련하여 --- 국민주권이라 함은 정치의 최종적 결정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하는 의미이며 반드시 국민 각자가 직접 정치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민은 선거에 의하여 국회의원을 선출하여 국가의 정치를 대행시키고 헌법개정시의 국민투표등에 의하여 정치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순수한 간접민주제국가(間接民主制國家)에서 국민주권(國民主權)을 부인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국민주권' 중
-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서술이 바로 "정치의 본질은 권력이다. 권력의 진수는 정치다. 자고이래로, 권력자가 되는 전형적인 방법은 정치인이 되는 것이었다.(p159)"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의 일부는 지극히 미국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기에 한국의 독자인 저로서는 그저 대충 읽어넘기게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사고의 차이가 이러한 아쉬움을 낳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 심지어 기존권력에 대항해 생겨난 대체권력(counterpower)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권력의 생성'이 되기도 할테니까요.
- 한가지 더 보자면, '주는'이라는 말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지요. 어법상으로만 보자면 '세계'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하겠지만, 과연 '주는'의 주체를 '세계'로 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
- "크기는 권력을 낳고 권력은 다시 크기를 낳았다.(pp88-89) …… (하지만) 권력이 규모와 무관해지면서 베버의 주장처럼 권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했던 거대한 관료 조직이 무의미해지는 현상은 이제 세상을 바꾸고 있다.(p114)"
- 그러하기에, 기존의 권력층들에게는 이 책이 자신들의 향수/아쉬움을 달래어주는 일종의 청량제와 같은 위안을 줄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