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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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2일'의 발행일이 적혀 있는 '3판 1쇄'의 책이니, 이 책을 샀었던 건 최소한 그 이후 시점의 일이었겠으나, 책의 종이가 꽤나 누렇게 바래져 있는 걸 보면, 책을 사놓고 (비록 의도적은 아니나) 일정 기간 묵혀두었다 읽는 걸 마치 취미로 갖고 있는 듯한 저에게도, 이 책은 그 정도가 좀 심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 책장을 쭉 둘러보니, 현재 가지고 있는 책들 중, 읽지 않은 것 중에서 이 책보다 더 이전에 산 책이 딱히 눈에 띄지도 않더군요 . --;;) ---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지만, 문득! 좀 야한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란 생각이, 그토록 오래 전에 초대해 놓았던 '무라카미 하루키'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결정적 계기였었습니다. 그래... 그 야한 소설에의 원(願)은 이루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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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이가 그 기준이 되지만,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가리켜 특히 그걸 꽃다운 시절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항상 그러하듯, 꽃답다는 것은 한번 그늘지고 시들기 시작하면 그만큼 더 처참하고 황폐하기 마련이다. 내가 열아홉 나이를 넘긴 강진에서의 열 달 남짓이 바로 그러하였다.(p9)

저의 '젊은 날'이 이 소설로부터 실질적인 영향을 받았다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정서/사상적 영향만큼은 분명!히 남겨져 있는, 그렇게 마흔일곱의 나이가 되어서까지도 저에게, 그 때의 (이걸 뭐라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감동이랄까, 충격이었다랄까? 뭐 암튼 그런 것을 분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작품인 작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연!히도 제게 있는 '3판 1쇄'의 「젊은날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3판 1쇄'의 「상실의 시대」 또한... 주인공이 동일한 나이 때의 자신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더군요.


나는 고개를 들어 북해(北海)의 하늘에 떠 있는 어두운 구름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는 여러 길목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또는 사라져 간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그 모든 상실의 아픔들을. …… 때는 1969년 가을이었고, 내가 곧 스무 살을 맞이하는 열아홉의 고개를 넘고 있을 무렵이었다.(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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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그 줄거리에 대한 소개가 자칫, 많고 많은 연예기획사에서 내놓는 많고 많으며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아이돌 그룹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소설의 가장 뼈대인 줄거리를 빼고 써낼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1이, 그럼에도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는, 혹은 그렇기에 굉장히 짧아질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는, 또한 막상 타이핑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써내어 보고 싶은 것들이, 문득문득 새롭게 생겨나고도 있기도 합니다. 대체 왜 이런 걸까요? --- 그건 단연코!!!


어언 20년이 지나, 저는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 무렵엔, 잘 이해되지 않았던 일입니다. 스무 살 청년이 20년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p8)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의 서문>에 나와있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두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을 읽고 쓴 것과 비슷한 형식을 갖게 될 것이고, 어쩌면 그 내용은 매우 구체적 혹은 솔직해져야함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 역시 스무 살이었던 때가 분명 있었었거늘, 그로부터 27년이 지나고 나니 무슨 요술이라도 부려진 것처럼 마흔일곱의 나이가 되어 있더군요. 그 27년이란 시간 속엔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었을 것이고 만약!!! 그 수많은 선택의 결과들이 마흔일곱 살 저의 지금 모습/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선택들 중의 일부, 예를 들어 연애사에 한해 몇몇을 바꾸어 상상해본다면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지게 될까?, 혹 그게 너무 광범위하다면, 지금도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내 아내와의 연애감정이 여전!히 우리의 첫 키스때와 동일하다면?이란 상상은 어떨까... 같은 일탈/재고(再考)에의 유혹을 이 작품이 저에게 너무도 강하게 던져 주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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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시점에선, 이 책의 제목인 「상실의 시대2」를 따라,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상실'이 무엇인가에만 초점을 맞춘 감상문을 써야겠다라 생각했더랬지요. 근데 그 대강의 그림을 막상 그리고 써내어 보니, 이런 식의 frame으로만 완성해낸다면, 이 작품을 한낱 흔해 빠진, 그렇고 그렇게 전개되는 연애 소설로 전락시켜버릴 것 같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차라리!!! 이 소설의 주인공인 와타나베, 그리고 그가 겪었던 '인생의 그 어느 순간들'을 '나'와 '내 지나온 인생의 어느 순간들'과 비교해보며, 실제로 이 작품을 읽어가며 느꼈었던/받았었던 --- 공감을 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했으며, 언뜻언뜻 후회? 아쉬움? 뭐 그렇게 스쳐갔던 여러 감정들의 일부(혹은 대부분)를 함께 적어보는 것이, '책을 읽기는 읽었는데 대체 그 내용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걸' 막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이 감상문이란 것이었음에도, 여기에서만큼은 어차피 줄거리를 빼놓고 가기로 작정한 바에얀 훨씬 더... 의미 있는, 어쩌면! '기억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져 가고,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어버렸다(p24)'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잊혀지게 될(지도 모를, 다만 지금 기억하고 있는 수준으로나마의) '그때 그 시절'들에 조금이라도 더 긴 들숨과 날숨을 안겨주는 일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저... 지금 뭔 소릴 적고 있는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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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인 '와타나베'를 '나'로 바꾸어본다면 --- 이 작품이 이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고, 지금도 읽히고 있다하며, 그런 독자의 숫자만이 아닌, 뭔가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공감을 발하고 있는 건 아마도... 와타나베의 주변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을 바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건 결코 스무 살의 나이에 이 작품을 읽어선 받지 못한 느낌일 것이고, 최소한! 마흔 일곱살이 되어있는 저의 경우엔... 그러한 느낌이 너무도 강렬했었다라는 거지요​.

지난 27년의 제 과거 속에는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인 나가사와도, 미도리도, 그리고 레이코도 있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못한 사랑'으로 규정짓는다면 나오코마저도 등장합니다. 허나... 이젠 이름마저도 가물해진 그들, 어느 순간에선 적지 않은 후회로 남아있기도 한, 또는 나름 그 어떤 것을 뿌리치고 다른/올바른 것을 선택했다라는 뿌듯해 해도 될만하다라 생각하는 그 모든 순간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결국 '선택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 선택/실현되는 않은 과거들'이란 점이 되겠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나는 이제 곧 스무 살이 되고, 나와 기즈키가 열여섯 살과 열일곱 살 나이에 공유했던 것 중 어떤 것은 이미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건 아무리 한탄해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야.(p337)

그 모든 선택될 수 있었으나, 결국 선택되지도 실현되지도 않은 과거들이 전부 다 한탄스러운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전부 다 만족스러운 것도 분명 아닙니다.--- 역사에 있어 가정이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는 말이 일 개인사에까지 적용되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때 내 옆에 있었던 미도리와의 어느 결정적 순간을 그 때완 다르게 선택했었더라면? 서로 반대편 벽에 기댄 채 멀리 마주앉아 있었던 레이코에게, 당시 나의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한 마디를 결국 내보낼 수 있었더라면?... 과 같은 '가정'은 지금의 이 시점에선 완전히 '상상'의 영역에만 머물 수밖엔 없겠지만, 지금 제 아내가 되어있는 그녀와의 연애 시절, 그리고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라 결심했었던 그 순간의 간절함 같은 걸 지금도 여전히 내가 간직하고 있다면?과 같은 '가정'은, 최소한 제 경우엔 지금이라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다라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그걸 현실로 만들어내고 싶느냐 아니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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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와 동시에 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自我)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부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누구나 그 싸움에서 살아 남게 되는 건 아닙니다.(pp8-9)

​어느 한 구절도 버리고 싶지 않을만큼, 절절하게 공감되는 작가의 말입니다. ('살아 남는다'라는 표현의 초점을 작가완 약간만 다르게 맞춰본다면) 지금의 제 현실은 분명, 저를 둘러싸고 있던 그 모든 것들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은 것이어야겠지만, 마흔일곱 살이 되어 읽어본 이 작품 「상실의 시대」는 끝내... 그 살아 남지 못한 다른 모습을 상상해보라 말하고 있었다라 생각됩니다. 물론! 지금의 제 현실을 '행복'이라 말할 수 있기에, 상상해본 다른 선택의 '살아 남지 못한 모습'들이 결코 상실이라 표현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안타깝게도 혹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가슴아픈 '상실'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구요.) 이는 곧! 저 개인적으로는 --- '스무 살 청년이 27년이 지나면 마흔일곱 살이 된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이 작품을 읽었다라는 것과, 그 27년이 아직 미래형으로 남아있었을 스무 살 청년이었을 때 이 작품을 읽었었다라는 것이 정말로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주었을/줄 것이라는 걸, 지난 27년의 되돌아보니 마치 확신이라도 하듯 받아들이게 되었다라는 걸 의미합니다. 작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이 제게 남겨준 것이 정서/사상적 영향이었다라면, 언뜻 '나비효과'라는 것이 떠올려지게도 되는 「상실의 시대」는 --- 이 소설을 제 나이 스무 살 때 읽지 않았다라는 것이 그나마 저의 현재가 '지금은 완료형'이 되어있다라는 것에 차마 --;; 아쉬움이라기보다는 다행이야~란 말을 어쨌!든 하게된다라 말할만큼 정말로... 엄청난/엄청났었을 수도 있는 ---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여운을 안겨주는 작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상실의 시대」란 소설 한 편을 읽고, 내가 주인공이 되는 또 다른 한 편의 소설을 상상해보자라는 거 --- 이 멋진!!!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이렇게 밖엔 마무리해내지 못하겠네요. 주말 내내, 정말... 로 여러 번의 고심을 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던, 하지만 여전히 완성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어쩌면! 끝내 완성본을 적어낼 수 없을 것같다라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할 듯 싶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많고 많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던 처음의 의도완 달리, 예의... 저의 밖으로 보여내기보다는 '여전히/그저 하고 싶은 말들'로만 남겨놓는 것이 오히려 이 작품에 대한 여운을 해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은 굉장히 길게 써놓았던 이 감상문을 이렇게 횡설수설식의 짧은(?) 글로 마무리해놓은 게, 뭐 쉽게 말하자면 --- 많고 많은 연예기획사에서 내놓는, 많고 많으며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저까지 나서서 더할 필요야 없지않겠냐는거지요.  


​<덧붙임>

1. 이 작품을 읽고나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음악들과 책들이 다 궁금은 해졌지만, 최소한 「위대한 개츠비」는 반드시 읽어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나는 개츠비가 강 건너편의 작은 불빛을 매일 밤 지켜보던 것처럼, 가늘게 흔들리는 그 불빛을 오래오래 보고 있었다."(p184)의 장면이 왠지 모르게 저에게 그런 생각을 안겨주더군요.


2. "만일 현실 세계에 이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일은 편할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 옴짝달짝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이 위에서 스르르 내려와 와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요.(p296)"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인생에 있어서, 이런 찬스!가... 한 번쯤은 제 주머니 속에 남겨져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건... 누구나 다 느끼는 거겠죠?

3. 우리나라에 처음 나왔던 1989년에야 상당히 충격적이었겠으나, 마흔일곱 살이 되어 읽어 본 이 책 --- 그닥! 야하지는 않던데요? 제가 좀... 쎈가요? --;;

4.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인적 취향인지, 아님 저의 지나치게 예민한 시선인지 모르겠으나 --- 이 소설을 읽고 얻은 '실용적 교훈' 하나를 말해보라 한다면 단연코!!! '이는 꼭 닦고 자자'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암튼... 양치 하나는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하더군요. ^^;;

5. 이 작품에도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의미의 ★표시를 붙여놓긴 했습니다만, 최소한... (그 이하의 나이임에도 이미 파란만장한 연애사를 겪었다면 또 모를까) 삼십 대 중반 이상의 분들에게만 그것이 유효할 듯 하다는 저 개인적 의견을 꼭! 잊지 말아주시기도 바래어 봅니다.


 


※ 같은 나이의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길의 인생 : 이문열 作, 「젊은날의 초상


 

 

 

 

  


 

  1. 그러한 이유로, 이 감상문은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읽어본 분에게도 전혀 공감되지 않을 수도, 심지언 재미없는 글로 읽혀질지도 모르겠네요.
  2. 이 책의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과는 전혀 관계 없이 지어진 이 제목 --- 저 개인적으론 영화 <Ghost>의 원제가 우리나라에선 <사랑과 영혼>으로 바뀌어졌던 것처럼, 나름... 설득력있는 개연성을 갖춘 작명이었다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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