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그린 뉴딜 - 2028년 화석연료 문명의 종말, 그리고 지구 생명체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 계획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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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 p342, 김영사, 2015.


하나님께서 5G의 시대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저는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도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주시고자, 5G의 시대가 아닌, 창세기의 시대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에게 그 세상을 바꾸어갈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의지도 주셨다라 생각합니다. 창세의 시점에서 오늘까지의 역사를 모든 인류가 함께 노력해 가꾸어 온 것은 아니라는 견해1, 즉 현재의 모습이 소위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 결과인 것은 아니라는 견해 받아들인다 하여도,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히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 백가흠,「마당뺑덕」중 p45, 네오북스, 2014.

"만물의 핵심에 무작위성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2라는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견해를, (소수이건 다수이건을 떠나, 또한 인간의 '의지'만으로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할 수는 없겠으나3) 어쨌든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가 현재의 세상을 만들었다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여, 기독교도들에게도 큰 반감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뭐 이런 의견에 반감을 가지건 관심이 아예 없건, 결론적으로

​"불행히도 지구상에 지속되어온 사피엔스 체제가 이룩한 것 중에서 자랑스러운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총량을 줄였을까?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에게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 유발 하라리, 위의 책 pp587~588

다른 동물들의 행복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우리 인류의 행위로 말미암아 지구와 지구를 둘러싼 자연 환경에 이전에 비해 적잖은 변화가 발생되었다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 그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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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부터 지난 달까지 지구 온도는 1.7℉ 상승했다. 이 정도로 지구를 열받게 하려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40만 개를 매일같이 터뜨려야 한다. 대부분의 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가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1950년 이후부터라니, 실제 매일 지구를 때리는 '열 펀치'는 원폭 100만개에 맞먹을 수도 있다." --- 위 기사의 일부입니다. (그 원문을 제대로 번역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인용하였다 하니, 그 신빙성을 무작정 무시하기도 좀 그런, 암튼 이보다 더 살벌할 수 없는겁니다. 빙하기 현재와 같은 속도로 녹아나가면 장기적으로는 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이재민의 수도 어마무시할 것이며, 심지어 농업의 붕괴도 배제할 수 없다라는 내용도 있네요. 반면!


"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하지만 사실 빙하는 4백년 전부터 녹고 있었고, … 지구 해수면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도 거짓이며 해수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 이제 지구온난화론은 학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종교적 맹신과 같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 밥 루츠,「빈카운터스」중 pp71~73, 비즈니스북스, 2012.


해당 책 속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밥 루츠 정도 되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내고 쓴 책에 적어놓은 내용이라면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었겠느냐란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는, 더군다나 이같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좌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라 비판하는 이가 있기도 하죠.4 사실, --- 저 역시, ('좌파 VS 우파'와 같은 구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적지 않게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상품'의 sales와 별반 다름없다라 생각하고 있는 측에 속합니다. 그러하기에,


「소유의 종말」이란 책을 통해, 정말 소름끼치는 논리로 (당시엔 미래였던 지금의) 현재를 예상했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의, 지구 환경에 대한 논리가 너무도 궁금했었었기에, 이 책을 펼쳐들었었습니다... 만,  


기후변화가 그토록 무서운 것은 그로 인해 지구의 수권(水圈)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수권은 지구상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지구는 물이 많은 행성이다. 우리의 생태계는 구름을 통해 지구를 도는 물의 순환 주기에 맞춰 영겁에 걸쳐 진화해 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공기의 수분 보유량은 약 7퍼센트 증가해 구름에 보다 많은 물이 집중되고 보다 극단적인 강수 사건이 발생한다. 겨울의 극심한 한파와 초대형 폭설, 봄의 파괴적인 홍수, 여름의 장기적인 가뭄과 끔찍한 산불, 치명적인 3·4·5등급의 허리케인 등이 모두 물과 관련된 사건이며, 실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손실과 생태계 파괴가 그런 사건의 결과이다. (p14)


이 책을 통틀어, 지구온난화과 대체 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이외에 기술된 부분이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도) 위 수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 제주도에서만 잡히던 방어가 동해안에서도 잡힌다라든가, (즉흥적인 예를 들자면) 사과가 수원에서도 재배된다라는 등의 단편적인 사실들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게 하는 건 적절한 설명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동해안에서 방어가 잡히고 수원에서 사과를 따먹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게 대체 우리 생활에 뭔 문제를 일으킵니까. 정말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진보 진영은 구체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를 읽기보다 대중에게 강의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려고만 한 것 같다."


- 강수돌 외,「리얼진보」중 p331, 레디앙, 2010.


일단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당면한 중대 문제다! 라는 시각을 전제하고, 그를 막기 위한 여러 제안들과 세계 각국의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 또한, 위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상당히 과장된 대비이기는 합니다만,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 6,500만년 전, 소행성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렸다. 오늘날 인류는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매우 잘 버티고 있는 생물들도 있다. 가령 들쥐와 바퀴벌레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끈질긴 생명체들은 아마도 핵무기로 인한 아마겟돈의 폐허의 바닥을 헤치고 기어 나올 공산이 크다.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릴 능력과 준비를 갖춘 상태로. 어쩌면 지금부터 6,500만 년 후 지능 높은 쥐들은 인류가 일으킨 대량 살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볼지도 모른다."


- 유발 하라리, 위의 책 p497


이 책 속의 '걱정'은 위와 같은 지나치게 낙관적/시니컬한 견해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죠. 저는 이 책을 펼치며, --- "숫자는 모든 것을 말해 준다"(p96)라는 그의 주장처럼, 지구온난화에 대한 저자의, 보다 자세하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기대했었습니다만, 그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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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은 어떤 식으로 부상하는가? 우리가 그 발생 방식을 안다면,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그린 뉴딜을 구현할 로드맵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p25)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적어도 현재와 같은 환경 파괴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대전제에는 동의하기에 --- 이와 같은 환경파괴를 멈출 수 있는 방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도출해 내는 저자의 접근법은 예의, 그의 저술이 왜 읽어볼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주요한 경제적 변혁은 모두 공통분모를 가진다. 경제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기본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그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해 경제 시스템이 하나의 완전체로 돌아가도록 만든다.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와 동력원, 그리고 운송 메커니즘이 바로 그 세 가지 요소다. … 이 세 가지 운영 체계는 함께 경제학자들이 범용 기술 플랫폼(사회 전반적 인프라)이라고 칭하는 것을 구성한다. 새로운 커뉴니케이션과 에너지와 운송 인프라는 또한 사회의 시간적 및 공간적 방향과 비즈니스 모델, 통치 유형,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 거주지, 내러티브 정체성 등을 변화시킨다. (p26)  


아무래도 제가 읽었었던「소유의 종말」이외에도,「3차 산업혁명」,「한계비용 제로 사회」과 같은 저자의 이전 저술들들 미리 읽어보고 이 책을 펼친다면 훨씬 더 쉽게 책 속 내용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 세상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라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그러나 '왜'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라는 아쉬움을 지워낼 수가 없었던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본다면 아마도, 


최근까지 탄소 제로 녹색 경제로의 전환을 주도한 것은 5억 80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EU였다. 이어서 근래 몇 년 사이에 14억 명에 가까운 인구를 보유한 중국이 탄소 후 시대로의 전환 계획을 앞세우며 요란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 인구 3억 2700만 명의 미국이 그 대열에 합류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p237)


'유럽은 선도적으로 잘하고 있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무섭다. 미국은 이제까지는 좀 한심했었다' 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탓도 많겠지만 예의 중국으로부터의 미세먼지에 피해받는 정도가 적지않은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매우 후하다라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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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 p342, 김영사, 2015.


이 감상문의 시작에 적었던 인용문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터전으로 주신 이 지구를, 우리 인류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가꾸어 가는 것 역시,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사실이, 저자 제러미 리프킨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AT ANY given summit on climate change, it is never long before some politician declares how “urgent” or “vital” or “imperative” it is to stop the planet from overheating. And yet few governments are willing to tackle the problem by themselves. In practice, what these impassioned speakers usually mean is that it is urgent—no, vital!—no, imperative!—for all countries but their own to get to grips with climate change."


- "A version of the 'prisoner's dilemma' may suggest ways to break through the Kyoto", The Economist, Sep. 27th, 2007.


나만 빼고가 아닌, 우리 인류 전체의 '의지'가 한데 모여질 때라야, 저자의 그리고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겠죠. 어쨌든, 그러한 바람이 헛되다거나 불가능한 건 결코 아니라는 점! 이것이 바로 --- 우리가 아직은 '노아의 방주 Version 2'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이유일 겁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이제 복원의 시대(Age of Resilience)이다. 그린 뉴딜 인프라는 복원의 시대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p114) 





  1.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 유발 하라리, 위의 책 p153.
  2.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중 p34, 김영사, 2007.
  3. 실제로 서유럽 산업화의 성공이 수 세기에 걸친 역사적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 시각을 부정하며, 외려 '석탄의 집약적 사용'과 '식민지의 존재'라는 매우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나타난 결과라는 주장도 있지요. - 마틴 자크,「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부키, 2010.
  4. "온난화, 과학적 논쟁이 필요하다", 세계일보, 200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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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는 왜 과학책을 읽을까 - 의사 결정에 힘이 되는 과학적 사고의 모든 것
유정식 지음 / 부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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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을 읽고 쓴 감상문에서 저는 "어쨌든 '지구의 중력'에 대한 기사보다는 '물가 상승'에 대한 기사가 일반 대중의 삶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적었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꿰뚫어보고라도 있었다는 듯, 이 책「빌게이츠는 왜 과학책을 읽을까」의 저자 유정식은 책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반박의 글(?)을 적고 있습니다. 


뛰어난 리더들이 과학책을 즐겨 읽는 이유는 과학이 경제나 정치와 같은 생활밀착형 학문이기 때문이다. … 과학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짜로 '밥을 먹여 주는' 1차적 학문이라 할 수 있다.(p6) 


각자의 지식, 그리고 그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성된 가치관 등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예의 모두에게 달리 보일 것이기에, 저자의 위 주장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다만, 이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 과연 위 주장을 얼마나 뒷받침해주고 있느냐가 독자로서 가져볼 수 있는 주요 관심사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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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잉어가 잘 크는 연못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가끔 메기가 되고, 관리자도 자주 메기가 된다. 위치를 떠나 서로 메기가 되는 것인데, 역시 가장 큰 메기는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고 메기가 잉어를 잡아먹지는 않는다. 메기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활력 있고 건강한 잉어를 키우는 데 있기 때문이다."


- 김성호,「일본전산 이야기」중 p178, 쌤앤파커스, 2009.​

위 책에서 김성호는 '메기 효과'의 원조를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이라 했습니다만,「빌게이츠는 왜 과학책을 읽을까」의 저자 유정식은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애용했던 예화라 적고 있습니다. 뭐 누가 먼저 했고는 중요한 게 아니겠죠. 암튼 --- "안락한 환경에 안주하는 것보다 적절한 긴장감을 가져야 더욱 분발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뜻"(p66)으로 자주 인용되는 위 예화에 대해 저자는,


동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는 날조된 것들이 많다. 그러므로 가져다 쓰려면 과학적으로 증명됐는지 검증 후에 쓰면 어떨까?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인간 마음대로 해석하고 재단해서는 곤란하다.(p70)


라 주장하며, 메기 효과 역시 "과학적으로 전혀 증명된 바가 없는 이야기"(p67)라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 '과학에 대한 무지 혹은 어설픈 지식이 오히려 현상에 대한 분석을 그릇되게 할 여지가 있으니, 알려면 제대로 알고 제대로 적용하자'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다거나, 대단한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획기적인 책까지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가벼운 일상 속 상황들 속에 숨겨져 있는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면서 그것들을 회사의 경영 혹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면 좋겠는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담겨져 있는, 전반적으로 casual하게 읽어낼 수 있는 책이라 소개하는 것이 맞지 않나하는 개인적 의견입니다. 예를 들자면, --- 화장실에 두루마리 휴지를 거는 두 가지 방법 (이걸 '롤 오버'와 '롤 언더'가 표현하나 봅니다. 이 책을 통해 배운 새로운 지식!)에 대한 술자리 수준의 이야기, 그걸 또 진지하게 연구한 학자들도 있더군요.


확실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롤 오버를 선호하는 사람과 롤 언더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성격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길다 칼 박사는 18~74세 사이의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롤 오버를 선호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이며 타인에 대해 지배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면 롤 언더를 선호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순종적이고 친화적이며 유연한 성격을 지녔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더 많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159) 


저는 롤 오버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 저의 성향이 '주도적, 적극적, 지배적'이란 단어와 어울린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뭐 어쨌든 ---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저자는 "논리적으로 'A이면 B다'가 참이라고 해서 'B이면 A다'가 반드시 참은 아니"(p160)라는, 이렇게 보면 당연하지!라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당연하지 않은 방식으로 현실에의 적용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우(愚)를 지적해주고 있다라 이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지요. 이 밖에도,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과 남을 비교한다. '내가 남보다 무엇이 못한가'라는 능력의 비교가 아니라 '내가 남보다 무엇을 손해 보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p45)  


와 같은 구절은, 인사 담당자들이 (급여 인상) 업무를 추진해감에 있어 (거의 '반드시'의 정도로)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무겁지 않은 내용들을 읽어가다 보니, 실제로 이것들을 현실 업무나 저의 삶에 살짝이나마 대입시켜 봐야겠다라는 가벼운 의욕, 혹은 밥벌이와는 관계 없는 지적 호기심에의 자극, 무엇보다 --- 뭔가 정리되지 않은 채 제 머리 속에 담겨져 있던 몇몇 내용들을 어떤 방향으로 정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일말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류는 강박적이라고 할 정도로 평등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런 경향은 인류가 수렵 채집 사회를 이루며 생활하던 시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뿌리 깊은 것(p47)   


과 같은 인용문은, 


"진정한 도덕적 관심사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다. 진정한 도덕적 관심사는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이지, 어떤 사람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 어떠한가가 아니다.(p76) …… 어떤 사람들의 삶이 나쁘다는 사실이 악이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쁜 삶은 나쁘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에 악인 것이다."(pp77~78)


- 해리 G. 프랭크퍼트,「평등은 없다」중 pp76~78, 아날로그, 2019.


라는 논의에 연결시켜, 이 두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서로 상반되는가 혹은 일맥상통하는가와 같은 고민을 해볼 여지를 주기도 하였으며, 또한 


찍은 답을 고치는 게 유리할까, 그대로 두는 게 유리할까? 통계적으로는 고친 답이 유리하다. 하지만 가장 피해야 할 것은 고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시간을 허비해서 다른 문제도 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p142)


와 같은 저자의 충고는 문득 / 왜인지 알 수 없으나 --- 작가 구병모의 다음 글귀를 저에게 떠올려주며, 과거의 제 삶 속에서 후회스러웠던 부분들이 그렇게 엄청난 결단의 결과물들인 것만은 아님을, 다시 한 번 더 각인시켜주기도 했지요. 


"희망이나 다짐이 소각로에 던져져 티끌과 재로 사그라지고 심장과 머리가 냉각되는 계기란 이처럼 단순하다. 블록의 누적이 한계에 도달하고 균형을 상실한 채로 버티고 있을 때 그것을 직접 쓰러뜨리는 것은 어디선가 급습하는 대단한 토네이도 같은 게 아니라 부주의한 어린애의 집게손가락이다."


- 구병모,「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중 p191, 문학과지성사, 2015.


………………………………………………………………………………………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멱함수와 관련된 내용, 그리고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통계 계산의 착오에 대한 부분이 저에게, 관련된 독서를 더 해보고 싶다라는 의지를 심어주기도 했듯, --- 새로운 지식에 대한 자극제로 기능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의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 중에는 '양자택일의 오류'라는 게 있다. 2개의 주장이나 대안이 있을 때 '둘 중 하나만을 반드시 택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해서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사람들의 의견을 몰고 갈 때 쓰는 말이다.(pp186~187) 


그 선택은,

강요됨 없이 오로지 당신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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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 - 불확실성의 시대, 경제기사 속에 답이 있다, 2020 개정증보판 300문 300답
곽해선 지음 / 혜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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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도, 여느 영화들과 다름 없이,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일종의) 악역과 마동석/공유가 연기한 (일종의) 선역의 대비를 주요한 갈등으로 삼아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제 3자 전지적 시점의 관객들이야, 마동석/공유 일행이 좀비들에게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들 일행의 진입을 막는 김의성이 속한 무리들을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의 감정상) 비판적으로1 보게 됩니다만, 사실 --- 김의성 일행의 입장에서 보자면, 마동석/공유 일행들의 감염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위 말하는) '보편적 인류애/공동선'를 발휘한다면서 그들에게 열차 객실문을 열어주는 것이 (굳이 경제학에서의 의미만이 아닌) '합리적인 선택'이 아님을 결코 부인할 수 없으며, 그러함에도 굳이 지워내지지 않는 '보편적 인류애/공동선'라는 건, 이것을 이른바 '합리성의 어두운 면'이라 일컬어지는 (일종의) 반성을 기어이 자아/끄집어냅니다.    


"1,0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창으로만 무장한 보병인데, 창으로 무장하고 말을 탄 창기병을 상대해야 한다. 보병이 단결해서 물러서지 않으면, 창기병의 공격을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고, 아군 사상자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병이 너도나도 도망치면 대다수가 말발굽에 짓밟혀 죽고 만다. 따라서 당신은 당연히 단결해서 버티는 쪽을 택해야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당신은 자신만 통제할 수 있을 뿐, 보병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보병 전체가 버티고 당신만 도망친다면 당신은 적어도 적의 손에 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모두 도망치면 앞장서서 도망쳐야 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다른 병사는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은 처음부터 달아나는 편이 낫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달아나면 대부분 죽는다. 이것이 바로 합리성의 어두운 면이다."


- 데이비드 프리드먼,「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중 p19, 옥당, 2015.


이러한 합리성의 어두운 면을 비단 ('dismal science'라 불리우기도 하는) 경제학 분야에서만 보게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각자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 단지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 노명우,「세상물정의 사회학」중 p26, 사계절, 2013.


'무시무시한 몰상식'이란 표현이 지나치게 살벌하다면, 언론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NIMBY 현상'으로 단어를 바꾸어도 노명우 교수의 위 주장에 전하고자 하는 바에 별 영향이 없다고 ('보편적 인류애'를 지니고 있지 못한 저는) 생각합니다. 우한 거주 한국인들을 전세기로 데리고 와, 모 지역 공공 시설에 격리 조치하기로 했다는 1월 29일자 뉴스 기사에서 볼 수 있는 해당 지역 거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역시, 그들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초로 한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었으나 --- (영화 <부산행>의 관객과도 같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반대가 (부정적 뉘앙스가 매우 강한) 전형적인 NIMBY 현상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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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ask the average person why inflation is a social problem, he will probably answer that inflation makes him poorer. … This complaint about inflation is a common fallacy."


- Gregory Mankiw,「Macroeconomics」2nd edition, p3, 1994.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중(the average person)의 인식을 오류라고까지 표현한 건, 일견 '너무 가혹하다'라 생각합니다. 일반 대중들에게 인플레이션이란 (그 인식이 옳으냐 틀리냐를 떠나) 어쨌든 '부(wealth)의 이전으로 인한 손실'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사회 전체의) deadweight loss의 측면만을 판단하기 때문이지요.3 이처럼 --- 일반 대중이 바라보는 세상과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의) 세상 간에는 같지 않은 면이 분명 적잖게 존재합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경제를 알아야 한다. 왜? 개인, 기업, 국가 모두가 흔히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 세상을 바로 보고 경제적 위험을 피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경제를 알아야 한다.(p6)

저자의 위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어쨌든 '지구의 중력'에 대한 기사보다는 '물가 상승'에 대한 기사가 일반 대중의 삶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작금의 현실에서, (그 관심의 크기 또한 더 클 것이다라는 추측엔 별 문제가 없기에) '경제학(economics)'에 대한 지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 '경제(economy)'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에 대한 수요는 꽤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경제지표가 경제 실태를 객관성 있는 시각으로 파악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보고, 경제지표를 구사해 경제를 분석 · 평가 · 진단하기를 즐긴다. 경제를 논할 때 보통 사람과 전문가 사이의 차이는 경제지표 활용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p26)


각자의 영역에 대한 일종의 접근 제한선마냥 사용되고 있는 jargon 등이, 예의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경제(economy)'의 이해에 대한 용이한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 (역시나 경제학에서 나온)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의미하듯, 서당개 생활 3년 했다는 것이 자동적으로 풍월을 읊을 수 있는 능력을 장착시켜 주는 건 아니죠. 그러하기에, 


어려운 경제기사를 술술 읽어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별수 없다경제 이론 공부를 해야 한다. … 경제 분야에서는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하고 이후 일어날 일까지 추측할 수 있으려면 이론 지식이 있어야 한다.(p571)


네, 정말 별수 없는 겁니다. 공부해야 하는 거죠. 이 사실이 이 책「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과 같은 경제 입문서들의 sales point가 되기도 하겠지만, 굳이 이 책만의 특징을 꼽아보자면, 수차례에 걸친 수정과 보완의 산물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너무나 많은 수정과 보완으로 인해 책의 두께가 입문서치고는 너무 부담된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경제 원리와 현실을 알기 쉽게 설명한 실용판 경제 입문서다. … 이번 책은 1998년 초판을 출간한 뒤 열네 번째로 전면 개정한 제15판이다.(p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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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4가 떨어진다는데 왜 걱정을 해야 하는 걸까요? 말 그대로라면, 어제 한 그릇에 4천원이었던 소주값이 오늘 3천원이 되었다라는 건데, 이게 왜 걱정거리가 되어야 하는 거냔 말이죠. --- 경제원론 같은 (나름) 전문적인 교재가 아닌, 일반 독자층을 타켓으로 삼고 있는 이 책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 처지에서 좋지 않은가? 경제가 순조롭게 돌아가는 가운데 기업들이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제품 생산비를 낮춰 소비자가격과 물가가 내린다면, 소비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다. 저물가가 소비를 늘려 기업 생산을 자극하고, 그에 따라 고용과 투자가 늘어나 경제성장세가 높아지는 선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때 나타나는 물가 하락은 다른 경우다. 경제발전과 생산성 향상 덕택이 아니라 수요와 소비가 공급에 못 미쳐 물가가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때 나타나는 저물가는 기업이나 소비자나 돈벌이가 시원찮거나 빚 부담에 짓눌린 탓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공급력에 비해 구매력이 떨어져 수요가 부진해진 결과다. 수요 부진으로 저물가가 지속되면 판매가 줄고, 생산 · 고용 · 투자 규모가 줄어 경기가 나빠지고, 국민경제가 성장하는 능력이 약해진다. 디플레이션 때는 상품 판매가 시원찮아 기업이 판매가를 내리지만, 그래도 소비자는 소비를 미룬다. 물가가 더 떨어질 테니 나중에 살수록 이익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디플레이션 때는 값이 싸도 상품이 팔리지 않으니, 기업이 설비와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가계 소비가 줄고, 제품 판매가가 더 떨어지고 실업도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pp 156~157)


비슷한 내용을 'GDP 디플레이션'이란 용어를 사용해 설명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 신문 기사의 일부를 인용해 보면,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있어 선제적으로 종합적인 경기진착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0일 디플레이션 가능성 점검과 분석을 통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0달째 0%대 수준이고 GDP 디플레이터가 지난 2001년 이후 최초로 세 분기 연속 하락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 "한국 경제 디플레이션 늪에 빠지나" … 저성장 · 저물가 국면 진입", NEWS1, 2019.11.20. Internet copy


이 기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 책 속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플레이션이란 수요가 공급보다 너무 작아 판매, 생산, 고용, 투자가 위축되면서 물가가 속락하는 경제 상태다. GDP 디플레이터 값이 낮아지면 왜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나? …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에 대비시켜 산출하는 지수다. 


GDP 디플레이터 = (명목 GDP/실질 GDP) × 100


어느 해 명목 GDP가 100, 실질 GDP가 90이라면 GDP 디플레이터는 111.11이다. GDP 디플레이터가 111.11이라는 것은 명목 GDP가 실질 GDP에 비해 11.11% 부풀려졌다(inflated)는 뜻이다. 실질 GDP는 90인데 물가가 11.11% 오르는 바람에 명목 GDP가 100이 된 것이다. 여기서 명목 GDP와 실질 GDP 값을 차이 나게 만든 것은 11.11%에 해당하는 물가 변동분이다. 결국 GDP 디플레이터를 구해보면 물가 변동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는 셈이다.(pp534~535)


이 책은 이처럼 실제 신문 기사들을 인용한 후에, 해당 기사에 대한 최소한의 경제학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경제학을 접해본 적이 없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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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이론적 지식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그 지식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다른 차원의 행위입니다. 


"공급곡선과 수요곡선은 분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단서다."


- 데이비드 프리드먼, 위의 책 p137.


'수요-공급곡선'의 내용/개념을 '알고 있다라는 것'과, 그것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라는 것', 또한 그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에게 그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것' 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럼 점에서 보자면 --- 이 책의 저자는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매우 성공적으로 타인들에게 이해시켜주고 있습니다. 이 얆지 않은 책을 세심하게 정독한 독자라면 분명, 


                    


위 기사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분명 다르리라, 더 나아가 이 기사의 내용을 타인에게도 이해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경제학 이론을 먼저 공부한 후에 그 지식들을 바탕으로 위의 신문 기사를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같은 연역적 공부법이 (저의 경우인) '한 조직의 일원이며 또한 한 가정의 가장'인 당신에게 허여되지 않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요구한다면, 개별 신문 기사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 전반적인 이해도를 완성시켜나가는 이 책의 귀납적 공부법은 그 누구라도 감당해낼 수 있는 수준의 시간만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물론,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면 임금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한계기업은 고용을 줄이거나 문을 닫지만 구조조정이 촉발된다. 한계기업이 사라진 자리에는 좀 더 자본력 있는 기업이 들어와서 고용을 늘린다. 소자본과 저품질 저임 노동이 결합한 저효율 기업은 사라지고, 자본과 인력이 이동해 생산성이 더 높은 기업으로 모여든다. 전체로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한계기업을 정리하고 산업 품질을 개선하면서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는 산업 고도화(industry advancement)가 일어난다. 산업 고도화는 경제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최저임금 인상 → 산업 고도화 →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소득주도 성장이 가능하다. 문제는 산업 고도화가 가능하려면 임금 인상 압박을 받는 기업과 자영업자, 노동자가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이동하기가 매우 어렵거나 이동할 만한 유인이 별로 없다면,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 고도화를 이끄는 구조정을 만들어낼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초반이나 지금이나 한국 경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노동자가 시장에서 다른 기회를 찾아 이동할 만한 곳이 별로 없는 상태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을 이끄는 데 필요한 기반이 허약한 셈이다.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가 옮겨 갈 새로운 시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벌이 시장을 독점한 탓이다.(pp 101~102) 


많은 입문서들이 (어쩌면 태생적으로 그러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지니고 있는 단점인, (논리의 오류가 아닌) '논리의 지나친 단순화가 빚어내는 결과의 비약'을 이 책 또한 완전히 피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위의 구절이 저자의 정치적/학문적 성향으로부터 기인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 현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현 정부가 원하는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를 결국 '재벌의 시장 독점'으로 간단하게 귀결시키는 논리의 전개는, 적어도 제가 체득하고 있는 경제학 지식으로는 (빼도막도 못한) '지나친 논리의 단순화로 인한 결과의 비약'이라는 (그리하여,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는 재벌의 독점 때문이다!라 단순화지어버리는 독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비판을 숨길 수가 없네요.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전문적인 경제학 지식은 필요 없다. 다만 경제학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순간 경제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기술로 바뀐다."


- 하노 벡,「경제학자의 생각법」중 p7, 알프레드, 2013.


단지 '부(wealth)의 증대'만을 위한 경제 공부가 아닌,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삶의 기술'로서의 경제학을 만나기 위한 일 과정으로서의 '경제 공부'의 시작점으로서는 이 책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되리라, 그리하여 --- 영화 <부산행> 속 김의성 일행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과 같은 우(愚)를 벗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항상 그러하듯, 역시나 선택은 당신의 몫...



※ (거의 '반드시') 함께 읽기를 권하여 드리는, 현실 경제에 관한 책 :경제상식사전

※ 경제학 입문서로 추천드리는 책들 :한 번은 경제공부」,「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경제학자의 생각법」  




  1. 이 부분에 대한 강조를 위해, 김의성이 연기한 인물 개인의 비도덕적인 장면들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추가했다고 생각합니다.
  2. 이같은 '합리성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던 것이 마르크스 경제학이라 볼 여지도 있다 생각합니다.
    "맑스경제학의 방법론이 어느 특정 개인의 착하고 나쁨이나 똑똑하고 어리석음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나가면서도 개인적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구조를 문제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 류동민,「프로메테우스의 경제학」중 p130, 창비, 2009.
  3. 마이클 센델 교수가「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의(justice)를 이해하는 세 가지 접근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정의란 공리나 복지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 ②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③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
    이 중에서 센델 교수는 세 번째 방식의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을 가장 선호한다 밝히고 있습니다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미덕'이나 '공동선'과 같이 계량화되어질 수 없는 개념에 대한 고려가 아닌) 사회 전체적 효용의 극대화가 가장 중요한 분석의 대상입니다.
  4. "가격이란 자장면 한 그릇에 얼마, 냉면 한 그릇에 얼마 … 식으로 매매를 위해 개별 상품에 붙이는 값이다. 개별 상품 가격 여러 개를 한데 묶어 평균 낸 값은 물가라 한다."(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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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 - 선택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법
배리 슈워츠 지음, 김고명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 우리가 자율적으로, 즉 스스로 부여한 법칙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그 행동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의 도구가 아니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덕에 인간의 삶은 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


- 마이클 센델,「정의란 무엇인가」중 pp170~171, 와이즈베리, 2014.


목이 말라 시원한 음료수를 살 때, 콜라는 사마실지 물을 사마실지 아니면 우유를 집어들지를 결정하는 것은 일견 '나의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로 보일 수 있겠으나, 그러한 행동조차 "복종의 실천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반응으로, 내 갈증에 대한 복종이다"1 라고, 위 문장의 주인공인 이매뉴엘 칸트는 주장합니다. 즉, 칸트가 정의하는 '자율적 행동'이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나 아니라 '완벽하게'"내가 스스로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2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철학에 문외한인 저에게, 칸트의 위 주장은 일견,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있고 정작 나 자신은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나는 행복할까? … 아나키즘은 그러한 결정들이 반드시 내 동의를 거쳐 내려져야하고, 내가 살아온 삶의 터전을 그 누구도 강제로 빼앗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 하승우,「아나키즘」중 p16, 책세상, 2008.

 

'선택의 주체'라는 측면에 한정하여 본다면, ('무정부주의'라 번역된 용어로 인해 '이상적(idealistic3)'이라기보다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사상/주의로 알려져 있는 아나키즘의 기본 철학과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무식함이 낳은) 용기를 내어 칸트와 아나키즘의 공통점을 요약해보자면, --- 어떤 것을 어떠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 선택하느냐 보다는/이전에, 그 선택(을 하는 행위)의 주체가 온전히 '나 자신'인가가에 대한 고찰이 우선되어야 한다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블로그를 통해 여러 번 적었었듯) 경제학이 "광범위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보는 관점"4의 스탠스에 서있을 때라야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라 믿고 있는 저이기에, 칸트와 아나키즘의 주장을 일종의 function으로서 도와줄 수 있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라 생각합니다.       

                                                                                                            

"경제학은 한 마디로 '유한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경제학은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보니 경제학 역시 삶의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 넓게 보면 경제학은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의 삶 전체를 다루는 학문일 수도 있다."


- 하노 벡,「경제학자의 생각법」중 pp 6~7, 알프레드, 2013.


'나의 선택'이 정녕 나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인가, 혹은 타의에 복종하여 이행하게 된 것인가를 떠나 --- 그러한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가지 고려 대상의 검토에 있어서만큼은 경제학이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것이죠.5


경제학 이론의 예측이 현실에서 과연 그러한 결과를 낳을 것이냐/낳았느냐라는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재의 현실을 이끌어 낸 제반 요소들, 즉 그 원인에 대한 설명 또한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추구하는 일 목표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 경제학은 '선택'이라는 주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선택에 관한 학문'이니까요.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 수많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선택한 결과다. 도시 한가운데 고층 빌딩이 모여 있는 것도, 오늘 주가가 오른 것도, 출퇴근 시간마다 도로가 꽉 막히는 것도 모두 그렇다.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 하노 벡, 위의 책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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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선택을 하여야 하는 상황 자체의 발생이 진정 자율적인가'란 게 칸트의 관심사였다면, 아나키즘은 '특정 선택이 진정 자율적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하준 교수처럼 --- 현재의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 분석하고 있는 '개인'이 과연 온전한 독립의지를 가진 존재인가라는 비판을 가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그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이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바뀔 수 있는지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이라도 차선책이 굶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일은 선택할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한 선택을 '자유 의지'로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먹어야 한다는 생리적 조건 때문에) 그 일자리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한 게 아닌가? … 가난한 사람들이 조건이 '좋지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만큼 절박하게 만든 환경을 용인할 것인가를 물어야하는지도 모른다."


- 장하준,「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중, 부키, 2014.


그러나 ---  이 책「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은 제목에도 쓰여있듯 점심메뉴로 무엇을 먹을까, 어떤 디자인의 청바지를 사야할까와 같이, 우리의 일상 삶 속 선택들에 대해, 또한 그러한 선택들로부터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효용의 감소)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어찌보면 (역시나) 기존 경제학(=신고전학파 경제학)의 현실화 버젼을, 달리 말하면 일종의 비판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정색하고 응대하기보다는, 어쨌든 엄연히 우리의 일상 속 상당부분인 '선택이라는 행위'에 대한 (일종의) 행동경제학적 혹은 사회학적 분석으로 읽어내는 것이 옳겠다 싶고, 그렇게 읽어낸다면,


이 책, 매우 매우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있게 적어낼 수 있습니다.


선택으로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선택이 있기에 우리는 운명을 다스릴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원하는 것에 가장 근접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선택은 자율성의 필수 조건이고 자율성은 행복의 근간이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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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은 대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통계학에서도 '데이터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이론의 여지 없는 정설이지요. 그러나 --- 저자 배리 슈워츠는 적어도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만큼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덜 행복하게, 다시 말해 비효용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 주장합니다.

'어느 정도'의 선택이 좋다고 해서 '더 많은' 선택이 무조건 더 좋다고는 볼 수 없다.(p11) …… 선택이 폭이 넓어질수록 행복해진다는 통념,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기준을 아주 높게 설정해야 한다는 통념,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것이 그럴 수 없는 것보다 무조건 더 낫다는 통념 … 나는 그런 통념이 잘못됐음을, 적어도 의사결정에서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에 대한 통념만큼은 분명히 잘못됐음을 보여주고 싶다.(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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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쁘다 바빠!  


"굳이 수용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수용소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삶 역시 도처에 있다."


- 헤르타 뮐러,「숨그네」중 p341, 문학동네. 2010.


유발 하라리의「사피엔스」를 읽고 가장 흥미로웠고 놀랐던 부분이 바로 <2장 : 농업혁명>에 나오는 "우리가 밀을 길들이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6라는 문장이었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지배력의 확대'로 보여지는 거시적 관점의 번영이란 것이 기실은,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삶"7으로 대변되는, 수용소는 아니되 수용소에 갇힌 것이나 다름 없이 고통스럽기만 한 미시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유지되고 진행되어 왔었다라는 그의 주장은, 유발 하라리를 저와는 다른 류()의 존재로 느끼게도 해주었었죠.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 p136, 김영사, 2015.


배리 슈워츠 또한 "우리는 최신식 시간 절약 장치가 사방에 널려 있지만8 늘 시간에 쫓긴다"(p256)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History's biggest fraud'라고까지 칭했던) '농업혁명'이건, 자동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우리를 데려다준다는 수준까지 발전된 '과학혁명'이건, 그것들이 선사해 준 문명의 발전이란 게 적어도 --- 미시적 관점에서의 우리 삶의 속도 더 나아가 만족도까지를, 수렵 시대의 그것보다 더 낫게 만들어주지는 못한 겁니다. 



【 더 행복해지지도 못했다? 】


우리 세대의 삶이 수백 년 전 세대의 삶보다 더 바빠졌다해도, 그 덕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아 더 행복해졌다면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향유하고 있다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지는 꽤 오래됐다. 그러나 예전에는 '기본' 선택안이 워낙 강력하고 지배적이다 보니, 자신이 선택을 하고 있다고 인지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결혼 상대야 선택할 수 있었지만 결혼 적령기가 되면 당연히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줄 알았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말이다.(p47)


선택지는 훨씬 더 다양해졌으며,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는 사회적 강제에 의해 결혼이나 출산을 '해야 하는' 부담도 이제는 많이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다익선'이란 경구와 '데이터는 많을 수록 좋다'라는 통계학의 정설과는 달리 왜 우리의 삶은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해졌다라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라는 의미에서) 더 행복해지지 못한 것일까요?


인류 역사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앞에 지금처럼 다양한 선택안과 기회비용이 놓여 있지 않았다. … 결핍의 시대에는 기회가 무더기로 찾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이 결정해야 하는 것은 접근인가 회피인가, 수용인가 거부인가다. 짐작건대 그런 분별력, 곧 좋은 것가 나쁜 것을 판별하는 능력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을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좋은 것과 더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는 것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다. 수백만 년을 단순한 구별에 의존해 살았으니 어쩌면 우리는 현대 사회가 제시하는 무수한 선택안에 대해 아직 생물학적으로 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p168)


인류의 진화사적으로 보아 현생 인류가 과거 인류에 비해 '현격하게' 진화되었다라 말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 경제학의 이론적 발전은 (경제학에 수학 기법의 도입을 주도했던)  폴 사뮤엘슨 교수가 보아도 감탄할 정도로 진보한 것이 사실인데, 왜 우리 삶의 행복은 극대화 되기는 커녕, 이전 보다 더 증가되지 않은 것일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자는 그와 같은 극대화를 향한 우리의 욕망이 우리가 이전보다 더 행복해지지 못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이룩한 쾌거는 달면서도 쓰다. 인생의 구석구석에서 그렇게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 까닭은 뭐니뭐니해도 선택 과잉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으면 마음이 괴로워진다. 더군다가 거기에 기름을 끼얹는 요인들도 있다. 후회, 지위에 대한 관심, 적응, 사회적 비교,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조건 최고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 곧 극대화 욕망이다.(pp256~257)



【 과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 】


"인간은 가져본 적 없는 것을 갈구하지는 않는다. 아쉬움은 즐거움을 안 뒤에 오고, 지나간 기쁨에 대한 기억이 있는 까닭에 불행을 인식하는 것이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자발적 복종」중 p80, 생각정원, 2015.


과거의 우리 앞에는 그다지 많은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두부를 사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은 그저 집 앞 가게 아주머니에게 '두부 주세요~'라고 하면 해결되었었으나, 퇴근 길에 두부를 사다달라는 아내의 부탁은, 집 앞 GS 슈퍼의 진열대 앞에서 여지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찌개용, 부침용, 유기농, 무항생제, Non-GMO … 로 포장된 수많은 두부 중에서 뭘 사야하는지를 물어야만 해결할 수가 있게 되었죠. 


"군중은 절대 자발적으로 폭동을 일으키지 않으며 압제를 받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비교 기준이 없는 한, 자신들이 압제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 조지 오웰,「1984년」중 p239, 열린책들, 2009. 


전화를 해서 도대체 어떤 두부를 사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귀찮아서 옛날 엄마의 심부름이 더 좋았다,라 말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엄마의 심부름을 하던 시절에는 집 앞 가게에서 파는 두부가 모두 유기농에 무항생제에 유전자 조작이 없는 콩으로 만든 두부였었을 수도 있겠으나, 필요에 의해서건 요구에 의해서건 현재엔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늘어난 선택지 앞에서 서있노라면 --- 뭔가, 그깟 두부 하나 고르지 못하는 사람인가하는 자괴감을 살짝 느껴보게되기도 되고, 거기에 더해, 이왕 해야하는 고민이라면 이 수많은 두부들 중에서 뭘 사야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덜 해가 될까 검색해봐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생겨나고, 암튼...


시대적 보정을 충분히 한다 하여도, 엄마의 심부름 시절에 제가 먹었던 두부와 아내의 부탁으로 사가서 먹게되는 두부로부터 얻게 되는 저의 효용이, 두부의 질(quality)과 두부 요리로부터의 만족으로 인해 상승된 것이 확실한가라는 질문에의 답으로 '그렇다'를 선택하기는 사뭇 어렵습니다. 


선택안이 늘어나면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만큼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택이 축복에서 짐으로 전락하는 이유 중 하나다.(p57)​ …… 온갖 것을 선택할 수 있으니 우리는 그냥 '적당히 좋은' 것에 만족할 수가 없다.(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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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존즈 시절에는 사정이 훨씬 더 나빴던 것임에 틀림없다고 동물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즐거이 그렇게 믿었다. 게다가 존즈 시절에는 모두가 노예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 자유롭지 않은가, 그거야 말로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 조지 오웰,「동물농장」중 p99, 민음사, 2006.


데이터나 정보(information)는, 올바르게 사용되기만 하면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틀림없이 더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데이터나 정보의 양이 많음에도 부정확하거나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오는 건 오로지 그들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 학력이나 출신지 등과 같은 데이터와 정보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특정 목표를 위해 왜곡시켜 사용하였기 때문에 발생된 채용 비리에의 대응을, 아예 그러한 데이터와 정보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블라인드 면접'으로 반강제하는 현실을 못내 감당해내고 있다 보니 어처구니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우리는 항상 선택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선택권이 주어지면 무조건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p136)


'하지 못하는 것'의 해결책이 '하지 않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 과거에 비해 무지하게 늘어난 선택지 앞에 놓여진 이 현실, 그렇게 늘어난 선택지로 인해 우리의 행복이 오히려 줄어들게 된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선택의 기회를 포기/회피9하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바로, 


'적당한 만족'은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로 훗날 노벨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이 1950년대에 처음으로 소개한 개념이다. 그는 모든 선택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느라 들어가는 비용 (시간, 돈, 고통)을 감안하면 오히려 적당한 만족이야말로 극대화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전략은 적당한 만족이란 뜻이다.(p92) 


"온갖 것을 선택할 수 있으니 우리는 그냥 '적당히 좋은' 것에 만족할 수가 없"(p245)기에 '조금 더 좋은' 것을 계속해서 찾는 과정이 결국 '극대화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선택의 결과가 '행복'이 아닌 '불만족'으로 귀결되는 삶을 살기 보다는 ---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얻는 만족감이 아닌, 본인의 주관적 만족을 우선시하고 그에 맞춘 선택을 하는 것이, 치열하고 지루한 극대화의 과정을 거쳐 얻게 되는 결과물보다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다라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핵심 메시지입니다. 


웬만한 사람에게 감사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우리가 다른 선택안에 대해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선택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0 인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자꾸 더 나은 인생을 그려본다. 반면에 인생이 잘 풀릴 때는 더 나쁜 인생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이만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인생에서 좋은 것들이 훨씬 좋게 느껴질 것이다.(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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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12일에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을, 해가 바뀌고도 19일이 지나서야 다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이 지겨워서 독서 기간이 늘어진 것이 아닌, 온전히 연말 업무와 이어지는 술자리, 그로 인해 침대에서 하루 종일 보내야 했던 주말 등, '독서'란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지들을 선호했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처럼 집중해서 7~10일만에 읽어낼 수 있었더라면,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그리하여 보다 더 정교한 감상문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  포스트의 마지막을 적어가고 있는 지금에도 떨쳐지질 않네요.   


'The Paradox of Choice'라는 일견 무미 건조한 영문 원제를 '점심메뉴 고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과하게 말랑말랑한 제목으로 번역해 놓은 것이 적잖이 불만으로 느껴질만큼, 이 책의 내용은 가볍지 않습니다. 물론, 저자가 인용해 놓고 있는 논문이라든가 책 등에 대한 주석이 달려 있지 않다는 점, 저자의 개인적 의견이 은근 자주 표출되고 있다라는 점등이 아쉽기는 했습니다만 오히려 그러한 점이 --- 말랑말랑한 국문 제목과 어울려,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중언부언이라 할 수 있을만큼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지루하다라 느껴지기보다는 한 번 가르친 것을 다시 복습시켜 주는 친절함으로 각인될 수 있게 쓰여져 있다라는 점 또한,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라 생각하고 있는 분들에게,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또한! ---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그 실마리를 찾게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미에서 강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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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생각법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돈 버는 생각 습관
하노 벡 지음, 배명자 옮김 / 알프레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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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한 마디로 '유한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우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경제학은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보니 경제학 역시 삶의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 넓게 보면 경제학은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의 삶 전체를 다루는 학문일 수도 있다.(pp6~7)


경제학을 소개하는 그 어느 책을 펼쳐도, 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위 규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한 시간만 8년인 제가 생각하기에, 경제학이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역시, 단연코 "경제학이 광범위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보는 관점"1의 스탠스에 서 있을 때이지요. 


​"한국 사회를 행복한 지옥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다. 결코 누군가가 몰래 만들어놓은 함정에 우리가 억지로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냥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 허태균,「어쩌다 한국인」중 p28, 중앙books, 2015.


사회적 진화의 결과이건, 필연이라 믿어지는2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결과이건, 현재의 모습은 과거 누군가들의 선택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내가 원한 현재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라 아무리 주장해도, 사회 구성원들의 수많은 선택들이 빚어낸 물리적·화학적 결과물인 현재를 거부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 수많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선택한 결과다. 도시 한가운데 고층 빌딩이 모여 있는 것도, 오늘 주가가 오른 것도, 출퇴근 시간마다 도로가 꽉 막히는 것도 모두 그렇다.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p49) 


이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바꾸고바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현상으로서의 현재를 이해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필요하겠죠. 그러하기에 --- 생업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경제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라 생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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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원군이 사회과목으로 경제를 선택했기에, 그의 시험 준비를 도와주었더랬습니다. 고등학교 수준의 경제이론이 어려워봐야 얼마나!란 약간은 건방진 자세로 참고서를 펼쳤었거늘, 이건 뭐 --- 경제학과에서 경제원론을 배울 필요조차 없을만큼 기술적(technical)인 내용들로 가득한 겁니다.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 관세를 올리면 등등. 이딴 내용의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경제학에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정말 그같은 내용들이 고등학교 정규교육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라 생각했었던 것인지 은근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문열의 표현을 빌자면, 지금의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는 "승려가 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승려를 위해 있는 것 같은 느낌"3만을 자아낸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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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몇째 주 수요일에 집 앞 슈퍼가 문을 닫아야 하는지 외우지 못하는 저로서는, 퇴근 길에 그 슈퍼에 들러 맥주나 막걸리를 사들고 집에 가려는 단순한 욕망을 실현해낼 수 없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슈퍼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맥주나 막걸리를 팔고 있는 길 건너편의 편의점엘 들러야 하지요. 동네 상권을 살리겠다는 의도로 정부가 강제하는 대형마트 휴무는 저 개인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피할 수 있는 '지출의 증가/효용의 감소'를 초래한 셈입니다. (근데 보니 이게 저 개인에게만 그러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골목 상권은 존속되어야 하며,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 역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영역 확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라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며, 사라지는 골목 상권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하지요. 


경제학자들은 마을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진실하지 않다고 믿는다. 동네 가게가 정말 좋다면 당연히 마트에 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입과 머리로만 하는 고백일 뿐이다. 행동이 없는 고백을 믿은 사람은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현시 선호 이론 theory of revealed preference'이라는 근사한 이름표를 붙였다. 한마디로 진심은 행동을 통해서만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p100)


더 나은 세상을 위함이라 말할 정책 입안자들의 순수함을 폄훼하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 "풀을 먹이는 소에게 옥수수를 먹여서 / 뚱뚱해진 소들로 햄버거를 만들어 / 저 멀리 잠비아에선 옥수수가 없어 죽어가 / 잠깐 생각하다가 오늘 저녁은 햄버거"라는 노래 가사5처럼, 그 순수함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을 자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만큼은 객관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동네 가게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동네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동네 가게에서 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동네 가게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 동네 가게가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면 그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그 가게에서 사야 한다. 그럼에도 대형 마트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다면 구멍가게들이 사라지는 걸 받아들여야만 한다.(pp101~102) 


이념과 행동 간의 괴리가 만들어 내는 역겨움을 저는 얼마 전 한 사람으로부터 아주 실컷 보았었습니다. --- 골목 상권의 존속이 저의 효용을 감소시키면서까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사회적 관점에서 저 일개인의 효용감소는 당연한 것이 되겠습니다만, 일종의 프로파간다로서 주장되는 '골목 상권의 유지'가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효용을 감소시키는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그와 같은 규제는 철회되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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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종이컵이 일반 종이컵에 비해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재활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한다'라는 의미에서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겠으나, '선한' 행동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지구 환경의 보호'라는 변인이 나의 효용 함수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재활용 종이컵을 구매하는 것이 반드시 '비합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듯, 


"그런 믿음은 잘못된 것일뿐더러 사실과 정반대다. 종이를 재활용하자는 주장에는 분명 타당한 구석이 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나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 종이를 만드는 목재 대부분은 애초에 종이를 만들려고 기른 나무에서 얻는다. 하지만 재활용은 펄프재 수요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일단 수요곡선이 내리막을 그리면 가격은 내리고 수량은 줄어든다. 나무를 기르는 데 적합했던 땅은 가격이 바뀌면서 이제 더는 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가격 차이만큼의 면적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채식주의자가 늘면 소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활용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무가 줄어든다."


- 데이비드 프리드먼,「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중 p243, 옥당, 2015.


사회적으로 '옳은 것'에 대한 의견 일치도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옳은' 어떤 행동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할 때, 그 '옳다는 믿음'이 과연 본래의 의도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확신 또한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 선한 행동이 의도치 않은 방향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듯, '그릇된 행동'이라는 사회의 판단 또한,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오류인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이 책에도 위와 유사한 사례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베트남에서 전염병의 예방을 위해 쥐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주겠다는 정책을 시행했다 합니다. 쥐를 잡았다는 증거로는 쥐 꼬리만 제시하면 되었었죠. 그러자, 


얼마 후 하노이 시내에는 꼬리가 잘린 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쥐를 잡은 사람들이 꼬리만 잘라 내고 쥐를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살아 돌아간 쥐가 번식하여 개체 수가 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책의 연쇄 반응이다. 경제학자는 이런 변수를 찾아내고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그게 진짜 경제학이다.(p276)


선한 의도의 정책이 항상 선한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책의 결과이지, 그 정책의 의도가 아니듯, 선한 의도의 정책이 사회적 효용의 감소를 자아낸다면, 그 의도의 선함에 더 이상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해당 정책을 과감히 수정 혹은 철회할 수 있어야 하겠죠. 


…………………………………………………………………… 


"어떤 중요한 목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까?"

-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생각의 나무, 2007.


대부분의 입문서가 경제 이론의 소개를 통한 경제 현상의 이해를 돕고 있다면, 이 책「경제학자의 생각법」은 제목 그대로, 우리의 사회를 바라보는 사고 방식에 경제학의 논리를 접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학을 생업의 도구로 삼지 않는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경제학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라, 또한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쳐져야 하는 내용의 경제학을 담고 있다라 감히 자신합니다. 그러하기에, --- 이 책의 내용과 전혀 맞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너무나 천박하게 유도할 염려가 있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돈 버는 생각 습관"이라는 소개글이 책의 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건, 이 책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라는 점에서 참으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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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전문적인 경제학 지식은 필요 없다. 다만 경제학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순간 경제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기술로 바뀐다.(p7)


물론, 더 많은 소득의 창출을 위해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합니다만, 제가 사랑하는 학문인 경제학이 우리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것이 오로지 더 많은 소득의 창출만이 아닌, '더 나은 삶'의 향유를 위해 쓰여지기를 바라()기에,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의 의미, 최저 임금제의 문제점 등에 대한 저자의 관점 역시, 별다른 경제학적 사전 지식을 요하지 않는 수준으로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 혁신성장의 밑바탕이자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폴 로머 교수의 견해에 깊이 공감한다"6라는 희대의 어이 없는 발언을 하셨던 분께서는 꼭, 이 책을 읽어보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 경제학 입문서로 추천드리는 책들 :한 번은 경제공부」,「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보다 깊숙한 '경제학'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불편한 경제학」,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1. 데이비드 프리드먼,「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중 p454, 옥당, 2015.
  2. "인간은 '과거'를 되돌아볼 때 우연을 싫어하며 필연을 좋아한다. 미래에 대해서는 '확률적', 즉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우연이 좌우함을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신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결론(과거와 현재의 연결)에 대해 제멋대로 이유를 만들어 그것을 필연으로 해석하고 만다. …… 요컨대 인간은 현재와 과거를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 미타니 고지,「경영전략 논쟁사」중 pp355~356, 엔트리, 2013.
  3. 이문열,「사람의 아들」중, 민음사, 2004.
  4. "이런 문제점은 영업규제 도입 후 꾸준히 학계 등에서 제기됐다. 2015년 발표된 ‘대형마트 진입규제 및 영업규제 정책에 대한 고찰’ 논문에서 저자(주하연·최윤정)는 “대형마트의 진입을 억제하는 정책이 소규모점포들의 생존율을 낮추거나, 유통산업의 총요소생산성을 저하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대형마트 진입규제에 따른 유통업체간 경쟁 약화는 소비자 가격을 상승시켜 소비자 후생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 기존 연구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 시사저널e, "대형마트 파리 날리는데 … 거꾸로 가는 유통산업발전법" 중, 2019.08.23.
  5. 흐른, 'Global citizen'
  6. <홍장표 "대기업 주도 낙수효과 끝 ... 소득주도성장 필수 불가결>중, NEWS1, 2018.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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