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 p342, 김영사, 2015.
하나님께서 5G의 시대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은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 저는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도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주시고자, 5G의 시대가 아닌, 창세기의 시대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에게 그 세상을 바꾸어갈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의지도 주셨다라 생각합니다. 창세의 시점에서 오늘까지의 역사를 모든 인류가 함께 노력해 가꾸어 온 것은 아니라는 견해, 즉 현재의 모습이 소위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 결과인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여도,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여전히,
"삶은 정해져 있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실은 하나의 우연히 쌓여 필연이 되는 과정이라고, 불가피한 상황이 우연이라면 행동은 사람의 명백한 의지라고, 학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 백가흠,「마당뺑덕」중 p45, 네오북스, 2014.
"만물의 핵심에 무작위성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라는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견해를, (소수이건 다수이건을 떠나, 또한 인간의 '의지'만으로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할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가 현재의 세상을 만들었다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여, 기독교도들에게도 큰 반감을 주지는 않을 겁니다. 뭐 이런 의견에 반감을 가지건 관심이 아예 없건, 결론적으로
"불행히도 지구상에 지속되어온 사피엔스 체제가 이룩한 것 중에서 자랑스러운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총량을 줄였을까?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에게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 유발 하라리, 위의 책 pp587~588
다른 동물들의 행복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우리 인류의 행위로 말미암아 지구와 지구를 둘러싼 자연 환경에 이전에 비해 적잖은 변화가 발생되었다라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 그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발생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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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부터 지난 달까지 지구 온도는 1.7℉ 상승했다. 이 정도로 지구를 열받게 하려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40만 개를 매일같이 터뜨려야 한다. 대부분의 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가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1950년 이후부터라니, 실제 매일 지구를 때리는 '열 펀치'는 원폭 100만개에 맞먹을 수도 있다." --- 위 기사의 일부입니다. (그 원문을 제대로 번역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뉴욕 타임즈의 기사를 인용하였다 하니, 그 신빙성을 무작정 무시하기도 좀 그런, 암튼 이보다 더 살벌할 수 없는겁니다. 빙하기 현재와 같은 속도로 녹아나가면 장기적으로는 도시들이 물에 잠기고 이재민의 수도 어마무시할 것이며, 심지어 농업의 붕괴도 배제할 수 없다라는 내용도 있네요. 반면!
"대다수 방송과 신문은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고 보도하지만 사실 빙하는 4백년 전부터 녹고 있었고, … 지구 해수면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도 거짓이며 해수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 이제 지구온난화론은 학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종교적 맹신과 같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 밥 루츠,「빈카운터스」중 pp71~73, 비즈니스북스, 2012.
해당 책 속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밥 루츠 정도 되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내고 쓴 책에 적어놓은 내용이라면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었겠느냐란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는, 더군다나 이같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 제기를 '좌파'가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라 비판하는 이가 있기도 하죠. 사실, --- 저 역시, ('좌파 VS 우파'와 같은 구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적지 않게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상품'의 sales와 별반 다름없다라 생각하고 있는 측에 속합니다. 그러하기에,
「소유의 종말」이란 책을 통해, 정말 소름끼치는 논리로 (당시엔 미래였던 지금의) 현재를 예상했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의, 지구 환경에 대한 논리가 너무도 궁금했었었기에, 이 책을 펼쳐들었었습니다... 만,
기후변화가 그토록 무서운 것은 그로 인해 지구의 수권(水圈)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수권은 지구상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지구는 물이 많은 행성이다. 우리의 생태계는 구름을 통해 지구를 도는 물의 순환 주기에 맞춰 영겁에 걸쳐 진화해 왔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지구의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공기의 수분 보유량은 약 7퍼센트 증가해 구름에 보다 많은 물이 집중되고 보다 극단적인 강수 사건이 발생한다. 겨울의 극심한 한파와 초대형 폭설, 봄의 파괴적인 홍수, 여름의 장기적인 가뭄과 끔찍한 산불, 치명적인 3·4·5등급의 허리케인 등이 모두 물과 관련된 사건이며, 실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손실과 생태계 파괴가 그런 사건의 결과이다. (p14)
이 책을 통틀어, 지구온난화과 대체 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이외에 기술된 부분이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도) 위 수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 제주도에서만 잡히던 방어가 동해안에서도 잡힌다라든가, (즉흥적인 예를 들자면) 사과가 수원에서도 재배된다라는 등의 단편적인 사실들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게 하는 건 적절한 설명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동해안에서 방어가 잡히고 수원에서 사과를 따먹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게 대체 우리 생활에 뭔 문제를 일으킵니까. 정말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진보 진영은 구체적으로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 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를 읽기보다 대중에게 강의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려고만 한 것 같다."
- 강수돌 외,「리얼진보」중 p331, 레디앙, 2010.
일단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당면한 중대 문제다! 라는 시각을 전제하고, 그를 막기 위한 여러 제안들과 세계 각국의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 또한, 위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상당히 과장된 대비이기는 합니다만,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 6,500만년 전, 소행성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렸다. 오늘날 인류는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매우 잘 버티고 있는 생물들도 있다. 가령 들쥐와 바퀴벌레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끈질긴 생명체들은 아마도 핵무기로 인한 아마겟돈의 폐허의 바닥을 헤치고 기어 나올 공산이 크다. 자신들의 유전자를 퍼뜨릴 능력과 준비를 갖춘 상태로. 어쩌면 지금부터 6,500만 년 후 지능 높은 쥐들은 인류가 일으킨 대량 살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볼지도 모른다."
- 유발 하라리, 위의 책 p497
이 책 속의 '걱정'은 위와 같은 지나치게 낙관적/시니컬한 견해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죠. 저는 이 책을 펼치며, --- "숫자는 모든 것을 말해 준다"(p96)라는 그의 주장처럼, 지구온난화에 대한 저자의, 보다 자세하고 설득력있는 설명을 기대했었습니다만, 그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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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은 어떤 식으로 부상하는가? 우리가 그 발생 방식을 안다면,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그린 뉴딜을 구현할 로드맵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p25)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적어도 현재와 같은 환경 파괴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대전제에는 동의하기에 --- 이와 같은 환경파괴를 멈출 수 있는 방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도출해 내는 저자의 접근법은 예의, 그의 저술이 왜 읽어볼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주요한 경제적 변혁은 모두 공통분모를 가진다. 경제적 변혁이 발생하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기본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 그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해 경제 시스템이 하나의 완전체로 돌아가도록 만든다.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와 동력원, 그리고 운송 메커니즘이 바로 그 세 가지 요소다. … 이 세 가지 운영 체계는 함께 경제학자들이 범용 기술 플랫폼(사회 전반적 인프라)이라고 칭하는 것을 구성한다. 새로운 커뉴니케이션과 에너지와 운송 인프라는 또한 사회의 시간적 및 공간적 방향과 비즈니스 모델, 통치 유형,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 거주지, 내러티브 정체성 등을 변화시킨다. (p26)
아무래도 제가 읽었었던「소유의 종말」이외에도,「3차 산업혁명」,「한계비용 제로 사회」과 같은 저자의 이전 저술들들 미리 읽어보고 이 책을 펼친다면 훨씬 더 쉽게 책 속 내용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 세상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다라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는, 그러나 '왜'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라는 아쉬움을 지워낼 수가 없었던 이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본다면 아마도,
최근까지 탄소 제로 녹색 경제로의 전환을 주도한 것은 5억 800만 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EU였다. 이어서 근래 몇 년 사이에 14억 명에 가까운 인구를 보유한 중국이 탄소 후 시대로의 전환 계획을 앞세우며 요란하게 등장했다. 그리고 이제 인구 3억 2700만 명의 미국이 그 대열에 합류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p237)
'유럽은 선도적으로 잘하고 있다. 중국의 발전 속도는 무섭다. 미국은 이제까지는 좀 한심했었다' 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탓도 많겠지만 예의 중국으로부터의 미세먼지에 피해받는 정도가 적지않은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매우 후하다라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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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 유발 하라리,「사피엔스」중 p342, 김영사, 2015.
이 감상문의 시작에 적었던 인용문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터전으로 주신 이 지구를, 우리 인류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가꾸어 가는 것 역시,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사실이, 저자 제러미 리프킨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AT ANY given summit on climate change, it is never long before some politician declares how “urgent” or “vital” or “imperative” it is to stop the planet from overheating. And yet few governments are willing to tackle the problem by themselves. In practice, what these impassioned speakers usually mean is that it is urgent—no, vital!—no, imperative!—for all countries but their own to get to grips with climate change."
- "A version of the 'prisoner's dilemma' may suggest ways to break through the Kyoto", The Economist, Sep. 27th, 2007.
나만 빼고가 아닌, 우리 인류 전체의 '의지'가 한데 모여질 때라야, 저자의 그리고 우리의 바람(願)이 이루어질 수 있겠죠. 어쨌든, 그러한 바람이 헛되다거나 불가능한 건 결코 아니라는 점! 이것이 바로 --- 우리가 아직은 '노아의 방주 Version 2'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이유일 겁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이제 복원의 시대(Age of Resilience)이다. 그린 뉴딜 인프라는 복원의 시대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