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한 마디로 '유한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 우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경제학은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보니 경제학 역시 삶의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 넓게 보면 경제학은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의 삶 전체를 다루는 학문일 수도 있다.(pp6~7)
경제학을 소개하는 그 어느 책을 펼쳐도, 경제학에 대한 기본적인 위 규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경제학을 공부한 시간만 8년인 제가 생각하기에, 경제학이 가장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역시, 단연코 "경제학이 광범위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보는 관점"의 스탠스에 서 있을 때이지요.
"한국 사회를 행복한 지옥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다. 결코 누군가가 몰래 만들어놓은 함정에 우리가 억지로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냥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 허태균,「어쩌다 한국인」중 p28, 중앙books, 2015.
사회적 진화의 결과이건, 필연이라 믿어지는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결과이건, 현재의 모습은 과거 누군가들의 선택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내가 원한 현재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라 아무리 주장해도, 사회 구성원들의 수많은 선택들이 빚어낸 물리적·화학적 결과물인 현재를 거부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 수많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선택한 결과다. 도시 한가운데 고층 빌딩이 모여 있는 것도, 오늘 주가가 오른 것도, 출퇴근 시간마다 도로가 꽉 막히는 것도 모두 그렇다.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p49)
이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바꾸고바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현상으로서의 현재를 이해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필요하겠죠. 그러하기에 --- 생업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경제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라 생각하는 겁니다.
……………………………………………………………………
종원군이 사회과목으로 경제를 선택했기에, 그의 시험 준비를 도와주었더랬습니다. 고등학교 수준의 경제이론이 어려워봐야 얼마나!란 약간은 건방진 자세로 참고서를 펼쳤었거늘, 이건 뭐 --- 경제학과에서 경제원론을 배울 필요조차 없을만큼 기술적(technical)인 내용들로 가득한 겁니다. 정부가 보조금을 주면, 관세를 올리면 등등. 이딴 내용의 교과서로 아이들에게 '경제학에의 흥미'를 자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정말 그같은 내용들이 고등학교 정규교육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라 생각했었던 것인지 은근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문열의 표현을 빌자면, 지금의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는 "승려가 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승려를 위해 있는 것 같은 느낌"만을 자아낸다고나 할까요?
·
·
·
정확히 몇째 주 수요일에 집 앞 슈퍼가 문을 닫아야 하는지 외우지 못하는 저로서는, 퇴근 길에 그 슈퍼에 들러 맥주나 막걸리를 사들고 집에 가려는 단순한 욕망을 실현해낼 수 없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슈퍼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맥주나 막걸리를 팔고 있는 길 건너편의 편의점엘 들러야 하지요. 동네 상권을 살리겠다는 의도로 정부가 강제하는 대형마트 휴무는 저 개인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피할 수 있는 '지출의 증가/효용의 감소'를 초래한 셈입니다. (근데 보니 이게 저 개인에게만 그러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골목 상권은 존속되어야 하며,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 역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영역 확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라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며, 사라지는 골목 상권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하지요.
경제학자들은 마을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진실하지 않다고 믿는다. 동네 가게가 정말 좋다면 당연히 마트에 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입과 머리로만 하는 고백일 뿐이다. 행동이 없는 고백을 믿은 사람은 없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현시 선호 이론 theory of revealed preference'이라는 근사한 이름표를 붙였다. 한마디로 진심은 행동을 통해서만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p100)
더 나은 세상을 위함이라 말할 정책 입안자들의 순수함을 폄훼하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 "풀을 먹이는 소에게 옥수수를 먹여서 / 뚱뚱해진 소들로 햄버거를 만들어 / 저 멀리 잠비아에선 옥수수가 없어 죽어가 / 잠깐 생각하다가 오늘 저녁은 햄버거"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 순수함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을 자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만큼은 객관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동네 가게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동네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동네 가게에서 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동네 가게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 동네 가게가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면 그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은 그 가게에서 사야 한다. 그럼에도 대형 마트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다면 구멍가게들이 사라지는 걸 받아들여야만 한다.(pp101~102)
이념과 행동 간의 괴리가 만들어 내는 역겨움을 저는 얼마 전 한 사람으로부터 아주 실컷 보았었습니다. --- 골목 상권의 존속이 저의 효용을 감소시키면서까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사회적 관점에서 저 일개인의 효용감소는 당연한 것이 되겠습니다만, 일종의 프로파간다로서 주장되는 '골목 상권의 유지'가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효용을 감소시키는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그와 같은 규제는 철회되어야 할 겁니다.
·
·
·
재활용 종이컵이 일반 종이컵에 비해 더 비쌈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재활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비용과 편익을 계산해서 편익이 나는 일을 선택한다'라는 의미에서의)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겠으나, '선한' 행동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지구 환경의 보호'라는 변인이 나의 효용 함수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재활용 종이컵을 구매하는 것이 반드시 '비합리적'인 행동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듯,
"그런 믿음은 잘못된 것일뿐더러 사실과 정반대다. 종이를 재활용하자는 주장에는 분명 타당한 구석이 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나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에서 종이를 만드는 목재 대부분은 애초에 종이를 만들려고 기른 나무에서 얻는다. 하지만 재활용은 펄프재 수요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일단 수요곡선이 내리막을 그리면 가격은 내리고 수량은 줄어든다. 나무를 기르는 데 적합했던 땅은 가격이 바뀌면서 이제 더는 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가격 차이만큼의 면적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채식주의자가 늘면 소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활용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무가 줄어든다."
- 데이비드 프리드먼,「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중 p243, 옥당, 2015.
사회적으로 '옳은 것'에 대한 의견 일치도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사회적으로 '옳은' 어떤 행동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할 때, 그 '옳다는 믿음'이 과연 본래의 의도에 맞는 결과를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확신 또한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 선한 행동이 의도치 않은 방향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듯, '그릇된 행동'이라는 사회의 판단 또한,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오류인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이 책에도 위와 유사한 사례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당시의 베트남에서 전염병의 예방을 위해 쥐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주겠다는 정책을 시행했다 합니다. 쥐를 잡았다는 증거로는 쥐 꼬리만 제시하면 되었었죠. 그러자,
얼마 후 하노이 시내에는 꼬리가 잘린 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쥐를 잡은 사람들이 꼬리만 잘라 내고 쥐를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살아 돌아간 쥐가 번식하여 개체 수가 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책의 연쇄 반응이다. 경제학자는 이런 변수를 찾아내고 분석하고 예측해야 한다. 그게 진짜 경제학이다.(p276)
선한 의도의 정책이 항상 선한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정책의 결과이지, 그 정책의 의도가 아니듯, 선한 의도의 정책이 사회적 효용의 감소를 자아낸다면, 그 의도의 선함에 더 이상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해당 정책을 과감히 수정 혹은 철회할 수 있어야 하겠죠.
……………………………………………………………………
"어떤 중요한 목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까?"
- 조나단 B. 와이트,「애덤 스미스 구하기」중, 생각의 나무, 2007.
대부분의 입문서가 경제 이론의 소개를 통한 경제 현상의 이해를 돕고 있다면, 이 책「경제학자의 생각법」은 제목 그대로, 우리의 사회를 바라보는 사고 방식에 경제학의 논리를 접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학을 생업의 도구로 삼지 않는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경제학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라, 또한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쳐져야 하는 내용의 경제학을 담고 있다라 감히 자신합니다. 그러하기에, --- 이 책의 내용과 전혀 맞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너무나 천박하게 유도할 염려가 있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돈 버는 생각 습관"이라는 소개글이 책의 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건, 이 책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라는 점에서 참으로 아쉽습니다.
·
·
·
우리 앞에 놓인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데 전문적인 경제학 지식은 필요 없다. 다만 경제학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풀어 가는 방식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보는 순간 경제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기술로 바뀐다.(p7)
물론, 더 많은 소득의 창출을 위해 경제(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합니다만, 제가 사랑하는 학문인 경제학이 우리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것이 오로지 더 많은 소득의 창출만이 아닌, '더 나은 삶'의 향유를 위해 쓰여지기를 바라(願)기에,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의 의미, 최저 임금제의 문제점 등에 대한 저자의 관점 역시, 별다른 경제학적 사전 지식을 요하지 않는 수준으로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이 혁신성장의 밑바탕이자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폴 로머 교수의 견해에 깊이 공감한다"라는 희대의 어이 없는 발언을 하셨던 분께서는 꼭, 이 책을 읽어보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 경제학 입문서로 추천드리는 책들 :「한 번은 경제공부」,「데이비드 프리드먼 교수의 경제학 강의」,「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 보다 깊숙한 '경제학'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불편한 경제학」,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