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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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 대해서는 정작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그럼에도 'Economic Dynamics'라 불리우는 과목은 무지하게 길고도 어려운 수학을 가르치고는, 이러한 이유로/과정을 통해 특정 결과가 도출된/될 것이다라 말하지요. 문제는!!! --- 그렇게나 복잡한 과정에 대해서는 사람 질릴 정도의 열변을 토하면서도, 그 과정의 시작점 initial point에 대해서는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건 그냥 "주어졌다"일 뿐. 하지만!!!


일 개인의 일생에 있어 우리가 어떠한 조건을 지닌 가정에서 태어났느냐는 실로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됩니다. 'Economic Dynamics'가 알려주었던 그 '과정'이란 것이 결국 '개천에선 용날 수 없어요'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선 일 개인에게 주어지는 탄생의 initial point - 부모의 소득수준, 교육수준, 거주 지역 등등 - 는 이내 그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일 것인가를 거의 결정지어버리고 말지요. 여기에 더해! --- 그/그녀의 20대가 가장 '꽃다운 시절'이라 한다면, 그/그녀 20대가 어떠한 시대상을 지닌 시절로 주어졌느냐가 그/그녀의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 역시, 탄생의 initial point에 못지않는 크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시대상이란 것이, 그 시절 우리나라는 장충체육관 안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나라였다라는 일상의 면면이었건, 국민 거의 모두가 가난했다라는 경제적 측면이었건, 그 시절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권력자/권력의 속성이 어떠했던가와 같은 시스템의 면에서였건 간, 모두 동일한 크기로 작용되는 건 매 한가지이지요.


자신이 운동권이 되고 안되는 것이 전적으로 우연에 달려 있었다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한때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 운동권에 몸담고 지낸 십수년의 기간에 비해 한달과 반년은 얼마나 짧은가. 그 짧은 동안 일어난 몇가지 단편적인 사건들의 우연성이 그 후의 기나긴 청장년의 삶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에 그는 당황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모든 인생이 그렇지 않나 싶었다. 하룻밤의 방황이 창녀와 부랑아를 만들고, 한번 발각된 도둑질이 전과로 점철된 인생을 부른다. 편재하는 우연이 새처럼 날아들면 그 순간 인생은 단박에 뒤틀린다.(p390)

​'Economic Dynamics'가 initial point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못했던 이유가, 그 모든 것이 결국엔 우연이라 말해지기 때문이라 생각해버리면 --- 일 개인의 삶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지어버리는 두 가지의 우연, 개인적 initial point와 '꽃다운 시절'의 시대상, 이 두 가지를 '그 날의 광주'로 한데 결합시켜 놓은 것이, 바로 이 가슴 아픈 소설 「레가토」입니다. 왜 이 작품을 제가 가슴 아픈 소설로 읽어낼 수 밖에 없었을까요? 

신의 끝 무렵으로부터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전통연구회'라는 운동권 써클 출신 멤버들의 20대가 시작되는 그 때의 이야기이지요. "박통만 죽으면 다 잘될 줄  알았"(p187)던 그들의 20대에, 박통이 죽었음에도 20대의 그들에게 주어진 세상은 여전히 "그냥... 모든 게 엉망진창이고... 세상이 다... 세상이 다 뒤죽박죽"(p81)이었더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 "'카타콤'이라 불리던 쾨쾨한 반지하 써클룸에서 지냈던, 사반세기도 더 지난 청춘의 옛시절"(pp29-30)이란 게 , 훗날 결국 "돌아보면 다 같이 소금기둥이 될 뿐"(p391)로만 끝내 기억되는 시절이 되고야 맙니다. 이 소설이 가슴 아프게 읽혀진 그 모든 것의 이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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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에서 바지를 벗고 속옷을 내릴 때 그녀를 괴롭힌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지난주에 목욕을 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후회였다.(p128)

어느 특정 순간이 '현재'일 때, 우리의 인식은 미처 이 현재가 초래할 훗날을 예측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우연들의 시작이었던 바로 그 순간, 오정연을 지배하고 있었던 후회란 게 고작 목욕을 하지 않았다라는 것에 독자 역시 '어처구니없다'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나, 이 작품을 읽는 당신이, 당신이 속한 이 나라는 --- 그 독재자의 향수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던 이를 대통령으로 뽑았었으며, 기어이! 그 독재자의 딸마저 다시 이 나라의 지도자로 뽑아주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면, 당신의 '어처구니없다'란 느낌은 소설 속 오정연을 향한 비난이 아닌, 이 공동체의 일원인 (저도 포함된) 당신 스스로를 향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현재'가 초래하는 '훗날'을 예측하지 못한다라는 인간의 한계는 거의 예외 없이 '후회'라는 감정을 안겨주지요. 또한 그 후회는 반사적으로 '과거에 대한 가정(假定)'1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의 허물을 덮어버리기 위해 우리는 내 허물을 알고 있는 누군가를 공격/매도하거나2, 그 반대로 타인의 공감을 찾아내곤 하거늘, 그 두 가지는 또한! 거의 모든 '우리들'에게 자리 잡고 있기에, 너무도 쉽게 찾아지지요. --- "정연은 얼떨결에 충장로 쪽 시위 군중에 섞여들었다"(p321)라는 장면에서, 또 하나의 우연을 발생3시킨 작가를 욕하면서도 이내!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결단이 항상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내려진다는 법은 없다. 날마다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나 접했던 말들이 어느샌가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훗날 돌이켜봐도 무엇 하나를 콕 집어 원인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4

이와 같은, 그럴 듯한 이유를 기어이 찾아내,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란 면책(免責)을 구해내곤 합니다. 당신을 향한 칼날이 아닌, 오직 저만을 겨누고 있는 칼날이라 해도 부인해낼 수 없는 사실이지요. 이 소설이 저를 가슴 아프게 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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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 앞에, 닭다리는 네 개뿐인 상황이 등장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야기 하지요. "유전공학과 애들을 고문해서 닭과 지네를 교배시키게 하자는 얘기, 다리 갯수만 많고 살은 별로 없으면 어쩌느냐는 얘기, 차라리 닭과 코끼리를 교배해 다리 크기를 키우자는 얘기"(p231)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강철같은 대오로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나서자"(p48)라 했던 그들의 결론은 결국, "차라리 인간을 세뇌해 닭다리를 싫어하게 만들자는 얘기, 갈등의 씨앗인 닭을 멸종시키자는 얘기"(p231)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독재가, 일 개인에 의해 자행되는 독재가 왜 무서운 것일까요? 그건 --- "자유의 전통을 수호한다면서 이토록 후배의 자유를 유린해도 좋은지"(p50)과 같은 자기 모순의 위험성 때문이지요. 무조건 자신은 옳은, 그러하기에 그에 대한 판단의 여지를 허(許)하지 않는/ 여타의 선택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독점이 바로 독재가 내뿜는 가장 커다란 독인 겁니다.


우리의 소원은 '미제타도'이거나 '노동해방'임을 또 다시 주입시키던 선배들. 그들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거나 독립적 자아로 사고한 적이 있었을까? 스스로 생각하기 전에 먼저 노래하고 행동해야 사람 취급을 하며 자신들의 적을 닮아버린 군국주의자들이 판치던 대학 운동권이 내겐 별로 설득력 없었다.5

유신 치하의 학생 운동이 "이런저런 전제와 유보와 제한들을 무시하고 간명하게 양자택일만을 요구하는 질문들의 폭력성"(p200)을 지녔던 당시의 학생 운동이, 그리하여 "무서워요. 무서운 게 죄예요? 무서워서 무섭다고 말한 게 죄예요?"(p64)란 질문에 가차없이 '그건 죄!'라 답했던 당시의 교조적이었던 학생 운동은!  


"나는 그런 것들보다는 그때 연탄불을 잘 타고 있었는지, …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뭇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6

란 일 개인의 고민에 대해,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실성한 게 아닌 다음에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로 피 같은 젊음을 소진해선 안되지"(p140)라 건방진 재단(裁斷)을 해버렸던 그 시절 대한민국의 학생 운동은, 그 학생 운동을 이끌던 이들이, "누구나 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란 사실을 철저히 무시하며, 타인의 '현재'에 대해 역시나 그토록 무자비한 단죄를 행하였던 그들이!!!


"끊는 것은 소리내지만 식는 것은 소리 없다."(p37)


이런 식으로 소리 없이 변신하여, 고작 '참으로 요소요소가 후진'7 대한민국의 기틀을 잡아놓은 그들이, 마치 그건 나의 탓이 아니란 투로 내뱉는 말이란 게8 --- "정치인이 정계에서 물러나 청소부가 되고 교사가 되고 주부가 될 수 없는 후진성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한낱 농부가 되려 했던 전직 대통령을 깎아지른 자살의 벼랑으로 내모는 참혹성이 우리 정치의 운명이다"(p36)라는 게, 다시 한 번 더, 이 소설을 가슴 아프게 읽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9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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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10

​'그 날의 광주'를 이야기하며, 작가 한강은 위처럼 '인간의 본질'에 관해 물었다라 생각합니다. 반면, 작가 신경숙은 「외딴 방」을 통해 두 명의 독재자가 지배했던 시절의 대한민국을 철저하게 일 개인의 시선에서 그려내었었지요. --- 이 작품 「레가토」를 통해 작가 권여선은 유신 하의 대한민국과, '그 날의 광주'를 살고 있었던 사람들 중 "살아야 할 이유들이 곧 싸워야 할 이유였다"(p324)라 생각했던 과거의 누군가들,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2012년의 대한민국을 향해,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p338)라 물었었다라 전 생각합니다.


​"앞선 음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다음 음은 이미 시작되는, 그렇게 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하는 '레가토'주법 … 나는 이 소설이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시간이 겹쳐 뭔가를 만들어내는 레가토 독법으로 읽히기를 소망하면서 썼다."(p429, '작가의 말' 중)

이 작품이 발표된 이듬 해인 2013년 2월. 그토록 많은 이들의 '꽃다운 시절'과 개인적 initial point마저 바꾸어 놓았던 그의 딸, 한 때 '영애(令愛)'라 불리웠던 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지요. 자신의 아버지가 지닌 과오에 대해 단 한 번도 솔직한 시인을 한 적 없는 걸로 기억되는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은, 그와 동일한 시각으로 일본에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면죄를 선사합니다. --- 작가 권여선이 이 작품을 집필하며 가졌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으며11, '다듬는다'란 작업을 지금은 할 수 조차 없는 이 감상문은 결국, 그때의 제 한 표에 대한 가슴 아픈 반성문일 수 밖에 없네요.

※ 이 작품과 더불어 아니 읽어볼 수 없을 작품들 :소년이 온다」 · 「외딴방」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그때 정연이 그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남들에게 떠벌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녀를 강제로 범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그가 잡혀가기까지 영겁처럼 길었떤 그해 4월 동안 그들은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했을까. 그녀에게서 쪽지를 받은 날 그들이 만나서 얘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녀는 그를 용서했을까."(pp202-203)
  2. "그의 마음속엔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수치감보다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나 명예가 실추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다면 절대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일은 그렇게 처리되어야 한다. 입맞춤이나 구타를 당했다는 얘기는 쉽게 털어놓을 수 있지만, 몸을 버렸다는, 완전히 당했다는 얘기를 결코 쉽사리 내뱉을 수 없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 대한 어이없는 혐오 속에서도 인하는 그쪽으로 치달려가는 자신을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p76)
  3.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를 보자라면, 이 소설은 등장인물간의 관계에서 상당히 많은 우연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소설에서, 그러한 우연의 남발을 맘에 들지 않는다,라 표현했었던 저이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만큼은 그러한 남발에 대해 그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그게 이 소설의 힘!일지도 모르겠네요.
  4. 야마다 무네키 作, 「백년법(하권)」 p62, 애플북스 刊, 2014.
  5. 목수정 著,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p16, 레디앙 刊, 2008.
  6. 신경숙 作, 「외딴 방」 p245, 문학동네 刊, 2014.
  7. 제 이웃분의 블로그로부터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헬조선'같은 기분 나쁜 어감의 단어보다는 훨씬 더 맘에 들어요.
  8. 물론, 그 과정 속에 저 개인의 허물스런 기여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사회를 shaping할 수 있는 능력이 제겐 없지만, shaping 당하는 자에게도 여전히 그 결과에의 책임은 무겁게 지워지지요.
  9. 하지만, 같은 이유로 작가 황석영의 「해질 무렵」엔 화가 났지요.
  10. 한강 作 「소년이 온다」 p134, 창비 刊, 2014.
  11.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걸 작가는 예감이라도 했던 것일까요? <작가의 말>을 작가 권여선은 "오늘은 술을 먹고 싶다"(p431)로 마무지 짓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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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 상 - 제6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수상작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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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1


감성적으로는 얼마든지/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만, 엄밀하게 보자면 상황에 따라선 틀렸다라 말해질 수도 있는/해야할 문장이라 생각합니다. --- 'A를 선택했던 것에 대한 후회'2라면 '살면서 한 일'에 대한 후회의 일례가 될 수도, 그러하기에 동시에 발생되는 '(그때 취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지인) B를 선택하지 않은 것3'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이 삶의 석양 즈음, 가슴에 한(恨)으로 남게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때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했었어야 했던거야'라는 류의 후회라면, 이건 '(사랑고백을) 하지 않은 것'에의 후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시 분명 그러한 고백을 하는 선택(A)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엄연히 '사랑고백을 하지 않겠다(complement of A)'라는 특정의 선택을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는 후회는 사항에 따라, 또한 관점에 따라 많은 부분 없애버릴 수 있는/존재하지 않는 후회일 수 있는 겁니다. 뭐, 암튼!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4

​우리는, 나 스스로가 만들어 온 이 '한 편의 이야기'를 끝내기에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해소하기엔, 일반적으로 주어진 80년의 시간이 길지는 않다라 생각합니다. 그 누구에게나 죽음이란 것이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인 것만큼은 정설5이라 받아들여지지요. 자! 이런 우리에게,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헤매었던 불로초가 현대의 의학기술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해보죠. 이 시술6​을 받으면 그 시점부터 신체의 노화는 중지됩니다. 즉, 20세에 HAVI를 받는다면 평생 20세의 신체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 좀 더 연륜이 쌓인 시점인 30대 초반에 받은 사람은 그 상태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죠. --- 시술을 받을 것인가, 받는다면 언제 받을 것7이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맡겨져 있습니다. 자! 오래 생각하지 말고, 만약 당신이라면 이 시술을 받으시겠습니까? 당신의 가족에게도 이 시술을 받으라 권유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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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ong run, we all die."

'In the long run'을 하나의 숙어로 이해해 '우린 결국 죽잖아'로 해석하건, 이 말을 한 케인즈의 뜻대로 '장기(長期)에선, 우린 다 죽고 없어지는데?'쯤으로 해석하건 --- '책 읽는다, 맥주 마신다, 담배 핀다'라는 세 가지 행위를 적절히 섞어 하고 있는 (주말을 기다리는 거의 유일한 이유가 되는) 시간은 정말 즐겁습니다. 민폐끼치지 않겠다란 생각만 없다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열두 시간동안 얼마든지 (밥 따윈 필요도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8 허나!!! '책 읽는다'와 '맥주 마신다', 그리고 '담배 핀다'라는 세 가지 행위를 별개로 나누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의 열두 시간을 삼등분하여 그 네 시간동안 한 가지만 하여야 한다면 그게 즐거움이 될 수 없을 뿐 더러, 오히려 고통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담배만 핀다 - 맥주만 마신다 - 책만 읽는다'의 순으로 고통이 되겠지요.) 이처럼,

​살면서 취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와 취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가 그 경계를 알 수 없이 섞여 있기에 우리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쉬운 것일 수 있으며,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이 함께 존재하기에 우리의 삶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자! 여기까지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이것에의 동의 여부를 떠나 ---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저의 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투병 중이신 장인어르신과도 언젠간 헤어져야 한다라는 피해낼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앞서 읽었던 책 「해피엔딩」이 '죽음이 초래하는 아쉬움'9을 이야기 해주었다라면, 이 책 「백년법」은 그렇다면 '죽음이란 걸 없애면10 아쉬움이 사라질 것 같아? 혹 아쉬움 대신 다른 것이 생겨나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을까?'란 질문을 던져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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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로화(不老化) 기술이 보급된 세계. 하지만 모든 인간이 영원히 살아서는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불로화 시술을 받은 이는 법으로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죽어야 한다."(상권, p5)

작가 야마다 무네키가 밝히고 있는 이 작품의 기본 설정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입(inflow)만 있고 유출(outflow)이 없는 그 어떤 물체/상황'도 생각해낼 수 없기에, '법으로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죽어야 한다'라는 착상 자체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 한 사람의 일생이 최소 120년11에서 어쩌면 180살12까지, 그것도 육체의 변화 없이 지속될 수 있다면13 대체 어떤 부작용들이 생겨나게 될까요? 작가 야마다 무네키가 보여주고 있는 발생가능한 상황의 예시는 약간의 소름을 주었기도, 혹은 그 디테일에 놀라움을 받았기도, 또는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재수생'이란 영어 단어가 없듯이) 그런 상황 자체가 없기에 그런 상황을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가 없을 수도 있으며, 또는 100% 충족되기에 그를 표현하는 단어가 없을 수도 듯이14, 거의 모든 사람들15이 '청춘의 육체'를 하고 있기에 정작 그 '청춘'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게 될 것이며, 또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청춘이다보니 사회는 보다 유쾌16해지겠죠. 물론, 그와 동시에 '죽음'이란 단어 역시 ('청춘'이란 단어가 사라지게 된 이유와는 반대의 이유로) 자취가 희미17해집니다. "겉모습으로 나이를 구분할 수 없으니18, 어느샌가 연상이나 연하라는 개념도 사라"(상권, pp72-73)지게 되었으며, 겉모습은 20대이나 실제 나이는 98세인 누군가는 "연애를 못하게 됐다. … 두근거림이 없었다. 상대를 생각하며 가슴이 타들어가는 경험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하지 못했다"(상권, p32)라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 '노쇠'라는 단어의 사라짐은 기어이 가족 관계 자체까지 변화19시켜버리고 말지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은 육체로 사는 남녀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건 당연한 일"(상권, p87)이 되었으며, 심지어는 "겉보기에는 대학 여자 동기들과 별다를 바 없었다. 어디를 봐도 나와 비슷한 또래"(상권, p247)인 엄마에게 연애감정을 품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르게 됩니다. 조금 더 막장으로 치닫게 되면 드디어! --- "구애를 하려고 말을 건 여자가 실은 자신의 할머니였다는 일 …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후반 일본공화국의 현실"(상권, p247)까지 등장하지요. 하지만/물론!

'불로'의 폐해가 이처럼 사뭇 역겨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닙니다. "노인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현대에 암은 희귀 질병이 되었다"(상권, p337)라거나, "HAVI를 받은 이의 올림픽 동종경기 참가는 두 번까지라는 규정"(상권, p56)처럼 다분히 작가적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예측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도시 구조와 생활용품도 사람들이 HAVI를 받은 걸 전제로 만들어졌 … 노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세상"(상권, p72)처럼 뭔가 시사적인 뉘앙스의 구절도 있지요. 어쨌든, '체험한 시대'가 모두 다른, 하지만 동일한 신체적 외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섞여 살다 보니, 예의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란 것이 사라지게 된다라는 것에 대해 --- HAVI 시술로 지니게 된 만인의 젊음이란 것이 어쩌면 "맥주 맛이 나는 껌"(상권, p204)과도 같지 않을까란 작가의 의도가 사뭇 충격적이기는 하나, 그것에 아니 동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뭐, 그래도 여기까지는 겉으로 드러나 보여지는 현상에서의 폐해들입니다. ​더 무서운 건,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 그러니까 사람들의 잠재 의식 속에서 점점 더 커다란 자리를 차지해가는 인식의 변화인 거겠죠.

​"건물은 낡아도 인간은 늙지 않는다"(상권, p288)란 이 작품 속 설정은, 건강 자체가 (삶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세상을 향해, "내가 죽음 또한 결정할 수 있을 때에만 삶을 선택한 결정은 가치 있어! … 삶이란 하나의 제안이고 우리는 그걸 거부할 수도 있는거야"20라 항변했던 모리츠가 이르렀던 지점으로, 일본의 국민들을 몰아 갑니다. ​--- "지금 생활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어요? … 그런 삶이 무간지옥과 뭐가 다르죠? … 영원히 산다는 게 그렇게 좋은 일 같지는 않아요"(상권, p198)을 시작으로, "죽음의 상실은 삶의 상실이나 다름 없"(상권, p302)다는 걸 깨닫게 되는 단계를 거쳐, 결국 "죽음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좇는다"(상권,p308)라는 상황에까지 치닫게 되지요.

"무한한 시간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복잡한 생물"(상권, p250)인 인간이, 그러하기에 심지언 "죽어야 해"(상권, p250)라 말해지는 인간에게 막상 불사(不死)의 능력이 주어지자, ​"납덩이 같은 권태"(상권, p284)가 사회를 뒤덮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영원한 삶이란 죽음과 동일한 이미지"(하권, p120)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죽이거나, 혹은 자살을 하는 상황21이 발생된 거지요. 자,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의 진짜 재미가 시작된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전까지의 설정들도 충분히 흥미로웠으나, 그 시점(視點)은 엄연히 피지배계층, 책 속의 용어로는 '국민' 혹은 '민중'들의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정치인'나 '관료'의 시점(視點)에서 바라보는 이 상황은 어떠했을까요?(정치인의 행태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 모습 그대로22로 역시나 그려지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은 '관료'의 대응방식과 관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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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관료기구의 대의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상권, p61)임에도 불구하고! 유사 아키히토를 필두로 하는 '생존제한법 특별준비실'이란 곳의 업무는 "국민에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상권, p61)이었습니다. '백년법'의 시행이 코 앞으로 다가오자, 국민들 사이엔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내키는 대로 살겠다"(상권, p183)란 막무가내식 행태가 만연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사 아키히토의 업무는 HAVI 시술을 받은 지 100년이 되는 해엔 반드시 죽어야 한다라는 내용을 명시한 '백년법'의 시행을 지켜내기 위한 제반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었지요. '백년법'의 시행 기일을 앞두고, 여론은 계획대로의 시행과 중단으로 나뉘게 되고, 우유부단한 총리는 결국 그 시행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기로 합니다. '백년법'이 실제 집행되면, 자신 역시 죽어야만 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 일부는 예의 "선택은 국민의 몫이야.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게 민주주의인데"(상권, p177)라는 변명으로 국민투표의 결과는 시행 반대로 이끌어 내려 노력하지요. 하지만!

"국민의 선택이 늘 옳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걸 알면서 굳이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둘 수는 없죠.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고요."(상권, p177)

"민중들은 금방 잊어버립니다"(상권, p98)라거나, "대책 없이 어리석은 국민들23 … 그게 민중의 본질이라면 어쩔 수 없다"(상권, p214)라 생각하는 관료 유사 아키히토24는 국민 투표 결과, '백년법' 시행이 잠정 유예되자 민주주의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 저의 사고(思考)를 움직여 준 첫 번째 관점이 등장하지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뛰어난 지도자에 의한 독재입니다. … HAVI가 존재하는 현대에는 뛰어난 지도자가 오래도록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상권, pp104-105) …… "민중들에게 맡겨서는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없어. … 지금 이 공화국에 필요한 건 시대를 움직일 역량이 있는 유일무이한 지도자​야."(상권, p216)

알고 보면 플라톤도 독재를 가장 이상적인 지배 체제로 주장했었던 것이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리광효라는 정치인은 소위 '(과오를 훨씬 뛰어넘는 공이 있다라는 평가로 인해) 존경받는 독재자'로 실재하였었으며, 심지어! 김일성이나 이승만 전 대통령 같은 독재자들도 초단기적으로는 '시대를 움직였던' 지도자로 인식될 여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이처럼 소설은 전체적으로 보아 비교적 초반부에 스스로의 결말을 미리25 보여주고 있습니다. --- "과연 선의(善意)의 독재자는 가능한가, 선의의 독재자를 우리가 원하여도 되는 것인가?"

유사 아키히토가 소설 전반에 걸쳐 겉으로 드러나는 관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라면, 또 한 명의 관료는 이야기의 뒷편에서 이 소설이 전개되는 스토리의 뼈대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읽는 순간에도 그러했었고, 소설 전체를 다 읽고난 후에는 더더욱 찌릿!하게 다가왔던, 이 작품의 핵심 동인(動因)이라 생각하는 구절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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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의 내용을 담은 예언이 가장 주목받는 건 참사를 미연에 방지했을 때가 아니라 예언된 참사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하권, p132)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예수복음」을 통해, 사탄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용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탄의 존재가 곧 자신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여주었었지요. 마찬가지로 --- "자신이 하는 일은 옳다는 절대적인 자신"(상권, p299)을 가지고 있었던 한 관료가, 자신의 주장26이 무참히 묵살되자 오로지 그 '옳음'을 증명해내기 위한 목적으로 가상의 상황27을 현실로 옮겨내었다라는 이 소설의 구성 역시 그에 못지않은 충격을 선사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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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정당화로 읽혀질 여지를 지니고 있는 소설임에 분명합니다. ---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단기간에 국가를 재건하려면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의회민주주의는 적절치 않습니다"(하권, p369)와 같은 구절은 과거 박정희 유신정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바꾸기는 어려워. 어찌됐든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겠지. 어차피 혼란스러워질 거라면 단기간에 빨리 끝내버리는 게 희생을 최소화하는 길이 아닐까? 그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바로 폭력이고"(하권, p236)같은 구절은 예의 2016년의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입에서 실제로 나온 말이 아닐까 할 정도의 현실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요. 예의! 우리나라의 현재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데,

"목적이 달성된다면 그 과정에서 어떠한 악평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흡사, 우리나라의 대통령께서 이 소설을 읽으신 게 아닐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2016년의 대한민국 뉴스에서 들었던 것만 같은 이 구절이 사실은 --- 이 구절의 전체적인 맥락은 사실!!!

"종교와 사상, 주의, 철학, 삶의 보람, 인생관, 가치관, 그러한 정신적인 가치는 국민 개개인에게 맡겨두면 된다. 국정을 맡은 자의 책무는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꾸리기 위한 물질 기반을 정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국가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그 목적이 달성된다면 그 과정에서 어떠한 악평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하권,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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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는 (게다가 개인적으로 저는) 자신의 또는 가족 중 누군가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라는 것에 불안해하지만, 반대로 자신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면 오히려 그 불안은 더욱 가중28되지 않을까라는 생각할 꺼리를 안겨준 이 소설을, 작가 스스로 일종의 SF 소설이라 부른 이 작품이/이 작품을 제게/제가 정치 소설로 읽혀진/읽어낸 건 대체 왜일까요. 여하튼! --- 짧지 않은 두 권의 이 작품,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에겐 어떤 소설로 읽혀질지 또한 궁금...

※ 비슷한 설정, 다른 포커스의 소설들

- 율리 체 作, 「어떤 소송」, 민음사 刊, 2013. : ① 수단과 목적의 전이가 초래하는 기묘한 결과 ② 자기결정권의 소중함

- 오이시 에이지 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폴라북스 刊, 2010. : 후회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 이청준 作,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刊, 2012. :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 가, '선한 독재자'는 과연 가능한가?

- 오스카 와일드 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더클래식 刊, 2012. : 늙고싶지 않았고, 그래서 늙지 않게 되었더니!

- 허버트 조지 웰스 作, 「투명 인간」, 열린책들 刊, 2014. : 상상 속 상상과 현실이 된 상상 간의 엄청난 괴리!

- 피에르 불 作, 「혹성탈출」, 소담 刊, 2011. : 과도한 욕망이 초래한 파멸 ①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作, 「지킬 박사와 하이드」, 더클래식 刊, 2014. : 과도한 욕망이 초래한 파멸 ②


  1. 박예슬 외 共著, 「해피엔딩」 p65, 엔자임헬스 刊, 2016.
  2. 예를 들어, 그 때 왜 일산의 아파트를 샀었었을까,류의 후회.
  3. 그때 분당의 아파트를 사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
  4. 박예슬 외, 위의 책 p364.
  5.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일단 '빨리 죽어버리고 싶다'라 소망하는 사람은 없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신앙심 깊은 40대 초반의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지금 당장 하나님께서 당신 곁으로 오라 하십니다'라 전했을 때 과연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6. "HAVI (Human Antiaging Virus noculation)"
  7. "여자들은 다들 빨리 받더라. … 한 살이라도 어리게 살고 싶은 게 여자 마음 아니겠어?"(상권, p237) VS "육체적으로 어느 정도는 원숙미가 더해져야 근사하기 때문"(상권, p237)이라는 남자.​
  8. '하지 않은 일에의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꼭 한 번은 해볼 작정! ^^
  9. 임종 순간과 직후에는 슬픔, 허전함 등의 여타 감정들이 더 클 수도 있겠으나, 시간이 흐르면 그 많은 감정들은 결국 '아쉬움'으로 정리되죠.
  10. 엄밀하게 말해 이 작품 속 설정이 '불사(不死)'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HAVI를 받으면 영원한 젊음을 얻을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불사의 몸이 되는 건 아니다. 사고나 부상을 입어 죽을 수도 있고, 병에 걸리기도 한다."(상권, p39)
  11. HAVI 시술은 만 20세가 되는 시점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12. 80세에 HAVI 시술을 받는 경우.
  13. 예를 들어 --- "기록상으로는 117세. 스무살에 시술을 받아 겉보기에는 스무 살로 보였지만"(상권, p17)
  14. 서양 사람들에겐 100% 쌍꺼풀이 있기에, 그것을 표현하는 한 단어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15. "늙어 죽는다, 인간의 육체가 그렇게 만들어진 건 뭔가 의미가 있어서일 거라"(상권, p71) 생각하거나, 그저 "자기 수명의 기한을 정하는 게 싫다"(상권,p43)나 "납득이 가지 않는 것뿐입니다. … 자기가 죽을 날이 법으로 정해지는 게요"(하권, p74)라는 이유로, HAVI 시술을 거부한 소수의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16. "도쿄에는 신흥 환락가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모두 젊으니 놀 기운이 넘치는 것이다."(상권, pp67-68)
  17. "현대에는 HAVI의 영향으로 '죽음'은 지극히 희귀한 현상이 되었다. 주변에서 죽음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죽음'을 상상하고 흥분하는 모양이다."(상권,p33)
  18. 물론 다음과 같은, 마치 대한민국의 '개나 소나 다 성형'의 상황을 꼬집는 것이 아닐까 싶은 구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가 한 사람의 인상 모든 것을 결정짓는 건 아니다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 "20대에 HAVI를 받는 것이 상식인 현대.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젊었다. 그래도 실제 나이는 대충 짐작이 갔다. 눈의 총기, 다양한 표정, 쾌활함,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 진짜 20대와 HAVI 덕에 스무 살의 육체를 유지하는 100세는 그런 것들이 다르다.(상권, p32)
  19. "그때까지 일본에서 뿌리내렸던 자식이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도 그 의미를 잃은 까닭에 친자관계를 존속시킬 실질적인 이유도 사라졌다. … 호적제도가 폐지된 것이다. 이것이 '노쇠'에 이어 '가족'이라는 개념을 결정적으로 붕괴시킨 계기였다."(상권, p86)
  20. 율리 체 作, 「어떤 소송」중, 민음사 刊, 2013.
  21. "영원한 삶에 너무 집착하다 임계점을 넘어버렸다"(하권, p103)
  22. "​정치가들은 자기만 생각할 뿐 국가를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자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상권, p61)
  23. "관료의 참맛은 자신이 책정한 법안으로 나라를 움직이는 거지. 기본적으로 관료들은 자기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자기가 생각한 정책이 채용되지 않으면,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가나 국민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하권, p131)
  24. 얼마 전, 대한민국에도 한 명 있었었죠. 하지만 --- 이 소설 속 유사 아키히토는 분명 나향욱과는 다른 관점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한 인물입니다.
  25. 물론, 이는 작품 전체를 다 읽고나서야 알아채게 되는 점입니다.
  26. '죽음'을 피하고 싶다하여, 실제 그것을 피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또 다른 곤란이 닥쳐올 것이라는,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불편하다 생각하는 것을 제거하고 나면, 또 다른 불편함이 반드시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요약될 수 있는 주장.
  27. "지금부터 약 30년 전, 한 독창적인 내무성 관료가 만일 일본이 백년법을 철폐하고 사실상 불로불사 사회로 진입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를 주제로 면밀한 현장조사와 각종 통계자료, 고금의 사회과학 이론을 적용한 완벽한 시뮬레이션 문서를 작성해 정부에 제출했다. 그것이 바로 미츠타니 보고서다. 하지만 그 결론이 너무 과격하고 충격적이겄기 때문에 극비문서로 지정되어 국민들에게 공표되지는 않았다."(상권, p93)
  28. 예를 들어,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내키는 대로 살겠다"(상권, p183)류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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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 행복한 죽음을 위하여
박예슬 외 지음 / 엔자임헬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너희는 늙어보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젊어도 봤다"​1

아무리 겸손해지고 혹은 심하게 건방져진다하여도, 한국 나이로 48세인 저를 '늙은'이란 형용사로 수식하는 건 심히 어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가 16년전 암으로 돌아가셨었으며, 얼마 전 장인 어르신께서도 악성 암의 투병을 시작하셨다라는 상황이라는 게 여하이 --- 이 한 권의 책을 읽어가던 와중, 그 한줄 한줄로부터 생겨난 감정의 기복/영향들이 오로지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부터 기인되었다라 말하게 되는 건 걸국! '젊어도 봤다'가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실재하고 있는 실제  제 삶의 축적물 이외의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해낼 수 없게 만들어 줍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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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이라도 된 듯, 심지어 얼마 전의 독후감에 '내일 내가 죽어야만 한다라는 상황'이란 구절을 썼었던 저였음에도 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듯,  "만약 오늘 당신이 죽는다면?"(p121)이란 문장을 읽는 순간, 온 몸이 움칫!해졌더랬습니다. 이 문장이, 그저 읽기만 했음에도 저를 그토록 떨게 했던 이유는 아마도 --- 그 누구로부터도 죽음, 그것에 관한 '자신의 경험'3을 들어볼 수 없었으며, 또한 '나의 죽음'이란 것에 대해 제 아무리 '피할 수 없으면 즐기리라'란 경구를 적용시키려 한다 한들 도저히 즐겨낼 수 없는 것임이라 예감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론 이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스스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일 듯. 헌데,

(이런 표현이 '말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아닌 타인, 그것이 차마 나의 부모/아내/자식일지라 하더라도 어쨌든 '나 자신'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의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떠할까요? 혹시라도 "우리는 결국 어떤 이유로든 죽음을 맞이"4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그나마라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즐겨낼 수 있을까요?


【 타인의 죽음 】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처하고 준비하도록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가족들은 환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그런데 외국 호스피스병동에서는 임종 순간 가족들이 환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랑 함께해줘서 고맙다. 나를 키워줘서 고맙다'라는 말이라며 차이점5을 설명했다.(p34)

이 말을 한 분6의 의견은 외국사람들은 죽음에 대처하고 준비하도록 배워본 적이 있다,라는 걸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 이러한 반응의 차이는 배워본 적의 유무보다는, 그냥 삶/일상이란 것의 차원이 다름7에 기인한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삶이 다르기에, 삶의 마지막 단계8인 죽음 역시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 것이죠.


아프리카의 가나사람들은 "죽음이 멋지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p193)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관을 "망자를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수송수단"(p193)으로 간주하고, 그가 살았을 적 좋아했던 동물이나 관심사 등을 고려해 관의 모양을 만든다는군요. 누군가에게는 포르쉐 모양의 관을, 살아 맥주를 좋아했던 이에게는 거대한 맥주병 모양의 관을 그 여행의 수송수단으로 선사한다는 거죠.9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경우, 장례식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보다는 고인의 행복했던 순간과 제일 좋아했던 노래를 틀어놓고 추억을 공감하는 시간"(p191)으로 인식10된다 합니다. 장례식의 목적이 죽은 자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었을 당시에 있었던 행복한 일들을 추억하는 것"(p192)라는 것이죠. 이런 인식은 심지어 --- 암으로 사망한 아내를 위해, "화약제조회사에 부탁해 아내의 유골 재가 포함된 250발의 불꽃을 특별히 제작"(p194)한 후, 한 불꽃쇼 행사에서 "아내와 함께 보낸 13년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p194)음을 추억하며 마음껏 풀어냈던 한 남편의 모습을 가능케 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 역시, 가족의 떠남이 더할 나위 없이 슬펐겠지요. 헌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p364) ……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p380)"11

과연 나는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또한) 타인의 죽음에 대해 그가 원하는 방식의 마무리를 허(許)하였었던가란 질문에 예의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아버지의 죽음이란 것을 '일어나서는 안될 일, 일어날 수 없는 일'12이라 생각했었던 저와 저의 가족은, 간으로부터 폐에까지 암덩이가 전이되었던 아버지에게 (그것이 아버지 당신의 뜻인지 아닌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조금이라도 더 삶의 시간을 드리기 위해, 더 이상 독할 수 없는 항암제의 투여를 요구했었으며, 임종 몇 시간 전에는 마취도 없이13 그의 배를 가르는 것에 동의했었었지요.


"때로는 갑작스러운 죽음보다도 더 나은 것이 암이다. 암이 발병하면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 암이라는 병을 통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진다."(p17) …… "말기암 환자에게는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다."(p140)

아버지 스스로 당신의 죽음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그의 가족인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남편이고 아버지인 그의 죽음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 2년이(나) 주어졌었음에도, 각자 '아군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장군과 군사들'14의 역할을 장렬히 수행했던 겁니다. 맥주 한 캔이 너무도 마시고 싶다 하셨던 아버지 역시 낫고 싶고, 그렇게 더 살(아 있)고싶다라는 소망에, 그 자리에 있었더 저 역시 끝내 맥주 한 캔을 사다드리지 않았더 저 역시, 아버지가 나으시고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살아계셔주길 바랐던 저 역시 --- '삶'이란 게 정녕 무엇인건지, 왜 그토록 '삶/살아 있을 수 있음'에 집착하는 것인지의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던 거라 이제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죽음을 "무섭고 피하고만 싶은 것"(p11)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15을 더 이상은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일진데 정작!!! --- 죽음이란 것이 어쩌면 머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당사자는 바로 그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정작 죽음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이전부터 스스로! 갑자기 포기하라 강요/인정16해 버리는 겁니다.


(폐암 선고를 받은 미국의 베티) 할머니는 투병 중에도 담배 피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할머니는 자신이 살던 방식대로 행복하게 죽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p189)

베티 할머니의 이런 행동을 삶에의 포기라 말할 수 있는걸까요? 환자에게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17이하게 하는 것만이 과연 유일한 선택지인 것일까요? 죽음을 피하기/미루기 위해, (그것의 상태가 어떠하다 한들) 현재의 삶을 망치는 것이 정녕 괜찮은 선택일 수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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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p35)


2년 여의 항암투병 기간을 거친 후 돌아가셨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전 당연히 아버지의 죽음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문제'라 받아들였더랬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났을 땐, 이미 늦었던 거죠. 하지만! --- 똑같이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장인어른을 보며, 이제는 죽음이란 것이 더 이상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하여 장인어른께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두려운 것은 무엇이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기꺼이 포기할 용의가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18란 질문지를, "회복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언젠가 죽게 된다면, 이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의 시간은 나에게 덤으로 준 삶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해야죠"(p36)란 조언을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이번에 못한다면, 그리하여 또 아쉬운 후회를 하게 된다하더라도, 그 이후의 동일한 경우의 어느 순간 - 어머니, 장모님의 죽음 - 에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나의 죽음

"어떠한 의학적 처치도 병을 낫게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삶에 집착하는 동안엔 죽음을 준비하는 기회조차 잃어버리죠. 나 스스로 삶을 정리해나갈 때 가족들도 나를 떠나보낼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은 남겨질 가족들에게 슬픔을 경감시켜 주는 일입니다."(p142)

지금의 장인께, 또는 장모님이나 나의 아내에게, 위의 구절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 예의 아직은 유한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무한한 듯 느껴지는 죽음이란 것이 정작 '나의 일'이 되었을 때, 저 자신에게는 '죽음을 준비하라'란 다짐을 하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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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은,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의 문제다." - 토마스 만(p82)

이것에 대해 '역시 배움의 일 과정'이란 표현을 써도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직·간접적인 타인의 죽음을 통해 전 이렇게 죽음의 당사자라는 것, 즉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10대 후반과 20대에 들었던 <나이 서른에 우린>이나 <서른 즈음에>란 노래의 가사에 공감할 수 없었던 저 역시, 머지않아/벌써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의 제목에 두 손드는 나이가 되어 있을 겁/습니다. 또 압니까? 팔십 세가 되어 '아직은 쓸만해서, 자존심 상해서 못가겠다'라, 구십 세가 되어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고, 알아서 가겠노라' 말하는 사람19이 되어 있을지도. 암튼!


어찌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차마 즐기지는 못하겠고) 그에 대한 준비는 해야겠다라고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란 것이,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라는 게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20을 의미한다라면 결국엔!!! --- 죽기 전에 후회하게 될 것들이 무엇일지 지금 미리 가늠해 보는 것이 그 시작이자 어쩌면 모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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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21(p65)


그냥 문득

지난 세월동안 내 곁에서 그처럼... 따스한 햇살처럼,

그저 묵묵히 저를 지켜준 그녀가

너무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마워'란 그 말 한마디... 를 차마 입밖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겁니다.

그냥... 이렇게 쓰여진 내 마음을 그녀가 읽어주기만... 을 바래어보며 말이죠.

2009년 2월의 어느 날, 제가 이 블로그에 남긴 글입니다. 당시 무슨 이유로 '고마워'란 말 한마디를 아내에게 입 밖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겠다란 건지 모르겠네요. --- 대략 30년 쯤 후에 죽을 것 같다면, 그 중 하루가 줄어 29년 264일 후에 죽는다 해도 딱히 변함 없고, 그렇게 하루하루 줄여가다보면, 흘러보내다 보면 언젠가 바로 내일, 그리고 '오늘'이 죽는 그 날이 되는 것이겠죠. "죽음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회하는 게 있는데, 바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하지 않은 것"22(p17)이라는데, 아마도 2009년의 이 글을 쓰는 순간의 전, 나의 죽음이란 것이 대략 30년도 더 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나의 죽음이란 게 대략 30년 쯤 후의 일일 것 같다라 느껴진다 해도, 심지어 신께서 '너의 죽음은 정확히 2046년 8월 27일이다'라 확증해 주신하 하더라도! "죽음을 준비해 간다면, 오늘을 더 열심히 살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쓸 수 있습니다."(p78)란 조언은 여전히 매일매일의 '오늘'에 적용되어야 한다라 다짐하게 되었다라는 것이,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결국 --- '너, 뭘 위해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데?'라는 질문에의 대답, 그 대답을 알아야 하고, 알고 있다면 그대로 살아가라는 거죠.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하라."(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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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다 나은 할아버지를 우리집으로 다시 보내주세요'란 어린 종원군의 기도에 놀라고 감동받아, 하나님께서 24시간만 제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꿈을 꾼 적이 있었습니다. 종원군이 졸라 에버랜드엘 갔었었고, 살아계실 때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던 생선회로 저녁을 먹었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 아버지께 맥주 한 잔을 따라드렸던 저, 살아계셨을 때 그토록 마시고 싶다 하셨던 맥주 한 잔을 따라드리는 바람을, 그 꿈 속에서 기어이, 제 마음 속 후회를 그렇게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냈었던 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장인어르신과의 마지막 대화, 그것이 "저를 사위로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장인이 되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가 될 수 있을지, 그렇게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 바람(願)을 끝내 이루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이 자신의 아빠인 제 아내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할 것이어도, 그 분의 곁을 지키고 계신 장모님께, 그리고 당사자인 그 분, 제 장인어르신께도 이 책을 권해드릴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또한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분의 지금까지 살아오셨던 생활 방식을 마지막 날까지 이어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것이며, 그리고 그 분의 그 생활 방식을 존경하는 제가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것만 써볼 수 있을 뿐. --- 그러한 순간을 이미 보낸, 저처럼 현재로 보내고 있는, 어쩌면 조만간 맞이할 것 같은 당신은 과연 어떠했/한가요. 어쨌든 죽음은, 결국!


'나의 일'이 됩니다. ​

※ 당연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여 드리는 책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되었었던 권오운 감독의 <나의 생활>중.
  2.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올해 대학에 입학한 16학번의 1학년 학생이, 오늘 마침 인생 소개팅을 하고 들어온 그/그녀가 이 책을 읽었을 경우와, 제가 이 책을 읽은 경우와는 결코! 비슷하기라도 한 감정의 반응이 나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건 나이 먹었다고 재는 것도, 청춘들을 무시하는 것도 전혀 아니죠. 그저, 삶의 축적물이 세대 차이만큼 다른 것이라는 의미일 뿐.
  3. "죽음은 경험할 수 없기에 누구에게나 낯선 '처음'이 된다."(p78)
  4. 아툴 가완디 著,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61. 부키 刊, 2015.
  5. 이런 식으로 차이를 구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저 역시 제 아버지 삶의 마지막 순간엔 그 분께 '죄송합니다'란 말씀을 드렸었네요.
  6.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김대균 센터장.(p33)
  7. 물론 여기에는 동양과 서양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 등 참으로 많은 여러가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8. 저 역시 '죽음'이 '삶'의 반대말이라 생각했더랬습니다만, 다음의 구절을 읽은 이후로는 죽음이란 것을 '삶의 마지막 단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죽음을 삶의 반대로 파악해서는 안 돼. 낚시줄 끝이 낚시줄의 반대겠어?" - 율리 체 作, 「어떤 소송」중. 민음사 刊, 2013.
  9.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참 여러 병들의 모습을 한 제가 누울 관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실제로 가나의 유명한 관 제작자이자 아티스트인 파 조(Paa Joe)는 2011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소주병 모양의 관을 전시했다고도 합니다.
  10. 실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그들의 장례식이 '인생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고 하네요.
  11. 아툴 가완디, 위의 책.
  12.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러운 죽음이 때로는 부자연스러운 것이 됐다. …… (하지만)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이 비록 우리의 적일른지는 모르지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한 것이다." -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p16-18.
  13. 정말 급박한 순간이었었습니다. --;;
  14. "죽음이 적이라고 한다면, 그 적은 우리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결국은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우리는 아군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장군을 원치 않는다." -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286.
  15.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94.
  16. 물론, 환자 스스로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개인 가치관의 차이로부터 기인되는 것일 뿐.
  17.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242.
  18.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395.
  19. 이애란, "백세인생"의 가사 중.
  20. 유시민 著, 「어떻게 살 것인가」중, 아포리아 刊, 2013.
  21. 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리스트>의 메시지.
  2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著, 「인생 수업」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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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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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이죠, 소설이란 게 말입니다, 「외딴방」처럼 그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 혹은 내보이고 싶은 의미등이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딱 그대로'로서 읽혀지는 작품들이 있는 반면, 「닭털 같은 나날」속 세 편의 소설들, 그 중에 특히나 <1942년을 돌아보다>와 같이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그 이상의 것'이 작가의 의도로 읽혀져야 하는 작품들도 있지요. (뭐 이건, 문학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지껄이는 글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어쨌든!) 그렇다면!--- 2016년 대한민국에 '두번째 한강의 기적'을 가져왔다는 이 작품, 「채식주의자」는 위의 분류로 나누어보자면 어느 쪽에 속하는/속해야 하는 소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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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모든 사건의 중심 인물1인 영혜는 "답답해서, 브래지어가 가슴을 조여서 견딜 수 없"(p12)어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단지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p11)이라 생각하는 영혜의 남편과, "호기심과 아연함, 약간의 주저가 어린 경멸"(p29)의 시선을 보내는 누군가도 있었었지요. 이를 두고 만약 --- '보이지 않는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일방적 강요'라든가, '여성에게만 짐 지어지는 폭력적 차별'등에 대해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라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전 그걸 '나가도 너무 나간' 해석2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 행동의 당사자인 영혜는 그냥,

"더워서 … 더워서 벗은 것뿐이야. ​ 그러면 안돼?"(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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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 언제부터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p165)란 질문에 대해 우선은 영혜의 "동기가 불분명"(p166)한 채식의 시작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아주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꿈을 꿨어"(p16)란 영혜의 한 마디로부터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3"라 말해져야 한다라 생각할 수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말이죠!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p37)

이 소설은 결국 --- 영혜가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이후, 영혜의 주변인물들까지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 똑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혜의 남편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p26)는 영혜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인 영혜의 급작스런 변화에 대해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선 안되었다"(p61)라 단호하게 말합니다.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아내를 향해,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p22)라 고백한 그는, 상황이 최악으로 내달은 시점에서 가서야 결국 알게 되죠. :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p64)​ ​(하지만 그는 "최대의 피해자는 나라는 걸 세상사람들이 다 압니다"(p86)라는 자기방어적 이유를 내세워 영혜와의 이혼을 선택합니다.)

【영혜의 형부 ①】 처제인 영혜에게 몽고반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을, (영혜의 언니이자) 자신의 아내로부터 들은 그는, "그 전에 그는 조금도 처제에게 딴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p87)는 그는 이내 "처제를 달리 생각하게"(p87)됩니다. 곧 그는 영혜의 "바지 한겹만 벗기면 낙인처럼 푸르게 찍혀 있을 몽고반점을 상상"(p80)하며 자위를 하지요. 이제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합니다. :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p76)

【영혜의 형부 ②】 '육식의 거부'라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타인들의 반대에 직면한 처제 영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요. "누군가가 그의 눈앞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쓰레기처럼 던져버리려 했"(p82)던 상황을 목도한 (일종의 비디오 아티스트인 듯한)그는 뒤이어 다음과 같은 고백4을 하게 됩니다. : "십여년 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작업이 …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알았던, 혹은 안다고 믿었던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p84)

【엉혜의 언니】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알았"(p169)다 믿어왔던 그녀는 "상식과 이해의 용량을 뛰어넘는"(p167) 장면을 목격한 후, 이제까지 살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해,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p197)라 믿어왔던 자신의 삶에 대해 끝내, 역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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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p191)

2014년 발표한 작품 「소년이 온다」를 통해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5란 질문, Yes 혹은 No라는 두 가지 선택의 해답을 던졌던 작가 한강은, 그 7년 전의 작품인 「채식주의자」를 통해, 영혜의 채식 선언이 초래한 상황들 속에서, 영혜를 둘러싼 인물들 -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 이, 각자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믿음들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었고, 그 믿음들이 기실 잘못된 것들이었노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사뭇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내용6의) 줄거리로 삼아, 아예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은/주어질 수 없는, 더 어려운 질문을 던졌었다라 생각합니다.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라는 질문 자체가 흥미롭지 않은 것이듯, 이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끌만한 소설이란 생각은 들지 않네요7. 심지어, 이 소설이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딱 그대로'로서 읽혀져야 하는 작품인지,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그 이상의 것'으로 읽혀져야 하는 것인지조차 구분해낼 수 없습니다. 그저,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이라는 것만이, 한때 '1분에 10권씩 팔렸'던 이 작품의 인기의 이유를 설명해 낼 수 있을듯.

덧> 데보라 스미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된 「The Vegetarian」이, 과연 원작 「채식주의자」​의 단순한 영역본인가에 대한 근거 있는 의문의 제기도 있습니다. 번역이란 것이 아무리 '동물 가죽을 뒤집어 놓고 그것이 어느 동물의 가죽인지를 알아내는 것'과 같이 어려운 작업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라면 글쎄요.

※ 읽어본, 작가 한강의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

  1. 영혜의 주변 인물들이 차례로 화자로 등장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영혜를 '주인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2.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쏜 다섯 발의 총알에 대해 역자 이정서가 표현했던 '정당한 이유로서의 한 발과, 위장된 도덕·종교·권위·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가 바로 이런 나가도 너무 나갔다라 말해져도 무방한 과도한 해석의 예라 생각합니다.
  3. 알베르 카뮈 作, 「이방인」 p87, 새움 刊, 2014.
  4. 사실, 그의 이러한 고백이 왜 이렇게 갑작스레 등장하는지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닙니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글로는 도저히 표현해내지 못하겠는 뭐 그런 수준의 이해만이 가능할 뿐.
  5. ​한강 作 ​「소년이 온다」 p134. 창비 刊, 2014.
  6. The Economist紙는 이 작품에 대해 "strange, visionary and trangressive"라 표현했더군요. - <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goes to Han Kang’s “The Vegetarian”, translated by Deborah Smith>, The Economist, May 16th 2016. Online extra edition.
  7. 하지만 소위 '술술 읽혀지는 소설'이기는 합니다.
  8. 고기와 동물의 알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을 먹는 경우. - <네이버 지식백과> 중 "채식주의의 유형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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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중동을 말하다 - 이슬람.테러.석유를 넘어, 중동의 어제와 오늘
서정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그 이상한 형태의 글씨야, 그네들이 우리 한글을 보아도 그러할테니 그렇다 쳐도 --- 일국의 국기에 칼이 그려넣어져 있음을 '야만'이라 간주하는 것, 거기에 만수르 같은 자산가가 대체적으로 수만 명쯤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근거 없는 추측 정도만이, 제가 '중동'으로 통칭되는 국가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의 전부였었거늘, 다행스럽게도(?) 중동 국가들에 대한 이같은 단편적 사고(思考)가 비단 저만의 것은 아니었었나 봅니다.

왜 중동은 테러, 사막, 석유 등의 획일적인 이미지로만 비칠까? 우선 잘 모르기 때문이다.(p6)

​그리하여! 일반인들이 잘모르는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알려줌으로써, "중동의 정치·사회 그리고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경제 및 문화 협력을 독려하려는 것"(p9)이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라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 위와 같은 이 책의 목적은 오히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를 방해하기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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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선, 중동국가들에 대한 일반인의 무지와 오해가 대략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중동에 대한 획일적인 이미지는 왜곡된 혹은 피상적인 정보에서 기인한다. 정보의 상당수가 서방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p6)

"중동을 이슬람 종교의 틀로만 보려는 자세도 한몫한다. '폭력적인' 이슬람 종교 때문에 중동이 불안정하다고 보는 것이다."(p7)

저자가 소개하여 주는 중동의 실상(實像)을 보도록 하죠. 물론! 저자의 충격요법스런 의도가 베어 있겠으나 어쨌든, 그 서막은 꽤나 놀랍습니다.  





중동에는 뜨거운 사막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터키 등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일부 국가에는 스키장도 있고 특히 이란의 보르즈 산에는 한여름을 제외하면 거의 1년 내내 눈이 쌓여 있다.(p8)

뒤이어 저자는 --- '아랍권', '중동', 그리고 '이슬람권'이라는 세 개의, 우리가 흔히 하나로 뒤섞어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들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중동1에 대한 오해의 교정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랍 : "아랍은 아랍 민족을 의미한다. 그런데 혈족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적 개념이 아니다. 언어, 문화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적 개념이다.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혹은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 아랍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아랍 국가다. … 터키, 이란, 이스라엘은 아랍에 포함되지 않는다."(pp19-20)

중동 : "중동은 지역적 혹은 지정학적 개념이다. … 중동이라는 개념이 더욱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것이 가진 유럽중심주의적 시각 때문이다. 이는 서방이 만들어낸 개념으로 … 아랍인들이 중동 개념을 불편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용어가 이스라엘이 퍼뜨린 담론이라는 데 있다.2 … 그러나 지정학적 개념인 중동이 널리 사용될 경우에는 이스라엘도 자연스럽게 이 지역에 포함된다.(pp21-22)

이슬람권 : "이슬람권 혹은 이슬람 세계는 종교적 개념이다.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와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집합을 의미한다."(p23)

​이처럼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른 세 가지 개념을 혼동/혼합함으로 발생되는 오해들 중에는,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런 전통이 아랍 전통, 중동 전통, 혹은 이슬람 전통 중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을까? …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이슬람 전통이라기보다는 중동의 전통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3하다. 중동의 기후 및 환경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거나 금하게 된 것이다.(pp24-25)

100년 전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우리나라에서도 규수들이 외출할 때 '장옷'을 걸치고 다녔다. 당연히 이슬람 때문은 아니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의 전통4이다. 중동권에서도 같은 이유로 여성들의 의복에 제약이 있는 것이다. 중동에서는 이미 이슬람 등장 이전부터 이렇게 여성의 복장과 행동을 규제하는 전통이 존재했다.(pp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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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 이러한 오해들이 전부 중동에 대한 무지로부터만 기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중동에는 이슬람 전통과 부족주의 전통이 교차한다"(p39)라 서술함으로써, 일견 우리(의 오해/무지)를 위로해주고 있기도 하지요.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부족주의 전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사막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중동에는 유목문화가 발달했고, 이 유목문화에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오아시스(물)이었기에, 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남성들은 무장을 하였어야 했고, 이러한 전통은 결국 "남성의 전투력에 공동체의 생존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남성 중심의 사회가 형성될 수밖에 없"(p43)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이슬람보다는 이런 유목문화가 중동의 정치, 경제에서는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pp48-49)라는 점에 더해 --- "단순히 신앙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고 결속시키는 시스템5"(p34)이자 여전히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이슬람 문화를 함께 고려할 때에만이, 현재의 중동을 이해할 수 있다라 저자는 주장하고 있지요. 그러나 어쨌든!

유목문화고 부족주의고 이슬람이고를 다 떠나, 일반 독자로서는 현재의 중동이 '테러'라는 단어와 거의 동치되고 있는 건 대체 무슨 이유인거냐,가 가장 알고 싶은 의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역시 그 해답을 알고 싶어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거구요.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예상외로 매우 간단합니다. 한 마디로, "중동이 화약고인 이유에는 … 미진한 국민국가 형성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p81) 

①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성립된 신생국가들입니다. 당시 이들간의 국경은 "자연적이거나 역사적인 것이 아닌, 서방의 이해에 의해 인위적으로 확정6"(p119)되었었지요. "다양한 민족과 부족 그리고 종파가 급조된 한 나라 내에 포함"(p79)된 이 상황에서 "국가통합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p119)합니다. 여기에,  (남성의 전투력에 공동체의 생존을 의지해왔던) 유목문화의 전통은 예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체제"(p79)를 가져오도록 작동했지요. 뿐만 아니라!

②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이어졌던 십자군 원정7으로 인해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간 반감과 증오가 심화되고 축적되었"(p5)을 뿐 아니라, "그 여파가 아직도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p5)는 상황에서 발생한 미국 주도의 아프간 전쟁 및 이라크 전쟁과 점령은 중동의 무슬림들에게 "거의 반사적으로 십자군 전쟁을 떠올"(p52)려 줌으로써 "현재 이슬람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서양의 군대를 십자군과 동일시"(p52)하게 만들어 주었지요. 


위와 같은 두 가지의 역사적 유산(遺産)은 --- "알라가 계시한 원칙과 율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고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던 무함마드와 네 명의 후계자 시대가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 속에 존재"(p97)했었다라는, 말하자면 "'현재'를 비판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p97)가 되어주는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유산과 어울어져, 무슬림들에게 "이슬람 세계가 약화되어 유럽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현재까지도 서방에 뒤쳐저 있는 원인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지나치게 서구화한 지배계층에 있다고 생각"(p97)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으로 다시 이슬람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p97)라는, 즉! 이슬람 정신이 아닌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부작용8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이슬람 원리주의의 극단적인 표출9이 바로 IS와 같은 테러 및 반군 조직이지요. 이들은 예의 "자신들의 국가 존재 이유와 투쟁을 '이슬람 VS 기독교'라는 종교전쟁 구도"(p112)로 몰아가며,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중동 지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갈등은 IS와 같은 극단적 과격 세력을 생산하는 원인10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갈등 및 이들의 차이점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간단히 정리해 두 종파가 발생했던 원인, 즉 무함마드 사후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냐에 따른 의견의 충돌이 두 종파의 시초였다는 겁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시아파는 전체 이슬람 신자 중 10% 정도에 불과하다는데, The Economist紙는 약 20%정도라 전하고 있기도 하네요.11) 이러한 두 종파간의 대립구도가, 2016년 1월 16일 해제된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인해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돌입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기도 하지요.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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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저자는,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수쿠크'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 저자는 (책의 시작에 밝힌 바 대로의 목적에 따라)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무지를 교정해주고, 이들 이슬람 국가들과 무슬림들이 우리의 현실과 결코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애써 인지시켜 주려 하고 있다라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이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타켓 독자층을 분명하게 설정해놓고 있지 않아, 여러 주제를 조금씩 다 다루고 있다보니 사뭇 산만한 구성을 가지게 되었다라는 약점과 더불어, 이슬람 전공의 학자가 주장하는 '오해'라는 것이 정녕 오해이기만 한 것인가,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은 단 1%도 이 책의 감상에 개입되어있지 않음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해'라는 누명을 벗어내 주려는 저자의 주장들이 오히려, 애초부터 자신의 설계도를 지닌 채 잘라내어졌던 퍼즐 조각을 맞추어 가는 식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흐름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를 가지게 해주었다라는 의구심 또한 남겨주었지요. 어쨌든!


무슬림들, 아랍민족, 중동 국민 --- 그 어떠한 표현으로 그들을 지칭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의 일상에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가까워져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라 권하여 주는 이 책이 그러한 현실에서 나름의 충분한 의의를 가지고도 있으며, 예의 "세상의 지식은 그 지식이 유용하게 사용될 용처가 있어야만 그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이름조차 생소한 어떤 곳에 사는 나와는 전혀 관계 맺어지지 않은 어느 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13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으나, 그와 더불어! --- 자신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내려는 그들 스스로의 노력은 과연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인지, 그 역시 궁금해졌네요.



 

 ※ 꼭 함께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 : 김영미 著, 「세계는 왜 싸우는가」, 추수밭 刊, 2011.

 


 

  1. "이 책에서는 지리적 관점에 기반하여 '중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서방 세계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있지만, 지리적 관점에서 서아시아라고 하면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일러두기> 중.
  2.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 지역이 아랍이라고 불려서는 안 되었다. 아랍이라는 용어가 확살될 경우, '아랍'이 아닌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속하지 않는 이질적인 국가라는 인상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상당히 심각한 심리적 안보 위협을 안고 살아갈 수밖게 없다."(p22)
  3. 정치학 교과서로 볼 수도, 혹은 저자의 논문으로 볼 수도 없는 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모든 주장을, 사실 일반 독자로서는 '사실(fact)'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처럼 '타당하다'라는 서술어는 결국 독자에게는 '맞다'로 읽혀지게 되겠지요. 저 역시 저자의 '타당하다'라는 서술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앞으로 누군가에게도 분명, 저자가 '타당하다'라 서술한 이 부분을, 뭔가 못내 스스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한 채 '사실(fact)'이라 타인에게 전달할 수 밖엔 없겠지요.
  4. ​"중동은 동양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오리엔트 문명권에 속해 있다. … 우리가 동양적인 전통과 가치를 상당 부분 빠르게 버리고 서구화한 데 반해, 중동은 아직도 전통을 유지하고 잇는 것이다."(pp 28-29)
  5. "이슬람은 그 태동에서부터 정치이념으로서의 기능이 생겨났다. 이슬람을 창시한 사도 무함마드가 당순히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이슬람국가를 창건한 정치지도자 역할도 수행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를 통합하고 이슬람국가를 설립했다. 그리고 국가의 수장으로서 직접 이 지역을 통치했다."(p96)
  6. 이러한 인위적 국경의 구분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는 영화가 바로 임창정 주연의 <만남의 광장>이지요. 미국과 소련의 합의만으로 그어진 휴전선도 영화에서와 같은 문제를 일으켰었거늘, 한 민족이 둘로 나누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 한 국가로 범주지어진 파슈툰族의 경우는 더욱 비참합니다. --- "원래 파슈툰족이 사는 파키스탄 국경 지역도 아프가니스탄 땅이었어. 19세기 말에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 적이 있는데, 1893년 영국의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과 파키스탄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그 사이에 일방적으로 금을 그었고, 그것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선이 되었지. 말하자면 파슈툰족이 살던 땅이 두 동강이 나서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이 되고, 다른 하나는 파키스탄이 된 거야. 그 국경선을 영국 사람 모티너 듀랜드 경의 이름을 따서 듀랜드 라인이라고 부른단다. 듀랜드 라인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강제로 분할했고, 그때 파슈툰족이 아프가니스탄 쪽과 파키스탄 쪽으로 나뉜 거야. 물론 파슈툰족은 듀랜드 라인을 인정하지 않아. 그들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의 '부족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에 국가 없이 부족 중심으로 모여 산단다. 이 부족 지역은 아프가니스탄도 아니고 파키스탄도 아닌 이상한 땅이 되었어." - 김영미 著, 「세계는 왜 싸우는가」 중 pp59-60, 추수밭 刊, 2011.
  7. 저자는 십자군 전쟁의 발발 원인을 '종교', '영토 지배에 대한 야망', 그리고 '경제적 이익에 대한 욕망'이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pp51-52)
  8. "우리는 이슬람과 이런 이슬람 원리주의를 구분해야 한다."(pp100-101)
  9. "이슬람에서 언급하는 지하드(성전 聖戰)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도 '저들이 먼저 너희에게 싸움을 걸어온다면 살해하라. 이것이 신앙을 억압하는 저들의 대가'라는 구절이 있다. 외부의 침입과 점령으로부터 이슬람의 땅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라는 말이다. 더불어 성전에 있어서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민간인을 살상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유린하는 것은 금지된다."(p95)
  10. "IS가 적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넓은 지역을 빠르고 쉽게 장악 및 점령하고 있는 이유는 시아파 중앙정부에 불만을 가진 수니파 주민들의 지지 덕분이다. IS는 미군 주도 점령에 대한 불만, 시아파의 권력 독점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세력이다."(p121)
  11.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Sunni and Shia Muslims", The Economist, May 28th 2013, 'The Economist explains'.
  12.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며, 이에 맞서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 국가들의 수장격이라고 합니다.
  13.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읽고 쓴 감상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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