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 행복한 죽음을 위하여
박예슬 외 지음 / 엔자임헬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너희는 늙어보지 못했지만, 우리들은 젊어도 봤다"​1

아무리 겸손해지고 혹은 심하게 건방져진다하여도, 한국 나이로 48세인 저를 '늙은'이란 형용사로 수식하는 건 심히 어색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가 16년전 암으로 돌아가셨었으며, 얼마 전 장인 어르신께서도 악성 암의 투병을 시작하셨다라는 상황이라는 게 여하이 --- 이 한 권의 책을 읽어가던 와중, 그 한줄 한줄로부터 생겨난 감정의 기복/영향들이 오로지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부터 기인되었다라 말하게 되는 건 걸국! '젊어도 봤다'가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실재하고 있는 실제  제 삶의 축적물 이외의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해낼 수 없게 만들어 줍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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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이라도 된 듯, 심지어 얼마 전의 독후감에 '내일 내가 죽어야만 한다라는 상황'이란 구절을 썼었던 저였음에도 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듯,  "만약 오늘 당신이 죽는다면?"(p121)이란 문장을 읽는 순간, 온 몸이 움칫!해졌더랬습니다. 이 문장이, 그저 읽기만 했음에도 저를 그토록 떨게 했던 이유는 아마도 --- 그 누구로부터도 죽음, 그것에 관한 '자신의 경험'3을 들어볼 수 없었으며, 또한 '나의 죽음'이란 것에 대해 제 아무리 '피할 수 없으면 즐기리라'란 경구를 적용시키려 한다 한들 도저히 즐겨낼 수 없는 것임이라 예감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론 이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스스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일 듯. 헌데,

(이런 표현이 '말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아닌 타인, 그것이 차마 나의 부모/아내/자식일지라 하더라도 어쨌든 '나 자신'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의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떠할까요? 혹시라도 "우리는 결국 어떤 이유로든 죽음을 맞이"4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그나마라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즐겨낼 수 있을까요?


【 타인의 죽음 】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에 대처하고 준비하도록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가족들은 환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그런데 외국 호스피스병동에서는 임종 순간 가족들이 환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나랑 함께해줘서 고맙다. 나를 키워줘서 고맙다'라는 말이라며 차이점5을 설명했다.(p34)

이 말을 한 분6의 의견은 외국사람들은 죽음에 대처하고 준비하도록 배워본 적이 있다,라는 걸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 이러한 반응의 차이는 배워본 적의 유무보다는, 그냥 삶/일상이란 것의 차원이 다름7에 기인한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삶이 다르기에, 삶의 마지막 단계8인 죽음 역시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 것이죠.


아프리카의 가나사람들은 "죽음이 멋지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p193)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관을 "망자를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수송수단"(p193)으로 간주하고, 그가 살았을 적 좋아했던 동물이나 관심사 등을 고려해 관의 모양을 만든다는군요. 누군가에게는 포르쉐 모양의 관을, 살아 맥주를 좋아했던 이에게는 거대한 맥주병 모양의 관을 그 여행의 수송수단으로 선사한다는 거죠.9 이 뿐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경우, 장례식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보다는 고인의 행복했던 순간과 제일 좋아했던 노래를 틀어놓고 추억을 공감하는 시간"(p191)으로 인식10된다 합니다. 장례식의 목적이 죽은 자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었을 당시에 있었던 행복한 일들을 추억하는 것"(p192)라는 것이죠. 이런 인식은 심지어 --- 암으로 사망한 아내를 위해, "화약제조회사에 부탁해 아내의 유골 재가 포함된 250발의 불꽃을 특별히 제작"(p194)한 후, 한 불꽃쇼 행사에서 "아내와 함께 보낸 13년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p194)음을 추억하며 마음껏 풀어냈던 한 남편의 모습을 가능케 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 역시, 가족의 떠남이 더할 나위 없이 슬펐겠지요. 헌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에게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p364) ……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p380)"11

과연 나는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또한) 타인의 죽음에 대해 그가 원하는 방식의 마무리를 허(許)하였었던가란 질문에 예의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아버지의 죽음이란 것을 '일어나서는 안될 일, 일어날 수 없는 일'12이라 생각했었던 저와 저의 가족은, 간으로부터 폐에까지 암덩이가 전이되었던 아버지에게 (그것이 아버지 당신의 뜻인지 아닌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조금이라도 더 삶의 시간을 드리기 위해, 더 이상 독할 수 없는 항암제의 투여를 요구했었으며, 임종 몇 시간 전에는 마취도 없이13 그의 배를 가르는 것에 동의했었었지요.


"때로는 갑작스러운 죽음보다도 더 나은 것이 암이다. 암이 발병하면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 암이라는 병을 통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진다."(p17) …… "말기암 환자에게는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다."(p140)

아버지 스스로 당신의 죽음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그의 가족인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남편이고 아버지인 그의 죽음에 대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 2년이(나) 주어졌었음에도, 각자 '아군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장군과 군사들'14의 역할을 장렬히 수행했던 겁니다. 맥주 한 캔이 너무도 마시고 싶다 하셨던 아버지 역시 낫고 싶고, 그렇게 더 살(아 있)고싶다라는 소망에, 그 자리에 있었더 저 역시 끝내 맥주 한 캔을 사다드리지 않았더 저 역시, 아버지가 나으시고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살아계셔주길 바랐던 저 역시 --- '삶'이란 게 정녕 무엇인건지, 왜 그토록 '삶/살아 있을 수 있음'에 집착하는 것인지의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던 거라 이제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죽음을 "무섭고 피하고만 싶은 것"(p11)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결국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15을 더 이상은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일진데 정작!!! --- 죽음이란 것이 어쩌면 머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당사자는 바로 그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정작 죽음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이전부터 스스로! 갑자기 포기하라 강요/인정16해 버리는 겁니다.


(폐암 선고를 받은 미국의 베티) 할머니는 투병 중에도 담배 피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할머니는 자신이 살던 방식대로 행복하게 죽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p189)

베티 할머니의 이런 행동을 삶에의 포기라 말할 수 있는걸까요? 환자에게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17이하게 하는 것만이 과연 유일한 선택지인 것일까요? 죽음을 피하기/미루기 위해, (그것의 상태가 어떠하다 한들) 현재의 삶을 망치는 것이 정녕 괜찮은 선택일 수 있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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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p35)


2년 여의 항암투병 기간을 거친 후 돌아가셨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전 당연히 아버지의 죽음을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문제'라 받아들였더랬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났을 땐, 이미 늦었던 거죠. 하지만! --- 똑같이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장인어른을 보며, 이제는 죽음이란 것이 더 이상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하여 장인어른께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두려운 것은 무엇이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기꺼이 포기할 용의가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18란 질문지를, "회복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언젠가 죽게 된다면, 이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의 시간은 나에게 덤으로 준 삶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해야죠"(p36)란 조언을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이번에 못한다면, 그리하여 또 아쉬운 후회를 하게 된다하더라도, 그 이후의 동일한 경우의 어느 순간 - 어머니, 장모님의 죽음 - 에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나의 죽음

"어떠한 의학적 처치도 병을 낫게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삶에 집착하는 동안엔 죽음을 준비하는 기회조차 잃어버리죠. 나 스스로 삶을 정리해나갈 때 가족들도 나를 떠나보낼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은 남겨질 가족들에게 슬픔을 경감시켜 주는 일입니다."(p142)

지금의 장인께, 또는 장모님이나 나의 아내에게, 위의 구절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엔 여전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 예의 아직은 유한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무한한 듯 느껴지는 죽음이란 것이 정작 '나의 일'이 되었을 때, 저 자신에게는 '죽음을 준비하라'란 다짐을 하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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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죽음은,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의 문제다." - 토마스 만(p82)

이것에 대해 '역시 배움의 일 과정'이란 표현을 써도 되는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직·간접적인 타인의 죽음을 통해 전 이렇게 죽음의 당사자라는 것, 즉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10대 후반과 20대에 들었던 <나이 서른에 우린>이나 <서른 즈음에>란 노래의 가사에 공감할 수 없었던 저 역시, 머지않아/벌써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의 제목에 두 손드는 나이가 되어 있을 겁/습니다. 또 압니까? 팔십 세가 되어 '아직은 쓸만해서, 자존심 상해서 못가겠다'라, 구십 세가 되어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고, 알아서 가겠노라' 말하는 사람19이 되어 있을지도. 암튼!


어찌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차마 즐기지는 못하겠고) 그에 대한 준비는 해야겠다라고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란 것이,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라는 게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20을 의미한다라면 결국엔!!! --- 죽기 전에 후회하게 될 것들이 무엇일지 지금 미리 가늠해 보는 것이 그 시작이자 어쩌면 모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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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21(p65)


그냥 문득

지난 세월동안 내 곁에서 그처럼... 따스한 햇살처럼,

그저 묵묵히 저를 지켜준 그녀가

너무도...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마워'란 그 말 한마디... 를 차마 입밖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겁니다.

그냥... 이렇게 쓰여진 내 마음을 그녀가 읽어주기만... 을 바래어보며 말이죠.

2009년 2월의 어느 날, 제가 이 블로그에 남긴 글입니다. 당시 무슨 이유로 '고마워'란 말 한마디를 아내에게 입 밖에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겠다란 건지 모르겠네요. --- 대략 30년 쯤 후에 죽을 것 같다면, 그 중 하루가 줄어 29년 264일 후에 죽는다 해도 딱히 변함 없고, 그렇게 하루하루 줄여가다보면, 흘러보내다 보면 언젠가 바로 내일, 그리고 '오늘'이 죽는 그 날이 되는 것이겠죠. "죽음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회하는 게 있는데, 바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표현'하지 않은 것"22(p17)이라는데, 아마도 2009년의 이 글을 쓰는 순간의 전, 나의 죽음이란 것이 대략 30년도 더 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나의 죽음이란 게 대략 30년 쯤 후의 일일 것 같다라 느껴진다 해도, 심지어 신께서 '너의 죽음은 정확히 2046년 8월 27일이다'라 확증해 주신하 하더라도! "죽음을 준비해 간다면, 오늘을 더 열심히 살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쓸 수 있습니다."(p78)란 조언은 여전히 매일매일의 '오늘'에 적용되어야 한다라 다짐하게 되었다라는 것이, 이 책을 읽고 얻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결국 --- '너, 뭘 위해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데?'라는 질문에의 대답, 그 대답을 알아야 하고, 알고 있다면 그대로 살아가라는 거죠.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하라."(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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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다 나은 할아버지를 우리집으로 다시 보내주세요'란 어린 종원군의 기도에 놀라고 감동받아, 하나님께서 24시간만 제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꿈을 꾼 적이 있었습니다. 종원군이 졸라 에버랜드엘 갔었었고, 살아계실 때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던 생선회로 저녁을 먹었던 게 기억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 아버지께 맥주 한 잔을 따라드렸던 저, 살아계셨을 때 그토록 마시고 싶다 하셨던 맥주 한 잔을 따라드리는 바람을, 그 꿈 속에서 기어이, 제 마음 속 후회를 그렇게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냈었던 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장인어르신과의 마지막 대화, 그것이 "저를 사위로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장인이 되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가 될 수 있을지, 그렇게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 바람(願)을 끝내 이루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이 자신의 아빠인 제 아내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할 것이어도, 그 분의 곁을 지키고 계신 장모님께, 그리고 당사자인 그 분, 제 장인어르신께도 이 책을 권해드릴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또한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분의 지금까지 살아오셨던 생활 방식을 마지막 날까지 이어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것이며, 그리고 그 분의 그 생활 방식을 존경하는 제가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것만 써볼 수 있을 뿐. --- 그러한 순간을 이미 보낸, 저처럼 현재로 보내고 있는, 어쩌면 조만간 맞이할 것 같은 당신은 과연 어떠했/한가요. 어쨌든 죽음은, 결국!


'나의 일'이 됩니다. ​

※ 당연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여 드리는 책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제2회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되었었던 권오운 감독의 <나의 생활>중.
  2.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올해 대학에 입학한 16학번의 1학년 학생이, 오늘 마침 인생 소개팅을 하고 들어온 그/그녀가 이 책을 읽었을 경우와, 제가 이 책을 읽은 경우와는 결코! 비슷하기라도 한 감정의 반응이 나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건 나이 먹었다고 재는 것도, 청춘들을 무시하는 것도 전혀 아니죠. 그저, 삶의 축적물이 세대 차이만큼 다른 것이라는 의미일 뿐.
  3. "죽음은 경험할 수 없기에 누구에게나 낯선 '처음'이 된다."(p78)
  4. 아툴 가완디 著,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61. 부키 刊, 2015.
  5. 이런 식으로 차이를 구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저 역시 제 아버지 삶의 마지막 순간엔 그 분께 '죄송합니다'란 말씀을 드렸었네요.
  6.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김대균 센터장.(p33)
  7. 물론 여기에는 동양과 서양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 등 참으로 많은 여러가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8. 저 역시 '죽음'이 '삶'의 반대말이라 생각했더랬습니다만, 다음의 구절을 읽은 이후로는 죽음이란 것을 '삶의 마지막 단계'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죽음을 삶의 반대로 파악해서는 안 돼. 낚시줄 끝이 낚시줄의 반대겠어?" - 율리 체 作, 「어떤 소송」중. 민음사 刊, 2013.
  9.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참 여러 병들의 모습을 한 제가 누울 관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실제로 가나의 유명한 관 제작자이자 아티스트인 파 조(Paa Joe)는 2011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소주병 모양의 관을 전시했다고도 합니다.
  10. 실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그들의 장례식이 '인생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답했다고 하네요.
  11. 아툴 가완디, 위의 책.
  12. "현대의학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러운 죽음이 때로는 부자연스러운 것이 됐다. …… (하지만)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이 비록 우리의 적일른지는 모르지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한 것이다." -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p16-18.
  13. 정말 급박한 순간이었었습니다. --;;
  14. "죽음이 적이라고 한다면, 그 적은 우리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결국은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우리는 아군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는 장군을 원치 않는다." -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286.
  15.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94.
  16. 물론, 환자 스스로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개인 가치관의 차이로부터 기인되는 것일 뿐.
  17.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242.
  18. 아툴 가완디, 위의 책 p395.
  19. 이애란, "백세인생"의 가사 중.
  20. 유시민 著, 「어떻게 살 것인가」중, 아포리아 刊, 2013.
  21. 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리스트>의 메시지.
  2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著, 「인생 수업」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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