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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말이죠, 소설이란 게 말입니다, 「외딴방」처럼 그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 혹은 내보이고 싶은 의미등이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딱 그대로'로서 읽혀지는 작품들이 있는 반면, 「닭털 같은 나날」속 세 편의 소설들, 그 중에 특히나 <1942년을
돌아보다>와 같이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그 이상의 것'이 작가의 의도로 읽혀져야 하는 작품들도 있지요. (뭐 이건, 문학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지껄이는 글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어쨌든!) 그렇다면!--- 2016년
대한민국에 '두번째 한강의 기적'을 가져왔다는 이 작품, 「채식주의자」는 위의 분류로 나누어보자면 어느 쪽에 속하는/속해야 하는 소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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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모든 사건의 중심 인물인 영혜는 "답답해서, 브래지어가 가슴을 조여서
견딜 수 없"(p12)어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단지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p11)이라 생각하는 영혜의 남편과, "호기심과 아연함, 약간의 주저가 어린 경멸"(p29)의 시선을 보내는 누군가도
있었었지요. 이를 두고 만약 --- '보이지 않는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일방적 강요'라든가, '여성에게만 짐 지어지는 폭력적 차별'등에 대해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라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전 그걸 '나가도 너무 나간' 해석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 행동의 당사자인 영혜는
그냥,
"더워서 … 더워서 벗은 것뿐이야.
… 그러면
안돼?"(p64)
·
·
·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 언제부터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p165)란 질문에 대해 우선은 영혜의 "동기가
불분명"(p166)한 채식의 시작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아주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꿈을 꿨어"(p16)란
영혜의 한 마디로부터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라 말해져야 한다라 생각할 수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말이죠!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p37)
이 소설은 결국 --- 영혜가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이후,
영혜의 주변인물들까지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 똑같은 사실을 깨닫게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혜의 남편】
"이상한 일들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p26)는 영혜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인 영혜의 급작스런 변화에 대해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선 안되었다"(p61)라 단호하게 말합니다.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아내를 향해,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p22)라 고백한 그는, 상황이 최악으로 내달은 시점에서 가서야 결국 알게 되죠. :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p64) (하지만 그는 "최대의 피해자는 나라는 걸 세상사람들이 다 압니다"(p86)라는 자기방어적 이유를
내세워 영혜와의 이혼을 선택합니다.)
【영혜의 형부 ①】
처제인 영혜에게 몽고반점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말을, (영혜의 언니이자)
자신의 아내로부터 들은 그는, "그
전에 그는 조금도 처제에게 딴마음을 품은 적이 없었"(p87)는 그는 이내
"처제를 달리 생각하게"(p87)됩니다. 곧 그는 영혜의 "바지 한겹만 벗기면
낙인처럼 푸르게 찍혀 있을 몽고반점을 상상"(p80)하며 자위를 하지요. 이제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합니다. :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p76)
【영혜의 형부 ②】
'육식의 거부'라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타인들의 반대에 직면한 처제 영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요. "누군가가 그의 눈앞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쓰레기처럼 던져버리려 했"(p82)던 상황을
목도한 (일종의 비디오 아티스트인 듯한)그는 뒤이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 "십여년 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작업이 …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알았던, 혹은 안다고 믿었던 어떤 사람의
것이었다."(p84)
【엉혜의 언니】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알았"(p169)다 믿어왔던 그녀는
"상식과 이해의 용량을 뛰어넘는"(p167) 장면을 목격한 후, 이제까지 살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해,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p197)라 믿어왔던 자신의 삶에 대해 끝내, 역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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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발표한 작품 「소년이 온다」를 통해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란 질문, Yes 혹은 No라는 두 가지 선택의 해답을 던졌던
작가 한강은, 그 7년 전의 작품인 「채식주의자」를 통해, 영혜의 채식 선언이 초래한 상황들
속에서, 영혜를 둘러싼 인물들 -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 이, 각자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믿음들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었고, 그
믿음들이 기실 잘못된 것들이었노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사뭇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내용의) 줄거리로 삼아, 아예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은/주어질 수 없는, 더 어려운 질문을 던졌었다라 생각합니다.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라는 질문 자체가 흥미롭지 않은 것이듯, 이 작품이 대중의 인기를 끌만한
소설이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심지어, 이 소설이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딱
그대로'로서 읽혀져야 하는 작품인지,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 바, 그 이상의 것'으로 읽혀져야 하는 것인지조차 구분해낼 수 없습니다. 그저,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이라는 것만이, 한때 '1분에 10권씩 팔렸'던 이 작품의 인기의 이유를 설명해
낼 수 있을듯.
덧> 데보라 스미스에 의해 영어로 번역된 「The Vegetarian」이, 과연 원작
「채식주의자」의 단순한 영역본인가에 대한 근거 있는 의문의 제기도 있습니다.
번역이란 것이 아무리 '동물 가죽을 뒤집어 놓고 그것이 어느 동물의 가죽인지를 알아내는 것'과 같이 어려운 작업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라면 글쎄요.
※ 읽어본, 작가 한강의 다른 작품
: 「소년이 온다」
- 영혜의
주변 인물들이 차례로 화자로 등장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영혜를 '주인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쏜 다섯 발의 총알에 대해 역자 이정서가 표현했던 '정당한 이유로서의 한 발과, 위장된
도덕·종교·권위·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무의식적인 발사'가 바로 이런 나가도 너무 나갔다라 말해져도 무방한 과도한 해석의 예라
생각합니다.
- 알베르
카뮈 作, 「이방인」 p87, 새움 刊, 2014.
- 사실,
그의 이러한 고백이 왜 이렇게 갑작스레 등장하는지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닙니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글로는 도저히 표현해내지
못하겠는 뭐 그런 수준의 이해만이 가능할 뿐.
- 한강
作 「소년이 온다」 p134. 창비 刊, 2014.
- The
Economist紙는 이 작품에 대해 "strange, visionary and trangressive"라 표현했더군요. - <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goes to Han Kang’s “The Vegetarian”, translated
by Deborah Smith>, The Economist, May 16th 2016. Online extra
edition.
- 하지만
소위 '술술 읽혀지는 소설'이기는 합니다.
- 고기와
동물의 알은 먹지 않지만 유제품을 먹는 경우. - <네이버 지식백과> 중 "채식주의의 유형과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