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냄새가 난다
하국상 지음 / 고슴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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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것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에 대해 저로서는 사전(事典)이 제시해 주는 수준1 이상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특정 글이 문학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를 결정함2에 있어, '글의 형식'에 주안점이 주어져야 하는지, 혹은 '글이 담고 있는 주제/메시지'가 더 중요한 것인지를 제가 가늠해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책에 실려있는 아홉 편의 소설들을 향해 "과연 소설이긴 한 것인가"​(p280)란 의문을 가져본다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소설이 아니래도 상관없다" (p284)란 문장을 작가의 답변으로 예측해 본다는 <작품해설>3은 이해되지도 않으며,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글들을 '소설'이라 표현하였고, 거기에 더해 작가 스스로 이 소설들을 쓴 "목적은 특정한 분야의 관심에 집중해서 그 분야의 사람들에게 읽히는 문학을 시도하는 것"(p286)이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설명충이 되지 않기 위해 독자층을 한정" (p286)할 수 밖에 없었다 토로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결국 '진지함에의 재고(再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매우 멋진 전개의 이야기들로 그 '진지함'을 잔뜩 표현해내고 있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고로, 이 아홉 편의 소설들을 그저/단지 "야구라는 소재 자체에 대한 고찰"(p284)로만 이해하는 건, 작품 속 구절을 빌어 표현해보자면 --- "우리는 야구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다시 말하면 방망이로 공을 쳤을 때 손에 남은 쾌감을 일주일 간 간직하기 위한 스포츠로 지나치게 축소해서 경험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p31)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단순화일 뿐이라 말하게도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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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국상"


뭔가, 평범하다 말할 수는 없겠는 작가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 오래 전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 책에 실려있는 아홉 편의 소설들을 아니좋아할 수 없을거라 장담합니다. --- '하국상'이 작가의 실명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아마도 <공포의 외인구단>속 한 등장인물의 이름로부터 자신의 필명을 차용해  온걸꺼라는, 그것도 혼혈 캐릭터라는 국외자들 중의 국외자를 선택함으로써 "덕후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p287)란 자신의 소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 추측해보는 것이, 덕후 작가가 쓴 '덕후를 위해 쓰여진 소설'을 읽는 (덕후이건 아니건) 독자의 예의일 꺼라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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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가 되려 했으나 실패, KBO 직원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는 작가 하국상은 "야구팬은 세상 모든 것을 야구에 빗대어 말할 수 있고"(p137)라 말합니다. 야구를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보는 것 뿐 아니라 실제 사회인 야구팀에 가입도 했었던4 저이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사이판 전지훈련장에까지 '여행'이란 탈을 쓰고 쫓아갔었던 저이기도 하지만 --- 세상 모든 것을 야구에 빗대어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작가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그저 야구팬''야구주의자'라는 두 개의 부류로 나누어 설명해줍니다. 이 두 부류 모두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p202)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하지만! 그저 야구팬들이 보고 즐기는 것에서 그친다라면, 그리하여 그들의 즐거움이 다른 운동이나 취미로 대체가능하다라면, 다시 말해 단지 "야구를 소비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면, --- 야구주의자들은 야구로부터 대체 불가능한 기쁨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책임감을 갖는다"(p203)라 작가는 정의/묘사5하고 있습니다.6 

'야구주의자'일 것이 확실해 보이는 작가 하국상은 아홉 편의 소설들을 통해 "유격수가 없는 야구, 12인제 야구, 시계 방향으로 주루하는 야구, 어느 방향이든 선두 타자가 뛰는 방향으로 그 회의 주루방향이 정해지는 야구, 모든 선수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뛰는 야구7, 4루까지 있는 야구, 전 이닝의 주자가 살아나는(잔루가 없는) 시카고의 야구, 공 두 개로 하는 야구,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처리한 야수부터 반격 타순이 시작되는 야구"(p0155-156)등,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과거의 야구들을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야구규칙들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와 어떻게 정립되어 왔는가를, 즉 "야구는 발명된 게 아니다. 수백 년 동안 바뀌면서 지금 모습으로 진화했다"(p148)란 사실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야구는 과학이다'란 생각까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도 될만큼 정교한,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8'로 대변되는 여러 지표들의 이용에 대해서조차 그럴듯한 시계열적 추론9을 통해, "야구는 형식이 전부가 아니야"(p230)라는 사뭇 감성적인 메시지10를 건네주고도 있지요.  

​대개의 사람들은 승리 말고도 다른 가치를 원합니다. 가령 구단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승리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입니다.(p252) … 팬들은 감동을 원합니다.(p253) … 멋지게 이기는 것, 혹은 멋지게 지는 것, 야구장 안에서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 야구장 밖에서 멋있게 살아가는 것, 중요한 일에 희생하는 것, 사소한 일에 희생하는 것, 시합을 기억에 남기는 것, 순간을 기억에 남기는 것. 그런 것은 WAR나 WAP, CPA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치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야구는 굉장히 초라해진다11고 생각합니다.(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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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진이는 '신안군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야구장이 하나도 없는 지자체'라고 말했다. 대체 그런 걸 왜 알고 있는 건지.(p133)

야구를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 이 소설들은 어쩌면, '대체 이런 걸 왜 읽고 있는 건지'란 생각을 갖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그저 야구팬'에겐 타자가 방망이로 타격 전 홈플레이트를 두어 번 두들기는 것이, 기실 스트라이크를 못던지는 투수에게 타자가 보내는 '여기로 던지라고 쪼~옴!'의 메시지로부터 기원되었다라는 등과 같은, 일종의 '야구의 고고학적 발견'스런 잔지식들을 알게되는 재미있는 소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겁니다. 무릇 '야구주의자'들에겐 또한  자신과 작가의 야구 덕력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도 있겠죠. 당신이 그 어느 부류에 속하건간에 작가 하국상이 말해주는 다음의 글, 


"야구는 진지한 게 좋죠."(p15)


는, 사뭇 우리의 일상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이 책 속 아홉 편의 소설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 --- '대한민국이라는 야구는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라 말하는 누군가들, 적어도 "아무튼 규칙은 지켰다"(p23)라고, 따라서 '적어도 표면적 공정함은 보장되어 있다'라 말하는 어떤 이들, 그러나 그 회가 거듭될수록 우리들은 대체 왜 "야구에 대한 환멸을 느끼도록"(p26) 변해가기만 하는 걸까,라는 우울한 의문을 가져보게 되었다라는, 그리하여 결국,


"야구가 점점 재미없어진다는 생각을 했지. … 관중을 빼앗아 간 건 투고타저 같은 게 아니라 과거의 야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pp266-267)

2016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야구보다, 2003년 당시는 별로였다라 생각했었던, 하지만 되돌아보니 그것이 진짜 대한민국의 야구이어야 했었다라는 뒤늦은, 그리하여 심히 우울할 수밖에 없는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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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는 야구시합을 보며 남긴 표현이야. 같은 안타를 누군가는 중견수 앞 안타라고 적고, 누군가는 유격수 뒤 안타라고 적지. 주관은 어쩔 수 없는 기록의 본성이고 우린 그걸 인정해야 해."(p272)

'세련된 문장'으로 쓰여진 글들은 아니라 생각될 수도 있을 겁니다. 표지의 촌스러움은 사뭇 의도적이었을 꺼란 생각도 들지요. 여기에 더해, 뭔가 옛날식 타자기로 친 듯한 착각을 선사해주는 본문의 편집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한 권의 책은, 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엄연히 '소설'이며, 그것도 매우 훌륭한 '소설'이라고 주관적 확신을 가져봅니다. 그러하기에,


당연히 ★표시를 앞세우고 싶으나, "대체 그런 걸 왜 알고 있는건지"라 생각할 수 있는, '그깟 공놀이'인 야구란 경기를 좋아하는 것에 의아함/반감을 지닌 이들에게까지 야구 덕후의 소설을 권하지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 '스포츠 에이전트'가 장래 목표인, 그것도 '스캇 보라스'와 맞짱뜨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꿈인 종원군에겐 당장 오늘 밤! 이 책을 권할 겁니다. 11월에도 우리 팀 좀 한 번 응원해보는게 꿈인, 그게 제 목청이 '부산갈매기'를 미친 듯이 불러제낄 수 있기 전엔 부디 이루어지길 바래어보기도 하는 롯데 자이언츠 팬인 저희 부자가, 다른 리그에서 노는 팀인 듯만 느껴지는 두산과 NC의 한국시리즈를 보기만 하며 맡아볼 수 있는 '야구 냄새'가 아닐까 싶네요. 롯데야, 내년엔 쫌!!!



 

  1. ​"Writings in which expression and form, in connection with ideas of permanant and universal interest, are characteristic or essential features, as poetry, novels, history, biography, and essays." - <Merriam-Webster's Learner's Dictionary>
  2. 예를 들어, 대중음악의 노래말이 '노벨문학상' 수상의 대상(對象)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
  3. 김무정 (비평가, 문학박사)
  4. 고질적인 허리통증으로 오래지 않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5. "이들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한 하나의 적절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야구가 어느 날 소멸한다면 당신이 취할 행동은?' 그저 야구팬은 야구가 사라져도 상관없다. 야구를 좋아했지만 거기까지이므로, 야구가 사라지면 다른 운동이나 취미로 야구를 대체하면 된다. 야구주의자라면 야구를 회생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야구장을 다시 짓고 선수를 육성하고 사람들에게 야구를 기억하도록 할 것이다."(p203)
  6. 심지어 작가는 "야구를 근심하는 사람"(p212)들까지도 그려내고 있지요. 진정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근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도 싶네요. <야구의 실험적 이해>에 등장하는 피터 교수나 <방화범 조계팔>에 등장하는 조계팔 같은 인물은 명시적으로 '야구를 근심하는 사람'이지만, 이외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전부 다 '야구를 근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7. "시계 반대 방향으로 주루하는 야구규칙은 왼손잡이가 내야 수비를 하기에 불리한 조건이고 따라서 왼손잡이에게 야구선수로 취직할 기회를 제한하는 차별이라며 메이저리그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 사례"(p155)
  8.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는 빌 제임스가 창시한 SABR(The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라는 모임에서 만들어진, 야구를 통계학적/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세이버메트릭스는 빌 제임스가 창시한 이래로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으며, 이제는 단순한 개인의 취미 차원을 넘어서 야구 전반에서 쓰이고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창시되었던 1970년대에는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였으나, 1980년대를 넘어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야구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 <위키백과>
  9. <백년전쟁>편.
  10. "그는 야구는 기록의 경기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그것은 야구를 지나치게 좁게 규정하는 말이라고 했다."(p89)
  11. 이 문장을 읽으며,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보며 (롯데가 맨날 져서 배는 아프지만 그래도) 멋있다!라 생각했었던 건, 제가 '그저 야구팬'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전히 롯데의 승리를 갈구하는 야구팬이긴 합니다만, 승리만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걸 이 책 속 소설들을 통해 배웠네요.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건 바로 '초라한 야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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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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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theory에서 가정되는 'Perfect Knowledge'란 게 있습니다. '너의 다음 행동을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알고 있다라는 걸 너도 알고 있고, 너가 알고 있다라는 그것 역시 나는 알고 있고 … '와 같은, 앎의 무한이 반복되는, 한 마디로 결론은 이미 나와있고!식의 가정이지요. 이러한 'Perfect Knwledge'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때가 바로 --- '읽는다'라는 행위를 하기 위해 눈이 필요한 것처럼, '읽는다'란 행위는 또한 저에겐 노트북이 함께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읽어가면서 적어놓고, comment를 달아놓고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다 읽고난 후, 그 적어놓은 것들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면, 결말을 알고난 후 그 책의 내용을 다시 읽어본다라는 건, 특히나 그것이 소설일 경우에는, 심지어 추리소설일 경우에는, 어떤 장면/구절이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지에 대해 종종 무릎을 탁!하고 치며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맛보게 해주죠.


밖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현상 이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실체가 있다고 의심한다. 사람 위의 사람, 세상 위의 세상, 뉴스에 나오는 모든 기사가, 권력이 말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보는 가공하는 조직의 구미에 맞게 교묘하게 재편집되거나 주장하는 바를 가리키기 위해 재배치된다. 그 과정에서 사실이란 왜곡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원재료에 불과하다.

- 박주영 作, 「고요한 밤의 눈」중 p290, 다산책방 刊,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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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임무는 … 사실을 사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지."(p243)


​사실을 사실로 믿지 못하는 것이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기도 합니다만, 스파이의 세계에서는 누군가에게 사실을 사실로 믿게 하는 것마저 작전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 리머스는 상대방에게 '사실을 사실로 생각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결국 리머스가 알고 있는 사실이란 것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라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눈먼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맹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p270)해 낸 것이지요. "왜곡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원재료에 불과"하다란, 진실에 대한 작가 박주영의 정의(definition)는 예의 이 작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도 적용되어 --- 진실이란 고작 "거짓을 입증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무기"(p271)의 역할만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 그 자체로는 스스로의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거지요.  

이 작품을 다 읽은 저에겐, 일종의 'Perfect Knowledge'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계산된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p86)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만, 작가 존 르카레는 작품을 읽어가는 과정 속 독자에게, 심지어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게까지도 '진실과 거짓의 구분'에 대한 커다란 게임을 제시해주고 있지요. 이 게임을 풀어감에 있어, --- "그들의 지식과 자만심을 이용해서 그들이 서로 의심하도록 하게.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세"(pp104-105)란 작품 속 구절이 어쩌면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어 주는 하나의 힌트였을지도 모른다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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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을 뜬 사회의식이 지배 계급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켜 일어난 사건"(p114)과 같은, 공산당원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도 간간히 볼 수 있습니다만, 작가 존 르카레의 지적은 비단 한 쪽만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개인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집단의 요구뿐"(p132)란 공산당원의 주장은 결국, 민주주의를 수호해내기 위한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성립되기에, 그 비난이 공산당원만을 향하여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공교롭게도 지금은 그들에게 문트가 필요하니까. 당신이 찬미하는 어리석은 대중들이 밤에 침대에서 단잠을 잘 수 있게 하려면 문트가 필요하니까. 당신과 나 같은 평범한 서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문트가 필요하니까."(p246)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이 제게 알려주었던 교훈인 "선과 악은 사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반대의 것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1이란 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대립에도 여전히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라는 것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메시지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면서도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p275)


이 작품의 해설격인 글에 실려 있는, 작가 존 르카레가 「러시아에, 인사와 함께」라는 글에서 밝힌 위의 질문은 여전히 대답되어지지 않은 의문일 수밖에없으며, 어쩌면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단지,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 준다"(p17)라고까지만 말하고 싶은 뿐이라는 거지요. 암튼!!! 


​"타고난 스파이, 습관적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사람이 경험을 '제거할' 필요가 생겼을 때 무엇을 하겠는가? 소설을 쓴다. 그런 소설이 그2의 소설이다."(p280)

역자 김석희의 이 한 마디는, 이 작품을 향한 최고의 아름답고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멋진  한 편의 소설은 이렇게, --- CIA에 취직하고자 했었던, 젊은 날 저의 한 때 (나름 진지했었던) 꿈을 다시끔 떠올리게 해주었네요. 아~ 옛날이여! --;;



 

  1. 악마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끝내겠다 말하는 악마의 제안을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절하지요. --- "내가 대표하는 선은 자네가 대표하는 악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 자네 없이 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자네가 끝나면 나도 끝나는 거야, 내가 계속 선이려면 자네가 계속 악이 되는게 긴요해, 악마가 악마가 아니면 하나님도 하나님일 수 없는거야." - 주제 사라마구 作, 「예수복음」중, 해냄 刊, 2010.
  2. "<뉴스위크>의 조사에 의하면 영국 정보부(SIS 혹은 MI-6)의 스파리고 근무했다고 함. 작가 자신은 오랫동안 부인했지만 한 정보통에 의하면 외무부에 들어가기 전에 방첩부(MI-5) 소속의 스파이로서 맥스웰 나이트라는 가명으로 근무했다고 함."(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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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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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이나 '혼술'같은 단어의 의미는 알고 있지만 ---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란 게 어떤 의미를 지닌 소설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혼을 일깨우는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며 전주문화방송이 제정한 문학상"이라는데, 당췌 「혼불」이란 소설을 읽지 않았으니, 심지어 그런 소설이 있다라는 것마저 알지 못했었으니, '최명희의 문학정신'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 또한 알 수가 없었던거죠.


「혼불」은 지나간 역사를 다룬 소설이지만 그 역사를 현재적 의미로 충만한 그것으로 되살려낸 소설이다. 한마디로 「혼불」은 인간 역사의 영구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의 관계를 정확하게 읽어낸, 그래서 역사적이되 현대적인 소설인 것이다.(p315)

- <제 6회 혼불문학상 심사평> 중

소설을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된 - 365개 이상의 문학상이 존재한다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그리하여 최소한 하루에 한 편 이상의 문학작품이 '문학상 수상작'의 칭호를 받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 '혼불문학상'이 지향하고 있다는 그 무엇입니다. ---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짜맞추듯 해석하는 식의 우(愚)를 피하려해도 어쩔 수 없이, 이 작품 「고요한 밤의 눈」을 향해 "인간 역사의 영구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의 관계를 정확하게 읽어낸" 소설이란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냥 '읽어낸 소설'이란 표현은 심히 부족한, '잔인하다라 말하고 싶은 수준의 직설적 시선으로 읽어낸 소설'이라 말해져야 마땅할 소설이라 생각되고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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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관찰자라도 되어야겠다, 생각해."(p265)


이런 시대에 작가의 역할은?이란 질문에, 작품 속 작가인 Z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작가 박주영의 신념 뭐 이런 것이 아닐까라 추측(을 넘어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의 작가가 관찰하는 건 대체 무엇일까요? 당연히 시대와 시대상,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 가고/내고 있는 사람들이겠지요. 하지만! --- 보이는 것을 관찰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의 의미를 설명/서술해 주는 것까지 할 수 있는 것이 작가라면, '뛰어난' 작가1는 한 발 더 나아가, 누구나 다 볼 수 있는/보고 있는 것이 아닌 대상을 볼 수 있고, 그것을 설명/서술해줄 수 있어야 한다라 생각합니다. "고요한 밤의 눈처럼 아침이 오면 알게 되는 달라진 세상"(p309)대중2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알려주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작가 박주영은 이 작품 「고요한 밤의 눈」을 통해, 자신이 '뛰어난 작가'임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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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p36)

      

​이 때의 '총합'이란 것이 단순한 summation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이 명확한 사실을 독자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기 위해 작가는 지난 십오 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X라는 인물을 등장시키지요. --- "내가 읽어버린 과거의 시간 속에서 몇 시 몇 분에 무얼 했는지를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게 되지는 않았다."(p24)


"선택의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p43)이란 점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으나, 수많은 과거 선택들의 (현재까지의) '총합'인 현재의 나에 대해, 사실 현재의 나는,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좋고 비싼지는 알 수 있었지만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p37)란 수준까지만 알고 있는 겁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란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이러하지요.


​그동안 나는 '왜'라는 질문 없이 살아왔다. 내게는 언제나 목적이 주어졌고, 그 목표는 '어떻게'가 중요할 뿐이었다.(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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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챕터의 시작에 기재되어 있는 알파벳 대문자가, 그 챕터의 화자라는 걸 알아챈 순간이 58페이지를 여는 시점이었었을만큼, 이 소설은 불친절합니다. 이런 류의 구성을 "모자이크 소설"(p319)이라 일컫는다거늘, 심지어 그 모자이크의 완성된 모습이란 것마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끝내고서도 저에겐 명확하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대신!!! ---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혹은 이해했다 말하면서도 자꾸만 틀린 답을 써내기만 하는 학생을 위한, 심지어 이해했다 말하고 한 문제에 정답을 써내었음에도 이를 약간만 비틀어 문제를 내면 여지없이 틀린 답을 써내는 학생을 위한 선생님의 집요한 반복학습마냥, 작가 박주영은 작품 전체를 통해, 그리고 여러 명의 화자들을 통해 하나의 사실을 끊임 없이 반복해 서술해주는 인내를 보여주고 있지요. (소설에선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 미지의 존재로 그려지고 있는 '누군가'를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로 이해하는 것3이, 진부한 해석이란 힐난을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마냥 철없이 단순하기만 한 도식이란 비난을 받아야할 이유는 없다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이토록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그것은 바로,

​부자는 과거를 수집하고 중산층은 미래를 계획하고 빈민은 현재를 걱정한다.(p147)

작가가 내세우고 있는 '스파이'란 직업이, 그처럼 특별한 누군가를 의미하는 게 아닌,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 가고/내고 있는, 스스로를 평범하다라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일 것이란 ('옳은 해석'이라 믿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나"(p145)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저 "예전부터 그런 삶을 살아왔고 그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전부라는 것을 믿으면 이 삶은 아무런 문제도 없어진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왜라는 질문 없이도 살아가게 된다. 원래부터 사람은, 혹은 세상은 그렇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p126)라 생각하여야하는 '스파이'처럼, '신자유주의 하 자본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으로의 착각을 심어줌으로써, '신자유주의 하 자본주의'란 것이 "평범한 사람들이 무시 받는다고 부당하다고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고 사는 세상"(p77)을 만들어내었다라 믿게한다라는 겁니다.


나는 결국 실패한 것인가. 나 자신으로서도, 스파이로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엇이 우리를 스파이로 살게 하는 것일까.(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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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러한 '신자유주의 하 자본주의'의 목표는 거의 완벽하게 이행되었습니다. 물론! --- 민중들로 하여금 "살던 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지를 믿게"(p83)하려는 신자유주의가 "십 년 전에도 세상이 아주 살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빠지니 알겠다.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지"(p96)와 같은 위험(!)한 발상을 근본적으로 지워내지는 못했으나, 그 점만 제외하면 완벽하다라 말해질 수 있는 성취를 이루어내었죠.


"가장 덜 양심적이고 덜 진지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는 잘못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 틀렸다고 느끼면서도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바빠서, 누군가는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다만 지켜보고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사회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도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그냥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고 만다."(pp45-46) …… "문제가 있을 때는 시비를 걸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 방법을 모른다. 아예 싸울 줄 모를뿐더러 비록 이번에 싸워서 승리하지는 못해도 승리에 한걸을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다."(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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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사회의 총체적 변화'로서, 이는 사회 전체의 생산양식과 정치법률,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개개인의 생활방식, 사유방식,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 자오팅양 · 레지 드브레 共著, 「상실의 시대 :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중 p31, 메디치 刊, 2016.

"혁명은 죽은 단어가 된 지 오래였다. 그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몰랐으므로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혁명의 과거는 판타지 역사 소설이 되었고 혁명의 미래는 허무맹랑한 미래과학 소설이 되었다"(p143)라 말하는 '신자유주의 하 자본주의'를 살아가고/내고있는 Z와 같은 인물이 있는 반면 --- "혁명은 사람들의 기억과 핏속, 심장에 있다. 모든 사람의 피를 세탁할 수도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도 모든 사람의 심장을 바꿀 수도 없다. 피는 흐르고 기억은 숨고 심장은 뛴다. 어디선가 여전히"(p188)라 인식하고 있는 D도 등장하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묻습니다.

"다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혹은 올바른 소수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게 촛불, 혹은 죽음 뿐인게 정상입니까?"(pp206-207)


작가는 답합니다.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 어떤 방법으로소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p261)


그리고,

작가는 조언해 줍니다.

"삶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을 선택할 수는 있다."(p123)


………………………………………………………………………………


이야기의 줄거리로 표현되어서는,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할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 읽어갈 때보다, 다 읽고났을 때보다, 다 읽은 후 읽어가며 적어놓았던 부분들을 다시 읽어봤을 때보다, 그것들을 정리해 가며 감상문의 얼개를 잡아갔을 때보다, 감상문을 써가는 와중보다, 감상문의 마지막을 쓰고 있는 지금보다, 다 쓰여진 감상문을 읽을 얼마 후(後)보다, 이 세상을 변하게 하지 못할 저이겠지만, 언젠가 만약 세상이 변하여 있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변한 세상에서도 이 소설이 읽혀질 수 있다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소설이다. 지금은 소설이 아닌 그 무엇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설이다."(p322)


란 작가의 바람(願)과 확신은 그 때서야 실현될 것이며, 이 바람과 확신이 부디 실현되어진 과거완료의 시제가 될 수 있길, 저 역시 바래어 봅니다.


밖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현상 이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실체가 있다고 의심한다. 사람 위의 사람, 세상 위의 세상, 뉴스에 나오는 모든 기사가, 권력이 말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보는 가공하는 조직의 구미에 맞게 교묘하게 재편집되거나 주장하는 바를 가리키기 위해 재배치된다. 그 과정에서 사실이란 왜곡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원재료에 불과하다.(p290)


 



 

  1. "우리는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결코 있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p93) --- '스파이'란 직업에 대한 이같은 묘사는 어쩌면 '뛰어난 작가'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2. "변방인, 주변인, 소외된 자, 실패자, 루저, 뭐라 불러도 좋다. 그 모든 구십 퍼센트를 모아 대중이라고 부르자."(p173) --- 이 작품에서 의미되고 있는 바의 '대중'은 사뭇 패배주의적이라 보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패배주의적 시각이 사실이라면, 그건 더 이상 '패배주의적'이라 불리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겠죠. 바로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섬뜩하게 읽혀집니다.
  3. 이처럼 어떠한 개념 - 예를 들어, 이성(理性)이라든가 심지어 죽음같은 것까지도 의인화시키는 주제 사라마구 처럼 - 이 의인화되어 있는 것이라 이 작품을 바라보게 되면, X,Y,Z,B 등은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하의 면면들이라 해석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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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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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에 담겨 있는 10개의 판례들에 대해, 저자 김영란은 "대법원 재직기간 동안 특히 치열하게 논쟁했던 사건들"(p10)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1 여기서! --- '논쟁'이란 단어는, 일견 의아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성문법(成文法)' 체계를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에서 논쟁이라뇨. 성문법의 정의(definition)인, '일정한 절차와 형식을 거쳐서 공포된, 문자로 표현되고 문서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법'2을 기반으로 하여, "무엇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3이 임무(일 뿐)인 판사들, 그것도 대법원 판사들간에, 어떻게 논쟁이란 게 있을 수 있는걸까요?


● 어떠한 수단을 사용했든 간에 권력을 차지한 집단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들을 위해서만 그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집단은 자신들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 마이클 리프 · 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pp306-307, 궁리 刊, 2006.


●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사실(fact)은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세계에서 해석은 늘 강자들의 몫이었다. 진실의 상대성은 법률과 국가의 이름으로 오용되어왔다.

- 손아람 作, 「소수의견」 p439, 들녘 刊, 2010. 

야마다 무네키 作 「백년법」4 '국민의 뜻'이란 명분 하에, 자신들의 삶을 연장하려는 정치인들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통해, 위 주장들의 일례를 소개해주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소설 속 내용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법 자체의 편파성이 아닌, 단지 '법 적용'에 대한 권력의 사익 편취만을 지적하고 있었죠. (지난 보름여 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하태하태한 인물들 중 한 명이자 이 책의 저자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 법관들 사이에 법 적용과 해석함에 있어 발생되는 논쟁은, 입법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 놓치고 있(을 수 있) "헌법에 나타난 국민의 의사"(p12)를 찾아 나서는 과정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를 통해 "'법률에 나타난 의회의 의사'는 다수자를 위한 것으로서 소수자의 기본권 보호5를 도외시하거나 심지어 기본권을 박탈할 수도 있는"(p12)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에 주어진 의무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법원은 입법부가 만든 법을 해석6하는 기관이지만, 입법부의 입법 취지와 달리 해석해야 할 때도 있고 입법부의 부족하고 모자란 지점을 법 해석으로 메꿔야 할 때도 있으며 어떤 시점에 이르면 원래부터 해오던 해석을 폐기하기도 한다.(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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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보수적7일 수밖에 없는 법의 성격, 그리고 그 법이란 것을 해석하는 데 있어 자의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여야 하는 판사의 직업윤리는 언뜻 일반인의 정서와는 배치되는 판결을 낳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이 성폭행을 당했으나, "'사회 통념상' 여자라고 볼 수 없다고 해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p169)라 명시한 판결에서 보여지는 보수성 및,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p46)는 민법 제3조와 연관지어, "인공임신중절에 관해서는 이를 살인으로 보아야 하는지 산모의 자기결정권 행사로 보아야 하는지 아직도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없는 상황"(p46)등과 같은, 또 다른 의미의 보수성을, 현실 속 사법(제도)은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지요.8 하지만,


이같은 사법부의 보수적 법감정과는 반대로, 민간, 특히 재벌기업들의 법규정 이용은 그야말로 '창의적'9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삼성사건'을 가리켜, 저자는 "삼성이 먼저 연구하고 법이 뒤늦게 쫓아간다는 항간의 속설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된 사건"(p75)이라 자인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방향규범10적 역할로서의 법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토로하고 있기도 하지요. 물론,


명예훼손에 대해 유난히 경직적인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11하에서 --- 산후조리원 이용후기를 게시한 피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 등12, 대법원 나름대로는 '시대의 변화'13에 발맞춘 행보를 위한 노력 역시 존재하고 있다라 소개하며, 이러한 현실 및 변화에 대해 저자는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p294)란 버지니아 울프의 글귀를 인용하며, "법에도 미지의 어둠이 있으며, 그 어둠 속을 헤메는 것은 미지의 미래를 뚫고 나가는 유일한 방법"(p295)이라 생각해주길 바란다라는, 지극히 쌔~앰스런 당부 또한 잊지 않고 계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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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두 권의 책, 「세상을 바꾼 법정」과 「칠드런 액트」에도 등장했었던 '죽을 권리'에 대한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은 어떠했던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 이 책을 펼쳤던 가장 큰 이유였더랬습니다. 제 기억에도 남아 있는, 일명 '김 할머니 사건'의 판결에 대한 저자의 견해 역시 매우 궁금했기도 하고 말이죠. --- 2009년, 대법원은 "김 할머니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지하는 것이 옳다"(p30)란 판결은 내립니다. 우리나라에서 "품위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p30)가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최초의 순간이었었지요. 이 판결에 대해 저자는 우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진다"(p32)라는 헌법 제10조는 "헌법상 개개인은 자신의 사적인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 자기운명결정권을 행사하는 데에 방해나 방해의 위험이 있으면 국민 각자는 그 방해의 배제와 예방을 국가에 청구할 수 있다"(p32)는 의미로까지 확장될 수 있기에, 김 할머니 생전의 의사(意思)와 의학적 상태 및 종교관 등을 고려해볼 때, 연명치료의 중단 즉, '죽을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 옳다14라 보았다15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적인 일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잇는 권리'는 과연 '자살할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함하는 것일까요? 이에 관해, 우리나라 법률은 명시적으로 자살을 금지 또는 규제하고 있지는 않으나, 간접적인 방식16으로나마 "자살을 규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p33)라 저자는 해석합니다.17 그렇다면, 대체 국가는 어떠한 이유로 개인의 권리행사에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일까요? --- 저자는 그 이유로 "한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입장"(pp30-32)을 들고 있는데, 저 개인적으론, 종교적 신념과 실정법간의 충돌에 대한 다음의 견해가, '자살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정당하다는 데에도 예의 인용될 수 있는, 어쩌면 오히려 더 정확한 설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신앙과 그 실천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종교의 자유에 관한 수정헌법 1조에서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인 불가침의 인권입니다. 국가는 이러한 권리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따른 실천은 국가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만일 미국 내에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믿는 종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 종교를 믿는다고 합시다. 신자들이 그러한 종교를 빋는 것 자체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면 그들의 행동은 실정법에 저촉될 수밖게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실정법이 우선합니다.

- 마이클 리프 · 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p47, 궁리 刊, 2006.마이클 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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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가 아닌 사람들도 흥미를 느낄 만한 판결들을 비교적 비법률적인 시각에서 설명하고자"(pp13-14)한 저자의 노력이 너무도 지나쳤던 것일까요?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다는 이 책 속 10개의 판결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그다지 치열하지 않을 뿐18만 아니라, 솔직하게 말해 핵심을 집어주고 있지도 못했다란 느낌 뿐입니다. 좀 심하게 말해보자면 --- 굳이 '10대 논쟁'을 채우기 위해 10개의 사건들로 책을 채워내기 보다는, (굳이 '몇대'란 형용구를 넣었어야 했다면) '5대'나 '3대'쯤으로 줄여, 각 사건들의 판결 뒤에 놓여져있는 이론적·논리적 배경들과 외국의 유사사례 등도 함께 소개해주는 방식을 선택했었더라면 차라리 훨씬 더 알찬 내용의 책이 되지 않았었을까하는 아쉬움이 크네요. (그나저나, 법 관련 책을 몇 권 읽어보니, 「세상을 바꾼 법정」이란 책이 새삼 굉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란 점을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법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강추!)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수도 있는) 책들

-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궁리 刊, 2006.

- 김석 著 「법철학 소프트」, 박영사 刊, 2015.

- 김두식 著헌법의 풍경

- 유시민 著 후불제 민주주의

 

 

 



 

  1. 출판사에서 붙였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한국사회를 움직인 대법원 10대 논쟁>이란 부제는 지나친 과장 뿐만이 아니라, 심한 진부함마저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2. 네이버 백과사전.
  3. 이언 매큐언 作 「칠드런 액트」 p53, 한겨레출판 刊, 2015.
  4. 애플북스 刊, 2014.
  5. "다수결의 원리를 토대로 한 기관인 국회나 행정부에서 할 수 없는 일"(p12)
  6. ​⁠법의 해석에도 물론 "법관의 자의(恣意)를 방지하고 영구미제를 막기 위해 채택한 증거재판주의, 입증책임"(p130)등의 원칙적 제약이 부과되어 있기는 하지요. - 김석 著 「법철학 소프트」, 박영사 刊, 2015.
  7. ​"법이 본래 보수적이라는 데 대해서는 일반인이건 법조인이건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보수(保守)란 말 그대로 '보호하고 지키는 것'인데, 이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법의 본질이고 사명입니다."(p77) … "법이 사회 변화에 추수적이고, 지배적 질서가 형성된 후 이를 최후적으로 선언한다는 점에서 법은 생성적으로 보수적 성격을 갖습니다."(p79) - 김석, 위의 책.
  8. 이밖에, 동성간의 결혼에 대한 법의 판단에 관해서도 대한민국의 사법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혼인신고서에 대해 가족관계등록부 등재를 거부하는 행정으로 불허하고 있는 정도지요. 이와 관련해 저자는 "혼인만큼 뜻깊은 관계는 없다. 혼인은 사랑, 충실, 헌신, 희생과 가족이라는 최고의 이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된다. … 상고인들은 자신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하기에 그 속에서 충족을 구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p185)라는 앤서니 캐네디 미대법관을 판결을 인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반면, 같은 법학자인 김두식 교수는 자신의 저서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일부 법학자들은 우리 헌법 제36조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혼인과 가족생활은 오직 양성 사이에서만 보장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 권리의 극대치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헌법은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와 제도의 최소한을 규정한 것이지, 최대한을 규정한 것이 아닙니다. 이 헌법규정을 만든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역사적, 법률적 차별에 대한 반성으로 양성평등을 규정했을 뿐, 성별에 관한 평등은 오직 양성 사이에서만 성립한다고 제한한 것이 아닙니다."(pp72-73)라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정서상 동의여부와는 관계 없이) 법적으로 동성간 결혼이 허용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요.
  9. "법 분야에서 창의성은 주로 과거의 사건들을 분석하여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법 자체를 확대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p149) -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 앨런 더쇼위츠.
  10. "어떻게 결정해도 좋지만 어떻게든 통일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규범, 이른바 방향규범의 존재는 법과 도덕이 구별된다고 하는 뚜렷한 징표"(p23) - 김석, 위의 책.
  11. "첫째는 민사상 책임뿐 아니라 형사상 책임까지 함께 물을 수 있다. … 형사상 명예훼손은 고의범만 처벌되는 데 비해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은 과실의 경우에도 성립할 수 있다.… 둘째는 허위가 아닌 '사실'을 밝힌 경우에도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 …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의 경우에도 형사상 책임을 지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외에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조항이다."(pp 86-87)
  12.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그것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실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부인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국가·사회 등 일반 다수의 이익에 관한 것뿐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공공의 이익'으로 볼 수 있다"(p100)
  13. "소수의견을 판결로 이끌어내기 위한 실질적 조건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지요. 국민의 법감정에 기반한 강력한 여론의 지지, 유능한 변호사, 그리고 시대의 변화. … 시대가 바뀐 거예요. 이제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가 된 겁니다." - 손아람 作, 「소수의견」 p105, 들녘 刊, 2010.
  14. "대법원에서는 먼저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단계에 들어선 환자에 대해 진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대법관 전원이 원칙적으로 허용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 사건에서 진료 중단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찬성 9, 반대 4로 의견이 나위었다. 반대의견은 다시 2 대 2로 나뉘었는데, 반대의견 1은 진료 중단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이 사건에서 김 할머니는 회복할 수 없는 사망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기 어렵고, 김 할머니의 치료 중단 의사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편 반대의견 2는 김 할머니처럼 이미 인공호흡기를 단 경우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의 치료 중단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p40)
  15. 당시 대법관이었던 저자는 다수의견 제시자였었다고 합니다.(p297)
  16. "​의사에게 독약을 처방해다라고 요구하고 그 약을 구입해 자실했다면 의사는 자살방조죄로 처벌을 받는다. 만약 자살에 실패했더라도 자살을 시도한 당사자는 처벌받지 않지만 의사는 마찬가지로 처벌을 받는다."(p33)
  17. 덧붙여, "병에 걸린 환자가 자연의 경과에 맡기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될 수도 있다 - 것이다"란 <케네디 메모리얼 병원 대 헤스턴 사건>에 대한 미국 법원의 판결문처럼, 저자 역시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스런 경과에 따라 남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다면 이를 바로 자살할 의도로 치료를 거부한 것이라 하기도 어렵다"(p36)란 견해를 표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18. 치열했던 의견의 대립을 단지 기계적으로 서술해 놓고 있기만 하기에, 해당 글을 읽어가면서는 당시의 치열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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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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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써보자면, 저의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소설이었습니다. 노년의 성(sex)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원인일 수도, 한 번의 입맞춤으로 (노년의) 인생이 흔들릴 수도 있다라는 억지스런 설정에 대한 이해해내지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 수도, 아니 그냥, 심지어 내용과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책의 표지까지, 뭐 하나 제 취향/마음에 드는 걸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라 말하는 게 간단하겠네요. 고로, 소설의 줄거리와는 별 관계 없는 내용의, 개인적 궁금증 정도가 될 감상문을 써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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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헌데 A라는 아이는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모든 인체기관들을 지니고 있는 반면, B는 그저 A로부터 모든 영양분과 심지어 호흡까지도 제공받는 상태이지요. 따라서, A와 B를 분리하게 되면, A는 살 수 있고 B의 생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이 맡고 있는 역할그 쌍둥이의 부모일 수도, 수술을 권유하는 의사라면, 아님 뭐 그저 신문 속 기사를 통해 이를 알게 된 아무 관련없는 제 3자라면 - 은 과연, 수술을 하여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란 당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요?


이 작품 속 부모는 가톨릭 신자로 설정되어 있고, 그들은 "하느님이 생명을 주셨고, 하느님만이 그 생명을 거둘 수 있다"(p41)라는 이유로 분리수술을 반대합니다. 즉, 수술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수술을 했다면 살 수 있는 A가 죽게된다 하여도 수술을 허락할 수 없다라는 거지요. (실제 가톨릭의 교리가 정말 이러한가요? --;;)


한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추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쌍둥이를 분리하면 매슈(B)가 죽었다. 쌍둥이를 분리하지 않으면 부작위로 인해 둘 다 죽었다. … 이 문제는 결국 차악의 선택으로 결론지어야 했다.(p42)

이걸 '판단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님 '사실규정의 문제'로 이해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인 피오나 판사는 '차악의 선택'으로 분리수술을 명령합니다. 이 수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B를 죽이는 행위"가 아닌 "A를 살리는 행위"1로 규정지어놓음으로, 한 생명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처럼,  

"법정은 도덕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장소이며 … 상황에 맞는 적절한 법리를 찾는 것이 우리(판사)의 과제요,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p42)라는 명제에 대한 사례를 보여주며 시작한 이 소설은 곧바로 --- 이 명제에 도전하는, 작품의 주요 모티브격의 사례를 이어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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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의의 증인' 신자의 수혈 거부 문제를 처음 접해보았던 건 박경철C의 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2에서였었습니다. ---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온 일곱 살 어린이의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며 대체제를 사용한 수술을 요구합니다. 저자는 수혈을 하지 않겠다라 부모에게 약속하고는 실제 수술에선 수혈을 했지요.3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어쨌든, 그 부모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것이었던 이 행동, 그리고 이 행동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신 있게 세상에 공개할 수 있는 배경엔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는 것과 아이에게 수혈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4 …… 어린 자식의 운명까지 부모의 신념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5"라는 박경철 개인의 주관적 견해, 그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6 여기서!

박경철은 "만약 환자가 성인으로서 스스로 수혈 거부를 했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7이라 적고 있습니다만 ---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던 스물두 살의 헤스턴 양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의료진은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판단했으나, 역시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던 그녀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고, 병원은 이에 대해 수혈을 승인할 법정 후견인을 내세워 결국 수술을 했고, 헤스턴 양을 살려냅니다. 헌데! 살아난 헤스턴과 그녀의 가족이 "종교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8라는 사유로 병원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요. 이에 대한 미국 뉴저지 주 대법원의 판결은 "개인적 권리보다는 생명을 보호해야하는 정부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9라는 이유를 들어, 만장일치로 헤스턴 측의 소송을 기각합니다. (성인인 여호와의 증인 환자에 대한 동의 절차 없는 수혈 역시, 최소한 뉴저지 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판례가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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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려야하는 의사가 아닌 저에게, 특정 종교의 수혈 거부 문제 자체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10 그러하기에 --- '여호와의 증인' 신자의 수혈 거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이 작품을 펼쳐든 이유는 오로지, 어느 쪽으로의 판결이 내려지건, 그 판결의 배경에 깔려 있는 법적 논리를 알고 싶다라는 궁금함, 단 하나뿐이었었지요. 작가 이언 매큐언이 보여주고 있는 논리는 아주 간결합니다.

 

"본 판결에서 A의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A의 생명입니다."(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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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법철학 소프트」에서 저자가 밝혔던, 사법불신의 몇몇 원인들은 충분히 수긍되는 것들이었었지요. 하지만 --- 사법적 판결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이, 그러한 객관적 제반 상황들로부터 야기되는 부분보다는, 사법부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와 사법부 본연의 임무 자체가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게 더 큰 이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이 작품 속 (1/5의 만족도에서 1점을 더하게 해준 요인이기도 한) 다음의 구절로부터 가져보게 됩니다.


"그녀의 직무 혹은 사명은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p53)

사법(司法)의 역할이란 게 정녕 --- (정의롭지 않음에 대한 응징과 처벌을 통한) '정의의 구현'과 같은 실천적 의미11가 아닌, 단지 '무엇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기능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일까요? 요즘 TV에서 보여지는 현실에서의 입법(立法)은 엉망진창으로 흘러가고 있거늘,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속 사법(司法)은 갈수록 흥미진진한 주제가 되어주네요.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궁리 刊, 2006.

- 김석 著 「법철학 소프트」, 박영사 刊, 2015.







 

  1. ​"수술의 목적은 매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크를 살리는 것이었다. … 수술 후에 매슈는 사망하겠지만 그건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 자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p44)
  2. 리더스북 刊, 2005.
  3. "그때만 해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만 있다면 일단 수술부터 하고 보는 것이 원칙이었다. … 당시 우리들의 젊은 혈기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부모를 격리실에 잡아 가두는 일이라도 불사했을지 모른다." - 박경철, 위의 책, pp32-33.
  4. 박경철, 위의 책 p35.
  5. 박경철, 위의 책 p38.
  6. 박경철의 주관적 견해는 의사로서의 판단을 넘어서는 극단적 편파성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 "그들에게는 마치 자식의 생명보다 수혈의 문제가 더 중요한 듯했다", 박경철, 위의 책 p33.
  7. 박경철, 위의 책 p35.
  8.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궁리 刊, 2006. p35.
  9. 마이클 리프 외, 위의 책 p35.
  10. "여호와의 증인이 수혈을 거부하도록 명령받은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 1945년의 일이에요. … 그 전까지 수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pp112-113)
  11. "법은 '사회구성원이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당위에 관한 규범', 이른바 '당위규범'"이란 「법철학 소프트」의 저자 김석의 견해를 따른다 해도, 법은 단지 당위를 지키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처벌에 관한 규정만을 담고 있을 뿐이며, 당위를 강제할 수 있는 실천적 수단은 결코 아닌 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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