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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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theory에서 가정되는 'Perfect Knowledge'란 게 있습니다. '너의 다음 행동을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알고 있다라는 걸 너도 알고 있고, 너가 알고 있다라는 그것 역시 나는 알고 있고 … '와 같은, 앎의 무한이 반복되는, 한 마디로 결론은 이미 나와있고!식의 가정이지요. 이러한 'Perfect Knwledge'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때가 바로 --- '읽는다'라는 행위를 하기 위해 눈이 필요한 것처럼, '읽는다'란 행위는 또한 저에겐 노트북이 함께 있어야만 가능해지는 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읽어가면서 적어놓고, comment를 달아놓고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다 읽고난 후, 그 적어놓은 것들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면, 결말을 알고난 후 그 책의 내용을 다시 읽어본다라는 건, 특히나 그것이 소설일 경우에는, 심지어 추리소설일 경우에는, 어떤 장면/구절이 무엇을 의미했던 것인지에 대해 종종 무릎을 탁!하고 치며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맛보게 해주죠.


밖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현상 이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실체가 있다고 의심한다. 사람 위의 사람, 세상 위의 세상, 뉴스에 나오는 모든 기사가, 권력이 말하는 것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정보는 가공하는 조직의 구미에 맞게 교묘하게 재편집되거나 주장하는 바를 가리키기 위해 재배치된다. 그 과정에서 사실이란 왜곡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원재료에 불과하다.

- 박주영 作, 「고요한 밤의 눈」중 p290, 다산책방 刊,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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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임무는 … 사실을 사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지."(p243)


​사실을 사실로 믿지 못하는 것이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기도 합니다만, 스파이의 세계에서는 누군가에게 사실을 사실로 믿게 하는 것마저 작전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 리머스는 상대방에게 '사실을 사실로 생각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결국 리머스가 알고 있는 사실이란 것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라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눈먼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맹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p270)해 낸 것이지요. "왜곡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원재료에 불과"하다란, 진실에 대한 작가 박주영의 정의(definition)는 예의 이 작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에도 적용되어 --- 진실이란 고작 "거짓을 입증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무기"(p271)의 역할만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 그 자체로는 스스로의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거지요.  

이 작품을 다 읽은 저에겐, 일종의 'Perfect Knowledge'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계산된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p86)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만, 작가 존 르카레는 작품을 읽어가는 과정 속 독자에게, 심지어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게까지도 '진실과 거짓의 구분'에 대한 커다란 게임을 제시해주고 있지요. 이 게임을 풀어감에 있어, --- "그들의 지식과 자만심을 이용해서 그들이 서로 의심하도록 하게.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일세"(pp104-105)란 작품 속 구절이 어쩌면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어 주는 하나의 힌트였을지도 모른다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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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을 뜬 사회의식이 지배 계급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켜 일어난 사건"(p114)과 같은, 공산당원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비판도 간간히 볼 수 있습니다만, 작가 존 르카레의 지적은 비단 한 쪽만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개인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집단의 요구뿐"(p132)란 공산당원의 주장은 결국, 민주주의를 수호해내기 위한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성립되기에, 그 비난이 공산당원만을 향하여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공교롭게도 지금은 그들에게 문트가 필요하니까. 당신이 찬미하는 어리석은 대중들이 밤에 침대에서 단잠을 잘 수 있게 하려면 문트가 필요하니까. 당신과 나 같은 평범한 서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문트가 필요하니까."(p246)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이 제게 알려주었던 교훈인 "선과 악은 사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그 반대의 것이 없는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1이란 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대립에도 여전히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라는 것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메시지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면서도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p275)


이 작품의 해설격인 글에 실려 있는, 작가 존 르카레가 「러시아에, 인사와 함께」라는 글에서 밝힌 위의 질문은 여전히 대답되어지지 않은 의문일 수밖에없으며, 어쩌면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단지,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 준다"(p17)라고까지만 말하고 싶은 뿐이라는 거지요. 암튼!!! 


​"타고난 스파이, 습관적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사람이 경험을 '제거할' 필요가 생겼을 때 무엇을 하겠는가? 소설을 쓴다. 그런 소설이 그2의 소설이다."(p280)

역자 김석희의 이 한 마디는, 이 작품을 향한 최고의 아름답고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멋진  한 편의 소설은 이렇게, --- CIA에 취직하고자 했었던, 젊은 날 저의 한 때 (나름 진지했었던) 꿈을 다시끔 떠올리게 해주었네요. 아~ 옛날이여! --;;



 

  1. 악마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끝내겠다 말하는 악마의 제안을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절하지요. --- "내가 대표하는 선은 자네가 대표하는 악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 자네 없이 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자네가 끝나면 나도 끝나는 거야, 내가 계속 선이려면 자네가 계속 악이 되는게 긴요해, 악마가 악마가 아니면 하나님도 하나님일 수 없는거야." - 주제 사라마구 作, 「예수복음」중, 해냄 刊, 2010.
  2. "<뉴스위크>의 조사에 의하면 영국 정보부(SIS 혹은 MI-6)의 스파리고 근무했다고 함. 작가 자신은 오랫동안 부인했지만 한 정보통에 의하면 외무부에 들어가기 전에 방첩부(MI-5) 소속의 스파이로서 맥스웰 나이트라는 가명으로 근무했다고 함."(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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