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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결론부터 써보자면, 저의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소설이었습니다. 노년의 성(sex)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원인일 수도, 한 번의 입맞춤으로 (노년의) 인생이 흔들릴 수도 있다라는 억지스런 설정에 대한 이해해내지 못하는 편협함 때문일 수도, 아니 그냥, 심지어 내용과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책의 표지까지, 뭐 하나 제 취향/마음에 드는 걸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라 말하는 게 간단하겠네요. 고로, 소설의 줄거리와는 별 관계 없는 내용의, 개인적 궁금증 정도가 될 감상문을 써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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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헌데 A라는 아이는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모든 인체기관들을 지니고 있는 반면, B는 그저 A로부터 모든 영양분과 심지어 호흡까지도 제공받는 상태이지요. 따라서, A와 B를 분리하게 되면, A는 살 수 있고 B의 생명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이 맡고 있는 역할 - 그 쌍둥이의 부모일 수도, 수술을 권유하는 의사라면, 아님 뭐 그저 신문 속 기사를 통해 이를 알게 된 아무 관련없는 제 3자라면 - 은 과연, 수술을 하여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란 당신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요?
이 작품 속 부모는 가톨릭 신자로 설정되어 있고, 그들은 "하느님이 생명을 주셨고, 하느님만이 그 생명을 거둘 수 있다"(p41)라는 이유로 분리수술을 반대합니다. 즉, 수술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수술을 했다면 살 수 있는 A가 죽게된다 하여도 수술을 허락할 수 없다라는 거지요. (실제 가톨릭의 교리가 정말 이러한가요? --;;)
한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추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쌍둥이를 분리하면 매슈(B)가 죽었다. 쌍둥이를 분리하지 않으면 부작위로 인해 둘 다 죽었다. … 이 문제는 결국 차악의 선택으로 결론지어야 했다.(p42)
이걸 '판단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님 '사실규정의 문제'로 이해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인공인 피오나 판사는 '차악의 선택'으로 분리수술을 명령합니다. 이 수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B를 죽이는 행위"가 아닌 "A를 살리는 행위"로 규정지어놓음으로, 한 생명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처럼,
"법정은 도덕이 아니라 법을 다루는 장소이며 … 상황에 맞는 적절한 법리를 찾는 것이 우리(판사)의 과제요,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p42)라는 명제에 대한 사례를 보여주며 시작한 이 소설은 곧바로 --- 이 명제에 도전하는, 작품의 주요 모티브격의 사례를 이어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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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의의 증인' 신자의 수혈 거부 문제를 처음 접해보았던 건 박경철C의 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에서였었습니다. ---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온 일곱 살 어린이의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며 대체제를 사용한 수술을 요구합니다. 저자는 수혈을 하지 않겠다라 부모에게 약속하고는 실제 수술에선 수혈을 했지요.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어쨌든, 그 부모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것이었던 이 행동, 그리고 이 행동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신 있게 세상에 공개할 수 있는 배경엔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는 것과 아이에게 수혈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 어린 자식의 운명까지 부모의 신념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라는 박경철 개인의 주관적 견해, 그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박경철은 "만약 환자가 성인으로서 스스로 수혈 거부를 했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적고 있습니다만 ---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던 스물두 살의 헤스턴 양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의료진은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판단했으나, 역시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던 그녀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혔고, 병원은 이에 대해 수혈을 승인할 법정 후견인을 내세워 결국 수술을 했고, 헤스턴 양을 살려냅니다. 헌데! 살아난 헤스턴과 그녀의 가족이 "종교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라는 사유로 병원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요. 이에 대한 미국 뉴저지 주 대법원의 판결은 "개인적 권리보다는 생명을 보호해야하는 정부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라는 이유를 들어, 만장일치로 헤스턴 측의 소송을 기각합니다. (성인인 여호와의 증인 환자에 대한 동의 절차 없는 수혈 역시, 최소한 뉴저지 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판례가 있는지까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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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려야하는 의사가 아닌 저에게, 특정 종교의 수혈 거부 문제 자체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 '여호와의 증인' 신자의 수혈 거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이 작품을 펼쳐든 이유는 오로지, 어느 쪽으로의 판결이 내려지건, 그 판결의 배경에 깔려 있는 법적 논리를 알고 싶다라는 궁금함, 단 하나뿐이었었지요. 작가 이언 매큐언이 보여주고 있는 논리는 아주 간결합니다.
"본 판결에서 A의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A의 생명입니다."(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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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법철학 소프트」에서 저자가 밝혔던, 사법불신의 몇몇 원인들은 충분히 수긍되는 것들이었었지요. 하지만 --- 사법적 판결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이, 그러한 객관적 제반 상황들로부터 야기되는 부분보다는, 사법부에 대해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와 사법부 본연의 임무 자체가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게 더 큰 이유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이 작품 속 (1/5의 만족도에서 1점을 더하게 해준 요인이기도 한) 다음의 구절로부터 가져보게 됩니다.
"그녀의 직무 혹은 사명은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p53)
사법(司法)의 역할이란 게 정녕 --- (정의롭지 않음에 대한 응징과 처벌을 통한) '정의의 구현'과 같은 실천적 의미가 아닌, 단지 '무엇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기능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일까요? 요즘 TV에서 보여지는 현실에서의 입법(立法)은 엉망진창으로 흘러가고 있거늘,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속 사법(司法)은 갈수록 흥미진진한 주제가 되어주네요.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궁리 刊, 2006.
- 김석 著 「법철학 소프트」, 박영사 刊, 2015.
- "수술의 목적은 매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크를 살리는 것이었다. … 수술 후에 매슈는 사망하겠지만 그건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 자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p44)
- 리더스북 刊, 2005.
- "그때만 해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만 있다면 일단 수술부터 하고 보는 것이 원칙이었다. … 당시 우리들의 젊은 혈기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부모를 격리실에 잡아 가두는 일이라도 불사했을지 모른다." - 박경철, 위의 책, pp32-33.
- 박경철, 위의 책 p35.
- 박경철, 위의 책 p38.
- 박경철의 주관적 견해는 의사로서의 판단을 넘어서는 극단적 편파성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 "그들에게는 마치 자식의 생명보다 수혈의 문제가 더 중요한 듯했다", 박경철, 위의 책 p33.
- 박경철, 위의 책 p35.
-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궁리 刊, 2006. p35.
- 마이클 리프 외, 위의 책 p35.
- "여호와의 증인이 수혈을 거부하도록 명령받은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 1945년의 일이에요. … 그 전까지 수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pp112-113)
- "법은 '사회구성원이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당위에 관한 규범', 이른바 '당위규범'"이란 「법철학 소프트」의 저자 김석의 견해를 따른다 해도, 법은 단지 당위를 지키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처벌에 관한 규정만을 담고 있을 뿐이며, 당위를 강제할 수 있는 실천적 수단은 결코 아닌 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