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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냄새가 난다
하국상 지음 / 고슴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문학'이란 것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에 대해 저로서는 사전(事典)이 제시해 주는 수준 이상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특정 글이 문학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를 결정함에 있어, '글의 형식'에 주안점이 주어져야 하는지, 혹은 '글이 담고 있는 주제/메시지'가 더 중요한 것인지를 제가 가늠해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책에 실려있는 아홉 편의 소설들을 향해 "과연 소설이긴 한 것인가"(p280)란 의문을 가져본다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소설이 아니래도 상관없다" (p284)란 문장을 작가의 답변으로 예측해 본다는 <작품해설>은 이해되지도 않으며,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글들을 '소설'이라 표현하였고, 거기에 더해 작가 스스로 이 소설들을 쓴 "목적은 특정한 분야의 관심에 집중해서 그 분야의 사람들에게 읽히는 문학을 시도하는 것"(p286)이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설명충이 되지 않기 위해 독자층을 한정" (p286)할 수 밖에 없었다 토로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결국 '진지함에의 재고(再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매우 멋진 전개의 이야기들로 그 '진지함'을 잔뜩 표현해내고 있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고로, 이 아홉 편의 소설들을 그저/단지 "야구라는 소재 자체에 대한 고찰"(p284)로만 이해하는 건, 작품 속 구절을 빌어 표현해보자면 --- "우리는 야구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다시 말하면 방망이로 공을 쳤을 때 손에 남은 쾌감을 일주일 간 간직하기 위한 스포츠로 지나치게 축소해서 경험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p31)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단순화일 뿐이라 말하게도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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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국상"
뭔가, 평범하다 말할 수는 없겠는 작가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 오래 전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이 책에 실려있는 아홉 편의 소설들을 아니좋아할 수 없을거라 장담합니다. --- '하국상'이 작가의 실명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아마도 <공포의 외인구단>속 한 등장인물의 이름로부터 자신의 필명을 차용해 온걸꺼라는, 그것도 혼혈 캐릭터라는 국외자들 중의 국외자를 선택함으로써 "덕후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p287)란 자신의 소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 추측해보는 것이, 덕후 작가가 쓴 '덕후를 위해 쓰여진 소설'을 읽는 (덕후이건 아니건) 독자의 예의일 꺼라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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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가 되려 했으나 실패, KBO 직원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는 작가 하국상은 "야구팬은 세상 모든 것을 야구에 빗대어 말할 수 있고"(p137)라 말합니다. 야구를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보는 것 뿐 아니라 실제 사회인 야구팀에 가입도 했었던 저이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사이판 전지훈련장에까지 '여행'이란 탈을 쓰고 쫓아갔었던 저이기도 하지만 --- 세상 모든 것을 야구에 빗대어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작가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그저 야구팬'과 '야구주의자'라는 두 개의 부류로 나누어 설명해줍니다. 이 두 부류 모두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보고 즐기는 사람들"(p202)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하지만! 그저 야구팬들이 보고 즐기는 것에서 그친다라면, 그리하여 그들의 즐거움이 다른 운동이나 취미로 대체가능하다라면, 다시 말해 단지 "야구를 소비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면, --- 야구주의자들은 야구로부터 대체 불가능한 기쁨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책임감을 갖는다"(p203)라 작가는 정의/묘사하고 있습니다.
'야구주의자'일 것이 확실해 보이는 작가 하국상은 아홉 편의 소설들을 통해 "유격수가 없는 야구, 12인제 야구, 시계 방향으로 주루하는 야구, 어느 방향이든 선두 타자가 뛰는 방향으로 그 회의 주루방향이 정해지는 야구, 모든 선수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뛰는 야구, 4루까지 있는 야구, 전 이닝의 주자가 살아나는(잔루가 없는) 시카고의 야구, 공 두 개로 하는 야구,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처리한 야수부터 반격 타순이 시작되는 야구"(p0155-156)등,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과거의 야구들을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야구규칙들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와 어떻게 정립되어 왔는가를, 즉 "야구는 발명된 게 아니다. 수백 년 동안 바뀌면서 지금 모습으로 진화했다"(p148)란 사실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야구는 과학이다'란 생각까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도 될만큼 정교한,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로 대변되는 여러 지표들의 이용에 대해서조차 그럴듯한 시계열적 추론을 통해, "야구는 형식이 전부가 아니야"(p230)라는 사뭇 감성적인 메시지를 건네주고도 있지요.
대개의 사람들은 승리 말고도 다른 가치를 원합니다. 가령 구단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승리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입니다.(p252) … 팬들은 감동을 원합니다.(p253) … 멋지게 이기는 것, 혹은 멋지게 지는 것, 야구장 안에서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 야구장 밖에서 멋있게 살아가는 것, 중요한 일에 희생하는 것, 사소한 일에 희생하는 것, 시합을 기억에 남기는 것, 순간을 기억에 남기는 것. 그런 것은 WAR나 WAP, CPA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치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야구는 굉장히 초라해진다고 생각합니다.(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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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이는 '신안군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야구장이 하나도 없는 지자체'라고 말했다. 대체 그런 걸 왜 알고 있는 건지.(p133)
야구를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 이 소설들은 어쩌면, '대체 이런 걸 왜 읽고 있는 건지'란 생각을 갖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그저 야구팬'에겐 타자가 방망이로 타격 전 홈플레이트를 두어 번 두들기는 것이, 기실 스트라이크를 못던지는 투수에게 타자가 보내는 '여기로 던지라고 쪼~옴!'의 메시지로부터 기원되었다라는 등과 같은, 일종의 '야구의 고고학적 발견'스런 잔지식들을 알게되는 재미있는 소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겁니다. 무릇 '야구주의자'들에겐 또한 자신과 작가의 야구 덕력을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도 있겠죠. 당신이 그 어느 부류에 속하건간에 작가 하국상이 말해주는 다음의 글,
"야구는 진지한 게 좋죠."(p15)
는, 사뭇 우리의 일상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이 책 속 아홉 편의 소설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더해! --- '대한민국이라는 야구는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라 말하는 누군가들, 적어도 "아무튼 규칙은 지켰다"(p23)라고, 따라서 '적어도 표면적 공정함은 보장되어 있다'라 말하는 어떤 이들, 그러나 그 회가 거듭될수록 우리들은 대체 왜 "야구에 대한 환멸을 느끼도록"(p26) 변해가기만 하는 걸까,라는 우울한 의문을 가져보게 되었다라는, 그리하여 결국,
"야구가 점점 재미없어진다는 생각을 했지. … 관중을 빼앗아 간 건 투고타저 같은 게 아니라 과거의 야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pp266-267)
2016년의 대한민국이라는 야구보다, 2003년 당시는 별로였다라 생각했었던, 하지만 되돌아보니 그것이 진짜 대한민국의 야구이어야 했었다라는 뒤늦은, 그리하여 심히 우울할 수밖에 없는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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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는 야구시합을 보며 남긴 표현이야. 같은 안타를 누군가는 중견수 앞 안타라고 적고, 누군가는 유격수 뒤 안타라고 적지. 주관은 어쩔 수 없는 기록의 본성이고 우린 그걸 인정해야 해."(p272)
'세련된 문장'으로 쓰여진 글들은 아니라 생각될 수도 있을 겁니다. 표지의 촌스러움은 사뭇 의도적이었을 꺼란 생각도 들지요. 여기에 더해, 뭔가 옛날식 타자기로 친 듯한 착각을 선사해주는 본문의 편집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한 권의 책은, 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엄연히 '소설'이며, 그것도 매우 훌륭한 '소설'이라고 주관적 확신을 가져봅니다. 그러하기에,
당연히 ★표시를 앞세우고 싶으나, "대체 그런 걸 왜 알고 있는건지"라 생각할 수 있는, '그깟 공놀이'인 야구란 경기를 좋아하는 것에 의아함/반감을 지닌 이들에게까지 야구 덕후의 소설을 권하지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 '스포츠 에이전트'가 장래 목표인, 그것도 '스캇 보라스'와 맞짱뜨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꿈인 종원군에겐 당장 오늘 밤! 이 책을 권할 겁니다. 11월에도 우리 팀 좀 한 번 응원해보는게 꿈인, 그게 제 목청이 '부산갈매기'를 미친 듯이 불러제낄 수 있기 전엔 부디 이루어지길 바래어보기도 하는 롯데 자이언츠 팬인 저희 부자가, 다른 리그에서 노는 팀인 듯만 느껴지는 두산과 NC의 한국시리즈를 보기만 하며 맡아볼 수 있는 '야구 냄새'가 아닐까 싶네요. 롯데야, 내년엔 쫌!!!
- "Writings in which expression and form, in connection with ideas of permanant and universal interest, are characteristic or essential features, as poetry, novels, history, biography, and essays." - <Merriam-Webster's Learner's Dictionary>
- 예를 들어, 대중음악의 노래말이 '노벨문학상' 수상의 대상(對象)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
- 김무정 (비평가, 문학박사)
- 고질적인 허리통증으로 오래지 않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 "이들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한 하나의 적절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야구가 어느 날 소멸한다면 당신이 취할 행동은?' 그저 야구팬은 야구가 사라져도 상관없다. 야구를 좋아했지만 거기까지이므로, 야구가 사라지면 다른 운동이나 취미로 야구를 대체하면 된다. 야구주의자라면 야구를 회생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야구장을 다시 짓고 선수를 육성하고 사람들에게 야구를 기억하도록 할 것이다."(p203)
- 심지어 작가는 "야구를 근심하는 사람"(p212)들까지도 그려내고 있지요. 진정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근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도 싶네요. <야구의 실험적 이해>에 등장하는 피터 교수나 <방화범 조계팔>에 등장하는 조계팔 같은 인물은 명시적으로 '야구를 근심하는 사람'이지만, 이외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전부 다 '야구를 근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 "시계 반대 방향으로 주루하는 야구규칙은 왼손잡이가 내야 수비를 하기에 불리한 조건이고 따라서 왼손잡이에게 야구선수로 취직할 기회를 제한하는 차별이라며 메이저리그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 사례"(p155)
-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는 빌 제임스가 창시한 SABR(The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라는 모임에서 만들어진, 야구를 통계학적/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세이버메트릭스는 빌 제임스가 창시한 이래로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으며, 이제는 단순한 개인의 취미 차원을 넘어서 야구 전반에서 쓰이고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창시되었던 1970년대에는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였으나, 1980년대를 넘어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야구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 <위키백과>
- <백년전쟁>편.
- "그는 야구는 기록의 경기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그것은 야구를 지나치게 좁게 규정하는 말이라고 했다."(p89)
- 이 문장을 읽으며,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보며 (롯데가 맨날 져서 배는 아프지만 그래도) 멋있다!라 생각했었던 건, 제가 '그저 야구팬'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전히 롯데의 승리를 갈구하는 야구팬이긴 합니다만, 승리만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걸 이 책 속 소설들을 통해 배웠네요. 한화의 김성근 감독이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건 바로 '초라한 야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