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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ㅣ 주제가 있는 미국사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 한 권력체가 전 세계를 그토록 압도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배한 것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p5)가 '압도성'와 '안정성'으로, ② "오늘날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 하나의 사조를 이루어 미국에 적대적인 사람과 나라들까지 사로잡고 있다"(p5)를 통해서는 그 영향력의 범위와 강도(intensity)를 짐작해볼 수 있는, 미국의 힘을 표현함에 있어, 아무래도 가장 놀라운 것은 --- ③ "미국은 유럽이 2,000년 동안 경험했던 것을 한두 세기로 역사를 압축시켜놓았다"(p6)라는, 그 성장 과정의 급속함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와 같은, 유래 없는 급속한 양질의 성장에 대하여, '지리적 혜택과 더불어 무엇보다, 단기간에 유입된 수많은 양질의 인적 자원이 있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란 저자의 분석은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아, 물론 이 책이 그런 뻔하디 뻔한 걸 말하자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도 아니겠구요. --- <머리말>을 통해 저자가 제시해주고 있는, (지리적 혜택이야 그냥 넋놓고 부러워만 할 수 밖에 없다쳐도) 다른 국가는 해내지 못했던, 그러한 양질의 인적 자원의 블랙홀로 오직 미국(만)이 작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거대한 괴수'가 된 미국의 힘은 훔친 건 아니다. 아니 훔칠 수도 없다. 미국 스스로 만든 것이다. 미국이 무언가를 훔쳤다면 그건 바로 … 미국을 향해 거대한 이민의 물결을 이룬 사람들의 마음이다.(pp6~7)
그렇다면, 이러한 이유로 현재 (중국의 부상이 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강대국 superpower'을 뛰어넘는 '초초강대국 hyperpower'이라 유일하게 불리우게 된 '미국'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기는 하나, 역설적이게도, 그보다 훨씬 더 큰 강도로 질시와 저항의 되어버린 건 또 무엇 때문일까요?
미국의 최대 죄악은 '사이즈'다. 양적 사이즈인 동시에 질적 사이즈다. … 사이즈가 그 자체로서 죄악이라는 건 거대 기업들과 독과점이 잘 말해준다. (p7) …… 우리가 작은 조직에서도 '조직의 논리'를 내세워 개인을 억압할 수 있듯이, 거대 제국은 '제국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느라 때론 작은 나라들을 억압하면서도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둔감해진다. … 대부분의 반미주의는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적 힘이 다른 나라의 자유를 부인하는 역할을 해온 데서 비롯된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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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청교도적 근검 정신"(p59)에 기초하여 성립되었었던, 그리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쯤으로 요약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일종의 상징(emblem)은, 19세기 중반의 일명 '골드러쉬'로 인하여 "승자독식과 일확천금 정신으로 대변되는 '캘리포니아 드림'으로 변질"(p59)되어버립니다.
골드러시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 '캘리포니아 드림'의 정신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일확천금과 승자독식의 정신은 할리우드 영화 산업으로 이어졌다. 스타 시스템은 극단적 빈부 양극화를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작동하는 기본 모델이 되었다. … 할리우드에 이어 실리콘밸리가 그 정신을 이어 받았다. 창의력을 숭배하고 패자부활전을 허용하는 실리콘밸리 문화를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옳지만, 극소수의 20대 무일푼 청년들이 수년 만에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는 재산을 가진 거부로 변신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 마법의 본질이 골드러시가 보여준 게임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p28)
이러한 변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이 수많은 이들의 '꿈 Dream'일 수 있는 이유가, 심지어 장려되기까지 하는 이유란 게 --- "위대한 업적은 반드시 위대하거나 도덕적인 행위의 소산은 아니더라도 위대한 발상의 소산이다"(p34)라는 하워드 민즈라는 한 저널리스트의, 얼핏 읽어보면 사뭇 훌륭하게 이해되어질 수도 있을 주장에 담겨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아메리칸 드림'으로 성장했던 '미국'이란 나라의 어두운 면이 싹트기 시작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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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민즈의 위 주장은 사실, 19세기 후반, 미국 철도 회사 경영자들의 엄청난 부정부패에 대한 (일종의) 옹호의 뉘앙스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 바로 뒤에 이어지는 하워드 민즈의 말이란 게, "미국은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한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뜯어먹은 것의 수천 배를 돌려받았다"(p34)이지요. 한 마디로, A라는 특정 현상을 통해 사회적 복지의 극대화 (혹은 비약적 증대)가 이루어졌다면, 그 A라는 특정 현상이 발생될 수 있었던 과정 속 잘잘못들은, '위대한 발상'이라는 대의(大義)로 묻어줄 수 있다/묻어주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암튼!
이와 같은 frame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도와주기 위한 역사적 사실과 사례들의 소개가, 이 책의 주된 내용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 처세술의 달인으로 알려진 데일 카네기는 '나는 이미 행복하다는 듯이 행동하라. 그러면 정말로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좋고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생각이 그것을 만들어낼 뿐이다"(p200)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셰익스피어의 이 문장이,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류의 자기최면에 사용되어질 수 있겠으나, 또한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 이미 이룩되어있는 현상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무비판적 수용을 종용하는 것으로도 악용될 수도 있지요. 그리고/그렇게,
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 Edward A. Murphy
그 유명한 '머피의 법칙'은 여기에도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 1791년 통과된 '총기를 보유하고 간직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란 수정 헌법 제2조는 사실 "정부의 독재와 횡포에 대한 공포"(p304)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었거늘, 개인이 총기를 소지하는 용도가 (최소한 현재의 미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정부의 독재와 횡포'에 저항하기 위함이 아님이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명적 부작용들에마저 "좋고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생각이 그것을 만들어낼 뿐이다"라는 식의 왜곡이 가해져서는 곧바로,
외부의 '타자들'에 대한 전쟁이 민간 사업자들과 주식회사에 합법적인 이윤을 가져다준다고 하면, 내부의 '타자들'을 상대로 한 '범죄와의 전쟁'이 '우리들' 가운데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지 말아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p313)
와 같은 자본주의식 주장이 탄생하게 되는 겁니다. 저자 강준만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미국은 '범산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가 자아내고 있는 "징벌 민주주의 punishin democracy"(p318)의 상태에 있다고 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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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공유'라는 건, 어쩔 수 없이 '지식의 습득'을 전제로 한다라 생각합니다.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가 그러했었죠. 그 노래 가사의 배경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그 노래에 대한 감상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 'one-drop rule'이란, 참 말도 안된다라 생각되는 가치관이 여전히 횡행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고작 몇십 년 전에 Billie Holiday라는 가수에 의해 불리어졌던 <Strange Fruit>이란 노래 역시, 아무 생각없이 들었던, Annie Lennox가 부른 노래로만 흘려들어왔던, 이 노래의 배경과 가사를 이 책을 통해 알게되고, 다시 보고나니 이게 참... (아래의 동영상엔, 충격적인 화면이, 아주 많이 충격적인 장면들이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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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을 실용적으로, 쿨하게 볼 것을 제안한다. 그런 자세는 미국을 보는 내 기본적인 시각이며, 이 책의 기조이기도 하다. (p11)
정통 역사서도 아닌, 그렇다고 작정하고 쓰여진 사회학 서적일 수도 없겠는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미국의 모습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될 거란 기대같은 걸 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그저, 앞으로 읽으려 하는 전형적 미국 소설들(?)에 대한 사전 준비 운동 쯤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하기에,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실망이나 환호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이란 나라를 '실용적으로, 쿨하게' 보자는 저자의 주장엔 저 역시 동감하나, 그 '실용적이고 쿨하게'란 것이 --- "욕하면서 배우는 건 가증스러운 위선인가"(p9)란 저자의 인식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욕하는 대상으로부터는 배울 것도 없을 것이라든가, 혹 배울 것이 있어도 배워서는 안 된다라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A라는 점을 향해서는 심하디 심한 비난을, B의 지점으로부터는 배움을 가지는 것은,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허나!
동일한 A라는 현상에 대해, 자신이 필요한 단물은 모두 다 빼먹은 뒤, 그러니까 A로부터 배울 건 다 배운 뒤, 그 A에 대해 '배워봤더니 별 거 아니더라~'라는 수준의 비난을 떠들어 대고, 그 판단을 강요하며,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이 A를 배우려는 것을 막기까지 하는 작태는 '가증스러운 위선'을 훨씬 뛰어넘는... --;; (뭐 자세하게는 쓰지 않겠지만, 관련하여 --- 전, 이재정 같은 인물이 경기도의 교육감을 하고 있다라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의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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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주제가 있는 미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의 일부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라 합니다. 전 이 책을 사고나서야 그걸 알았고, 행여 미리 알았었더라도 컴퓨터 화면으로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 저이기에 사겠다면 샀었을 겁니다... 만, 뭐 꼭 저같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네이버로 보셔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부터... '미국'에 관한 소설들에 빠져보겠습니다.
※ 대놓고 쓴, 미국에 관한 소설 : 「지구영웅전설」
...금연 178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