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도 갈 수 있고, 또한 미래의 아무 시점이나로도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의 개발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허나, 2002년 개봉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온갖 디지털 기술들은, 당시만 해도 '세상에 저럴 수가!'라며,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냈을 뿐, 그런 기술들의 실현을 내 생전에 볼 수나 있을까 했었었거늘,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영화 속 기술들의 현실화는 불가능이 아닌, 이제 몇 발만 더 내디디면 얼마든지 닿을 수 있는 거리로 좁혀져 있다고도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복제'가 아닌) '완벽한 창조'란 것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일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이것이 당위의 문제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듯 하나 어쨌든) '하나님(God)의 영역'으로만 남아있게 된다면, 즉, '타임머신'의 개발과 같이 불가능의 영역에 속해 있는/해야 하는 문제라면 --- '인간형 로봇'이라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제품'이라는 한계에 지극히 충실하고 있는 그 대안은, 그렇게는 머지 않은 미래에, 그걸 원한다 원하지 않는다와 상관 없이, 우리의 삶 속 일부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암튼!
"수레를 예견한다는 건 그걸 만들어 낸다는 것(to predict the wheel is to invent it)"이란, 칼 포퍼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견해, 그러니까 미래란 걸 예측한다는 건 논리상 불가능하다란 주장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또, (그렇다면 아예)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이란 앨런 케이의 적극적 견해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자, 과학이 이제까지 이루어 온 것들의 축적인 현재와, 앞으로 이루어 갈 미래에의 '예측'에 대해, 우리의 문학은 (부정적이건 적극적이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
one-by-one game인 (심지어 시간의 제한까지 부과되어있는!) 바둑의 경우,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애초부터 거의 0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바둑 기사들이 '감(感)'이라 표현했던 그 무엇의 위력이란 게, 실제 존재할 뿐 아니라, one-by-one game이라는 바둑의 형식마저 제압해낼 수 있는, 그처럼 대단한 것이었을 수도 있기에, 이세돌에게 희망을 걸어본 것이었었죠. 알파고는 이세돌보다, 커제보다 강한 바둑실력을 지니고 있었었지만,
작가 구병모는, 이 작품에 등장시킨 '인간형 로봇' 은결을 통해, 여전히,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학습'이란 인위적 행위의 결과로서가 아닌, 결국 어쨌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말하게 되는, '감정'이라는 추상적 명사를, 인간이 '인간형 로봇'에 대해 지니고 있는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것'이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슨 수로 인간은 그 다양한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말 한마디를 골라 건넬까. 눈앞의 사람이 아픈지 슬픈지 분하거나 억울한지 또 달리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마이크로 단위의 시간동안 확정하고 가장 그럴듯한 조치를 취할까. …… 울음과 웃음이 한 얼굴에 존재하는 게 사람에게는 범상한 일일지 모르나 은결은 이런 아이러니를 분석 및 정렬하지 못한다. (pp108~109)
하지만, 이러한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감정이란 실체가, 정작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 또는 억제되는지, 우리는/도 알지 못합니다. 선천적인 면도 있겠으나, 감정 형성의 일정 부분, 어쩌면 과반의 부분들이, 생물학적·사회적 나이를 들어가며 후천적인 면들에 의해 생성되고 유지, 억제되는 것일 수도 있다라는 추측을, 작가 박주영은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해 주었었죠.
"인간은 DNA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기억의 총합입니다."
- 박주영, 「고요한 밤의 눈」중 p36, 다산책방, 2016.
별 무리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박주영의 추측을 따르자라면, 인간이란 존재의 고유함이란 게 결국, 이처럼 그 알지 못하는 것들로 규정되게 됩니다. 알지 못하기에, 이제까지 '인간 존재의 고유함'이라 생각해왔던 '후천적 감정'의 생성을, '인간형 로봇'이란 공장 제품은 결코 지닐 수 없다란 주장은 성립될 수 없을 터이고, 그 가정의 실현, 그러니까 --- '인간형 로봇'이라는 것이 감정을 (조금이나마라도) 지니게 된다면? 이란 상상의 일례가 바로, 이 작품 「한 스푼의 시간」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당신의 아버지보다도 오래 살아온 시간이 그저 멋은 아닙니다. (p246)
"한다. 하지 않는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 그때는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은데 언제 다시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p99)로 점점 더 복잡해져가는 인간 언어의 미묘함에 어려움을 겪는 '인간형 로봇' 은결은, 예의 '로봇'으로서의 능력으로 그 어려움을 어쨌든 극복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이 하는 말들의 미묘함이 결국엔 감정의 미묘한 변화로부터 기인된다라는 것도 알게 되지요.
명정은 은결에게 감정을 느끼는 기관은 없을지라도 감정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는다는 사실은 적어도 안다. … 그런데 알고 보면 사람에게도 감정을 느끼는 기관이란 딱히 없다. (p131)
·
·
·
0과 1로만 이루어져 있는 로봇의 연산 속엔 "보편적인 삶은, 아니 그냥 삶은, 어떤 것입니까?"(p114)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로봇의 연산 과정 속엔, "데어버리도록 뜨겁고 질척거리며 비릿한 데다,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어느 결에 손쉽게 부서져버리는 그 무엇"(p115)이라 '삶'을 정의해낼 수 있는 프로세스 같은 건 아예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이제 작가는,
무너진다는 건 어떤 것입니까. (p216)
이란, 길지도 않은, 심오해보이지도 않는, 허나 낯설기는 한 이 질문을 통해,
독자의 감정선을 무너뜨려냅니다.
………………………………………………………………………………………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 순간 누구 하나가 그 자리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느낌에. …… 꺾이고 부서진다는 점에서 외관상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무너짐은 정말 저 무너짐과 같은가. 무너진다는 건 결국 그 현상을 대하는 사람의 슬픔이나 분노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 (pp111~112)
………
사람이 건물과 다른 건 부서져도 대강 이어 붙일 수 있다는 점일까, 다시 일어난다는 점일까. 나는 아내가 떠난 뒤 무너졌지만 죽지 않았고, 아들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도 무너지는 줄 알았지만 역시 이렇게 살아 있는데... (p227)
평생 땅바닥으로부터 제 몸을 떼어낼 수 없는 지렁이에겐, 3차원이란 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예 상상부터가 되질 않겠지요. 고작, 거기에 한 개의 차원이 더해졌을 뿐입니다. 우리, 인간이 누리는 3차원의 공간이라는 게 말이죠. 그러하기에, 마치 2차원에만 살고 있는 지렁이가 3차원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타임머신'의 개발이 불가능한 것 또한, 예를 들자면, 우리가 3차원 이상의 세상에 대해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해봅니다. 좀 과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구병모의 소설은, 이제까지 읽어낸 모든 소설들이 다, 무어라 감상문을 써내기가, 2차원 이상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지렁이마냥, 타임머신을 개발해내지 못하는 인간마냥, 저에겐 참 어렵기만 합니다. 이 작품을 읽고 쓰는 이 글에서도 예의, "무너진다는 건 어떤 것입니까"라 단문이 순간적으로 읽는 이의 감정선을 무너뜨리는 그 이유를, 그 분위기를, 도저히 전달해낼 수가 없네요. 아마도 --- 무너져버린 바로 그 감정선의 형성이, '후천적' 경험으로부터 기인된 것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볼 뿐. 어쨌든! 이 작품을 읽고, 당신의 감정선이 또한 무너진다면,
그것이 어쩌면, 당신과 저의 '후천적' 경험들 중 어느 곳에선가, 서로의 자리는 달랐을지언정, 공통의 접점이 있었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죠. 그게 바로... '인간형 로봇'들은 죽었다 깨나도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감(共感)'이라는 작용, 일 것이겠고요.
※ 읽어본, 작가 구병모의 다른 작품 :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파과」 · 「빨간구두당」 · 「위저드 베이커리」
...금연 156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