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3년 4월
평점 :
일시품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춘 남녀의 신분 격차가 크면 연애는 할 수 있을망정 결혼에 이르기는 어려운 법이다. 가난한 남자 개츠비는 그런 이유로 놓칠 수밖에 없었던 여인 데이지(Daisy)를 되찾기 위해 5년간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낸다. 그는 어둠의 세력과 손 잡고 큰 돈을 번 뒤,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데이지 앞에 다시 나타나 그녀와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별로 위대할 게 없는 인생이다."

- 강준만,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중 pp74~75

설이란 것을, (심지어 추리소설일지라 해도) 줄거리로만 이해하려는 건 정말 멍청한 짓입니다. 뭐, 그런 류의 소설이란 게 전혀 없지야 않겠지만, 이 길지 않은 인생, 눈 어두워 책조차 읽지 못하게되는 시절이 오기 전의 시간을 '그런 류의 소설들'만 읽기엔 심히 억울하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 소설이라 함은 당연히 '줄거리'라 불리어질만한 이야기의 전개를 (보통은) 가지고 있다라 여겨지며, 그러하기에 종종 어쩔 수 없이 그것, 줄거리를 일종의 대표값으로 하여 소설의 소개를 하게될 수 밖엔 없기도 합니다. 저의 능력으로는 하지 못하는 '요약'이란 걸, 빌어오자면 위와 같고, 위의 '요약'은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기까지 하네요. 이 소설을 다 읽고나니 어쨌든!

"이 소설은 개츠비가 왜 위대한가를 쓴 작품이 아니다"(p313)라는 역자 김석희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밖엔 없습니다. 심지어 --- "'Great'라는 단어의 반어법 …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Great Gatsby'는 실은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라 '대단한 개츠비'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놈 참 대단한 녀석이야'할 때의 뉘앙스가 담긴 것이다.(p314) …… 나는 제목에서 아예 그렇게 번역하고 싶었다.(p301)"이란 주장에까지도 박수치며 '네, 맞아요!'를 외칠 수 있기도 합니다.1 그러나,

이 소설을 다 읽고난 지금, 제 관심은, 소설의 줄거리나, 개츠비의 '위대함' 여부 같은 것에 주어져 있지가 않네요. 게다가 이 작품 「위대한 개츠비」가 하나의 고전(classic)2이란 주장에도 또한 쉽게 수긍이 되질 않습니다. 저에게 이 소설은 오로지! --- 차분히 되짚어볼 수록 가슴 시린, 문득 저의 옛날을 떠올리게 해준, 한 편의 연애소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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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한 개론>에서) 납득이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첫사랑이며,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마지막 사랑이라고 승민을 위로한다. 그 말이 일종의 통념으로 성립한다면, 사람들은 사랑의 진정성을 사랑이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든 상관없이, 이 사랑이 마지막 사랑임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랑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중 p128, 북돋움, 2012,

젊었던 시절의 개츠비는, "세상에서 처음 만난 '멋진(nice)' 여자"(p229)였던 데이지와의 사랑을 이루어낼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면, 사회적 신분 등 그 무엇 하나, 자신에게는 데이지에게 미래에의 믿음을 줄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으니까요. 사랑이, 이성(異姓)과의 결혼이 한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느냐와 같은 질문을 차치한다면, 이후 개츠비에게 있어 일생의 목표는 데이지와의 사랑을 이루어내는 것이 됩니다. --- "그는 열일곱 살 소년이 상상력으로 만들어낼 만한 제이 개츠비란 인물을 꾸며낸 다음, 그 이미지에 끝까지 충실했던 것이다"(p154)에서 보여지듯, 개츠비란 인물의 '위대함'이란 (걸 굳이 찾아보자면) "어쨌든 끝까지 꿈을 믿고 그 꿈에 목숨을 바친 것"(p300)이겠지요. 영어에도 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거야말로,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순애보'의 전형인 겁니다. 이처럼,    

이 친구 개츠비, 현실 속 그의 행태3완 별개로, 상당한 로맨티스트입니다. 그녀, 데이지의 소식을 알기 위해 신문을 5년 동안 구독했던 점이라든가4,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의 건너편에 자신의 집을 장만해5 매일 밤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라든가, 차마 찾아가지는 못한 채, 그녀가 행여 찾아와주지는 않을까 하여 매주 자신의 집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성대한 파티를 연다라든가 등, 한 마디로 --- "그의 환상은 그녀를 넘어섰고 모든 것을 넘어섰다"(p151)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남자이거든요. 그런 그의 앞에, 드디어 나타난 그녀, 데이지의 첫 말,

다시 만나 정말 기뻐요.(p136) 

​너무나 오랜 세월, 그녀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어내기 위해 살아오고 기다려왔던 개츠비에게, 그녀의 이 한 마디에 개츠비는 그냥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녀와 만날 날을 마음속에 그려왔고. 그것만을 꿈꾸며 이를 악물고, 말하자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열렬하게 기다려왔던 것이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그는 너무 감긴 시계태엽이 풀리듯 긴강이 풀리고 있는 중이었다.(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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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조의 견해를 따르자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은, 오랜 시간이 흘렀었어도 여전히 첫사랑이었던 것이겠죠. 그녀와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된 이제까지의 시간 동안, 개츠비는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세계 material without being real"(p250)를 꿈꾸며 살아왔던 겁니다.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 있는 데이지, 그녀와 그녀의 남자 톰을 향한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어요. … 모든 걸 전과 똑같이 만들어놓을 거요"(pp172~173)란 개츠비의 선언은, --- "내가 가난했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는 데 지쳐서"(p202) 자신이 아닌 남자, 톰과 결혼했었던 것일 뿐, 데이지는 "나 말고 어느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소!"(p202)란 그, 개츠비만의 확신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확신은 "짐작건대 그는 데이지를 사랑하게 만든 무언가를, 아마도 그 자신의 어떤 관념 같은 것을 되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후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했졌지만, 일단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천천히 되짚어볼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을 것"(p173)이란 그만의 바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었죠. 남편 톰의 불륜에 화가 나있던 데이지는, 잠시나마 개츠비의 강요어린 사랑의 확인에 동조를 하기도 하나, 끝내 그녀의 선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남자인 톰이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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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바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왜곡이 쉽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시간에 대한 공유는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기억의 충돌은 없었던 시간으로 남곤 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던 순간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두 사람의 기억이 온전히 똑같을 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사랑이 온전한 시간으로 남는 것은 드물다.

- 백가흠, 「마담뺑덕」중 p59, 네오북스, 2014.

사랑이란 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개츠비는 데이지를 다시 만난 그 때, 잠시 잊었었던 건 아닐까라, 생각합니다. 그게 뭐, 소설 속 인물인 개츠비만 그러하겠습니까. 여전히 누군가를 잊지 못하고 있는 나이듯, 그 누군가도 또한 나를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란 착각은, 심지어 지금의 저도 완전하게는 벗어나지 못했다라 말할 수 밖에 없을만큼, 적지않은 수의 당신들에게도 심어져 있으리라 미루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순일곱 살 되는 생일, 프란체스카는 창가에 앉아서 빗줄기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그녀는 브랜디를 부엌으로 가지고 와서, 두 사람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가만히 있었다. 마음 속의 감정이 넘쳐흘렀다. 언제나 그랬다. 얼마나 강한 감정인지,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감히 이렇게 자세히 추억하는 것은, 겨우 일 년에 한 번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짓눌리고 짓눌린 나머지 프란체스카라는 존재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으리라.

- 로버트 제임스 윌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중 p135, 시공사, 2002.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제가 아는, 정상적인 방식으로서는6 '유일'하게 성공한 불륜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몇십 여년간 마음 속 감정이 넘쳐 흘렀었음에도 그걸, 그저 '일 년에 한 번뿐' 상대를 생각하는 것으로 참아내었던 데에 있었죠. 프란체스카는 킨케이드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킨케이드에게 강요하지 않았었으며, 킨케이드 또한 그러했었던 겁니다. 훗날, 서로의 마음이 그러했었음이 확인되었을 때, 그것이 (독자인) 제 3자에게조차 한없는 안타까움이 될지라도, 또 다시 등장하게 되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라는 류의 쉴드로 (어쨌든!) 불륜일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사랑을 부추겨, 정당화 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말로를 통해 '아서라~'라는 말을 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데이지를 만났고, 헤어졌으며, 다시 만나기까지 개츠비의 삶에 대한,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사느라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음에 틀림없다. paid a high price for living too long with a single dream (p250)

 

란 한 문장의 표현은 심지어, '난 여전히 그를 가끔씩 떠올려 보는데...'란, 이걸 뭐라 해야하나, 일종의 '아쉬움'이라 순화하여 부르게 되는 이, 마음 속 감정을, 혹시 그 사람도 가지고 있기는 할까,란 하릴 없는 기대를, 절대로 확인하려 들지말라란 충고를 해주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 이게, '자포자기'라든가, 낭만의 소멸이라든가가 아닌,  

 

 

술에 취한 너를 들쳐 업고, 5층 아파트 계단을 오를 때 / 내 등 뒤에서 너는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을 잤었지.

힘이 들어 난간에 기대면 어느새 깼는지 작은 소리로 /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고는 다시 잠이 들어버렸지.


열쇠를 찾아서 겨우 문을 열고 끈을 풀러 신발을 벗겨주고 / 침대에 널 뉘어놓고 돌아서 터덜터덜 층계를 내려오지.

새벽길에 옷깃을 여미며 흩어진 시간을 흩어진 기억을 / 어깨에 남은 너의 몸무게에 담아 물지게처럼 지고 가지.

- 김창완, <너를 업던 기억> 중

'어깨에 남은 너의 몸무게'스런, 딱! 그만큼의 기억만큼만이 허용되어 있다라 받아들여야겠죠. 술 취한 그녀를 침대에 뉘어놓고 돌아서 층계를 내려올 수 있는 사랑만이, 현재의 규범상으론, 그야말로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랑일테니까 말이죠. 뭐,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랑보다는, 기어이/끝내 '이루어지는' 사랑을 원한다란 주장도, 있을 순 있겠죠만... (그러다간 자칫 B급 에로영화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기에.) --;; 

...금연 181일째

 


 

  1. 반면, 강준만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위대한'의 이유로 추측해보고 있는데, 여기서도 여섯 번째는 역자 김석희의 견해와 다를 바 없기도 하지요. ---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대략 7가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첫째, 희망에 대한 집념과 재능이다. 둘째, 물질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정신 우선주의’다. 셋째, 사랑 그 자체에 모든 것을 거는 순애주의다. 넷째, 낭만적 민감성이다. 다섯째, 파멸의 예감에서 비롯되는 미학적 숭고함이다. 여섯째, 위대하다는 건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개츠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풍자일 뿐이다. 일곱째, 작가 자신의 자전적 요소를 풍성하게 가미해 만들어낸 개츠비라는 인물은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위로라는 점에서 위대해야만 한다. 작가가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에 대해 보인 엉거주춤한 자세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강준만, 위의 책 p75)
  2. "예술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소설은 반드시 시대성과 보편성(영원성)의 교차점에서 창조된다. <위대한 개츠비>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20년대 미국이라는 시대성을 그리면서 그 안에 인간의 욕망과 좌절이라는 보편성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시대성에서 보편성을 이끌어내고, 그 보편성 덕분에 언제 다시 읽어도 신선하다. 그게 고전의 매력이다." (p307)
  3. ​"개츠비는 지독한 속물이다. 그런 속물이 밀주업으로 돈을 모아 졸부가 된다. 부자가 된 이유는 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다."(p313)
  4. "그 사람은 데이지의 이름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5년 동안이나 시카고의 신문을 구독했다면서도"(p126)
  5. "개츠비가 그 집을 산 것은, 데이지가 살고 있는 곳이 만 건너편이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으니까요."(p124)
  6. '비정상적인 방식'으로로라도 성공하는 불륜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매우 충격적이지요. --- 다니자키 준이치로, 「열쇠」, 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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