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론더링 - 국제금융업의 사각지대 기업소설 시리즈 8
다치바나 아키라 지음, 김준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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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야 모두 마찬가지잖아. 쉽게 돈을 벌어 편하게 살고 싶은 거지. (p382)


위 인용구에 대해 '난 그렇지 않아!'라 (스스로에게까지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맞아, 난 그래!'라 말한다 한들 뭐 --- 쉽게 돈을 벌어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 혹은 그 욕망을 이루어낸다라는 것이 적어도 타인과 사회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 한도 내의 '쉽게'를 통해서라면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난의 이유가 되어야 할 여하한 이유 또한 없기도 하겠죠. 그러나!


"자꾸 더 많이 가지려는 게임은 얻는 것이 많아질수록 만족이 줄어드는 게임이다. 더 많이 가져서 만족이 무한정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이 금융을 떠받치는 맨 밑바탕의 기본 관념이다. 그런데 금융계 사람들의 행동 양상과 그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이 기본 관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


- 미히르 데사이, 「금융의 모험」중 p304, 부키, 2018.


'쉽게'와 '편하게'라는 흔한 이 두 단어에 대한 정의(definition), 또는 한계 지음이란 거,

그게... 애초부터 쉽지 않다라는 게 문제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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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가 원하는 것은 약혼자의 회사 계좌에서 5억 엔을 해외로 송금하고 경비 혹은 손금1으로 처리해달라는 것과 송금한 돈을 해외에서 제3자에게 넘기는 일이다. (p78)


이 행위를 완성해내기 위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줄거리이고, 작가는 줄거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특히 초반부에) 금융(기법)에 대한 '설명'을 나름 지루하지 않게 적어놓고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돈세탁(money laundering2)'이란 게 아무래도, 동네 놀이터에서 하는 땅따먹기에 필요한 수준의 지식으로만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 뭐 그렇다고 대단한 걸 요하는 소설 또한 아니기도 합니다.)


Arbitrage (차익거래, 재정거래) : 

동일한 상품에 대해 두 시장에서 서로 가격이 다른 경우 가격이 저렴한 시장에서 그 상품을 매입하고 가격이 비싼 시장에서 그 상품을 매도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거래를 말한다. 재정거래는 외환재정과 금리재정으로 나누는데, 외환재정 거래는 환율의 장소적 불균형을 이용하여 그 차익을 얻기 위한 외환거래를 의미하고, 금리재정 거래는 환율의 시간적 불균형 즉, 현물환시세와 선물환시세의 차이를 국제단기금리의 차이와 비교하여 그 차익을 얻기 위한 외환거래를 의미한다.3


기본적으로 '(가격의) 차이'를 이용한 거래를 통해 이득을 본다라는 것이고, 이 소설이 주목한 '차이'는 (위의 설명엔 빠져있는) 다름아닌 '조세율'에서의 차이입니다. 그 '차이'를 자신의 강점으로 삼고 있는 곳을 가리켜 '택스헤이븐(Tax haven, 조세피난처)4'이라고 하지요. 그럼 대체 왜 --- ① 택스헤이븐인 국가나 지역은 어떤 이유에서 자국의 조세율을 그토록 낮게 책정하고 있는 걸까요? ②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선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가격에 차이가 있는 경우, 수요와 공급의 (즉각적인) 조정을 통해 그러한 차이가 해소된다 하거늘, 이같은 조세율의 차이는 왜 조정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 소설의 줄거리를 논하기보다는, 사실은 저도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위의 두 질문에 대해 작가가 제시해주고 있는 해답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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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스헤이븐은 애당초 관광자원 정도밖에 없는 가난한 국가에서 하는 것으로5 전 세계 부자들의 '탈세 방조'가 최대의 산업입니다. 부자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국민든 석기시대의 삶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p83) 


개인이건 국가이건, 소득을 창출해내기 위해선 뭔가 특기라든가 노력이라든가가 필요하지요. 그리고 그 '노력'이라는 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다종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막장의 예를 들자면, 이도저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복면쓰고 은행 강도를 했다하여도, 그 행위를 위한 '나름의 노력'은 있었던 것이죠. 암튼! 가진 것도 없고, (이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만) 가진 것이 없기에 아무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국가가 자구책으로 선택한 '노력'이란 게 바로 --- 세금이 없는 또는 매우 낮은 조세율을 부과하는 택스헤이븐이 되는 겁니다. 


스헤이븐에는 소득세도 법인세도 자산과세도 상속세도 없어. 따라서 애당초 탈세라고 하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야. 다른 나라에서 탈세를 범죄라고 간주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정일 뿐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범죄가 아닌 거지. 예금자가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합법적인 행동이라는 건데 … (p205) 


저같은 평범한 사람이야 금융자산을 택스헤이븐으로 옮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지만, 거대 기업 또는 엄청난 자산가들의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국가에 대한 애정'으로 기꺼이 무거운 과세액을 감내하겠다란 애국심에는 심대한 유혹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이 택스헤이븐 국가/지역이 초래하는 국제적 폐해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그들의 '필요'에 의한 선택이 여타 국가들과 그 국민들에게 예상치 못했던/바라지 않는 결과를 안겨준다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고 있지요. 


현실적으로 택스헤이븐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세수는 크게 타격을 받지. 자금의 글로벌화에 의해 거액의 자금이 택스헤이븐 지역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 자산에 대한 과세는 사실상 불가능해지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면 국가는 개인의 소득에 과세하는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많은 자산을 가진 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지. 이것이 택스헤이븐이 유해세제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인 거야. (p204)


위의 인용구에서 '소득(income)'은 '근로소득'을 의미합니다. 즉, 노동을 통해 버는 소득이죠. (소득 이내에서 소비를 계획하는 일반인과는 반대로) 자신의 쓸 돈을 미리 책정한 후, 그에 맞게 수입(조세)을 계획하는 국가의 경우, 쓸 돈은 정해져 있는데/쓸 돈을 미리 정해놓는데 수입이 줄어들면 --- 쓸 돈을 줄이기보다는 수입을 쓸 돈에 맞추려는 노력을 더 많이/우선 하게 됩니다. 즉, 새로운 과세 대상을 찾아낸다거나 이전엔 없던 과세지표를 새로이 만들어낸다거나, 그도 안 되면 과세율을 상향 조정해버리는 거죠. 물론!


이렇게 세계는 '택스 아비트리지tax arbitrage'라는 거대한 힘에 농락당하게 된다. 자금이 해외로 유출되는 일을 캐피털플라이트capital flight라고 하지만 그런 일을 막기 위해 각국은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은 상속세(유산세)의 폐지를 거의 결정했으며 법인세의 철폐도 의회에 상정 중에 있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의 기업은 미국에 본사를 옮길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는 소득세율을 조금씩 내려 세수의 중심을 부가가치세(소비세) 쪽으로 바꾸는 중이다. (pp 204~205) 6


시장 메커니즘의 작동은 예의 높은 조세율의 하향 조정을 초래하긴 합니다. 하지만! '기존 세수입의 유지'라는 대전제를 어기는 일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국가는 원하는 만큼의 세수를 기어이 확보하게 되겠지만, 경제적 계층별로 부담하여야 하는 세금의 크기는 변화할 수도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 간접세의 과세 비중 상승이 빈부격차의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없다라는 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죠.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로는 결코 돈이 돈을 버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 '이마에 땀 흘려' 돈을 버는 이보다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이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재산을 늘릴 수 있다."7


- 류동민·주상영, 「우울한 경제학의 귀한」중 pp10~18, 한길사, 2015.


그렇다면 대체 전 세계는 이같은 택스헤이븐의 존재를 지금처럼 냅두고만 있는 걸까요?8 이에 대해 작가 다치나바 아키라는 '국가주권' 개념과 연관지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대 사회는 국가주권이라는 환상에 근거하여 성립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같은 대국도 100만 명이 되지 않는 소국도 하나의 국가라는 이념에서 대등한 것이다. … 만인에 평등한 인권이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장대한 허구지만 이를 부정하면 근대 사회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아무리 황당무계할지라도 모든 국가에는 평등하게 국가주권이 있다는 허구를 부정하면 국제사회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주권이라는 것은 원래는 신의 권리로 다른 어떠한 존재도 그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그곳이 작은 섬나라라고 할지라도 국가를 자처하는 이상 주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나라는 독립국의 주권 행사에 어떤 강제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텍스헤이븐인 국가가 국민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더욱 행복하게 하기 위해 다른 국가에게 유해한 세제를 도입한다고 그것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 자원이 없는 가난한 나라나 지역에서 택스헤이븐과는 그야말로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pp 203~204) 


논리적으로는 적어도, 각국의 법이 다를 수 있듯, 자국의 법에 의거하여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같은 지역이나 스위스같은 국가가 개인이나 기업의 소득에 대해 저율 또는 0%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에 그 어떤 나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라는, --- 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니가 왜 왈가왈부하는 건데?라는 항변에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라는 겁니다.9 적어도, 택스해이븐의 입장에서는 적법하고도 (심지어)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는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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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려 '합리적인 선택'으로 불리운다 하여도 --- (합당한 논리를 써낼 수는 없습니다만, 최소한 심정적으로는 그렇게 느껴지듯) '돈세탁'을 다루고 있는 소설에서 그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는 안 되지 않겠나란 독자의 예상을, 작가는 끝내 지켜내줍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금융의 세계에서는 어떤 규제든 빠져나가는 길이 있다"(p98) 라는 문구가 기둥이 되어 전개됩니다만, 그 결론은 예의...

금융의 세계에서는 공짜란 없어요. (p56)  

너무도 당연한, 이 짧은 경구가 의미하는 바 대로 마무리되지요. --- 어떠한 '선택'이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그 '선택'으로부터 기인되는 '결과' 또한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주식 투자가 그렇고, 의대를 가겠다는 고3 학생의 선택 역시 그것이 본인의 주관에 따른 선택이었다면 그 결과에 대해 타인/사회의 탓을 하여서는 안 되는 겁니다. 네비게이션은 좌회전하라 했거늘, 나의 감으로 우회전하여 가는 경로를 선택하였을 때 그 길이 막힌다 하여 내 앞에 있는 차들을 욕할 수 없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논리죠. 그런 점에서, 

"어떤 일이든 의도를 헤아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결과뿐이다."

- 구병모, 「빨간 구두당」중 p117, 창비, 2015.

이 인용구가 (적어도 금융의 세계에서는) 잔인하다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게임의 룰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라는 것을 인정했고, 그러한 룰의 내용을 인지한 상태에서 게임에 참가하였었다면, 그 룰에 따라 도출된 결과가 내가 원하던/기대하던 것이 아니라하여도, 그 게임의 룰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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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부자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내린다. 의로운 이에게도, 의롭지 못한 이에게도 내린다. 그러나 사실 비는 공평하지 않았다. 본래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내리기 때문에 …"

- 라오서, 「낙타샹즈」중 p287, 황소자리, 2008.

이 구절의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쨌든 비는 공평하죠. 다만, 그 비를 받아들이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을 것 뿐. 이처럼 --- 내가 살아갈 사회의 체제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 대부분은 '본래 공평한 세상'에서 살며 '쉽게 돈을 벌어 편하게' 살고자 노력하겠죠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우리는 애꿎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탓하게 됩니다. '저 땅에는 그만 내려도 되고, 우리에게 더 많은 비를 달라~'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또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비를 우리 맘대로 내리게 할 수 없다라는 걸...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올바른 지식으로 무장해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숙한 증권시장의 실현을 위해서는 높은 판단능력을 보유한 개인투자가의 성장이 불가결한 것이다. (p443)

그러하기에 이 당연한, 또한 매우 점잖게 기술되어 있는, 우리 바람대로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다면, 평소에 물 관리를/라도 잘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따르는 수밖엔 없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 네, 역자가 써놓은 위 구절은 너무도 점잖습니다. 그보다는 다음과 같이 대놓고 하는 조언/충고의 약발을 전 더 선호합니다. 



서양의 금융거래는 자신의 실수는 자신이 해결하라는 식으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p167)

물론 '금융'이라는 괴물이, 돈 앞에서는 감정도 사라지게10 사람을 만든다지만 이게 꼭 '서양의' 금융거래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겠고, 또 '금융거래'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실패 뒤에 성공도 있다곤 하나, 그렇다 하여 이전의 실패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 "승강장에서 출발하는 에스컬레이터는 하나뿐이었다. 다시 말해 일방통행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만 있지,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없었다"11란 구절은 ('금융'뿐만이 아닌) 우리 삶 전반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건 뭐건 비용절감을 위해 경비원 대신 기계식 출입 장치를 설치하겠다는 아파트 주민들12을 '그깟 몇 천원 더 내는 게 아까워서?'라는 힐난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닐 수도 있게 됩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낙타샹즈」속 주인공 샹즈의,  

"샹즈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 가난뱅이가 개인의 자유, 그것도 정말 보잘것없는 약간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모진 마음뿐이었다.(p309) …… 배려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피와 땀의 대가가 아닌가. 그는 더이상 손님들의 선심을 기대하지 않았다. 받은 만큼만 주면 된다.(p329) …… 자기 목숨은 자기 손에 넘어갈 수 있을 뿐, 다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또한 자신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개인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이었다." (p361)

- 라오서, 위의 책 중.

선택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게임의 룰'인 자본주의 하에서, 그 룰에 적응하여 게임에서의 승리, 적어도 패배를 면하고자 극단적 개인주의를 선택한 전략에 대해 제 3자는 비난할 수 없으며, 더 나아가 그 개인주의의 결과로 얻은 성공에 대해 --- 그래도 니가 삼돌이보다는 돈을 많이 땄으니/덜 잃었으니 삼돌이와 좀 나눠가져라!라고 우리에게 명령할 권한은 정말 그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죠.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 토마 피케티, 「21세가 자본」중 p30, 글항아리, 2014.


꽤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2003년 즈음에 읽었었더라면 분명 5/5의 만족도를 주었었을 듯... 


 어떠한 연관성이 있느냐에 선뜻 답을 하지는 못하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보시길 권하여 보는 책 : 투명인간」 · 「낙타샹즈





  1. '손해가 난 돈' - 네이버 국어사전
  2. "자금 세탁이라는 의미. 해외에 있는 금융기관을 이용하는 방법 등으로 비합법적인 자금을 합법적인 자금으로 바꾸는 일" - 저자 주.
  3.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재정거래' (NEW 경제용어사전, 2006. 4. 7., 미래와경영)
  4. "조세피난처는 개인이나 기업이 번 소득의 일부 혹은 전부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말하고, … 규제가 거의 없고 기업경영상 불편함도 없는 점이 특징입니다. " - 김민구, 「경제상식사정」중 p265, 길벗, 2015.
  5. 물론 모든 택스헤이븐 국가가 저소득국가는 아닙니다. 대표적인 예로 스위스도 택스헤이븐으로 분류되고 있는 국가이죠.
  6. 이 부분은 이 소설이 2003년에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하여 읽어야 할 듯.
  7. '자본수익률(r) > 경제성장률(g)'의 부등식을 피케티 교수는 '자본주의의 중심 모순'이라 표현했지요.
  8. 물론 마냥 냅두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 "2014년 10월, 독일 베를린에서는 세금과 관련된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51개국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들 간에 조세와 관련된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는 협정문에 서명한 것이죠. 이번 합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협정 서명한 51개국이 이른바 역외탈세를 추적하기 위해 함께 손을 잡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 김민구, 위의 책 p264.
  9. 이같은 상황에 대해 작가는 "이것도 … 국가주권의 응용"(p205)이라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10. "당신은 우연히 5,000만 엔 짜리 생명보험을 들어 있었다고 하죠. 그 때 저 같은 금융업자가 나타나 '당신의 생명보험 계약을 사고 싶다'라고 제안을 하는 겁니다. 가령 에이즈의 발병확률이 80퍼센트이고 발병한 경우 5년 후의 예상사망률이 100퍼센트라고 하면 수학적으로는 5년 뒤에 4,000만 엔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가 있죠. 그러므로 이 4,000만 엔의 기대치에서 금리와 수수료를 제하고, 예를 들어 3,000만 엔으로 그 생명보험계약을 사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투자가들이게 3,500만 엔에 파는 거죠. … 많은 수의 에이즈 환자나 HIV 감영자의 생명보험을 모아서 통계적으로 평균 기대수명을 계산하고 거기에 따라 이율을 계산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빨리 죽은 오래 살(119)든 관계가 없습니다. 증권화를 하면 감정 같은 건 사라지는 거죠."(pp 119~120)
  11. 야마다 무네키, 「백년법 상권」중 pp314~315, 애플북스, 2014.
  12. 아파트 주민들 중에는 물론 '상속'을 통한 부자도 있겠으나, 또한 자신의 근로 소득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을 '가진 자 VS 가지지 못한 자'의 구도로 보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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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모험 -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하버드 경제 수업
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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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자makers'란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다. '거저먹는 자takers'란 고장난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말한다.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그릇된 사고에 젖어 있는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리더들, 그러니까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들어간다."


- 라나 포루하,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중 p30, 부키, 2018.


라나 포루하의 위와 같은 도발적인 분류에 대한 전반적 인식은 '동의한다'일 겁니다.1 2008년 금융위기, 더 거슬러 IMF라는 위기를 겪었던 대한민국으로선 대체 돈이란 게 뭐길래 우리의 삶을 이토록 좌지우지하는가, 간단히 말해 가진 자들의 돈장난에 나(우리)의 삶이 이렇게 피폐해진 거 아닌가2 … 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그에 따른 감정의 상승에 의해 결국, --- '금융인'들은 모두 다 '거저먹는 자'란 인식을 명시적이건 은연중에건 갖게 되지요. 


금융에 대한 평판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 소설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환상적인 인물들이 이미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아주 최근에 가장 완벽한 형태로 출현한 금융의 원형은 실존 인물 마틴 슈크렐리다. … 실존하는 금융계 인물들이 이러한데, 누가 소설을 필요로 하겠는가? (pp300~301)


금융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 역시, '금융'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매우 나쁘다는 걸 모르고 있진 않습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 금융학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금융에 대해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이 아닌, "금융을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생산적이지 못하다"(p13)라는, 지극히 경제학적인 표현을 빌어, (다시 한 번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임을 주장합니다.4 그렇게/그리하여 이 책은 --- "금융을 우리 삶의 이야기들에 비추어 보는 것"(p22)을 통해, "금융과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p293)를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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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버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부를 창조(wealth creation)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돈을 버는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이다. 


- '몇초만 보유한 주주에게도 같은 의결권 부여해야 하나?', 콜린 메이어 교수의 강연 중, DBR 131호, 2013.

위와 같은 '부의 이전'은 결국, 라나 포루하가 금융의 해악으로 지적했었던, "이익의 사유화와 리스크의 사회화"5라는 폐해를 낳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미히르 데사이 교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자꾸  더 많이 가지려는 게임은 얻는 것이 많아질수록 만족이 줄어드는 게임이다. 더 많이 가져서 만족이 무한정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이 금융을 떠받치는 맨 밑바탕의 기본 관념이다. 그런데 금융계 사람들의 행동 양상과 그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이 기본 관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p304)  

적어도 금융이 현실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기도 했다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허나 --- 에드윈 르페브르의 놀랍도록 선구적인 소설 「금의 홍수」에서 볼 수 있듯, 그같은 '나쁜' 결과가 금융이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나쁜 것은 금융이 아니다. 나쁜 것은 금융이 끌어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이기적 자아와 야망에 기름을 붓는 금융의 힘이 유별나게 강력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p307) 

 

다시 말해 --- 유별나게 강력한 금융의 힘에 (당신을 포함한!) 우리들 모두가 휘둘렸기 때문에 '나쁜' 결과가 초래되었다라는, 적어도 우리 금융인들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그저 거저먹기만 하는 자'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나게는 해달라,란 소망을 피력하고 있는 겁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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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4학년 2학기, 윤석범 교수님의 '비교경제제도론'이란 강의를 수강했었습니다. 강의의 목적은 여러 경제 체제를 비교해 본다, 뭐 그런 거였던 거로 기억됩니다만 정작 기억에 남아 있는 건 --- '경제학 전반'에 대한 노교수님의 철학이었죠. 이 책도 역시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금융에 대한 지식이 아닌, 금융 전반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라 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재무의 핵심인 '레버리지leverage'와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인 '주인 -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살펴보죠~ 와 같은 무게를 잡지 않습니다. 대신, (미시경제학과 산업조직론 등에서 배웠던 이들) 이론에 대해, 전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던 방향, 그러니까 정말로! --- "금융을 우리 삶의 이야기들에 비추어 보는 것"(p22)을 통해, "금융과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p293)를 보여주고 있지요. 



【 레버리지 - 기업 거버넌스 】

'레버리지leverage'란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겁니다만,7 저자 미히르 데사이는 이를 '새로운 책임이 생긴다'라는 의미로까지 확장시킵니다. 물론! 이 때, 레버리지를 이용할 것인가, 이용한다면 얼마나 이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지요.8 한국에서도 큰 문제인 출산 역시, 저자는 레버리지의 개념을 이용해 설명해 줍니다.9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것은 우리 삶의 레버리지를 높이는 아주 분명한 사례다. 그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적이고 금전적인 책임을 떠안지만, 아이들은 우리에게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p240) 


대출을 받아 산 주택의 가격이 크게 올라 결과적으로 자산의 증가를 초래하듯, 아이를 낳음으로 하여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더해져 내 삶의 행복 총량이 늘어날 수 있다, 뭐 이런 겁니다. 문제는 --- 이제 아이가 자라가면서 예의, '더 많은 만족과 더 큰 행복'을 아이를 통해 이루어내길 원하게 되는, '목적'(principal)이었던 아이가 일종의 '수단(agent)'으로 전환되는 점이죠.10


많은 부모가 정말 가장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뜻으로 부모 노릇을 다하려 하지만, 자신이 실현하지 못한 포부나 희망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잘못을 흔히 저지른다.11 그러한 상황 속에서 부모는 아이들의 꿈과 잠재력을 뒷받침하는 대리인 시늉을 하지만, 실제로는 대리인으로 삼은 아이들을 자신이 바라는 거푸집 속에 강제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주인이다. (p172) 


더 나아가, --- 자녀에겐 '주인'으로 작동하는 나 역시, 누군가/무언가의 대리인일 수 있다라는 지적까지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선택과 통제의 권한은 과연 누가 행사하는 것일까'란 질문, 그러니까 '제약 조건의 극대화를 삶의 목표'로 착각하여 발생되는 '불행'이란 현실에 대해 이것이 '주인 - 대리인 문제'라는 이론적 frame으로 분석될 수 있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 … 이것이 난맥인 까닭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할 때 왜 그것을 선택하는지 우리 스스로도 반드시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12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원하도록 사회가 바라기 때문일까? 달리 말해, 우리는 사회적 기대의 대리인으로 사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일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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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랑인가 봅니다. 이쑤시개가 100년된 장송처럼 보이는 착각이요."


- 정승락 외,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중 p113, 월간토마토, 2017.


"금융은 본질적으로 우리 삶에서 리스크와 무작위성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며, 동시에 패턴의 지배를 우리에게 이로운 쪽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p41)이란 저자의 주장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만, 또한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13란 불만 어린 시선이 금융을 향해 있기도 합니다. --- 금융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혹은 논리에 따른 비판이 있더라도, 세상이 흑과 백으로만 구분되어지지 않듯 금융에도 분명,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면이 분명 존재하기도 하겠죠. 동전이 앞면이 나와 환호할 때가 있겠고, 언젠간 동전의 뒷면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때 또한 있듯 말이죠. 


인간의 이야기는 딱 두세 가지밖에 없다. 그 이야기들이 마치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 양 강렬하게 계속 되풀이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섯 가지 음조로 똑같이 노래해 왔던 시골의 종달새처럼 말이다. (p315)


원제 「The Wisdom of Finance」를 굳이 '금융의 모험'을 번역해 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만14, 이 책이 '금융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금융finance'이란 게 그저 어렵다 생각되었다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한 주범이라고만 생각해왔다면 --- 당신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보는 책들 : 

 -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 불편한 경제학」,

 - 「의장! 이의 있습니다

 -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

 - 「금융의 지배

 -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

 -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요즘 미국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월 스트리트가 경제에 이로운 쪽보다는 해로운 쪽으로 작용한다고 확신하고 있다."(p300)
  2. ​"금융의 성장이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어마어마한 불평등의 확대다. … 불평등의 확대와 금융의 성장은 거의 함께 간다." - 라나 포루하, 위의 책 p41
  3. "금융이 스스로 창출하는 가치에 비해 경제에서 빼앗아 가는 가치가 더 많다는 일반적인 견해"(p21)
  4. "금융은 본질적으로 우리 삶에서 리스크와 무작위성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며, 동시에 패턴의 지배를 우리에게 이로운 쪽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 (p41)
  5. 라나 포루하, 위의 책 p71.
  6. 이 책이, 저자의 MBA 졸업반 학생들을 향한 강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도...
  7. "레버리지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금융계 사람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돈을 빌린다'고 말할 때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다."(p228)
  8. "삶의 레버리지를 높이면 활동하는 규모가 차원을 달리할 만큼 커질 수 있다. 하지만 … 그러느라 떠안은 책임으로 인해 의무가 따르고 자율성이 줄어드니 제약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가에 달린 문제다."(p50)
  9. 이 밖에도, 사회적 인간관계 역시 이같은 레버리지 개념을 이용해 설명되고 있습니다. --- "​레버리지가 위력을 발휘하는 논리는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지렛대는 동료와 친구, 커뮤니티에서 우리가 받는 존중일 것이다. 그 존중을 지렛대로 우리는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선택의 폭이 놀랄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p254)
  10. ​"부모는 대부분 스스로를 아이들을 위한 충직한 대리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될 수 있는 무엇이든 다' 되기를 원하고, '아이들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취지로 이야기할 때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도록 거드는 도우미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양육의 실상에서 보면 아주 피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관심사를 수행하는 대리인이 되는 측면도 있다. 때로는 이런 일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아이들은 부모의 선호를 반영하는 선택에 익숙해지고, 그래서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내면화한다. 선택하는 직업을 보더라도 아이들은 일반적인 인구 집단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표본에 비해 부모의 직업을 따라갈 공산이 훨씬 크고,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즐길 거리로 삼을 개연성이 높다. 사실 다수의 부모가 양육의 주된 과제로 감는 것이 자녀에게 가치관을 이식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양육에서 누가 대리인이고 누가 주인인가?"(pp171~172)
  11. 이 과정 역시 '금융'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 "금융계 사람들이 옵션(option)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보상의 성격이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즉 손실은 제한되어 있지만, 이득은 무제한이다.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는 경험(예컨데 교육)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 역시 바로 그 경험에서 얻는 보상의 성격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손실은 분명히 정해져 있는 데 반해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상한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그 가능성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p90)
  12. "빅데이터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 '내가 원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내가 원한다고 판단한 것'을 보는 현실. 내가 욕망하기도 전에 그들이 내놓은 선택지를 보고,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믿는 현실" - '구글은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나의 과거를', 한국일보, 2017.7.15.
  13.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중 p67, 더숲, 2014.
  14. 기어이 생각해 본다면 --- '인문학을 통한 금융에 대한 설명'이라는 이제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의 설명이어서? 혹은 금융이 세간의 혹평을 극복해내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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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 만들기 -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 걸작 논픽션 13
웬디 무어 지음, 이진옥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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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은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 에른스트 H. 곰브치리, 「곰브리치 세계사」중, 비룡소, 2010.


제가 읽어본 역사책들 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문구들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운 이유는 아무래도, 그 실제로 일어났었던 사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그 사건이 발생했었던 당시 사람들의 시각과 많이 다르기 때문일 꺼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하기에 --- 이 때의 '흥미롭다'란 의미 속에는 정말로 '흥미롭다'란 의미도 있겠으나, '어처구니 없다'란 의미도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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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실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측정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고 …"


- 자오팅양 · 레지 드브레, 「상실의 시대」중 p24, 메디치, 2016.


'이상'이 일종의 '지향점'으로서 역할을 해야한다라는 위의 주장을 (제가 동의하듯, 당신도) 받아들인다면, 이 때의 '지향점'은 발전의 방향 (남아있는) 정도를 보여주는 (아마도 유일한) 지표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이를 (발전의 방향은 거의 정해져 있는)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보자면 --- 그 '목표'란 것은 대부분 매출이나 이윤 등과 같은 (객관적인) 계량적 수치들이 되겠지요. 예를 들어, 


'사업 계획서'란 건, 미래의 여러 상황들에 대한 simulation을 통해 발생 가능한 결과들에 대한 조사를 한 후, 그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가능한 (또는 바람직한) 결과에 대한 보고서이어야 하며, 이를 테면 1월부터 12월까지 회사의 성과가 그 사업 계획서가 제시했던 바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계속 확인하며 단기적인 전략들을 유지 또는 수정하는 것에 사용되어야 하는 게 맞는 겁니다. 허나!


(달성 가능한 최대치로서의) 950억 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사업 계획서를 받아든 사장이, '우리 좀 더 열심히 해서 1,000억까지 함 해보자!' 라는 독려가 아닌, '사업 계획서'라는 본래의 의미를 곡해하여, '950억 가지곤 안돼! 최소 1,000억 할 수 있는 사업 계획서 만들어 와!'라는 본말이 전도된1 요구를 해버린다면 이는 그저 --- ①현재의 현실, 그리고 ②발생가능성이 가장 높은 미래의 모습에 대한 (전면적) 부정일 뿐인 것이죠. 여기! 


"아주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항상 고생스러웠나 보다고 쿤타는 생각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 알렉스 헤일리, 〈뿌리 상권〉중 p62, 열린책들, 2009.


18세기 중반 무렵2, 영국 런던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존재를 믿지 않는3 한 남자가 있었었으니, 이 책의 주인공인 토머스 데이란 인물이었죠.4 일찍이부터 자신만의 확고한 이상형5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 자신의 미래가 자신의 과거6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반드시 다르게 만들어낼 것이라 결심했을 뿐만 아니라,  


"너는 사랑이 뭔지 몰라. 사실 18년을 기다렸다고 하지만, 그건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이었을 뿐이야. …… 자기한테 허용되지 않는 일들이야말로 마음속 깊이 원하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 하진, 〈기다림〉중 pp454~456, 시공사, 2007.


또한 자신의 이상형을 찾아내는/만난다라는, 이제까지 자신에게 허용되지 않아온 것을 더 이상 기다리지만은 않기로, --- 다가오지 않으면 스스로 다가가겠노라는 계획을 세우지요.      

완벽한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p26) …… 그렇다면 완벽한 아내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p52) … 만약 여성이 교육받는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가 이상적인 파트너를 찾을 수 없었다면, 그 역할에 맞는 소녀를 양육하면 되는 것이었다.(p52) … 만약 다른 데서 영향을 받아 편견을 갖기 전에 소녀를 교육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만의 완벽한 여성을 창조할 수 있으리라 결론내렸다.(p52) 


곰브리치가 언급했었던 바와 같이, 이 책은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7을 자아"내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1818년 발표된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의 원리'라는 육신적 영역에 대한8 인간의 도전을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면, 그보다 50여 년전에 이미! 토머스 데이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도전을 이미 감행했던 것이죠. 


데이는 인간의 정신을 다루고 있었다. 소위 실험의 시대로 여겨지던 때였지만 이는 최고 수준의 실험이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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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지워스가 루소의 「에밀」을 그의 후계자를 키우는 방법으로 붙잡고 있을 때, 데이는 그 교육 시스템을 완벽한 아내를 만들기 위해 사용9하기로 결심했다. (p75) 


'Nature VS Nurture'라는 두 단어의 비교에서도 볼 수 있듯, ​특정 시점, 예를 들어 '현재' 특정 개인의 모습/성향 등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냐 아니면 후천적으로 입혀진 것이냐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토머스 데이의 경우에는 거의 전적으로 Nurture의 힘(만)을 신뢰10하고 있었죠. 그러나! 작가 구병모가 그의 소설 「피그말리온 아이들」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를 타인에게 갖다 붙이는 행위에 성공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니게 되고 나를 투사한, 내 뜻을 반영한 내 소유의 로봇이 된다. 그러나 보통은 그 일에 실패하기 때문에 그는 어디까지나 타인이고 … 무엇보다 사람인 것이다. 


- 구병모, 「피그말리온 아이들」중 pp246~247, 창비, 2012.


'사람'을 대상으로 한 토머스 데이의 실험 또한 결국 실패로 끝맺음되고 맙니다. 실패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 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은, 구병모의 소설이 지적했었던 <칭찬의 강제성>과 <무책임한 칭찬>이라는 두 비판을 예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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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바라면 결국 이루어진다'라는 의미의 '피그말리온 효과'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그저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알아서 이루어진다가 아닌, 간절히 원하는만큼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역시나 간절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라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 목적 달성의 주체가 내가 아닌 타인이라면, 타인의 간절한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칭찬'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면 훨씬 더 효과적이다라는 게 '로젠탈 효과'일 테구요. 여기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구절 뒤에 숨겨져 있는, '과연 고래는 춤추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도 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토머스 데이 역시, 고아원에서 데려온 두 어린 소녀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만들어 가게 될) 그녀들의 미래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자신의 희망 사항의 실현만을 강제11하고 있지요. 또한!


'춤추는 고래'에 대한 관객들의 비난과 같이, 토머스 데이는 자신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여 두 소녀에 대한 미안함이라든가 죄책감 따위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저 ---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사느라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음에 틀림없다"12류의, 즉 자신에 대한 위로/안타까움만을 가지는 겁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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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면 그의 본모습을 보는 대신 그를 흥미로운 인물로 만들려고 애쓰지.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만드는 거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좋은 것 덧입히지. 그를 멋있게 보려고 두 눈을 감는 거야. … 당신의 젖가슴이 처진 것을 보고 그는 개성적이라고 여겨. 그가 촌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하면 당신은 그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가 무식하게 여겨지면 당신은 자신에게 두 사람 몫의 교양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해. 그가 줄곧 그걸 하고 싶어 하면 당신은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가 그걸  별로 잘하지 못하면 당신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 명백한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갖은 애를 다 쓰는 거야. 너무나도 명백한데도 말이야. … 그러다가 서로 거짓을 꾸며내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해지면 슬픔, 원한, 증오가 되는 거야."


- 로맹 가리, 「여자의 빛」중 pp41~42, 마음산책, 2013.


토머스 데이의 일생 또한, 로맹 가리가 설명해주고 있는 '환상'의 말로 그대로 진행됩니다. 그가 '만들어 내려' 했던 이상형의 아내는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으며, 그러나 어쨌든 완벽한 아내를 '만나는'14 소원은 이루었으나, 이 또한 꿈꿨었던 모습의 결혼 생활은 되지 못했었지요.15 여기서! --- 토머스 데이의 일생이, 2018년 9월의 첫 날을 대한민국 일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겐 그지없이 '불행'하기만 해 보입니다만, 


"신자들이 그저 자신의 믿음만으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예배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거죠. 그러면 종교는 신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답니다."


- 로맹 가리, 위의 책 p146.


현실에서 만들어내지 못한 '완벽한 아내'라는 대상을, 「샌퍼드와 머튼」이라는 소설16을 통해 '완벽한 소년 두 명'을 기어이 만들어 내었듯17, 자신이 그리는 이상형의 소울메이트로서의 아내를 만나고 싶어했던 애초 그의 희망은 결국 ('아내' 대신 '소설 속 아이들'로 대체된) '완벽한 피조물'을 만들어 내겠노라는, 다시 말해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닌 '예배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종교의 모습과 비슷하게 귀결된, --- '불행'이 아니라 말은 할 수 없겠으나 그로 인해 그의 삶까지가 파탄난 것은 아닌18, 나름의 타협에 성공했다 말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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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인 대중교육은 바로 이러한 '길들이기'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제도다. … 공장이나 회사의 규격화한 노동에 적응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학교 교육으로써 길러지리라고 기대되는 미덕이다. 바로 노동자를 훈육하는 것, 즉 길들이는 것이다. … 잘 길들 준비가 되어 있는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알튀세르가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역할이 의미하는) 지배 계급이 사회를 자기 입맛에 맞도록 유지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 


- 류동민,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중 pp31~34, 웅진지식하우스, 2013.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라는 이 책의 부제 중, '피그말리온 신화'와 관련된 부분만으로 이 감상문의 내용을 제한했습니다만19('여성 혐오'에만 국한되지 않은) '교육'에 대한, 더 크게는 (예의 페미니즘이 지향해야 할 '이상'이라 생각하는) '권력(의 작동)'의 문제를 끝내 배제해버리기엔 위 류동민 교수님의 글이 너무도 아른거립니다. --- 마르크스적 용어로서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구분이란 게, 현대 사회에서는 뚜렷하지 않아졌노라 생각합니다. 좋은 의미로서의 '노동 시장의 유연성' 때문이 아닌, '선택지의 제한'이 낳은 현상이지요. 


글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으나, 류동민 교수님의 위 책 제목이 말하고 있듯, '일하기 전엔 몰랐던', 다시 말해 노동자가 되기 전엔 몰랐었던 사실을 '노동자'가 되어보니 알게 되듯, 자본가가 된 후엔 자신이 노동자였었을 때 비난했었던 자본가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할 겁니다. 고려 가능한 모든 경우를 다 합하여 보았을 때, --- 완벽한 아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두 소녀의 일생에 완벽하게 개입했던 18세기 중반, 영국의 한 남자의 행태와 사고방식이, 2018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관리자 혹은 자본가, 더 나아가 이 사회의 '권력',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속에는 전혀 없다라,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어차피 과거의 사례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쌓아나가야 하는 건 과거 어느 시점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래죠. 전례가 없다면 우리가 만들면 됩니다."


- 야마다 무네키, 「백년법 하권」중 p350, 애플북스, 2014.


(만족의 수준이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은, 현재의 기준으로 보아 불합리하다라 여겨지는 과거의 허물들을 참으로 많이 극복해왔었었기에, --- 열일곱 살의 종원군이 바라보고 있는 2018년의 대한민국은, 제가 되돌아보는 저의 열일곱 살 적인 1985년의 대한민국이 제게 각인시켜주었던 검열/격렬/경직 등의 단어가 주는 살벌했던 잔상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나아져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부터 위안을 받습니다. (1969년생인 제가 생각하기에) '2018년의 현실'은 '1985년의 현실'보다는 훨씬 더, '이상'에 가까워져 있다라는 건 확실하니까요. 


글이 길어졌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쓸 말이 많았었나 봅니다. 암튼! --- '완벽한 아들 만들기'란 저의 목표를 위해, 종원군의 성정(Nature)을 무시한 채 일방적 양육(Nurture)만을 해왔었고 하고 있는 건 아닌가,란 반성은 예의,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어김없이 추가되는군요. 대체... 제가 잘하고 있는 게 뭘까요? --;;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한 책 

 - 피그말리온 아이들」 (구병모)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마르탱 게르의 귀향」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류동민)

 - 「상실의 시대」 (자오팅양 · 레지 드브레)

 -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 「동물농장」 (조지 오웰)

 - 「O 이야기」 (폴린 레아주)

 


  1. 즉, '지향점'으로서의 이상이 아닌 '(반드시) 달성해내야 할 목표'로 이상을 설정해 버린다는 의미.
  2. "토머스 데이는 1748년 6월 22일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 태어났다."(p30)
  3. ​"사랑이라 부르는 유치한 열정은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도저히 빠져들 수 없는 한낱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 사랑이란 선입견과 상상의 결과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떤 식으로든 열렬히 사랑에 빠지기란 불가능하다"(pp21~22)
  4. 이 책의 부제인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 중, '피그말리온 신화'에 관련된 부분만 이 감상문은 다루고 있습니다.
  5. "나락에 빠진 여성을 지켜주는 수호자로 스스로를 설정한 후에 데이는 여성의 완전성에 대한 자신만의 매우 독특한 이상을 발전시켜나갔다. 데이는 목가적 순수라는 고전적 신화와 낭만적인 개념에서 비롯된 완전한 여성에 대한 이상을 확신했다. 그녀는 그리스나 로마의 여신처럼 젊고 아름다울 것이었다. 또한 시골 아가씨처럼 순수하고 처녀여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강하고 두려움이 없는 스파르타의 신체적 조건을 가지되 꾸밈이 없고 때 묻지 않아서 옷이나 음식과 생활 습관에서도 허름한 농가의 아이처럼 수수한 취향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데이를 주인이자 선생으로, 감독자로 여겨야 했다. 그의 욕구와 변덕에 완벽하게 맞추면서 그의 사상과 신념을 완전히 따라야 했다. 데이는 이런 덕목을 갖춘 여성을 찾는 일로 앞으로의 나날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p47)
  6.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만들어낸 애초의 계기가 어머니의 죽음이었듯, 토머스 데이의 여성에 대한 이상형 역시, 자신이 어렸던 시절, 어머니의 재혼이라는 과거로부터 비롯됩니다.
  7. 토머스 데이의 경우,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기 보다, '놀라움' 혹은 '어처구니 없음'을 강조하는 의미가 되겠지요.
  8.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진 현상 중 하나가 인간,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의 신체 구조였다. 어디서 생명의 원리가 비롯된 것일까? … 그것은 대담한 질문이었으며,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질문이기도 했다."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중 p74, 열린책들, 2014.
  9. "이제 데이는 미래의 아내 만들기에 착수했다. … 하도 읽어서 닳고 닳은 루소의 <에밀>을 들고, 데이는 그녀를 자신과 비슷한 지적 수준으로 만들고, 그가 견뎌냈던 모든 신체적 훈련을 이겨내게 하면서 그의 이상을 받아들이게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그녀도 좋아하도록, 그가 싫어하는 것은 그녀도 싫어하도록, 심지어 거의 얽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 구부정한 어깨마저도 사랑할 수 있도록 훈련하여 아이도 낳고 그의 '비밀스런 보금자리'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예정이었다."(pp104~105)
  10. 신뢰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구체적 행동으로 옮기려 했다라는 것이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지만, 이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시대적 관점의 차이를 매우 강조하는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사람들이 자연 상태로 두는 것이 중요한지 양육이 중요한지를 논하면서 갇혀 있던 시대에는, 데이의 계획이 그렇게 이상하거나 비도덕적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p404)
  11. 각주 5의 인용문을 보면 토머스 데이는 '당위'를 가장한 '강제'를 요구하고 있지요.
  12.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중 p250, 열림원, 2013.
  13.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망상에 사로잡힌 완벽주의자로서, 완벽함이란 언제나 다다를 듯하면서도 닿을 수 없게 애를 태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p322)
  14. "그는 서른 살이었고 그녀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가 생애의 거의 절반을 바친 모색은 드디어 끝났다. 데이는 마침내 완벽한 아내와 결혼했다. 그가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다. … 데이는 마침내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을 완벽한 아내로 맞이했다."(pp312~313)
  15. "아주 짧은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 정작 사랑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중 p282, 문학동네, 2014.
  16. "데이가 쓴 양육서이자 어린이를 위한 소설"(p332)
  17. "데이는 책에서 그가 오랫동안 이루려고 했던 모델에 딱 들어맞는 두 소년을 만들어냈다. … 현실에서 데이는 자신의 독특한 생각에 두 여자아이를 적응시키는 데 실패했지만 소설에서는 아이들의 인성을 완성시켰다."(p333)
  18. "현실이 가혹하고 절박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상의 판티지가 강요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공감과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저마다에게 외로움을 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분노를 토로하는 개인들도 많아졌다. … 다만 그 분노가 개인을 향한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 김민섭, 「대리사회」중 p214, 와이즈베리, 2016.
  19. 각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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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의 진실 -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5
마틴 데일리.마고 윌슨 지음, 주일우 옮김 / 이음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문화와 문화를 뛰어넘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한결같음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 곳의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주제와 인간 조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p14)


이 책의 두 저자는 이 '모종의 관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찾고 있습니다. 동물의 사회행동에 대한 각종 연구 결과와1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한 각종 분석들을 보여주며, 자 봐라~라는 식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인위적이라거나 확률의 발명품"(p13)이 아닌,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주장하고 있지요. (그냥) 동물의 경우, 전 남편(?)의 자식들을 죽여 버리는 경우도 많거늘, 그래도 인간은 '고도의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동물은 평판과 보복을 포함하는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공격하거나 죽이는 이들은 재앙의 수렁에 근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 우리는 의붓자식을 죽일 때 얻을 수 있는 재생산의 평균 편익이 유아 살해 충동을 선택할 만큼 충분히 평균 비용을 넘는다고 상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p65~66)


배우자는 사랑하나, 그/그녀가 이전의 혼인 관계에서 낳은 자식들까지는 사랑할 수 없다2라는 속내의 표현이, (결국은 '나'에게 손해가 될) 그/그녀의 자식을 막 죽여버리고 하는 정도까지 이르르지는 않는, 그냥 '이뻐하지 않는다'부터 '아동학대'3의 지경에까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다,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뭐 --- 매우 경제학스런 추론의 위와 같은 주장을, 다음처럼 표현한 소설가도 있으니, 이런 주장이 완전 터무니없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죄책감이나 수치라는 감정에 의해 편집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무자비하여, 우리 생각의 대부분은 있는 그대로 밖에 내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에 상처를 받을 것이고 우리를 무정한 잡놈이라고 욕할 것이지만 실제로도 우린 그런 인간들이다. … 단지 살균되고 희석된 생각의 흔적들만을 내놓을 뿐이다. 


- 조너선 트로퍼, 「당신 없는 일주일」중 pp187~188, 은행나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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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보다는 별 배운 것이 없는 짧은 독서였습니다. 이 책의 수준이 후져서가 아닌,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제 이해의 수준이, 이렇게 짧은 글로는 높아질 수 없기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한 서술들 사이에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듯 흥미로웠던 부분이 한 곳은 있었었으니, --- 통계가 보여주는 바는 "의붓아버지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적이고 치명적인 폭행이 의붓어머니의 폭행보다 훨씬 많"(p96)거늘, <신데렐라 이야기>로 대표되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들은 왜 유독 표독한 의붓어머니만을 그리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들이 제시한 해답이었습니다.  


왜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의붓아버지가 아닌 의붓어머니에 의해 괴롭힘을 당했는가에 대한 또 다른 가능한 대답은 이야기꾼이 가진 사회적 목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려면 이야기의 관객만이 아니라 공연자에게도 호소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들을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이야기꾼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1차 관객이 어린아이들이었다면 아이들은 당연히 신데렐라와 백설공주 편일 것이므로, 최초의 이야기꾼은 아마도 그들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너희 아빠가 죽거나 우리를 떠나서 내가 재혼한다면 네겐 끔찍한 일이 될 거야'라고 속삭이는 이야기 대신 '기억해라, 아가야.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내가 사라져서 너희 아빠가 나 대신 딴 사람을 들이는 일이야'라는 저의를 가진 이야기를 선호한 이유를 상상하기는 쉬운 일이다." (pp 96~97) 


………………………………………………………………… 


바로 직전에 읽었던 소설이 물었던 질문인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에 대한 생각에, 뭔가 이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집어들었습니다만, 역시 진화론이란 책 몇 권 읽었었다고 아는 척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듯 싶네요. 어쨌든 이 책의 결론을 요약해 보자면, 


신데렐라 이야기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 신데렐라 이야기의 편재는 이 이야기에 물리적 근거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이 책에 따르면 진화적으로 핏줄을 선호하는 것이 자연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못나도 내 자식을 두둔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숙명 뒤에 숨은 진실이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이면 신데렐라의 계모처럼 못되게 구는 것이 자연스럽다. 핏줄로 묶이지 않은 가족의 아이들에게 별로 좋은 환경이 아니다. (pp113~114)


재혼 같은 건 꿈도 꾸지마라라는, 뭔가 골수 유교적 발상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의견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라는 수준에서 이 책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면, 왜 동물원의 원숭이는 인간이 되지 않느냐란 항변으로 진화론을 거부하는 무지만큼이나, 책 몇 권 읽었다고 다 이해하는 듯 잰 체하는 것 역시, 


"사람들은 흔히 한 가지 현상을 가리키면서 그것에 모든 잘못된 일들의 책임을 돌리기 좋아한다. 비만인 사람들이 맥도널드가 그들을 뚱뚱한 돼지로 만들었다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잘못된 수식이 쓰인 칠판을 지워버리듯 홀가분함을 느끼는 것이다." 


- 조너선 트로퍼, 위의 책 p197.


또 다른 무지함의 자랑 버젼일 테니까요...





  1.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함에 있어 동물의 사회행동에 대한 연구를 참조하는 것에 대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 "동물에 포함되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똑같이 다윈이 이야기한 과정을 거쳐 진화한다. 따라서 똑같은 원칙을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p21)
  2. "현재의 결혼에서 낳은 자식에게 하는 투자와 비교해서 의붓자식에게는 투자가 인색하다"(p41)
  3. "의붓아버지는 배우자의 전남편이 남긴 아이를 죽이기보다는 그 아이에게 치명적이지 않은 정도의 학대를 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한 학대는 분명 자기 자신의 아이를 빨리 낳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의붓아버지로서 투자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잘 고안된' 수단도 아니다. 그러므로 아동학대는 그 자체로 적응이라기보다는 진화된 정신이 지닌 기능적 조직의 비적응 혹은 비순응적 부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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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아이들 창비청소년문학 45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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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더운데... 상식(常識) 공부나 해볼까요? 이 책의 제목에 쓰이기도 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항목인데, 예의 날이 더우니... 

'어린이 버젼'으로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유명한 조각가가 있었어요. 피그말리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조각하고 싶었지요. 예쁘다는 여자들을 모두 만나 봤지만 아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할 수 없이 피그말리온은 자기가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여인의 모습을 조각하기 시작했어요. 조각이 완성되자 피그말리온은 그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지요. 피그말리온은 자기가 만든 조각에 ‘갈라테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갈라테아! 오늘따라 더 아름답군요. 잘 지냈소?”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아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여기며 날마다 다정하게 말을 붙였어요. 그리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갈라테아와 같은 여자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 아프로디테는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의미로 신전의 불꽃을 세 번이나 위로 솟구쳐 오르게 했지요. 집에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항상 그랬듯이 갈라테아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어요.

“갈레테아! 잘 있었소? 잠깐 떨어져 있었지만 보고 싶었소.”

그러자 조각의 뺨이 붉게 물들며 살짝 움직이는 게 아니겠어요? 어느덧 조각상은 사랑스러운 진짜 여인으로 변해 있었던 거예요.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감사드리고, 갈라테아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어떤 일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것을 두고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불렀어요.1

이왕 칼 뽑은 김에, 이 '피그말리온 효과'와 비슷한 내용의 '로젠탈 효과'라는 것도 마저 보도록 하죠.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로젠탈 교수가 발표한 이론으로 칭찬의 긍정적 효과를 설명하는 용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서 20%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그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지능지수가 높은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8개월 후 명단에 오른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점수가 높았다. 교사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일맥상통하는 용어다.2

 

이게 독후감이긴 하냐?란 핀잔을 듣는다 하여도 --- 좀 더 나가보기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기록'이란 것이, (맥주와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훗날 언젠가 과거(의 경험, 지식 등)를 선택적으로 나의 과거를 되살려 보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란 핑계 좀 써보며 말이죠.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처럼 누군가 예언으로 하면 그 예언은 신통하게도 실현이 된다. 무언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이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 이것이 '피그말리온 효과'이다. 누군가 그렇게 예언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예언을 함으로써 예언 자체가 실현되기 때문에 이때의 예언을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고 부른다.3
···
미국의 일부 백인들은 흑인들이 게으르고 폭력적이며, 무기나 마약을 소지하고 있을 확률이 백인보다 더 높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흑인들은 직장을 얻을 기회가 더 적고, 경찰들에게 더 많은 검문과 체포를 당한다. 이렇게 해서 흑인들은 더 가난해지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역시 흑인들은 게으르고 폭력적이며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편견의 대상이 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낙인이 찍힘으로 해서 더 나쁜 쪽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스티그마 효과 (낙인 효과)'라고 한다. 기대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피그말리온 효과와는 반대되는 효과이다. 4

'피그말리온 효과'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이 소설,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위에서 소개한 여타의 '효과'인 '로젠탈 효과'와 '낙인 효과'까지도 그대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지리적 배경은 '낙인도'5라는 섬이며, 낙인도에 위치하고 있는 학교의 이름은 '로젠탈 스쿨'6이고, 로젠탈 스쿨이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교육 이념7이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형식으로 말이죠.   

………………………………………………………………………………… 

학교는 뭐다? 국가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집행하는 도구다. (p74)

이 의미에 대해 동의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적어도 현실적으로 그러하다라는 사실을 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얼마 전, 종원군의 책가방을 잠시 들어주어야 할 상황이 있었습니다. 받자마자 제 허리가 훅~하고 휘더군요. 지난 35년 여간, 대한민국의 교육은 제가 고1 때 메었던 가방의 무게에서 조금도 줄여주지 못한 겁니다. 이같은 표피적 무능 뿐 아니라, --- "국민이란 혼이며, 정신적 원리입니다. …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국민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노력과 희생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오랜 과거의 결과입니다"8란 19세기 프랑스 사상가9의 주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국가관을 여전히 교육하고 있다는 실질적 무능함마저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인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중 pp165~167, 민음사, 2015.

'국방의 의무'에 대해 반대하는 생각을 제가 가지고 있는가는 저 스스로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역사적/현실적 특수성'이라는 것 이외에 과연 어떤 설명이 대한민국 남자에게 부과되고 있는 '국방의 의무'가 지니고 있는 논리적 정당성이 궁금하기는 합니다. 국가의 법률로 정해져 있는 의무이기에, 그 위반에 대한 처벌 자체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부당하다 할 수는 없겠으나, 그 국가의 명령이란 게 분명, 


 

"권력은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 모이제스 나임, 「권력의 종말」중 p50, 책읽는수요일, 2015.


국가가 지닌 '공권력'이라는 권력으로 인해 그 강제성을 띠고 있다라는 건 사실이지요. 그러나 --- 유발 하라리가 지적했던 대로,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이 아닌 진정으로 그것을 믿는 (최소한) 일부의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대한민국(뿐만은 아니지만 좀 더 유별난)의 교육은 국가 혹은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있다라, 전 생각합니다.

 

"국가가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것이 제도라고 보고 가장 중요한 것을 '국익'으로 파악한다. 국가주의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며 단결과 화합을 강조한다. 애국가과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의례는 이런 국가주의를 자극하고 국가와 나를 일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 하승우, 「아나키즘」중 p143, 책세상, 2008. 


어느덧 '과거'가 되어 버린 저의 가치관 역시, '화장을 하고 다니는 여학생'과 '담배를 피는 남학생', 그리고 '연애를 하는 남녀학생'들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당췌 그것이 왜 나쁜 것인가란 질문에 '공부에 집중하는 것에 방해가 되니까'라든가, '뼈 삭는다'라는, 역시나 쌍팔년도적 이유 이외에는 달리 설득력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주 크게 보아도, 또는 아주 작게 보아도 --- 대한민국, 그리고 저란 사람의 가치관은 예의, 다음과 같은 대전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게만 되지요.

"어떤 타자에게 충실하려면 다른 타자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다카하시 데쓰야, 「국가와 희생」중 p258, 책과함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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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찬의 강제성 】

'다른 타자'란 개념은 일반적으로 부모나 선생님같은 '(진정한 의미의) 타자'이겠으나, 또한 '나 자신'일 수도 있는 겁니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자크 라캉의 말에서처럼, 지금 '하나의 나'가 원하는 것은 나가서 노는 것이지만, 부모의 욕망을 욕망하는 '또 하나의 나'가 투쟁에서 이겨, 결국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한다는 행위를 하게 된다라는 것처럼 말이죠. 바로 이 지점에 --- 「피그말리온 아이들」이 묻고 있는 질문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를 타인에게 갖다 붙이는 행위에 성공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니게 되고 나를 투사한, 내 뜻을 반영한 내 소유의 로봇이 된다. 그러나 보통은 그 일에 실패하기 때문에 그는 어디까지나 타인이고 … 무엇보다 사람인 것이다. (pp246~247)

<작가의 말>을 통해 보여진 구병모의 위와 같은 견해는 결국,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아니면 그것조차 훈련된 결과인가'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합니다. --- '피그말리온 효과'를 말하고 있는 속담이 있지요. 바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속담을 그저 (칭찬이 지닌) 긍정적인 면으로만 생각해 왔었었으나, 

엄밀하게 말해 이는 전적으로 '춤추는 고래'를 보고 싶어하는 이의 시선에서만 바라본 시선일 뿐인 것이죠. 또 하나의 시선인 고래의 시선, 즉 고래 또한 춤추길 원하느냐에 대한 고려를 우리는 전혀 하지 않았었다라는 겁니다. 「어쩌다 한국인」의 저자 허태균 교수는 그 속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 즉 칭찬 역시 상황(고래)에 따라선 채찍일 수 있음을 지적해주고 있지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속담은) 칭찬 때문에 춤을 추는 고래는 원래 춤추고 싶지 않았다는 진실과, 고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그 고래를 춤추게 하려 한다는 강제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 원래 춤추고 싶어 하는 고래에게는 칭찬이 필요 없다. 춤추고 싶지 않거나 춤출 이유가 없는 고래를 춤추게 할 때만, 칭찬과 같은 외재적 동기가 필요하다. … 이 세상에는 춤추고 싶은 고래와 춤추고 싶지 않은 고래가 있는데, 이 모든 고래를 춤추게 하려고 칭찬과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서 너무나도 다양한데, 한국의 교육은 모든 학생이 비슷한 것을 해야한다고 강요한다. 

- 허태균, 「어쩌다 한국인」중 pp324, 중앙books, 2015.

나의 아이가, 또한 당신의 아이가 지금 우리의 눈 앞에서 춤을 추고 있긴 하나 그것이 그 아이들이 춤추길 원하여 춤을 추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 적어도 부모 앞에서는 춤을 추면 더 나은 가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상상의 질서'에 복종하기 때문인 것인지, 혹은 '부모와 나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스몰 버젼 국가관의 결과인지, 당신은 알고 있느냐라, 작가 구병모가 묻고 있다라는 것이죠. 나의 자녀가, 부모된 자격(?)을 지니고 있는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에 대해 차마 '아니야!'라 말하지 않아왔던 저에게, 그러나 실은 나의 자녀를 일종의 도구로 간주하고 있음/하여 왔음/가 되어주길 강력히 원하고 있음을 자백하라 권유하고 있는 겁니다. 

"타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에 반응해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때 우리는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다."

- 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중 p171, 와이즈베리, 2014.


【 무책임한 칭찬 】 

결코 이 아이들을 그대로 놔둬도 되는 멀쩡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방치했을 경우 미래의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우리는 최선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최상,이라고는 감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최상인지는 견해차가 있을 테니까요 .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아이들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는 최선조차 경험해 보지 못하고 열외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소각되지 않는 구제 불능의 잔여물을 그나마 재활용이 가능한 형태로 복구하는 데 힘쓰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 사회가 버린 아이들을 사회에 다시 쓰이게 만드는 게, 그 방법상 모두의 동의를 얻기 힘들더라도 칭찬받지는 못할망정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충분한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사회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보듬는 일은, 이 아이들 자신의 역량 향상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 미래에 이 아이들이 악의를 품고 공격할지도 모르는 사회와 그 선량한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pp168~170) 

로젠탈 스쿨 교장의 학교 운영 방침입니다. 아이들을 가리켜 '소각되지 않는 구제 불능의 잔여물'이라 표현하는 것도 놀랍고, 그 아이들을 '방치했을 경우 미래의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다란 그의 신념(?)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 자신들의 교육이 없다면, 미래에 이 아이들이 악의를 품고 사회와 그 선량한 구성원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라는 그 (일종의) 숙명론적 가치관10었습니다. 백번 천번을 양보하여, 교장의 표현과 신념, 그리고 숙명론적 가치관을 다 옳다 / 그럴 수도 있다라 받아들인다 하여도! 


마는 교육 용어 검색차 컴퓨터실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마침 예의 3대 일간지에서 다룬 싱글맘 소녀의 인간 승리에 대한 기사를 보고 온 참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틈 없이 아이를 먹여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며 낮에는 햄버거 패티를 굽고 밤에는 검정고시 준비까지 해낸 기특한 사례로, 주위의 따뜻한 이웃들이 품앗이로 아기를 돌봐 주면서 그녀의 합격에 기여했다는 스토리였다. 그녀의 앞날은 창창해 보였지만 실은 그 끝에 기다리는 거라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일 가능성이 크리라. (p71)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기 원하는 고래 조련사의 바람()에 부응/복종해 춤을 추었건만, 돌아오는 건 순간의 박수 뿐11 결국 '고래가 춤을 추다니, 저 고래 정말 이상하군'이란 수근거림 혹은 '고래가 춤을 춰봐야 그 수준이란 게 결국 이 정도'란 비아냥이 고래에게 안겨지게 되는 상황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때, 조련사마저 고래에게 '하지만 넌 참 잘했고, 수고했어!'란 칭찬대신, 순간의 박수에 감동하지 않음을 타박한다거나, 춤을 왜 그렇게밖에 추지 못하는 것이냐란 질타가 이어진다면? --- '우리 사회'라는 거대함까지 거론할 자격이 저에게는 없는 겁니다. 저 스스로조차, 이런 반성을 수도 없이 스스로 하였었고, 블로그에도 기록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아이에겐 질타, 아주 가끔은 순간의 박수만을 보내는 무책임한 칭찬만을 해왔었던 것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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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옳은 명제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명제인지도 모른다. … 그 옳고 지당한 책임을 사회가 전담 내지는 분담하지 않고 개인에게 떠밀 때, 옳아서 더욱 단단하고 마땅하여 배로 갑갑한 명제의 동아줄은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목을 잡아 된다."


- 김형민, 「그들이 살았던 오늘」중, 웅진지식하우스, 2012.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수) 있듯, 로젠탈 스쿨의 학칙에도 스스로의 합리성은 있었습니다. 작가 구병모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지요. 


연대를 못하게 하는 대신 구경만 하던 아이들에게 연대 책임도 묻지 않는다. 비정할 만큼 합리적이다.12 (p107) 


오늘 아침, 제가 종원군에게 강요했던 가치관이란 게 알고보면, 위와 같이 표현되고 있는 로젠탈 스쿨의 교육관과 전혀 다를 바 없다라는 걸, --- '네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너의 몫이다'란, 투자에 대한 투자자의 책임을, 아직 사춘기를 완전히 벗어났다라 말할 수 없겠는 고등학교 1학년 아이에의 훈육으로 강요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훗날 언젠가 과거(의 경험, 지식 등)를 선택적으로 나의 과거를 되살려 보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랑 핑계'로 시작된 이 감상문마저 예의, '교육'과 관련된 여타 작품들을 읽고 난 후와 별반 차이 없이, 이 '차이 없음'이란 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저의 '변하지 않았음'에 대한 질타이어야 한다라는 걸 또! 다시 깨달아 보며, 


부디 이번에는, 


'느끼기만'하는 것으로 끝맺음되지 않기를, 저 스스로에게 강하게 질타/다짐하겠습니다.


   


 읽어본, 작가 구병모의 작품들 :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파과」 · 「빨간구두당」 · 「위저드 베이커리」 · 「한 스푼의 시간

 




  1.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서 이런 고사성어가 생겼대요> 중 '피그말리온 효과'
  2.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한경 경제용어사전> 중 '로젠탈 효과'
  3. 경제학에서 말하는 'Self-fulfilling prophecy'와는 아주 약간의 다른 뉘앙스로 설명되어있긴 하나, 어쨌든 '그럴 것 같아'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그렇게 된다'라는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동일하죠.
  4.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심리학'중 '피그말리온 효과'
  5. "낙인도는 문제의 학교과 그 관계자들 말곤 아무것도 없다시피한 섬이었다"(p16)
  6. "두말할 필요도 없이 로젠탈 스쿨은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한 인간에게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을 믿으며 기대하면 언젠가 그 결과가 재능의 발현과 목표 달성으로 나타난다는 로젠탈 효과 이론을 바탕으로 세워진 학교는 … "(p42)
  7. "여기 온 아이들, 모두 조금씩 사정이 있는 아이들입니다. 딱한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 준 거예요, 우리 학교가. 이 아이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너희들은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일깨워 주지요. 너희들 부모가 어떤 사람들이었건, 또는 너희들 자신이 여기 오기 전 과거에 어땠는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앞으로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다"(p70)
  8. 다카하시 데쓰야, 「국가와 희생」중 pp138~141, 책과함께, 2008.
  9. 에르네스트 르낭.
  10. "사람이 하늘이 정한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을 숙명론(宿命論)이라 한다면, 정성과 의지로써 타고난 운명조차 바꾸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조명론(造命論)이라 할 수 있다." - 방민호, 「연인 심청」중 p399, 다산북스, 2015.
  11. "부모 부재를 비롯한 그 모든 조건을 극복해 낸 인간 승리 드라마를 아무리 반복하여 보여 준들 시청자의 감동은 그때 그 순간에 발광(發光)할 뿐"(p44)
  12. 이 구절은 정치적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연대 책임을 묻지 않을테니, 그들과 연대하지 말라'라는 과거 군사정부의 공작 등이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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