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모험 -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하버드 경제 수업
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만드는 자makers'란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다. '거저먹는 자takers'란 고장난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말한다. 거저먹는 자들의 범주에는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그릇된 사고에 젖어 있는 민간 및 공공 부문의 리더들, 그러니까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CEO, 정치인, 규제 담당자까지 들어간다."


- 라나 포루하,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중 p30, 부키, 2018.


라나 포루하의 위와 같은 도발적인 분류에 대한 전반적 인식은 '동의한다'일 겁니다.1 2008년 금융위기, 더 거슬러 IMF라는 위기를 겪었던 대한민국으로선 대체 돈이란 게 뭐길래 우리의 삶을 이토록 좌지우지하는가, 간단히 말해 가진 자들의 돈장난에 나(우리)의 삶이 이렇게 피폐해진 거 아닌가2 … 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그에 따른 감정의 상승에 의해 결국, --- '금융인'들은 모두 다 '거저먹는 자'란 인식을 명시적이건 은연중에건 갖게 되지요. 


금융에 대한 평판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 소설가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환상적인 인물들이 이미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아주 최근에 가장 완벽한 형태로 출현한 금융의 원형은 실존 인물 마틴 슈크렐리다. … 실존하는 금융계 인물들이 이러한데, 누가 소설을 필요로 하겠는가? (pp300~301)


금융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 역시, '금융'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매우 나쁘다는 걸 모르고 있진 않습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 금융학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금융에 대해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이 아닌, "금융을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생산적이지 못하다"(p13)라는, 지극히 경제학적인 표현을 빌어, (다시 한 번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임을 주장합니다.4 그렇게/그리하여 이 책은 --- "금융을 우리 삶의 이야기들에 비추어 보는 것"(p22)을 통해, "금융과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p293)를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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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버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부를 창조(wealth creation)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돈을 버는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이다. 


- '몇초만 보유한 주주에게도 같은 의결권 부여해야 하나?', 콜린 메이어 교수의 강연 중, DBR 131호, 2013.

위와 같은 '부의 이전'은 결국, 라나 포루하가 금융의 해악으로 지적했었던, "이익의 사유화와 리스크의 사회화"5라는 폐해를 낳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미히르 데사이 교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자꾸  더 많이 가지려는 게임은 얻는 것이 많아질수록 만족이 줄어드는 게임이다. 더 많이 가져서 만족이 무한정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이 금융을 떠받치는 맨 밑바탕의 기본 관념이다. 그런데 금융계 사람들의 행동 양상과 그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이 기본 관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p304)  

적어도 금융이 현실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기도 했다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허나 --- 에드윈 르페브르의 놀랍도록 선구적인 소설 「금의 홍수」에서 볼 수 있듯, 그같은 '나쁜' 결과가 금융이라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나쁜 것은 금융이 아니다. 나쁜 것은 금융이 끌어들이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이기적 자아와 야망에 기름을 붓는 금융의 힘이 유별나게 강력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p307) 

 

다시 말해 --- 유별나게 강력한 금융의 힘에 (당신을 포함한!) 우리들 모두가 휘둘렸기 때문에 '나쁜' 결과가 초래되었다라는, 적어도 우리 금융인들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그저 거저먹기만 하는 자'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나게는 해달라,란 소망을 피력하고 있는 겁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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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4학년 2학기, 윤석범 교수님의 '비교경제제도론'이란 강의를 수강했었습니다. 강의의 목적은 여러 경제 체제를 비교해 본다, 뭐 그런 거였던 거로 기억됩니다만 정작 기억에 남아 있는 건 --- '경제학 전반'에 대한 노교수님의 철학이었죠. 이 책도 역시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금융에 대한 지식이 아닌, 금융 전반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라 말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재무의 핵심인 '레버리지leverage'와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인 '주인 -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살펴보죠~ 와 같은 무게를 잡지 않습니다. 대신, (미시경제학과 산업조직론 등에서 배웠던 이들) 이론에 대해, 전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던 방향, 그러니까 정말로! --- "금융을 우리 삶의 이야기들에 비추어 보는 것"(p22)을 통해, "금융과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p293)를 보여주고 있지요. 



【 레버리지 - 기업 거버넌스 】

'레버리지leverage'란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겁니다만,7 저자 미히르 데사이는 이를 '새로운 책임이 생긴다'라는 의미로까지 확장시킵니다. 물론! 이 때, 레버리지를 이용할 것인가, 이용한다면 얼마나 이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지요.8 한국에서도 큰 문제인 출산 역시, 저자는 레버리지의 개념을 이용해 설명해 줍니다.9


아이를 낳기로 선택하는 것은 우리 삶의 레버리지를 높이는 아주 분명한 사례다. 그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감정적이고 금전적인 책임을 떠안지만, 아이들은 우리에게 상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p240) 


대출을 받아 산 주택의 가격이 크게 올라 결과적으로 자산의 증가를 초래하듯, 아이를 낳음으로 하여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더해져 내 삶의 행복 총량이 늘어날 수 있다, 뭐 이런 겁니다. 문제는 --- 이제 아이가 자라가면서 예의, '더 많은 만족과 더 큰 행복'을 아이를 통해 이루어내길 원하게 되는, '목적'(principal)이었던 아이가 일종의 '수단(agent)'으로 전환되는 점이죠.10


많은 부모가 정말 가장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뜻으로 부모 노릇을 다하려 하지만, 자신이 실현하지 못한 포부나 희망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잘못을 흔히 저지른다.11 그러한 상황 속에서 부모는 아이들의 꿈과 잠재력을 뒷받침하는 대리인 시늉을 하지만, 실제로는 대리인으로 삼은 아이들을 자신이 바라는 거푸집 속에 강제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주인이다. (p172) 


더 나아가, --- 자녀에겐 '주인'으로 작동하는 나 역시, 누군가/무언가의 대리인일 수 있다라는 지적까지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선택과 통제의 권한은 과연 누가 행사하는 것일까'란 질문, 그러니까 '제약 조건의 극대화를 삶의 목표'로 착각하여 발생되는 '불행'이란 현실에 대해 이것이 '주인 - 대리인 문제'라는 이론적 frame으로 분석될 수 있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 … 이것이 난맥인 까닭은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할 때 왜 그것을 선택하는지 우리 스스로도 반드시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12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원하도록 사회가 바라기 때문일까? 달리 말해, 우리는 사회적 기대의 대리인으로 사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으로서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일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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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랑인가 봅니다. 이쑤시개가 100년된 장송처럼 보이는 착각이요."


- 정승락 외,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중 p113, 월간토마토, 2017.


"금융은 본질적으로 우리 삶에서 리스크와 무작위성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며, 동시에 패턴의 지배를 우리에게 이로운 쪽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p41)이란 저자의 주장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만, 또한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13란 불만 어린 시선이 금융을 향해 있기도 합니다. --- 금융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혹은 논리에 따른 비판이 있더라도, 세상이 흑과 백으로만 구분되어지지 않듯 금융에도 분명,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면이 분명 존재하기도 하겠죠. 동전이 앞면이 나와 환호할 때가 있겠고, 언젠간 동전의 뒷면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때 또한 있듯 말이죠. 


인간의 이야기는 딱 두세 가지밖에 없다. 그 이야기들이 마치 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인 양 강렬하게 계속 되풀이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섯 가지 음조로 똑같이 노래해 왔던 시골의 종달새처럼 말이다. (p315)


원제 「The Wisdom of Finance」를 굳이 '금융의 모험'을 번역해 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만14, 이 책이 '금융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금융finance'이란 게 그저 어렵다 생각되었다면,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한 주범이라고만 생각해왔다면 --- 당신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 보는 책들 : 

 -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 불편한 경제학」,

 - 「의장! 이의 있습니다

 -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

 - 「금융의 지배

 - 「우울한 경제학의 귀환

 -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요즘 미국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월 스트리트가 경제에 이로운 쪽보다는 해로운 쪽으로 작용한다고 확신하고 있다."(p300)
  2. ​"금융의 성장이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은 어마어마한 불평등의 확대다. … 불평등의 확대와 금융의 성장은 거의 함께 간다." - 라나 포루하, 위의 책 p41
  3. "금융이 스스로 창출하는 가치에 비해 경제에서 빼앗아 가는 가치가 더 많다는 일반적인 견해"(p21)
  4. "금융은 본질적으로 우리 삶에서 리스크와 무작위성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며, 동시에 패턴의 지배를 우리에게 이로운 쪽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편" (p41)
  5. 라나 포루하, 위의 책 p71.
  6. 이 책이, 저자의 MBA 졸업반 학생들을 향한 강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지도...
  7. "레버리지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금융계 사람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돈을 빌린다'고 말할 때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다."(p228)
  8. "삶의 레버리지를 높이면 활동하는 규모가 차원을 달리할 만큼 커질 수 있다. 하지만 … 그러느라 떠안은 책임으로 인해 의무가 따르고 자율성이 줄어드니 제약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가에 달린 문제다."(p50)
  9. 이 밖에도, 사회적 인간관계 역시 이같은 레버리지 개념을 이용해 설명되고 있습니다. --- "​레버리지가 위력을 발휘하는 논리는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지렛대는 동료와 친구, 커뮤니티에서 우리가 받는 존중일 것이다. 그 존중을 지렛대로 우리는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선택의 폭이 놀랄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p254)
  10. ​"부모는 대부분 스스로를 아이들을 위한 충직한 대리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될 수 있는 무엇이든 다' 되기를 원하고, '아이들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취지로 이야기할 때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도록 거드는 도우미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양육의 실상에서 보면 아주 피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관심사를 수행하는 대리인이 되는 측면도 있다. 때로는 이런 일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아이들은 부모의 선호를 반영하는 선택에 익숙해지고, 그래서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내면화한다. 선택하는 직업을 보더라도 아이들은 일반적인 인구 집단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표본에 비해 부모의 직업을 따라갈 공산이 훨씬 크고,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즐길 거리로 삼을 개연성이 높다. 사실 다수의 부모가 양육의 주된 과제로 감는 것이 자녀에게 가치관을 이식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양육에서 누가 대리인이고 누가 주인인가?"(pp171~172)
  11. 이 과정 역시 '금융'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 "금융계 사람들이 옵션(option)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보상의 성격이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즉 손실은 제한되어 있지만, 이득은 무제한이다.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는 경험(예컨데 교육)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 역시 바로 그 경험에서 얻는 보상의 성격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손실은 분명히 정해져 있는 데 반해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상한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그 가능성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p90)
  12. "빅데이터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 '내가 원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내가 원한다고 판단한 것'을 보는 현실. 내가 욕망하기도 전에 그들이 내놓은 선택지를 보고,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믿는 현실" - '구글은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나의 과거를', 한국일보, 2017.7.15.
  13.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중 p67, 더숲, 2014.
  14. 기어이 생각해 본다면 --- '인문학을 통한 금융에 대한 설명'이라는 이제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의 설명이어서? 혹은 금융이 세간의 혹평을 극복해내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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