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가 말하는,

˝크리스챤의 #자유˝

˝기독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지극히 자유로운 주인이며, 아무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기독자는 모든 일을 위하여 봉사하는 지극히 충성스러운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종속된다.˝

이 두 명제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사랑은 본질상 섬기는 것이며, 사랑의 대상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비록 모든 것의 주인되셨지만, 자유자이심과 동시에 종이셨으며 `하나님의 형상`과 `종의 형상`을 동시에 지니셨다.

그러므로 기독자는 자기 자신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워야 하고, 종의 형체를 취해야 하며, 사람들과 같이 되어야 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야 하고 섬기고 도와야 한다.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빌23-4)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이웃 안에서 사는 것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크리스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 곧 자기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 끌어올려지고,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기 아래로, 이웃에게로 내려간다.

하지만 항상 하나님과 그의 사랑 안에 머문다.

이 자유는 영적이고도 참된 자유이며, 모든 죄와 율법과 계명에서 우리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이 자유는 외적인 다른 모든 자유보다 뛰어난 것으로, 마치 하늘이 땅보다 뛰어난 것과 같다.


#기독자의자유는하나님사랑이웃사랑피차모든사람의종이되라그리스도를믿는믿음과사랑안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설교라면 당연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진작시키는 설교가 돼야 한다.

그리스도가 단순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대와 나를 위한 그리스도가 돼야 한다.

그에 대하여 말씀한 것,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리 가운데 역사를 일으켜야 한다.

이와 같은 믿음이 생기고 보존되는 것은,
왜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며, 무엇을 그가 가져 오셨고, 허락해 주셨으며,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슨 유익과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설교할 때, 그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같은 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리스챤의 자유가 올바로 선포될 때 일어난다.˝(85, 크리스챤의 자유, 마틴 루터)

..

삶의 예배자가 되게 하려면, 자꾸 진부한 훈계나 말씀에 꿰어맞춘 강요, 감정적인 호소로 될게 아니다.

목에 핏대 세워 부르짖어 부추긴다고 반응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바른 말씀의 해석과 이해에 근거해서 의미가 전달되어 깨닫도록 돕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는 대상이 누구이며, 믿는 내용이 무엇인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조목조목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공부하는 과정을 간과하면 지루하고 막연한 싸이클을 반복할 뿐이다.

말씀 한 구절을 읽어도 #진지하고, 찬송 몇 소절을 불러도 의미없이 읊조리는 것을 뛰어넘어 #생각하며 부르게 될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의미가 내면에 들어와서, 충분히 고민하고 기도하며 나가는 것으로 발현되는 신앙으로 거듭나야겠다.

속절없이 신앙 언어만 남발한다고 신자가 아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가 #일어나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6-10-01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다른 분의 글을 보고 와서 느낀 거지만, 목소리를 크게 한다고 해서 청중들이 호응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목소리에 거부감이 생겨서 강압적으로 느낄 수 있어요. 전 그런 종교인들의 모습이 비종교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심어준다고 생각해요.

뵈뵈 2016-10-01 17:26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감해요 ^^
 

`달팽이의 별`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린 가장 귀한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습니다. 가장 값진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있습니다.˝

˝진짜 소중한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가끔은 더 살펴야 하는지 모른다.

소란스러운 것에만 집착하느라 정작 가치 있는 풍경을 바라보지 못한 채 사는건 아닌지, 가슴을 쿵 내려 앉게 만드는 그 무엇을 발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언어의 온도, 168-169)

뭐든 자세히 보면 다른 게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놓치거나 보지 못하고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깊은 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9-23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을 접속하면 놓치거나 못 보고 지나치는 글들이 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볼 때도 있어요. 이웃님들의 글을 다 보려고 해도 집중력이 떨어져서 대충 보는 일이 많아요. ^^;;

뵈뵈 2016-09-23 16:1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걸요~~~ ^^
 

˝우리는 정말 대화(토론)할 줄 모른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라해도 좋겠다.
올바른 대화와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며 유쾌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모색이다.

입만 열면 서로에 대한 공격과 불필요한 언쟁과 늘 반대하는 습관만 장렬할 뿐인 일방적인 말들은 이미 대화도 아니요, 식상할 정도다.

타인과 의미있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애초부터 관심도 없고, 자기 생각과 경험과 내가 믿는 신조와 교리만 중요하다.

게다가 이미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려는 여유도 없고, 그럴만한 긍정적인 배려도 없는데 그 열정과 에너지를 오로지 한 곳에만 집중한다는 것.

어떤 문제만 보면, 자기와 의견이 충돌되면, 마치 광분한 것 같은 공격성을 발휘하고 무차별적인 언어폭력과 조롱을 투척한다.

논의의 핵심은 우주 바깥으로 사라져 버리고, 맹렬히 비난하기 위해서 숨어 있던 것처럼 발톱을 드러낸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난히, 인간 행동의 원초적인 모습을 사람들의 대화나 토론(?), SNS댓글들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본다.

독설과 격분, 논쟁과 비난이 들끓고 무례함은 극치를 달하는 사람과 공간이 사방에 널려 발에 치인다.

문제에 따라 `정중하고 절제된 담론`과 `다양한 서클 문화`를 통해서 서로 협력하고 지지하며 언쟁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면서 바르고 유쾌한 공동체를 지향하자는 내용에 공감이 갔다.

˝이미 우리에게 교회(?)가 있는데 말이다.˝

타인과 의미 있는 대화
타인에 대한 배려
타인에게서 얻는 기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련(배움, 가르침, 학문, 학과)의 시작은 겸손이다.
겸손이 읽는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특히 중요한 교훈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떤 지식이나 글도 경멸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어떤 사람에게 배우든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스스로 배움을 얻었을 때,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나 모든 텍스트를 읽으면서 늘 유념하는 세 가지가 떠오른다.

문맥 문맥 문맥
겸손 겸손 겸손
실천 실천 실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9-09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가지 교훈, 정말 좋은 말입니다.

뵈뵈 2016-09-09 15:00   좋아요 0 | URL
기억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