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서 (스페셜 에디션) -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
칼릴 지브란 지음, 로렌스 알마-타데마 그림, 강주헌 옮김 / 아테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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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으면서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또 다른 책 <지혜의 서><예언자>와 비슷한 형식의 글이다. 신비하고 몽환적인 전개(展開). 존경하는 스승이 죽자, ‘각성자라는 뜻을 가진 제자 알무타다는 이 세상에 혼자 남는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다. 스승이 평생 깨달은 지혜의 말씀을 담은 두루마리를 읽고 명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일의 명상이 끝나고 그는 스승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도시를 찾아 방랑의 길을 걷는다.


그가 전하는 지혜의 말씀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신성, 생각과 명상, 에로스, 지혜, 평등, 자연, 젊음과 희망, 부활, 등등. 인생 살면서 깊이 생각해야 하는 주제들이다. 이 글들은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 읽으면 된다. 아니, 그냥 손 가는 곳, 눈길 닿는 곳을 읽어 보라. 때론 신비로운, 때론 깊은 사색이 담긴 글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더욱이 이 하드 카버(hard cover) 책은 손에 들고 다니기 딱 좋은 크기에 모든 페이지를 고급스러운 광택지를 사용했다. 출판사 아테네에서 상당히 정성을 쏟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로렌스 알마-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의 그림들은 또한 어떠한가? 흑백으로 실어놓은 작품은 칼릴 지브란의 글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가끔은 시선이 지브란의 글보다 알마-타데마의 그림에 더 오래 머무르곤 한다. 이 책 말미에 있는 역자의 글에 따르면, 지브란은 지식인들의 침묵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들의 올바르지 못한 시각이라고 생각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세상을 올바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철학 없이 돈벌이에 분주한 현대인들은 이런 책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삶은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섬과 같다. 그 섬에서는 바위가 희망이고, 나무가 꿈이다. 꽃은 외로움에 떨고, 개울은 목말라한다.”(p. 119).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한다. 사람의 가치는 겉모습과 신앙, 종족과 혈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알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서 사람의 가치는 결정된다.”(p. 181).


내 책장에 칼릴 지브란의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예언자>, 그리고 영문판 <The Prophet>, <어느 광인의 이야기>, <모래물거품>,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고 이 책 <지혜의 서>를 눈에 띄기 쉬운 위치에 꽂아 놓았다. 어느 날 눈길이 머물면 뽑아 들고, 내 영혼에 담긴 지혜의 씨앗이 꽃피기를 기대하며 읽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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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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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식탁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식물들이 세계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매우 흥미롭게 기술한 책이다. 감사, 토마토, 후추, 고추, 양파, , , 옥수수, 등등, 이런 식물들은 어떻게 우리네 식탁에 올라오게 되었을까? 그 역사를 알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이 정답이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남미가 원산지인 감자가 어떻게 유럽 식탁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는지, 감자가 유럽에 정착하기까지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감자는 유럽인들에게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덩이줄기로 번식하는 기이한 식물이었다. 게다가 솔라닌(solanine)이라는 독성분까지 있어 종교재판에서 악마의 식물로 낙인찍혔단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가 귀족만 먹을 수 있다고 공포함으로써, 오히려 서민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감자의 재배 덕분에 돼지의 식량문제도 해결되어서 유럽인들은 육식을 많이 섭취하게 되었다. 또 감자 열병으로 인한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들 후손 중에 케네디, 레이건, 클린터, 오바마, 월트 디즈니, 맥도날드 등이 있으니, 감자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주장이라서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연결고리임은 분명하다.


후추에 관해, 유럽인들은 인도의 후추를 가져오기 위해 새로운 항로를 열고자 했다. 그 결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고,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세계를 일주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을 증명했다. 한 때 후추값이 금값과 같았고 부자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그들의 식탁 음식에 후추를 먹지 못할 정도로 가득히 뿌렸다고 한다. 후추는 인간의 검은 욕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욕망의 알뿌리튤립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북부와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튤립이 네덜란드에 많이 퍼지게 된 이유, 튤립이 재테크의 수단이 된 이유, 튤립 버블(tulip bubble)이라는 세계 최초의 거품 경제의 몰락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제격인 것이다.


, 사탕수수, 목화 이야기를 통해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 이 책은 역사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식물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 식물학책이다. 저자는 식물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생존과 번식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식물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식물이 인간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에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의 상식적인 생각을 깨는 통찰력이 가득 담겨있는 멋진 인문학 서적이다.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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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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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나 아렌트의 <정신의 삶: 사유와 의지>을 읽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훑어보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분량이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샅샅이 정독하지는 못했다. 아렌트의 책 ‘1. 사유(思惟, thinking)’에서는 데카르트, 칸트,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을 언급하며 현상과 인식론의 묵직한 주제들, 무엇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지, 우리는 사유할 때 어디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 다룬다. ‘2. 의지(意志, willing)’에서는 헤겔, 사도 바울, 에픽테토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니체, 하이데거, 등의 사상을 말하며 자유와 의지의 관계, 의지와 지성의 관계 등을 다룬다. 여기에 등장한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철학자의 삶과 사상의 개요를 살펴보았다. 단편적으로 이해가 가기도 했고 어떤 글들은 오리무중이었다. 아마도 나의 철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서양철학의 흐름을 잘 꿰뚫어 주는 철학 입문서를 찾던 중 나이절 위버턴의 <철학의 역사>가 눈에 띄었다. 출판사 소소의 책에서 발간한 <세계종교의 역사(A Little History of Religion)>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같은 시리즈의 책 <철학의 역사(A Little History of Philosophy)>도 기대가 컸다. 그리고 그 기대는 충족되었다. 왜냐하면 저자 나이절 위버턴(Nigel Warburton)은 베스트셀러가 된 철학 입문서를 여러 권 집필한 대중철학자로서 대중들의 수준을 배려해 쉽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한두 권의 철학사와 철학 입문서를 읽어보았지만, 이 책만큼 철학의 역사적 흐름을 이렇게 명쾌하게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하여 존 롤스, 피터 싱어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 철학 입문서는 각 장(chapter)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개별적으로 알고 있던 철학자들의 주장이 이런 점에서 서로 통하고, 또 다른 점에서는 대치(對峙)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관심 있는 철학자를 찾아 읽어도 유용하지만, 1장부터 40장까지 전체를 저자의 논리를 따라 순서대로 읽어보는 것이 좋다.


철학의 수호성인이라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부터 현대 철학자 존 롤스와 피터 싱어까지 읽어내면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철학이란 기존 생각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결국 우리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제 삶의 방식까지도 바꾸게 해 주는 것이다. 복잡한 현대인의 삶 속에 생각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 나치 친위대 아돌프 아이히만는 히틀러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실행에 옮김으로써, 가장 사악한 행위에 동참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나 피터 싱어처럼 생각하는 사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철학을 하는’(doing philosophy)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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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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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으며, 인도 여행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꿈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올여름 휴가도 어수선한 나라 사정 때문에 국내 한적한 곳에 머물며 둘레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을 챙겼다. 해마다 인도와 네팔을 여행한 시인은 세상이 곧 책이니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주장하는 그의 책을 들고 떠났다. 이 책 때문에 올여름 국내를 여행한 것인지 인도를 여행한 것인지 헷갈린다. 그만큼 이 책에 깊이 빠져들었다. 저자는 인도의 한 노인에게 들은 말을 소개한다. 머리로 잠시 스쳐 지나간 것들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여 가슴에 새긴 것들을 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감동적인 이유는 15년 동안 매해 인도를 여행하며 깨달은 것들을 담백하면서도 재치있는 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류시화는 인도 여행 중 사두(힌두교의 고행 수도승), 여관집 주인, 점쟁이, 장사꾼, 이야기꾼 등과의 만남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를 맛깔스럽게 표현한다. 무엇보다 인생을 하나의 여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여행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신나지 않겠는가? 인생이 여행이라면 새롭게 경험하며 배울 것들이 가득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여행이 설레는 것이 아닐까? 류시화는 인도 최대 축제 마하 쿰브멜라에 참석하려고 노력했지만, 인도에서 자주 그렇듯이 그 축제 행은 여지없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가 인도에서의 여행은 장애물 경기를 하는 것 같다고 투덜댈 때, 미스터 굽타는 시인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숭이들이 필드에 떨어진 골프공을 얼른 집어다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는 일이 하도 많아, 인도 골프장에서는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많은 것들은 자신의 계획대로 조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안달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인생 여정을 계속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삶의 지혜인가!


이 책 <지구별 여행자> 뒷부분에는 사두 어록 1, 2, 3’이 수록되어 있다. 한 사두가 시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여기에 있지?” 버스를 타려고 여기에 있다고 대답한 시인은 사두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왜 여기에 있나요?” 사두의 대답이 심오하다. “?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알기 위해 여기에 있지!” ‘사두 어록을 읽다가 문득 류시화가 엮은 인디언 추장 연설문 모음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와 하이쿠 모음집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가 생각났다. 그 두툼한 책들을 꽤나 인상 깊게 읽었다. 서양철학과 논리에 익숙한 나에게 세계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인디언들의 시각은 참으로 참신했다. 짧은 문장 하나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허무함, 인생의 본질을 드러낸 하이쿠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지구별 여행자>를 읽으면 다시 그러한 독서의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여행할 때는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여행 중에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이번 여름 휴가 때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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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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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실록시리즈를 펴낸 역사저술가 박용규가 조선 시대의 에로스를 적나라하게 들추어냈다. 조선은 성()에 대해 매우 엄격한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회였다. 하지만 인간의 본능인 에로스는 어떤 힘으로도 완전히 억누르고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권력이 있는 남성들은 억압적 사회에서 더 폭력적으로 성적 욕망을 충족시켰을 것이고, 억압받던 여인네들은 나름대로 성적 본능을 해소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인의 에로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조선 사회를 넘어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 에로틱 심벌이 된 여인들에서는 기생과 궁녀와 의녀 그리고 첩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려준다. 기생(妓生)에도 종류가 있다. 경기(京妓)는 음악을 관장하는 장악원에 소속된 상급의 기생이다. 관기(官妓)술맛을 돋우는 술국이라는 의미의 주탕(酒湯)으로 불리며 무시당했다. 수청 기생, 방수기, 방직기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군관의 현지처 노릇을 했단다. 명월 황진이는 조선 시대 기생 중 가장 유명하며, 시대를 초월한 선각일 수 있다. 궁녀들은 여관(女官)과 천비(賤婢)로 구분되는데, 여관으로는 나인과 상궁, 천비로는 비자, 방자, 무수리 등이 있다. 궁녀들은 까다롭게 선발되어 왕궁으로 들어오지만, 그 억압된 성적 욕망을 매우 은밀하고 위험한 방식으로 해소했다. 의녀는 신분이 비천한 출신들인데, 초학의(初學醫), 간병의(看病醫), 내의녀(內醫女), 어의녀(御醫女)로 구분한다. 조선의 대표적인 의녀로 꼽히는 대장금(大長今)은 중종의 주치의 역할을 했단다. 의녀들을 첩으로 삼는 것이 조선 시대 양반들의 로망이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한편, 조선 시대 첩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눈치 백 단, 눈물 백 근의 설움이란 표현으로 요약했다.


’2. 춘화와 육담의 에로티시즘에서는 춘화(春畫), 운우도(雲雨圖)가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제작된 이유를 설명하고, 조선의 춘화가 중국이나 일본의 춘화와 격이 다름을 강조한다. 단원 김홍도의 <운우도첩(雲雨圖帖)>, 혜원 신윤복의 <건곤일회첩(乾坤一會帖)>을 보라. 금지된 남녀 간의 성애를 그린 것이 다수이지만 신분제 사회에서 고통당하는 약자의 고단한 삶도 녹아있다. 신숙주와 같은 집현전 출신 학자요 정승까지 지낸 사람도 기생에 빠져 지냈다니 당시 성 풍속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3. 조선의 섹슈얼리티와 스캔들에서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성에 관한 수많은 스캔들을 언급한다. 이러한 스캔들은 성을 바라보는 당대의 시각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동성애로 폐출된 세종의 며느리 세자빈 순빈 봉씨, 한양에서 수십 명의 사내와 관계를 맺은 자유부인 유감동, 조선의 팜므파탈 어을우동.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보았던 스캔들의 전후 내막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반 역사책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기생, 궁녀, 의녀의 계급과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춘화와 다양한 스캔들을 확인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억압적 사회에서는 비뚤어진 성적 일탈(逸脫)이 오히려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억압받는 계층은 한과 눈물의 세월을 보내며 억울한 죽음까지 맞이한다. 어느 사회이건 밝은 성문화를 만들어가려면, 성별, 신분, 등에 의한 차별이 우선 철폐(撤廢)되어야 한다. 생각보다 묵직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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