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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경원 옮김 / 불광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은 기다림을 요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아니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다. ‘기다림’을 잃어버렸다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기다림’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우리가 기다림과 함께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와시다 기요카즈는 임상철학자이며 문학연구과 교수답게 철학, 문학, 예술을 통해 기다림에 관한 의미를 들추어낸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농밀한 시간, 우리는 이런 시간의 감촉과 꽤나 멀어지고 말았다. 저자에 따르면, 기다림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는 기억을 없애야만 가능하다. 정말이지 다 기다렸다, 끝까지 기다렸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기다림은 있을 수 없다(p. 19).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다림을 언제까지나 현재가 되어주지 않는 미래, ‘지금’으로 도래하지 않는 미래라고 말하면 어떨까”(p. 25). 그런 점에서 기다림을 잃어버린 지금은 미래를 잃어버린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은 기다림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기다림은 때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다리게 한 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달려라 메로스>의 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리는 쪽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쪽이 괴로울까?’ 독자에게 묻는다. 기다리는 자는 기다리게 하는 자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도 기다릴 수 있다. 어찌 보면 기다림은 즐거움이다. 하지만 기다리게 하는 자는 힘차게 달려야 한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자가 믿어주기 때문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도 기다림의 행위다. “오로지 기다리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 기다린다는 사실도 잊고 기다리는 것, 언젠가 알아주리라 바라지 않고 기다리는 것, 언젠가 기다림을 당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p. 66)이다. 어디 자녀양육에 관해서 뿐이겠는가?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삶의 고통을 견디어내는 일에 관한 빅터 프랭클과 요시모도 다카아키의 의견도 인상적이다. 무수히 작은 문제에 얽매임으로써 가까스로 견디어 내는 방법을 취한 빅터 프랭클은 “인생에서 우리가 무엇을 아직도 기대할 수 있을까,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p. 72)라고 말했다. 반면 요시모도 다카아키는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라는 공상적 질문 자체를 거부하고 “시간을 잘디잘게 나눠라”(p.73)고 충고한다. <사라소주>에 나오는 아버지의 고백처럼, “잊어도 되는 것, 잊으면 안 되는 것, 그리고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스스로 확정하며 견디어내야 한다.
기다림에 관해 탐구하려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기다리는 대상, ‘고도’가 존재한다는 보증도 없이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은 “‘나’라는 것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시원(始原)의 행위”(p. 201)일 것이다. 신앙인에게 예배가 바로 기다리는 행위가 아닐까? 예배란 자신의 욕망과 격렬한 충동을 진정시키고 신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다림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기다림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다린다. 그렇다. 기다림은 삶의 본질에 속한 것이다. 그러니 기다림을 잃어버린 지금은 삶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은 다시 기다림을 기다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