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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바람이 부는 날엔, 현대 미술 - 현대 미술을 만나는 가장 유쾌한 방법, 싱글녀의 오춘기 그림토크
권란 지음 / 팜파스 / 2016년 1월
평점 :
스스로 오춘기를 맞았다고 말하는 30대 중반의 아가씨, 현실은 비루해도 취향만은 고상하고픈 전직 문화부 기자가 현대미술작품 24점을 감상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풀어놓았다. 그녀의 글은 솔직, 발랄, 발칙해서 재미있다. 톡톡 튀는 여성 특유의 수다스러움이 느껴지는 감칠맛 나는 문장들은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도시 아가씨의 애환을 잘 담아냈고 있어 저절로 수다의 세계에 빠져든다.
오트 딕스의 <저널리스트 실비아 폰 하르덴의 초상>(1926)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그림 속 주인공이 20세기 초반에 독일에서 기자로 살았던 여자이기에 작가의 시선을 더욱 끌었으리라. 30대 중반이면 의례히 애 한 둘은 데리고 다니는 아줌마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작가는 당당히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노라고 선언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아직 멋대로 살기 딱 좋은 나이인데!”(p. 23).
공성훈의 <개>(2010)를 소개하며 ‘선택’에 대해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삶의 보람을 찾을 일의 선택은 어른이 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p. 40)이다. 작가가 이 그림에 끌린다는 사실은 그녀가 어른으로서 끝없이 선택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게다. 하기야 이것은 30대 중반의 아가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항상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니 그림에 등장하는 개팔자가 상팔자인 것이다. 개가 갈림길에 누워있지만 어디로 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주인이 할 일이다. 서른다섯의 작가는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조해준의 <낙선작>은 독특하다. 아버지의 낙선 작품을 나무틀에 끼워 전시한 것들이다. 작가는 이 전시회장에서 무조건 딸의 건강과 행복만을 생각하는 자신의 부모를 떠올린다. 이 세상에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겠는가? 하지만 요즘 자기 자식을 때려죽이고 방치하거나 암매장하는 일들이 뉴스로 터져 나오고 있는 터라 이 글이 마음에 더 와 닿는다. 작가는 부모에게 받은 만큼 그들에게 돌려주지는 못해도 부모로 인해 느낀 행복감의 절반의 절반이라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고백한다(p. 235). 권란 작가, 생각이 참 괜찮은 아가씨다. 연락해서 중매라도 한 번 서 줄까? 그녀의 Tistory 블로그에 들어가 본다. 그림에 푹 빠져있네. 뭐 애인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겠다 싶어 중매서는 것을 포기한다. 조금은 수다스럽지만 진솔하게 자신의 삶과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을 펼쳐놓은 이 책,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