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혼을 팔아 그림을 그린다
이목일 글.그림 / 어문학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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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을 팔아 그림을 그린다.

 

책의 제목 하나조차 짜릿하다. 영혼을 어떻게 팔 수 있을까? 분명 영혼은 은유적인 표현이겠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다. 저자는 화가이다. 뇌경색이란 투병으로 왼손을 쓸 수 없는 화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거두지 않았던 화가.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걸고 그림을 그린다. 그림 한 점의 감동을 위해 화가의 마지막 힘을 짜낸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영혼에 예술을 팔고,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는 예술은 생존의 재단에 영혼을 받친다. 그림은 화가의 생명이 물감처럼 덧칠되어 있는 셈이다. 이때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걸고 작품을 해낸 작가는 위대하다.

 

살고자 아둥바둥하며 돈 벌려고 사는 이 시대에 간혹 천재들은 곁 길로 나간다. 아니 직선의 레일 위가 아니라 엇길로 튄다. 남들이 가는 편하고 별무한 생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무슨 가시밭길처럼 곁길로 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창조는 가던 길만 가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위대함은 답습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음이라고 나타낸다. 누구는 영원히 살겠다고 석선에 동남동녀 3000을 태우고 불로초를 구하러 보냈다 해도 결국 죽어갔다. 어떤 권력의 힘도 생명의 한계를 뛰어넘지를 못 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스스로를 불살라서 영혼이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영혼을 판다라기보다는 영혼을 불사 지르는 것이라고 여긴다.

 

한 세상 살아가기 사실은 간단한 게 아닐 것이다. 이 간단하지 않는 삶에 있어서 또한, 이러 저러 산단 한들 가야 할 곳은 너무나도 단순 명료하게 정해져 있다. 누구나 다 마지막이 있는데 우린 그 마지막에 대해 무엇을 걸어야 할 것이며 또 무엇을 걸 수 있을 것인가? 살아생전 자신의 죽음에 만장기에는 어떤 문장이 써져 있어야 할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은 마지막 여정의 종지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매 순간마다 알람으로 전해주고 있으니까. 나도 이제 지천명이다. 지천. 하늘을 알아야 할 나이라는 뜻이다. 아니 하늘의 명을 알아야 할 나이라는 뜻이다. 지나온 인생이 이렇게 금방이었듯 앞으로의 하늘의 명령을 받드는 시간도 분명 금방일 것이다. 아니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늘의 뜻에 무어라 답할 수 있어야 할까?

언어가 없던 시대에 인간의 2차적 인식 본능은 춤과 그림이었다. 춤은 단체였을 테지만, 그림은 순전히 개별적이었다. 그림은 그리는 사람의 오롯한 인식의 전유였다. 사물의 인식을 전유한다는 것이야말로 문명의 초석이자 시발점인 이유이다. 오늘날의 지식과 문명과 발전이라는 모든 키워드가 인식의 전유에서 비롯된 하나의 빅뱅과도 같은 것과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그 가운데 그림이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 북부 지방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 그려진 동물의 그림을 보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차린다. 우리는 그 누군가가 그렸을 그 영혼의 만장기를 보고 있지 않는가? 무엇이라 써진 것이 아니라 무엇을 그려진, 바로 그림이기 때문이다. 즉 그림의 역사는 인식의 역사와 같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재능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 하늘의 명. 즉, 천명이라고 부른다. 가진 재능은 곧 천명처럼 받들어 거부할 수 없는 인식의 본능처럼 나오는 것이 바로 그림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능이라는 천명과 손재주는 분명 다르다. 천명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삶을 대척하는 행위이지만 손재주는 단순히 직업적 먹고 사나이즘의 별반 다름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가를 천명을 받드는 사람, 즉 인식의 제사장으로 여기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사무실을 갔을 때, 빈 벽에 그림 한 점 걸려 있고 없고의 차이를 나는 금방 느낀다. 미술이란 그림이 주는 일상의 작은 의미는 우리의 삶에 영혼은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한다. 생각해보면 사무실 벽에 온통 기술적인 차트나 흐름도나 목표 그래프 성과 수치가 걸려 있다고 상상해보라. 마치 전쟁터의 전투 벙커를 닮은 작전지도처럼 보인다. 그래 갑자기 숨이 막힌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쟁의 그래프에 나의 영혼은 과연 울고 있을까 웃고 있을까? 누군가를 밟아야 하고 또 누군가에게 밟혀야 하는 치열한 수치의 경쟁 앞에서 인간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럴지도 모르지 사무실은 전쟁터이니까. 그곳에서 자신은 견뎌내야 하는 목숨의 가련함이라는 것. 그런데 한 귀퉁이에 한지로 수묵화 한 점은 어떤가? 또는 추상화 한점이라도 걸려 있다면 또 어떨까? 공간을 중화 시킨다. 진한 피빛 내음을 묽게 또는 옅게 희석시켜 내는 역할을 한다. 그림은 전투의 공간을 평화의 상상 공간으로 전이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화가의 영혼이 말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다들 수고하시는데 잠시 걸러 가소서라는 전언을 그림은 말해주고 있다. 이는 어느 집을 초대받아서 갔을 때 벽에 그림 한 점이 있고 없고 차이도 이와 비슷하다. 집안에 흐르는 중력의 무게가 가벼운지 무거운지, 또는 그 집안사람들의 인식의 폭이 넓은지 좁은지 가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비록 전혀 인기 없고 흡사 쉽게 들어나지 않아서 숨겨진 것처럼 찾기도 어려운 책을 애써 찾으려 했던 이유는 한 화가의 일생에 걸친 작품의 내면을 텍스트로 읽고 싶었다. 단순히 그림만 봐서는 미처 다 알아차릴 수 없는 비하인드스토리는 늘 있기 마련이고 보면, 평론서도 아니고 그림 화보집도 아닌 책 한 권으로 조금이나마 그림을 이해하는 밑거름의 역할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어떤 예술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은 중고생 시절의 음악과 미술 시간에 배운 예술이 거의 전부다. 그러니 어떤 특별한 취향이 없다면 억지로 찾아서 보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음악가의 예술에 숨겨진 일생의 이야기를 읽고 듣게 되는 음악이 그래서 달리 깊이 파고든다. 어느 화가의 일생에 걸친 일들이 어떻게 그림으로 스며들어 있는지를 느껴진다. 예술은 인식의 울림이다. 따라서 그 울림으로 자신의 삶에 한가지 떨림으로 만들어 낸다면, 그들의 인생에 걸친 영혼의 입김을 또 하나의 창조적 삶을 유도하는 것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밥만 먹고는 못사는 존재라는 것. 인식의 본능도 있다는 것. 숨겨진 삶의 입김이 마치 태초에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이 무의미한 흙에서 입김을 불어 넣어 생명이 깃들게 했다는 전설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창조란 그 입김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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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간혹 선물받은 책은 받고 나서 빨리 읽으려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림이 들어간 책이라서 서둘러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한 장 한 장 꼭꼭 씹어가며 음미하며 읽느라 늦었지요. 년초에 책 주신 이웃분에게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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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21 14: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많은 작품을 남기고 단명한 화가들, 그들이 그림 한 점 그리기 위해 소모한 기(氣) 자체가 물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영혼의 물감이 점점 바닥나고 있는 걸 화가 스스로도 느꼈을 겁니다.

yureka01 2016-12-21 14:49   좋아요 2 | URL
어느 시인이 그러더군요..목슴처럼 시 쓰다 가는 거라고 하거든요..
아마 화가도 자신의 생명을 그림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하죠.
이렇게 자기 치열성에 있어서 예술가들이 그런 면이 있더군요.
물론 아닌 작가도 있긴하죠..

강옥 2016-12-21 2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팔 수 있는 영혼도 없는 작가들이 수두루빽빽합니다 ㅎㅎ
그들이 있기에 영혼을 팔아 예술하는 사람들이 빛나는 거겠죠.
15년동안 그림하다 때려치웠다는 분을 만났는데요
공모전에 그림 내서 상받고 전시회하고 그게 대단한 건줄 알고 살았다네요.
지나고보니 거품이더라고... 한 시절 즐겁게 잘 놀았다고,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고...
영혼까지는 아니라도 걍 내가 좋아서 하는 예술도 나름 괜찮다 싶어요.

yureka01 2016-12-22 09:0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는 아직 공모전에 사진 하나 출품한적도 없고..상하나 받은 적도 없었는데..
아직도 사진 찍고 있습니다..그럼요..예술이야 자뻑이 없으면 영혼도 못팔아요.ㅋ

samadhi(眞我) 2016-12-22 0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술가는 불행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곤 합니다. 행복하고 평범한 생활에서는 예술이 나올 수 없다고. 내가 그래서 예술을 포기하고 너를 만난거라고 하면 우리 남편이 씩 웃으며 그냥 예술을 하지 그랬냐고 합니다. ㅋㅋㅋ

yureka01 2016-12-22 09: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우리나라 사람들의 악취미 일까요...
예술은 아주 그냥 가난해서 불행해야만 높이 쳐주는 가학성이랄까..^^..

2016-12-25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