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신춘문예 당선시집
강기화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마(魔)가 껴야 한다고 하더라.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른바 시마. 종종 언어의 확장성 때문에 시집을 자주 읽었고 요즘의 시가 당선되는 추세는 어떤지 볼겸 겸사겸사 읽게 되었다. 역시나, 시를 쓰는 시인의 사유에 대한 심층 구조는 언어의 파괴같이 문장의 뒤틀림이 시의 모습처럼 보였다. 문학적인 기초 기반이 없이 읽는 시는 어렵구나.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난해성 앞에서는 기가 죽을 판이다. 무슨 뜻을 이야기하는 건지 확실히 '마'가 껴서 봐야만이 읽어지고 읽어 감상력이 돋는 시스템은 아닐까 싶었다. 역시 심사위원들이 문학평론가 내지 시인들이었으니 국어학의 언어에 대해서 귀신 들리고 고수의 무당이 신내림을 하듯이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마가 끼이면 아무리 몸이 의학적인 수치가 정상이라더라도 어딘가 계속 아픈 증상이 나타나는 무당이 되는 과정을 닮은 것은 아닐까. 시의 신내림이 곧 신춘문예 등단으로 보인다. 신내림 같은 시, 내림에서 무어라 무어라 시신을 영접하는 언어의 주문으로 중얼거리지만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며 손에 지문이 지워질 만큼 시를 읽는다 한들 기초가 없이는 오리무중이다. 시 내림을 하는 사람으로 본 시의 조건이라는 것도 천차만별이고 시의 신을 모시는 주술을 닮은 문장도 각양각색이다. 기준. 이런 건 없다. 또 달리 비유해보자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문제의 문장을 하나 주고 여기에 답을 하는 시를 지어 내는 형식이다. 그야말로 오늘날로 치면 신춘문예 겪은 아닐까. 물론 문제지 없는 시험이라 신춘문예의 난이도는 더 높은 것은 아닐까 한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 문학의 담장 넘어 세계를 엿보고 살짝 힌트를 얻어 내고서 사진에 응용해보는 맛이 아주 좋았다. 별로 참고될만한 건더기가 없었더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글쎄 사진은 시 뿐만 아니라 회화의 세계도 엿보게 되는 것이니 역시 사진은 종합적으로 이것저것 뒤섞여서 연출해보는 카메라 감독의 역할이 주요하겠고 따라서, 그 느낌 아니까라는 것의 이차원의 평면적 구성이 곧 사진에 덧붙이고 볼 일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엿본다고 해서 본류를 만날 수는 없다. 아니 시의 본류를 낚을 여력도 없고 낚아도 혁명적인 사진은 나오기 불가능한 것도 안다. 다만 언어의 확장성. 이에 따른 사고의 치밀성과 절박성. 그리고 진정성까지 만나기에는 시가 상당히 유용하다. 얼추 이런 차원에서 신춘문예의 문학적인 기술을 짚어볼 요량이었다.


아시다시피, 신춘문예는 한국에서 있는 문학계에 등단하기 위한 방법중 하나로써 이어져 왔다. 일년에 중앙지나 지방지를 비롯해서 투고되는 시 작품 수만해도 압도적이라고도 한다. 시가 쉽게 읽혀지지 나라에서 시를 불 지피는 예비 습작 시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된다. 그런데 시의 소비가 되지 않는데도 시의 생산력은 가히 넘치는 경우라고 한다. 공급과 수요의 경제론적인 관점에서도 상당히 그 격차가 있다. 공급이 넘치면 시가 길바닥에 갈려 있는 것과 같이 많다는 뜻이고 저마다 시인이고 예비 시인이고 글의 문장력이 깨나 시를 닮은 사람이라면 투고하는 신춘문예이다. 응모자격이란 애초부터 업었다. 그런데 정작 등단하고 나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시인은 또 상당히 줄어든다. 몇년도 신춘문예 등단이란 스펙한 줄로 다음의 시작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이는 것은 신춘문예가 가진 단점이다. 시 한편의 원고료가 껌 값이라는데 그럴 만도 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민한 대가치고는 참 싸구려 취급이다.


시를 깊이 있게 모르는 나 같은 일반적 시선으로 봤을 때 신춘문예의 시들은 단어가 파괴되어 있는 거 같았다. 본래의 어휘와 문장의 구성과 형식은 철저히 망가져 있으니 시 세계에서는 이것을 표현의 은유나 메타포의 상징처럼 둘러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가 외국어로 보이는 이유이다. 외국어를 해석도 못하고 감정이 이입되기란 불가능하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하기야 시는 다큐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런데 언어의 초현실적인 사용은 자칫 흥미와 재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말초적인 흥미를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대체 전혀 이입조차 되지 않는다. 다들 국어 시간에 참고서 펴놓고 졸았던 것은 아닌지, 혹은 국어시간에 배운 시들의 해석이 정말 조옷 같아서였을지도 모르고 시험 문제에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점수 때문에 배운 시들은 시험의 저주를 받은 것인지도, 아무래도 복합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래, 시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던 탓이 크다.


하나정도 예를 들어 보자. "물음으로 짠 나무 그늘"이란 문장을 만났다. 그늘은 빛의 반대이자 그림자이다. 물음으로 나무를 비추니 나무 그늘이 생겼다. 그럼 물음이 빛이라면 나무 그늘은 답이란 이야기가 된다. 물리적으로 물음이란 의미에서 나무 그늘이라는 그림자는 만들어질 수가 없지만 시는 이것이 가능하다. 물리적인 현상에서의 불가능성이 시적인 표현에서는 안되는 것이 없다. 결국 시마에 시의 영혼이 침투당하면, 논리가 무너지고 사유가 뒤틀리는 무서운 심연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면 시는 사진을 닮았지만 그렇다고 사진이 다시 시에 절대 기대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낀다. 사진은 현실적인 현상의 증명의 과거이다. 세상에 없었던 것을 사진이라 할 수 없고, 찍을 수 없다. 만들 수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은 시로야 가능하지만 사진으로는 절대 없다. 사진은 시를 닮을 수는 있으되 결코 비슷할 수 없는 이유이다. 시는 이처럼 사유가 디테일하고 섬세하다. 그런데 쓸대없이 섬세함이 남발된다. 어휘의 따발총은 조준사격처럼 감성이입라는 과녁을 비껴나간 기분이랄까 싶었다.  소위 "뭣? 이 중헌디?"라고 물었을 때 무엇이 중한가라는 질문에서 중함이 무언지도 모호하게 어리둥절하다. 그래서 난해하다는 느낌은 병을 앓게 한다. 치유할 수 없는 정신분열적인 병인 셈이다. 언어의 울고 웃는 조울증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신춘문예는 이런 관문에서 통과하는 수문장에게 밑 보여서는 지나가기가 어렵다. 문을 지키는 사람은 심사위원일 테고 통과 여부는 순전히 심사자의 안목과 관록과 실눈 뜨고 페스 포트(응모작 원고)를 들여다 보고서 통과 여부가 판가름 난다. 일 년에 딱 한 작품만 통과하는 셈이다. 공무원 취업 경쟁률이 몇 백대 일 정도는 신춘 경쟁에 비하면 쨉도 안된다. 응모작이 일만 편이면 1대 일만의 경쟁률이다. 사실 이건 경쟁으로 상대적인 관점이 아니라 응모작이 공유한 시심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어떤 해는 당선작도 내지 않고 가작으로 마무리 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경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새로운 시의 실험이 도드라지고 심사자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 두개 이상 선정되더라도 2편 이상 당선작을 내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오로지 하나만 통과시킨다. 참 통과 의례치고는 고약하다. 심사자가 고약하다기보다는 시의 과정 자체가 고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사자에 눈치를 보고 심사위원들의 시적인 관점에 아주 적절히 부합되는 공식도 만들어 낸다. 사실 시가 시로써 구워 삼고 아부 떠는 문단의 권력이 그래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고 보면 얼추 속성반도 생길 법도 하다. 아니 안 생기면 더 이상할 거 같기도 한다.


당선집을 읽어 가면서, 왜 신문사에서 시를 비롯한 문학가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신문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취재하여 보도하고 사회적인 현상에 논평을 하고 사회의 공통적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며 더 나은 사회로 여론을 유도하는 역할인데 무슨 생뚱맞게 시인의 등용문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간지 신문사에서 등단의 권력을 틀어쥐고 문단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문화권력자의 모습이라는 게 이해가 좀 안된다만은 이런 역사적인 배경은 나로서 알 길은 없다. 신문사는 광고를 팔아 수익을 올리는 자본주의를 이용하는 회사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인 권력자의 모습이 과연 순수한 문학의 단체로서의 권위와 맞먹으려 드는 거 같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순수한 문학단체보다 파워가 강하다. 여론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 강력하다. 따라서 순전한 문학의 법인 재단에서 배출되는 시인보다 신문사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시인이 더 주목도가 높는 인식이 대세이다. 아마 이 책 "신문사로 당선 시집"까지 책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이를 반증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시인의 자격증이 등단이란 역할이 된다면, 그래서 그 관문을 통과한 시인만이 시가 더 주목받고 지지 받는다면 시는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신춘문예가 등단의 시를 쓸 수 있는 자격이 될지언정 시의 면허증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느 시인께서 신춘문예 응모 십 년 만에 겨우 통과한 것을 보면 굳이 꼭 신춘문예로써 통과해야 할 관례적 관습은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인지 묻고 싶었다. 중앙지의 신춘문예와 지방지의 신춘문예의 차이라는 편견도 권력적인 편견을 가졌으니 발생하는 차별이 아닐까 하는 사실이다. 시는 평등해도 시인은 평등하지 못한 세상이라는 사실. 부인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어느 분야나 스펙이 필요하지 않는 분야가 없나 보다. 문장이 낙서가 되는지, 시가 되는지는 이 스펙으로 판명될 수 있는 객관성은 사실 어디에서도 담보되지는 않는데도 말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문학은 이미 갈라파고스가 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전 세계의 시문학의 돌연변이처럼 한국의 시가 독단에 빠지는 것은 시를 점점 멀리하게 만든다. 스펙의 차별이 심한 것은 문학이라고 예외가 아니라는 점은 시의 소비자로써 상당히 불편하지 않을까 한다.

 

혹시라도 노파심에서 '너깟께 무슨 자격으로 신춘을 논하고 깝죽대냐'라고, 하거나 '오냐, 너도 응모하게 되면 잘근잘근 씹어 떨어트려 줄 테니 각오하라'라고 할는지는 모르지만 시인되겠다고 신문사로 원고 보내서 응모하는 일도 없을뿐더러, 시의 소비자로써 제품 생산자들에 대해 클레임도 걸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좀 맛나게 써라. 맛있게 먹어줄 자신은 있다. 신춘으로 등단한 시인들은 혼자 심각 병에 걸리지는 말아주시길. 가끔 시인이 지랄병에 걸려 자살하는 꼴 만큼은 두고 볼 수 없어서다. 죽을 만큼 시를 쓰던가 하지 죽긴 왜 죽냐. 가만있어도 어차피 다 자동으로 죽어가는데 애써 미리 아등바등 죽다니 애석하잖는가 말이다. 에허. 시인은 영광 없이 상처 입는 촉수가 유별나게 민감한 자들임을 안다. 그러나 시가 뭐냐. 시마에 빠지지 말자. 내가 사진 억수로 좋아해도 목매달만큼 좋아해도 목숨 걸 일 도 아니다. 무슨 독립운동도 아니라면 말이다.


<그림 아닙니다. 카메라로 찍은 거라서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은 딱히 구체적으로 뭔지는 모호합니다.

시를 닮았죠. 붉은색 무늬는 영업중이란 글씨가 물결에 반영으로 나타낸 거랍니다.

시가 꼭 이렇게 비비 꼬였거든요.

사진에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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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18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허허 시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줄 미쳐 몰랐습니다~ 허허허~^^ 뜨거운데요? 쾌도난마!
젊어 한때 문을 통과하기위해 몸부림치는 시들이라 이해를 해주세요 . ㅎㅎㅎ전 신춘문예 시집을 여기서 첨 봐요!^^ 있다는건 알았지만~^^

yureka01 2016-09-18 22:02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시어는 사유의 확장성 때문에 읽는 편입니다. 사진 찍을때 아주 잘 써먹고 있죠..
매년마다 당선작을 모은 시집이 나오는 걸로 압니다. 올해 처음 사봤습니다.^^..

[그장소] 2016-09-19 00:38   좋아요 1 | URL
이상하게 전 시수상집들은 안사게되더라고요 ..하나 하나 읽는게 더 좋아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 그치만 유레카님처럼 저도 눈여겨봐야할것같아요! 사유의 확장 좋습니다!^^

yureka01 2016-09-19 00:49   좋아요 1 | URL
^^ 아 그렇네요..
저도 무슨 수상작을 빌미로 출간되는 책은 거의 구입하지 않는 편이었어요.
수상작품 책은 저 말고도 분위기 때문에 구입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가급적이면 숨어있는 시집 이런거 좋아합니다...
물론 사진 집 이런것도 모슨 상받았다고 내는 책도 마찬가지랍니다.
그야 심사위원들의 시선으로 당락은 저랑 안맞을 가능성이 농후할 가능성이 많아서 말이죠.ㅎㅎㅎ^^.

사진 계에서도 무슨 공모전 아주 많이 합니다.그런데 제가 찍는 사진은 출품하면
백퍼 떨어집니다..ㅎㅎㅎㅎ

[그장소] 2016-09-19 01:51   좋아요 1 | URL
에구 무..슨 그런 100% 말도 안되는 다짐을 하십니까~^^ㅋ 저는 읽는 것도 읽히는 것도 어느 때가오면 비주류에서 주류로 물흐름이 바뀌듯 체인지 된다는 걸 읽곤 해요 . 그러니 유레카님 사진도 대중에 혹은 심사의원의 눈들에 주류가 되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요! 계속 꾸준함에는 그만한 댓가가 온다고 믿어요 .!^^
그게 당대에 받지 못하는 경우라도 멈추어선 안되는 이유 아닐까해요..

yureka01 2016-09-19 08:47   좋아요 1 | URL
그럼요 ..자신이 주류라 생각하고 뭐든 꾸준함이 추구하는데 있어서 한가지 덕목이죠..
몇해 하고 말 거 같으면 시작도 하지 않는게 낫죠.

감사합니다^^..

cyrus 2016-09-18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이 눈 여겨 본 시인이 있으면 많이 알려주세요. ^^

yureka01 2016-09-18 22:02   좋아요 1 | URL
문장이 아름다운 시인 만나면 꼭 소개 하겠습니다.^^..

2016-09-18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8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8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8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6-09-19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모르셨나봐요. 詩는 시시한 사람들이 쓰는 거라는 걸.
지 혼자 알아듣는, 지 혼자 뇌까리는 난해한 독백을 감히 詩라고?
시를 모독해도 분수가 있지 말입니다~
좋은 시는 한글을 깨친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동선의 `좋은 사진`이 사진하는 분들의 교과서인 것처럼
제대로 된 시를 담고있는 `좋은 시` 책도 한권쯤 있었으면 하네요.
돈 주고 불쾌감을 사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공짜로 `좋은 시`찾아 읽으시는 게 나을듯.
신춘시들은 실험정신이 강한 작품들이 많아서 더더구나 비추입니다 ㅎㅎ

yureka01 2016-09-19 15:05   좋아요 1 | URL
네 실험정신...이게 어렵더라구요.ㅎㅎㅎㅎ
그럼 독자는 실험당하는 시의 몰모트가 되니 봅니다.ㅋ


어떻게 연휴는 넉넉히 지내셨는지요..^^..
명절 지내느라 수고하셨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