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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홀릭 더 아시아 faceholic the Asia - 태초의 언어, 표정을 찾아서
송기연 지음 / Snapsazin(스냅사진) / 2015년 10월
평점 :
1. 우선 들어가기 전에.
친구가 차 뒷자리에 실린 책을 보더니,
어디 사진이냐고 물었다.
(동남아?)아시아라고 되어 있잖아.
( 극동은 살벌해서 싫음.)
사진은 인터넷에 많지 않나?
많지. 많기는 한데 프린트된 책으로 만날 기회는 잘 없어.
사진의 소비시장은 우리나라엔 없다.
이렇게 책으로나마 만날 수 있는 작가는 상당히 드물다.
그래서 사진작가의 사진집으로 나도 사진 좋아하게 되고 소비할 수 있으니 된 거겠지.
2. 작가.
일면식도 없어도 그저 온라인에서 사진으로 뵙던 분.
그런데 얼굴 사진일까?
서문과 말문에서 나온다.
인간의 표정이라 함은 절망적 사람의 희망적 근거 찾기라고 했다.
결국 사진은 사람의 모습이고
사람의 얼굴로 대표 된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오욕 칠정 생로병사가 다 얼굴에 써져 있음을
한 권의 사진 집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 사진들의 색.
얼굴 사진이지만 사진과 얼굴에서 다양하고 화려한 색이 나온다.
풍경의 색과는 다른 화려함 속에 남루함이 숨어있다.
아 이 진한 페이소스.
그러나 남루함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순박함은 무엇인가.
소박함은 무엇인가.
게다가 삶이란 우리의 얼굴에 투영된 색에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닐까.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질문은 사진 장수만큼 나온다.
그야말로 "남루한 화려"이다.
만약에 흑백 사진이라면 또 달랐을 테지만,
작가는 그 색에서 남루하더라도 희망을 찾고 싶은 간절함이 베어 있음을 느낀다.
4. 특히, 아이들 얼굴.
성경에 보면,(기독교 환자는 아니다. 읽기는 대번.) 아이들 얼굴은 천사의 얼굴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순수함과 가식 없음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순간은 이미 천국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자라고 커가면서 알게 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얼굴에 반영되고 굳어진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이들 얼굴에 담긴 웃음을 보고 과연 나는 언제 사진의 얼굴의 미소처럼 웃어 본 적이 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삶이 만든 때가 쌓이는 시간에 나의 미소는 점점 석고상처럼 굳어진 것일 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마냥 웃음 지을 수 있는 모습은 일종의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 얼굴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뭘까라고 물음을 던지기도 전에,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나오는 인상은 결국 나의 어릴 적 인상과 유난히도 닮았던 동질성을 사진으로 재확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5. 해필 동남아인가?(동남아의 사진을 더 유심히 봄.)
동남아는 겨울이 없다. 여름이 지속되는 동남아의 계절은 겨울과는 다르게 항상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지구의 지도를 펴 놓고 보면 겨울이 있는 지역과 여름만 있는 지역을 보면, 삶의 행태성은 확연하다.
겨울의 모짐이 없으니 추위로 인한 꽁꽁 얼어붙은 얼굴이 아니다.
여름 과일이 풍성하고 숲과 물이 넘치는 따뜻한 기후가 주는 온화함은
겨울에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에스키모인의 척박한 처절함은 보이지 않는다.
기후가 사람의 게으르고 낙천성을 수용하고 포용한다.
게으름조차도 자연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의 이상적 사회와 닮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얼굴이 맺힌 주름조차 여유로운 이유다.
산업화가 되지 않아서 자본의 손길이 미약하다 하더라도
가난함에도 비굴함이 없는 얼굴이다.
더더구나 계절에서 주는 위로와 계절에서 주는 다양함이 사람의 인성과 얼굴이 결합되어 있다.
비록 누추하고 남루하지만 여름의 날씨만큼 색이 강렬하게 원색을 들어내는 아름다움은 그래서 경제적인 풍요보다는 더 안온하게 가난이 다가온다.
얇은 옷과 난방이 없어도 되는 기온의 평화는 얼굴에서 먼저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뜻한 마음을 찾고 그 찾으려 애쓴 사진이 사진에 곳곳에 나타난다.
비록 가진 거 좀 없어도 걱정이 없는 얼굴을 우리는 또 다른 간절한 그리움이다.
사진집의 스토리가 딴 것이 아닌, 바로 이런 따스함의 원형질 같은 것이리라.
꽁꽁 얼어붙은 시베리아 벌판 같은 낙원의 모습이 그래서 상상이 더더욱 안되는 이유다.
공장에서 나오는 먹거리(모든 가공식품)들은 기본적으로 자본을 필요로 한다.
즉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공짜다.
자연에게서는 무슨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연이 만든 공장은 그저 공생하기를 원한다.
다 가난해도 조금 부족할 뿐이지 적어도 풍요로운 자연에서 아사자가 없다.
그래서 가난할지라도 배곯는 아픔이 적다.
이게 얼굴에 써져 있다.
6. 자신의 주제에 평생을 걸고 찍는 사람이 사진작가다.
나는 사진가와 사진작가라는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
사진가는 넓은 범위에서 사진을 찍는 모든 사람을 사진가라고 부르지만,
사진작가는 사진의 주제와 자신의 사진적인 준거에 평생을 몰두하고 찾는 사람이라 부른다.
요즘은 사진가는 상당히 많다.
널리고 널린 게 카메라이고 이젠 손에 핸드폰마다 카메라가 다 있으니 전부가 사진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주제에 맞는 철학을 기울이며 자신의 담론에 사진으로 찾아가는 사진가는 작가로 재해석된다.
사진에 얼굴이란 힘의 근원을 찾으려는 사진집.
그래서 그는 사진작가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중이떠중이처럼 시류에 스타일에 따라 흐르는 부평초 같은 시간에
자신의 근원적인 원류를 붙들고자 하는 사진은 분명 사진작가가 아니면 어려운 작업이었으리라.
꾸준할 수 있다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붙들고 늘어져야 할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바로 사진집에 나와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과 사진 사이.
사진 행간에서 나오는 그 고독하리 만치 붙잡고 싶은 내면적인 힘이었을 것이다.
7. 사진집 한 권... 참으로 넉넉한 기분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