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의 시선이 바닷가로 갔다. 넓은 갯벌에 밀물이 썰물로 물이 빠지고서야 새들이 먹이를 찾아다녔던 족적을 발견했다. 그 발걸음을 카메라 시선을 점점이 따라갔다. 얼마나 종종 거리며 지나갔을 발자국을 물끄러미 본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종내에는 두 발로 땅을 서서 먹이를 찾아 걸었야만 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자유의 이상을 날듯이 날아가겠지만 결국은 배고픔은 접었던 발을 땅에 딛어야만 했다. 이상과 자유는 하늘을 날고, 현실은 땅을 밟고 서서 허기를 채울 먹잇감을 만나기 위해 두리번 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등바등 종종걸음을 내딛는 걸음의 보폭과 이 사이로 바람이 세월이 흐른다. 한 발 한 발의 시간은 그렇게 운명의 보폭만큼 벌리며 달려야 했다. 사진은 새의 족적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면서 바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되는 새의 현실이 오늘날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은유하고 그 심정을 비유한다. 그저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현실이 족적으로 남았고 다시 바다의 밀물이 스며들면 지워지고 만다. 자본은 늘 우리들을 종종걸음으로 다니도록 한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 족적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은 문득 멈추었다.

 

 

새가 죽어 아등바등 다녔을 발의 유골. 새가 멈추는 그 자리가 곧 새의 장지가 되었다. 몸은 어디로 풍화되어 사라져 버리고 빈 발만 덩그러니 누워 뼈를 드러 내고 세월의 시간이란 바람에 흩어지려 하는 모습이다. 결국인 카메라가 멈춘 시선에서 눈에 힘이 들어가기 충분한 두 장의 사진이다.

 

오늘날, 우리와 아니, 내가 이와 비슷한 이입이 밀려 든다. 허기지고 배고픈 결핍과 늘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먹잇감 같은 자본의 지폐를 찾아 시간을 떠돌았을 내가 저기에 있는 것만 같았다. 직장이라는 게 바닷물이 빠진 겟벌의 족적처럼 흔적이란 경력을 남겼고 그 기록으로 오늘의 족적에 수렴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사진과 똑같이 나도 유골로 사라져가야 할 운명 앞에서 사진의 은유는 타자가 아니라 거의 자아의 이입적인 메타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짧은 멘트의 확 오르는 두줄로 눈물 같은 문장을 떨군다.

 

 

"먹이를 찾아 뻘밭을 얼마나 헤맸을까. 종내 굶어죽은 물새는 고달픈 발만 남기고-"라는 문장이 한 편의 하이쿠이자 사진의 명백한 증명을 담보하기에 충분하다. 그래 우리도 얼마나 오늘도 종종 거리며 먹이 같은 지폐를 찾아 헤매고 있는지를 작가는 묻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종종거린 걸음은 내일의 화석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아 바람에 풍화되고 바다에 퇴적되어 가는 유기적인 현상이 무기적 현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양모 회장이란 놈이 야동으로 번 돈으로 개 짓만도 못한 폭력을 써도 자본은 그를 버티게 하는 다수의 굴종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오늘날 현대 사회의 결정적인 비극 중 하나다. 법률이란 시스템도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 보니 자본은 법적 구속력 휘저으며 폭력과 만행을 일삼아도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자본으로 쉽게 무마해 버린다. 이는 자본 위에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 아래에 법이 있는 가치관의 역전 현상이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는 굴종을 만든다. 즉 돈이 없다는 것은 자본 사회에서는 일종의 죄악이나 마찬가지고 돈이 많으면 그 어떤 짓도 다 무마시켜 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이다. 그 돈에 종속되어서 비참하고 비굴하게 얻어 맞고도 아부를 떨었어야 하는 직원들의 감정은 돈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에 대한 현상이다.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가. 그런 자본 때문에 맞아가며 삶을 살고도 과연 살아남았다 한들, 뭐가 남는 것인지 새의 유골을 보니 감정 이입은 더 해만 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자급을 잃어버린 자본 본위 시대에 모든 생산적 가치를 자본으로 치환하는 방식에 자본의 비극이자 지폐 사회에 지옥이 숨어 있는 셈이다. 생존이란 삶을 구속한다. 살기 위해 저질러지는 부조리함과 비합리성과 비논리성과 비윤리성은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만든다. 생존은 그래서 인간을 더 비인간화시켜가는 속박처럼 만들어 버리는 본질적인 모순을 발견한다.

 

흔히 간단하게 사는 거란 그런 거라며 퉁친다지만 그런다고 사는 게 과연 사는 것처럼 살고 있기는 한 걸까? 결국 흔적조차 말라버리는 유골의 앙상함은 두 장의 사진이 우리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궁극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 슬프다. 사는 게 다 슬프다.

 

사진 출처 : 지우당님 블로그에서 발췌. ( http://blog.daum.net/kk5657/16157284 에서 참조. 사진 게시 동의 얻었습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11-10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0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0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2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2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8-11-11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나 짐승이나
먹고 살기 참 애럽심더 ㅠ.ㅠ
종내 저리 될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꾸역꾸역 밥 벌러 나가야하는 -

yureka01 2018-11-12 09:23   좋아요 1 | URL
사진보고 내내 사진의 의미가 더 또렸해지더군요.
그래서 글 한편 쓰고 싶었어요~.

2018-11-13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4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5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15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