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2 : 돈키호테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
백원흠 그림, 김형주 글, 손영운 기획, 미겔 데 세르반테스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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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귀족이었던 돈키호테는 세상의 모든 불의와 부정에 대항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불후의 명성을 남기기로 결심을 하고 길을 나선다. 낡고 어쭙잖은 기사 복장으로 깡마른 말 등에 올라타고 편력을 하던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싸움을 걸었다가 낭패를 보는가 하면 양 떼를 적의 군대라 착각하고 그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그렇게 낭패를 보고서도 돈키호테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요술쟁이의 장난이다."고 소리치고 자신의 이상을 좇아 여행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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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는 이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돈키호테의 눈을 통해 16세기 스페인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지배 계급의 형태를 마음껏 풍자하고 조소를 보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통해서, 세상을 살다보면 덕성이나 신중함이 꼭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고난과 역격으로 가득찬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려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돈키호테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이상주의자나 유토비아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이다. 돈키호테가 바라보는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그래서 기준이 없이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는 현실에 대해서 의심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부정하며, 그 경계조차 무너뜨려 버린다. 그렇게 주인공 돈키호테는 질서 정연한 현실의 공간을 환상적이며 마술적인 공간으로 바꿔 버린다.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는 출단된 지 40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고전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돈키호테]는 2002년에 노벨연구소에서 세계 최고의 작가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다른 명작들을 제치고 [돈키호테]가 최초의 작품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이 현대에도 여전히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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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사회는 신분과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신분은 귀족, 자유인, 반 예속민, 예속민으로 나뉘었고, 계급은 제후, 기사, 부농, 중농, 빈농, 일용 노동자 등으로 나뉘었다. 기사가 되는 데는 신분의 차별이 없었기 때문에 귀족이 아니더라도 자유인이면 누구나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옷과 전투용 말의 값이 비싸지면서, 기사들의 대부분은 부유한 귀족 출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사도의 발전은 봉건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은 지방 영주에 예속된 농민이었다. 이들은 영주의 땅을 경작하고 그 땅에서 나온 수확물의 일부를 영주에게 바쳤고 영주는 그들에게 집과 가축 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외적의 약탈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돈키호테가 모험을 하면서 착용한 긴 창과 방패 같은 것은 사실 아주 오래전의 기사들이 착용하던 것으로,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었던 16세기의 무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15세기 초에 이미 발화력을 이용한 무기가 널리 퍼지면서 무기 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15세기 초부터 육지에서 싸우는 보병대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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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반테스와 함께 대문호로 칭송받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동시대 사람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같은 해, 같은 날인 1616년 4월 23일에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유네스코에서는 이 두 대문호를 기리고 전 세계인들의 독서 증진을 위해 이 두 사람이 동시에 사망했던 4월 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2002년 노벨연구소에서 세계 최고의 작가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돈키호테]가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었다. 수없이 많은 다른 명작들을 제치고 [돈키호테]가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이 현대에도 여전히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기존 기사 소설들의 서술 방식에 회의를 품고 새로운 서사 형식을 모색해 [돈키호테]라는 현대적인 의미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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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1 : 주홍글씨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1
배민기 그림, 김세라 글, 손영운 기획, 너대니얼 호손 원작 / 채우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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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미국은 청교주의라는 엄격한 종교적 도덕률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소설 [주홍 글씨]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금지된 사랑을 아픈 마음으로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으며,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수작이다.


 [주홍 글씨]는 헤스터 프린이 처형대에 서서 처벌을 받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헤스터 프린이 어떻게 딤즈데일 목사와 불륜을 맺었는지가 아니라, 불륜을 저지른 후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감옥과 무덤이 상징하듯 원죄를 지닌 인간이 본질적으로 죄를 짓기 쉽다는 점과 죄로 인한 죽음이 어떤 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에서 여자는 용서 받지 못할 죄인으로 취급받고, 간통죄를 뜻하는 주홍 글씨 A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여자에게 주홍 글씨 A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지워지지 않는 낙인 같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여자는 외딴 곳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삯바느질로 근근이 살아간다. 반면에 아이의 생부는 남몰래 죄의식에 시달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악마의 자식으로 여겨지는 아이는 유난히 엄마 가슴의 A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여자의 남편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복수를 꿈꾸는 남편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아이의 생부에게 접근해 간다. 그는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상대의 영혼을 조정하고 자멸 시키려 한다. 한편 여자는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지만 마음속으로는 도피를 꿈꾼다. 하지만 아이의 생부가, 자신이 숨겨진 죄인이었음을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만다.


 [주홍 글씨]는 17세기의 미국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헤스터가 사는 뉴잉글랜드 지방은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이다. 호손은 청교도 사회의 규범에 도전하는 주인공 헤스터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보여 준다. 개인에게 자유를 무한정 허용한다면 사회의 혼란스러워지고, 반면에 사회 질서를 우선시하면 개인의 자유는 제약을 받게 된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 간에는 긴장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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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인이란, 소유자를 표시하기 위해 가축 등에 쇠붙이를 불에 달궈 찍는 도장을 말한다. 예전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낙인을 찍어 죄인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범죄학 이론 중에 '낙인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 사람에게 일탈자라는 낙인을 찍게 되면 그 사람은 일탈 행동을 더 하게 되고 결국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낙인 이론에서 유래한 용어가 '낙인 효과'이다. 일단 일탈자로 규정되면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당사자는 점점 위축되어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그 낙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된다.


 한편, 낙인 효과와 반대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없어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아로 조각했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 조각상을 그는 진짜 사람인 양 아끼고 보살폈고, 나중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마침 '사랑의 여신' 축제가 열리자 그는 그 조각상과 똑같은 여성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피그말리온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기도를 들어주었고, 조각상이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변하자 피그말리온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처럼, 어떤 일에 대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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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손은 [주홍 글씨]를 소설이 아닌 로맨스라고 불렀다. 로맨스는 문학의 한 장르로서 낭만주의 문학의 전통에 속한다. 중세 기사들의 연애와 모험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공상적이고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했고, 다시 몽상적인 소설을 가리키게 되었다. 호손에 따르면 소설은 평범한 일상 경험을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햇빛에 드러난 삶이 소재가 되는 반면에, 로맨스는 일상생활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을 다루며 달빛에 드러난 모습이 그 소재가 된다. 즉, 로맨스는 소설에 비해 다소 공상적이고 상상적인 요소가 강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호손 스스로 [주홍 글씨]를 로맨스로 분류했듯이 이 작품에는 사람의 가슴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거나 하늘에 큼직한 글자가 나타나는 등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는 소설과 다른 대목들이 나온다. 또한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어휘들이 많이 등장하고, 가정법 문장이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로맨스적 요소로 파악될 수 있다. 한편,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낭만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헤스터는 죄인이 아니다. 오히려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 본성에 기초한 자연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 한 낭만주의자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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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 자녀를 진정한 성인으로 키우는 법
줄리 리스콧 하임스 지음, 홍수원 옮김 / 두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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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예전보다 자녀들이 많지 않아선지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다. 자녀는 분명히 보호해야 할 의무를 부모가 져야 하지만 너무 심한 과잉보호는 오히려 자녀들을 망가뜨릴 수 있고, 그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부모들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또한 부모의 지나친 간섭 이면에 깔린 사랑과 근심에 주목하고, 그런 개입이 자녀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도 살펴본다. 더 나아가 종전과 다른 부모 역할을 통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이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자녀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부모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면, 자녀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기본적이자 생물학적 임무이기도 하다.

 

 위험을 예방하는 많은 안전장치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우리 자녀를 해칠 의도를 지녔을지 모를 사람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한다. 그래서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가르치고, 밖에서 놀 때는 그런 사람을 잘 살피라고 이른다.

 

 위해를 가해 올지도 모를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일에 무심해지게 된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혼자 바깥에 있는 흔치 않은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는 저렇게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저 아이가 돌봐 주는 어른 곁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저 아이가 방치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나아가 경찰이나 어린이 보호기관에 전화로 신고를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게 될지 모른다.

 

 

 자녀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을 부모가 대신 해 주다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해서 이젠 스스로 알아서 할 때이니 잘해 보라고 확 풀어준다면 그 젊은이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때 이들은 좌절감을 느낄 것이고, 이런 좌절감은 실패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실패마저 많이 겪어 보지 못한 탓에 그 실패를 감당하지도 못할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궁리해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핵심 요소가 된다고 한다. 이제 자녀는 혼자 힘으로 버텨 내야 한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더 나쁘게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이런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스스로 이겨 내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처방이다.

 

 일부 학부모는 독단적인 자녀 양육 방식을 옹호한다. 이런 양육 방식을 따르는 부모는 자녀의 학업과 과외 활동 목표를 거의 여지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녀에게 벌을 준다. 또한 학업 문제와 관련해 자녀를 고압적으로 다루는 부모는 자녀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

 

 21세기의 일터는 전 세계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며,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이런 일터에서 성공하려면 진취적으로 솔선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기개를 크게 요구하고 있다. 이러고 보니 고용된 사람은 나이에 관계 없이 얻을 수 있는 갖가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제안을 하거나 충고, 의견교환을 해 주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용주는 젊은 직원들의 성숙함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고용주는 또한 직원들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즉 스스로 업무를 처리할 만한 역량을 갖추기를 바란다.

 

 

 과잉보호는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도 해를 입는다. 오늘날의 부모는 기진맥진하고 불안하고 우울하며 두렵기까지 하다. 심리학자들은 '자녀 양육의 역설'이라는 표현을 쓴다. 자녀를 키우면서 한편으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에 따른 불안감과 우울증을 느낀다는 뜻이다.

 

 많은 부모, 특히 어머니들은 자신이 대학, 어쩌면 대학원에 다닐 때나 직장에 근무할 때 하던 방식 그대로 자녀 양육을 계속하고 있다. 또 자녀가 마치 소규모 기업체의 상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녀의 삶을 온통 떠맡을 듯이 나선다.

 

 자녀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무엇을 먹는지, 옷을 어떻게 갖춰 입는지, 어떤 활동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이뤄 내는지 등 모두가 부모 자신들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가 부모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셈이다. 그 때문에 자식들의 삶은 곧 부모의 성취나 다름없고 이들의 실패는 곧 부모의 잘못이 되고 만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가치를 자식이 이룩한 성취로 측정한다. 그런데다 성취의 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하다 보니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녀의 온갖 일에 전력을 다해 지속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어린 시절이 빡빡한 일정과 점검표로 채워지면 아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놀이를 즐길 시간도, 기회도 갖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놀이도 부모나 자식이 다 같이 짬을 낼 수 있을 훗날을 위해 부모가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계획된 놀이에 부모가 함께 가고, 놀이의 내용도 이따금 부모가 아이디어를 내며, 또 아이들이 놀이가 끝나야 할 시간에 끝나지 않거나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할 경우에 대비해 부모가 놀이 현장을 지킨다.

 

 빈틈없이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고려한다면 부모가 자녀의 놀이 일정을 짜는 일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놀이 시간을 만들더라도 놀이 방식에는 끼어들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 놀이야말로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최초의 진정한 과제이다.

 

 

 과잉보호에서 방향을 바꿔 자녀가 어른이 될 수 있게 키우는 것이 이성적으로 멋지고 근사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은 자녀 양육하는 데 과잉보호 방식을 그대로 좇고 있다. 이런 양육 방식 외에 달리 다른 방식을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들은 다수가 우리 대신, 아니 자녀 대신 선택해 준 삶을 그냥 따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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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역설 - 비난의 순기능에 관한 대담한 통찰
스티븐 파인먼 지음, 김승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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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흔히 남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이렇게 자신 안에 있는 결점과 잘못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심리적인 쓰레기 내버리기로, 이는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올리려는 시도다. 그러게 자신의 부담을 밖으로 쏟아버리고 나면 적어도 한동안은 좀 더 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녀사냥의 핵심은 희생양 만들기다. 오래전부터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사회가 위협과 걱정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수단이었다. 희생양을 만듦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이 져야 할 비난의 짐을 벗는다. 결백한 표적에게로 비난을 옮겨놓는 것이다. 표적은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비난과 칭찬 사이에는 막대한 비대칭이 있다. 비난이 이뤄지는 맥락이 칭찬이 이뤄지는 맥락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다. 우리는 죄지은 사람을 비난하지만 죄짓지 않은 사람을 칭찬하지는 않는다. 험하게 차를 모는 운전자를 비난하지만 안전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칭찬하지는 않는다. 또 칭찬은 종종 후면에서 이뤄진다. 그래서 칭찬의 사회적 효과는 덜 가시적이고, 안전, 자유, 도덕성과 같은 커다란 사안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비난과 칭찬의 분포는 그 사회가 무엇을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보는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어쨌든 부정적인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은 실패가 성공보다 더 자주 환기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자신의 삶이 위협받을 때 사람들은 도덕적 패닉 상태에 빠진다. 불안이 증폭되어 이성적 판단에 마비가 오면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위협의 원인으로 낙인찍어 사회의 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사회의 적은 중세 마녀부터 오늘날의 난민까지 모든 세대에 제각각 다른 형태로 존재했다.

 

 

 비난 문화는 경직되고 두려워하며 희생양을 만드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구성원들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다. 비난 문화는 개인의 주도권을 없애고 자기방어를 촉진한다. 그럼으로써 심리학 교수 제임스 리즌이 명명한 취약 시스템 증후군, 즉 조직이 실패와 기능 장애를 일으키기 더 쉬워지는 현상을 불러온다.

 

 '누구의 잘못인가?'는 조직에서 무언가가 잘못되면 으레 들리는 말이다. 잘못한 사람을 찾아내서 그를 비난하려는 것이다. 잘못이 심각한 경우에는 강등이나 해고 등 엄한 징계가 가해진다. 그렇게 처리가 끝나고 나면, 조직은 하던 대로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난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요컨대 비난 문화는 개인의 주도권을 없애고 자기방어를 촉진한다. 이러한 현상이 만연하면 위기가 닥쳤을 때 재앙이 될 수 있다. 위기 때는 일상적이지 않은 대응이 절실히 필요한데, 비난 문화에서는 그런 대응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비난 문화의 반대는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새로운 제안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과 협력해서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조직 문화다. 이런 조직에서라고 비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조직은 열려 있고, 포용적이며, 공평하다. 다시 말하면 공정하다. 공정 문화는 조직 구성원이 희생양이 되거나 앙갚음을 당할까 봐 걱정하지 않고 비판, 불평, 경고, 실수 등을 할 수 있는 문화다.

 

 

 기업은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활동,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제품 결함, 거짓 약속이나 지키지 않은 약속 등 많은 일들에 대해 비난받는다. 거대 기업과 민간 유틸리티 (수도, 전기, 가스 등) 업체가 특히 취약한데, 이들은 최악의 기업으로 꼽혀 언론에 오르기도 한다. 가장 강한 비판이 쏟아지는 곳은 아동 노동, 포르노, 동물 학대, 무기 제조, 낙태, 담배 등과 관련된 기업이다.

 

 기업은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으면 변호와 방어에 막대한 자원을 사용한다. 소송이 제기된 경우에는 막강한 법률 팀을 구성하며, 합의금을 크게 깎는 데 성공하곤 한다.

 

 우리는 기업의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활동, 노동 착취, 환경 파괴, 제품 결함, 거짓 약속 등에 대해 적극 비난해야 한다. 시민 활동가들은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대표적인 사람들로, 우리가 그들의 목적과 방법론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없다면 훨씬 더 빈약한 사회에 살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기업들은 흔히 훌륭한 대의명분을 내세운 활동에 자사 이름을 가져다 붙이거나 NGO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쌓는다. 예술, 스포츠, 대학 및 연구 기곤 자원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주도면밀한 자금 분배를 통해 적대적인 대중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비판을 완화한다.

 

 

 공공기관, 공무원, 정부 인사 등은 세금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공개하고 그들의 결정과 행위가 타당함을 설명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국민은 그들을 비난하고 책임을 물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도덕적인 정부는 국민의 손과 눈과 입으로 만들고 지켜낼 수 있다.

 

 가해자의 사과는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치유와 화해 과정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뉘우침에 진정성이 있어야하며, 필요한 경우 반드시 보상이나 배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회복적 사법에서 용서는 필수적이다. 용서는 비난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자신을 괴롭힌 자를 사면해주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가 뉘우침이나 회개를 보인 이후에 피해자가 용서하면 피해자가 심리적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자신감, 행복, 건강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비난은 우리가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건한 방법일 수도 있고, 부드러운 언쟁일 수도 있으며, 상대방에게 독이 되고 커다란 상처와 충격을 주는 일일 수도 있다. 비난은 결혼 생활을 깨뜨릴 수도 있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중요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무산시킬 수도 있고, 막강한 기업에 심각한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 정부를 뒤엎을 수도 있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며, 인종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일상에 너무나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다 보니, 비난은 으레 있는 일로 당연하게 여겨지기 쉽다.

 

 비난은 어떤 문제를 설명해주는 듯 보이기 때문에 주목받는다. 그렇다. 비난은 무언가에 의미를 갖다 붙이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다. 또 비난은 위협이나 상처나 슬픔을 느낄 때 곧바로 가져다 쓰기 만만한 것이기도 하다. 비난은 상대방에 대한 추궁의 언어이자 자신에 대한 보호의 언어다. 그리고 많은 경우 비난에는 감정이 실린다. 우리는 대개 화나고 분하고 치가 떨려서 비난을 하는데 이런 감정은 우리의 시야를 급격하게 좁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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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 돈 걱정 없는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부채 관리 전략
백정선.김의수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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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면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로 간주해서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우니라는 일방적으로 빚진 사람의 책임만을 따진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빚잔치판의 민낯이다.

 

 사람들이 대개 빚 없이 살다가 집을 사려고 할 때 어쩔 수 없이 빚을 지는 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빚에 대한 훈련을 받고 빚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들은 전세를 구할 때부터 다르다. 될 수 있으면 전세대출도 많이 안 받으려고 하고 집을 살 생각은 더더욱 멀리한다. 반면 전세대출을 받든 주택담보대출을 받든, 자기 소득이나 자산에 비해 과다한 부채를 지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신용카드와 할부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빚 자체를 위험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20~30대 세대에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소비심리학 측면으로 볼 때 남자들은 꽂히면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새 자동차와 같이 욕망이 꽂히는 게 있으면 할부와 같이 일단 지르고 나중에 갚자는 유혹에 잘 넘어간다. 반면 여자들은 싸다고 느끼면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노린 대표적인 마케팅 수법이 홈쇼핑 무이자나 청구할인, 할인쿠폰과 같은 것들이다. 어느 쪽이든 결과적으로는 무리한 소비,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져서 빚지는 원인이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한때는 저축을 장려하는 문구로 많이 쓰였다. 작은 돈이라도 계속 모으고 모으면 큰돈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실 저축은 티끌 모아 태산이 잘 안 된다. 1만 원씩 2만 원씩 틈틈이 저축한다고 해도 얼마 안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카드 값은 아주 손쉽게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

 

 흔히 카드 빚에 관해서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한 방에 수십만, 수백만 원씩 지르다 보니 카드 빚이 는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티끌 모아 태산 같은 카드 값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최근 '핀테크'가 각광을 받으면서 카드조차도 꺼낼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이제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아주 약간의 불편함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터치하는 것만으로 결제가 이루어지거나 지문, 홍채와 같은 생체 정보로 결제를 하는 식으로 점점 더 편리한 결제 방식이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핀테크 사회는 소비를 편리하게 하므로 더 많은 소비를 일으키는 데 효과적이다.

 

  현금은 신용카드보다 불편하다. 소액 결제에도 자유롭게 카드를 쓸 수 있는 한국에서는 카드 대신 현금을 쓰라고 하면 정말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소비가 편리할수록 불필요한 소비가 많아지고 소비의 감이 없어진다. 소비에 대한 감이 없다면 결제하기 힘들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절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를 절제하려면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가상보다는 실물과 가깝게 지내라. 핀테크보다는 그나마 신용카드가 낫고,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가 낫고, 체크카드보다는 현금이 훨씬 낫다. 하루 혹은 1주일 단위로 봉투에 내가 쓸 만큼의 돈만 넣어 두고 그만큼만 쓰는 소비를 하면 그다음 달 통장 잔액이 크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돈을 쓰는 편리함과 멀어질수록 불필요한 소비, 무리한 소비와도 멀어진다.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지금의 50대는 90세, 더 나아가서는 100세까지 살 확률이 높다. 50세면 대략 인생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 시점을 흔히 중년의 위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우울함, 후회, 걱정이 늘고 심리적 불안 속에서 라이프 스타일이 급격하게 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내 삶을 찾자면서 취미 생활을 찾는 비중도 늘어난다.

 

 특히 혼자 사는 40~50대는 더더욱 자신을 위한 소비가 많다. 자녀가 있는 중년은 대개 양육과 교육으로 많은 지출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중년들은 자기를 위해 많은 지출을 한다. 이런 중년층은 인생에서 대체로 수입이 가장 많을 때이기 때문에 소비에 따른 불안감도 적다.

 

 문제는 수입의 정점이 오래가지 않고, 그다음에 수입 절벽이 올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대부분 직장은 은퇴하기 직전의 연봉이 가장 높지만, 정점이 지나면 노년과 은퇴가 찾아오고 수입이 빠르게 줄어들지만 이미 높아져 버린 소비지출을 쉽게 끊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수입이 줄었다고 해서 그에 맞게 삶을 바꾸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빚을 지게 되는 사람들 중에 '앞으로 이만큼 빚을 져야지' 생각하고 빚을 지게 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자신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 어느 날 빚이라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전세살이가 서러워 집 하나 마련하려고 한 것뿐인데, 더 잘 살아보려고 한 것뿐인데, 조금만 더 수익을 보려고 한 것뿐인데...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똑같이 빚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체제, 소비자를 기만하는 금융회사, 카드회사의 마케팅과 정부 정책 등이 한순간에 사람들을 빚의 터널로 밀어 넣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여러 재무적 이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이다. 결혼을 하면서, 전셋집을 구하면서, 전세금을 올리면서, 또 집을 사면서, 아이를 출산하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빚의 굴레에서 점점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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