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부모가 자녀를 망친다 - 자녀를 진정한 성인으로 키우는 법
줄리 리스콧 하임스 지음, 홍수원 옮김 / 두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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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예전보다 자녀들이 많지 않아선지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다. 자녀는 분명히 보호해야 할 의무를 부모가 져야 하지만 너무 심한 과잉보호는 오히려 자녀들을 망가뜨릴 수 있고, 그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부모들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또한 부모의 지나친 간섭 이면에 깔린 사랑과 근심에 주목하고, 그런 개입이 자녀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도 살펴본다. 더 나아가 종전과 다른 부모 역할을 통해 장기적인 측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이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자녀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부모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면, 자녀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기본적이자 생물학적 임무이기도 하다.

 

 위험을 예방하는 많은 안전장치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들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우리 자녀를 해칠 의도를 지녔을지 모를 사람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한다. 그래서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가르치고, 밖에서 놀 때는 그런 사람을 잘 살피라고 이른다.

 

 위해를 가해 올지도 모를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일에 무심해지게 된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혼자 바깥에 있는 흔치 않은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는 저렇게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저 아이가 돌봐 주는 어른 곁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저 아이가 방치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나아가 경찰이나 어린이 보호기관에 전화로 신고를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게 될지 모른다.

 

 

 자녀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을 부모가 대신 해 주다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해서 이젠 스스로 알아서 할 때이니 잘해 보라고 확 풀어준다면 그 젊은이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때 이들은 좌절감을 느낄 것이고, 이런 좌절감은 실패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실패마저 많이 겪어 보지 못한 탓에 그 실패를 감당하지도 못할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궁리해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핵심 요소가 된다고 한다. 이제 자녀는 혼자 힘으로 버텨 내야 한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더 나쁘게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을 때는 이런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스스로 이겨 내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처방이다.

 

 일부 학부모는 독단적인 자녀 양육 방식을 옹호한다. 이런 양육 방식을 따르는 부모는 자녀의 학업과 과외 활동 목표를 거의 여지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녀에게 벌을 준다. 또한 학업 문제와 관련해 자녀를 고압적으로 다루는 부모는 자녀에게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

 

 21세기의 일터는 전 세계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며,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이런 일터에서 성공하려면 진취적으로 솔선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기개를 크게 요구하고 있다. 이러고 보니 고용된 사람은 나이에 관계 없이 얻을 수 있는 갖가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제안을 하거나 충고, 의견교환을 해 주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용주는 젊은 직원들의 성숙함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고용주는 또한 직원들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즉 스스로 업무를 처리할 만한 역량을 갖추기를 바란다.

 

 

 과잉보호는 자녀들에게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도 해를 입는다. 오늘날의 부모는 기진맥진하고 불안하고 우울하며 두렵기까지 하다. 심리학자들은 '자녀 양육의 역설'이라는 표현을 쓴다. 자녀를 키우면서 한편으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에 따른 불안감과 우울증을 느낀다는 뜻이다.

 

 많은 부모, 특히 어머니들은 자신이 대학, 어쩌면 대학원에 다닐 때나 직장에 근무할 때 하던 방식 그대로 자녀 양육을 계속하고 있다. 또 자녀가 마치 소규모 기업체의 상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녀의 삶을 온통 떠맡을 듯이 나선다.

 

 자녀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무엇을 먹는지, 옷을 어떻게 갖춰 입는지, 어떤 활동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이뤄 내는지 등 모두가 부모 자신들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모가 부모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셈이다. 그 때문에 자식들의 삶은 곧 부모의 성취나 다름없고 이들의 실패는 곧 부모의 잘못이 되고 만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가치를 자식이 이룩한 성취로 측정한다. 그런데다 성취의 목표를 너무 높게 설정하다 보니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녀의 온갖 일에 전력을 다해 지속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어린 시절이 빡빡한 일정과 점검표로 채워지면 아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로운 놀이를 즐길 시간도, 기회도 갖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놀이도 부모나 자식이 다 같이 짬을 낼 수 있을 훗날을 위해 부모가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계획된 놀이에 부모가 함께 가고, 놀이의 내용도 이따금 부모가 아이디어를 내며, 또 아이들이 놀이가 끝나야 할 시간에 끝나지 않거나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못된 짓을 할 경우에 대비해 부모가 놀이 현장을 지킨다.

 

 빈틈없이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고려한다면 부모가 자녀의 놀이 일정을 짜는 일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놀이 시간을 만들더라도 놀이 방식에는 끼어들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 놀이야말로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최초의 진정한 과제이다.

 

 

 과잉보호에서 방향을 바꿔 자녀가 어른이 될 수 있게 키우는 것이 이성적으로 멋지고 근사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은 자녀 양육하는 데 과잉보호 방식을 그대로 좇고 있다. 이런 양육 방식 외에 달리 다른 방식을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들은 다수가 우리 대신, 아니 자녀 대신 선택해 준 삶을 그냥 따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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