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가 말하는 래퍼 - 18명의 힙합퍼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힙합의 세계 부키 전문직 리포트 24
김봉현 지음 / 부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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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퍼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혹은 더 나아가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성공한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예술가의 작품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지만, 동시에 예술가의 삶을 통해 깊은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예술가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콘텐츠가 많이 있다. 유튜브에만 가도 다양한 다큐멘터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엔 자막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겠지만, 이 기회에 영어 공부까지 하면 좋을 것이다. 예술가의 작품은 곧 예술가의 삶이 빚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래퍼들은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함정에 빠지기 쉽다. 힙합은 전통적으로 태도가 선명할수록 각광받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 안에서는 그럴 수 있다. 또 어떨 때는 그래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래퍼라면 자신의 힙합이 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한국 음악 산업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늘 인지해야 한다.

 

 힙합은 기본적으로 기존에 있던 곡의 일부를 이용하는 샘플링을 창작의 근간으로 삼아 탄생한 음악이다. 악기를 직접 연주해야 음악이라고 여기던 시절, 힙합은 기존에 있던 것을 따와 재창조하는 방식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기존의 음악에 들어 있던 드럼, 기타, 보컬은 물론 음악이 아닌 다른 소리들까지도 따와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 왜곡, 재배열해 새로운 음악으로 탄생시켰다.

 

 힙합의 이러한 특성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 있다. "힙합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힙합은 모든 것을 재창조했다." 하지만 저작권에 관련해 엄격해진 오늘날 샘플링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쉽게 말해 원작자의 승인을 얻은 다음 적당한 사용료를 지불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샘플 클리어런스라고 한다.

 

 

 프리스타일 랩은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구사하는 랩의 방식이다. 외워 놓은 가사로 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종이에 쓴 가사를 보고 읽으면서 랩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있는 자리에서 바로 생각나는 것을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뱉어 내는 행위가 프리스타일 랩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스타일 랩을 할 때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순발력과 창의력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프리스타일 랩이야말로 랩의 예술성을 최전선에서 증명하는 방식일지 모른다. 리듬, 라임, 메시지 등 랩이 갖춰야 할 것을 모두 챙기면서 즉흥적으로 랩을 뱉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프리스타일 랩은 랩을 뱉는 행위가 결코 쉽지 않은 고도의 예술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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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힙합에는 다른 음악 장르에 없는 전통이 있다. 바로 자신의 가사는 자신이 직접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힙합을 자기 고백적인 음악이자 자서전 같은 음악이라고 느끼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힙합의 이러한 특성은 힙합을 듣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늘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할 것. 내 입으로 뱉은 말은 꼭 책임질 것. 무엇보다 기성의 잣대로 보면 자랑스럽지 않거나 아름답게 비치지 않는 부분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래퍼들의 모습은 큰 감동을 안겨 준다.

 

래퍼가 말하는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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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 超 입문
다카하시 요이치 지음, 오시연 옮김 / 지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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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활용이 당연시된 이 시대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기란 식은 죽 먹기이지만, 그 자료를 처리하고 정리 그리고 이해하려면 통계학이 필요하다.

 

 

 통계학은 어렵다. 고로 일부 내용만 잘라내어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공략법도 없다. 통계학을 어렵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그야말로 사실이다.

 

 원래 통계학이라는 학문은 수학 분야에 속한다. 수식을 활용해서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통계학에서 수학과 수식은 언어다. 따라서 그걸 빼놓고는 통계학을 이해할 수 없다.

 

 

 통계학을 잘 모르는 사람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통계학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라 발전한 빅데이터 등의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 활용된다는 오해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것은 기술혁신에 따라 극히 최근에야 활성화된 이용 방식이다. 기존의 통계학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접하는 통계학의 대표주자라 하면 TV 시청률 조사가 있다.

 

 

 통계학은 적은 비용과 노동력으로 거의 정확한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는 샘플을 선택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시청률 조사를 할 때,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이 어느 방송을 보는지는 연령대나 가족 구성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샘플 대상을 20대 젊은이만 수집하거나 70대 이상인 고령자만 수집하면 편향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즉, 샘플이 편향되면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통계학자는 편향되지 않은 샘플을 추출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통계학은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샘플링 조사를 전제로 한다. 물론 예를 들어 연구 분야에서도 편향성이 있는 조사를 하면 그 조사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다고 의심받을 것이다.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는지 판단하거나 어떻게 하면 편향되지 않도록 할지 연구하는 것도 통계학의 일종이다.

 

 그런데 편향된 데이터야말로 의미가 있는 경우도 많다. 특히 비즈니스에서 통계학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편향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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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률이나 출구조사에 통계학을 이용한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것과 통계학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통계학을 배우는 것은 즐겁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끝이라면 너무 아깝다. 앞으로 통계학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여론조사나 정부 지지율, 자동차보험, 벚꽃 개화예보, 평균 수명, 야구선수의 타율, 경기동향지수 등 이 세상에는 통계학이 알려주는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통계학을 배웠으니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일상생활에서 통계학을 활용해서 통계학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통계학 超초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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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휴먼 특강 2
설민석 지음 / 휴먼큐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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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이 단군을 성이 단씨인 사람의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단군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직책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대통령, 조선시대로 따지면 왕을 뜻하는 명칭이다.

 

 단군을 흔히 단군왕검이라고 부르는데, 단군왕검이라는 단어를 나눠보면 단군에는 제사장, 무당이라는 뜻이 있고, 왕검은 정치적 지도자,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왕검이라고 하면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선덕여왕은 신라의 제27대 왕이며, 선덕여왕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찾아보면 선정을 베풀어 민생을 향상했고, 구휼 사업에 힘썼으며, 첨성대와 황룡사 구층탑을 건립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고 전한다. 이런 평가들을 보면 선덕여왕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크고, 인품과 학식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의자왕 하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삼천궁녀이다. 의자왕이 술과 유흥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아 나라를 멸망시켰다며, 그 상징적 존재로 낙화암에서 투신한 삼천궁녀를 거론하곤 한다. 그러나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거느렸던 호색한이었던 것은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는 역사의 오류이다.

 

 

 왕건은 원래 후고구려의 장군으로 궁예 아래에 있었다. 그러다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신망을 얻었고, 궁예의 폭정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궁예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된다. 이후 후고구려의 국호를 고려로 바꾸고,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하여 후삼국을 통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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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안중근 선생을 도마 안중근 의사라고 부른다. 안중근 선생의 '도마'라는 호는 '토마스'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안중근 선생은 천주교 신자였고, 세례명이 토마스였다. 어머니의 존함은 조마리아였는데, 이것만 봐도 안중근 선생의 가문이 천주교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안중근 선생의 삶을 되짚어보면 천주교 신자로서 행한 인도주의적인 행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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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를 퇴치한 투유유 이야기 -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첫 아시아 여성 과학자
수 루 지음, 알리체 코피니 그림, 신여명 옮김 / 두레아이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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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사람들의 어린시절을 엿보면 대부분 어린시절부터 남달랐던 분들이 많다. 이 책의 주인공 투유유 또한 어린시절부터 약초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에 진학해 약학과를 들어가 약초를 계속 연구한 것만 봐도 말이다. 이런 열정이 말라리아를 치료할 수 있는 냑을 만들수 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투유유는 어린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보면 들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와 마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투유유는 할아버지가 짊어진 바구니에서 빨간 열매를 발견하고는 그 열매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에 할아버지를 따라간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짊어지고 온 약초들을 더 큰 바구니에 옮겨 놓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투유유를 불러 빨간 열매를 맛보게 해 준다. 또한 투유유를 할아버지 집 안까지 들어오게 한다. 집 안에는 큰 서랍장이 여러게 있었으며 그 서랍들 안에는 여러 약초들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의사 였다. 한의사 할아버지는 투유유에게 약초들이 아픈사람들을 고쳐주는 고마운 풀들임을 설명해 준다. 투유유는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처럼 되리라 다짐하게 된다.

 

 

 성장하여 대학에 진학한 투유유는 약학을 전공한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투유유는 약초들을 맛도보고 잘근잘근 씹어도보며 연구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와 70년대에 중국에 말라리아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다. 투유유는 말라리아 치료법을 찾기 위해 중국 남부 열대우림으로 간다. 그 곳에는 말라리아 병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치료약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투유유 연구팀은 1971년 10월 4일에 개똥쑥에서 추출물을 만들게 된다. 이 추출물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 1972년 11월 8일 개똥쑥에서 추출한 아르테미시닌이 만들어 진다. 중국에서는 이 물질을 칭하오수라고 불렀다.

 

말라리아를 퇴치한 투유유 이야기

 

[말라리아를 정복하고 노벨 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 투유유]

 

 1930년에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난 투유유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첫 아시아 여성 과학자입니다. 투유유는 베이징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졸업한 뒤 1955년에는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약초 연구와 함께 서양의학 연구를 하는 중국중의과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말라리아 치료법을 찾기 위해 중국 정부가 2년 전에 시작한 비밀 연구 프로그램에 투유유가 배정된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투유유의 임무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연구를 시작할 즈음, 24만 개의 서로 다른 화합물을 이미 실험했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투유유는 말라리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중국의 남쪽 지역으로 급히 보내졌습니다. 그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두 어린 딸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투유유가 훗날 밝혔듯이, 당시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 치명적인 질병의 치료제를 찾는 것이 그에게는 먼저였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투유유는 2천 개가 넘는 중국 전통 치료법을 연구했고, 실험실에서 350가지가 넘는 화합물을 실험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그는 학명 '아르테미시아 아누아'로 알려진 식물(개똥쑥)의 잎을 끓여 우려내는, 1500년도 더 된 치료법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 이 치료법은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투유유는 놀라운 직감을 발휘했습니다. 높은 끓는점이 식물의 활성 성분에 손상을 가져온다는 생각에 투유유는 낮은 온도에서 활성화되는 용제인 다이에틸 에테르를 이용해 약용 성분을 추출했습니다. 새로운 추출물을 쥐에게 실험해 본 투유유는 부작용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실험해 보기도 했습니다. 치료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한 번 투여하면 열이 몇 시간 안에 떨어졌습니다.

 

 투유유의 연구 결과는 1977년에 발표되었지만, 그 논문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3년이 지난 뒤, 투유유의 연구를 축하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는 그를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겸손한 성격과 그가 살았던 역사적 배경 등 때문에 투유유의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투유유라는 이름은 2011년에 래스커 의학연구상이라는 중요한 과학상을 받으면서 비로소 학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5년, 투유유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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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34 : 삼대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34
강순영 글, 김태형 그림, 손영운 기획, 염상섭 원작 / 채우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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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영상섭이 지은 [삼대]라는 작품은 누군가의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를, 1930년대를 살았던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세 부자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 조의관은 구한말의 봉건 세대로 대표되는 대지주이고, 아버지 조상훈은 개화기의 계몽 정신을 대표하여 외국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술과 여자로 타락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 조덕기는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온건한 성품으로 타협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간다. 반면 덕기의 친구 김병화는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인물로 덕기와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당시에 신문 기자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영상섭은 [삼대]라는 대작에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사회상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당시에 쓰였던 우리말 어휘뿐만이 아니라 1930년대 유행하던 의복, 교통수단,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의 거리들, 그리고 여성과 남성,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까지 지금 우리들의 것과 사뭇 다른 점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염상섭은 단순히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사회상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의관으로 대표되는 조씨 가문의 모습에서 식민지 시대 신흥 부르주아 세력이 가진 돈에 대한 맹목적 가치관과 겉으로는 도도한 척 선행을 베풀지만 도박과 술을 일삼는 지식인의 타락상을 비판하고자 했다.

 

 [삼대]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읽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비판하고자 했던 시대의식을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삼대]는 1930년대 한국 사회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당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로 손꼽힌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족사 소설처럼 보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그것이 비단 어느 가족의 비극적 사건이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의 구조와 인물들이 대표하고 있는 시대상의 몰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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