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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평점 :
죽음을 읽는 시간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라는 생소한 직업의 저자 이유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나는 인생을 축제처럼 살기 위해 죽음을 공부하기로 했다.” 고 말하는 저자는 미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가 된 최초의 한국인 정신과 의사로서 천 번의 죽음과 천 번의 삶을 이 책에 기록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자신의 인생 경로에서의 경험과 생각 느낌 등을 썼고 일종의 에세이 형식이지만 요즘 나오는 가벼운 일상 얘기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재밌는 에피소드를 담는 에세이와는 결이 다른 묵직한 울림과 생각할 거리들은 가득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죽음을 공부한 저자의 책에서 나 역시도 죽음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정신의학이 삶의 고통을 완화하고 호스피스 완화의학은 죽음의 고통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서로 다른 두 학문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다.
완화(palliation)의 어원은 라틴어 ‘palliare’이며 이는 ‘외투(colck)’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동트기 직전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를 견뎌낼 한 벌의 외투가 필요한 이들에게 온기가 되어주는 일이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의 역할이다.
이유진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환자들은 죽음 앞에 놓여 있다. 그들을 통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무엇을 후회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남은 이들을 위해 어떤 말들을 남겨야 하는지를 함꼐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병의 치료를 위해 의사와 병원이 쥐고 있던 삶의 결정권을 당사자에게 다시 돌려주고 남은 삶을 그답게 살다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을 나열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대로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나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신체 기능은 무엇인가요?”
“지금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다 해결할 수 없다면 무엇을 먼저 해결하고 싶나요?”
“죽기 전에 꼭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나요?”
“어떤 치료를 마저 받고 싶으며 그 치료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어디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나요? 집이어야 하나요, 병원이어도 괜찮은가요?”
또한 저자는 우리에게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았던 이들은, 많은 경우에 죽음 역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선택하기를 제안한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본모습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를 얻는다. 다른 삶이 있을 뿐 틀린 삶은 없듯이 틀린 죽음도 없다. 죽음은 그저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된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좋은 죽음이든 존엄사든 안락사든, 우리 모두는 그저 살던 대로 살다 가는 자기다운 마무리를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