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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최유리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8월
평점 :
https://brunch.co.kr/@yurigin
https://www.youtube.com/channel/UCMpl7PQXxBcQqc2IBn_sy_Q
http://simple-origin.com/221542447173
저자 최유리의 인터넷 공간들만 구경해도 이 사람 정말 부지런하다. 멋지다.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물론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메세지도 중요하지만 이 멋진 사람 최유리를 알아보는 흥미도 만만찮다.

최유리의 프로필 역시나 범상치 않다. 책에 있는 프로필 그대로 발췌했다.
10대엔 모범생의 삶을, 20대엔 일류대 학생 및 고등학교 교사의 삶을 살았으며, 30대엔 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진짜 꿈은 옷 잘 입는 사람이었다. 30대 후반 박사 논문의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우울증이 왔다. 잠시 자살 충동을 느꼈다. 살기 위해 글을 썼다. 정체성 혼란, 낮은 자존감, 쇼핑 중독을 돌아보다 나를 만났다. 옷을 좋아하는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됐다. 그러자 성공을 향해 달릴 것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나뿐이 아님이 보였다. 박사 대신 작가가 되기로 했다. 박사 가운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교무실의 드레스 코드를 맞추지 못했던 어설픈 경험, 서울대 출신 루저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경험, 본의 아니게 꼰대가 되어본 경험은 흔히 말하는 흑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 새로 태어나게 한 힘과 원천이 되었다.
현재 브런치, 유튜브, DIA TV, 백화점과 기업에서 ‘정체성을 입으면 행복하다’, ‘정체성을 스타일리시하게 입으면 멋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런 보통사람들의 뻔한 인생경로가 아닌 구불구불 비포장 도로를 달려온 저자의 개똥철학(?)이자 귀담아듣고 싶은 조언이 담긴 책이다.

책의 구성은 총 4개의 챕터에 패션의 완성은 자존감이다!, 트렌드 말고 나를 입기로 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삶에서 나온다!, 행복은 진정한 소통에서 나온다!를 외치는 에세이이자 선언문이자 이렇게 살아보자는 프로포즈이기도 했다. 그 얘기들은 모두가 다 자기 이야기였고 진솔했고 꼰대스럽지 않았다.
“샤넬백은 값비싼 솜사탕에 불과했다” “진정한 행복은 사회가 정한 암묵적 약속에 순응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 같은 파격적인 사이다 발언들과 함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나를 찾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죄책감에 함몰되지 말고, 부디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용기를 전한다. 진짜 멋있는 삶은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자존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실한 소통에 있다.”고 강조하며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사치가 ‘비싼 것 갖기’에서 ‘우아하게 살기’로 진화했듯, ‘자기 표현의 진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비싼 옷 입기’가 아니라 ‘나답게 존재하기’로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여긴다면 누구든 아우라의 주인이 될 수있다!”
특히 패션과 관련된 팁들이 유용하기도 했고 목차에도 안 나와 있는 챕터 말미마다 별책 부록 같은 코너들이 좋았다. How to 옷 잘 입는 사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to do 타인의 외모 평가에 달아보는 마음속 댓글 코너가 코믹스럽기까지 했고 정체성 찾기와 자존감 몸매 둘 다 잡는 법에 대한 조언이 인상적이었고 책 후반부 이런 옷은 사지 마세요 체크리스트는 꼭 명심해야겠다.

여전히 샤넬백의 세계에 사는 분들에게 내 시각은 불편할지도 모른다. 몸에 걸친 가방과 신발로 서로의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은근슬쩍 가늠하고 그 속에서 승자가 되려는 욕망, 그러나 돌아서면 비싼 물건을 가진 사람을 비난하는 이중성.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모순은 샤넬백의 세계가 우리 일상을 유유히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진짜 멋있는 삶은 샤넬백에 있는 게 아니었다.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자존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실한 소통. 진짜 멋있는 삶은 여기에 있다. 물론 샤넬백을 선망하는 당신과 샤넬백을 가진 채 미소 짓는 당신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세계를 부인하기보다 다른 세계가 있음을, 다른 세계에서 다른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샤넬백 앞에서 작아지지 말기를.
데이트 룩의 정답으로 내 사람을 만나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인다. 시각적 즐거움이 주는 흥분의 유효 기간이 정신적 소통이 주는 흥분의 유효 기간보다 짧다면 선택은 어렵지 않다. 진짜 내 사람을 만나는 비결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옷이 아니라 진실한 소통에 필요한 내 정체성을 보여주는 옷에 있다.

인격적으로 전혀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 럭셔리 아이템을 걸친다면 어떨까? 명품 옷을 걸친 사람들의 ‘갑질’로 신문의 사회면이 떠들썩해질 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올곧은 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이 내면의 경박함을 드러내 보이는 순간, 명품 옷은 그 사람의 경박함을 부각시켜주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되어버린다. 결국 명품 옷은 ‘멋냈네’ 하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