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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고전이 읽고 싶더라니 - 나답게 살자니 고전이 필요했다
김훈종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살면서 한번쯤 고전이나 읽어볼까 했던 적 없는가? 그때가 언제인가? 아마도 지치고 힘들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 없을 때가 아니었을까. 라고 하는데 난 절대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읽어봤는데 당췌 공감도 안되고 어렵고 따분했고 읽다가 포기했었다.

그 정도로 중국 고전, 제가 백가 사상은 왠만해선 쳐다보지도 않는데 이번에 씨네타운나인틴의 팬으로서 김훈종 PD가 쓴 책이라니 무조건 집어들었다. 결론은 정말 후회없었고 아마도 내가 유일하게 제대로 읽고 인상깊었다고 말할 수 있는 중국고전 관련 책이 되었다.
그 따분한 중국 고전도 역시 친근한 김훈종 형님의 오디오 기능과 함께 하니 술술 읽혀졌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필력은 최고였고 고리타분한 고전들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 탁월했다.
특히 오늘을 사는 개인주의자라고 표방하고 쓰는 일상 얘기와 함께하는, 덧붙여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고 사이다 같은 이야기들은 단순 에세이로 읽고 즐기기에도 충분했다.

물론 그 대단한 고전들의 교훈을 내 삶에 적용하고 대입시켜 해석하면 좋겠지만 내 지적 수준이 그 정도는 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을 김훈종PD가 멋지게 도와주는 책이라 좋았다.
김훈종 형님은 논어를 실제로 깊게 읽다 보면 이게 정말 유학의 ‘고전’인지 ‘현대생활백서’ 같은 자기계발서인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고 한다. 공자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건 철학적 정합성과 정교함 때문만 아니라 <논어> 에서 사람살이의 구린내와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자는 우리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처럼 고결하고 구름 위에 올라 붕붕 떠다니는 유형의 성인이 아니라 지극히 실리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이었고 그래서 논어가 읽을 만 한 고전이라고 한다.

김훈종 형님의 현대적 유쾌한 고전 해석의 일부를 발췌해보면...
‘열다섯에는 원래 공부가 안 됩니다. 놀고 싶은 게 당연하죠. 그러니 자식들에게 뭐라 하지 좀 마시라.’ ‘나이 서른에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자립하기 힘듭니다. 취직도 힘들고, 결혼도 힘드니 제발 좀 내버려두시라.’ ‘나이 마흔에는 유혹이 빗발칩니다. 그러니 좀 흔들리는 게 정상이에요.’ ‘쉰 나이에는 천명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입니다.’ ‘육십까지 당신은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제멋대로 살아요. 그러니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사세요.’ ‘나이 칠십이 되어도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자칫 그랬다가는 법무부에서 제공하는 숙식에 몸을 의탁해야 하거든요.’


당신이 아픈 몸을 이끌고 한의원에 찾아갔는데 한의사가 대뜸 “이게 다 불인不仁해서 그런 겁니다”라고 진단한다면? 결단코 창피하다고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다. ‘어? 내가 성격 더러운 걸 이 양반이 어떻게 알았지?’ ‘어? 내가 부하직원들한테 개진상인 걸 어찌 알았을까?’ 이렇게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불인은 마비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 한의사가 용한 관상쟁이인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라.
한의학에서는 기혈이 통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불인하여 병이 생겼다’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여기서의 불인不仁은 곧, 불통不通을 의미한다. 복숭아씨를 한자로 옮기면 도인桃仁이라고 하고, 살구씨는 행인杏仁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인仁은 곧, 씨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성격이 좋다고 표현할 때, ‘저 친구 참 마음씨가 곱구나’라고 말하는 게 그저 우연은 아니다. 씨라는 것은 줄기와 잎과 열매의 근원이다. 우리 마음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근원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가 말미암은 곳, 그곳은 역시 마음이다. 불인은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꽉 막혀버린 모양새를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