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호모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열 가지 키워드 묻고 답하다 5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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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역사가 묻는데 생명과학이 답한다는 책 제목이 살짝 의아하기도 했지만 목차만 봐도 이게 얼마나 흥미로운 시도인지 알게된다. 열가지 질문이 열개의 챕터에 배정된 형식으로 그 질문들은 왠지 오래전부터 나 역시도 궁금해왔던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기를 디자인할 수도 있을까?, 생명공학으로 생명체를 창조할 수도 있을까?, 영혼은 어디에, 과연 있을까?, 몸을 기계로 갈아 끼우면 어디까지 나일까?, 고통 없는 삶이 가능할까?, 입과 몸이 좋아하는 맛은 왜 다를까? 등의 출산, 유전, 마음, 질병, 장기, 감염에 대한 역사와 생명과학적 분석과 해설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어떤 대목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뭔가 신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워지기도 했는데 유전자가위라는 기술을 활용하면 살아 있는 세포의 염색체에서 유전자를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2015년 발표 당시 ‘맞춤아기’에 대한 우려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실제로 2018년 중국에서 CCR5 유전자 변형 아기가 태어나며 현실이 되었고, 수많은 과학 관계자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한편으론 노화에 대한 기술발달로 나 역시도 영원히 살고 싶은 욕심도 생겼는데 생물학적 젊음을 되찾기 위해 자기 아들을 포함한 젊은이의 혈장을 수혈받은 미국 백만장자도 있다고 한다.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서는 의료 기술이 더 발전한 미래에 병을 고치고 회복시키기 위해 사망 즉시 환자를 냉동보존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장기와 조직을 인공물로 대체해 신체 기능을 확장시킨 트랜스휴먼(transhuman)이란 개념과 더 나아가 인간의 뇌마저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여 정신 기능을 극대화하려는 포스트휴먼(posthuman)도 생명과학의 핫한 분야이다. 


그 외에도 머리 이식에 섬뜩한 대목도 있었는데 이는 기술적 문제에 대한 논쟁뿐만 아니라 철학적, 윤리적, 법적 논쟁을 피할 수 없다. A의 머리를 B의 신체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사람은 A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B라고 봐야 할까요? A나 B에게 배우자와 자녀가 있다면 법적으로 누구의 배우자와 자녀가 되는 걸까요? 건강보험은 A의 기록에 근거해 적용해야 할까요? 아니면 B의 기록에 근거해 적용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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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책 -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엄치는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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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정철의 책이라면 꽤 많이 읽은 것 같은데 이번 신간이 첫 산문집이라는 설명에 잠시 의아해졌다. 그만큼 이전 책들이 재밌고 즐거운 읽을거리였고 내 기억엔 에세이로 남았던 것 같다. 


이번 책도 저지르다, 출근하다, 치우다, 비우다, 잃어버리다, 지키다 등의 60가지 동사를 제목으로 하는 60개의 길지 않은 챕터들이 엮인 색다른 형식의 즐거운 이야기다. 그런 동사들에 얽힌 저자의 생각, 느낌, 경험, 사유들을 읽어볼 수 있었도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자의 유쾌한 시각과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프롤로그에는 동사예찬론도 있다. 동사에겐 감정이 없을까. 이제껏 우리는 동사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듣지 않았으니 따뜻함도 고요함도 명랑함도 볼 수 없었다. 동사가 내게 들려주는 말을 차곡차곡 듣다가 동사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딱 하나의 표정만 허락된 형용사보다 동사 네가 훨씬 자유로운 언어야.


비우다에는 실제로 글자를 비운 챕터가 있다. 글자를 비웠더니 비로소 종이가 보였고 종이의 질감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역시 카피라이터다운 생각이다. 


그 외에도 톡톡튀는 아이디어, 생각의 전환과 읽는 쾌감을 선사하는 대목들이 넘쳐나는 책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나에게 질문. 오늘도 잘 견디고 있는가. 위기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니까.


마지막 챕터에는 ‘사람하다’ 라는 저자가 직접 제안하는 신조어도 소개한다. 


나는 사람 노릇 하며 산다는 말을 ‘사람하다’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사람이라는 문제는 결국 사람이라는 답으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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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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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을 고대하며 기다리던 중 만난 책이라 더욱더 반갑게 집어든 책이다. 실제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흥미진진한 논픽션이다. 


2차대전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유럽 과학 특공대 알소스 부대는 처음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 신선한 읽을거리였다. 논픽션이라서 더 실감나고 재밌지만 한참을 읽다보면 이 책이 논픽션이란걸 까먹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게 되는 영화같은 스토리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특수부대 스파이들은 히틀러의 원자폭탄 개발을 막았고 이와 관련된 정보 수집과 파괴 공작, 독일의 우라늄 클럽 회원 암살 작전까지 벌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세계는 아마 SF소설 중에서도 대체역사물에서나 볼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 속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중에는 베이브루스와도 함께 사진을 찍었던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 출신 모 버그, 존 F 케네디보다 나은 전공을 세우려고 애쓴 조 케네디 주니어, 독일의 최고 과학자들을 체포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자신의 유대인 부모를 강제 수용소에서 구출하려고 애쓴 네덜란드 출신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의 딸인 이렌 졸리오 퀴리 등이 있다. 


그렇다고 흔한 전쟁 스파이물은 아니었고 중간중간 원자폭탄과 관련된 과학이야기과 과학사의 중요한 대목들도 다루는 색다른 구성이었다. 그 당시 과학자들은 원자가 두 가지 입자, 즉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음전하를 띤 전자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양성자는 원자 중심인 원자핵에 머물고, 전자는 그 주위를 빙빙 돈다고 생각했다. 채드윅은 베릴륨에서 나왔다는 기묘한 ‘감마선’이 실제로는 중성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중성자는 양성자와 크기와 질량이 거의 같기 때문에, 양성자를 원자핵에서 튀어나오게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나치는 1939년에 과학자들에게 병역 면제를 거의 해주지 않다가 소수의 화학자와 물리학자에게는 예외를 인정했다는데 그건 디프너가 상관들에게 야심찬 계획에 도박을 걸어보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그 계획은 바로 핵분열 폭탄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우란페라인, 즉 우라늄 클럽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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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트라우마 - 삶의 면역을 기르는 자기 돌봄의 심리학
멕 애럴 지음, 박슬라 옮김, 김현수 감수 / 갤리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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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트라우마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트라우마란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얘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스몰트라우마가 나의 일상과 삶을 조용히 갉아먹고 있었는 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스몰 트라우마는 개인의 삶 속에서 자존감을 잃게 하는 일상의 경험이나 사건의 반복을 일컫는다. 어린 시절 당한 따돌림이나 놀림, 부끄러움으로 남은 실수, 부모와의 부적절한 정서적 교류, 사회적 재난에 대한 간접 경험, 직장에서 당한 미세한 차별과 모욕 등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누적되고 서로 결합하면서 스스로 위축되고 불만족스런 삶을 살게끔 악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이런 스몰트라우마의 정체를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3단계 AAA 접근법(인식-수용-행동)을 기반으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연습 활동과 행동 지침들을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책의 구성은 초반부에 ‘스몰’ 트라우마와 ‘빅’ 트라우마의 차이점, 스몰 트라우마를 초래하는 다양한 원인, 심리적 면역체계 강화를 위한 심리적 항체로서의 스몰 트라우마를 설명하고 뒤이어  다양한 스몰 트라우마 주제들을 챕터별로 배정해서 그 원인과 이론적 배경, 솔루션 등을 다각도로 다루는 방식이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무감각 상태가 편안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들을 읽으며 실제 나 자신도 가끔 이런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좀 더 몰입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또한 완벽주의의 역설로 습관적 미루기, 번아웃을 초래하는 완벽주의에 대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습관적 미루기는 게으른 것도, 버릇이 나쁜 것도,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할 일을 꾸물거리는 사람은 대개 양심적인 이들이다. 


뭔가를 잘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트레스가 극한에 이를 때까지 일을 최대한 미뤘다가 마지막 몇 시간이 남았을 때에야 안달복달하며 결과가 끔찍할 거라고, 난 정말 멍청하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이 일에 대해 생각하거나 또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온갖 것에 관심을 쏟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한다. 정신적·신체적·감정적 자원을 너무 많이 소비한 탓에 우리의 몸이 이런 부적응적 패턴을 알아차렸을 즈음에는 이미 번아웃에 이르고 만다.


그 외에도 가면증후군과 미세공격, 섭식 문제를 일으키는 스몰 트라우마, 사랑, 불면증 등에 대한 다양한 스몰트라우마 사례를 만나보며 삶을 위한 처방전이자 자기 돌봄의 심리학을 읽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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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약속의 땅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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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개인적으로도 인상깊게 읽었던 세습 중산층 사회의 작가 조귀동의 신작이다. 이번에도 한국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사회 비평을 읽어볼 수 있었고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독일, 스웨덴 같은 선진국이 아닌 마피아가 판치고 베를루스코니 같은 저질 정치인이 지도자가 되는 이탈리아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지 섬뜩하기 까지 한 글이었다. 


저자는 특히 우리 정치판의 문제를 아주 논리적으로 파고드는데 그렇다고 민주당이나 국힘당 둘 중 하나의 진영논리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 라는 문장이 충격적이었다. 저자는 지금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만성적 위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손쉬운 해결책은 적을 설정하고 그 적을 타도하는 것만이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실질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는 세계관이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구조가 강하다. 이중 구조는 단순히 노동시장 지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두 나라 모두 연금 등 사회 복지가 일자리 지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이것이 그대로 사회복지의 이중 구조를 낳는다. 


한국과 이탈리아를 비교한 초반부에 이어 저자는 2002년 무렵 만들어진 정치질서를 분석한다. 노무현 질서라고 이름 붙인 개념으로 경제구조의 변화와 중산층 행동주의의 등장, 한국형 복지국가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상세하게 써내려 갔다. 


그 외에도 압도적 우위였던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허물어졌는지, 윤석열 정부가 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고령화, 지방의 몰락, 외국인 이주민 증가, 공동구매형 사회, 포퓰리즘 정치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렇게 암울한 현실 비판 뒤에는 그래도 한줄기 희망의 빛 같은 대안 제시도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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