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가장 큰 문제는 거울 자체에 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과 "구리 거울"은 두 시인의 생애만큼이나 대조적이다. 미당의 거울은 어설픈 흉내다. 나르시스의 거울, 바슐라르의 투명한 거울(90쪽)은 서구에도 없다. 거울의 위계는곧 존재의 위계다. 녹슨 구리 거울, 감옥의 플라스틱 거울, 공중화장실의 얼룩진 거울, 요철(凹凸) 렌즈……. 여성, 제3세계 민중, 주변인에게는 투명한 거울이 주어지지 않는다. 윤동주는 정확했다. "구리 거울은 욕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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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4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란 다큐에서 55살 연하 설치 예술가가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무덤을 찾아가면서 88세의 바르다에게 죽음이 두렵나고 물으니 다 끝나 버리니 죽음이 기다려진다고 유쾌한 대답을 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mini74 2021-05-04 16:32   좋아요 2 | URL
아 이 다큐가 언급이 됩니다. ㅠㅠ 그 문구가 정희진님 책이 아니라 예술의 주름이란 책 문군데 ㅠㅠ 노안이 와서인지 잘못 올렸어요. 스콧님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