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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평점 :
“기린의 목을 움직일 때는 경추뿐만 아니라 제1흉추까지 움직인다”
하고 싶은 일, 즐거운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부터도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이유 수 백 가지 중에 하나가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달갑지 않은 기다림.
군지 메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것과 관련된 일을 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목적 무제한 무계획.
어릴 적부터 기린을 좋아해서, 기린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힘든 이유는 바로 이게 아닐까. 아이의 마음으로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목적이 있으며 제한적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
지금 당장은 아무 쓸모없어 보여도, 하고 싶고 좋아한다면 무작정 목적없이 제한없이 계획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직업이긴 힘들다. 군지 메구가 택한 일은 무목적이며 무제한이며 무계획일수 있는 일, 그래서 간혹 굉장히 잘난 체 하길 좋아하는 직업군에겐 무쓸모해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무쓸모란 없다는 것.
기린
기린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
방울이 울리는 것처럼
별이 내리는 것처럼
일요일 해가 뜨는 것처럼
동물의 이름과 얽힌 시 중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또 있을까.
방울이 울리듯 별이 내리듯 일요일의 해가 뜨듯 어여쁘고 행복하고 따뜻한 이름을 가진 기린이다.
기린하면 신성한 전설의 동물, 혹은 정화의 원정대가 기억난다. 그리고 우아한 다리 길이와 어울리지 않던 치열한 수컷들의 네킹 싸움, 서로 목으로 마구 마구 패다니 그 목 참 길기도 하지만 힘도 세다.
커다란 눈에 귀염상이지만 긴 목으로 인해 이색적인 생김새, 그래서 동물원에 가면 꼭 기린을 먼저 보곤 했다. 왜 기린을 타고 다니지는 않는걸까.
사다리가 필요해서일까 하며 기린을 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메리 포핀즈의 그 생강빵 별을, 기린 목을 타고 올라가 하늘에 붙일 수 있겠지?
기린을 좋아해서,기린을 해부하며 기린이 가져다 줄 선물을 기다린다는 군지 메구. 어찌 쓰고보니 조금 무섭긴 하다.
포유류는 7개의 경추, 목뼈를 가진다. 그리고 척추, 즉 갈비뼈와 붙은 흉추들이 있는데, 군지 메구는 바로 그 첫 번째 흉추가 기린에겐 또 다른 목뼈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가설을 세우고 기린 해부를 통해 성과를 이룬다. 기린에겐 뿔이 세 개라는 것, 수컷의 머리뼈가 훨씬 무겁다는 것(네킹을 통해 구애를 하는데 머리를 부딪히는 경우도 많아서 머리뼈가 굵어졌다는 설이 있다) 그렇지만 동물원의 수컷들 머리는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다고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어떻게든 네킹도 많고 그래서 머리두께가 두꺼울 필요가 있지만, 그저 한 두 마리 뿐인 동물원에선 굳이 네킹도, 머리두께가 두꺼울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돈이나 명예와는 상관없이, 그저 좋아서 기린을 해부하고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군지 메도, 주변의 도움에 감사하다고 하지만, 그 주변인들 또한 군지 메구의 순수한 열정에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준 것이 아닐까.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던 아이, 공룡을 연구하고 싶어 했던 아이, 세상의 모든 빵을 먹어 보는 게 꿈이라던 아이들이 이제는 대학을 선택할 때 취업률을 따지고, 공무원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지방거점대학으로서 이득이 있는지 등을 따진다.
너 예전에 공룡 연구한다더니?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더니?
에이, 그 때는 제가 어려서 그랬죠, 뭣도 모르고.
아......
꿈이 아니라 직업을 선택하는 나이가 됐다는 거다.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군지 메구는 1989년 황금뱀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