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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하루키 소설도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그의 수필을 더 좋아한다. 그 담백한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내 삶이 조금은 정리된 듯한 느낌. 그리고 하얀 두부 한 모앞에서 밍밍하지만 본연의 맛을 느끼며 먹는 느낌.
과다한 선정적 이야기들 앞에서 잠시 소박한 삶의 글들을 쫓아 쉬엄쉬엄 가는 골목어귀 어딘가의 이야기.
이 단편집은 소설이지만 수필같다. 하루키가 수필에서 자주 이야기하던 한신야구팀의 관람기와 재즈이야기, 당연히 귀 뒤도 아주 깨끗하고 향긋할 것 같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 소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첫사랑과 상큼한 소녀라면 재즈보단 비틀즈?
재즈바에서 넥타이를 멘 누군가는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의 일로 비난받는다. 반박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상황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 또한 나를 모르기에 , 나의 홑눈이 누군가와 관계맺으며 겹눈이 되어 얽히고 섥히면 나 또한 나를 모르게 된다.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와 내 안의 크림, 그리고 찰리 파커와 사육제의 이야기.
한때는 그의 글에 나오는 재즈나 클래식을 검색해서 들어보고 무언가 구분하고 정리해 보려 했지만 포기, 난 재즈나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와 클래식을 표현하는 그의 문장이 좋은 것이다. 그의 문장에서 재즈까지 흘러나온다면 어쩌면 좋아하게 될지도.
“네. 저는 어디까지나 원숭이지만, 절대 천박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내 것으로 삼는다,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분명 성적 욕망이 깔린 악행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깨끗하고 플라토닉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저는 마음속에 있는 그 이름을 그저 남몰래 혼자 사랑할 뿐입니다. 마치 부드러운 바람이 초원을 가만히 훑고 지나가듯이.”
(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부인으로 혹은 사는 동네로 불리면서~ 땡땡동이모?~ 친구들과 나는 자신의 이름들을 잊고 산다. 그게 원숭이의 음모였던가? 아. 그래도 원숭이의 사랑 따윈 받고 싶지 않다. 원숭이도 우리쪽은 사양이겠지만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