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숲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봄이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도 날개짓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의 봄.

정말 무서운 말이다. 침묵의 봄이 계속되다 보면 인류에게도 침묵이 찾아오지 않을까.

과학책이란 딱딱하다, 조금은 무미건조할 것이다란 나의 생각을 깨뜨린 것이 바로 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다.

책이 나올 때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 이 책을 쓰기 이전부터 레이첼 카슨은 여러 살충제의 위험성을 이야기 했고 알리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들의 결정체가 바로 이 책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오는지 보여주는 이 책은 지금도 모두가 읽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가치가 있다. 여전히 레이첼 카슨이 보여준 악몽은 현재진행형이다.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려 노력하다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난 레이첼 카슨의 삶 또한 우리 인류에게는 참 고맙고,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힘 있는 기업들의 반대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병마와 싸우며 이 책을 출간한 레이첼 카슨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인간은 자신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줄것이라 믿으며 수많은 화학물질들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먹이사슬을 통해 생명체에 쌓이며 결국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바로 이런 생물농축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전염병으로의 해방이 결국은 인간을 아프게 하고,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났다. 군수업체의 호황도 끝났다.

그들이 만들었던 수많은 화학물질들 또한 창고에 쌓여갔다.

이것들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하지? 그들은 로비를 했다. 수많은 산림들 사이의 작은 벌레들을 죽이는데 사용하라며, 집 안의 벌레와 해충을 죽이는데 그만이라며 많은 이들을 현혹시켰다. 해충은 본디 없다. 단지 사람의 편의에 따라 득이 되느냐 실이 되느냐로 나뉜다. 실제 인간의 목숨까지 좌지우지 할 정도의 해충은 그다지 없는 편에 속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벌레와 곤충은 생태계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벌레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인간들에 의해서다.

원래 그 지역에 없던 종의 벌레가, 사람들의 몸에 붙어, 혹은 사람들이 수입하거나 수입하는 물건에 같이 묻어오는 것이다.

새로운 대륙이나 땅에서 그들은 천적없이 불어나게 되고, 그런 모습에 경악하며 인간은 더 독한 독성물질을 뿌려 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독성물질이 답이 아니라고 한다. 모든 벌레에게는 천적이 있다. 그래야 균형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결국 독한 물질을 뿌려, 땅과 지하수에 공기마저 오염시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아프게 하는 것은 너무나 과한 조치이며 옳지 않다.

그저 그 벌레들의 천적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부모세대의 중독은 아이와 그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DDT나 클로르덴, 염화나프탈렌, 디엘드린, 엔드린 등은 먹이사슬에 영향을 주고, 유기인산계살충제는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잡초인 세이지를 뿌리 뽑기위해 사람들은 화학제초제를 뿌렸다.

화학제초제는 세이지를 말려 버렸고, 겨울에도 꿋꿋한 세이지를 먹고 견디던 산양과 뇌조를 사라지게 했다. 잡초도 사라지고 꿀벌도 사라진 곳. 더 이상 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도 더 이상 그 황무지에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선택적 살포는 더 적은 비용으로도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무차별 적으로 화학제초제를 남발했고, 더 이상 잡초도 꿀벌도 없는 황무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다시 되돌리는데는 더 많은 노력과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또한 잡초는 인간이 만들어낸 이름이다. 잡초란 없다. 하나하나 모두 토양과 지구에 그리고 인간의 삶에 기여를 한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에 장미나무에서 작은 선충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화학살충제 대신 메리골드를 심었다. 잡초로 취급되던 메리골드의 뿌리에는 토양속의 선충류를 죽이는 물질이 분비된다. 그리하여 메리골드의 도움으로 장미는 다시 건강해졌다.

미국에 느릅나무병이 돌자, 느릅나무병균을 옮기는 풍뎅이를 박멸하기 위해 또 엄청난 양의 화학살충제가 뿌려졌다. 그러자 느릅나무에 그 살충제가 묻었고, 그것을 먹은 지렁이는 곧 엄청난 양의 살충제를 축적하게 되었다. 그 지렁이를 먹은 울새들은 불임, 그리고 고통속에 죽어갔다. 하지만 뉴욕주는 느릅나무병에 걸린 나무들을 철저하게 선별함으로써 병의 확산을 막았다. 철저한 선별과정과 처리를 통해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로 수많은 생명들을 고통 속에 죽게 했다.

꼭 필요해서 어쩔 수 없어서 뿌린 것들이 아닌 것이다. 다른 대안들은 많다.

도움이 되는 식물이나 선택적 살포, 그리고 천적의 이용으로도 충분히 화학제초제나 살충제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토양에 뿌려진 살충제들은 결국 돌고 돌아 사람의 몸속에 축적될 것이다. 고통속에 죽어가는 울새가 결코 울새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이런 화학물질들은 사람들의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암을 유발시킨다. 사람들도 고통속에 결국 죽어가는 것이다.

현대적 화학물질의 개발아래 백혈병 환자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살충제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사용하는 각종 세제들도 엄청난 수질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곤충들은 화학살충제에 대해 내성을 갖게 되었고, 더 독하고 더 강한 살충제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에게도 더 치명적이 되는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이 잉태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숭고한 생명들을 인간은 자신들의 편의와 사익을 위해 가차없이 몰살이란 걸 택한다.

바나나는 내게 아주 비싼 과일이었다. 어릴 적 소풍갈때나 먹을 수 있었던 과일.

그러나 지금은 가장 싼 과일 중의 하나이다. 오랜 기간 배를 타고 왔음에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바나나를 보고 있으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상하지 말라고, 빨리 숙성되지 말라고, 곤충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라고 얼마나 많은 살충제를 뿌렸을까? 비행기로 살충제를 뿌려대는 그 밑에는 노동자들이 묵묵히 바나나를 따고 있고, 그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다 짧게 생을 마감한다.

누구를 위한 일들인걸까?

그 누구도 이 실상을 안다면 그렇게 살충제 가득한 과일을, 얼룩다람쥐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제초제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는 무심코 날벌레를 잡는다고 살충제를 뿌리고, 흠 없고 고운 빛깔의 과일들을 고르며,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는 채소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산에 살충제를 뿌린 날이면, 여기저기 거미들과 나방들의 시체가 가득해도, 그냥 거미줄이 없어서 나방들이 없어서 편하다고만 생각하는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은 정말 무섭도록 잔인하다. 결국 그 끝엔 인간이 마지막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40년 전에 출간된 이 책, 지금은 다양한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많이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달라진 것인가

여전히 우리 주방에는 수많은 세제와 다양한 살충제들이 구비되어 있고, 여전히 소나무의 재선충엔 살충제를 뿌려 대고 있다.

살충제가 뿌려진 산의 열매들은 붉게 잘 익어 가고 있지만, 곳곳엔 먹지 마시오란 표지판뿐. 이것이 달라진 것일까? 글자를 알지 못하는 청솔모도 다람쥐도 수 많은 살아 있는 생명들은 여전히 붉게 잘 익은 살충제 범벅의 열매들을 먹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동물들의 죽음에 내 일이 아닌 듯 두 손 놓고 있다.

또한 굶주리는 사람을 줄여 보겠다고, 생산량이 훨씬 많은 품종을 만들지만, 결국 그 품종의 씨앗은 일회성이라 매해 새로운 씨앗을 사야하며, 그 씨앗에 맞는 독한 비료와 농약을 쳐야 해 결국 그 비료와 농약 그리고 새로운 씨앗값으로 빚더미에 앉아 굶어 죽거나 자살하는 이들이 더 늘어나기도 한다. 땅은 땅대로 오염되어, 더 이상 건강한 싹을 틔우지 못하고, 그렇기에 더 독한 약들을 뿌려 대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상식보다는 돈의 힘이 권력이 힘이 통하는 사회라는 것이 슬펐다.

응용곤충학이나. 대체 혹은 선별 살충이 가능함에도, 누군가의 힘에 의해 상공에서 뿌려지는 숱한 살충제, 미국이나 필리핀 등의 드넓은 논밭에 뿌려지는 뿌연 제초제들이 결국은 바람을 타고 우리 숨결로, 결국은 우리의 먹거리로 우리를 차곡차곡 질식사시키는 건 아닐까.

그러나 희망은 있다. 우리의 논에 살고 있는 우렁쇠와 논오리가 그 대안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세제와 살충제를 치우고 발효액이나 목초액 혹은 계피를 대안으로 삼는 사람들.

조금 못생겨도, 곤충과 같이 먹어도 흠 있는 과일에도 감사하고, 적은 농약, 적은 오염으로 키워진 음식들을 찾는 사람들이 바로 희망이다.

침묵의 봄에 묘사된 줄다람쥐와 울새의 고통은 눈물나게 슬펐다. 이것은 인간이 저지른 살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책도 희망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화학물질의 두려움을 깨쳤고, 우리가 접해 보지 못한 동식물들의 아픔도 알게 되었고, 다음 차례는 인간임을 예감한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환경단체와, 환경을 생각하는 모임이 만들어진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희망의 씨앗이 아닐까.

DDT의 발명으로 노벨상을 받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카슨 때문에 아프리카 등에 DDT를 쓰지 못해 말라리아가 창궐,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도 비난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필요성에 의해 DDT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이 제한을 두고 있다. 즉 기업의 욕심이 카슨의 책에 대한 의문점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DDT와 질병의 상관관계는 다양하게 밝혀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침묵의 봄과 일맥상통하는 수많은 환경문제에 산재해 있다.

많은 동물들이 멸종하고, 그러한 멸종이 또 많은 악재를 낳고 있다.

더 독한 살충제를 뿌려야 하고, 그럼에도 인간은 더 편리하고 더 위생적이어야 한다는 모순속에 인간을 제외한 살아 있는 이들의 삶을 지옥으로 바꾸고 있다.

더워지는 지구와 아파하는 살아 있는 것들, 그리고 인간 또한 아파하고 있다.

자연이란 위대한 품속에, 인간이란 존재만이 끝이 뽀족한 송곳으로 자연을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살충제의 오남용을 막고 응용곤충학과 을 대안으로 삼아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갈길 은 더 멀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길을 말해주고 있다.

그냥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아니다.

우리에겐 다른 길이 있다.

화학물질등을 이용한 곤충의 불임화나, 곤충이 만드는 여러 가지 물질을 유인물로 이용하는 방법, 거미를 이용해 나무의 여린 잎을 곤충으로 보호하거나, 개미나 새집을 이용해 숲을 보호하는 등 인간과 곤충이 공생하는 것이다.

살충제를 뿌리는 것은 모두를 병들게 하며, 내성으로 인해 점차 살충제를 뿌리는 주기마저 빨라지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생각은 결국 효율적 인간상을 만들었고, 효율적 인간상은 쉽고 빠르게, 인간만을 위해 혹은 인간이 상위라는 오만을 가지게 했다. 결국 이런 오만은 도미노현상을 만들어 자연계의 악몽을 만든 것이다.

인간도 곤충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연이라는 곳을 보금자리로 삼고 있다.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불태우는 식의 걷잡을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곳이 모두에게 소중한 것임을, 인간만이 다가 아님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존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주었다.

새들의 죽음 그 뒤에는 우리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이 가장 무서운 침묵에 쌓이기 전에 우린 공생하며 서로 돕고 사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공생하는 방법은, 모두를 싸그리 없애는 살충제나 제초제를 뿌리는 것보다 가격면에서도 훨씬 낫다. 내성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무슨 길을 갈 것인가?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살충제를 뿌리던 이들이 쓰러지고, 세제를 쓰던 주부가 백혈병에 걸리는 세상?

아침에 새 소리에 눈을 뜨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존중받는 세상?

선택은 우리의 몫이며, 레이첼 카슨 또한 믿을 것이다.

인류가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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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becando 2020-01-30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고도 모른척한 사람들 알려고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침묵하는 동안 부메랑이 되어 이 세상에 무서운 경고를 하고있네요 나만 아니면 이라는 생각이 인간 본연 심성어딘가에 깊숙히 박혀있는것같아 사람이라는게 무섭습니다
이렇게 경종을 울리는 소리들이 더이상 묻히지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