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의 설계자들 - 1945년 스탈린과 트루먼, 그리고 일본의 항복 메디치 WEA 총서 8
하세가와 쓰요시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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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전쟁사도 관심도 많고 TV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나 유튜브로 관련된 콘텐츠를 구독하고 있는 중인데 2차세계대전의 종전에 관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비화(秘話)를 알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해방이후 모스크바 삼상 회의 우리나라를 5년간 신탁통치한다는 결정을 하였다고 학창시절 배웠는데 책에서는 원래 기간이 40년이었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네요. 어떻게 40년이란 기간이 5년으로 수정된건지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네요.


훗카이도(北海道)의 북쪽지방을 점령하고 도쿄를 4개 구역으로 분할하여 독일 점령 방식을 일본에 적용하고자 했던 소련 하지만 미국의 완강한 거부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하니 역사속 놀라운 사실들을 하나하나 접하니 그러 놀라울 따름이네요. 만약이라는것이 역사에 없지만 소련의 뜻대로 되었다는 전후부터 지금까지의 일본(日本)의 역사는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대신 미국은 쿠릴열도 전체를 소련에 넘겨주었고 이후 일본이 주장하는 '북방영토' 문제가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 책은 미국, 일본, 소련의 방대한 일차자료들을 토대로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태평양전쟁 종결을 논한 최초의 연구서다." p13


저자가 말하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을 미국에 의한 두번의 원폭투하가 아닌 소련의 참전이었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은 일본군 수뇌부는 원폭을 당하고도 결사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는데 소련군의 참전으로 결국 항복을 받아들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41년 4월 13일, 스탈린과 일본 외무대신 마쓰오카 요스케가 모스크바에서 조인한 일소 중립조약은 마치 독일과 소련이 체결한 독소불가침조약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 면이 있지 않나 싶은데 전쟁에서 조약이란 파기하기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독일이 조약을 어기고 소련으로 진격한 사건이나 전쟁말기 소련의 일본군 공격이 그 예가 되겠지요.


이어지는 일본과 소련과의 관계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정리하고 있어 막연하게나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로 이어지며 연결하게 하는 가교((架橋)의 역활을 충실히 해주기도 하며 세계 대전 중 일소중립조약이 체결되었던 배경과  독소전에서 고전하던 소련은 일본이 자국을 공격하지 않을것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극동 정예사단을 모스크바 방위를 위해 이동시켰다고 하니 소련으로서는 독소전에 집중할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경계를 늦출수 있었던 기회가 아닐런지


전황이 불리해지자 일본은 소련과의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북사할린의 석유,석탄 채굴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였는지를 잘 알수 있었으며 일관성 없는 외교 또한 전쟁중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던 요소이고도 하였다고 하니 위정자(爲政者)들의 무능함도 일본의 일관성 없는 외교에 한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식기록에는 없으나 테헤란회담에서 스탈린과 루스벨트가 영토 문제에대해 나눈 이야기속에 조선을 40년간 신탁 통치하겠다고 하였으니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의 비애(悲哀)라는 것은 자국의 운명을 강대국에 의해 결정될수 밖에 없는것이 냉엄한 국제정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밀리에 일본에 대한 침공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스탈린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을려는 미국 군사지도자들과 함께 종전에 대비하기 시작하는 일본은 소련에 특사를 파견하고자 하나 거부당하게 되는데 이는 연합국들이 소련과 일본의 관계를 오해할것이라고 점과 미국에 대한 메세지가 작용했다는 점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로 고려하는 오늘날의 정치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종전의 해인 1945년 4월 많은 거센 변화의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5일에는 모스크바에서 소련 정부 성명으로 일본과의 중립조약을 파기한다고 발표하였다고 하니 이는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지 이틀 뒤인 1945년 8월 8일 참전하는 원인이 될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전쟁 막판까지 소련의 참전을 방지하기 위한 일본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소련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것은 역사적 사실로서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요


S-1(맨해튼계획)의 성공에 따라 6월 6일 원자폭탄의 투하 결정이 트루먼에 보고되었으며 종전을 앞당길려는 미국과 전쟁의 지속을 바랬던 소련에 더불어 일본은 조속히 전쟁 종결을 위한 외교 공작을 벌이게 되는데


7백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어렵지 않는 설명과 하단에 인물이나 사건등에 대한 주석을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기도 하여 가독성이 뛰어났으며 접하기 힘든 여러 역사적 진실들을 알수 있어 2차 세계 대전 말기의 미국,소련,일본의 정세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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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현 2019-04-2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세가와 쓰요시의 책과 관련된 도서인 『8월의 폭풍』의 역자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5357299

하세가와의 책이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둘러싼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심도 있게 고찰하고 있다면, 『8월의 폭풍』은 하세가와 책이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서 소련군이 수행한 군사작전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8월의 폭풍』은『종전의 설계자들』의 참고문헌이기도 합니다.

『8월의 폭풍』을 『종전의 설계자들』과 같이 읽으신다면 더 많은 도움이 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번역한 『8월의 폭풍』도 언젠가 소개해주시고 서평을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7 - 시련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건설하다 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7
최태성 지음, 김성규 그림, 김차명 인포그래픽, 김택수 감수 / MBC C&I(MBC프로덕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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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7권은 광복과 함께 찾아온 남북의 분단 그리고 전쟁과 작년 남북정상회담까지 수록되어 있어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사를 공부할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7권 친구들을 통해 과거 독재정권의 당사자들과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네요.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일본에게서 광복을 맞게 되었지만 '신탁 통치' 결정이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결정되고 나서 찬ㆍ반대로 나뉘게 되어 국론이 분열되었으며 단독 정부 수립 주장한 이승만에 대해 분단을 막을려고 한 인문들

 

결국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되고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선출되게 됩니다. 반민특위가 꾸려지게 되나 결국 이승만 정부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체됨으로서 민족 반역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에서 이루어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을 상기해볼때 더욱 아쉬운 결과라 하겠지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38선을 넘은 기습공격으로 낙동강까지 밀리게 되나 인천 상륙 작전으로 전세를 뒤바꾸게되면서 통일을 이룰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해 결국 전쟁은 고착화되면서 휴전협정이 체결되것은 민족의 영구적 분단을 초래할수도 있는 일이될까 걱정되네요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수 있었던 배경은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려는 부모들의 교육열과 경제 개발로 대표되는 경제발전이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국제적인 경기호황도 한 몫 한것은 사실이지만 열심히 일한 우리들의 부모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제 성장 뒤의 어두운 현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을 대변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근로여건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1980년도 경제호황기를 지나 우리정부가 1997년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외환위기로 수많은 실업자의 발생과 이어지는 자살등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경험해본 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나 싶으며 1960년 3월 15일의 부정선거로 인한 4ㆍ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하니 권력에 대한 과한 욕심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권불십년(權十年)이라고 영원한 권력은 없나 봅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고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탄압하였고 마침내 김재규의 총에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도 하였으니 앞으로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을 더욱 열심히 진행하여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위한 하나의 조국을 만들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염원한다면 다시 하나된 국가를 이룰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총 7권의 책을 통해 우리역사의 시작부터 현대사까지 참으로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만날수 있었으며 아울러 큰 별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아니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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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6 - 근대 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독립을 외치다 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6
최태성 지음, 김성규 그림, 김차명 인포그래픽, 김택수 감수 / MBC C&I(MBC프로덕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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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에서는 개항되는 조선의 모습을 필두로 하여 조선의 멸망을 거쳐 독립을 하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어 우리역사에서 근대사를 공부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6권 친구들을 통해 가슴 아픈 근대사의 중심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며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철저히 위장하여 세도가의 의심을 피하였다고 하니 그의 치밀함이 당시 집권자들은 속일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신의 뜻을 이루거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면 이러한 치밀함과 꾸준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12살의 고종이 즉위하고 대원군이 된 이하응은 비변사를 폐지하고 서원도 정리하는 등의 개혁정치를 실행하게 되면서 내부의 안정을 찾을려고 할때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와 미국에 의한 강화도 침공으로 위협을 느낀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항전의 의지를 밝히지만


결국 10년후 1876년 최초의 근대전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일본과 맺게 됨으로서 근대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구식 군인들에 의한 임오군란,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급진 개화파'의 삼일천하 갑신정변등 외세를 끌여들인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될것인지? 


신분제등을 폐지한 1894년 갑오개혁을 비롯하여 명성 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과 단발령등은 조선이 자주적인 변화나 개혁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쉬운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지는 항일의병 활동


그리고 상궁의 가마에 몸을 실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을 통해 당시 시대상이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웠는지 잘 알수 있었으며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와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근대 문물로는 전등과 전화기 전차등이 소개되어 잘 알지 못했던 조선후기 우리조상들의 변화상을 인식할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의 주도권을 두고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조선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나라를 지킬 힘이 없으면 언제든지 타국에 의해 병합되거나 고통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상기해볼때 자주국방을 이루는 길만이 약육강식(食)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 싶네요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고 헤이그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고 하니 참으로 참다할뿐이네요.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을 비롯한 의거 활동이 이어지게 되나 결국 조선은 5백여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1910년 8월 29일 일보에 나라를 빼앗기게 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국권 피탈후 독립하기 위한 노력들과 항일 무장 투쟁을 통한 우리민족의 저력을 확인할수 있었고 이러한 노력등의 결과로 우리는 독립을 인정받을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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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5 - 조선에 변화의 바람이 일다 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5
최태성 지음, 김성규 그림, 김차명 인포그래픽, 김택수 감수 / MBC C&I(MBC프로덕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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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은 조선중기 겪은 두번의 전란의 극복으로부터 후기의 사회상까지 이야기하고 있네요. 5권 친구들은 후기 조선을 대표할만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어 사회적 변화와 정치상황을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지 않나 싶네요.


전란을 극복하기 위한 모내기법의 전국적 확대로 인해 농업 생산력이 증대된 것은 피폐해진 조선의 백성들에게 삶의 희망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결정적인 농업혁명이 아닌가 싶으며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동의보감의 편찬은 지금도 유용한 의약서임을 상기해볼때 당시 제대로 된 의약서가 없던 시절에서는 획기적이지 않았나 싶네요.


북벌론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흐지부지되면서 오히려 이후에 북학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합니다. 독도를 지킬려고 했던 안용복을 통해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에 대해 우리영토임을 알릴수 있는 역사속 자료들을 발굴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차례의 전란 이후 명분의 성리학 대신 '실학'이라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 연구되기 시작했는데 실학자들의 주장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정리해주고 있기도 하네요.


조선시대 임금중 가장 장수하면서도 오래 왕위에 있었던 영조는 탕평 정치를 실시하여 일재를 고루 등용하였으며

 


 


수원 화성을 건립하고 여러가지 개혁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정조, 만약 그가 좀 더 오래 생존하였다면 아마 우리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민 문화가 발달할수 있었던 변화로 인해 풍속화 및 민화도 유행했었다고 하니 변화의 물결 앞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현상이 나타날수 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고려시대에 비해 나뻐진 여성의 지위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통해 인식할수 있었고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능력을 보여준 몇몇의 여성들


김만덕은 양자에게 먹고살 정도의 재산만 넘겨주고 너머지는 기부하였다고 하니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닌가 싶네요. 지금도 문제가 되는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접할때마다 진정한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왜 이리 적은것인지 한탄을 금할 수 없네요.


조선 후기 정치 상황으로 인해 '세도 정치'가 나타나고 이로 인해 민심의 이반으로 19세기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난등이 대표적인데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국적인농민봉기로 인해 차츰 조선의 앞날은 먹구름이 끼게 되는데


이 당시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게 되고


6권 맛보기를 통해서는 조선후기와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일제시대에 활약한 인물들이 나열되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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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4 -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새 나라 조선이 세워지다 큰★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4
최태성 지음, 김성규 그림, 김차명 인포그래픽, 김택수 감수 / MBC C&I(MBC프로덕션)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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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의 차례를 통해 알수 있듯이 조선의 건국부터 임란과 병자호란까지 소개되어 있어 조선왕조 5백년중 절반정도의 역사에 대해 안내해주고 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4권의 친구들 또한 정몽주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조선의 개국이나 그 이후 시대의 인물로 구성되어 있네요.

 

조선을 건국한 두 세력인 신진 사대부와 외적을 물리치면서 백성들의 신망을 얻은 신흥 무인 세력의 연합

 

그리고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게 된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과전법을 시행하여 권문귀족의 세력을 약화시켰으며 온건파 사대부라는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조선을 개국(國)하게 되는데

 

조선의 도읍지가 결정되는 과정을 통해 엽전 던지기로 결정하였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국의 수도를 정하는데 엽전으로 결정하였다고 하니 놀라운 사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고 과히 기네스북에 등재될만한 사건이 아닌가 싶네요.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 하지만 그는 태종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고 조선말에 되어서야 그의 집안은 복권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긴 세월 그는 역적으로 살수 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이었나 봅니다.

 

왕위에 오른 태종의 업적과 조선의 사대 외교정책 그리고 교린 정책 속에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 섬을 공격하고 4군 6진을 개척한 사건은 자국의 방위를 넘어 국경선을 확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진 언어인 한글을 창제한 세종 대왕,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으며 과학기술 또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조선후기까지 유용하게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교국가였던 만큼 경국대전을 통해 본 조선의 모습으로 미루어짐작하건데 노비라도 출산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며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대해 엄히 책임을 물었던것은 흥미로운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신분에 차이에 따른 직업의 차이 그리고 의식주까지 통제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경직된 사회였는지 알려주는 한 단면이 아닌가 싶네요.

 

건국된 이래 200년 동안 큰 전쟁이 없었기에 제대로 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발발한 임진왜란

 

부산에서부터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북상하여 20일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했다고 하니 얼마나 조선 육군이 준비가 되어 않았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은데 불행중 다행으로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맹활약하여 수륙병진을 좌절시킨 점은 육군에게도 정비할 시간을 주어 의병과 함께 일본군에게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을 기점으로 일본군은 철군하게 되고 최후의 결전인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하게 되는데...

 

이후 전란 복구에 노력한 광해군,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친명배금 정책을 취하자 후금의 공격이 시작되고

 

앞선 임진왜란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조선.

 

삼전도의 치욕을 남긴 병자호란. 이후에 조선은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게 되는데 과연 어떤 모습의 조선을 5권에서는 만날수 있을지. 5권 맛보기를 통해 소개된 인물들로 얼추 짐작할수 있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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