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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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다. 라떼라는 소리 하는게 미안하지만 라떼는 이런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 바라보는 미디어 세상도 신기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어진다. 일상에 녹아든 미디어는 따로 분류 할 수 없을 만큼 일부가 되어버렸다. '숨쉬듯'이라는 말과 함께 '무의식적으로'라는 말처럼 의존하고 있는 삶을 살고있다. 없이 산 적이 없었다는 듯 태어날 때 부터 손에 쥐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몸의 일부이며 감각의 한 기관처럼 되어버렸다. 단편 8편의 이야기들은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고 타인의 일상을 밀어당겨 아무렇지 않게 들여다보는 청소년과 2030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선. 외면했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말과 글, 그리고 책에 존재가 더 애틋했던 나 조차도 손바닥 속의 화면에 넋 놓고 시간을 먹혀버리는 것에 순순히 응하고있음을 느낀다.

각각의 단편은 '결국 그럴 줄 알았다.'로 시작하면서 '진득 그럴만하다 싶었지.'라는 탄식과 함께 '나중엔 더 할지도 몰라.'라는 씁쓸함을 흘리게 하더라. 좋은데 마냥 좋을 순 없고, 멀리하고 싶으나 어느새 내 곁에 찰짝 붙어버린 그 세상에 대해 작가들이 던진 화두에 묵직한 생각을 달아본다.


📖후원명세서_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기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우리 형편에 대학이라니. 사람이 분수를 알고 살아야지.

유년시절 후원 단체의 도움을 받으며 자란 윤미는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성인이 된 이후 진로를.... 그러니까, 밥벌이의 장소도 그러한 단체로 옮겨갔다. 미디어가 원하는 모습이며, 미디어를 접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맞춤형으로 살아가고있음을 보인다. 다들 하나같이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되고 선한 사례가 되고자 한다는 인터뷰에 절대 어긋나서는 안된다는 듯 색칠공부 까만테두리 안에서마는 조신하게 살아가는 인물로 보인다.

사건은 윤미의 삶의 방향과 다른 경로를 보이는 후원아동의 모습에서 혼란과 함께 이것이 정말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를 생각하게된다. 후원자들은 자신의 선행으로 인해 우위에 있음을 즐기려는 뉘앙스를 보인다. 남학생은 키보드 워리어들에 신경쓰지 말라며 되려 후원사 직원을 위로한다. 후원을 받는 아동이라고 갖고 싶은 것 마저도 소박할 것이라는 후원자의 생각. 원하는 것을 말하라길래 솔직히 말해준 후원아동. 질문에 대한 답은 솔직했다. 솔직해서 화가 날 수도 있는 것. 그렇다면 후원자는 무얼 기대한 걸까?

가정의 달, 연말에 맞춰 만나는 빈곤 아동들과 취약계층 후원 광고와 인터뷰들. 갖고 싶은 것 마저 제한선을 두도록 편집된 영상은 시간이 지나도 이 포멧을 유지하고있다. 인터뷰 편집패턴은 미디어가 발전하고 세대가 변하며 세상이 바뀌어도 변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나에게 많은 것을 떼어 너에게 함께 쓰자고 권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살렸지 않느냐는 상하계층이어야 사람들이 자극 받게될거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한순간에 바뀌진 않을 듯 하다.




📖지아튜브_ 사람들은 아빠랑 지아가 놀면서 돈 버는 게 배 아픈 거야. 우리가 유명해지고 부자가 된 게, 차가 바뀌고 집이 바뀐 게 부러워서 더는 못하게 하려고.

이 또한 많이 봐온 유투버의 삶이다. 한 때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을 물을 때 아이돌보다 유투버를 하겠다는 대답이 월등히 많았다.(라떼는 대통령, 과학자, 의사, 선생님..... 이었는데, 그때의 아이들은 꽤나 뭣 모르고 자라는 녀석들이었나보다. 요즘은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버는게 최고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한 세대를 반영하듯 김혜지 저자의 지아튜브는 인기 유튜브 주인공인 지아가 직접 이야길 하며 서러운 마음을 토로한다.

손가락을 타고 들어간 댓글들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있고, 절대적인 악플도 같이 들러붙는다. 유명해지면 자연스레 돈벌이의 수단이되고 아이는 부모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얻게된다. 자연히 본업을 버리고 아이를 내세운 영상 활동에 매진하게되고 그 조회수와 광고에 울고 웃게된다. 조회수가 터지는 날에는 엄마아빠가 행복해하고, 그렇지 못한 날엔 싸움이 끊이질 않다는 이야길 하는 지아의 표정과 행동에서 자신의 행복보단 영상에 비춰지는 돈이 잘 벌릴만한 행복을 바라고있었다. 뭐든 잘 나가면 그걸 제지하려는 낯선이들의 접촉도 빈번해진다. 믿음을 주었던 채널 작가가 최대 악플러로 돌아서면서 겪게되는 아이의 감정 변화. 아이는 잘못한게 있을까? 조회수가 폭발하려면 대단한 기자회견이라도 해야될 듯 한 흐름이다. 여론이 이슈를 만들고 이슈는 사람을 쥐고 흔든다. 영상을 클릭하는 이의 맘에 들게 하려면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야 속이 후련 할 듯 하다. 내 진짜 심경보다 그들이 원하는 진짜 미운 심보. 그 진심이 더 중요해보이는 세계로 느껴져 선득해진다.



📖무료나눔 대화법_ 상대방의 구구절절한 내막까지는 알 필요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대화를 그만둬야 한다. 정말이지 내가 알고 싶은 건 지금 가져갈 수 있는지 그뿐이다. 가능하세요? 가능합니다. 무료나눔 대화는 이래야 했다.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뜬금없이 손에 쥐어진 물건. 공허한 눈빛. 누굴 기다리는지 오가는 사람에게 시선이 옮겨가는 모습. 초조하니 휴대폰만 톡톡 두리는 행동에서 우리는 조심스레 다가가 '당근?'을 외쳐야 할 느낌이다. 나도 해봤고, 당신도 해봤을 그 한마디. 당근!

구구절절한 사연따위 필요없는 사이다. 필요하면 찾아보고 사진을 살펴보면 그만이고, 원하면 구입 가능 여부만 질문하고 답을 얻으면 되는 사이. 물건으로 인해 맺어지는 관계이긴하다만 다시 만날 일 없고, 다시 이야길 나눌 사이가 아닌 조합이다. 이 것 하나로 시시콜콜한 각자의 히스토리는 거르게되는 방식에서 단답형의 대응에만 반응하는게 편해짐을 느낀다. 이 집에서 식탁이 갖고있는 히스토리는 길고 장황하지만 무료나눔하여 얻어가는 이에게는 그닥 중요치 않는 사항이되어버린다. 그렇게 물건도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다시금 떠올리게하는 과거회상 매개체가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그냥 사전적 의미의 존재 정도로만 채워지곤한다.

당근으로 무료나눔해서 알아서 갖고가라했다가 직접 들어다주고, 다시 그 집에서 무료나눔으로 받아오는 과정. 단답형을 원했던 이에게 이 과정은 어이없고 황당함 그 자체의 하루였다. 식탁을 버렸으나 게임기를 받아온 그. 와이프가 뭐라 하려나.....




언젠가 부터 자신의 의지와 사고의 선택은 뒷편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선택과 고민보다는 알고리즘에 의존하며 들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를 정하게된다. 축적된 데이터들이 알아서 해 줄 텐데 뭣하러 찾아 헤매겠냐는 것. 실패를 거듭하며 비로소 만나는 애틋한 순간이 사라지게된다. 대신 보다 많은 양의 데이터 들 중에서 빨리 추려내기 위한 급한 눈동자와 손가락의 움직임만 향상되겠지.

일상에서 미디어를 빼면 단조롭고 심심하며 비어버린 느낌이 들 건 당연해 보인다. 친숙함에 시작했고 익숙함에 녹아들었고 당연함에 쥐고있는 것들이니 이젠 멀리 할 수도 없다. 나만 눈 가리고 귀를 닫아버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니 어떻게 잘 데리고 살아가야하나를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다.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미디어도 변해 갈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 될 수도 있겠고, 예상대로 흘러가는 진화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결국 미디어와 인간의 삶은 끝까지 손잡고 가게될 생명과 문명일테니 서로 서운함 없도록 모쪼록 잘 사는 방향을 기대한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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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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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에서 김겨울작가가 추천해준 '다정한 매일매일'을 교보까지 찾아가 직접 구입해 읽었던게 시작이었고, 두번째 만남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라는 에세이였다. 최근 '함께 걷는 소설'이라는 청소년소설의 단편으로도 뵙고나니 친숙함이 가득한 작가로 느껴졌다. 모나지 않고, 독하지 않은 사람들만 나오는 글이라 무해함에 편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분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한 '눈부신 안부'는 예약 구입까지 하게 되었다.

등단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장편을 내어놓은 작가의 글에는 여전히 선의로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코멘터리 북에서도 그 말을 전했더라. 이야기를 이끄는 해미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지나칠 정도로 선의로 가득한 집단으로 나온다. 현실세계는 그렇지 않아 너무 판타지가 아닐까 싶어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해미가 너무 안쓰러워 가능하면 해미에게 좋은 사람들을 선물해주고팠다는 말에서 어느정도 공감과 이해와 설득을 모두 당해버렸다. 선하고 결이 고우나 때론 상처가 깊은 이에겐 저절로 다정하며 마음이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더라는 것. 억지로 뽑아서 채워넣는 인물의 조합이 아니라 비슷한 결을 가졌기에 끌리고 마음을 토닥여 줄 수 있는 것이라 납득이 되더라. 생각해보면 착한 사람 옆엔 더 착한 사람도 있고, 또 달리보면 악용할 악한 사람도 있다는 것. 뭐, 바라보기 나름이고 이해하기 나름이겠지. 선한 사람들이 눈에 더 잘 띄는건 같은 마음을 하는 사람이라 한번 더 눈길이 갔던거고, 그렇지 못한 인물은 마음이 쓰이지 않는 흘러가는 존재이니 그럴수도 있겠다며 해미의 주변사람들의 조합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해미에겐 유년의 상처가 깊다. 친언니를 뜻밖의 사고로 잃었다. 너무나 급작스럽고 느닷없는 일이었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나. 자신의 슬픔에 앞서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는 해미는 자신을 돌보기 보단 부모에게 덜 신경쓰이고 덜 걱정끼치는 아이로 보여지고자 홀로 슬픔을 삼켜버린다. 아빠와 별거를 결정한 엄마. 엄마를 따라 친이모가 정착해 사는 독일로 이주하여 이모와 이모의 친구들 돌봄을 받으며 살아간다. 변해버린 환경에 해미는 언니의 몫을 해야했고, 제 몫 또한 다 해내는 아이로 자신의 진짜 마음을 감추고 산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모들의 세상도 알아가고, 낯선 곳에서 마음을 나눌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가 겪을 가족의 상실에 앞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과거의 상실에서 벗어나 더 이상 없어야할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생기지 않도록 지금의 내 사람을 끌어당겨 자신의곁에 두기로 한다.

유년시절의 상실과 아픔에 제대로 아물도록 들여다보지 않았던 해미.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자신과 같은 슬픔을 겪을 이를 기억해 위로하고 그 마음을 헤아렸다. 나이가 들어 곁에 누군가를 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뒤로하고 마음이 닿아있던 곳으로 향하기로 한 모습에서 행자이모가 떠나기전 걱정했던 그 마음의 답을 찾았다 싶어 마음을 놓아본다.

기자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우연히 사진전에서 만난 대학동기 우재와의 재회에서 시작되는 해미의 이야기. 어른 해미로 시작해 독일에서 머물던 아이 해미의 이야기에 같이 추억하다 다시 어른 해미가 예전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눈부신 해미를 기대해본다.


📖P30_ 언니를 잃은 이후 나는 가족 중 누구든 눈 깜짝할 사이 내 앞에서 없어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리고 있었고, 동시에 언제 사라져버리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살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틀림없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가족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싫은 그 상실의 마음은 분명 쉽사리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을텐데라는 자책부터 언니대신 차라리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싶은 마음까지 들며 존재의 부재를 인식하긴하나 받아들이긴 어려워한다. 사랑스러운 이를 왜 이렇게 빨리 데리고 갔나 싶어하며 원망을 하면서도 그 전까지 좀 더 사랑하지 못했고, 좀 더 아껴주지 못했던 시간을 후회하게된다. 이렇게 후회하고 반성하면 어느 신이든 그 간절함을 들어 시간들 돌려줄법도한데 현실은 매번 남아있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그늘진 얼굴 뿐이다. '네 탓이 아니야.'라고 주변에서 말들 하겠지만 어떤 위로도 안 되더라. 시간이 약이고, 추억과 회상이 덜 외롭게 할 뿐이었다. 때론 그러한 마음이 들어도 내버려두는게 맞지만, 해미는 어렸고, 해나는 더 어렸다. 그래서 해미는 웃자라듯 언니의 몫을 다 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을텐데 그러한 마음 쥐고 성인이 된 어른해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P50_ 일주일만 지나면 해가 바뀌고 나는 언니와 동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 년 후부터는 내가 언니의 언니가 될 것이다. 언니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나 혼자 살게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물론 해나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당시 나에게는 거짓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언니는 그 시간에 멈춰있고, 나만 자라는 느낌. 때때로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순간이 생길때마다 언니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들. 이게 해미가 언니를 그리워하는 방식이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엄마와 아빠의 슬픈얼굴만 떠올라 입을 꾹 다물며 잘지내고 있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래야 한국에 있는 아빠도, 타지에서 공부하며 자신들을 돌보는 엄마도 한시름 놓을테니 말이다.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메모까지하는 해미를 보면 제발 두분의 슬픈 모습을 그만 보여달라하는 어린아이의 생떼같이 느껴지기도한다. 내가 이렇게 잘 하고있는데 왜 두분은 그렇게 싸우고 울기만 하냐 싶은 아이 나름대로의 발악처럼 여겨졌다.


📖P65_ 사랑하는 사람이 곧 세상에서 없어져버린다는 걸 밀 알고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파독간호사 이모들을 통해 알게된 한수와 레나. 특히 한수를 보면 계속 언니를 생각나게했다. 엄마를 곧 떠나보내야 할 거라 생각하는 한수를 보면 그래도 너는 작별할 시간이라도 있지, 자신은 그럴 겨를이 없었던 때가 떠올랐다. 평소같으면 정말 사사로운 일들. 언니 티셔츠를 훔쳐입고 소풍을 갔던 날이나, 심부름을 떠넘겼던 별거아닌 날들이 아쉽고 미안하기만 한 순간으로 부풀어지니 각자가 겪게될 이별의 찰나가 달라 야속했던 것 같다.


📖P219_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는데 바보같이요.

오래 머물 것 같던 독일의 생활도 다시 황급히 접어야했고, 멀리서 날아오는 소식에서 한수와 레나, 해미는 엄마의 첫사랑 찾기도 끝맺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우재와의 재회에서도 더이상 진전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존재의 부재는 마음을 지치게 했기에 해미 주변에 누군가를 다시 들이는 것, 이를테면 마음쓰는 일에 지친 모습이다. 누구도 들이지 않고 그저 혼자 견뎌내고파하는 닫아둔 마음이었다.

행자이모가 잠깐 서울로 왔을 때 셋의 재회가 조카 해미도, 그녀의 친구 우재에게도 마음을 툭 내려두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재역시 가깝지는 않았으나 주변인물의 부재가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려주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니 오늘 당장 내 마음을 알아봐주고 외면하지 않기로 한 것. 그래서 그렇게 해미 주변을 맴돌았던 것. 행자이모가 먼저 알아줬고, 행자이모를 통해 해미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P227_ 여전히 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전히 언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 때가 있다고. 상실 이후 시간이 때때로 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독일에 살 시절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하지 못했던 마음의 상처를 이모가 알아채줬고, 알은체 해줬던 이모에게 마음을 열었던 해미. 여전히 이모는 해미가 덜 힘들고 덜 아파하게 해 줄 마음의 대나무숲이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마음이 보였기에 찬란히 살길 원하는 한마디에 내가 울컥해졌다. 누구를 대신해서 살기 보단, 누구의 몫으로 살기 보단 그냥 온전한 나로서 살기를 바라는 이모의 마음이 문장에 가득 녹여져있었다. 파독간호사로 살며 오행자가 아닌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으로, 동생들 학교보내야하는 맞이로서만 살았던 이모는 자신처럼 웃자라버린 유년에 흔들리는 조카가 이제라도 행복하게 제 삶에 기뻐하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고마웠다. 해미곁에서 언니 대신 이모가 그 몫을 해주셔서.


📖P305_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슬픔과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매일 들여다보지 않고, 매일 슬퍼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내 삶에서 지우긴 어렵겠지만 온전히 가득 채워놓아서는 안된다. 각자가 생각하는 슬픔과 타인이 느끼는 슬픔에 비교하며 강요해서도 안된다. 슬픔은 온전이 개인의 것이니 자기 중심에서만 바라보지 않아야했다. 해미는 어렸던 해나와의 시절에서 지금의 해나와 이야길 하며 그 때를 떠올린다. 슬프지 않은 일은 없다. 다만 받아들이는 방식과 깊이만 있을 뿐. 해나에게 슬픔을 강요하며 원하는 깊이만큼의 아픔을 강요했다면 해미와 해나의 사이는 지금과 같진 않을 것이다.

초반에 읽다보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떠오른다. 파독간호사가 생겨나기 한참 이전에 있던 사진신부는 사탕수수밭에서 종일 일하며 타국에서 자국의 가족을 위해 모든걸 받친 이들의 고된 삶이 가득하다. 시간이 흘러 불려지는 이름과 직업만 바뀔 뿐 파독간호사 역시 나라의 일꾼이라는 좋은 타이틀 아래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는 팍팍한 삶이 켜켜이 쌓여있다.

해미를 통해 보여지는 파독간호사 이모들의 인생에는 헌신도 있지만 자부심도 두텁게 쌓여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모는 대단한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자랑스럽고 말이다.

해미의 삶에선 언니의 부재, 부모의 별거, 도피성 유학, 거기서 만난 파독이모들이 이야기, 새로운 친구들과 환경, 이별을 앞둔 친구의 소원, 친구 엄마의 첫사랑 찾기, 다시 한국으로 복귀, 삼총사의 약속 외면, 그 후 지금의 해미가 늦게나마 이루려하는 약속,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로한 지금과 우재. 해미의 삶에선 행복하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냈는데 어떻게 행복하게 살겠나 싶은 마음 억누름이 교차한다. 불안한 삶이었고, 멋대로 행복하지 못한 유년이었다. 자신을 억눌렀던 것과 달리 제목처럼 눈부신 안부를 기다렸던 이가 주변에 가득했다. 어른의 해미가 행복하길 바라는 행자이모와 오랜시간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때때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잘 지내고 있길 바라던 레나와 한수. 애틋한 마음을 담아뒀고, 이젠 그 마음을 알은체 해달라며 지긋이 바라봐주는 우재까지. 다들 보채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시간이 걸렸으나 해미가 직접 잘 지내고 있노라며 안부를 건넬 수 있도록 해주어 고마운 마음에 정중히 인사를 보낸다.

..... K.H는 정말 뜻밖이었지 모야. 그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찾기처럼 예상 가능한 인물 일줄 알았는데, 아닌것, 그게 이 책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한 안부였더라.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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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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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추리소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 오랫만에 접하는 한국형 추리소설이다. OTT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길래 궁금해서 찾아봤고, 영상으로 접하기 전에 먼저 글로 만나보기로 했다. 이미 제작은 완료된 상태이고 등장인물도 어느배우가 역을 맡았는지도 모두 공개된 상태. 그래서 예고편은 보지 않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얼굴과 글 속의 등장인물을 매치하여 읽으니 몰입감이 더욱 진했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내 머릿속에서 씬을 만들어내는데, 저자의 글이 몰입하기 딱 좋은 쫀득한 상황들을 만들어주었다 틈틈이 읽으면서 이틀만에 완독하게 하는 능력을 갖게 해주더라.

의사 남편 재현, 행복한 가정과 원만한 가족이 되고자 애쓰는 주부 주란, 사춘기이지만 똑똑하고 잘생긴 인기많은 아들 승재. 남부러울것 없는 가족의 반대편에 서있는 부부가 있다. 제약회사에서 누구보다 인정받고싶었던 윤범. 이혼을 원했으나 원치않은 아이를 임신 후 포기하듯 살던 상은.

결코 겹치는 부분이 없는 이들이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엮이며 서로를 주시한다. 시작은 주란의 주택 화단이다. 마당에서 나는 냄새. 마당에서 시체 냄새로 시작된 의심들. 가장 편해야하며 가장 마음을 놓고 살아야하는 집과 가족을 믿어도 될런지.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가족을 품어도 되는건지, 내 마음도 그러하니 상대도 그렇게 살고있는건지를 의심하며 주란의 공간이 '완벽한 집'이 될 수 있을지를 따라가본다.


📖 이런 의심 속에서 나는 놀랍게도 남편이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남편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사실 상은이라는 여자보다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두려웠다. 어느 것 하나 정돈되지 않은 삶. 나는 그런 삶을 잘 알고 있다. 그 세계가 너무 끔찍했다.

주란은 의심을 하지만 그 의심에 확신이 붙지 않길 바라며 의심한다. 이 모든 평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굳이 왜? 라는 식의 반감도 있어보인다.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직업, 주거환경, 배우자, 자식, 부모의 배경까지 모든게 다 잘 풀린 사람인데 뭐가 부족하고, 뭐가 아쉬워서라는 마음. 그 모든 조건을 아내라는 역할로 함께 공유하는 주란은 남편이 살인자라는 결론보다 그 결론으로 파생되는 환경의 변화가 더 무서움을 내비친다. 상은과 비교하며 자칫 잘못하다간 주란도 상은의 처지로 하락하게 될까봐 무서운 것이다. 배우자가 살인자라는 결론보다, 살인자 배우자로 각인되어 조건을 포기하고 반납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끔찍한 것이다. 주란은 그런 사람이다. 신분 변화를 위해 사랑을 앞세운 조건의 결혼으로 지금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남들과는 조금 다른 두려움의 포인트가 있었다.

상은의 입장은 살인을 계획했으나 그가 자살로 결론지어지면 안된다. 목숨의 값으로 남겨진 보험금을 받아내어야만 자신도 살고 아이도 산다. 이미 죽은 남편이다. 재호가 윤범을 죽였다는 정황을 만들어야한다. 이혼을 원할 만큼, 수면제를 타서 먹일만큼 증오했던 사람이었다. 거기서 끝나도록 2억을 손에 쥐는게 목적인 상은이다. 그것마저 받지 못하고 그가 남긴 빚만 떠안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원망하며 살아야하는 삶이다. 상은은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뱃속의 아이 때문이라도, 분홍 휴대폰의 일면식도 없는 아이 때문이라도 부러울만큼 반듯하고 예쁘게 짜여진 곳의 인형같은 주란이 필요했다.

껍데기만 다를 뿐 주란이나 상은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서로 끔찍한 삶인거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여야만 할 만큼의 이유가 분명한 삶 들이다.




📖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상은이 주란에게 할 법한 이야기를 되려 주란이 상은에게 하고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놓은 성이 무너진건 주란이다. 절망과 삶의 포기의 수순으로 갈 나약한 주란인데 제법 꼿꼿하다. 남편의 배경과 남편이 꾸려놓은 그럴사한 곳에 짜맞춘듯 살던 주란 역시 쉬워보이는 삶에서 쉽지않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자신의 풍족하지 못한 지난날이 들킬새라 그렇게 살아왔다. 행복한 삶을 기대하며 얻어지는 당연한 불행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들에 대해 이전보다 덜 예민하고 무던하게 받아들이며 이 또한 넘어야하는 삶의 불행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불행에 해탈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남편과 평온한 삶을 위해 어린시절 삶이 미리 불행했던 것이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바라며 자신을 끼워맞추느라 본인의 삶에 불행을 얹어 쥐고 있었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구덩이에서 아이와 자신을 끄집어내기위해 가장 최고조의 불행을 겪어낸것이겠지. 하나를 얻고자 하면 하나는 포기해야하며 때때로 불행도 감수해야하는 삶에 주란은 무뎌지고 있었다. 감수할만큼 남들이보기에 부러운 가족이었고, 예뻐보이는 가정이었다. 일단 그 가정이 어그러졌다. 주란에게 안온한 집의 정의가 바뀌었을까?

덧붙이기)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승재가 했다고 안 믿겨질까? 승재의 이야기가 4명에 비해 약하기도 했으나 재현의 말들을 믿지 못해서인지, 모든 일들이 재현의 손을 거친 작품이니 시작도 승재가 아니라 재현일꺼라는 의구심을 품어본다. 10년이 넘도록 재현은 주란을 만들었다. 사랑하기보단 만들어 앉혀놓은 사람이다. 재현 아니면 안되는 사람으로, 재현이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온순과 나약함을 얹어 순종적인 사람으로 구슬려 만든 사랑을 빙자한 세뇌의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승재가 학교에서 벌인 일이 사건의 시발점이라 하기엔 불씨가 약하다. 재현이라는 사람이 생각 보다 더 많이 무섭고 대단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가 원하는 이 가정의 끝은 무엇이었을지를 그려본다.

오랫만에 찾아본 미스터리문학이다. 요런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머릿속에 잔상이 제법 오래 남기 때문이다. 공포물을 아예 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잡념이 많은 인간이라 그걸 지워내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글로만 보아도 영상이 그려지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또 때로는 너무 그럴듯한 풍경이 보이는 듯 했다. 오죽하면 회사 잔디에도 손가락이 있는건 아니겠지 싶은 생각에 피곤하기까지 하다. OTT로 전편이 공개되면 다 찾아볼지는 모르겠으나 저자의 글 만으로도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없이 딱 떨어지는 반듯한 스릴러를 맛본걸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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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틀 케이스릴러
주영하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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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만들어진 원작 소설이나 웹툰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가 많다. 앞서 완독 후 기록했던 '마당이 있는 집'도 그러하고, 뒤이어 읽었던 '알래스카 한의원'은 곧 대중에게 선보인다고 했다.(완독은 진즉 했는데 아직 글을 못 올렸네) ENA와 TVING을 통해 한창 극에 달아있는 드라마. 이달 말 즈음 완결이 날 텐데, 원작관 어떠한 차별점을 보일지. 드라마의 끝은 소설의 끝과 닿아있을지를 주목해본다.

일단 드라마는 안 봤다. 인물관계도만 보았을뿐 클립영상도 안 보고 꾹꾹 참고 완독했다. 영어유치원 학부모로 나오는 여자들 캐릭터들과 배역을 맡은 배우가 찰떡으로 잘 어울린다.(외모기준) 특히나 송정아, 김나영이 그러하다. 장미호에게 집착을 하는 엄마역의 임강숙도 어찌나 매치가 잘 되는지 인물에 빠져들어 읽기 딱 좋은 조건이다. 소재 또한 SNS의 행복배틀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요소였다. 어떤이는 시간의 낭비라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벌이의 수단이며, 또 어떤 이는 과시와 자기만족의 무대가 되는 곳. 그래서 좋은데 무섭고, 행복한데 화가나기도 하는 그 공간에서 무엇이 그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는지를 보면 책속이나 현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들었던 휴대폰의 SNS 어플이 무서워진다.


미호는 오랫만에 그 이름을 대면했다. 오유진. 장미호는 업무를 통해 학창시절 절친이었다가 지금은 남처럼 살고있는 이의 이름을 떠올린다. 현재를 사는 오유진에게 연락하며 사연 채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는데 뜻밖의 일이 생긴다. 살인사건이다. 강남 부촌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에서 끔찍한 일을 마주한다. 남편은 등에 칼이 꽂혔으나 가까스로 살았고, 아내는 베란다 난간에 배를 걸치고 사망한다. 아내 오유진 사망 사건이 17년 절연한 친구 장미호는 우연히 접한 그녀의 이름과 사건에 집착을 하게된다. 17년전 떨치지 못한 죄책감과 미련으로 장미호는 오유진의 흔적을 뒤적이며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는지를 케기 시작한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자식들로 인해 친목을 다진 엄마들. 모자랄것도 부러울것도 없는 그녀들은 SNS를 무대삼아 행복배틀을 한다. 자기가 더 잘났고, 자기가 더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고픈 과시욕과 우월감을 위해 상대를 뭉개버리는 독한 말과 그 글을 적는 손. 평범치 않은 죽음. 과거의 오유진을 아는 장미호는 유진이 밝히려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며 과거의 오유진에게 용서를 하려한다. 그래서 밝히려 한게 뭔데....?


📖 더 행복해질 필요도 없어요.

... ... .

남의 행복을 부수면 되거든요.

제일 잔인했던 한마디. 나의 행복보다 남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빠르다고 여기는 말에서 일말의 죄책감이란 걸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더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없고, 타인을 짓이기는 것에만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니 행복배틀이라는 걸 했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SNS를 하다보면 이걸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해짐을 느낀다. 모두가 잘나고 잘사는 것에만 집중하여 게시하다보니 '나'라는 존재를 그 짤막한 문장과 해시테크, 몇 안되는 사진에 비교하게된다. 프레임 너머의 삶과 다 채워놓지 못한 글은 내 삶과 별반 다를게 없을텐데 나는 안되는데, 쟤는 왜 그게 될까 싶어하는 비교와 자괴감은 피로감을 가득 안긴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내 글은 안 올리고, 타인의 것만 후루룩 넘긴 채 하트 누르는 것도 주저하게된다. 남의 행복을 부러워 하는 것도, 남의 행복에 하트 하나를 더 늘려주는 것도 모두 안하며 쟤는 저리 사나보다 싶어하는 무던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보니 이들이라면 말과 글로서 충분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겠구나 싶어졌다.


📖 자기 행복에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확인받고 증명 받고 싶어 한 거지. 자존감이 낮았을거야, 자기 확신도 없었을 거고.

그러게. 행복 같은 건 실체가 없는 건데.

확신이 없었던 것 보다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은 아닐까? 자신은 이 행복에 길들여져있다보니 잘 살고 있는 건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하니 외부로 오는 강한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며, 그 지속성에 도취하는 과정이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편하지만 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순 없을테지.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좋아요와 부러움의 짤막한 문장 한줄에 도취한 부류였다.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이들이 보기엔 저게 뭐라고 라는 식으로 어이없는 꼴이겠지만 저들이 사는 방식에선 저렇게라도 관심받고 주목받는것이 중요했나보다.

생경한 단어의조합이었다. 행복과 배틀이 이렇게 바로 옆에 서로를 붙여 놓을 수 있는 단어가 되기도 하는구나. 행복을 배틀로 삼을 만큼 사는 것이 평온한 집단의 에피소드였다. 시대를 반영한 듯 보여지는 주제와 언젠가부터 자주 등장하는 그들만의 세상살이 이야기다. 배경좋고, 돈 걱정 없고, 사는 것이 평온하고 지루해서 이러한 것들로 배틀이랍시고 하트 갯수와 댓글 몇문장에 희비가 갈리는 꼴. 모습보다는 꼴이라는 명사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미호는 왜 그리도 유진의 죽음에 집착하는 것인지. 17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만난 동창의 죽음인데 본인 목숨까지 내어놓을만큼 위험을 감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흐름이었다. 이 친구들이 웃으며 안녕을 하지 못했으나 17년의 세월이 친구의 죽음을 통해 그간 들여다보지 않고 안부를 묻지 못해 죄책감 어린 행보라 하기엔 과하게 집착하고 대책없이 들이댄다. 물론 미호 모친이 했던 말에서 자신의 잘못이 아예 없는건 아니니 사죄의 마음이라고 친다 해도 내 기준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의문과 과한 설정은 3부 후반에 세경이 미호에게 한번 더 오유진의 죽음을 언급하며 이해를 가능케 했다. "우리 친구 유진인 17년 전에 죽었어."라는 문장으로 17년 전의 유진이도 억울함을 품은 채 자살을 했음을 독자에게 흘려주었다.

미호는 태어난 연도도 이름도 동일한 오유진에게서 슬퍼하고 애도할 만한 기회을 얻어 케묻고, 제 손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다. 제 상처도 덮고, 이미 죽은 유진의 상처도 같이 덮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호의 뒤늦은 반성에 우리는 속절없이 끌려왔다. 그 오유진이 저 오유진이 아닌걸 가장 먼저 알았음에도 지켜보고만 있던 세경은 미호를 뭐라 생각했을까?

17년 전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게 타인에게 상처가 되든말든 상관하지 않고 제 속만 차리는 모습. 어른들은 원래 그렇겠거니 하며 자라난 이들은 성인이 된 후 자기 또래에게도 그 시절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기심을 품고있음을 볼 수 있었다. 행복과 배틀이라는 예쁘고 섬뜩한 단어 조합을 앞세워 내 행복을 위해 타인의 평온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도 된다는 정당방위인척 하는 낯짝에서 과연 행복을 내세워야 하는 것이 맞는지, 나와 내 울타리 안에서만 즐겁고 기쁘면 안되는 것인지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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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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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세이들을 많이 읽어봤지만 처음 만나는 저자의 이름이다. 이항규는 정말 나와 다른 삶의 목표를 갖고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다문화 청소년과 탈북 이주민, 결혼 이주 여성을 돕는 활동가이자 연구자. 재영 어린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교육자, 소수자의 소외 문제와 연대의 의미를 탐색하는 저술가. 이향규를 일컫어 말하는 문장에는 내가 공감하고 함께하는 지점이 하나도 없었다. 언론을 통해 접하기만 했고, 탄식은 했으나 공감보다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더 컸던 저자의 삶이라 과연 내가 이 책에서 감정 이입 될 부분이 있긴 할까 의심을 가지며 책을 보게만들었다. 저자의 전작 '후아유'도 읽지 않았고, 최근에 출간된 이 책으로 먼저 대면해도 되는건가 싶어하며 의심과 호기심을 둘 다 쥐고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읽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라는 그런 마음으로.




📖 위로 음식_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엄마가 차려 준 식탁 앞에 앉은 소년이 된다. 사랑받고 위로받았던 기억이 어른이 된 그를 다시 위로해 준 것이다. 오늘 아침 고사리나물, 미역국, 김치가 나를 위로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소울푸드라는 말 보다 위로의 음식. 아플 때 생각나는 그거! 라는 게 더 어울릴 듯한 것들이 있다. 가령 나에겐 엄마가 밥통으로 해주셨던 노오랗고 달큰한 카스테라라던가 친구들과 가정시간 요리실습을 끝낸 후 다같이 모여 양푼에 비벼먹던 비빔밥이라던가 남편이 집에 있는 것들로만 만드는데도 계속 먹게되는 볶음밥이라던가. 우리에겐 비싸거나 귀한 음식도 기억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으나 사사로운 것들에도 추억과 낭만과 행복이라는 필터로 보정되어 계속 생각이 나곤 하더라.

저자는 타국에서 둘째를 낳고 몸을 추스릴 때, 아이들의 도시락을 챙길 때, 그런 일반적인 순간에도 음식에 대한 아련함이 같이 피어오른다. 먹고사니즘이 바빴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떠오르고, 더 많이 애틋해지나보다. 저자의 아이들도 음식을 통해 엄마를 떠올리고, 아빠를 추억하는 것들이 있어주면 좋겠다. 오래 살진 않았으나 30년 넘게 살아보니 그러한 위로의 음식과 낭만이 가득한 순간은 사는데에 제법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하게되니 지금이라도 하나 만들어보라고 일러주고싶어진다.


📖 빨래_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 예컨대 햇볕과 바람도 빨래를 통해 그 형체를 드러낸다.

바싹 마른 빨래의 감촉과 향은 뜨거운 열기를 품고 단숨에 말려지는 건조기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뽀얀 구름이 하늘에 툭툭 얹어진 날이면 공기의 감촉도 느낄 수 있다. 그늘이 되어 줄 곳이 없는 쨍한 햇살만 비칠 때엔 후끈한 열기만 느껴지다가도 구름에 가리거나 나무덕에 그늘이 생기게 되면 목덜미에 흐르던 땀도 금새 말라가는 순간을 누리게 된다. 이런날 햇살과 바람을 담아두지 못해 아까운 마음을 달래듯 부지런히 몸을 놀려 빨래를 하고 건조대에 축축한 옷가지와 이불을 널어둔다. 가장 촌스러운 색깔의 빨랫집게를 무심하게 툭툭 꼽아놓으면 그것마저도 나름의 멋이 들곤 한다. 저녁밥을 앉혀두고 한숨돌리며 빠작하게 마른 빨래들을 걷어 어깨에 척척 얹어두면 진득했던 햇살의 내음과 유유자적 흐르던 바람의 흔적과 우리집 빨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누냄새까지 켜켜이 쌓여 오늘의 날씨와 시간을 헤프게 쓰진 않았음에 혼자만 느끼는 뿌듯함으로 가득해진다. 나의 빨래는 그렇게 정의하고 기록할 수 있겠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 감성을 전해주고파도 집에 건조기가 없는건지. 왜 그렇게 말려야하는건지를 물을수도 있겠다만 이건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기쁨이라 여기고 반듯하게 개어놓고 싶어진다.


📖 깍두기_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아이들이 놀이할 때 지켰던 '아름다운 규칙'이라고 말하며.

아름다운 규칙이자 외면하기 싫은 아이들의 예쁜 심성으로 만들어진 단어. 집단에서 깍두기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저자는 자신의 능력이 필요로 하는 곳에 자원했고, 그렇게 빈 곳을 채웠다. 그러한 시간들이 채워져 깍두기의 노고를 인정받아 학교라는 집단의 교장이 되기까지를 보면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깍두기의 능력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기존에 형성된 집단과 새로 진입하는 구성원에는 장벽이 있고 이슈가 있겠다. 그럼에도 열심히 맞춰가려한 깍두기와 무조건적인 홀대가 없었기에 가능했음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존재마저도 김치의 한 종류인 깍두기로 명명된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노무 김치가 참....

그리고 나는 이 단어만 보면 언니가 떠오른다. 저자는 잉여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부제로 적어두었지만 나에게 그 단어는 챙기고픈 여린 마음이 겹쳐진다. 4살 터울 자매로 한창 무리지어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4살 어린 유치원도 안 다니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기엔 쉽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몰래 도망가서 놀거나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항상 깍두기를 옆구리에 끼고다녔을 국민학생(언니가 학교를 다닌 시절은 국민학교였다)을 눈앞에 그려보면 장하고 기특하다. 이러한 마음이 자란 어른들이 있었기에 저자도 타국에서 학교 교장까지 할 수 있었던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제목처럼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와 감상이었고, 그러한 삶 속에서 꼭 언급하고픈 '사람'사는 이야기였다. 다문화 청소년과 탈북 이주민, 결혼 이주 여성을 돕는 활동가이자 연구자이며 남편의 투병생활을 돕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지역 아이들의 선생의 몫까지 하며 다양한 경험과 사건들에 마주한 찰나들을 보여주었다. '사물에 대해 쓰려 힜지만'그 사물로 인해 기억나는 저자의 과거 이야기. 사전적 정의와는 다르게 해석되는 저자만의 또 다른 의미들을 보면서 시대가 반영된 새로운 의미를 알게되고, 내가 귀히 여기지 않았던 점들에서도 시선을 맞추는 저자의 눈길에 배울점이 그득해 보였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또 한 켠으로는 연대하며 의지하고 으쌰으쌰 하는 기운을 북돋워 줄 수 있는 존재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내일의 나에겐 어떤 사물과 단어들이 잘 살고, 잘 늙어 갈 수 있도록 지지해줄지를 생각해보면 이 세상엔 버릴게 없고, 외면할 것도 없다고 단언하고 싶어진다.


📖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기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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