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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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단어들이 많았다. 김해, 물류센터, 외국인노동자, 가야 고분군.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명칭과 그 곳을 나타내는 단어들. 그 익숙함에 젖어들어 더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친근한 단어와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있나보다. 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누운 배'의 경우는 조선업 종사자인 나의 시선을 붙들어 놓더니, 이번 31회 당선작 또한 실거주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도 문장속에 녹아있던 공간이 눈 앞에 그려져 더 빨리 몰입하게했고, 더 깊이 집중하게 만들었다.

경남 김해에 있는 물류센터와 고대 가야 고분군을 배경으로 현대와 과거를 한 공간에 배치시켜두었다. 그리고 잠을 잊고 살아야 돈이 되는 노동자와 잠을 자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의 자동화 시스템. 거기에 손발이 붙들린 노동자들. 결국 잠과 감정이 소실되고 사는 의미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면서 인간또한 스마트 물류센터의 시스템 일부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목도하며 이게 옳은 것인지 매 문장마다 자문하게 만든다. 기업과 고용의 측면에서는 효율과 이윤 추구에 목적을 두는 것, 근로자의 측면에서는 자신을 자동화 시스템에 얹어두며 모든 작업과정과 업무시간이 수익으로 환산되는 당연한 노동의 원칙을 일러둔다. 근로자의 입장에선 더 많은 부를 필요로 한다면 잠을 줄여야했고 먹는 시간도 아깝게 여기며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아낌없이 내어드리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하고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국적에 구분을 두는 이유는 빨리 돈을 모아 자국으로 갈 생각뿐인 이들을 한발짝 떨어진 채로 삶의 패턴과 타국의 주거환경까지 주시하게 만든다.

예전엔 분명 기계화 시대라 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자동화 시대라 일컫었으며, 이제는 AI 시대라고 말하는 세상에 우리는 기계 아닌 사람으로서 존재하고있다. 언제까지 이 입지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AI도 사람이 구현했다 한들 사람의 영역을 넘어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이놈들은 사람 없이도 입력값에 생명을 얻어 무한한 작업성을 영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이제 확신의 단계로 넘어 선 듯 하다.

김해라는 이 동네는 참 많은 단면성을 보유하고있다. 여전히 농업이 주된 생업인 구역도 있지만 산업단지도 신도시 주거단지 못지 않게 크게 이뤄져있다. 늦은밤 산업도로를 달리고 있으면 흰 불빛을 뿜어내는 물류센터들. 그 초입엔 또아리 틀듯 돌고돌며 올라가는 트럭 행렬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쿠팡이든 컬리든 없는게 없다. 생업 물류뿐만 아니라 인근의 항만으로 연결된 곳으로 이동하는 컨테이너, 윙바디, 대형트럭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출근을 하고 있으면 노란 통근버스와 고속버스들이 끝차선에 쪼롬히 줄지어 '동네이름-쿠팡센터', '동네이름-컬리센터', '동네이름-산업단지'를 오가며 근로자를 싣어 나르는 사람들.(나는 자차 운전일 뿐 똑같이 산업단지로 출근을 하는 근로자이다) 하나같이 지친 낯빛과 축 늘어진 육신. 통근버스는 구역마다 모여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데 모아둔 부품을 싣어 옮기는 듯 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주간근로라면 양반이지. 야간 근로는 수당도 세고 각각의 센터의 특성에 따라 온도나 무게, 부피에 따라 작업의 강도 또한 다르니 알바 어플이나 당근 어플의 고용 후기를 보면 유네스코로 지정된 가야 고분군을 덮어둔 푸르른 들판과 사뭇 다른 무색의 세상이 바로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는 이질감을 저자 또한 느끼고 있었기에 이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를 가늠하게 한다.

여기에 도망치듯 오게 되었던 재일은, 강남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다 실패 후 빚을 져서 여기 이곳, 김해로 숨어든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물류센터 야간 구급대원으로 취직. 거기서 마주한 낯설고도 취약한 주거와 근로 환경. 교대 없이 근무하는 노동자들. 잠과 휴식을 돈으로 맞바꾸며 스스로를 갉아먹어 벌이에 자신을 태워내는 행태. 의사인 재일은 인간이라면 자의로 긴 시간동안 유지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감염과 전파 과정을 쫓으며 인간으로서의 안쓰러움과 함께 이렇게 변해가는 인체의 과정을 기반한 혈청 개발 수익 증진에 눈을 돌린다. 육안으로도 구별이 가능한 감염상태와 신체의 변화를 보이는 물류센터 구역 근로자와 달리 같은 구역에 있으면서도 이들과 다른 패턴을 보이는 로봇 수리공 수아와 함께 공조와 대립을 겪으면서 AI 관제 시스템 아르고스를 멈추어야 근로자들이 살 수 있을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AI를 이겨먹을 것인지, AI에 영원히 휘둘려 시스템 일부가 될 것인지에 대한 작업에 가담여부는 문장을 따라 밤낮 가리지 않고 작업할 그들을 따라 다니며 그들의 최종 선택을 가늠해본다.

📖아니,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몸이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뇌가 잠을 요구하지 않으니, 일이 즐거운 것이다. 일만 남은 인간. 일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간.

일 하는 것, 돈을 버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그들은 전부 타국에서 왔기에 돈 벌이라는 뚜렷한 목적만 가지고 왔으니 다른 여가 활동이나 생계 이외의 수단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손에 쥐어지는 돈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도파민 터지듯 더 빠른 목표치 도달에 정신이 팔려 다른 자극을 모두 무시한 결과로 보였다. 이는 아르고스의 영향과 함께 육신이 스스로 잠을 쫓았다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보여졌다. 생각해보면 외국인 노동자여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빠른 부의 축적이 수반된다면 다 같이 눈꺼풀 없이 사는 사람처럼 잠을 잊고 살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했다. 우린 다 그렇게 성공과 목표 도달에 목이 마른 자들이니까.

📖잠을 못 자니까 꿈도 못 꾸잖아요. 꿈이 없으면 안에 있는 것들이 갈 곳이 없어요. 감정이든 기억이든 뭐든. 통로가 막혀버린 거예요.

잠과 꿈. 이는 낭만의 상징처럼 표현되기도 했고, 여유와 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기계와 인간이 다른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둘 수 있는 항목. 한 템포 쉬어가는 의미인 잠. 그래서 내일을 위한 에너지 비축이자 일과를 마치고 하루가 끝나는 의미로 보여지는 잠과 꿈의 연계. 쉼 없이 돌아가는 AI와 기기들 사이에서 쉼표가 필요한 존재인 인간이 생산성 중심의 성과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를 가졌다는 핸디캡. 그럼에도 너는 자야겠니? 라는 압박이기도 한 잠과 꿈. 역시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건 늘 약자의 몫이다.


📖AI가 스스로 학습한 것이다. 수면을 억제하면 노동 시간이 늘고, 물동량이 증가한다는 상관관계를 관찰하고, 강화하고, 자동화한 것이다. AI에게 의도는 없었다. 악의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게 최대의 효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 도출이 우선시되는 지표에서 노동자는 그저 이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일뿐이라는 것인데 이 또한 인간이 구현해냈고, 인간이 최대치의 성과만을 기대하고 있기에 만들어진 구조였다. 사람이 없었다면 AI 구현 또한 없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래선 안된다고 볼멘소리를 하게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격차가 더 커질 결과물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자동화에 손을 들게 될 것이다.

의도와 악의가 없는 그저 도출된 결과로 보여지는 성과. 그러하다보니 배제하고픈 항목이 되어지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인간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인간은 모든 면에서 우위가 아니며, 사회 필요 충분의 요소 순위에서 하락하고 있음음 보인다.


효율성을 따지는 삶. 최대치의 목표값 달성이 최고의 실적이라 여기는 것. 인간답게 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시 여기게되는 결과물. 어느 시점부터 당연하게 내재화된 자본주의의 괴물성이라 일컫지만 이래야만 도태되지 않으니 유난함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세상의 변화됨을 받아들이게된다.

퇴근이 없는 삶. 매 순간마다 목표치를 달성해야만 다음을 기약 할 수 있는 입지까지. 저자는 만성화된 자기 착취적 노동이라 말했다. 강요는 없었으나 세상이 그걸 바랬고, 으레 그리 살아야된다 여기게 만들었다. 이 또한 AI가 기대한 삶의 구조였을까? 인간은 안할 뿐 못하지 않는다는 성향을 기저에 깔아두고 있다보니 사람답게 사는 방식 빼곤 다 해내는 존재로 발전 해 온 듯 하다. 소위 말하는 의식주. 입고,먹고,자고. 사람답게 라는 말의 의미를 챙겨보자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린 그걸 제일 못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내가 필요로 하다면 우리 서로 타협이라는 걸 하며 길게 보자는 거다. D구역 아르고스를 잠재웠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 처럼, 우리는 또 다른 구역으로 눈을 돌려 일자리를 찾고, 나를 필요로 하는 데를 기웃거리는 수아처럼 살아낼 것이다. 우린 죽을 때 까지 일할 생각이니 먼 곳을 주시하며 서로를 살펴주길 바라게된다. 기계 너도 그렇고 인간 나도 그렇고 우리 그렇게 각자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지내보자며 어르고 달래고싶어진다.

📖한겨레 출판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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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부부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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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은 없더라도 무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꾸리는 황보름 저자의 책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즐겁게 읽었던 독자라면 분명 '윗집 부부'또한 훌렁훌렁 잘 넘어갈 페이지로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대신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거나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갈등과 서사를 찾아내며 이야기를 가늠하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심심하거나 맹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푸욱 빠져있다가 머리 쥐어짜며 읽지 않아도 되는 담백함을 찾던 나로서는 맛있게 읽어 삼킨 이야기들이었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야기 이지만 인물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볼법한 사람들로 꾸려져있어 정말 윗집 부부 같고 아랫집 아저씨 아줌마 같았다. 때로는 나의 아버지가 오경직을 닮아있는 듯 보였고, 봄&가을 부부가 우리부부는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말 생활 밀착형 소설로 내 세상을 옮겨 놓은 듯 해서 더욱 공감하게 만들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 옛말은 지금 세상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한 어르신의 편견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마을 안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한 세상을 꾸리기 위해 온 마을과 이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나만 힘든게 아니었고, 나만 유난스러운게 아니었음을 서로 알아주며 맞춰가는 방식. 그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우리가 알지 못하던 세계가 분명 존재했음을. 그래서 그 세상이 잘 돌아가기 위해 우린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며 살아가는 방식을 매번 깨우쳐야함을 보여주는 글이니 책 바깥의 세상을 사는 독자들이여 우리 그렇게 서로 이해라는걸 해 봅시다를 다정하게 알려줬다.


📖턱걸이와 철봉 매달리기 모두 결국엔 추락이란 결과를 맞는 일이었다. 봄은 구조조정 대상자가 됐을 때 자신은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래전부터 다리와 겨드랑이까지 걸고 버티다 떨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살고 있던 것이라고.

청소년 시절의 나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드라마에서 볼 법한 출근룩에 팔짱끼고 사선으로 서서 찍은 프로필사진이 들어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일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한 사람보다 더 많은 수고로움을 겪어내는 사람들이 꾸린 사회였다. 계약만료와 재계약, 기존 직무 연장과 정규직 전환. 매 분기마다 파리목숨이라 봐야할지 하루살이같은 삶이라 여겨야 하나 싶은 세상도 있었으나 몰랐을 뿐이었다. 봄 또한 그랬고, 가을 또한 그런 삶을 살아내는 일반인이었다. 그들은 이게 턱걸이의 삶이라 말했다. 매번 끝자락에 어딘가에 소속은 될 지라도, 떨어져 나갈 때에는 일등이 되어버리는 순위 역행자. 그러니 자신의 삶의 행운 여부까지 운운하게 만든다. 옛날엔 평생 직장도 있었다지? 그런데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 사람도 힘들었을꺼라며, 우리 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고단했을거라고 생각을 달리하게 만드는 말들. 무조건적인 위로 보단, 봄의 세상만 유독 힘든게 아닐거라며 동경하는 세상도 결국 사람 사는 동네 이야기라며 자기만의 동굴을 파고들지 않길 바라는 가을의 말에 나도 힘을 얻게 했다.

난 사람보단 든 사람이 더 귀하다는 말. 그동안 더 열심히 하지 않고 뭐했냐는 채근보다 이러한 공감이 힘이 되는 순간도 있다.

📖삶은 거창한 대의나 신념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작은 필요에도 삶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손이 필요할 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선지는 정말 모를까.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분명 잘 알고 있을 선지가 말했다.

가족이라고,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모든걸 터 놓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정이 딸과 아들에게 소소한 것을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딸도 아닌 어린 잎새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당신의 삶이 그러했다고 당신의 자식 또한 그러길 바라며 아들에게 둘째 출산을 종용하거나 딸에게 결혼은 무조건적인 삶의 관례라고 하지만 그 시대의 의무가 지금의 시대엔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자식에겐 허용이 안 되지만 한 발짝 떨어져보니 대해가 자신의 아버지와 겪는 갈등 봄&가을 부부가 생각하는 미래가 유난이 아닐수도 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경직은 벽보고 말하듯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외골수까지는 아니라서 말이다. 여전히 이해 안된다는 생각은 존재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수 밖에 없음을 인지는하고 있으시니 감사하게 느껴졌다.(끼인 세대라 할 수 있는 내 또래는 알꺼다. 내 윗세대를 이해시키는 것과 내 아랫세대들 공감해야 살 수 있는데 매번 반복 주입식 설명을 해도 도돌이표인 경우가 허다하거든)


📖봄은 항구가 퉁명스럽게 해주는 말들이 좋았다.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이전 세대의 아버지들이 딸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꾸중을 듣는 듯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항구의 말은 봄의 생각과 맞닿는 부분이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듣고 나면 마음에 새기고 싶곤 했다. 항구와 얘기할 때면 경험에 밀착된 말이 지닌 힘을 느꼈다. 허황되거나 공허하지 않아서,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사장님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우리가 어르신들을 공경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들이 살아온 세월의 배움은 우리가 겪어내지 못한 생생한 현장의 습득이기에 더욱 귀하고 값지다. 항구는 손아래 사람이라고 무조건 훈계하는 식의 대화가 아니었다. 한참을 주시하고 있다가 필요 할 때 툭툭. 일단 기다려줬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을테니 바라보다가 헤매고 있을 지점에 왔을 때 툭툭, 다음 방향을 갈 수 있도록 그 앞에 표지판을 심어주었다. 무조건 당신의 말에 따라 오라 손목 쥐고 당기는 방식이 아니었다. 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가는 건 또 스스로 해보라고 바라만 봐 주는 것. 그게 경직과 다른 항구만의 방식이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던가. 한 발 두 발 걸음마를 시작 할 때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든 비틀거리다 손바닥을 잘못 짚어 쓸리든 일단 내 딛는 것 부터 해봐야 했고 그 다음 손도 잡아줬고, 저 멀리서 이 쪽으로 오라고 박수 치며 방향을 일러주기까지.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것들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봄은 귀한 경험치를 옆집 사장님이자 건물주, 부동산 계약 소장님인 항구에게 귀동냥하게된다.

📖'세상에 굽지 않은 사람이 없어.'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 같아 위안이 되었다. 자신을 굽은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될 것 같았다. 굽은 나무더러 왜 굽었냐고 묻지 않아도 되듯, 자신에게도 왜 어리석은 망므을 지니게 되었냐고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바람이 얼음처럼 찼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리석은 마음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마음이라 고쳐 알려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을 원하니 그건 당연한 방식이라고. 선지나 가을이 앓는 것은 이른바 마음의 감기였다. 누구나 앓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대호도 직장을 잃고 육아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왔을 수도 있고, 봄이 계약 연장과 식당 운영, 식당 운영하며 임산부로서 모든걸 담당해야하는 부담감에 슬쩍 몸에 들러붙었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해가 아버지와 진로를 두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점점 몸집을 불렸을 수도 있고, 항구도 다시 혼자가 되고 반복되고 특별할 것 없는 세상에 가라앉듯 모든걸 덮어버렸던 때가 있었을 거다. 왔다가 나도 모르게 가버릴 수도 있고, 좀 더 눌러 앉았다가 갈 수도 있는 것. 그래도 언젠가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괜찮아질거라는 건 분명하니 그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에 몸을 맡겨보는 것. 그리고 이해해주고 이해받는 과정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고마워진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세상이 쉽고 만만하다 여기며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하나같이 애쓰고 살았다. 시간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고, 다 안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배워야했고, 노력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나만 그런거 아니다. 다들 그리 산다. 그런 얘기였다.

어느 하나 애틋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경직과 화정은 나의 부모. 대호와 주은은 나의 형제들 같았고, 선지는 내 친구들 같았다. 대해는 여전히 진로와 미래에 고민하는 사무실 동생들의 얼굴과 겹쳤다. 봄과 가을 부부는 우리부부 이야기와 결이 비슷해보였다. 다들 그리 살고 그리 고민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이해와 연대의 과정이 더 고맙게 느껴졌다. 안해주면 그만인 감정의 교류인데 세상이 변하는 것에 받아들이고 모두 나와 같지 않음을 인지하는 점과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내는 존재임을 다양한 연령과 직군, 성별에 따라 얽힌 관계로 또 한번 실감을 하게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던 이전 시대에 비해 이제는 한 어른을 보살피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했고, 결국 한 세상을 꾸리기 위해 서로가 존재함을 인식하는 삶의 긍적적인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머리통 큰 어른부터 한창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이 읽으며 다양한 울림의 교류도 재밌을 삼삼하고 담백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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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충 사육 준수 사항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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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와 크리처물의 대가 답게 여름을 아주 정확히 겨냥한 소재. 그 덕에 내 여름 휴가도 이 빵충에게 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를 재미나게 본 독자로서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했다는 점. 더 새로운 소재가 나올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재미난 이야기는 여전히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기대 할 만 했다.

이미 저자의 이야기는 오피스 괴담 이라는 안전가옥의 또 다른 시리즈로 맛본 상태. 단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찍먹은 해 본 독자이니 이번 이야기도 씹어삼킬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골랐다.

청소년기를 트럼펫에 쏟아부었지만 그게 밥줄이 되진 못한 청년 정한. 무언가 원대한 꿈을 가진게 아니라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청년 농부로 국가 지원받아 새 삶을 살고싶어한 뭣모르는 샌님. 딸기 재배 실패? 그건 뭐 또 다른 사육으로 공백을 메꾸면 되지 싶어 고른 빵충 사육. 소금빵의 형상을 한 식용 애벌레 사육.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빵충 사육 준수 사항. 저자는 제목으로 미리 일러두었다. 사육 준수 사항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어길 시 무엇이 어떻게 될 지는 장담하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허나 주인공은 곧이곧대로 살진 않지. 어딘가 모를 꼼수를, 남들보다 더 쉬운 길을 가고자 하지 않아야 될 곳을 밟게된다. 그 선을 넘을 때 오는 짜릿함? 은 죽고 사느냐의 고단함까지 가져온다는걸 매번 겪어봐야 안다는 걸 마주하게된다. 역시나 이 세상은 사람이 제일 어리석고, 돈이든 욕심이든 눈먼 놈이 제일 무섭고 빨리 죽는다는걸 또 한번 실감하며 정한을 따라다니게 만든다.


📖P191_ 위험은 언제나 매뉴얼로 만들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안전한 범주에 모든 것을 가두고는 스스로 안도한다. 우리가 길들이지 못할 것은 없다는 환상, 우리가 만든 것은 반드시 우리편일 것이라는 기만, 그리고 그 모든 착각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보고 말았다.

다 안다고 생각 했지만 완벽한 건 없었다. 정한이 오래 사귀었던 유진에게 미래를 확신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청소년기를 트럼펫에게 모두 맡겼고 트럼펫도 정한의 일생을 맡아줄거라 했지만 그가 손을 떼는 순간부터 모든건 개별적인 카테고리의 항목이었던 것. 타바콬의 일원이라 생각했지만 그놈의 대마가 아니었다면 같이 손 잡고 갈 이유가 없었던 그들과 정한. 청년 농부로서 새로 온 이방인이지만 같은 땅을 밟고 살기에 한 마을의 이웃이 될 거라 기대하는 착각이 더욱 이방인스러웠던 시작. 빵충으로 인해 이른바 와인패밀리로도 함께 운명 공동체를 이루지만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숨길 건 숨기게되는 동상이몽의 조합. 언제나 완벽한 믿음은 없다. 이 과정은 상황을 달리하여 찾아오지만 결론만은 동일했다. 각자도생.


📖P208_ 위험성이 이미 확인되었는데도 돈 벌어서 빚 갚고 싶으면, 제대로 살고 싶으면, 그냥 모른 척하고 일하라는 그 말이 마치 자기들의 잘못은 하나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모든 부담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거저 주는 사람의 선의는 매번 의심하게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을테니까. 그래서 나 또한 저런 청년 농부 창업지원이 이상했다. 진짜 농업이라곤 1도 모르는 이들을 모아두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지원해준다? 세상을 못미덥게 살아와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작부터가 의심이었고 불안으로 바라보게했다. 없던 것을 새로 내어 놓으며 그 불안함까지 잠식 시켜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 정부가 아무리 미래 식량으로 사육 사업을 보장한다 했으나 그게 왜 하필 이 조합인가 하며 계속 물음표를 갖게 했다. 설마는 역시를 낳았다. 탐욕은 볼온한 현실을 훨씬 당겨두었고 그 틈새 마다 각각의 인물들이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변명처럼 담아놓았다. 혹, 저자는 이런 생각을 제일 상위에 올려두고 적은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벌레같은 인간이 벌레이지만 아닌척 하는 음식을 만들어 팔아제끼는 세상. 그러니까 벌레가 판을 치는 시대.

기괴한데, 또 그렇다고 낯설지는 않았다. 소설같은 인생, 영화같은 세상이 아니라 정말 사람 사는 세상에 크리처물 한방울 떨어뜨려놓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합의한 사항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거리낌없이 불이행 하는 면, 자신을 기준으로하여 사람을 줄세우기하여 어떤 이는 낮춰보거나 함부로 해도 된다고 인식하며 하대하는 점은 지금 문 밖에서 모든걸 먹어치우는 빵충이나 자신을 제외하곤 모든걸 나몰라라 하며 규율을 어기는 인간들이나 외형만 다를 뿐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48시간 이전을 알리는 문장부터 살짝 김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한 청년의 인생 굴곡사? 청년 농부의 눈물나는 농업일지? 대마도 키워보고 딸기도 키워보고 빵충도 키워봤지만 다 헛수고다? 생육하는 것들의 잘못은 다 내탓이요, 사람이 저리 삐뚤어지는 건 누굴 탓하리오? 모든 것들의 사육에는 준수사항을 지킬 것. 인간도 예외없음을 명시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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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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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저자의 이야기이기도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했다. 소설은 이지수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촘촘한 시간을 풀어내는 것은 안시찬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사흘간의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사흘간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20여년간 살아온 부부라는 관계성과 각각의 개인적인 성향, 주변 가족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방식은 그 일이 벌어진다 한들 갑작스럽게 변하진 않았다. 지수와 시찬의 시간이 어그러진다 한들 사회속에서 수행해오던 각자의 역할과 약속들은 여전히 이행되어야했다. 익숙했던 세상이 무너졌으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해야하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그게 뭔 대수냐 싶은 타인들의 시간. 소설은 사흘이지만 저자가 남겨둔 글에는 이후의 시간을 독자가 가늠하도록 만들었다. 희망적이든 비관적이든 이어질 내용은 그렇게 독자에게 맡겨졌다.

인터넷 서점의 카드 문구가 사람을 잡아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동안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서성이는 한 남자의 3일.

그리고, 책 표지는 동이 트기 전 같은 짙은 푸름과 진한 고요를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 놓여진 섬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남자의 뒷모습.


이 책을 도착한 그날 밤 반절을 읽었고, 다음날 사무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찬과 지수의 시간을 먹어 삼켰다. 외면 할 수 없는 글이었다. 나도 그리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삶이니까. 삶이란 매번 뒷통수를 후려치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 태반이니까. 그래서 읽던 책들을 모조리 외면하고 읽어내었다. 편집장의 소개글을 보며 이러다 눈물 광광 쏟아내며 책장 넘기고 있는거 아닌가 걱정했지만 눈물이 안 났다. 시찬이 우는 만큼 나 또한 시찬에게 이입되어 감정을 꾹꾹 눌러도 넘칠거라 생각했는데 미간에 힘만 들어가고, 어금니만 더 세게 깨물게했다. 울어봤자 소용없어의 마음도, 운다고 달라질게 없다는 마음도 아니다. 시찬에게 헛된 기대보다 확실한 팩트 전달과 이후의 방향성을 먼저 제시해주고싶었다. 감성에 젖어드는건 시찬의 몫이고, 나는 그가 덜 헤매도록 확실한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고픈 마음이 컸다. 지수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내기도 벅찰테니 다른데에 신경쓰고 마음쓰는 일을 덜어주고픈 것이 내 감정을 꽉 움켜쥐게 했다. 굳이 나의 눈물까지 보태지 않겠노라 싶은 생각으로 사흘을 같이 버텼다.

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글의 안시찬은 장강명이기도 했고, 또 장강명이 아니기도 했다. 아내가 아픈것은 맞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각각의 요소들이 재편되었고 일부의 이야기는 좀 더 극대화되어 예민한 구석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비슷한 감정과 비슷한 슬픔이 서려있는 것은 동일해보였다. 그렇게 시찬은 지수의 곁에서 '서성이다' 와 머물기를 반복 할 것이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믿을 구석을 찾기보단 내가 의지되어야하는 버팀목의 주체가 되어야함을 자각한다.(서로의 보호자인 부부 둘,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은 한 다리 건너의 가족, 업무와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은 더 먼 방관자의 존재이니 바짓가랑이 잡으며 징징거릴 여력이 없다) 더욱 예민해지고 무감한 상태로 타인들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몇몇 보인다. 그건 시찬의 성향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의지이기도하다. 그러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 인사를 할 때 터져버리는 눈물샘과 꺼이꺼이 울게되는 서러움. 하루 전만 해도 깔깔거리고 쫑알거리던 사람이 남편의 이름을 헷갈리고 날짜의 개념도 모호해지며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걸 볼 때 오는 두려움. 시찬이 유난스럽거나 변덕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는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보호자로서의 단단함과 물러터져버리는 슬픔이 공존함을 단 시간 내에 보여주고 있었다.

오죽하면 결혼 할 때에 아내를 마뜩잖아하던 어머니에게까지 전화하며 위로를 기대했고, 어디있는지 모를 신에게 기대는 마음은 간곡함만 가득할 뿐이다. 누군가에겐 찰나의 시간이겠지만 시찬에게는 억겁의 슬픔이 밀려온 날이었다.

현실을 살다가 이따금 그간의 세월을 톺아보며 지수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당장의 처리해야하는 행정 업무까지도 모조리 그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편하게 살아왔던 무관함에 자책하며 아내 없이 살 수 없는 껍데기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자책이라도 해야 지금의 불안함을 덮을 수 있을 듯한 상태. 자신을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환자의 가장 최측근이자 제1보호자로서의 다면화된 감정의 상태임을 느끼게했다.

아내는 병원에 누워만 있는데, 자신은 잠을 자야했고, 예정된 스케줄에 맞춰 일상을 살아야했으며, 뜨거운 커피로 정신차리려는 행태. 아픈데도 몸이 이상한데도 토한 이불을 치우려 했던 그녀는 왜 도와달라 하지 않았는지를 매 순간마다 떠올리며 시찬은 자신을 찔러댄다. 이건 상대를 못 믿어서가 아님을 안다. 괜한 걱정을 끼칠까봐 미안한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 괜한 수고로움을 하지 않고 평안하길 바라는 관계에서 이뤄진 것들이겠다. 그래서 지수의 행동이 이해되고, 시찬의 자책도 공감을 한다. 두 경우를 모두 겪어낸 나도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이니까.

하루, 이틀, 사흘. 그 뒤의 이야기는 없다. 그간 지수는 병명이 정해졌고, 수술을 했다. 이후의 경과와 호전의 정도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당장 코 앞으로 닥쳐온 집 매매와 대출건에 대한 진행 과정도 기록되어있지 않다. 전전긍긍했다. 시찬과 같은 상황을 겪어본 이가 있는지 SNS에 문의를 했지만 담당자에게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는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 사흘이 한 주가 끝나는 주말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끼여있는 평범한 시간의 일부였다. 누군가에겐 일상을 정리하고 회복 후 다시 시작될 한 주를 기대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시간임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시찬을 계속 현실로 끌고 와 병동에 머무르게했고, 텅빈 집 그녀의 이불과 헤진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장면에서 일시정지하게했다. 나는 시찬도, 지수의 동생도 아닌데 불안했다.

이래서 오토픽션이 무서운거구나, 이러니 SF소설보다 더 아득하게 만들구나를 느낀다.

나는 남편에게 시찬이 느낄 감정을 워낙 많이 안겨준 사람이라 미리 백기들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모든 감정을 감내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살면서 119에 신고할 일도, 구급차를 탈 일도, 새벽 응급실로 급히 차를 몰게 될 일도, 장모에게 보호자로서 병실에 있도록 부탁하며 자신은 다시 일터로 가야하는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30년 넘게 드라마에서 있을거라 여기던 일을 10여년의 시간동안 나의 남편으로 살면서 다각도로 경험하게 했던 이력은 시찬에게 들켜버린 나의 10년과도 닮아있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이건 한번 맛본 경험치라 다음번엔 의연하게 대처할 거라는 기대를 해선 안된다. 삶은 매번 뒷통수를 맞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또 새로운 억겁의 슬픔으로 미리보기한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삶의 굴곡이기도했다. 삶은 드라마라 했으니까 드라마틱한 극복을 기대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맑은 결말은 없어 더 서글퍼진다.

안 믿던 신을 믿고, 기대 않던 행운을 바라는 것, 그간 그리 살지 않았으니 적어도 한번은 와주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성질도 내어보며 완벽한 이전의 삶으로 되감기는 안 될 지언정 '괜찮아지고있어'라는 말과 희미한 미소라도 보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라 책 표지를 보며 일렁이는 마음을 눌러본다. 지수 곁을 '서성이다' 결국에는 '마주보다'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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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습기 다이어트 위픽
김청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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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소재, 가벼운 길이감, 단숨에 읽어 낸다 하더라도 생각마저 짤막하게 쳐내지 못하게 만드는 문장의 잔상. 그게 제습기 다이어트가 만들어낸 버석함이라 할 수 있겠다. 감상의 습기를 다 빨아먹어버린다 하더라도 건조하고 바스라지게 만들어둔 이 씁쓸한 감정. 손에 뭍어난 이 아쉬운 가루들을 탈탈 털어버리고 싶어도 주름 틈 사이로 끼어버린 감정. 실제로 저자와 어머니가 나눈 문장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였다.

엄마가 주인공 방에 제습기를 틀며 "우리 딸 미라 되면 어떻게 해!"라는 이 농담. 소설은 웃자고 흘린 이야기 한마디가 죽자고 달려드는 세상을 향한 뾰족한 마음이라 말 하고 싶어진다.

연예인보다 마른 그의 몸을 보고 주변에서 너도 나도 예쁘다며 칭찬하지만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미라의 선아를 걱정하진 않는다. 시기와 선망과 함께 푹푹 찔러대는 독설들. 이전의 선아에겐 건강을 우려한 걱정인척 비하를 했고, 현재의 선아에겐 미라 상태의 모습을 사육장 안의 동물들 처럼 눈요깃거리로 하대를 한다. 그들은 어떠한 모습이길 바라길래 비아냥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걸까. 예쁜 몸을 향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에선 타인의 기준을 벗어나 스스로 존중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리 하는 사람은 몇 없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라 한숨쉬며 문장을 따라가게했다. 선아에게 이입이되어 그녀를 바라보는 수십개의 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까지 물고 뜯어댈지 모르는 눈동자들이 식인물고기가 가득한 바닷가에 빠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뚱뚱해본 사람이든 삐쩍 말라본 사람이든 이 세상 살아가면서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요구한적 없는 타인의 시선. 예나 지금이나 변할 일은 없어보이는 과한 오지랖이며 수요없는 공급 같은 것.

가족에게서, 친척에게서, 대학 동기들에게, 나중엔 놀이터의 이름모를 인간에게까지 얻게되는 수치와 모욕의 더블펀치.

지난번엔 곧 터지는게 아닐까 싶어하며 살집있는 외형에 입을 대던 친척은 이제는 미라 상태의 외형을 보더니 수상한 약을 먹은게 아닌지 도통 좋은 쪽으로 봐 줄 생각은 없어보이는 시선과 입에 달려있는 시비.

마른 몸을 갈망하는 시대는 어쩌다 이런 상상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나 싶은데, 이건 사람들이 얽혀 사는 세상에선 절대 없어지지 않을 듯한 아름다움을 향한 등급 나누기로 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단박에 마른 몸,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심장이 뛰는지도 온 몸에 물기가 스미는지도 관심 없는 사람들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는 틔워낼 숨구멍이 필요했고 그걸 눈앞에 보이던 라일락 향기와 씨앗, 묘목으로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은 미라가 아니라 잠자고 있는 씨앗이자 묘목. 오래된 씨앗은 물기가 없어 바싹 말라 살아있는지 당담 할 수 없지만 그 씨앗은 결국 싹을 틔웠으니 자신도 언젠가는 수분을 당겨와 조금씩 틔워낼 무언가의 과정 중 하나 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봄비를 맞고 싱그럽게 잎사귀를 반짝이는 것들 처럼 만물의 모든 이로운 것들만 흡수하며 향기와 온기를 지닐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선아의 진짜 봄은 지금부터라는 식으로 급히 문장을 마무리하며 꽉 닫힌 결말로 후다닥 끝맺었다.


타인이 자신을 향해 불만족한 시선을 내리 깔더라도 자신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겠다 한들 타인이 한번 꽂아놓은 잣대는 도무지 뽑힐 생각이 없고 도리어 쑤셔되는 통에 우리는 마음이 휩쓸리고 아무도 못 보도록 구석으로 웅크리며 숨게된다. 그게 어쩌면 바싹 말라버린 씨앗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돌멩이인지 씨앗인지는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을테고 시선을 맞추고 예쁜 말과 다정한 손길이 간다면 마음의 문을 열듯 숨구멍을 벌려 물을 먹고 세상으로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나를 씨앗이라 보았고, 타인은 나를 돌멩이로 보겠지.

나는 살이 찌든 바싹 마르든 선아였고, 타인은 나를 돼지 아니면 미라로 보는 것 처럼.

다들 라일락 나무를 끌어안고 비를 흠뻑 맞는 선아처럼 살라고 그리하면 살게 될 거라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걸 숨쉬는 동안 매우 뼈져리게 느끼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위로가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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