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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책 표지의 배색이며 문장은 꽤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싶은 듯 한데, 나로서는 '압축 소멸 사회'라는 말에는 이골이 나 있는 상태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많이 들어본 말이다. 지방을 사는 직장인이며, 애를 낳지 않은 부부로서 이 세태에 이바지하고 있음을 알고있긴 하냐는 잔소리를 배부르게 먹어온 사람이다보니 내가 이 세상을 소멸시키는데 선동한 기분마저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 하고 싶은데로 사는 놈이 누구냐 하는 식으로 두눈 시퍼렇게 뜨고 달려와 이 모든 사회적 수순에 어떤 가담을 했는지 턱밑까지 다가와 이유를 채근하는 기분. 지방거주/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평균 이하, 그러니까 수도권에 못 미치는 혜택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고, 그저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탓을 하고 그러한 질타를 받은 국민의 1인으로서 더욱 개선의 의지나 희망적인 방향으로 회로가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느낀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을 했고, 이제는 '압축 소멸'의 수순만 남은 상태. 아니, 벌써 시작되어진 실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하는 뉘앙스는 아니다. 일단 이러한 수순으로 흘러가게 된 이유, 이러한 절망을 부추기는 사회와 방치된 실정, 이어지는 정치의 소멸과정을 3부작으로 이야기하고있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하며 정치복원과 압축 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한다.
더하면 더했고, 생각보다 더 심해질게 눈에 그려지는 벼락 발전 이후의 벼락 소멸 선택의 과정.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건지 일단 들어보고 생각해 볼까 싶어 정말 오랫만에 정치비평칼럼을 꺼내들었다. 쌍심지 안 켤테니 일단 들어보자.
📖지금 여기 사는 청년이 행복해야 하는 이유_ 우리는 '청년은 지역을 떠나고 싶어 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청년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아'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문제다'라는 생각은 쉽게 '그것이 원인이다'라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다시 그 현상 자체를 '문제화'합니다.
매번 정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마음으로 '떠나는 청년을 붙잡자'에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 여기 사는 청년을 행복하게 하자'며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건은 철저하게 배제되어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청년의 삶은 보장되지 않은 채 이미 미련없이 떠난 존재들의 허상만 붙들고 있다. 그런다고 다시 돌아올까? 이미 모든걸 끊어버리고 그들이 우선시 여기는 더 좋은 조건과 혜택을 기대하며 간 사람들인데, 그보다 더한 조건을 제시해도 올까말까한 결정일텐데 논점을 왜 거기에만 놓아두는건지 알 수 없다.
청년의 기준 연령이 올라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원하는 목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보다 당장의 내 삶과 주변의 가족이 더 눈에 들어오는 세대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이 있든 안정화된 경제수단이 있든 나라에서는 관심이 없고, 일단 '결혼해봐 자살할 생각 줄어들거야. 청년들이여 아이 낳으면 집 줄게, 돈 줄테니까 지방 소멸도시에 살아봐. 경제활동? 뭐 차 타고 멀리 나가거나 나라에서 준 돈으로 먹고살면서 생각해봐' 라고 할 때, 좋다고 넙죽 받고 그대로 이행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극히 한국적인 자살률과 출생률_ 지금 한국은 '자살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국가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자살을 말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간혹 저출생,고령화나 지역 소멸에 대응하는 정책이 제안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자살은 단지 의료 분야에 한정된 정신 건강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입니다.
지금 정당에서 정치를 담당하는 연령대는 이해 못할 자살률이다. 그들의 세상은 우리가 겪은 것보다 빠른 성장과 흐름에 인력이 그만큼 모자랐던 시대다.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이른바 기술도 있고, 이 한몸 부지런히 놀리다보면 꼬박꼬박 은행에 적금 넣어 이자불리는 맛도 느끼며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집도 살 수 있을 만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대학 학위는 돈으로 사는 것 마냥 다들 들어가고, 숨만쉬고 일해도 돈 한푼 안쓰고 10년간의 연봉을 다 쏟아부어도 내 이름으로 된 집도 마련하지 못하는 허무하고 서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희망보다 절망이 더 코앞에 있으며, 미래가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노력을 더 해도 나의 윗 세대들이 겪은 만큼의 고도성장이 더는 일어나지 않는 사회이니 과거 방식의 계층 이동을 기대 할 수 없다. 지극히 당연한 자살률의 결과인데 무엇을 탓할까 싶다. 10~30대에서는 우울감을, 40~50대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주된 자살의 이유였다. 성적과 진학에 대한 우울이 시작된 10~20대 부터, 직장에 관한 우울, 40~50대로 넘어가면 얻어지는 경제적 우울과 사회적 우울. 단지 의료분야에 한정되어야만 하는 항목일까? 우울의 시작점은 질병이 아니라 사회임을 인식해야하는데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각자의 사업부에서 이 중대한 문제를 떠앉게 될까 쉬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출생 문제 막을 생각 없는 저출생 정책_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어떤가요? '우리는 저출생에 대해 걱정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이지, 실제로 저출생을 막을 생각은 없다'고.
낳을 사람들은 다 낳게 되어있고, 낳지 않을 사람들은 백날 귀에 인이 박히도록 말을 해도 낳지 않을 이유는 변하지 않는다. 이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내 동료들도 그러한 걸 보면 단지 한두개의 문제로 결부되는건 아닌 듯 하다.
세종의 출생률을 보고 절망했다지? 거주자 중에 맞벌이 공무원에 안정적인 직업비율이 높으며, 학교와 도서관, 공원의 신도시 인프라도 있다보니 아이키우기 좋은 조건. 조건만 부합된다도 이 모든게 맞아떨어지는 인과관계 같은 결혼-출생의 흐름일까. 내 어릴 시절을 기억해보면 그보다 덜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생겨났고 방목하듯 놓아두어도 이른바 알아서 잘 크는 시대였다. 지금은? 출생의 시점부터 경쟁이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엔 자연출산이 가능한 병원도 의사도 없다. 아동병원은 양육자 한명이 밤새 병원앞에서 대기를 해야 겨우 접수를해서 진료가 가능하고, 보육관련 기관도 집근처 어디서든 맡길 수 있는게 아니라 추첨제에 그 또한 여의치 않으면 조부모의 손을 빌리거나 부모 한명의 급여가 온전히 소비되는 시터나 학원 뺑뺑이가 이뤄져야 한다. 시작부터가 매번 극한의 퀘스트다. 이럴거면 모바일게임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게 덜 고난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애 병원 보내거나 징검다리 연휴로 양육자는 회사출근이고 아이는 집에 홀로 남아야 할 때 외출이나 연차는 모든 이들의 눈초리를 받는 사회이며 양쪽의 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간다. 뭔가 씁쓸하고 한숨나오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이렇다.
나는 이 회사를 근무 할 때 결혼을 했고, 꽉 채운 10년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고있다. 내가 결혼 한 이후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은 사람은 둘? 그마저도 여직원은 출산 후 3개월의 육아휴직 후 돌봐줄 양육자가 없어 퇴사를 했고, 남직원의 경우는 아내가 공기업에 있어 장기 육아휴직이 가능했기에 가능했던 가족계획이라 했다. 탓하지 말자. 인구계획에 이바지 하느냐와 이 인구절벽에 가담했느냐로 질타하지 말자. 각자의 세상에 말 못할 사정은 차고 넘치니까. 세상이 이런데, 내 처지가 이런데 너라면 되겠냐? 라는 분노섞인 되물음을 받기 싫다면 잠자코 있길 바란다.
📖무엇을 위한 법치,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_ 단지 운이 없는 일이거나, 전 정부가 잘못 세팅해 놓은 일이거나,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생긴 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역시나 내 허물은 잘 알지만 드러내긴 제 살 깎아먹기이니 못하겠고, 전 정부를 탓하든 타 연계 기관을 탓하든, 마지못해 최후의 보루라는 듯 천재지변까지 탓해서라도 자신은 이러한 의도로 한게 아님을 어필해본다.
이 책을 읽는 와중에 늦은밤 계엄령을 선포한 일이 있었다. 이게 뭔 날벼락인가 싶을 정도의 당황스러운 것. 근현대사에 외울거리 또 하나 만드는 소름돋는 체제. 일상을 무너뜨릴 생각으로 모든걸 제한하려는 이기심. 진짜 누구를 위한 법치이며 누구를 위한 선포인지를 다시금 상기시키게 만드는 이슈였다. 점점 정장 자켓 한켠에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지수가 내려가는 기분을 느낀다.
📖정치 복원, 압축 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_ '더 나은 나라, 더 좋은 사회'는 누가 대신 만들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 스스로 소멸하는 대한민국을 멈추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 ... 정치가 만연해서가 아니라 정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정치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정치가 아니라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는 정치인과 정당에게는 박수든 비난이든 보낼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그 자체입니다.
혐오사회를 동조하는 바는 아니다. 내가 나서서 정치를 하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노력할만한 능력치가 없으므로 일단 그나마 나은 정책과 방향을 바라며 안건을 발휘하는 이들에게 걸림돌은 되지 않아야 겠다는 마음을 갖게된다. 갈등은 드러내어야 하는게 맞고, 곪아 터진건 도려내는게 맞으며, 사과 할 것과 바로잡아야 할 것은 정중한 사과와 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잘못은 하루라도 빨리 인지하고 바로잡는게 더 큰 화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다.
유치원 다닐때 다들 해본 방법 알꺼야.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선생님 앞에서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치고박고 싸웠다고 고자질하는 둘. 그때 선생님은 어느 편도 들어주지 않았다. 너는 이래서 잘못했고, 쟤는 저래서 잘못한거고 둘 다 잘못한거니까 서로 사과하고 악수하고 안아주고 다신 그러지 않겠다며 손가락 걸고 약속하던 그 방식. 우린 어른이니까 손가락까지 걸진 않아도 잘못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개선의 방법을 빨리 찾는 것. 과연 그런 날이 오긴 할지 내가 사는 순간에 그걸 볼 수 있긴 할지 떫은 입맛만 다실 뿐이다.
📖한겨레출판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