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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틀 ㅣ 케이스릴러
주영하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4월
평점 :
요즘은 잘 만들어진 원작 소설이나 웹툰으로 만들어지는 드라마가 많다. 앞서 완독 후 기록했던 '마당이 있는 집'도 그러하고, 뒤이어 읽었던 '알래스카 한의원'은 곧 대중에게 선보인다고 했다.(완독은 진즉 했는데 아직 글을 못 올렸네) ENA와 TVING을 통해 한창 극에 달아있는 드라마. 이달 말 즈음 완결이 날 텐데, 원작관 어떠한 차별점을 보일지. 드라마의 끝은 소설의 끝과 닿아있을지를 주목해본다.
일단 드라마는 안 봤다. 인물관계도만 보았을뿐 클립영상도 안 보고 꾹꾹 참고 완독했다. 영어유치원 학부모로 나오는 여자들 캐릭터들과 배역을 맡은 배우가 찰떡으로 잘 어울린다.(외모기준) 특히나 송정아, 김나영이 그러하다. 장미호에게 집착을 하는 엄마역의 임강숙도 어찌나 매치가 잘 되는지 인물에 빠져들어 읽기 딱 좋은 조건이다. 소재 또한 SNS의 행복배틀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요소였다. 어떤이는 시간의 낭비라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벌이의 수단이며, 또 어떤 이는 과시와 자기만족의 무대가 되는 곳. 그래서 좋은데 무섭고, 행복한데 화가나기도 하는 그 공간에서 무엇이 그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는지를 보면 책속이나 현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들었던 휴대폰의 SNS 어플이 무서워진다.
미호는 오랫만에 그 이름을 대면했다. 오유진. 장미호는 업무를 통해 학창시절 절친이었다가 지금은 남처럼 살고있는 이의 이름을 떠올린다. 현재를 사는 오유진에게 연락하며 사연 채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는데 뜻밖의 일이 생긴다. 살인사건이다. 강남 부촌 하이프레스티지 아파트에서 끔찍한 일을 마주한다. 남편은 등에 칼이 꽂혔으나 가까스로 살았고, 아내는 베란다 난간에 배를 걸치고 사망한다. 아내 오유진 사망 사건이 17년 절연한 친구 장미호는 우연히 접한 그녀의 이름과 사건에 집착을 하게된다. 17년전 떨치지 못한 죄책감과 미련으로 장미호는 오유진의 흔적을 뒤적이며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는지를 케기 시작한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자식들로 인해 친목을 다진 엄마들. 모자랄것도 부러울것도 없는 그녀들은 SNS를 무대삼아 행복배틀을 한다. 자기가 더 잘났고, 자기가 더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고픈 과시욕과 우월감을 위해 상대를 뭉개버리는 독한 말과 그 글을 적는 손. 평범치 않은 죽음. 과거의 오유진을 아는 장미호는 유진이 밝히려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며 과거의 오유진에게 용서를 하려한다. 그래서 밝히려 한게 뭔데....?
📖 더 행복해질 필요도 없어요.
... ... .
남의 행복을 부수면 되거든요.
제일 잔인했던 한마디. 나의 행복보다 남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이 더 빠르다고 여기는 말에서 일말의 죄책감이란 걸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더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없고, 타인을 짓이기는 것에만 생각을 모으는 사람이니 행복배틀이라는 걸 했겠지 싶은 생각도 든다.
SNS를 하다보면 이걸 보는 것 자체가 피곤해짐을 느낀다. 모두가 잘나고 잘사는 것에만 집중하여 게시하다보니 '나'라는 존재를 그 짤막한 문장과 해시테크, 몇 안되는 사진에 비교하게된다. 프레임 너머의 삶과 다 채워놓지 못한 글은 내 삶과 별반 다를게 없을텐데 나는 안되는데, 쟤는 왜 그게 될까 싶어하는 비교와 자괴감은 피로감을 가득 안긴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내 글은 안 올리고, 타인의 것만 후루룩 넘긴 채 하트 누르는 것도 주저하게된다. 남의 행복을 부러워 하는 것도, 남의 행복에 하트 하나를 더 늘려주는 것도 모두 안하며 쟤는 저리 사나보다 싶어하는 무던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보니 이들이라면 말과 글로서 충분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겠구나 싶어졌다.
📖 자기 행복에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확인받고 증명 받고 싶어 한 거지. 자존감이 낮았을거야, 자기 확신도 없었을 거고.
그러게. 행복 같은 건 실체가 없는 건데.
확신이 없었던 것 보다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은 아닐까? 자신은 이 행복에 길들여져있다보니 잘 살고 있는 건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하니 외부로 오는 강한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며, 그 지속성에 도취하는 과정이었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편하지만 인간이라면 절대 그럴 순 없을테지.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좋아요와 부러움의 짤막한 문장 한줄에 도취한 부류였다.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이들이 보기엔 저게 뭐라고 라는 식으로 어이없는 꼴이겠지만 저들이 사는 방식에선 저렇게라도 관심받고 주목받는것이 중요했나보다.
생경한 단어의조합이었다. 행복과 배틀이 이렇게 바로 옆에 서로를 붙여 놓을 수 있는 단어가 되기도 하는구나. 행복을 배틀로 삼을 만큼 사는 것이 평온한 집단의 에피소드였다. 시대를 반영한 듯 보여지는 주제와 언젠가부터 자주 등장하는 그들만의 세상살이 이야기다. 배경좋고, 돈 걱정 없고, 사는 것이 평온하고 지루해서 이러한 것들로 배틀이랍시고 하트 갯수와 댓글 몇문장에 희비가 갈리는 꼴. 모습보다는 꼴이라는 명사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미호는 왜 그리도 유진의 죽음에 집착하는 것인지. 17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만난 동창의 죽음인데 본인 목숨까지 내어놓을만큼 위험을 감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흐름이었다. 이 친구들이 웃으며 안녕을 하지 못했으나 17년의 세월이 친구의 죽음을 통해 그간 들여다보지 않고 안부를 묻지 못해 죄책감 어린 행보라 하기엔 과하게 집착하고 대책없이 들이댄다. 물론 미호 모친이 했던 말에서 자신의 잘못이 아예 없는건 아니니 사죄의 마음이라고 친다 해도 내 기준으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의문과 과한 설정은 3부 후반에 세경이 미호에게 한번 더 오유진의 죽음을 언급하며 이해를 가능케 했다. "우리 친구 유진인 17년 전에 죽었어."라는 문장으로 17년 전의 유진이도 억울함을 품은 채 자살을 했음을 독자에게 흘려주었다.
미호는 태어난 연도도 이름도 동일한 오유진에게서 슬퍼하고 애도할 만한 기회을 얻어 케묻고, 제 손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다. 제 상처도 덮고, 이미 죽은 유진의 상처도 같이 덮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호의 뒤늦은 반성에 우리는 속절없이 끌려왔다. 그 오유진이 저 오유진이 아닌걸 가장 먼저 알았음에도 지켜보고만 있던 세경은 미호를 뭐라 생각했을까?
17년 전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던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게 타인에게 상처가 되든말든 상관하지 않고 제 속만 차리는 모습. 어른들은 원래 그렇겠거니 하며 자라난 이들은 성인이 된 후 자기 또래에게도 그 시절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기심을 품고있음을 볼 수 있었다. 행복과 배틀이라는 예쁘고 섬뜩한 단어 조합을 앞세워 내 행복을 위해 타인의 평온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도 된다는 정당방위인척 하는 낯짝에서 과연 행복을 내세워야 하는 것이 맞는지, 나와 내 울타리 안에서만 즐겁고 기쁘면 안되는 것인지를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