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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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에서 김겨울작가가 추천해준 '다정한 매일매일'을 교보까지 찾아가 직접 구입해 읽었던게 시작이었고, 두번째 만남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라는 에세이였다. 최근 '함께 걷는 소설'이라는 청소년소설의 단편으로도 뵙고나니 친숙함이 가득한 작가로 느껴졌다. 모나지 않고, 독하지 않은 사람들만 나오는 글이라 무해함에 편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분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한 '눈부신 안부'는 예약 구입까지 하게 되었다.

등단 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장편을 내어놓은 작가의 글에는 여전히 선의로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코멘터리 북에서도 그 말을 전했더라. 이야기를 이끄는 해미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지나칠 정도로 선의로 가득한 집단으로 나온다. 현실세계는 그렇지 않아 너무 판타지가 아닐까 싶어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해미가 너무 안쓰러워 가능하면 해미에게 좋은 사람들을 선물해주고팠다는 말에서 어느정도 공감과 이해와 설득을 모두 당해버렸다. 선하고 결이 고우나 때론 상처가 깊은 이에겐 저절로 다정하며 마음이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더라는 것. 억지로 뽑아서 채워넣는 인물의 조합이 아니라 비슷한 결을 가졌기에 끌리고 마음을 토닥여 줄 수 있는 것이라 납득이 되더라. 생각해보면 착한 사람 옆엔 더 착한 사람도 있고, 또 달리보면 악용할 악한 사람도 있다는 것. 뭐, 바라보기 나름이고 이해하기 나름이겠지. 선한 사람들이 눈에 더 잘 띄는건 같은 마음을 하는 사람이라 한번 더 눈길이 갔던거고, 그렇지 못한 인물은 마음이 쓰이지 않는 흘러가는 존재이니 그럴수도 있겠다며 해미의 주변사람들의 조합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해미에겐 유년의 상처가 깊다. 친언니를 뜻밖의 사고로 잃었다. 너무나 급작스럽고 느닷없는 일이었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의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나. 자신의 슬픔에 앞서 아빠와 엄마를 바라보는 해미는 자신을 돌보기 보단 부모에게 덜 신경쓰이고 덜 걱정끼치는 아이로 보여지고자 홀로 슬픔을 삼켜버린다. 아빠와 별거를 결정한 엄마. 엄마를 따라 친이모가 정착해 사는 독일로 이주하여 이모와 이모의 친구들 돌봄을 받으며 살아간다. 변해버린 환경에 해미는 언니의 몫을 해야했고, 제 몫 또한 다 해내는 아이로 자신의 진짜 마음을 감추고 산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모들의 세상도 알아가고, 낯선 곳에서 마음을 나눌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가 겪을 가족의 상실에 앞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과거의 상실에서 벗어나 더 이상 없어야할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생기지 않도록 지금의 내 사람을 끌어당겨 자신의곁에 두기로 한다.

유년시절의 상실과 아픔에 제대로 아물도록 들여다보지 않았던 해미.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자신과 같은 슬픔을 겪을 이를 기억해 위로하고 그 마음을 헤아렸다. 나이가 들어 곁에 누군가를 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뒤로하고 마음이 닿아있던 곳으로 향하기로 한 모습에서 행자이모가 떠나기전 걱정했던 그 마음의 답을 찾았다 싶어 마음을 놓아본다.

기자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우연히 사진전에서 만난 대학동기 우재와의 재회에서 시작되는 해미의 이야기. 어른 해미로 시작해 독일에서 머물던 아이 해미의 이야기에 같이 추억하다 다시 어른 해미가 예전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눈부신 해미를 기대해본다.


📖P30_ 언니를 잃은 이후 나는 가족 중 누구든 눈 깜짝할 사이 내 앞에서 없어져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항상 시달리고 있었고, 동시에 언제 사라져버리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살아 있는 게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면 언니는 틀림없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가족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싫은 그 상실의 마음은 분명 쉽사리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을텐데라는 자책부터 언니대신 차라리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싶은 마음까지 들며 존재의 부재를 인식하긴하나 받아들이긴 어려워한다. 사랑스러운 이를 왜 이렇게 빨리 데리고 갔나 싶어하며 원망을 하면서도 그 전까지 좀 더 사랑하지 못했고, 좀 더 아껴주지 못했던 시간을 후회하게된다. 이렇게 후회하고 반성하면 어느 신이든 그 간절함을 들어 시간들 돌려줄법도한데 현실은 매번 남아있는 사람들의 그리움과 그늘진 얼굴 뿐이다. '네 탓이 아니야.'라고 주변에서 말들 하겠지만 어떤 위로도 안 되더라. 시간이 약이고, 추억과 회상이 덜 외롭게 할 뿐이었다. 때론 그러한 마음이 들어도 내버려두는게 맞지만, 해미는 어렸고, 해나는 더 어렸다. 그래서 해미는 웃자라듯 언니의 몫을 다 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을텐데 그러한 마음 쥐고 성인이 된 어른해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P50_ 일주일만 지나면 해가 바뀌고 나는 언니와 동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 년 후부터는 내가 언니의 언니가 될 것이다. 언니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나 혼자 살게 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물론 해나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당시 나에게는 거짓말밖에는 할 것이 없었다.

언니는 그 시간에 멈춰있고, 나만 자라는 느낌. 때때로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순간이 생길때마다 언니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들. 이게 해미가 언니를 그리워하는 방식이다.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엄마와 아빠의 슬픈얼굴만 떠올라 입을 꾹 다물며 잘지내고 있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래야 한국에 있는 아빠도, 타지에서 공부하며 자신들을 돌보는 엄마도 한시름 놓을테니 말이다.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메모까지하는 해미를 보면 제발 두분의 슬픈 모습을 그만 보여달라하는 어린아이의 생떼같이 느껴지기도한다. 내가 이렇게 잘 하고있는데 왜 두분은 그렇게 싸우고 울기만 하냐 싶은 아이 나름대로의 발악처럼 여겨졌다.


📖P65_ 사랑하는 사람이 곧 세상에서 없어져버린다는 걸 밀 알고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파독간호사 이모들을 통해 알게된 한수와 레나. 특히 한수를 보면 계속 언니를 생각나게했다. 엄마를 곧 떠나보내야 할 거라 생각하는 한수를 보면 그래도 너는 작별할 시간이라도 있지, 자신은 그럴 겨를이 없었던 때가 떠올랐다. 평소같으면 정말 사사로운 일들. 언니 티셔츠를 훔쳐입고 소풍을 갔던 날이나, 심부름을 떠넘겼던 별거아닌 날들이 아쉽고 미안하기만 한 순간으로 부풀어지니 각자가 겪게될 이별의 찰나가 달라 야속했던 것 같다.


📖P219_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는데 바보같이요.

오래 머물 것 같던 독일의 생활도 다시 황급히 접어야했고, 멀리서 날아오는 소식에서 한수와 레나, 해미는 엄마의 첫사랑 찾기도 끝맺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우재와의 재회에서도 더이상 진전도 없이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존재의 부재는 마음을 지치게 했기에 해미 주변에 누군가를 다시 들이는 것, 이를테면 마음쓰는 일에 지친 모습이다. 누구도 들이지 않고 그저 혼자 견뎌내고파하는 닫아둔 마음이었다.

행자이모가 잠깐 서울로 왔을 때 셋의 재회가 조카 해미도, 그녀의 친구 우재에게도 마음을 툭 내려두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우재역시 가깝지는 않았으나 주변인물의 부재가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려주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니 오늘 당장 내 마음을 알아봐주고 외면하지 않기로 한 것. 그래서 그렇게 해미 주변을 맴돌았던 것. 행자이모가 먼저 알아줬고, 행자이모를 통해 해미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P227_ 여전히 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여전히 언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 때가 있다고. 상실 이후 시간이 때때로 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를 돌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독일에 살 시절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하지 못했던 마음의 상처를 이모가 알아채줬고, 알은체 해줬던 이모에게 마음을 열었던 해미. 여전히 이모는 해미가 덜 힘들고 덜 아파하게 해 줄 마음의 대나무숲이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마음이 보였기에 찬란히 살길 원하는 한마디에 내가 울컥해졌다. 누구를 대신해서 살기 보단, 누구의 몫으로 살기 보단 그냥 온전한 나로서 살기를 바라는 이모의 마음이 문장에 가득 녹여져있었다. 파독간호사로 살며 오행자가 아닌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으로, 동생들 학교보내야하는 맞이로서만 살았던 이모는 자신처럼 웃자라버린 유년에 흔들리는 조카가 이제라도 행복하게 제 삶에 기뻐하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고마웠다. 해미곁에서 언니 대신 이모가 그 몫을 해주셔서.


📖P305_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픔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슬픔과 상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매일 들여다보지 않고, 매일 슬퍼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내 삶에서 지우긴 어렵겠지만 온전히 가득 채워놓아서는 안된다. 각자가 생각하는 슬픔과 타인이 느끼는 슬픔에 비교하며 강요해서도 안된다. 슬픔은 온전이 개인의 것이니 자기 중심에서만 바라보지 않아야했다. 해미는 어렸던 해나와의 시절에서 지금의 해나와 이야길 하며 그 때를 떠올린다. 슬프지 않은 일은 없다. 다만 받아들이는 방식과 깊이만 있을 뿐. 해나에게 슬픔을 강요하며 원하는 깊이만큼의 아픔을 강요했다면 해미와 해나의 사이는 지금과 같진 않을 것이다.

초반에 읽다보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떠오른다. 파독간호사가 생겨나기 한참 이전에 있던 사진신부는 사탕수수밭에서 종일 일하며 타국에서 자국의 가족을 위해 모든걸 받친 이들의 고된 삶이 가득하다. 시간이 흘러 불려지는 이름과 직업만 바뀔 뿐 파독간호사 역시 나라의 일꾼이라는 좋은 타이틀 아래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는 팍팍한 삶이 켜켜이 쌓여있다.

해미를 통해 보여지는 파독간호사 이모들의 인생에는 헌신도 있지만 자부심도 두텁게 쌓여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모는 대단한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자랑스럽고 말이다.

해미의 삶에선 언니의 부재, 부모의 별거, 도피성 유학, 거기서 만난 파독이모들이 이야기, 새로운 친구들과 환경, 이별을 앞둔 친구의 소원, 친구 엄마의 첫사랑 찾기, 다시 한국으로 복귀, 삼총사의 약속 외면, 그 후 지금의 해미가 늦게나마 이루려하는 약속,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기로한 지금과 우재. 해미의 삶에선 행복하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냈는데 어떻게 행복하게 살겠나 싶은 마음 억누름이 교차한다. 불안한 삶이었고, 멋대로 행복하지 못한 유년이었다. 자신을 억눌렀던 것과 달리 제목처럼 눈부신 안부를 기다렸던 이가 주변에 가득했다. 어른의 해미가 행복하길 바라는 행자이모와 오랜시간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때때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잘 지내고 있길 바라던 레나와 한수. 애틋한 마음을 담아뒀고, 이젠 그 마음을 알은체 해달라며 지긋이 바라봐주는 우재까지. 다들 보채지 않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시간이 걸렸으나 해미가 직접 잘 지내고 있노라며 안부를 건넬 수 있도록 해주어 고마운 마음에 정중히 인사를 보낸다.

..... K.H는 정말 뜻밖이었지 모야. 그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찾기처럼 예상 가능한 인물 일줄 알았는데, 아닌것, 그게 이 책에서 가장 예상하지 못한 안부였더라.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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