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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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추리소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 오랫만에 접하는 한국형 추리소설이다. OTT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길래 궁금해서 찾아봤고, 영상으로 접하기 전에 먼저 글로 만나보기로 했다. 이미 제작은 완료된 상태이고 등장인물도 어느배우가 역을 맡았는지도 모두 공개된 상태. 그래서 예고편은 보지 않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얼굴과 글 속의 등장인물을 매치하여 읽으니 몰입감이 더욱 진했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내 머릿속에서 씬을 만들어내는데, 저자의 글이 몰입하기 딱 좋은 쫀득한 상황들을 만들어주었다 틈틈이 읽으면서 이틀만에 완독하게 하는 능력을 갖게 해주더라.

의사 남편 재현, 행복한 가정과 원만한 가족이 되고자 애쓰는 주부 주란, 사춘기이지만 똑똑하고 잘생긴 인기많은 아들 승재. 남부러울것 없는 가족의 반대편에 서있는 부부가 있다. 제약회사에서 누구보다 인정받고싶었던 윤범. 이혼을 원했으나 원치않은 아이를 임신 후 포기하듯 살던 상은.

결코 겹치는 부분이 없는 이들이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엮이며 서로를 주시한다. 시작은 주란의 주택 화단이다. 마당에서 나는 냄새. 마당에서 시체 냄새로 시작된 의심들. 가장 편해야하며 가장 마음을 놓고 살아야하는 집과 가족을 믿어도 될런지.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가족을 품어도 되는건지, 내 마음도 그러하니 상대도 그렇게 살고있는건지를 의심하며 주란의 공간이 '완벽한 집'이 될 수 있을지를 따라가본다.


📖 이런 의심 속에서 나는 놀랍게도 남편이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남편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사실 상은이라는 여자보다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두려웠다. 어느 것 하나 정돈되지 않은 삶. 나는 그런 삶을 잘 알고 있다. 그 세계가 너무 끔찍했다.

주란은 의심을 하지만 그 의심에 확신이 붙지 않길 바라며 의심한다. 이 모든 평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굳이 왜? 라는 식의 반감도 있어보인다.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직업, 주거환경, 배우자, 자식, 부모의 배경까지 모든게 다 잘 풀린 사람인데 뭐가 부족하고, 뭐가 아쉬워서라는 마음. 그 모든 조건을 아내라는 역할로 함께 공유하는 주란은 남편이 살인자라는 결론보다 그 결론으로 파생되는 환경의 변화가 더 무서움을 내비친다. 상은과 비교하며 자칫 잘못하다간 주란도 상은의 처지로 하락하게 될까봐 무서운 것이다. 배우자가 살인자라는 결론보다, 살인자 배우자로 각인되어 조건을 포기하고 반납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끔찍한 것이다. 주란은 그런 사람이다. 신분 변화를 위해 사랑을 앞세운 조건의 결혼으로 지금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남들과는 조금 다른 두려움의 포인트가 있었다.

상은의 입장은 살인을 계획했으나 그가 자살로 결론지어지면 안된다. 목숨의 값으로 남겨진 보험금을 받아내어야만 자신도 살고 아이도 산다. 이미 죽은 남편이다. 재호가 윤범을 죽였다는 정황을 만들어야한다. 이혼을 원할 만큼, 수면제를 타서 먹일만큼 증오했던 사람이었다. 거기서 끝나도록 2억을 손에 쥐는게 목적인 상은이다. 그것마저 받지 못하고 그가 남긴 빚만 떠안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원망하며 살아야하는 삶이다. 상은은 자신의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뱃속의 아이 때문이라도, 분홍 휴대폰의 일면식도 없는 아이 때문이라도 부러울만큼 반듯하고 예쁘게 짜여진 곳의 인형같은 주란이 필요했다.

껍데기만 다를 뿐 주란이나 상은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서로 끔찍한 삶인거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여야만 할 만큼의 이유가 분명한 삶 들이다.




📖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상은이 주란에게 할 법한 이야기를 되려 주란이 상은에게 하고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놓은 성이 무너진건 주란이다. 절망과 삶의 포기의 수순으로 갈 나약한 주란인데 제법 꼿꼿하다. 남편의 배경과 남편이 꾸려놓은 그럴사한 곳에 짜맞춘듯 살던 주란 역시 쉬워보이는 삶에서 쉽지않은 삶을 살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자신의 풍족하지 못한 지난날이 들킬새라 그렇게 살아왔다. 행복한 삶을 기대하며 얻어지는 당연한 불행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었나보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들에 대해 이전보다 덜 예민하고 무던하게 받아들이며 이 또한 넘어야하는 삶의 불행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불행에 해탈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남편과 평온한 삶을 위해 어린시절 삶이 미리 불행했던 것이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바라며 자신을 끼워맞추느라 본인의 삶에 불행을 얹어 쥐고 있었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구덩이에서 아이와 자신을 끄집어내기위해 가장 최고조의 불행을 겪어낸것이겠지. 하나를 얻고자 하면 하나는 포기해야하며 때때로 불행도 감수해야하는 삶에 주란은 무뎌지고 있었다. 감수할만큼 남들이보기에 부러운 가족이었고, 예뻐보이는 가정이었다. 일단 그 가정이 어그러졌다. 주란에게 안온한 집의 정의가 바뀌었을까?

덧붙이기)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승재가 했다고 안 믿겨질까? 승재의 이야기가 4명에 비해 약하기도 했으나 재현의 말들을 믿지 못해서인지, 모든 일들이 재현의 손을 거친 작품이니 시작도 승재가 아니라 재현일꺼라는 의구심을 품어본다. 10년이 넘도록 재현은 주란을 만들었다. 사랑하기보단 만들어 앉혀놓은 사람이다. 재현 아니면 안되는 사람으로, 재현이어야만 하는 사람으로 온순과 나약함을 얹어 순종적인 사람으로 구슬려 만든 사랑을 빙자한 세뇌의 산물이다. 그래서인지 승재가 학교에서 벌인 일이 사건의 시발점이라 하기엔 불씨가 약하다. 재현이라는 사람이 생각 보다 더 많이 무섭고 대단한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가 원하는 이 가정의 끝은 무엇이었을지를 그려본다.

오랫만에 찾아본 미스터리문학이다. 요런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머릿속에 잔상이 제법 오래 남기 때문이다. 공포물을 아예 보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잡념이 많은 인간이라 그걸 지워내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글로만 보아도 영상이 그려지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또 때로는 너무 그럴듯한 풍경이 보이는 듯 했다. 오죽하면 회사 잔디에도 손가락이 있는건 아니겠지 싶은 생각에 피곤하기까지 하다. OTT로 전편이 공개되면 다 찾아볼지는 모르겠으나 저자의 글 만으로도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없이 딱 떨어지는 반듯한 스릴러를 맛본걸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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