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둑 성장기 위픽
함윤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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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문학이라는 테마로 소도둑 성장기라는 제목 아래 그냥 훔치면 되지 않을까?라는 문장을 책 표지에 품고 있는 글이다.

작고 하얀 뼛조각을 움켜쥐고 태어난 사미. 그것이 자신의 첫 도둑질임을 언급한다. 이 설화와도 같은 이야기는 엄마로 인해 사미에게 인이 박히도록 들려주며 기정사실인냥 그녀를 잠식해온다. 신생아의 손바닥 안에 있는 그것. 기형종의 흔적이거나 이탈 세포가 아닌 당신의 뼈라고 여기며 엄마. 당신의 뼈를 훔쳐 태어난 아이라 떠들어 대는 것이 자신을 더 가엾게 여기는 방식이었으리라 보여졌다. 그렇게 태어날 때 부터 도둑질 한 아이는 금귤 하나, 축구부 방석 하나, 작은 베고니아 화분 하나. 자잘한 무언가를 훔치는 것에 익숙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애라는 취급을 받고 자라왔으니 이정도의 손장난은 당연한 결과라 여기는 뉘앙스. 익숙하게 훔치는 것에 거리낌 없던 순간 초콜릿을 훔치려다 성준에게 발각된다. 사미의 행동을 눈치챈 유일한 사람.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걸 매 순간마다 언급하며 성준은 사미를 훔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피력한다.

...사미가 공공연하게 하던 도둑질은 무엇에 기반된 걸까. 엄마가 어릴적 부터 덧씌워온 도둑이라는 프레임에 갖힌 채 자라온 상태의 결말일까. 아니면 언니와 오빠보다 사랑을 덜 받고 자랐다고 여김으로서 엄마가 심심찮게 말하던 도둑질이라도 해야 시선을 받겠구나 싶어하며 하게된 관심의 구걸이라 봐야할까. 당신이 나를(=사미)를 태어날 때 부터 점지해준 도둑질이라는 재능에 능한 상태로 자라고 있으니 시선 한번 더 주고, 잘한다고 칭찬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그러한 애정의 기대치 작용일지에 대한 생각을 가진채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했다.


성준은 사미와 반대의 세상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쌍둥이지만 덜 갖고 태어났다 여기는 형과 반대로 다 갖고 태어난 존재라 스스로를 설명한다. 그러니 모자람에 대한 조바심이 없는 인물. 사미의 재능이라 하면 훔치는 것 밖에 없었고, 성준의 재능이라 하면 하면 다 이뤄지는 능력을 지닌 정말 잘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들켰으니 사미는 도둑질이 태생과 함께 이어지는 운명이라 믿었던 것들에서 완벽히 어그러짐을 느꼈을 것이다.

사미가 그간 훔쳐온 자잘한 것들, 자잘하다 하더라도 함부로 쓰거나 버리지 못한 것들을 보였고, 성준 또한 자신이 가진 것들 중 가장 귀한 것을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자신의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오픈 함으로서 이것만은 건들지 말라는 듯 서로에게 각인 시킨다.

역시나 사미는 그걸 도둑질했고, 그 찰나에 사미 또한 성구를 통해 자신의 것을 잃게된다. 이로서 사미가 가진 탄생 설화는 완벽히 깨졌고, 누군가의 귀한 것을 손에 쥔 결과는 이지경이 됨을 보여줬다. 허탈과 허무의 그 어정쩡한 외길 위에 놓여진 사미. 공항 카페에 덩그러니 놓여진 소도둑의 결말은 무엇이길 바라길래 저자는 여기서 이야기를 마친건지 골머리를 싸매는 건 결국 독자인 나의 몫이 되었다.


매번 사사로운 것에 손을 대던 사미였다. 타인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타인의 입과 눈을 통해 똑똑히 알게된 상태에서의 도둑질은 과했다는 걸 보여줬다. 진정 손대지 말아야 하는 것에까지 눈독을 들인 소도둑은 결국 자신의 것들 마저 댓가의 방식으로 잃고 난 후에 복잡한 생각에 싸인다. 자신의 품에 있던 성우의 그것을 성구가 노린다는 것. 그걸 훔친 성구의 품에 다시 손을 댄 사미. 알고있었다. 이렇게 될 줄. 그것만 손에 쥐고 있으면 되리라는 생각에 휩싸여 자신의 것에 시선을 둘 여력이 없었다. 결국 좀도둑에서 소도둑이 될 대도가 아니었고, 그냥 훔치면 되지 않을까 했던 의연한 심보도 아무짝에 쓸모 없는 짓이었다. 이로서 엄마가 태생부터 씌워놓은 설화 프레임은 운명의 선택지 따위가 없는 허상의 것이었다. 모든 현상이 소도둑이 될 재목이 되진 못한다고 알려주고있다. 그러면 사미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 되며, 사미가 이제서야 찾게될 정체성은 어디서부터 모아봐야할까.

재능의 결핍, 사물에 대한 집착, 주변인으로서 얻게되는 기대치에 대한 결여. 뺏는 동안 시선주지 못한 자신의 세상은 없는지. 이걸 성장기의 한 과정으로 보는게 맞을지. 무엇이 되든 이 성장과 극복의 서사의 끝엔 소도둑이 마침대 대도가 되었음을 알립니다! 만 아니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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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고작 계절 (<여름은 고작 계절> 윈터에디션)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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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추천에 혹해서 읽었지만 고작이라 하기엔 너무 큰 존재로 남게될 여름에 대한 이야기.

고작이라는 말로 치부하는게 맞을까? 너무 뚜렷하게 남게될 그 시절의 단상에 대한 것인데 말이다. 책 속의 이야기가 너무 진득하게 마음에 머문다. 끈덕한 기분, 찐득한 마음, 개운하지 못한 속내. 그 계절의 모습이 닮아있는 제니의 여름이다.

이야기가 시작 되기 전 회고록이자 반성문임을 먼저 밝혀둔다.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친구 한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호숫가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있는 한나를 죽도록 팼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해도 내가 저지른 짓을 취소하거나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변명이 아님을. 또한 바뀌지 않는 사건이며 사실이고, 그걸 계속 헤아리기위해 이 말들을 한다고 언급한다.

이야기는 제니의 시절을 이야기하고있고, 거기에 겹쳐진 한나의 세상도 보여주고있다. 같은 이민과 유학 그 어정쩡한 시작점은 비슷할지라도 상반된 배경을 기반으로 같을 수 없음만 도드라지게 보여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제니의 아버지. 그리고 그를 믿고(아니, 그것 말고는 강하게 부정하고 맞설 선택지가 없던 IMF시절) 한국을 벗어난 이민자의 삶. 눈치봐야하고, 대우 받지 못하는 곳에서만 일하게되며 쉽사리 정착하지 못하는 그시절 이민의 실상을 보여주고있다. 힘들고 냄새나는 일들은 모두 그들의 삶의 동아줄 같은 것이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의 색이 다른 수많은 시선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며 동등한 대우는 받지 못하더라도 더이상의 하대는 받지 않으려 버텨내는 시절을 보여준다.

같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도 제니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한나가 받게되는 시선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신경외과 의사 아버지와 서울대 출신의 학예사 어머니를 둔 이민자 한나지만 타국으로 넘어 오기 전이나 후나 어른들의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느정도 대우받는 직군의 계층이 주거 국가만 달라졌다 할까.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한나는 영어를 못해도 따돌림을 받더라도 한나가 느끼기엔 간절함이 없어보였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애쓰고 있다는 노력도 비치지 않으니 한심한 상태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제니는 그간 받아온 시선을 알면서도 영어가 서툰 동향의 한나를 똑같은 시선으로 마주한다. 하대하는 것이 으레 당연한 대물림인냥 똑같은 대우를 한다. 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더이상 한국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제니와 한국어를 하는 소리에 숨통이 트인듯 다가오는 한나.

엮이고 싶지 않으나 엮일 수 밖에 없는 출신국 관계과 타국에서의 한인타운 국민들이 얽혀있는 연대와 양육 품앗이. 각자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도왔고, 그 이해관계로 살아버티려고 서로에게 들러붙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유일한 한국인이자 소통자 역할이며 유일한 친구인 한나의 친구 제니로서 계절을 겪어낸다.

겉도는 동양 아이로서, 기를쓰고 언어를 익혀 그 무리의 말이라도 건넬 수 있는 반 아이로서, 동양인이 아니라 여자 축구부원으로서의 활약하는 팀원으로서, 백인 아이들이 친구랖시고 무리에 끼워주는 일원으로서, 다양한 이민자의 계층 아이들과 두루 섞이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아이라 성정체성까지 온 이성의 고민까지 들어주는 아이로 자신의 세상을 꾸린다.

그러한 기간 동안 한나는 제니를 친구이자 언니이자 부모의 지점까지 채워가며 의지하게된다. 그 사건 또한 제니와 더 가까워지고싶고 함께하고 싶어 어렵사리 얻어낸 기회였다. 싫다싫다 해도 매번 챙기고 시선에 걸어두던 한나였지만 그 여름의 한나는 다음 계절의 여름까지 닿지 못했다.

언제는 한나를 챙기는 제니라 했으면서 이제는 한나를 하대하는 제니로 바뀌게되고, 어렵사리 쌓아온 제니의 모래성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렇게 쓸려간 세상에서 제니는 없던 사람처럼 그 흔적을 지워 다신 갈 일 없을 것 같던 익숙한 듯 하지만 더욱 낯설어진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나가 의지했던 제니의 여름, 몇겹의 여름이 쌓이고 이제는 제니가 다라에게 의지하고 버텨내는 여름이 시작되고있었다.

좋아하면 함께하고싶고 닮아지고 싶으며 동등한 시선을 맞추고 싶어 했던 그 시절의 우리와 닮아있는 한나의 애쓰는 마음이고, 제니는 더 애써주지 못했고 살가움과 다정함을 보여주지 못한 서늘한 여름이기도했다.

제니에게 다시금 여름이 찾아오고 있음을 비치는 이야기가 끝에 달려있지만 유난히 먹먹했던 그 시절의 여름은 지워지지도 미화되지도 않을게 당연해보였다. 제니의 마음을 덮어주고 어루만져줄만한 완벽한 엔딩과 꽉 채워진 계절은 아님을 우린 다 알고 있기에 고작이라는 말로 입밖으로나마 가볍게 지나가는 시절인냥 치부하고싶어진다.


책 속의 제니는 돌아왔고, 내 10대의 그녀석 현재는 돌아오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 그 아이를. 제법 잘 사는 집의 외동아들이었고, 공부도 곧잘하는 또래보다 다정했고 말랑했던 아이. 그래서 까칠하고 깍쟁이였던 나와 잘 놀아주던 짝꿍. 초등학교 졸업 후 유학을 간다고 했었다. 혼자 가는 것이었고, 걱정을 많이했으며 편지한다는 말로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때도 이야기 많이 들어달라 했으면서 나는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영영 말하러 돌아오지 않고있다. 그 아이의 계절도 한나처럼 멈춰있을텐데, 소식만으로도 무서움과 두려움이 밀려와 찾아가 보지도 못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되는 나의 나쁜 짓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제니도 나처럼 몇겹의 계절을 두텁게 쌓다 보면 희미하고 흐릿하게 기억을 하게 되겠지. 그래도 영영 잊지는 못할 거다. 나 마저 잊어버리면 부스러기 마저 날려 그 아이의 존재가 완벽히 잊혀질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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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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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사색들을 두어페이지의 글로 남기고, 마지막엔 QR코드로 그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닳도록 듣던 노래도 있었고, 생소한 인디음악들이 섞여있었다. 매번 챠트 TOP100만 듣던 사람들에겐 심심하고 맹맹한 음악일 수 있겠으나 QR코드페이지로 먼저 넘어가 노래를 재생 시킨 후 가사를 보며 한곡 듣고, 다시 재생시켜 단편들을 읽어보면 저자가 이 노래를 사랑하게 된 이유와 이 노래가 이 생각들과 나란히 두고 싶어했던 마음들을 어렴풋이 알 수 있기도 했다.

추천글의 전유동 음악가는 말한다. 시인의 사유가 어떻게 음악과 만나는지 알게 되었다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게 음악은 따뜻한 차 한잔이기도 했다. 성실함과 치열함을 강요당하는 세상에서 부유하는 치졸함을 가라앉혀준다며 음악 안에서 '나'를 마주하고 시인의 고백만큼 아파하며 아름다워지길 바라고 있었다.

시대를 살아가고, 하루하루를 버티다보면 그날 그날 주제곡과 같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며칠 내도록 귀를 맴도는 음악이나 입술끝에 걸리는 한 소절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새해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다같이 새로운 날들을 기대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짜고 있겠지? 12월 31일 몇시 몇분에 재생했을 때 1월 1일 00시에 딱 원하는 구절의 노래 가사를 들으며 행복과 행운을, 그리고 더 없을 나를 위한 위로를 바라는 것들. 아마 저자가 바라는 그 일렁이는 음의 밤과 동이 트기 전까지 더욱 귀히 여기며 보듬는 나의 일상의 응축된 노래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슬픔과 불안함, 낙관으로 변주하는 저자의 문장들. 그래서 저자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던 때엔 어떤 노래를 들었던가를 떠올리게했다. 한동안은 연주곡만 듣기도 했었으며, 깊은 굴을 파고 들어가며 심연의 끝에 다다르길 바라며 듣던 음악도 있었다. 음악이 주는 힘이 그러했다. 귀로 흘러 들어가는 음들로 머릿속에 장면들이 구현되었고, 그 속에 놓여진 주인공이 되게 했다. 그러다 가사가 들렸고, 그 가삿말에 내 몸이 움직이는 기운도 받았다.


📖"같이 행복해지자"고 말했다. 부재는 존재 가치를 오롯이 드러낸다. 어떤 빈자리는 그대로 뒤도 좋을 것이다. 길어질 것만 같은 이번 겨울, 사랑이 꽁꽁 얼어붙기 전에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야 겠다. 지겹도록.

저 짧은 한마디에 저자는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떠올렸고, 나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떠올리게했다. 거창하고 꿈같은 그런 기대치 높은 마음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이 한마디가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는 걸 알기에 평온하고 평탄한 행복에 기대며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이어붙이게 만들었다.


📖외로운 시간이 계속 될 것 같은 착각에 쉬이 빠지곤 했다. 그 무엇도 계속되는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저자는 유재하의 음악에 마음을 붙였고, 나는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에 그 마음을 이어가게 했다. 이르게 고인이 된 유재하의 음악으로 그리움을 가늠해보고 있었고, 나는 작사를 하며 떠올리던 장면의 스토리를 들은 후 그 장면을 내 눈앞에 그려본다. 그리움은 다양한 장면을 갖고 있고,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저자가 생각한 그리움과 내가 생각한 그리움은 조금 다른 스틸컷을 남기겠지만 결국 남겨진 이의 마음이겠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애타게 다시 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벽을 쌓던 나의 청춘에 두껍게 덮여있던 음악들을 다시금 꺼내본다. 노래 한 곡으로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완벽하게 같을 순 없겠지만 노래 한 곡으로 내 가여웠던 시절을 꺼내어 다독일 수는 있으니까.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면 바다에 가 파도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물결을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미래가 닥쳐올 지 알 수 없다. 단지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일 것이다.

나의 시절은 매번 어둡다. 그래서 괜히 밝은 노래로 감춰보기도 했고, 혼자 있는 공간에서는 어디가 끝일지 두고보자는 마음으로 나를 방치해보기도했다. 눈 앞이 다 깜깜해도 어둠이 짙어 보여도 틀림없는 사실은 다시 빛은 돌아와, 모든 걸 바라보며 살자 우린. 이라며 힘주어 말하며 확신을 주던 노래 때문에 그래도 바닥끝을 힘껏 딛고 일어 설 여력을 얻기도 했다. 그런거 보면 참, 노래가 뭐라고. 라는 생각을 가지며, 손에 잡히지 않고 공중으로 금새 흩어지고 마는 음악에 삶의 이유가 있었는데 나는 뭘 움켜쥐려 했던건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 내 마음의 BGM은 무엇이며, 내가 되고파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주문처럼 대뇌이는 노래는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본다. 만화 속 생각과 소망이 실현되는 주문의 노래도 있었지 않던가. 비비디바비디 부를 흥얼거리던 요정의 마음처럼 내 삶의 노래를 품어보며 2026년엔 어떠한 마음과 문장으로 살아갈지를 고심하며 노래 한 곡을 품어보고싶어진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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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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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의 과목이 더 익숙한 7차교육과정의 세대. 교과서를 보면서 그 시절을 가늠하기보단 외우는 것에 급급했고 배울 당시에는 더더욱 감정없이 보며 '그랬다더라' 라는 식의 시니컬한 반응으로 바라봤던 시절의 사건들. 역사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순간에 이입해야만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임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그들은 교과서에 나올만한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려 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좀 더 확고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주저하기보다 나아가려 했던 존재들이었다. 어찌 그리도 다들 빨리 사그러들어 소멸했나 싶어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도 그러했고, 저자의 동생, 그리고 주변 학우와 동료들까지. 그들이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달리 자신이 더 목소리를 높이고, 선동하려 했던 이유를 찾아보면 특출난 활동가여서, 더 많이 배운 성인으로서, 생계를 꾸려야하는 가장이 아니어서도 있겠지만 '나라도-'라는 마음으로 이유를 가지고 시대의 폭력과 옳지 못한 사상에 반기를 들어 어떻게든 자신의 세대에서 부조리함을 끊어내려고 각자의 청춘을 받쳤다고 볼 수 있다.

박래군이 그러했고, 그의 동생 박래전도 그러했으며, 의문사와 자살을 빙자한 그 시절 운동권 학우들이 그러했다. 지금에서야 우리는 편하게 책이나 각종 영상을 통해 학생들의 투쟁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강압적인 시절을 보는 것으로서 지금과는 사뭇다른 세태를 학습만 하게된다.

박래군이 운동가가 될 수 밖에 없던 청년 시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벌어진다. 분신 투쟁한 형제를 둔 유가족이 된다. 억울한 죽음이었다. 개인으로서 조용히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시절임에도 동생 래전은 시만 쓸 수 없어 학생운동 조직에 가입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청년 래군의 시간은 그렇게 약자의 편에서 고문피해자, 시설 수용자, 불심검문, 장애인 인권유린,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폭력과 차별이 선연했던 곳에 한발 앞에서 약자들을 지키려 했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래군이 래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과 함께 어떻게든 그들을 대변하게된다.

4장에서는 말한다. '질 줄 알면서도 싸운다'며 설령 지더라도 인간의 존엄성마저 포기하지 않고자 애를 쓴다. 질거 같으면 시도조차 안하는 나같은 놈이랑 정말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느꼈다. 더욱이나 저자를 통해 '연대'의 힘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컸다. 결국 집단책임의 의미이며 부당한 선례를 떠올리게 했으나 저자의 연대는 같이 살자는 의미가 더 컸다. 비정규직문제, 하청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손배가압류 문제 등을 풀기 위해 지금도 연대하고있다. 매 순간마다 현장에 있는 저자를 보면서 생각한다. 그러한 일을 하는게 내 가족, 내 배우자라면 어떨까 라는 가정. 물론 내가 박래군과 같은 인사가 될 수 있을거라는 가정은 애초에 접어두었다. 옳은 일을 하는게 맞지만 매 순간 불안과 같이 살아야된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자랑스러움보다 더 큰 걱정이 지배하리라 그의 행보에 걱정어린 시선을 늘어놓게된다.


모든 사건을 멀찍이 제 3자로 바라 볼 때와 그렇지 못할 때. 마음가짐이야 달라지겠으나 결국 나 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차별과 혐오, 증오 범죄로 이어진다는 시선. 직접 차별, 간접 차별, 괴롭힘, 성희롱 등과 같은 것. 결국 우리가 다 한번쯤은 겪어봤고 알지만 쉬쉬했던 일들을 저자는 수면의로 끌어올렸으며 사회 대개혁의 1순위 과제가 될 것이라 했다.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사항, 학력까지. 차별 금지 사유가 삭제 된다 한들 사람들의 시선에는 그대로 남아있음을 느낀다. 차별이 커지면 혐오가 되며 사회적 편견 또함 혐오의 근간이 되고만다. 다들 그리 느낄텐데 지금의 세상은 혐오 표현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다. 알지만 쉬쉬한다. 바뀌지 않을거라는 확고한 확신이 있기 때문. 나 역시도 바꿀 생각조차 않는 이 사상을 저자는 오랜 시간동안 변화하길 바라고 있다.

후반부에 저자는 대놓고 이 실상을 알린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인권활동가. 그래서 가족이 이러한 활동을 말리려하는데 당연한 세상이라는 것 마저도. 기업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감시자의 역할이니 기부금은 거의 기대 할 수 없으며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주는 기금으로 활동 하는 것으로 이어가지만 가치를 위한 후원으로 달라질 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의 행보에 힘을 싣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밥벌이를 하는 순간부터 아픈 아이들을 후원하는 것에는 선뜻 마음이 움직이는데 이러한 인권운동의 후원은 주저하게된다. 재단에 대한 활동 내역 인지 부족도 있을테고, 믿음의 결여도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그러한 입장에서 다양한 재단 중 인권운동 재단에만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음을 실토해본다.

저자는 시민사회 후원은 좋은 세상을 위한 투자라고 했다. 결국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밑거름이라 하니 부정적인 과거의 이력들을 지워낸 후 다시금 알아보고 학습하는 과정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권은 거창한 명목보다는 당연히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에 입각한 목소리였다. 욕심을 내기보단 당연한 것을 찾고자 했으나 사회상이 막아서고 권력으로 들이미는 세상을 살다보니 현대사의 인권들은 많은 이들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듯 그렇게 어렵게 이어져왔음을 학생의 눈이 아니라 어른의 눈으로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인생 2막은 자랑할 것은 없다고.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했냐는 경이롭게 보기도 하지만 그 일은 혼자서 해 낸게 아님을 매번 언급하며 뜻을 이해해준 사람들을 눈앞에 그려낸다. 자신의 육신과 시간을 할애하는 자원봉사는 물론이고, 여건상 그러지 못한다면 후원금을 통해 현장 한켠을 지켜준 시민들과 동료들이 있음 전하고있다. 각각의 일들을 겪어내었고 현장에 있던 저자는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외면하지않고 그들의 곁을 지키려 했고, 그걸 기억하며 현장에 없던 독자들에게 그 온기를 전할 뿐임을 겸손하게 말한다.

10대의 학생시절엔 연도와 열사들의 이름을 외는 단순 기억으로 남았다면 30대의 어른이 된 독자로 보니 결국 사회는 영화 속 히어로들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이 꾸려낸 세상임을 확신하게한다. 윤리적 삶에 대한 정의를 고쳐보고싶어지며 내가 모르고 살던 사회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고 싶어졌다. 교과서가 가진 딱딱함보다 현장감이 있고, 그 시절을 살아낸 어른의 생생한 실제의 시간들을 듣고싶다면 이 겨울 방학을 핑계삼아 아이와 어른 같이 읽어도 될 만한 도서라는 생각에 나의 어린 친구들에게도 한권씩 나눠보고 싶어진다.

📖하니포터11기로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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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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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 이유, 그리고 구입을 하게 된 이유는 조카의 연락 때문이다. 서점에서 이 책을 찾고 있는데 보이질 않는다며 앤솔러지의 작품 중 '유령 개 산책하기'를 읽어보고 싶은데 찾을 수 없다는 톡. 초등6학년이 고른 소설에는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길래 직접 서점에 가게 만들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벌써 이렇게 이모랑 같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비슷한 분야의 소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10대의 아이와 30대의 이모가 같은 소재의 소설을 읽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를 기대하며 총 5편의 단편에 마음을 기울여보았다.


📖없는 셈 치고_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쉬이 사랑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사랑을 갈구하는 만큼 나는 고모를 사랑했다.

관계 속 약자는 뭐든 더 쏟아내어야 본전치기라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고모와 고모부의 친딸이 아니니까, 이 집의 진짜 가족이 아니니까 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키워준 것. 돈이든 시간이든 들여가며 자신을 키워냈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단 나중엔 그 값어치를 다 해야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을 것이다. 고모의 딸이 학창시절 방황부터 시작하여 망나니처럼 살아도, 성인이 된 후에도 알 수 없는 다단계인지 종교인지 빠져들어 몇년간 연락도 없다가 뜬금없이 돈을 해달라는 연락만 달랑 오더라도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는 5분 대기조의 상황같은 자신과는 확인히 다른 역할극이었다. 어쩌면 고모는 병수발 드는 조카는 당연하고, 망나니 짓 하더라도 가뭄에 콩나듯 연락하는 딸 또한 한없이 기다리는 존재인 것 마저도 다 당연한 것이었다. 각자가 당연한 사연이 있지만 동등한 배역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작점이 다르니 결국 무얼 향하든 다르게 여기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없는 그러한 당연함들이다.

📖유월이니까_ 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 죽으려고. 아니고. 살려고. 죽겠으니까. 살려고.

우린 각자가 품고있는 유월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4월이, 누군가에겐 12월의 마지막날이, 누군가에겐 이젠 까마득하고 흐릿해진 어떤 날들이. 세상엔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다. 각자의 어떤 날들이 있으며 그 시간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살고 있는 중이다. 못잊어서가 아니라, 정말 말처럼 살려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의 마음으로 찾아다니고, 걷고, 뛰고, 버티는 중임을 이젠 어렴풋이 알겠다.


📖유령 개 산책하기_ 나도 알아. 그렇지만 하지가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내가 대답했다. 준은 내가 하지를 사랑하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말해 주었다. 왜 사랑하면 억지를 부리고 싶어질까. 그렇지만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사랑은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

하지가 나타난건 하지가 나를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지를 그리워했고, 그 시간을 은연중에 바라고 있음에 주변에 잔상으로 남아있겠지. 아닌 것 같아도 존재의 상실은 항상 남겨진 자의 몫이니까. 하지가 선명해졌다 흐릿해지는 과정은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보내주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있는 인지과정이라 여겼다. 곁에는 없지만 그럼에도 흔적은 어젼히 남아있을테니 사무치게 보고싶고, 서러움이 북받쳐 위로가 고플 때엔 이렇게 해보라는 듯 상실은 했지만 너에게 소멸되진 않았음을 안심시켜주는 글 처럼 느껴졌다.


총 다섯 편의 앤솔러지 중 마음이 가는 것은 이 세 편이었다. 각각의 단편 사이에 있던 성해나 저자의 작품이나 임현 저자의 작품은 눈으로는 읽혀지긴 하나 머리로는 제대로 도출되는 게 없더라구. 그래서 왜 앞머리에 김유담 저자의 글을 놓아둔건지도 대충 감이 오기도했다.

나의 픽은 '없는 셈 치고'이며, 조카의 픽은 '유령 개 산책하기'로 결론지어본다.

'걷다'의 의미를 놓고 보면 앞으로 나아가며 더 나은 무언가로의 행보라 여겼다. '없는 셈 치고'를 통해 하지만 이 걸음이 함께 나아갈 수도 있고 홀로 걷게되는 상황이 있음을 느꼈다. '후보'에서는 뒤로 걸으라는 의사의 조언이 뭐랄까 이제는 뒤를 돌아보며 그간의 세월을 한번 돌이켜보고 추억 할 만한 시기가 되지 않았냐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과거를 안주삼아 씹을 거리 많은 당신의 세월을 뜯어보는 시간. 그러면서 그간의 순간은 마냥 허상이 아니었다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걸음이 제법 괜찮았던 날들임을 생각하게 했다. 세 번째의 작품은 함께 자분자분 걷던 존재의 상실을 떠올려본다. '유월이니까'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당신 이상을 애틋하게 여기던 존재를 상실한 상태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삶을 살아가는게 맞냐는 질문을 산책로에서 둘로 나뉜 구역의 사람들과 비교하며 당신들에게 답을 구하고있다. 걷는 트랙과 뛰는 트랙. 그리고 그들을 쫒아 비슷한 보폭으로 걷듣 뛰든 해야 사고가 나지 않음을 사람이 아닌 눈 앞에 보이는 안내판들을 통해 자각하게만든다. 무덤을 서성이는 그들. 무덤의 사진을 찍는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진 않으나 유월이라는 특정 일자를 언급하는 것이 둘 사이를 이어주던 무언가가 소실됨을 가늠케 했다.미친놈 소릴 들으면서까지 너를 버리고 왔다는 그와 연이 된 아내를 가냘픈 실로 붙잡고 있는 어떤 남자를 통해 붙들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각해보면 계속 머무르며 바닥을 파고 혼자 심해에 이르고 있는게 아닐까 우려했던 존재들이 어떻게든 살려고 살 방도를 찾는게 무덤이었고 능이라는 장소는 아니었는지 지레 짐작을 해본다. 구구절절 말을 하진 못했지만 각자의 살 방식, 기를 쓰고 늪처럼 빠져들고있던 심연의 어둠에서 나올 안간힘을 쓰는 또 다른 갈래의 트랙이었는데 몰라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뒤늦은 미안함이 몰려온다. '유령 개 산책하기'에서는 언니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와 다시 나에게로 유기한 개의 상실과 이후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있었을 때엔 당연했고, 없어지니 그 자리가 너무 커진 남겨진 이가 살아내는 방식. 자신의 바운더리에서 개는 그리 큰 존재가 아니었다고 여겼으나 있었다가 없어진 상황에서는 그 자국이 너무 크게 와닿는다.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산책, 덕분에 할 수 있었던 타인과의 대화, 덕분에 이루어내던 일상들까지. 아마 유령 개의 허상은 자신이 다시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가 짜낸 허상의 페이스메이커가 아닐까. 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나마 해봄직한 것들이 늘어나니까. 그래서 조금씩 자신이 혼자 해 나갈 수 있을거라 여길 즈음 하지의 존재도 흐릿해지는거지. 그렇게 미처 마무리 짓지 못했던 작별을 하는 과정이었다. 앞의 단편처럼 어떻게는 기를 쓰고 살려고 걷는 그런 뉘앙스로 말이다.

걷는 다는 것의 의미. 다리를 움직여 바닥에서 발을 번갈아 떼어 옮기는 것.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 이게 누군가에겐 무의식중에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 순간마다 자각하며 걸어야한다는 자극을 받아들어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게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리는 어떠한 감각이든 어느 한 지점을 일깨워서 해야하는 삶의 방향성이기도했다. 무언가를 해 나가는 과정이 걸어간다고 비유 할 수도 있겠으며 단순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도 이르기도 함에 모든 생의 연장은 걷고 있는 과정임을 한번 더 인지하게된다.

'마냥 주저 앉을 수도 없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안주하기보단 뻗어나가며 웅크리기보단 큰 동작을으로 걷고 뜀으로서 고여있지않으려 하는 것들. 무의식이 더 크게 지배하던 20대를 지나 30대에서는 때때로 자각하고 스스로를 상기시키는 구간이 생겼다. 40대와 50대엔 안드레아처럼 시절을 뒤돌아보며 때때로 역행하는 구간도 추가가 되겠지.

이 책은 독자에게 당신이 걷고있는 그 구간이 어디쯤일지 명확하게 묻진 않았다. 다만 같은 트랙이지만 다른 속도로 걷거나 뛰는 이들과 부딪혀 자신이 옳은 걸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굳이 몸으로 알아먹던 그 둘의 처지가 되진 않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 그럴 수 있으니까, 평생 그러한 과정 없이 올곧은 걸음만 걷기엔 변곡점도 만나고 장애물도 만나며 수렁도 존재하는게 삶의 트랙인걸 모두가 인지하고있는 상태이다.

그러니 말이다, 이 걸음이 평생 유지 될 수 있는 무한의 동력이 아님을 알아먹고 반듯한 발자국을 남겨보고싶어진다.

내가 걸어낸 흔적과 걸어가야하는 모든 것들에는 내가 뭍어나 있을 것이니 내가 나를 제일 애틋해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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