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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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두 아이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상황과 그럴 수 밖에 없던 그간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역시나 떠오르는 순간들을 긁어보면 불행이 더 크게 존재한다. 벽돌집에서의 기억에 행복과 기쁨은 없다. 비, 물, 숲, 산 어느 하나 순조로울 것 없는 자연은 벽돌집을 나서면 아이들을 막아줄 것 없는 세상에 내몰린 것 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해수와 유림이 이야기해주는 벽돌집에서의 생활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그들만의 왕국을 보여준다. 벽돌집은 나라가 지정한 법이든 규율이든 보호받을 권리든 모든게 통용되지 않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기서 군림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며 아이들을 굽어살피는 척 하는 어른들. 꼴을 보면 각이 나온다. 날로 먹는 어른들의 더러운 짓거리. 해수와 유림의 일련의 과거들은 모두 주목받지 못하고 소외되며 여린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무자비함을 내비친다. 죄책감은 없다. 먹이고 재우는데 뭘 더 해줘야겠냐는 듯 되려 큰소리를 내새울듯한 잘못된 방식의 포용이다. 보호받는 듯 보이지만, 방관보다 더한 착취의 과정 속에서 이 아이들이 '파사주'가 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굳이 얻급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알 것이다. 스스로 개척해가는 생의 여로는 불행을 극복하기 이전에 살고자하는 어쩌면 당연한 삶의 안간힘일지 모른다. 자신의 곁에 있던 모든 아이가 주어진 틀과 한계를 깨부수며 나올 수 없음을 알기에 유림의 손에 쥐어진 R을 통해 사후의 흔적이라도 그 벽돌집을 나와 유유히 흘러가도록 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한번 사람이 제일 무섭고 사람이 제일 추악하다는 그 말을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알았고 어른들도 알았다. 누군가는 알지만 모른척 했다.

밤중의 야구. 그것도 실내에서 이뤄지며 게임이 아니라 가학의 경기. 어느 하나 말리는 이도 없고, 안되는 것이라며 소리치는 이도 없다. 그들의 행동을 막을 시 다음 타자는 본인이 될 테니까. 침묵이 당연했고, 외면이 어쩌면 더 큰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 여겼을 터. 왜 말리지 않았냐고 악을 써댈 사람은 없었다. 내가 죽을듯 맞든, 니가 죽을듯 맞든 크게 변하는건 없을 테니. 그러니 알아도 모르는척, 모르면 더 외면하는 척을 하며 흐린눈을 했을 그 방 아이들이 측은하고, 그 건물 어른들이 야속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했거늘 이러한 상황이라면 사람 자체가 미워지는 걸 겪을 수 있다. 쉽사리 고쳐 쓸 수 없을 인간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이 빠져나온 건 무덤이 아니라 벽돌집이었으니까. 죽지 않고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죽을 각오를 하고 나와야하는 벽돌집. 평생 죽은 듯 살 것인가, 나오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몇번이고 다시 찾아와 벽돌집으로 박아둘 상황을 항시 고려해며 숨어 살 것인가의 선택지. 무덤은 죽어 마음이라도 편히 쉴 수 있을지라도 벽돌집은 죽어서도 두고두고 원망하고 명치를 사정없이 쳐 댈 만큼 원통한 상황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 문장 앞에 나열된 사건들만 봐도 이러한데, 후반까지 다 읽고나서는 어떻게든 빠져나오려했던 아이들의 행동에 이해가 갔고, 비슷한 여건의 영화들도 떠올랐다. 그것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이뤄진 영화였는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실화라고 언급을 하진 않았으나 우리가 모르는 구석지고 사람의 시선이 덜 가는 곳에서 심심찮게 이뤄질 만한 인간의 잔상이라 문장들을 쉽게쉽게 넘길 수 없었다.


📖식당에 놓고 온 우산처럼 잊어버리고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았다. 벽돌집 아이들은 자신을 버린 엄마아빠가 없는 고아로 여기며 자랐다. 하나의말씀에 따르자면 육신으로 낳은 자식은 가인이었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야 아벨이 될 수 있었다.

가인과 아벨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찾아봤다. 대학을 기독재단에서 졸업했고 채플 수업으로 들어봤으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던지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기에 정확한 의미를 알고 책을 봐야 이해 할 것 같았다. 르포 채널이나 꼬꼬무를 통해 봐왔던 사이비 교주와 그들을 떠받드는 신실한 사람들. 그리고 신의 믿음 아래 소외받은 자들을 보살핀다며 아이들을 보육하는데 이는 내가 아는 보육의 의미가 아니었다. 마치 농경 사회에 자식을 많이 낳아 일손을 추가하기 위해 몸집을 키우던 시절처럼 아이 한명은 곧 집단의 수족을 하나 더 늘리는 구실로밖에 여기지 않음을 드러냈다. 뭣모르는 어릴 때 데리고 와야 포섭이 잘 되고, 순종적인 행실을 보여 줄 것이 확보된 작업과도 같았다. 너를 낳아준 이들도 버렸고, 세상이 너를 외면했으나 신께서는 너를 부르시고 품었다는데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치 않은 것이다.


📖원장과 주지는 각자의 파트너와 앞으로 나가 연인처럼 블루스를 추고, 친구처럼 어깨동무한 채 노래를 부르고, 대여섯 살 먹은 아이처럼 손뼉을 쳤다. 그들은 술을 우유처럼 꿀꺽꿀꺽 마시고, 안주를 과자처럼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할렐루야 아미타불 만세! 이 땅에 크게 외쳐라.

다들 이렇게 말하겠지.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진 않다고. 그리고, 모든 종교인들이 이러한 행실을 보여주진 않는다고. 하지만 이러한 자극적인 사건에 연류되며 거론 될 때마다 믿음에 대한 의문이 추가될 뿐이다. 일반인으로서의 행각보다 종교인으로서 얻어지는 혜택을 짊어지고 쉽게 가려는 사람들의 검고 찐득한 속내. 이와중에 아이들은 그들의 술시중을 들기도하고, 테이블로 음식과 술을 날으는 일을 해야 했으며, 이 모든 과정들을 알면서도 못본척 해야했다. 이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목숨줄을 유지하기 위해 암묵적인 룰 처럼 입을 다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이며 읽게 만든다. '이게 맞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벽돌집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 사람의 흔적이 사라져도, 정말 죽어나가도 잔잔하기만한 벽돌집.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에 각자의 파트를 쳐내기 바쁜 사람들마냥 좌우를 살필 여력 없이 내 앞에 닥쳐온 일들만 보고 내 몫의 일에만 집중하려는 듯한 아이들의 멍한 눈빛. 누군가 반박을 하거나 찾아 헤메거나 이건 아니라고 한다해도 변하는건 없다. 뉴스 한 줄도 실종 신고 수사도 없도록 쳐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곳임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만들었다. 보고 들은게 그런 것이라 아버지라는 분이,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하는 걸 아이들끼리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왔다. 폭력과 갈취는 삐딱한 방향으로 내리사랑처럼 흘렀다. 아이들이 아이들을 때렸고, 울음으로 거짓의 회개를 토해내는 과정. 유림이 살아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니라 했던 말을 통해 삶의 의욕을 놓기 딱 좋은 상태로 내몰고 있음을 보였다.


📖해수가 짓밟히는 동안 아버지 선생님은 신도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하나의말씀을 안 믿으면 여기가 지옥이야.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돼. 너희가 안 믿어서 걔들이 죽는 거야. 그게 바로 지옥이야.

힘을 잃을까 두려워 아버지 선생이 울부짖고, 믿음을 잃을까 두려워 신도들은 눈을 감았다고했다. 뭐랄까, 다음 대사와 다음 표정을 복기하는 듯한 배우들의 열연 과정. 최선을 다해 NG없이 원테이크로 가려는 한 컷의 완벽한 조합처럼 현실이라 하기엔 너무 잘 짜여진 씬을 본 듯 했다.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믿음을 져 버렸기에 행해지는 죽음은 또 어떠한 영적인 기능을 발휘했길래 가능하다고 여기게 되는걸까. 인간, 가인, 아벨. 각자가 맡은 배역에 심취해 사람 하나 죽이는게 이렇게 쉬운 걸 보며 해수가 처음은 아니었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해수 이전에 또 다른 아이들도 같은 방식으로 내몰았을 거짓의 눈물이 더럽게만 느껴진다.



'카지노 베이비'도 그러했지만, 이번 '파사주'역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여전히, 그리고 당연하다는듯 이뤄지는 더러운 인간의 온상이다. 픽션이길 바라지만 세상을 그리 선한 사람들만 존재하는게 아님을 매번 깨우친다. 지켜주고 챙겨줄 든든한 어른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들은 어쩌면 유일하게 먼저 말을 걸어줬을 검은 손이며, 아닌걸 알면서도 잡을 수 밖에 없는 썩은 동아줄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을 낳고 길러낸 생물학적 부모마저 외면한 아이들이니 제 목숨 하나 건사하려면 붙들어야하는 몇 안되는 어른이었겠지. 그래서 더 안쓰럽다. 노동의 착취는 물론이고, 정신적 세뇌와 때때로 이어지는 성적 유해는 어디든 도움을 요청 할 길이 없고, 도망 칠 수 없는 감옥이었을게 눈에 그려져 책 표지 색처럼 아이들의 세상은 늘 회색빛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 몰랐고, 이게 나쁜 것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던 세상이라 아이들의 무지가 이상한게 아니라, 그쪽으로 눈을 돌리지 못했을 어른들이 이상한 것임을 이 이야기로 씁쓸하게 또 한번 배워내는 중이다.

📖하니포터 10기로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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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피버 - 긴 겨울 끝, 내 인생의 열병 같은 봄을 만났다
백민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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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리디 어워즈 로맨스 E북 신인상을 수상한 백민아 작가의 대표작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치유와 희망을 배우는 이야기로 나도 위로받고싶기도 했다. tvN에서 드라마로 제작되 2026년 01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하니 늘 그러했듯 영상화 되기 전에 원작을 읽어보며 글로서도 눈앞에 영상이 그려지는 신기함을 누려볼까한다.


일단 700페이지의 벽돌책. 얼마전에 500페이지도 근근히 읽었는데, 712페이지? 와... 나 괜찮을까 싶어하며 주말에 깨작깨작 책 앞부분을 넘겨 읽었고, 이후에는 생각보다 후루룩 읽어졌다. 마치 대본집을 읽는 느낌이랄까? 드라마로 제작되어 있지만 아직 방영 전 이니 대본집이 나온건 아니었다. 원작을 가지고 극본을 연출하는 사람도 원작자 백민아 저자가 아니라 김아정 드라마작가님이셨다. 그러니 이건 확실히 드라마를 위해 각색된게 아닌 원래 소설인데도 배역들이 각자의 대사를 갖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니 술술 읽혀들어가게했다.

완독 후 곰곰이 생각해봤다. 다양한 드라마를 챙겨보진 않는데,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이 몇 개 있더라구.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드라마와 비슷한 결을 띄고 있는 뉘앙스를 얻었다. 이 소설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따뜻함과 폭닥함을 갖고 있다면 이해가 빠르려나? 요즘처럼 자극적인 소재들이 난무한 컨텐츠들 속에서 잔잔하겠지만 그래도 여러번 눈길을 주고 싶은 사람 사는 이야기. 아픈 날도 있고, 더러는 오해로 가득차 있어 서러움으로 움츠러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곁에 있는 사람 덕에 살아낼 용기를 얻고, 더 잘 살아가고픈 욕심이 생기는 이야기. 딱 그런 결을 띄고 있어서 어찌보면 심심할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슴슴하니 목구멍에 걸리는 것 없이 후루룩 넘기며 속을 뜨듯하게 데울 만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나에게 그들은 그렇게 기억이 될 듯 하다.

소설은 트라우마로 인해 상처를 안고 시골 학교로 2년간 근무하고 돌아갈 교환교사 윤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름은 따뜻하고 화사한 봄인데, 얼굴에는 곧 비가 쏟아 질 듯한 흐린 상태이며 교류도 적고 말수도 적은, 어둠이 가득한 봄선생. 그러한 무채색의 봄선생에게 나비처럼 다가오는 남자 선재규.(소설을 읽은 사람은 알 것이다. 내가 나비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외형은 근육질의 키크고 사투리 짙은 걸쭉하고 장대한 청년이라는 점. 팔랑팔랑 나비가 아니라 저벅저벅 대형 나방이라 해두자( ͡~ ͜ʖ ͡°))

고2담임 윤봄과 학급 학생의 보호자이자 삼촌이며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 없는 윤봄과 정 반대의 결을 지닌 선재규. 윤봄이 아는 선재규의 처음과 선재규가 처음 마주쳤던 윤봄은 다른 시작이었고, 몇몇의 사건으로 인해 윤봄은 제 이름을 찾듯 환해졌고, 밝아졌으며, 과거의 오해들이 해결되지 않은채 딱딱하게 굳어져있던 편견의 꺼풀을 벗어낸 선재규의 뒤 늦은 성장의 시간이기도했다.

깍쟁이같은 서울여자와 투박하지만 내 사람 챙기는 것 하나는 기가막힌 시골 직진남의 조합. 유명한 대학교수 아버지와 수려한 외모의 배우 엄마 아래 부모의 장점만 물려받은 봄과는 상반된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내던져 졌으며, 친 혈육도 아닌 어찌보면 남남이기도한 조카를 데려다 키우는 자수성가형이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곧은 남자. 보여지는 것에 익숙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밀이 많고, 보여지는 것에는 상관없이 내실을 다지고 자기 사람 챙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성향마저도 다른 주인공이다. 일단 윤봄과 선재규는 어떠한 성정도 겹치지 않는 극과 극의 사람이다. 그래서 이 조합이 재밌다. 혼자 있으면 세상 단조로운 삶이지만 둘이 맞붙여놓으면 사소한것도 웃게되고 걱정스러운 일들도 별게 아닌 듯 되어버리니 각자가 가진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좋은 조합이기도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에겐 좋은 사람이 끌어주고 나서주기도 한다는 점. 한결을 걱정하는 교사 봄. 반 친구 세진의 예민한 내신관리에 같이 마음쓰고 불안한 마음을 잡아주는 한결. 부모가 없다는 설움이 덜하도록 애쓰는 삼촌 덕에 큰 이탈 없이 잘 자라주고있는 한결. 방관만 할 뿐 직접적인 도움의 손길이나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 속에서도 오갈곳 없는 어린 재규를 재워주고 마음써줬던 숙박업소 사장님. 배정된 업무에 대한 예민함보다 같이 으쌰으쌰 잘 해보자며 밥친구도 되어주고 걱정거리도 분담해주는 2학년 1반과 3반 담임 선생님. 첫 만남의 오해는 오해로 끝이나게 했고, 너무 사랑하고 애틋하고 잘하니까 더 잘 하길 바랬던 세진과 세진 부모&오빠와의 관계성. 답사 때 만났던 학생을 기억하고 가출임을 짐작 후 외면하지 않고 세진을 챙기며 낯선 곳에서의 불안함을 경험하지 않도록 챙겼던 필립의 귀한마음. 핑계의 구실을 삼고 싶었고, 저보다 잘난 동생이 얄밉고 그래서 모든 탓을 돌리며 자신의 잘못과 일그러진 행실은 외면하는 강자인척하는 약자 윤청과 다 져주고 큰 소란 안 일으키려하는 윤봄. 자연재해로 불안하던 밤, 자신의 집을 내어주며 동네사람들의 안위를 챙기던 재규.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를 챙기고 병원에 데리고가 검사하고 예방접종 놓아주며 버려진 생명에 대한 마음을 쓰기도하는 봄. 자신의 신변도 보장하기 못하던 낯선 중국땅에서 자기를 챙기기보단 남의 위험을 모른채 하지 않았던 청년 재규와 그 고마움을 알고 지금까지 함께하려는 중국 사장님. 각각의 단상들이 조금 뒤죽박죽 적혀있긴 하지만 어느 하나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엮여있고 설킨 관계이지만 서로가 꽉 붙들고 있기에 살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못하면 도움을 받아 볼 수도 있었고, 그 고마움을 앉고 살다 내 능력에서 해결이 가능 하다면 기꺼이 마음을 써가는 과정을 만나봤다. 사람 윤봄이 누릴 인생의 봄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깨우는 계절의 봄도, 마음을 다스리며 주변을 바라보는 공기의 흐름의 봄 마저도 선한 누군가로 인해 순풍처럼 밀려 올 수 있고, 밀려 보낼 수도 있음을 알게 했다. 봄이 모르고 살아온 재규의 어린시절을 보듬기도했고, 봄이 이야기 후반부에 겪게되는 마녀사냥과 그 사건의 실마리를 끄집어내는 것도, 내 사람 챙기고픈 애정의 공기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봄의 열병이 아니라, 세상 모든 기운을 끌어오는 따뜻한 세상의 시작과도 같은 그럼 봄.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선한 사람으로 살고싶어지게 만들었고,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2026년 1월부터 종영 후 마주하게될 그 해 봄 역시도 따뜻하고 산뜻하길 바라게된다.

우리에겐 이 봄이 다시 만날 수 없는 유일한 봄이니까.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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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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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읽은 지 두 해가 지났다. 저자를 키운 두분을 떠나보낸 후 다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줄 알았다. 보고픔에 대한 해결이라기보단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속으로 삼키지 않을까 생각 했으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이들이자 가장 이해하고 싶던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노년 탐구'에세이를 출간했더라. 역시나 저자다운 극복의 방식이구나 싶었지. 당신을 알고 싶다고,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말에 하나같이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삶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던 이들의 속내. 그리고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당신들의 진심에 대한 것들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랬을지도 모르겠고, 이야기를 하고팠을지도 모르는데, 어느하나 물어보거나 눈길을 주지 않았기에 스스로 단절시켰을지도 모를 아쉬움에 페이지마다 마음이 쓰여 쓰다듬게되는 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곧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사람 사는 이야기. 이번에도 나는 저자덕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알아가는 노년 탐구와 노년 예습의 기록이다.



📖일흔이 넘어도 여전히 내가 모르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 스스로 뒤통수 치는 기분 좋은 배신이, 삶에 숨겨진 또 다른 재미라는 걸. 그녀는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시시때때로 변화되는 세상이라 한치 앞도 모르는 내일이라 했다. 그래서 책을 통해 현재의 노년을 학습하지만 이 예측이 나의 노년과 같은 결을 띄고 있을 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다. 가늠을 하는 것이지 확고한 확정의 미래라 믿을 수도 없다. 이러한 마음이 이 파트의 정열님에게도 해당되는 거겠지? 그녀도 당신이 할미 래퍼가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비록 원하는 그룹의 새로운 멤버가 되진 못했으나 일단 도전이라는 걸 해봤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고 싶은 일에 용기를 내본 자신에게 오히려 더 고마운 마음이 든다는 뿌듯한 표정이 눈 앞에 그려졌다. '수니와 칠공주'의 최초 연습생의 자격도 주어졌으니까, 데뷔 준비하는 76세 래퍼 연습생이라는 신박함까지 얻은거잖아? 이래서 나이드는게 신나고, 재미난 것 같아 그녀의 세상이 부러워진다. 나는 잔잔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일상인데, 나보다 더 재밌게 사시는 것 같으니 샘이 나기도 했다.


📖'적응'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노년의 삶의 어느 시기보다 많은 것을 잃고, 많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 ... 그 시간 앞에서 어떤 이들은 당황했고, 어떤 이들은 분노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노년의 적응은 또 다른 말로는 노년의 감내 이기도 했다.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점이다. 부정하기엔 몸이 먼저 반응했으니 따르는게 마음을 덜 다치는 방식임을 알지만 뜻때로 되지 않아 서글프다. 그래서 당황하기도하고, 자책하기도 하겠지. 그럴수록 하루 세 끼를 건강하게 챙기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워 나가는 것에 습관을 가지라 일러주셨다. 나에게 대접한다는 마음, '잘 먹겠습니다'를 넘어선 '잘 살겠습니다'의 기도. 적응+훈련=열심히 살아온 당신이 그 증표라는 것에 고마워하기. 당연함이 제일 어려운 것임을 알려주는 말들.


📖노인들도 세상 살아가는 걸 배워야 해. 스스로에게 너무 실망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폴더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꿔 사용해보기. 키오스크 주문해보기. 무인 매장에 카드 인식 후 들어가보기. 딸이 배송 주문해주는 화장품 말고, 올리브영에 직접 가서 테스트 해보고 마음에 드는 화장품도 구입하고 적립을 해보기.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커피 주문해서 사진찍어 자식들에게 자랑하기. 카톡 어플 깔아 손주들과 일상 대화 나누기. 지금껏 안하고 못하고 살아 왔던 것에 야금야금 하나씩 할 수 있는 목록으로 전환해보기.

내가 친정엄마에게 가르쳐주는 지금의 세상살이 방식이다. 30여년 전 당신이 나를 키웠다면, 지금은 내가 당신의 새로운 시선이 되어 하나하나 일러드리고 있다. 어렸던 내가 넘어지면 일어나길 기다려주셨던 것 처럼, 지금의 나는 진땀 빼는 낯선 기계 옆에 나란히 서서 시연도 해보고 직접 하실 때엔 성질머리와 세트로 손이 먼저 가기보단 눈짓으로 그거그거 누르라며 어설픈 안내자로 살고 있다. 잘했다고, 다음에 또 한번 해보자 하며 살살 구슬리고 어르고 달래고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도 딸이 곁에 있어서 배울 수 있네 라며 말하시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당황하면 포기하지말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잘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말해보라고 전한다. 그러면 열에 여덜은 무조건 천천히 가르쳐 주실테니 타인의 손길을 거절하지 말라고, 혹여나 안 해주면 속으로 '에잇, 너도 나이들어 봐라!'라며 얄미운 악담을 읖조리면 엄마가 덜 부끄러울거라고 같이 키득거리며 웃어넘긴다.

노년은 모든게 멈춘게 아니다. 계속 배우고 얻어내고 쌓아가는 똑같은 생의 과정인건데 다만 그 소화의 속도가 더딜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위축되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도 움츠려 들까봐 걱정이되기도 한다. 우리 쪼그라들지 말자.


📖나는 결코 여든의 마음이 되어볼 수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저자도 그러하고, 나도 도그러하지만 온전히 여든의 마음을 스캔하듯 완벽하게 습득 할 순 없다. 그건 아마 일흔아홉도 못할껄? 그래도 우린 저자 덕에 짐작은 해봤으니까 막상 여든에 도래했을 때 덜 당황하고 의연하게 대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미리 맛본 여든의 세상에 감사하게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한 노인을 지키는 데 필요한 여러 눈길 중 하나가 되기.

나는 이 말을 듣고 지금껏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었나 아쉬워했다. 어린 것들에 대해서만 손길과 눈길을 주고 살았다. 어쩌면 그건 정말 당연한 사회 속 공동체가 가지는 자세 일 것이다. 헌데 그만큼 한 노인을 지키는 데에도 시선들이 필요했다. 목적없이 방황하는 사람이 없는지, 무언가를 하려는 행동에 더딘 움직임이 있는건 아닐지. 일단 기다려주며 시선은 따라가되 정말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사근히 다가가 의중을 묻고 손길에 보탬이 되는 것. 기다려보다가 누구의 손길 없이도 이뤄내어 제갈길을 가신다면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어보는 것. 그러한 눈길을 습관화 해 보는 것. 당신의 노년과 나의 노년에 힘을 얻는 시선을 추가하고 포개어보는 방식. 절실한 세상살이임을 알고나니 이 문장이 기특해 계속 쓰다듬게 된다.



📖작가님은 아직 모를 거예요.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하루가 어떤 건지. 그분들에겐 어쩌면 작가님과 나누는 통화가 하루의 유일한 대화일지도 몰라요.

사춘기 시절엔 누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싶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 아쉽고 서글퍼진다. 가족이든 친구든 세상은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여겨 입을 다물게되고 그렇게 옹졸해진 입가 주름은 더더욱 열기 어려워진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활동을 통해 '독거노인 안부 묻기' 봉사활동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자체 제도에 대해 무지한 것도 있겠지만, 홍보가 덜 된것도 있지 않을까. 몰라서 못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이러한 활동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많은 이들이 필요로 한지 홍보가 더 된다면 많은 이들의 소통과 다정한 참견이 버티는 삶에서 살아내는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이토록 많은 띠지를 붙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며 앞으로 있을 날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돌려 보게 될지도 몰랐다.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없으며, 지금 함께하는 가족들이 훗날에도 영원 불멸하게 존재 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사는 꿈 많은 인간도 아닌데 왜 앞으로의 시간들에 포기하는 법을 모른체하며 살길 바란걸까.

책 표지에 세로로 적힌 문장을 다시한번 매만져본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이 한마디를 통해 어느 존재의 인간이든 어떠한 형태로 변화되는 자신에게든 홀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른 포기를 통해 존재의 의미까지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있어 꾸준히 재밌고, 촘촘히 신나게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끝까지 재미난 사람이고 싶으니까!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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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 미깡의 술 만화 백과
미깡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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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하는 주류의 세계와함께 철마다 먹는, 분위기에 맞춰 마시는, 상황에 따라 즐기는 술 이야기를 들어보며 어렵지않은 주류 만화 사전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즐겨보기로했다.

술 매니아 답게 목차는 1차와 2차로 나누어두었다. 1차에서 한잔, 2차에서 또 한잔 하자는 그런 의미겠지? 1차에서는 서양술을, 2차에서는 동양술에 대한 이야길 하는데, 아는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어 재미나고, 모르는 이야기는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를 알려주는 듯 해 신기한 눈빛으로 그림을 따라가게된다.

미깡은 성인 이 된 후 이어진 술과의 추억도 꺼내어주는데 술쟁이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줬다 싶은 호프집 알바시절은 물론이고, 직장인의 퇴근 후 회식자리에서 마주하게된 폭탄주나 잊을 수 없는 신혼여행에서의 캔맥주에 대한 이야기. 매년 가족이 둘러앉아 매실 꼭지 따는 것은 물론이고(이제는 미깡의 딸이 그 일을 해준다) 100일 후 술만 건져내어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술정에 대한 소소한 일과들을 풀어낸다.

각 주류에는 짧은 호흡으로 술와 저자와의 인연에 대한 것, 마지막엔 술에 관한 지식도 알려주는데 길지 않아서 더욱 집중하기에도 좋았고, 각 회차속 소 주제는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나같은 방구석 홈술러라면 그날그날 내 앞에 차려진 술상과 주류를 책 속에 담겨있는 회차와 맞추어 보며 한잔을 기울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나 1차 서양술에서의 폭탄주, 잭콕캔, 와인, 샴페인에 대한 파트, 2차 동양술에서는 희석식 소주, 막걸리, 매실주에 대한 기록과 내 추억이 많이 겹치는 것 같아서 더 빨리 읽혀지고 더 아끼게되는 페이지였다.


직장인생활 10년 정도 해 본 사람이라면 아는 회식에서의 폭탄주 추억. 코로나 이전에는 회식도 자주했고, 시작하면서부터 소맥 말아서 젓가락으로 잔 속을 탕탕 치며 섞어주고 후루룩 다 마셔버리던 기억이 가득하다. 퇴근 후 회식장소로 가면서 숙취해소제 종류별로 목구멍에 털어넣고, 가방에 선임, 부장, 이사의 몫까지 챙겨가서 하나하나 챙겨드리며 이쁜짓하려 애쓰던 시절. 이제는 그러한 회식 문화가 사라졌고, 부서장도 술을 즐기지 않는 분으로 교체된 후로 이러한 폭탄주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게된게 떠올라 다들 이런 직장인 시절을 겪어왔구나 싶어 공감이 되었다.

이제는 뭐 남편이랑 고기집 가서 소맥 한잔으로 즐겁게 시작하는게 둘이 즐기는 소소한 폭탄주가 명맥을 이어가고있는거지.

저자의 부부가 신혼여행지에서의 잭콕 캔 추억을 떠올려주었다면 나에게는 코젤 흑맥주가 그러하다. 처음 가본 체코. 처음 마셔본 짙은색의 맥주. 입술이 닿는곳에 얹어진 굵은 설탕 알갱이, 커피인가 카라멜인가 싶은 짙은 내음과 함께 들어오는 맥주의 향. 그래서 신혼여행 다녀온지 11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다. 언제 한번 또 우리는 체코에서 흑맥주와 꼴레뇨를 즐길지 상상만 하곤하는데 이러한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한 순간으로 남는 듯 하다.


지금도 여전히 소주는 잘 못 마시지만 대학 1학년 때에 20도가 넘는 알콜램프 속에 빠진 듯한 그 아찔한 순간. 이걸 왜 마시나 싶은데, 한방에 목구멍으로 털어놓던 동기들, 다같이 내일이 없는 듯 소주병을 둘러놓던 선배와 교수까지. 지금이야 소주의 도수가 반으로 훅 줄었지만 그럼에도 세상의 쓴맛을 한 병에 꽉꽉 눌러 넣은 듯한 소주 이야기도 담겨있다.


부지런한 엄마 밑에서 자란 딸래미들은 매실에 대한 기억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땡글거리는 열매를 씻고 말리고, 이쑤시개로 툭툭 떼어내는 꼭지의 잔손질. 너무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져 엄마의 잔꾐에 넘어가 아작하고 씹었을 때 손발끝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신맛의 강렬함. 또 한번 딸래미 속인 것에 뿌듯해하는 엄마의 쳐진 눈꼬리하며, 그 사이 항아리 소독하고 닦아내고 엎어둔 것 다시 원위치 시킨 후 켜켜이 담느라 바쁜 아빠. 어떠한 의식을 치르는 듯 진지하고 각이 살아있던 손놀림까지. 은행에서 얻어온 숫자 큰 달력에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는 매실주 뜨는 날. 그 날이 되면 또 한번 이뤄지는 매실주에 대한 경건한 손놀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했던게 남아있음에도 올해도 또 하는 우리집의 연례행사. 명절에 삼촌들 오면 챙겨주고, 감사한 사람들, 부탁해야하는 순간에 빈손이 부끄럽지 않도록 챙기게되는 고귀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던 매실주. 그래서 그런가 미깡의 술 이야기는 술에 대한 기록 뿐만 아니라 술이 가지고 있는 독자의 추억까지 끄집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어 마음에 드는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술을 안 먹는 사람은 여전히 안 먹을테고,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저것 알고싶고 다양하게 즐기고싶은 술의 세상. 어떠한 이야기는 추억을 끄집어내기 딱 좋은 향긋한 술의 단락이 있고, 에일 맥주 같은 파트들은 전문적으로 찾아보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귀한 지식이라 알은체 해보고싶어지는 부분이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영화속 한잔, 거기에 더티 버전의 마티니라니. 언제 한번 바에서 시켜보고싶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파트.

사케집에서 맨 아래에 적혀있는 제일 싼 제품 말고, 이제는 알은체하며 라벨 보고 사케 고르는 능력을 키워보는 단락까지. 잔잔바리 지식으로 술쟁이 레벨 올리기 이만큼 좋은게 있을까 싶은 에세이.



뒤풀이 외전의 '좋아하는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애써야하는 필수 생활습관까지.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다양하고 맛있게 술 즐기려면 진짜 미깡의 말대로 해야 할 듯 하다. 먹는게 좋고, 마시는게 행복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즐기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미깡이 건내주는 주류 생활 모음이 근래에 만나본 제일 재미난 그림 에세이로 남을 듯 하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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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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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전 지식 없던 인간은 시봉이가 개라는 것과 어지간해선 도전 하지 않는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는 것에 대한 압박과 걱정이 컸다. 일단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멀찍이서 관상용처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바라보는 것만 좋아한다. 이건 자라온 환경에 대한 영향일 수도 있을 듯 하다. 물론 온전이 이시봉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가 개-사람에 대한 연대가 있을법한 이야기에 젖어들며 편히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며 읽으려 도전했다. 일단 휴가 때 읽으려 했으나 근 한달이 걸려서야 완독하게되었고, 명랑한 이시봉을 앞세운 채 서로의 전유물로만 남기려했던 각자만의 사랑과 욕심 속에서 상황에 관계없이 반박없고 원망없는 이놈, 이시봉 요녀석만이 견주를 향한 애틋한 시선뿐임을 알게되었다.


제목부터 여기 주인공은 시봉인 듯 하지만, 남겨진 시봉을 데려다 키우는 시습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리고 시봉을 데리고 왔지만 여기엔 없는 아버지. 시봉의 부모, 그 부모를 보살피던 김상우와 박유정이 두터운 이야기의 핵심일테고, 시봉을 둘러싼 어딘가 하나씩은 헛점이 있는 정용, 수아, 리다, 동생 시현의 세상이 그려지고, 시봉을 데리고 왔으나 지금은 사망한 아버지 주변으로 동료였던 이시봉아저씨를 통해 차마 가족에게 꺼내지 못했던 회사에서의 이야기들을 듣게된다. 김상우와 박유정, 그리고 앙시앙 하우스의 대표인 정채민이 비숑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려 했던 이유. 그리고 박유정의 아들인 김태형의 존재까지. 거기에 사이사이 끼워지는 비숑과 스페인 왕가의 이야기는 너무 촘촘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진짜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해 나 마저도 시봉이가 진짜 왕가의 뼈대있는 개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빼곡한 글 뿐이며 어떠한 사진이나 그시절 초상화로 남겨뒀을 법한 그림이 삽입되어있지 않음에도 눈에 그려지는 풍경들. 허리는 잘록하고, 치마는 풍성하며, 목이 버텨줄까 싶은 부풀린 머리를 한 왕비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머리스타일을 빼다 박았을 듯한 비숑들까지. 바로 직전까지 그들의 초상화를 본 것 처럼 선명해서 역시나 저자다운 표현력에 감탄하게된다. 그래서 계속 홀린듯 보게되고, 또 한편으론 시봉이 쟤가 뭐라고를 연발하며 이들의 격한 감정들을 따라가게된다.

소위 그사세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아는 세상과 사뭇 다르다는 것. 자기들만의 나라가 있는 듯, 그 곳에서는 그들이 만든 룰을 따르고, 그들이 창시해낸 역사를 이어가려는 것. 그게 내가 만난 앙시앙 하우스의 꺼풀이였다. 정채민 대표가 꾸려놓은 판에 뛰어든 사람들. 그게 법이라 믿고 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속게 되고, 빠져들게 되며 비숑들을 추대하게 만드는 과정. 하필 거기에 시봉도 한 몫 할 수 밖에 없는 뿌리였음에 시습이 정채민 대표를 외면하더라도 한 번은 앙시앙 하우스를 밟게 되어, 이 사달이 나게 되지 않았을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번은 겪었어야할 시봉의 혈통이 가진 마음아픈 역사 정도?


이시봉은 사람의 이름을 띄고 있지만, 결국 개다. 그리고 그 개의 마음을 빼다 박은 시습을 통해 세상을 흘깃거리며 주변을 보게 만든다. 백수 청년. 새벽에 시봉과 아파트 뒷산 산책과 공원 혼술 걸치고 내려오는 한량같은 삶. 학교 중퇴에 무력감만 쥐고 사는 듯한 청년을 따라가다보면 그와 반대로 사는 여동생 시현의 세상도 보게되고, 헬스에 미친 정용이나 입이 험한 편의점 알바생인 수아를 통해 웹툰같은 인물들 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인물들로 다시금 덧씌워진다. 사람과 대면하는 것 보다 개와 마주하는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 그리고 가족보다 더 애틋한 관계 속에서 '이 작은게 뭐라고....'를 연발하며 명랑하고 짧으며 투쟁 없으나 반박도 없고, 무얼해도 견주만 바라보는 이 놈의 순수한 본능 덕에 사는 것임을 느끼게 만든다.


박유정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종교인이 종교만 생각하고, 아이 엄마가 자기 아이만 생각하고, 고리대금업자가 이자만 생각하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만 보려만 한다는 점. 그게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풀어내는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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