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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여전히 있을법한, 그렇지만 이게 SNS나 숏츠에 주목받진 못할테고, 하지만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세상살이의 갈등과 상처받는 방식이다. 싸워 이기는 싸움닭의 마음보다는 이제는 좀 에둘러 가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고, 괜히 연류되지 않도록 한 발 물러나고 싶다. 괜히 나대지않으려하고, 공정한 잣대에서 측은함을 무기삼는 자에게 연민을 품는 행위 자체를 잘라내고싶다. 학연, 지연, 혈연 그러한 끄나풀에 스텝이 꼬이기보단 담백하고 아닌 것과 맞는 것에만 집중하고 살고싶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게 아니라 더욱 성질이 뻗친다.
이게 순리인지 모순인지는 구분을 하지만 그 스토리가 나를 기점으로 뻗어간 거라면 그 어떤것도 확신하지 못하게된다.
저자는 말한다. '저는 오늘도 수많은 모순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혼자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또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만은 않은, 선택적 고립의 욕망도 거기 속할 것입니다.' 라는 말에서 공감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모순이 가득한 사람인데, 모순을 모순으로 대립할 것인지, 모순이라도 FM대로 마주할 것인지는 매번 당하고 깨우치면서 그때그때 달라진 사람으로 살 듯 하다.
하... 나는 오늘도 바르고 곧은 사람은 글러먹었나보다.

📖실패담 크루_ 실패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실패는 현상이 아니라 기분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실패담을 공유하긴 하나 결국 잘난거 티내고싶어하는 모임. 조합 자체가 우리가 아는 실패의 결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잘난맛에 사는 사람들인데 이 실패에 대한 히스토리가 온전한 뜻을 담고 있긴할까 싶어진다. 성대표가 나를 더 챙기는 이유 또한 아끼는 의미의 단어적 온전함 있을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세히 그 의중을 알아야한다. 진실로 성대표가 아끼는 마음이 커서 그간 인턴 시절 동료를 고자질하며 타인을 누르고 일어서려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며, 이 모임의 신입 회원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질투삼아 발판삼아 우월함을 과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걸 깨우쳐야된다는 점인데, 아마 이야기 속 나는 끝까지 진실의 의중을 모를 듯 싶다.

📖언니_ 고말다는 말, 아니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어딘가에 한 줄 들어 있기를 나는 절실한 심정으로 바랐다.
모두가 평등하다는건 말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과 최소한의 인간됨은 필요했다. 있는 놈이 더하다지만, 있는 놈이 더 모르기도 하다.
이게 당연하게 여겨져서 단념을 하는게 당연한 세상살이는 아닌데 매번 약자의 편에서는 굽히고 들어가야하며 모든게 가능하다는 예스형 인간이 되어야한다. 감히 넘보지 말아야 하는 것을 넘보는 것 마냥 기본적인 권리도 무시당하고 최소한의 대우도 없다. 그 어떤것도 당연한게 아니다. 그래서 언니의 노력이 더운 아깝고 아쉽다. 여기서 이럴 사람이 아닌데, 여기서 이럴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닌데.

📖선의 감정_ 그냥 내가 오늘은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서, 교수님이랑 이거 같이 마시면서 엄마 생각하고 싶어서, 그래서 사왔어요. 이거 드세요. 나쁜 거 아니예요. 캔커피 중에서 제일 비싼 거예요.
특수한 직업에서 얻어지는 고충은 그 강도가 세다. 그리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에 기대어 바라는 사람들은 간절히 짙다. 그러니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의료진은 업무 이외의 스트레스가 높을 수 밖에 없다. 다들 왜 특수 분야에 지원을 안 하는지도 다들 알 것이다. 상급병원을 한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은 알지. 살려도 죽어도 모두 의료진을 탓하며 울부짖는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보호자로 인해 더더욱 마음을 쓰지 않으려하는 기계적인 작용을 하게되는 의료진. 교수의 선함은 어디에 기거하고있다고 봐야할까. 단순히 환자와 보호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심적인 위로를 하는 것? 내가 이 단편을 완독하고 느끼는 교수의 선함의 결은 챠트 사진을 통해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과 그걸 환자에게 알리고, 타과로 전과시켜 경과를 보자하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의료인의로서의 자기 역할이라 봤다. 그리고 안복희 환자의 보호자였지만 지금은 환자로 온 따님을 혹여 의료 소송이나 기타 보복을 먼저 생각하고 피하기보다 내원한 환자로서 대하는 방식이었다. 뭘 더 잘 해주고, 뭘 더 마음 써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당신들은 전문의 이니까 나보다는 더 잘 아는 많이 배운 사람들이니까 내가 모르는 내 가족에 대한 것들을 좀 살펴봐주고 알려달라는 것 그뿐이었다. 내 쫒기보다는 조심하라고, 아프면 또 오라고 봐주겠다고, 그렇게 대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병원비 긁어주는 사람 아니고, 아픈곳 치료하러 오는 환자로 대해준 사람에 대한 감정에 우리는 선(善)의를 품고 있구나로 느끼고 있다는 걸 한번 더 인지시켜주었다.

📖빛의 한가운데_ 아니야,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야.
최근 화두로 떠올랐던 딥페이크. 그 사건에 대한 걸 피해자가 아니라 피의자의 보호자가 겪게되는 감정선을 그려두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예민한 사안에 대해선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글을 쓰게되고, 피해자의 심경에만 마음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피의자의 부모가 가지는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에 대한 걸 말하고있다. 더군다나 안희는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와 엮여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아들이 한 짓이고, 처음엔 아이들의 같은 반 학부모였다가 지금은 절친한 동네친구가 된 미령이 사건에 연류되어있었다. 안희의 남편은 자신의 아들을 먼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안희는 아닌건 아니라는 것에는 흔들림이 없다. 미령이 연예인이라 얼굴이 다 공개된 공인인데 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남편 또한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어필하고있다. 이 행위 자체가 잘한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렇게 크게 벌 할 일도 아니지 않냐는 안일한 피의자 가족의 대응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신고하기만 해보라며 엄포를 놓는 남편.
부부끼리 결정 하는 것에도 이렇게 갈리는데 세상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며 어떤 이의 의견을 존중해줄지 궁금해진다. 순리가 먼저일까 가족의 의리가 먼저일까. 세상은 안희의 결정이 모자지간의 결여된 애정이라 볼까 아니면 옳은 가르침과 선택이라 말하게될까. 그래서 당신은 뭐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가속 궤도_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았다.
소진은 매 순간 두려움으로 살아야하는 사람, 기욱은 한때의 집착이 한 시절 넘치는 사랑의 표현이라 여기겠지. 이 이야기에서 소진이 겪은 것들만 채워져있다. 기욱의 입장은 없다. 오롯이 한때는 사랑이었으나 이후에는 과한 집착과 보여주기식 애정으로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두었다. 공간을 피했고, 시간을 넘어섰음에도 소진은 그 감각을 소멸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실체없는 두려움과 익명이 주는 불안감이 모두 과거의 그때 그 사람일거라는 확신을 하게 만든다.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의 평온한 세상이 깨질 것 같은 과거의 이력일 것이고,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것은 온전한 나로서의 삶과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내 탓인냥 말하는 상대에게 상처받지 않는 마음이라 보였다. 불안은 불안을 낳는다 했지. 그리고 피의자는 발뻗고 자더라도 피해자는 결코 발뻗고 편히 자기 어렵다는 걸 또 한번 느끼게 된다.(기욱은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 관장을 하고 아이들을 살피는 학원 강사로서 그때의 사건을 기억하긴 할까. 자신이 어떠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을 쪼아댄건지 알긴 할지 그 또한 궁금하다. 이 사건을 앞서 보았던 '우리가 떠난 해변에'의 작가와 피디를 소환해 과거 있었던 일을 알리고 지금은 어떠한지 그에게 냉소적인 마음으로 과거를 긁어내어보고싶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식으로라도 흠집 내고 싶은 독자로서의 까칠한 마음이라 해두자.)

📖사는 사람_ 내가 거대한 거미줄의 한 귀퉁이에 얽혀버린 날벌레인지 아니면 둔한 공모자인지 영원히 가려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관대한 호의라고 여겼으나 굳이 수고로운 내 행동이 필요없었을 사람에 대한 생각. 마음이 쓰이고, 챙겨줘야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오지랖이지만 그래도 잘 따라와주고있고, 발전되고 있는 듯 했으며, 보호자로부터 상처받지 않을테니 금전적 거래는 사양했던 은밀하고도 조심스러웠던 거래. 하지만 결국 괜한짓. 이러한 내 마음이 필요없이 상대는 원하는 방향과 계획된 스토리에 맞게 다음 스텝을 진행하고 있는 걸 보자하면 나는 상대가 학생이었는지, 학생인척 하는 학부모였는지도 분간을 못한 아둔한 사람처럼 여기게된다. (괜한 연민에 끌렸던) 둔한 공모자 이지만 스스로 그런 사람은 아니고 싶은 마음. 그게 택배로 온 지갑과 돈을 바라보며 괜시리 머리를 긁적이게된다.
처음 DM이 왔을 때 끊어 냈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에 대한 의구심에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싶다. 상대는 어떻게 해서든 나의 말캉하고 예민한 연민의 구석을 건드려 원하는걸 얻어내고도 남을 사람들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 그 거미줄은 어떻게 해도 털어낼 수 없는 얇고도 끈덕하며 기분나쁘게 섥히는 세계라는걸 깨닿게 했다. 사람으로 돈장사? 아닌 척 해도 결국 그거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