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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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저자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읽게 된 시기는 고3 2학기 후반이었다. 대입 수시1차 합격 후 내신과 수능시험의 예외인간으로 분류되어 4분단 뒷문으로 밀려났을 시절, 그때 정말 많은 책을 읽은 것 같다.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자리만 지키면 되는 나일론학생이다보니 그때가 독서 잡식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사에 대해 애정이 없던 인간이었지만 그 때 만큼은 이 책에 나온 곳 하나쯤이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 꾸러미들. 몇달만 있음 누가 뭐라 할 것 없는 성인이기에 혼자 배낭여행 삼아 전국기행도 갈 수 있을거라는 무식한 기대감으로 이야기들을 마구 먹어치웠던 문화유산답사의 꿈. 비록 시리즈에 나온 곳들 중 열 손가락을 채 꼽지도 못할 만큼만 다닌 방구석 기행자 이지만 기차만 타면 이 지역 어느 명소엔 이 문화유산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단박에 떠올리게 만든 저자의 글은 한국 곳곳을 다니면서 알은체 하기 좋은 이야기들을 가득 담아두고 있다.

오늘은 문화유산 답사기가 아니라, 저자의 인생을 답사 할 수 있는 유홍준만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챙겨서 기차를 타 보며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한 답사를 같이 시작해 볼 까 한다.



30년만에 내어 놓은 잡문집. 제목 그대로 작가의 어린시절은 물론이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집필의 순간, 가족과 친구에 대한 이야기, 살아오며 닿아있던 인연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부록으로 채워진 '좋은 글쓰기를 위한 15가지 조언'을 쭉 따라가보면 대단한 잡문집이며, 다시금 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낼 생각 없이 이 한 권으로 모든걸 끝내겠노라 싶어하는 저자의 욕심이 가득 담긴 모음이었다.

그가 말하는 글쟁이, 미술사학자, 문화재청장, 교수로서의 유홍준 인생만사가 담겨있으니 한 인간의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사이사이 현대사의 굵직 굵직한 사건을 온 몸으로 겪어낸 것을 들어보면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사람의 대단함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게 된다.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으며, 외면하지 않았기에 나는 방구석 쇼파에 앉아 느슨한 자세로 문화유산의 세세함을 알아 갈 수 있었고,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음에 감사하게된다.

큰 아버지 뻘 되는 저자의 이야기는 항상 재미나고 지루할 틈이 없었으니 당신의 일대기를 말하는 순간엔 얼마나 더 재미날지. 이제 국보급 역마살 글쟁이씨의 애틋한 세상에 스며들어본다.




📖우리 어머니 이력서_ "내가 죽으면 네 친구들이 죄다 문상 오는 게 장관일 텐데 그걸 볼 수 없는 게 서운하구나."

이야기는 2014년 어머니의 미수연을 맞이하며 나누던 이야기와 함께 저자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과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아두었다. 어머니는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일찍 결혼을 서두르셨고, 아버지쪽에서는 집안일을 해주고 제사를 지내줄 며느리가 필요로 했기에 맺어진 급한 혼사. 그리고 6.25시절 피난을 다니던 순간과 저자의 대학생 시절을 돌아보며 함께 추억하는 순간을 담아두었다. 사랑방 내지 꿀방으로 일컫을 만큼 데모꾼의 아지트 였지만 어머니의 너른 마음 덕에 배 곯는 청춘 없이 연탄불 한번 더 떼어가며 아침 먹여 보내주시던 모두의 어머니 같은 분. 그런 복작복작거리는 곳이었으니 아버지 또한 임종 며칠 전 우스개 소리로 하셨던 말에 아들이 하는 일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응원이 대단한것으로 보여졌다. 운동권에 있던 학업에 몰두하던 자식이 하는 것에는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응원하고 힘을 보태는 것을 보니 이러한 환경속에서 자라는 사람은 무얼 해도 자신감이 넘칠 수 밖에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루리라는 목표가 절로 생기는 거라고 느껴졌다. 그러니 잡문집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제 1장 인생만사의 마지막에 자랑스럽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거라 보여졌다.




📖문화재청장의 관할 영역_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것은 5대 궁궐과 40개 조선왕릉이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국보,보물뿐만 아니라 300억 평 땅속에 있는 매장문화재도 관리하고 1,200억 평 바다에 빠져 있는 침몰선 200여 척의 수중문화재도 관리합니다. 게다가 천연기념물고 몽골에 가 있는 검독수리, 태국에 가 있는 노랑부리어저새가 잘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문화재청장 시절 청장 10여 명이 모여 식사를 하며 모처럼 담소를 나누면서 하는 저마다의 업무 고달픔의 토로하게된 순간을 담아두었다. 각자의 시각으로 보며 통계청, 산림청, 경찰청, 해양경찰청까지 저마다의 관할 면적과 관리 범위를 말하다 제일 영역이 협소해 보이는 저자에게 화살이 넘어갔을 때 말한 내용이다. 마지막은 기상청으로 넘어가 업무 면적이 평수로 계산되지 않다는 말에 인생도처 유상수임을 느끼고 다들 해탈의 웃음을 짓게된다.

문화재라 하면 학창시절에 책에 있던 장소, 각각의 지역마다 한복을 빌려입고 들어가 사진을 찍는 장소, 외국인이 몰려와서 관광하는 코스가 끝이라 생각이 되지만 너머의 시각으로 보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채 땅 속과 바다 속에 뭍혀있는 것들, 그리고 발굴중이지만 정확히 시대를 파악하지 못해 연구중인 것들을 떠올려 볼 때 문화재들이 가지고있는 각각의 스토리를 떠올려보면 그 깊이가 대단하리라 여겨진다. 작은 토기나 조형물 하나에도 그 시대상은 물론이며 만들어진 계기와 지금껏 보관되어온 역사를 가늠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무언가가 후대에 소중히 보전해야 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빨리 생겨나고 빨리 소진되어가는 세상인데 과연 훗날의 그들은 우리가 쓰고 생활하는 것에서 시대를 가늠하며 사회상을 유추할 만한 존재성을 지닐지 책읽는 와중에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만들었다.



📖백남준: 나는 그분의 조문객이고 싶었다_ 백남준의 장례식다웠다. 어느 신문이 장례식을 보도하면서 "웃으면서 보냈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인간미 넘치는 장례식이었고, 무슨 공연장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흘렀다. 더불어 고인의 위업을 기리며 그의 족적을 남김없이 회상하는 하나의 감동적인 퍼포먼스였다.

얼마전에 이적 콘서트 관람을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보았던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작품을 만든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니 흥미로울 수 밖에. 이야기를 읽다가 고인의 명복을 한국에서 빌 수 없는 조건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에 분향소를 나라에서 주관하지 못하고 한국미술협회가 장소를 빌려서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것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뒤늦게 알게 되었다. 융통성이 없는 조치라 봐야 할까 어느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는 곧은 관점으로서의 행정으로 봐야할까. 백남준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 예외마저 두지 않겠다는 것에서 저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인의 장례에 모국에서의 예우가 아쉬워 자신의 휴가를 써가며 뉴옥으로 떠나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과정을 담아두었다.

저자는 미리 백남준 선생과의 인연은 없었음을 먼저 일러두었다. 백남준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만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했음을 실토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펼쳐질 즈음 한국의 가정에는 비디오는 커녕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이니 당연히 생소했겠지. 세상을 보는 시각을 좀 더 빠르게 당겨온 인물에 대한 존경의 마음.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고인의 업적에 대한 감사함과 후대로서 그 뜻을 잊지 않겠다는 신념으로서 직접 가서 인사를 했던 저자. 누군가를 깊이 존경하고 진득하게 응원하는 마음이라면 아마 저자의 나흘간 행보가 충분히 이해되었으리라 보여졌다. 이 마음이면 진짜 뭔들 못 가겠어.



📖리영희: 나의 주례 선생님_ "그게 그거일 수 있으나, '나라'라는 말에는 파쇼 냄새가 나지만 '사회'라는 말에는 인간의 윤리가 살아 있다는 차이 아니겠어."

리영희 선생과 만남에 대한 스토리. 저자의 결혼식 주례사이며 유신독재 정권 시절을 살며 겪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 내가 체크 해 둔 페이지에는 더 좋은 글들이 가득하다.선이 굴고 멀리 볼 수 있는 법을 일러두는 것 부터 시작하여, 의사 결정에 대한 다른 견해 속에서 결정적 순간 큰일에서 의견 차가 생긴다면 신랑은 반드시 신부의 의견을 따르라며 인생 선배로서 경험적으로 드리는 충고라며 말씀하딘 것을 떠올리며 저자는 대학교수 발령과 미술평론가로서의 갈림길의 순간을 떠올리며 주례사의 문장을 되새기기도 했다. 이토록 두고두고 곱씹으며 매번 순간마다 이마를 치게 만드는 사람의 깊은 이야기. 혼인서약서에 천편일률적으로 적혀있는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 할 것이며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에 공한할 것을 맹서합니까?'에 나라가 아닌 사회라는 단어로 교정해두어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굳게 이어가길 바라는 먼저 산 인생 선배의 진짜 진심의 응원. 두 사람이 하나의 운명으로 사는 시작점에 진심을 다한 축복. 이토록 다채로운 삶의 순간마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최고의 복이라 느껴진다. 인간적 행복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러니 살아볼만한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 그게 최고의 주례인거지.

인생만사라는 말이 찰떡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신을 기르고 가르친 부모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 업을 이어가며 겪어낸 고충과 최측근이 아니면 알 지못하는 직업적 생리까지.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예술가와 함께 연을 맺고 예술의 동반자로 지낸 벗과 스승에 대한 이야기까지. 저자의 글을 닮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글쓰기 방법과 다양한 문장수업은 유홍준의 특강을 들으며 열심히 필기한 내용을 받아들고 복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의 글을 구구절절 다 담아두지만 질질끌고 좌르르 달려있는 핑계와 변명이 없어 좋다. 시대적이며 역사적인 스토리에 배우는 맛이 있고, 눈앞에 그려지는 세세함이 있어 담백한데 때로는 감칠맛이 있는 글맛에 계속 읽게만들고 책들을 수집하듯 책장에 좌르르 놓아두며 뿌듯해하는 나를 만들어 두는 것이 예사 글쟁이가 아님을 매번 감탄하게 만든다.

30년만의 에세이가 마지막 잡문집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시간 이후 또 변화되고 농익어있을 저자의 글빨은 또 그 나이와 시선으로 나타내어질 만한 글맛이 있을 테니 이후의 삶에서 더해질 깊이있는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유홍준만의 한국 문화 역사기행과 더불어 에세이가 촘촘하게 출간되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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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능동적
노연경 지음 / 필름(Feelm)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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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무엇 말고, 허상의 존재 말고, 그냥 나처럼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비슷한 생각을 하며 골머리를 앓아가지만 그래도 어쩌겠냐며 살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무던하게 살아내는 사람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양 팔을 뻗었을 때 들어오는 익숙한 곳들의 사람들 말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때때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비슷한 시절의 추억을 안고 살아내는 사람의 덤덤한 한마디가 간절했다. 이 마음은 단지 찬 바람이 옷 깃에 스미듯 찬 기운이 마음을 훑어내는 계절 탓을 해본다. 누군가의 이야기, 누군가의 속앓이를 같이 공유하며 당신만 그런게 아니고 나도 그러했다고 전해보고파진다. 그러니 우리 같이 뭉친 마음을 정성스레 보듬어보며 내 몫의 행복을 손 안으로 쓸어보았음 한다.



📖누구로 살겠는가_ 그래서 나는 2인자가 되길 선택했다.

내 스스로 날아오를 생각을 하기보단, 누군가를 도와 그들이 잘 되길 도와주는 것이 내 천성에 맞는 것이라 믿어 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이 어딨어?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지! 라는 생각? 그런거 애시당초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다. 저자가 그렇고, 나도 그렇다.

90년대에 나온 노래 임상아님의 '뮤지컬'이라는 노래의 가사같은 그런 사람?(미안하다. 내가 80년대 생이라서 비유 할 수있는 노래가 이것 만한게 없었다〒▽〒) 그건 진짜 일부였다. 내 인생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도 있지만 나로서는 조연도 제법 괜찮은 역할이라 믿고싶다. 주연만 있음 뭐해. 조연도 있어야 극이 살아나지! 저자는 쌍둥이 언니가 주인공이고 자신은 2인자가 되는 당연한 삶을 그렸다. 일찍 재능을 발견했고, 그 재능으로 빨리 날아오르는 혈육이니 당연히 비교되고 움츠러드는 것. 그런데 세상은 무조건 주인공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옴니버스의 영화처럼 한 단락에는 주인공이 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 주인공 친구1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재미난 생이고, 신기한 삶이다. 이번에 저자가 2인자로 극을 배정받은 거라 치자. 이 옴니버스가 한바퀴 다 돌아 갈 때 즈음 언젠가 주인공도 될 수 있을테니 조급해 하지 않았음 싶다.



📖직업에 대하여_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내 직업이 곧 나인 건 아니에요.

직업은 직업이고, 나는 나예요.

그래서 내 행복이 직업에 달려있진 않아요.

어릴 때 장래희망을 쓰면 미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말 보다 직업군을 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전문직종을 지칭하는 선생님, 간호사, 경찰, 아나운서로 적어 제출하다보면 직업이 나요, 내가 곧 직업군에 스미는 사람으로 되어져있었다. 나는 없고, 직업으로 불리우는 사람. 장래희망은 장래에 바라는 희망 뿐이었고, 지금 30대 후반의 나는 직업에 얹혀가는 삶으로 살고 있다. 직장인, 배 만드는 사람, 과장, 회사원. 그렇게 24시간 중 잠을 자는 시간을 뺀 시간의 대부분을 직업에 할애하는 사람이 되어 10년 넘게 살다보니 내 행복은 직업에 매달려 가고 있었다. 쉬는 날 행복하고, 월급 받는 날 기분좋고, 연봉 계약하면 뿌듯하고, 샌드위치 휴무로 얻어지는 날은 마냥 즐거웠다. 직업에 질질 끌려다니는 행복. 괜찮을까? 생각보다 큰 불만 없이 살곤 있는데, 이게 익숙해져 그런거 같아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다. 꽉 채워진 직업이란 존재. 그 틈새에 끼워진 행복에 마냥 즐거워하는 나. 아직은 괜찮은거 같은데, 어차피 직업에 매달려있는게 내 행복의 끈이라면 내 년의 나도, 내 후년의 나도 큰 굴곡 없이 괜찮은 상태이면 좋겠다.



📖소중한 조각을 찾으러 가는 거야_ 아빠는 네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으니 너를 다 이해하지 못해. 그래서 혹시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무서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니 꼭 말해줬으면 좋겠어.

책의 뒷면을 보면 추천사에 울컥하는 부분이 있다. 김상현 저자는 익히 아는 유명인이니 그러하겠다 싶고, 일러스트레이터 노선경은 저자의 쌍둥이언니이며 책을 출간한 작가라 가능하겠다만 중간에 있는 노상범이라는 사람의 추천사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노연경의 아빠이며 이 책에 제법 많은 지분은 보유하고있는 저자의 최측근이다. '한번 사는 인생, 다소 막 살아줄 필요가 있다'는 말과 '알아서 해라.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는 언뜻 들으면 무심한 사람의 한마디 같지만 이 말을 할 순간엔 어떠한 조언과 위로도 와 닿지 않을거라는 딸의 복잡한 마음을 알기에 무심하게 말하며 지금의 상황도 별일 아니라는 듯 그리 여겨주었음 하는 간절함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보듬고 키웠지만 네가 아니니 너의 온전한 마음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진득하니 껴안고 가고싶은 삶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재촉보다는 기다림을 택했고, 다그치기보단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그게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저자는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지 않은 듯 했다. 다행이다. 노연경에게 노상범이 있어서.



📖가족들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_ 같이 벚꽃 내리는 것을 볼 날이 30번도 채 남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치열하게 사는 동안에 가족들은 조금씩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무겁고 외면하고픈 순간이지만 미리 해놔야 하는 마지막 선택지였다. 가족들과 죽음을 이야기 함에 있어 우리는 제대로 대화의 끝을 본 적이 있었을까? 죽음은 멀리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발치에 있기도 했고, 그 수순이 찰나로 다가오기도 했다. 당신들의 진심을 오롯이 받들고 원하는 엔딩에 맞춰주고 싶다면 미리미리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화하는게 맞더라. 나의 부모도 저자의 부모처럼 나무가 되고 싶어 하셨다. 갑갑하니까 산에서 세상 내려다보고 계절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너머의 생을 기대하셨다. 우스개소리로 그거 비싸대. 한 그루도 아니고 두 그루 심어야하고 사시사철 관리하고 오래 관리해주는 사람 고용하려면 내가 돈 많이 벌어야하니 서둘러 갈 생각은 말라며 허락 없이 먼저 가지 마시라 웃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슬픈거 알지만 미리 슬퍼 말자 싶은 훗날의 이야기들. 그래도 꼭 해야 하고 내가 마무리하고픈 당신들의 마지막 문장.



📖우선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만 하고_ 그럼에도 서로 보살피는 것.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저자는 사람에게 많이 데였던 시절이 있다. 그래서 멈추는 순간도 많았고, 그래서 남들보다 살짝 더디게 굴러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무서울 수도 있겠단 생각을 어렴풋이 해본다. 때론 타인의 애살있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고, 걱정을 안고 바라보는 시선을 갈망하는 사람도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시선의 온도차는 달라졌고, 삶의 방식에 따라 바라는 시선의 깊이도 다름을 느낀다.

'너 괜찮아?'라는 물음에는 따뜻하고 말캉한 기운이 스민다. 괜찮냐는 물음은 많이 신경쓰고 있고, 많이 궁금하다는 말이 더 앞에 나서게 되지만 묵음으로 처리되어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묻고 싶은게 넘쳐나지만 일단 괜찮은거지? 라는 것으로 담백하게 의중을 띄워주길 바라게된다. 사람이 미워지고 모든걸 잘라내고픈 만큼 진절머리 나더라도 내 사정거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정중하게 묻는 안부는 내치지 말고 담백하게 답해주길 바란다. 서로 보살피며 사는 것, 나만 살기보단 당신도 살아주며 이 세상 심심하지 않게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너른 자의 관심이니 요정도의 관심에는 아무런 경계 없이 스르륵 넘어가주길 바라게된다.



📖요령 없는 삶_ 언제는 인생 조졌다더니 꽃 한 송이를 두고 사진을 찍어대며 좋다고 실실 웃고 있다. 바보에게 무슨 요령이 있을까. 그냥 요령 없이 살자.

사는게 내 맘같이 않아 여러모로 재미나다.(표정은 멍하고, 목소리만 호탕하게 웃으며 재미난 척을 해본다) 요령 없이 살면 눈 앞에 보이는 것들 먼저 해결해야만 길이 보이고 숨통이 트여진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채 내가 무얼 해왔는지도 기억 못하도록 급하게 살아가는 벅찬 삶. 헌데 그러한 순간에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고 마음을 뉘어놓고 한숨 돌려도 될만한 구석들이 있다. 마음을 비우고자 갔던 석달간의 발리행은 돌아와서 보이는 작고 귀여운 통장 잔고를 안겨줬다. 다시 현생을 살고자 돈 대신 몸을 써가며 보냈던 통학시간. 그때 본 구름들과 꽃들은 요령없이 산 덕에 거저 얻은 산물이었다. 지하철에 버스에 몸을 싣어둔 채 끌려가는 거였음 또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으니까. 남들이 열심히 달릴 때 저자는 숨고르기를 했고, 그러다 또 벅찬 숨에 목구멍이 죄여와 두번의 휴학을 택했다. 남들이 살면서 쉬어가는 타이밍을 당겨 쓴 것이라고 해두자. 요령없이 쉬어가는 두번의 텀을 당겨와 길게 쉬었으니 이제 요령없이 진득하고 무심하게 정속주행하면 되는거다. 그러면 되는거지 별거 있겠어?

마음이 아픈 적도 있고, 그게 몸으로 드러나는 순간도 겪은 저자의 이야기. 나만 이런가, 내가 유난스러운건가 싶어하며 숨기고 살았던 시절같다. 헌데 살다보니 이러한 마음의 딱지 한두개는 다들 안고 살더라. 긁어 부스럼도 내어보았고, 아물 즈음에 다시 쥐어 뜯어서 더 큰 상처를 내고 그 과정을 받복해서 굳은살로 두고두고 보게될 내 아픈 시절의 표식같기도 한 과정들. 숨긴다 한들 겪어냈던 일이고, 감춘다 한들 그것 마저도 내 삶의 일부였다. 그래서 저자도 이렇게 에세이를 내면서 내가 이랬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살고 있네요. 라며 헛웃음으로 편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과정으로 넘어 온 것 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엔 저자의 글이 그랬다. 바닥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 두 발을 딛고 한 달음에 쑤욱 올라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몸짓처럼 문장마다 발돋움한 물보라가 잔잔히 퍼져갔다. 진득한 성장통 같기도 했고, 마음의 터널이 유달리 긴 사람이기도 했다. 깊이는 알지 못하겠지만 나의 성정과 닮은 구석이 많아 단숨에 읽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고쳐볼까 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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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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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흔하게 말하는 '망했다!'는 말. 그걸 책 제목에서 들어 보다니.각각의 이야기들을 듣는 입장으로 마주한다면 이거가지고 망했다고? 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때의 상황은, 그리고 그때의 내 마음은 완벽하고 견고하길 바랬던 순간이었는데 하나 둘씩 어그러졌으니 망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는 점을 각각의 단편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남들이 별거 아닌거 같다 느낀다 한들 내가 망했다면 그건 망한거라고 단정짓고 싶으며 더이상 수습하며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기마저 싫어지는 망한 사랑의 조각들이다. 그래서 차곡차곡 쌓아온 내 마음이 부정당하는거 같아 성질나게 만들고 왜 나한테 이러나 싶을 정도로 누구 하날 잡아두고 원망하고 싶어지는 짠한 속사정의 이야기였다.



📖포기_ 돈이 제일인 세상에서 그거만큼 확실한 안부 인사가 어딨어.

포기하는 것에 익숙한 인물의 이야기들. 연인사이였던 민재와 나. 사촌관계인 나와 호두. 그 둘은 나로 인해 친구가 되고, 호두는 민재에게 이천만원을 빌려주었고, 이 놈은 돈을 들고 잠적해버린다. 애매한 관계다. 이미 나와 민재는 헤어진 후고, 내가 중간에서 다리가 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친구가 되지도, 돈으로 엮이지도 않을 사이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서로에게 빚진것도 없고, 나쁘게 헤어지진 않았으나 나의 주변인물에게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것. 이게 참 애매한 것이 호두는 또 민재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으니 대놓고 신고하거나 엄포를 놓지도 않는다. 끊어내고 싶지 않은 관계이지만 돈은 받아야하는데, 둘 중 어느 방식으로도 단호함을 보여주지 않는 호두. 이 사람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클지, 이 사람에게 빌려준 이천만원이 클지는 호두만이 알고 있겠지.



📖반려빚_ 정현은 자신의 몫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행운을 그런 데 쏟아붓고 싶지 않았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무런 값을 따지지 않고 셈하지 않고. 상대 또한 그런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정현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셈하고 값을 따져보고 있었다.

반려자도 아니고 반려견도 아닌것이, 하다못해 반려식물도 아니고, 반려빚이다. 하긴, 나도 반려자랑 살고 있지만 반려빚이랑도 진득하게 살고있지. 정현과 서일이 헤어진 이유가 비단 돈 때문은 아니겠지만 돈도 일정 몫을 하긴 했다. 돈 때문에 같이 살았었고, 돈으로라도 상대의 근심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주고 싶었던 삶의 고비였을 것이다. 모든게 끊어지는 사이가 되더라도 채무관계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 좋았던 기억은 고이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헌데 진절머리나는 순간으로 만들어버렸다. 반려빚 이놈이 한몫했다. 빚이 또 그들을 만나게 했으며, 모든 연의 끊을 끊어내는 것에도 돈이라는 것이 제 몫을 톡톡히 해버렸다. 이 모든 관계를 둘러싼 것에 사랑 너머의 돈이 존재함을 알려줬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세상이고,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지켜내는 과정에서도 돈이 든다. 그래서 반려자보다 반려빚이 내 안에 머무는 기한이 늘어남에 설령 존재가 소멸된다 하더라도 후련함보다는 존재의 일부가 소실된 것 처럼 허무해진다. 있었다가 없어지면 그 틈을 메운 행복이 아귀가 맞아 떨어져야하는데, 또 다른 빚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건 정현과 서일만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반려빚을 키워본 사이라면 느끼는 감정이라 단언 할 수 있다. 사랑을 지켜내는 것에는 굳은 마음보단 굳건한 돈이 있어야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_ 모든 것이 완전히 끝일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한 건 오늘 그들을 생각하는 일은 그만둘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에 다시 또 생각난다면 그땐 그냥 내버려둘 것이다.

죽고 못살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살던 사이. 뱃속에 아이가 생겨 하게된 결혼, 갓난쟁이를 보듬던 즈음 남편이 바람이 났고, 이혼을 부탁했다. 남편도, 아이도 모두 두고 나온 안지. 그렇게 별개의 삶으로 과거의 기억으로 10년을 보낸거 같은데 그렇게 지들끼리 좋아 죽고 살며 연락하지 않기로한 전남편의 여자에게서 연락이 온다. 남편이 죽었고, 남편의 사망보험금이 안지로 되어있음을 알린다. 사망보험금을 전부 달라는게 아니라 아이의 양육비 만이라도 달라는 이유로 만나게 된다. 그냥 평범하니, 평균적으로 살고파 어른들이 으레 말하는 방식으로 학교 졸업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또래 나이에 많는 수순으로 살고싶었지만 어그러진 삶으로 결국 평범하지 못한 생을 살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자신을 사랑해주고, 반려묘와 함께 살며 함께 밥을먹고 차를 나눠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길 나눌 수 있는 남자와 재혼해 살고 있는 안지의 덜 굴곡진 생에 아이를 다시 데려오는게 맞을까, 아니면 양육비로 끝내며 다시 모르던 각자의 삶으로 사는게 맞을까.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사는 것과 좋아하는 마음 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른 삶의 방식. 안지가 버텨낸 삶의 방식을 보면 남들 다하는 수순보다 다 때가 있고, 알아서 살아가게 내버려두면 제 짝 찾고, 제 갈길 간다는걸 실감케 하는 이야기였다.

내 20대를 돌아보면 다들 안지와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생각에는 '평범하게'라며 내 삶이 튀거나 유난스럽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난스럽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그리 살며 아이가 자란 후 행복하고 평온한 노후를 맞이하며 다시 둘이서 손잡고 산책하고 여행하는 삶을 기대한다. 거기서 좋아하는 마음의 빈도와 강도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에만 집중했지 뜨겁게 불타오르는 지속성을 기대해 본 적은 없는 듯 하다. 그러니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사는 것에 예민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살고있는 부모의 세대를 보며 무신경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보니까, 그러한 과정을 하나씩 겪어내어가며 나도 안지의 나이 언저리가 되어보니 알겠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살면 내 삶이 사랑스럽지 못하다는 것. 뭐 하나라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버틸 재간이 있지 살 부비고 지낼 가장 가까운 이와 이런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참으로 노잼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지가 남편도 갓난쟁이도 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것, 한쪽 이야기만 들으면 무지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차갑게 굳어버린 마음을 붙들고 유령처럼 살지 않은 것에는 참 잘한 일이라 말해주고 싶다. 삶은 그리 길지 않다. 좋아하는 마음 넘치게 담고 살자, 제발.


📖정확한 비밀_ 어떤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는 않은가 하고.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고. '너에게는 비밀이 있다. 너는 아직 모르는...'

비밀이라는 것이 진짜 있긴 할까. 하나같이 비밀이라고 말하며 소근거리게 되지만 그렇게 당사자의 입밖으로 뱉어지는 순간 비밀은 비밀이 아니게 된다. 너만 알고 있으라는 둥, 너한테 가장 먼저 말한다는 둥, 너니까 말한다는 둥. 시작은 너였지만 차라리 너로 인해 퍼져나가는게 오히려 덜 피곤해 질 거 같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우리 사이에 생긴 첫번째 비밀은 누군가에게 닿아 가십거리가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적막을 깨기 좋은 남의 사소한 허물이 되기도 한다. 사랑을 하는 사이든 오래 유지하고픈 관계의 조합이든, 잠깐 스칠 찰나의 인물이든 얼굴을 마주해야하고 대화를 끌어내어야 하는 장소라면 정확한 비밀은 없다. 정확한 소문의 시작만 있을 뿐.

사랑한다면, 적어도 이 사람이 소중하다면 내 선에서 마침표가 끝나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입이 근질거린다 한들, 지금 마주한 사람과 있는 자리와 공기가 어색하다고 그걸 나서서 끄집어내지 않았으면 한다. 이 이야기가 정확하든 뜬 소문이든, 좋아하는 마음이 이전보다 덜해서 내 안에 가벼워진 등장인물이라 하더라도 제발 자제하라고 방방 떠있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고싶다. 그걸 말 하는 순간 당신도 참으로 가벼운 사람이 되며, 정확한 소문의 시작점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라고. 그러니 너는 아직 모르는 그거 말고, 너만 알고 끝내는 그걸로 해주길 바란다. 적어도 사랑이었다면 말이지.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_ 사는 게 너무 달아서 때론 숙모와 문재 오빠에게 미안해졌다. 달고 따뜻한 걸 우리만 계속 먹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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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지극히 행복할 때 느닷없이 슬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알지만.

수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겨울. 삼촌과 유자밭에서 유자를 따고 유자차를 만드는 나날의 이야기. 삼촌과 조카의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겨울의 찬 공기마냥 마음은 가라앉아 서리낀 마음처럼 뿌옇다. 별거 아닌 일상의 조각 같아도 삼촌은 여전히 죽은 숙모를 그리워한다. 짧게 사랑했고 짧게 기억한다 할 지라도, 그 사람이 있었던 흔적과 순간은 머그잔에 찰랑이는 유자차 마냥 한없이 달콤하고 새콤해서 어찌 잊겠나 싶은 이야기. 이 관계가 진득했으면 삼촌의 삶은 직접 담근 유자청처럼 달고 따뜻했을까를 생각해보며 이토록 급하게 마침표를 찍은 사랑의 끝은 누굴 탓해야 하나 싶어지는 겨울이었다. 한 때는 외숙모가 얄밉기도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문재 오빠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 싫을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휴대폰에 남아있는 숙모의 사진과 짧막한 영상에 한없이 웃다 우는 삼촌을 보면서 왜 그리 급하게 가버렸나 싶어 또 다른 방식으로 얄밉고 야속해진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될 끝사랑의 남겨진 모습이 내 앞에 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만큼 시고 달고 씁고를 반복하는 유자차를 닮아서 이 겨울이 삼촌의 마음속 처럼 춥다.


조금 망한 사랑의 조각들. 헌데 망한거라 생각하면 짜증만 날 법 한데 혀 끝에 닿여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쓰다. 평범함을 바란 삶에 불운이 함께 스며있다. 많이 행복하면 많은 불운이 황급히 다가온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함부로 입밖으로 내뱉어선 안되는 건가보다. 특히 마지막 단편이 그러했다. 의도하지 않은 시점에서 다가온 사랑의 마침표. 그래서 일까? 조금 망한 사랑이라 단정하고픈 한계점을 넘어버렸다.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닌데 괜스레 애먼 사람을 원망하고싶어지는 사랑의 끄트머리였다. 사랑은 가이드라인이라 할만한 정확한 시작과 끝이 없더라. 그렇다보니 욕심을 내어가며 내가 원하는 방향까지 단숨에 마음을 내밀어 예쁜 하트를 만들 순 없나보다. 욕심 낸 만큼 흠이 많아져 여기저기 조금씩 망한 구석을 갖고 있나보다.

반려빚이 있다 해도 괜찮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 살다가도 진짜 좋아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는 사람으로 새로운 시작할 수 있는 그 마음 마저도 괜찮을 때가 있다. 정확한 비밀은 내가 시작이고 끝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괜찮을 거라며 여기는 때도 있다. 머그잔을 일부러 나란히 붙여두며 함께 유자차를 마시고 달고 쓴 맛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덜 완벽하더라도 덜 망한 사랑으로 살고싶어진다. 완벽은 없을게 빤하니 덜 망한 사랑이면 나로서는 만족 할 만한 사랑의 방식이다. 그러니 제발 내 입에서 망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오늘의 내 사랑이 무사하길 바라고 또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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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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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는가에 대한 물음에 나는 어떠한 답을 할 수 있을까?

논술 시험을 준비 할 때엔 한국사회비평 파트를 매일 한 단락씩 읽어가며 칼럼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곤 했다. 그렇게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과 할 말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순간 그러한 고민과 생각들 조차 피로감이 몰려옴을 느꼈다. 내가 이걸 고민하고 논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걸 알았고, 내 목소리로 인해 바뀔 세상도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는 나이가 되어 어련히 잘 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싶은 마음에 한 발짝 뒤에 물러서서 방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남일처럼 보다보니 문득 걱정거리가 기어 오르더라. 과연 나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확신 할 수 있는 세상인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당연히 그러지 못할거라는 뻔한 답변까지.

나는 누가봐도 소수자이며 약자의 입장이다. 도의적인 판단에서는 우세할 수도 있겠다만 현실만 놓고보면 무한한 지지를 받을 여력이 안 된다. 그래서 일단 아는 것 부터가 수반되어야 내 물음과 내 외침에 단단한 지지를 받을 것 같아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꼼꼼하게 읽어갔다.


총 3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공익을 보호할지에 대한 논의 / 불온한 사익 투쟁의 이면 / 변호사로서 바라보는 사익에 대한 견해까지. 3가지의 큰 사례 속 각각의 실재하는 사건들을 담아두었다. 체감 할 수 있던 사회적인 사건들이 담겨있으니 이해 할 수 있는 사익과 공익에 대한 사건의 갈래들. 시민의 편의, 사회적 합의, 다수의 행복이 진짜 모두가 허용할 수 있는 공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다시금 생각을 하면서 그 틈을 비집고 사익으로 한 몫 챙길 이들의 나쁜 손들에 대한 경계를 갖춰본다.



📖들어가는 글_ '그럼에도 불구하고'같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 극단적, 급진적, 강경일변도라면 곤란하겠지만 하여튼 택일을 해야하는 실존적 순간은 분명히 있다. 개개인 인간에게 고결하고 위대한 뭔가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누구 편을 들 것인가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강자가 지배하는 현 상태를 용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중립 아니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게된다. 자신은 중립이라 생각 할 지라도 결국엔 강자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것이기도 하며,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자신은 우세한 쪽에 서서 큰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얄팍한 행실인 것. 불합리한 것과 불의한 것은 알지만 그 고래싸움에 끼기 싫어 하는 무사안일한 생각을 나도 해봤기에 잘잘못을 구분 할 줄 알고, 설령 결과가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과에 순응하기보다 이것은 옳지 못한 판결로 결론지어진 사례라고 당당하게 말 할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스쿨미투, 국가는 가해자의 대변인이었다_ 후속 조치는 참담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자기들만 믿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권력과 계층으로 얻어지는 힘은 사회 어느곳이든 존재한다. 학생과 교사의 신분을 활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면서 사회가 만들어놓은 원래의 구조가 바라는 상호작용을 무시한 채 벌어지는 일들. 이러한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으나 이쪽으로만 더 악랄하게 파고들어가는 사건들을 보면 피해자만 왕따를 시키고 지들끼리 한통속인냥 연대를 하는 것에 씁쓸해질 뿐이다. 스쿨미투에 대한 것은 비단 현재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 할수 있다. 이전에도 그래왔고, 내가 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 초반에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묵과했다. '감히'라는 높은 벽을 스스로 쌓아가며 반박 할 수도 없는 틈을 벌여놓았다. 고발은 엄두도 못 내었고, 입밖으로 내지도 못했다. 쉬쉬하며 피해자들은 조용히 졸업식만을 기다렸던 그들의 눈물을 기억한다. 정보의 공개 여부도, 법꾸라지라는 악명도 감수하면서도 지들끼리 연대를 이뤄 조용히 다른 사건으로 덮여지길 바라며 알권리를 묵상시키는 검은 손들.

모두의 책임은 무책임이 되어 소송하는 동안에 저들은 아주 편히 지냈다지? 어릴때부터 생각해보던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방식을 대입해본다. 당신들의 금쪽같은 자식들이 이러한 사건에 연류되어 매번 피눈물을 흘린다면 그때도 묵과할 것인가, 그때도 법꾸라지라는 말들로 손가락질 당한다 할지라도 조용히 세상속에서 잊혀지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 당신의 눈에서 피눈물이 안 흘렀기에 평생 자신은 그러한 일을 겪지 않을거라는 아주 당당한 자부심이 있기에 지금도 그냥 그렇게,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누가 먼저 지치느냐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싸움 같다.



📖'영혼 살인' 경비 노동자의 유언_ 피해자에게 정말 간절한 것은 그 순간 바로 옆에 있는 이들의 도움이다. 이웃들의 관심과 작은 실천이다. 방관은 결과에 있어 저마다의 몫의 책임을 남긴다. 방관은 나쁜 결과를 낳고, 또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용 형태에 대한 문제를 먼저 논해야 할까, 기본 인식의 문제를 먼저 언급하며 경비 노동자를 '머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인식개선과 함께 사회적인 분위기의 개선하는 것부터 가닥을 잡아야 할까. 직장내에서 이뤄지는 갑질과 괴롭힘이든, 직장 밖에서 근로자를 향해 쏟아지는 하대 또한 일종의 분풀이 이며 감정조절의 무능함에서 오는 무지의 표출방식이라 말해주고싶다. 넓게 보면 고용의 형태와 근로 실태 개선이 필요한 사회구조적 고름을 짜내는게 우선이겠다만 문제 자체를 직면할 때엔 사람으로서의 도리의 문제로 저마다의 책임을 분배시켜 각자의 몫에 대한 사람으로서의 용서가 필요해 보였다. 기초적인 사회성에 대한 조화로운 삶의 방향성, 공동체의 삶에서 해선 안되는 행위,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해야하는 각자의 역할과 공동상생을 위해 가져야하는 기본적인 예의. 초등학생 때 배우고 익히던 기초적인 사회생활 법을 잊고 사는 듯 해 고인의 쓸쓸한 마지막이 더욱 안타까워졌다.



📖이혼하기 쉬운 나라가 행복한 나라_ 내가 괴롭더라도 상대방을 괴롭히는 걸 멈출 수 없는 형국이다. 국가가 '유책사유', 이혼 사유 열거주의를 택함으로써 이런 비극 상태를 조장하는 셈이다. 부부관계가 파탄 난 게 분명한데, 이 가정이 유지되면 될수록 모두의 불행만 커질 게 뻔한데 국가가 이혼을 강제로 막는다. 이혼하기 어려운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이혼하기 쉬운 나라가 행복한 나다라.

저자도 인용했지만 안나 카레니나 속 이야기를 통해 행복과 불행의 양면성을 떠올려본다.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 속에 답이 나와있음을 느낀다. 행복한 사람들이라면 뭔들 문제가 있겠는가. 불행하기에 발치에 채이는 사사로운 것 마저도 다툼의 씨앗이 되고, 불화의 시점이 되는것이니 모두가 평온한 삶으로 돌아가려면 유교적 사상의 이념이든, 사회적인 소속감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를 떠나서 사람답게 살도록 각자의 자유를 주는게 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누군가의 아내이며 누군가의 며느리이기도 하지만 그리 불리워지기 이전에 나로서의 존재 자체의 목적이 흐릿해져서는 안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에 갖힌 채로,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평범치 못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기에 어떻게든 붙들고 살아야한다 생각하고 집구석에서 으르렁거리는 꼴이 되어버린다.(때론 없는 존재로 취급하기도 하니 이 또한 대응의 극단적임에 말을 아끼게된다) 이혼이라는 과정에서 오는 다양한 갈등을 보며 이런 이유로 갈라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관계속에서 유일하게 사익을 따지지 않길 바라는 사례였다.


먹고 사는 것에만 능통하지 법의 테두리가 어디까지인지,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았다. 몰라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뜻하지 않게 마주하는 것들에서 소리없는 외침만 하는 경우를 마주한다. 우리는 변호사를 통해 법의 지푸라기라도 잡아당겨보며 숨구멍을 찾게 되면서 간절함을 호소하고 명백함을 입증받고 싶어한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좋겠지만 냉철하게 사건을 바라보며 때론 차갑더라도 확실한 해결책과 사례 제시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길 바랄뿐이다. 그게 저자가 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착한건 나중 일이다. 내가 이 사례들의 당사자라면 따뜻한 위로도 좋겠지만 확실한 방향성 제시와 함께 최악만을 피해주길 바라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며 내가 저자와 같은 변호사를 설득하는 것에도 버거웠을테니, 나보다 많이 알고 많이 배운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과 집단,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대립할 지라도 떨지말고, 버벅거리지말고, 이른바 쫄지 말고 야무지게 대응하며 나의 말에 힘을 싣어주길 바란다.

'공익'도 결국 누군가의 '사익'과 '이권'이었다. 그럼에도 공익이라 부르는 것에 허용 될 수 있도록 '사회적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위험하지 않다고 보아 그 추구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을 구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공익의 틀 안에서라도 제대로 된 정당한 권리를 받고 받을 수 있도록 도의적 선의가 어색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투쟁으로 얻어낸 귀한 공익이라는 말도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을까를 기대해본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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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매일매일 심력 충전
루나(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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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전 제품 사진을 보았지만 역시나 실물을 못 따라가는구나. 2025 루나파크 일력(스프링) 25,000 일력이 들어있는 박스마저도 빈틈을 허용하지 않은 쫌쫌따리 빼곡히 채워진 캐릭터들. 박스가 예쁘고 빳빳하니 질이 좋아서 이 박스 못 버릴거 같네. 사무용집게나 클립 넣어두면 딱이겠어.




보통 시판용 라텍스 고무장감 M사이즈를 껴도 공간이 남는 내 손. 이러한 사람의 손 안에 쏘옥 들어가는 일력. 어찌보면 2025년의 365일의 심력은 내 손안에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하는거 같단 말이지. 하루에 한장씩 넘길 때마다 마음이 힘이 더 세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기대해본다.




루나파크가 전해주는 심력의 응원을 받고 넘기는 1월 1일. 한장한장 넘기기 쉽도록 스프링제본타입인데 링이 단단하고 큼지막해서 마음에 드는구만. 상단에는 월을, 상단 오른편에는 요일이 적혀있고, 가독성 좋도록 일자 표기는 중간에 아주 큼지막하게 기재되어있다.




루나파크의 공감툰은 물론이고 한마디씩 적어둔 멘트는 공감 안 할 수 없는 문장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렇지그렇지. 1월 1일은 새해라 좋고, 1월 2일은 신년 첫 출근으로 회사 시무식을 시작으로 소란스럽겠지만 작년 출근이든 올해 출근이든 회사 노비로 사는 사람으로서 별반 다를거 없는데 시무식으로 신년인사 하며 승진자 축하하며 그렇게 아침 댓바람부터 1시간 정도 잡아 먹을거 생각하니 진짜 나 역시도 안 새롭고 안 기쁘고 그렇다.ㅋㅋㅋㅋㅋ 진짜 연차 지긋한 카피라이터로 살아온 사람 다운 공감들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내 책상 위. 심력 키우기엔 사무실만한게 없잖아? 자존감 떨어지고, 삶의 목적이 느슨해지는 공간에서 심력 단련을 위한 루나파크의 일력을 시선이 가는 곳에 두면 올 해보단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미디어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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