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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어릴 적 아버지의 상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이지만 엄마와 동생의 동반 자살로 위태로운 삶을 살다가 그들의 10주기에 절벽에서 몸을 던지게된다. 형우가 눈을 감고 있을 적에 마주하는 아홉살의 형우, 열하옵 살의 형우, 스물 아홉 살의 형우를 차례로 만나며 가장 행복했지만 가장 되돌리고 싶었던 그날을 찾아가 삶의 구실을 끄집어낸다. 형우는 가족의 죽음과 그 고통을 쥐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쉽지많은 살아냄 과정을 담아두고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압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거지.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술을 마시고, 누군가는 욕조에서 이불 빨래를 하고, 누군가는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면서. ... ... 우리는, 숨을 참는 거고.
생을 등진 이의 등을 맞대며 그 틈을 메꾸며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배로 힘겹다. 근근히 살아내고 있는데, 세상을 천년만년 슬퍼해야하는게 당연한것 아니냐고 하며, 또 한편으로는 평생 안고 살 것이냐고, 이젠 좀 잊으라며 채근하기도한다. 당신들의 가벼운 입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 당사자의 삶은 더 고된데 그럼에도 살려고하는데 그러한 말들은 가시가 되어 쉽사리 뽑아 낼 수 도 없을 만큼 박힌다.
울컥울컥 몰아 터지는 그리움의 응어리가 명치를 눌러도 참고 참아내는 중인 생을 보면 의식하지 않고 살아야하는 숨쉬기가 저리도 버거워서 어쩌나 하는 애닳는 마음이 커진다.

📖엄마가 이름 탓을 하면서도 그걸 바꾸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꿨는데도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엄마에겐 더 이상 탓할 게 없어질 테니까. 누구 탓도 할 수 없으니 엄마는 이름 탓이라도 해야 했는지 몰랐다.
탓이라도 해야했고, 그렇게 푸념이라도 입 밖으로 뱉어내야했다. 안 그러면 그 모든게 여기 없는 사람에게 돌아갈까봐 그 것이 너무 싫었던 엄마였다. 처가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떳떳하게 죽음의 사유마저 밝히지 못한 사람에게까지 그 미움을 지고 가게 할 수 없었던 아내로서의 최선의 도리였다. 당신 탓 할 사람들 앞에서 더 큰소리로 자신의 이름 팔자를 논하는거지. 그러면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미워하며 자신의 삶에 미운털을 스스로 박아두었다. 아무도 남편의 죽음에 감나라 배나라 못하도록. 그 속이 오죽할까 싶은건 자식들이 엄마 나이 즈음 되어서, 결국 다 커서야 알게되지.
📖선한 사람들이 떨어진 꽃잎 하나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어갈 때, 악한 사람들은 꽃밭을 마주 짓밟으며 무조건 직진하는데, 그걸 무슨 수로 이겨......
아빠가 생을 마감한 이유. 가족관계 때문도 금전적인 이유도 아니었다. 축복받지 못한 결혼이라서, 벌이가 마땅치 않아서,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서, 아이와 유대감이 없어서. 그 어떤것도 이 애틋한 가족들에게 이유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형우의 아빠는 잘라내고자 한 것이었다. 자신의 우울과 삶의 무력함이 예쁜 아이와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옮겨갈까봐. 혹여라도 그 마음이 번져서 소중한 사람들마저 슬퍼할까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몰아서 채워 준 후 생의 마침표를 찍으려 했던 것 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선한 사람들에겐 기회보다 희생을 바라는 세상이었고, 욕심보다 당연함을 앞에 두고 사는 사람인데 결국 악한 사람으로 인해 죄책감과 상실, 슬픔, 자책은 약자에게만 몰아붙이는 겪이니 어떠한 치료나 센터의 교육, 돌봄마저도 없었던 상황이 야속해질 뿐이다.
📖힘들 땐 잠깐 마음을 끄고 살아야 해요. 몸은 어차피 우리가 살게끔 설계돼 있으니까 잠깐씩 마음을 끄고 살아야 해요.
어떻게든 살아는 진다는 말. 눈물나고 그리움에 사무치더라도 배는 고프고, 잠은 올 테고, 그리고 어김없이 해는 뜰 것이고, 푸른밤은 여전히 당신에게 찾아가 이제 쉬라며 고요함을 당겨 올 것이다.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함을 안기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는 주변인들의 말처럼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 이었다. 그게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가장 어려운 시간의 소비였다.
아마 남겨진 형우는 특히나 스물아홉 살의 형우는 자신을 매번 자책하고 원망 할 지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에는 어떻게 막아낼 방도가 없는 상태였으나 스물아홉 살의 형우는 심연에 빠져있는 동생이나 그를 외롭게 할 수 없어 같이 가기로한 엄마를 구할 수도 있었을거라는 그 만에하나 때문에 마음이 쓰리다. 걱정만 하지 말고, 신경만 쓰지 말고, 그냥 고민 없이 바로 집에 가서 들여다보고 괜한 헛짓거리 말이라도 해보며 외롭다는 생각이나 고립되어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해야했다는 생각들만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당장에 자신이 겪어낼 슬픔보다 더 큰 그리움과 자책의 짓눌림. 그게 남겨진 자의 몫이고 남았기에 얹어진 슬픔이다.
나는 어린 구와 그 여린 아이를 챙기는 일구, 마음은 쓰이지만 행동하지 못했고 주저하기만 했던 이구, 모든걸 다 알고있는 삼구까지 다 애련하다. 어른들은 모자라서 미안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던 어린 구. 그 시절 다들 그리 겪어낸 사춘기와 함께 가족보다 친구가 더 소중했던 덜 영근 일구. 잘 하고 싶었고, 그렇지만 마음이 쓰이는 동생과 어머니가 눈에 밟혔던 이구. 부친의 상실과 함께 유일한 가족이라 여기던 동생과 모친을 동시에 잃고 방황과 공허함만 갖고 살던 텅빈 삼구까지. 매 시절의 어린 형우를 한 곳에 다 모아 서로를 챙기는 걸 보니 다들 많이 애썼고, 보듬어주고 싶었던 존재의 분신들임을 느꼈다. 삼구가 살아내주어야 우리는 사구를 만날 수 있으니 살아내 달라고 그렇게 같은 슬리퍼와 같은 반바지차림으로 만나게 해 주었나보다. 결국 그 만남은 우연이 아닌 당연한 순간었다.
소설은 형우 너만 그러고 사는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꼬치꼬치 케 묻지도 않으며, 각자의 슬픔을 경쟁하듯 늘여놓지도 않는다. 때로는 긴 침묵과 정적이 오히려 서로를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기도했다. 진사장, 시은, 구표, 재이. 그들도 형우만큼이나 상실을 겪었고, 그 겪어낸 마음으로 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살아내자. 해 뜨면 눈뜨고, 달뜨면 잠에 드는 그런 당연한 이치 처럼 거기에만 집중에서 살아봐도 괜찮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그 조언을 삼켜보기로 한다.
저자는 말한다. 슬픔도, 분노도, 우울도 힘이 세다는 것. 한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생명을 꺼트릴 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으니 '우울력 발전소'를 세워 역으로 그 에너지를 당신이 숨 쉬는 데, 당신만의 빛을 발하는데 모조리 쓰길 바라고있다.
명치를 누르고 숨을 죄어내는 그런 날에서 다시 걸음마를 하던 그 때처럼, 글자를 하나씩 읽어내기 시작하던 그 때처럼 다시 배워가길 바란다. 천천히 조급함 없이 몸이 반응하는 대로 회복호흡 함으로서 살아내는 것에도 다시 배우듯 익혀내는 삶에 낯설어하거나 당황해 하지 말고 천천히 배워갔으면 한다. 배우면 되는거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