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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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아이와 어른, 그 모호한 지점에 걸쳐있는 무르고 여린 청년이 보는 노동자들의 세상을 보여주고있다. 다들 스무살 넘어서는 높은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된다. 그 빡빡한 시간에 쫓기다 한방에 몰아 벌고 학교 다니기 위해 공장으로 취업하는 앳된 어른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가정과 학교가 쳐둔 든든한 가림막에서 자라던 아이가 이제는 제 스스로 땅을 고르고 딛고 일어서야하는 과정이며 부모뻘 되는 어른과 함께 일하면서 이게 진짜 사회의 현실이구나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정전 속에는 두가지의 큰 감정을 놓아두고 노동과 사랑에 대한 비중을 하나씩 나눠 갖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그 둘의 주제를 한데 모아 정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만들었던 이유를 풀어낸다.

사랑은 매번 쌍방이 될 수 없음을 막과 은단, 막과 라히루의 상황을 예시처럼 놓아둔다. 수지와 영준으로 시선을 옮겨가더라도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종일 그 공간을 공유하더라도 이후의 삶마저 나란히 같이 둘 수 없음을 보여주고있다.


갓 성인이 된 주인공. 현실. 취업과 학업 이전에 먼저 준비 해 두어야하는 금전적 여유. 사회가 생각하는 스무살, 스물 한살의 대학생활과 맞바꾼 공장노동자로서의 위치 이동. 학교와는 또 다른 세상. 같은 건물을 쓰지만 출입하는 문이 다르고, 대우받지 못하는 낯선 관계와 계급. 정직원 계약직. 내국인과 외국인근로자. 일반 근로자와 노조 가입자. 산재를 두고 나뉘는 수습과 처우. 계약해지와 복직. 그만두더라도 갈 곳이 있는 대학생과 나라를 떠나야하는 외국인 근로자. 하나의 장면만 두고도 양갈래로 나뉘는 사람들. 그 속에 끼인 주인공. 같이 피켓을 들고 땡볕에 서 있어야 할지, 이미 돌아갈 자리가 있는 복학생으로 이 관계를 잘라낼지. 그 중간에 있는 막을 통해 과하게 이입할 여지를 두고있다. 당신이면 어떨런지, 막이 주저하는 마음을 질타 하는게 맞는지. 어쩌면 이게 당연한 머뭇거림은 아닐지를 제법 긴 분량으로 독자의 의중도 묻고있다.


정전을 책 제목으로 만들도록, 정전이 일어나길 바라는 심경을 끄집어내기 위해 이 판이 꾸려졌다. 정전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막은 주체가 되지 못한다. 졸업식에서 언급했던 은단이 있었고, 은단의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현상이었다. 은단이 막에게만 토로했던 이유를, 은단이 왜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은단은 막과 함께 할때엔 소극적이며 주눅들어있다. 자신의 능력을 유일하게 공개한 건 은단 본인인데 왜 되려 죄지은 사람 마냥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풀어낼 둘의 서사가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막은 여자, 은단은 남자. 으레 아는 청춘물 로맨스의 성별 특징들 마저 꼬아두었으니 고등학교 졸업 이전, 더 어린시절의 둘에게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데. 놀이터에서 떨어져 피나고 응급실에 실려가기 전부터의 성장 서사들은 다음 소설로 옮겨가 이어질지도 궁금해진다. 이건 독자의 세계관에서 맘대로 이야기가 펼쳐지도록 놔 둘 것인지. 책 제목처럼 정전을 위한 정전의 장치로서만 은단을 등장시켰는지 저자에게 묻고싶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장 전체가 정전이 되면, 하루만이라도 그 안이 멈춘다면, 그로인해 모든 일들이 꼬여버리면 속이라도 시원하리라 여기는 막의 시선. 잠깐의 정전으로 피해가 생긴다면 다치고 보호받지 못한채 자국으로 쫓겨나던 라히루를 대신하여 통쾌한 복수를 꿈꾸는 '잠깐 일하러 왔던 대학생'. 당장의 생계가 걸려있지 않는 어정쩡한 위치이자 엄마아빠 뻘과 함께 일하던 꼬맹이가 바라는 얄풋한 변화. 만약 막이 좀 더 확고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개선을 바란거였다면 천막에서 주저했고, 수지와 밥을 먹으며 마주한 순간들을 곱씹고 깨우친 후 다방면으로 알아본 후 기성세대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 사건을 알리고 공론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이건 진짜 책에만 있는 이야기로 뭔가 붕 떠버렸을지도 모른다. 근로, 투쟁, 개선, 노조, 단합이라는 말은 잘 모르겠고, 마음이 가던 동료이자 친구였고 이제는 맘 편히 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얄궂은 상황에 뿔이난 마음을 드러내는 복수라 표현하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수지가 주변을 살피고 도모하는 마음도, 영준이 걱정하는 이유도, 서영이 막을 보내려했던 감정에서도 전류가 흐른다. 이건 은단이 막아 설 수 없는 또다른 전파의 이동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하고자 마음을 먹은 막의 결심도 라히루를 위한 심경의 전류였을테니 말이다. 의도하고 흘려내는 전류는 끊어 낼 지언정 관계를 엮어두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완전한 정전은 없음을 보인다.


학비와 생활비 벌려고 잠깐 눌러 앉았다가 사라지겠노라 마음은 먹었지만 돈보다 더 큰 마음의 섬광을 얻어낸 막. 노동환경에서 큰 획을 그을만한 대성할 인물이 되리라곤 장담 못 하겠다. 다만 동료의 불이익에 함께 분노 할 줄 알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불이익을 감내하면서도 애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 감사한 마음을 절대 흔하고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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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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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고 탁한 표지. 그리고 검은 띠지와 유난히 눈에 띄는 흰색 글씨로 언니의 소진사를 앞에 두고있는 책. 담배를 피우며 독자와 눈싸움하듯 진하게 바라보고있는 시선. 헌데 이 띠지와 책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양장본의 진짜 표지. 장례식장 상복과 두줄의 상주완장. 어느 것 하나 쉽게 풀어지지 않을 서사의 중심에 있는 저자 사진들. 엄마, 딸, 미치년, 역사. 이 모든 단어들의 총체적인 결합이 책 제목이니 어느 단락 하나 쉬운 삶의 구석은 없으리라 짐작가게 만든다. 그래서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겪었을 세상을. 책 전체의 표지는 어둡지만, 양장의 은장본은 또 한없이 화려하다. 화려한 것만 눈여겨 보기엔 이 사람의 세상은 어둠도 깊었으리라 간주하며 시작한다.


📖여러 어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한 기억은 많지만, 막상 어른들에게 적절한 보호화 도움을 받으며 자란 것 같지가 않다. 반복되는 갈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어리다고 모르는 감정이 아니다. 이건 말을 하기 전 유아기에도 느끼는 소외감이다.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될까 하는 마음 속 덩어리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으며 과거의 순간과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저 멍울이 커지고 자극을 받아 더욱 크고 딱딱하게 자신을 누르게된다. 더 열심히살고, 애쓴들 눈 밖에 난 사람은 그 애틋함을 받아먹고 자라질 못한다. 행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상황과 위치가 문제였다.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권한. 태어남과 동시에 선긋기가 이뤄진 다른 부류의 취급. 그래서 조갈난 사람처럼 갈구하고 바라게된다. 시선 한 번, 손길 한 번이 대수냐 싶지만 그마저도 해주지 않아 마음이 매번 땅 밑으로 꺼지는 걸 경험한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하역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건강한 가족. 사랑을 준 만큼 돌려 받을 수 있는 관계로서의 기대감. 그래서 그 과정이 행복함으로 여겨지는 순환. 부모를 정할 수 없다면 관계성을 어떻게는 바로잡고 싶었기에 애를 써왔을 일련의 시간들. 시쳇말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하지 않던가.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진한 딸과 손녀를 본다면 어떠한 충격이라도 받아서 그간 해왔던 일들에 반성과 성찰이 이어져야 할텐데, 결국은 자기가 편한 방향으로 걱정을 고쳐먹고 있었다. 이제 니네 할머니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냐는 식의 말로 저자를 두고 다음은 네 차례임을 시사하는 눈빛과 말들. 그래서 저자는 언니의 죽음이 더욱 애틋하다. 결국 알아야 할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갑갑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시간과 고통스러운 마음이 얼굴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게다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데 다시 겪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알기 때문에 무서웠고, 그래서 더 빡세게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내가 제일 먼저 죽고 싶었다.

남편과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길 한 적이 있다. 누가 먼저 태어난 것과는 상관없이 죽음은 순서가 없더라는 말을 하며, 이 세상에 결국 의지하며 살아갈 곳이라 함은 당신과 나 뿐인데, 자식도 없는 우리가 어떻게 버티고 남은 여생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시작은 잠들기 전 우스갯소리로 하던 것이 점점 진지하고 깊게 들어가게 만드는 훗날의 이야기들. 직접적인 죽음 못지 않게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할 빈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으로 간주되었다. 서로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비빌언덕이라 맘껏 부비적거리며 살았는데 그게 없다면 생살을 뜯어낸 자리 만큼이라 쓰리고 화끈거리며 눈물만 줄줄 흘러대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래서 나도 저자처럼 똑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죽을게. 나는 당신 없는 세상 감당 할 자신이 없어. 뭐, 이게 맘대로 안된다면 당신 죽을 때 나도 순장 시켜달라하지 모. 라며 애써 밝게 마무리를 했었다. 그냥 내가 내 몫의 모든걸 다 끝내 놓고 후련하게 선빵 칠게. 뒷일 감당은 당최 자신이 없다구.



📖우리는 사랑하고 우리 사랑은 끝이 없는데.

이 세상의 시간과 수명이 끝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 신호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뭐 하나 쉬운게 없다. 헌데 더 얄미운건 일련의 사건들이 적당히라는 걸 모른다. 이정도 했으면 그만해도 될텐데라는 생각을 갖게하지만, 삶은 매번 야속하게 뒷통수를 치기 일수이고, 약올리듯 더한걸 안겨준다. 겪어오다보면 맷집이라는게 생기기 마련일텐데 매번 새롭고 매번 버겁다. 그게 저자의 삶에도 해당되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를 고를 수 없는데 부모는 자식을 골라서 애틋해한다. 멀쩡하면 핸디캡이 더 크게 부여가된다. 자식놈들 중 안아픈 손가락 어디있겠냐는 옛말과는 달리 유달리 아픈 손가락이 더욱 애틋하고 손이가며 마음을 쏟게된다. 멀쩡해서 손해보고, 먼저 낳아져서 불리한 세상. 그게 랑의 언니가 겪어야했던 장녀병일지도 모르고, 이후 랑이 겪어야하는 조부모의 돌봄과 배웅의 역할 돌려막기 일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 으레 그러하듯 생기니까 낳았을텐데 그러면 낳았으면 좀 애틋하게 여겨주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놈의 대가 끊길까봐 더 낳은 자식. 조부모 또한 아들만 싸고 품다가 결국 모든걸 잃고 생의 끝은 딸에게, 손녀에게 맡겨지게되는 생의 끝을 보여준다. 다 주면 다 뺏들어먹고 버려지는 단물빠진 껌 같은 삶으로 할머니는 생의 마침표. 노년의 끝. 그거라면 그러려니 할 지도 모른다. 헌데 저자의 생에 죽음은 그러한 노년의 마침표가 먼저가 아니었다. 주변인들이 한국 기대 수명이라 여겨지는 삶을 반도 채우지 못하고 소멸해버린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기특히 여기고 가엾게 보살폈어야하는데 그건 매번 후순위로 두다보니 이지경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삶을 봐오다보니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듯 하여 어떻게 해서든 병원비를 마련해 보태기도하고, 자신의 컨디션을 갉아먹어가며 금전이든 심적이든 마음을 덧붙여 살게 만든다. 그러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아등바등 한들 끝은 정해져있었다. 애써봤자 소용 없다는 뉘앙스의 끝. 이 다양한 죽음이 이랑을 기준점 삼아 닿아있는 관계에 계속 퍼지는 것 같아 '괜찮을까? 괜찮은가? 쓰읍- 괜찮아야 할텐데...'를 연신 중얼거리게 만든다. 나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살아준다. 죽음에 대해 생각은 하지만 무 썰듯 썩둑 잘라내지 않아 감사하다. 그랬다면 이 책도, 이 마음의 공유도 없었겠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부모님, 나와 비슷한 형제관계. 그래서 더 깊게 이입하게되고, 특히나 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구절에서는 손가락 끝이 찌릿하며 따끔거리는 느낌마저 들게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첫차가 프라이드라는 것 까지 닮아있는데 어떻게 이 글과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언니와 동생의 다른 성향. 나의 자매님도 그러하다. 한없이 괄괄하고 가시를 드러내고 휘지 못하고 부러져버리는 이구역 개딸로 통하는 나와 달리 한없이 유순하고 화가 없으며 어떻게든 유연하게 풀어내고자하는 심성이 곱고 눈물이 많으며 참는게 많은 언니. 그래서 어릴적 내복바람으로 쫒겨나는 일이 있을 때에 씩씩거리며 눈물 삼키는건 동생인 내 몫이었고, 맨날 지고 뺏기고 울음보 터지는건 언니의 역할이었다. 아마 그녀도 알게모르게 장녀병이 깊게 박혀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다른 성향의 자매가 부모를 보살피는 과정. 충돌이 있을 순 있지만 어디다 내어놓기 부끄러운 사정까지 유일한 공유자가 되니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의지하고 기댈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언니의 소진사는 동생의 세상의 큰 흔들림이었을 것이다.(여기서 입장을 바꿔 내가 랑의 상태였다면 언니의 자리를 메꿀까. 더더욱 철저하게 외면 해 버릴까. 그건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례다)

저자가 자신이 소유하고 쌓아두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는 단락이 있다. 모든걸 품어두고 싶었던 시절, 이걸 꼭 쟁여놔야 마음이 든든하고, 내 것으로 삼고 싶었던 이력의 결과물들. 하지만 결국 다 놓고 가버리는게 생(生)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쓰레기봉투에 한껏 욱여넣고, 내다 버리는 순간을 마주 할 때 비슷한 울렁임을 느꼈던게 떠올랐다. 시모의 장례를 치른 후 그녀가 남긴 모든 흔적을 찾아내고 버리고 태워가는 일련의 시간들. 주인을 잃은 것들은 더이상 손이 타지 않을 것임을 아는지 먼지도 빨리 쌓이는 듯 하고, 색도 빨리 바랜다. 모든건 찾아주고 알아주어야 빛이 난 다는 건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일한 현상이라는 걸 느끼면서 이 걸 치우는 남겨진 자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덜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비쳤다. 자신은 수도 없이 해본 일들이니까 자신을 아는 그들에게 이딴 설움의 순간은 덜 만들어주고자 하는 오지랖의 발동이라 더욱 짠한 마음이 깊게 박혔다. 독자로서 잔소리를 하자면 '그런걸 왜 니가 걱정해!' 라는 말로 등짝 시원하게 후려치며 흔적지우기를 말리고싶어진다. '그런거 안 치우게 할라면 나보다 더 오래 살든가!' 로 되려 성질을 내어보고싶어지는 죽음 차단용 잔소리 스매싱인거지.


살면서 이런 일들 안 겪어 본 사람 어디 있겠냐며 각자의 고생과 설움 배틀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사나흘 내리 말 할 수 있는게 지금을 살아가는 내 나이 또래이자 저자 또래의 어른이지만 어른이길 꺼려하는 사람들의 세상일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도 나는 물을 찾아 마시고, 꾸역꾸역 밥을 목구멍에 밀어넣고, 장례식장 한 켠에서 잠을 자게 될 것이며 또 안간힘을 다해 그리워하며 통곡을 할 것이다. 현실을 직시 한 후 떠난이의 몫을 마음 한 켠에 밀어 넣고 그 마음과 함께 살아 내게 됨을 겪을 것이다. 어쩌겠어, 삶은 유한하고 각자가 쥔 생의 질량까지 제각각인 것을.

내가 아는 그녀들이 쫀쫀한 목폴라를 입고 있는 기분보다 따뜻하고 폭닥한 머플러를 감고 있는 기분으로 살길, 정신이 붕붕 떠올라서 바닥이 닿지 않는 저릿한 기분보다 세상을 가뿟하게 나는 듯한 구름위의 나른함으로 살기를, 불안과 걱정으로 땅이 울렁이는 기분보다는 이렇게 사는게 재미진 삶 아니겠냐며 덩실덩실 발을 구르며 잔망스러운 걸음으로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살기를 그렇게 몸의 기억을 비틀어 또 다른 미친년의 역사를 이어 가 주길 바라게된다. 혼자서 못하겠다면 세상의 딸들 중 일부인 나부터 동참하겠다 손 번쩍 들어본다.

📖출판사 이야기장수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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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디 할머니 - 소설가가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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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맞아 대표 단편 10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구병모, 김연수, 박상영, 성해나, 최은영, 한강 등 31명의 소설가에게 작품 선정을 청해 가려 낸 작품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꾼들이 추려낸 것이기에 눈길이 간 것도 있었고, 오랫만에 문학 시간 작품 해설하는 듯 시대와 인물을 뜯어보며 저자가 진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추려보고 싶기도했다. 이거저거 독식하던 SF문학 말고 좀더 현실감 가득한 사람 이야기가 고팠겠지 라는 마음으로 고개 쭈욱 내밀고 들여다본다.

📖쥬디 할머니_ 말이란 건 좋은 거였다. 말을 하니까 한결 기운이 났다. 그래, 난 다시 울타리를 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울타리를.

말이란 좋은거라는 쥬디 할머니. 나는 이 단편을 읽으며 쥬디 할머니가 이야기한 말에 대해 그 의미와 전달하고자하는 바를 생각한다. 결국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만들었다. 할머니처럼 자신을 포장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재력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평판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어떠한 실정인지는 중요치 않고,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에 대한 집착과 열망. 실체를 알아서는 안되고, 의도한 상태의 겹겹이 허상이 진실임을 바라며 사는 사람이다. 다들 쥬디 할머니같은 포장력을 갖고는 있으나 그게 얼마나 두텁게 이뤄진건지의 여부와 현실사이 간극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린시절 적어둔 장래희망만 봐도 그러하다. 나는 무엇이 되고자하는 마음보다는 선한 어른으로 불리워지길 바란 사람이다. 나 또한 쥬디 할머니처럼 불려지는 것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던 얇은 귀의 인간이었다. 자존감은 자신의 속에서 피어오리기 보단 상대의 한줌도 안되는 입과 세치 혀에서 나온다는 걸 예쁘게 에둘러 말한 겪이었다.

결국 나도 쥬디 할머니랑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니 정신차리라는 문장이었다. 이러한 삶의 과정이 티가 나도록 나를 에워 쌀 것인가 혼자만의 생각에서 그칠 것인가의 선택으로 삶의 둘레가 달라질 것임을 보여주는 인생 후반 예고편 처럼 눈앞에 그려지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쥬디 할머니 같은 사람은 되지 말라는 따끔한 인생 회초리같은 첫 단락이었다.

📖애 보기가 쉽다고_ 맹범씨는 네 시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얼토당토않다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방금 경험한 네 시간은 그가 여직껏 살아온 고르고 유연하게 흐르던 시간과는 전혀 단위가 다른 시간이었으므로, 그건 돈의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엔 사회에 혁혁하게 이바지 한다고 여기던 사람이었고, 지금은 와이프와 딸자식이 외출하며 두고간 손주를 케어해야하는 할아버지. 요즘 심심찮게 보게되는 황혼육아과정을 1985년도에 미리 그려낸 작품이다. 그 시절엔 황혼육아라는 말도 없었을텐데 점점 변해가는 세태와 함께 할아버지라고 애 보지 말란 법이 없으며, 점잖아보이는 어르신이 애 하나로 쩔쩔매는 과정을 그린다. 국회의원을 임했음애도 불구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노년과 어린 핏덩이를 잠깐이지만 돌보는 과정에서 돈과 체력은 기본 옵션처럼 느껴지는 한눈 팔 수 없는 과정을 그린다. 이게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라서 더 미숙하고 두서없는 돌봄의 과정이다. 그래서 짠하면서도 어이 없도록 무식이 주는 당당함을 보게된다. 그 시절이라 가능했던 요청인건지, 정말 물정 모르는 해맑음의 요청인건지 의아한 순간도 상당하다. 집에 사람 부리면서 사는 노년이지만 집밖으로 나가면 모든게 돈이라는 것과 구걸이 먹힐거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갇힌 우물안 개구리의 세상을 보여주며 살만큼 산 사람이라 한들 모든걸 다 안다고 여기며 살아선 안됨도 알려준다.

세상에 본인 밥벌이가 제일 쉬운법이지. 경주마처럼 앞에 놓인것만 보고 그게 다라고 여긴 세상의 인간에게 죽을때까지 배우고 겪고 깨우치며 혼쭐 나 봐야 아는 삶임을 알려주고있다.

📖해산바가지_ "딸이 딸을 낳으면 친정에서까지 면목이 없어야 하니?"

"그래, 그걸 몰라서 묻니? 그러니까 딸은 애물이고 어떡허든 아들은 있어야 한다는밖에."

이야기 뒷부분에 나오는 해산바가지에 대한 진짜 뜻과는 별개로 내가 느끼는 제목은 해산(출산) 후 핀잔과 원망으로 긁히는 바가지. 이렇게 단어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뜻을 만들 수 있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단편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세상이 변했다고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심상을 갖고 있는 분이 존재하고 있다. 세상이 그렇다. 내 맘 같은 사람은 없다. 당차던 며느리도 딸 낳았다고 기가 죽어 이불속으로 파고 드는게 시대다. 85년도 작품이니까 그보다 몇해 후에 태어난 나도 이 단편과도 같은 설움을 겪어낸 장손집 둘째딸이라 모를수가 없다.

아들이든 딸이든 둘만 낳을거라는 선언. 거기에 더불어 그 두번째 출산이 딸이라는 것. 이 모든 사건에는 여자들이 여자를 공격하고 있다. 당신도 어느 집의 딸이건만 저집 자식의 딸이 우리집의 귀한 아들과 결혼해 손주를 낳았는데 딸? 그럼 그 손녀도 태어나자마자 밉상 온상을 덮는 딸년이된다. 여자가 여자를 멸시한다. 당신도 귀한 집의 딸래미였고, 제 손으로 낳은 딸이 있다 해도 며느리와 손녀는 별개의 이야기인냥 날을 세운다.

당신도 딸이지만 지금은 고고한 시어머니로서 자신보다 어리고 여린 여자의 마음을 도려낸다. 개망나니라도 아들이 좋은 사람들. 성질 까칠한 나로서는 아들놈로 인해 패가망신을 당해도 여전히 저 기고만장한 혀는 아들을 추켜세울 것 같아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는 옛말에 틀린거 하나 없다고 읊조리게 된다.

앞 부분이 손귀한 집안에 둘째도 딸을 놓은 며느리와 한껏 뿔이난 시어머니였다면, 이제는 중년의 며느리와 곧은 성정으로 존경했으나 지금은 치매로 감당하기 힘든 노년의 시어머니로 이야기가 넘어왔다. 치매를 얻기 전과 후로 나뉘는 시모 바라보는 마음의 변화. 딸을 줄줄이 낳더라도 한결같은 사랑으로 손녀를 키워낸 시어머니. 딸넷에 마지막 아들. 바라셨을 손주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담아낸 감사한 사람이지만 노년과 병환은 이전의 기억을 잊게 만든다. 남들은 효부라 하지만 속에 악과 한을 품고 살게되는 일상들. 약을 먹어야 버티는 설움의 날들. 미워하다가 뭔일 날거 같아 시설에 보내기로하고 수소문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작고 쭈글해진 시모를 모시고 살기로 한다. 대신 효부라 불리우는 주변인들의 단맛 가득한 칭찬은 포기하며 미울때는 소리지르고 서로 악쓰기도하고 담아두는 것 없는 마음으로 곁을 지킨다.

당신은 시어머니를 존경하기도 했으며 미워도 해 본 사람. 그리고 당신은 또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 며느리이며 시어머니를 겸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 속에서 배움은 가장 모자랐을지라도 삶의 가치와 사람을 대한 귀한 마음만은 차고 넘쳤던 여인이 진짜 대우 받아 마땅한 사람이니 독자들도 같이 마음을 모아 안타까운 생의 끝을 이해해달라고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_ 생때같은 목숨도 하루아침에 간데없는 세상에 물건들의 목숨은 왜 그렇게 질긴지, 물건들이 미운 건 아마 그 질김 때문일 거예요. 생각만 해도 타지도 썩지도 않을 물건들한테 치여 죽을 것처럼 숨이 답답해지네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곁에 오래두고 싶은 이를 가장 먼저 보낸다는 것. 슬픔은 차고 넘치고 매 순간마다 그리운데 세상은 그래도 살아야되지 않겠냐며 속절없이 흐르게된다. 이 독백과도 같은 전화 통화는 한 두번 해본게 아닌 듯 가만히 듣기만하는 형님의 태도를 통해 어디다 풀데 없는 여자의 외침이 그려진다.

아들의 죽음은 그 시절 청년들이 했던 학생운동에 가담자로 인해 이뤄진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아들 또래의 사내들을 키우는 형님과 친구. 자신의 아들이 살아있다면이라는 전제를 두고 이놈보다 잘난 놈은 없을거라 이놈보다 목숨이 아까운 녀석도 없을거라는 뉘앙스를 던진다. 친구 아들의 혼사도 쉬이 말하며 축하를 요청 할 수 없는 제새끼의 죽음이니 오죽하리오. 허름한 집에서 사지 육신은 있으나 제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의 아들을 보며 비참함에 위로를 받겠거니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지거리 내뱉으면 곧이곧대로 받아 들을 놈으로 살아있고 곁에 있음에 부러워한다. 세상은 올바른 사회가 되도록 목숨을 내던진 장한 아들의 어머니라 하지만 그러한 타이틀이 슬픔과 그리움과 맞바꿔 줄 수는 없다.

상실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으며 슬픔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완벽한 위로가 될 수 없다. 꺼이꺼이 울어도 보고 목이 쉬도록 부르짖어 그리움에 소리쳐보면서 슬픔을 눌러두고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건 저자도 겪어본 삶의 상실이기에 단편 속 여인이 전화기를 붙들고 울컥울컥 쏟아내는 것과 친구에게 말하는 문장들이 꾸며내고 곱게 지어낸 슬픔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저자 역시 슬퍼해도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 같아 그 시절의 저자를 앞에두고 맘껏 울라며 지긋이 눈을 맞추고 손수건이라도 손에 쥐어주고싶게 만든다.


📖도둑맞은 가난_ 이 동네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사니까 창피할 것 하나도 없어요. 아이들도 벌고 어른들도 벌고 노인들도 벌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살고들 있어요. 텔레비젼 놓고 사는 집도 있고, 며칠에 한 번씩 돼지고기 구워먹으면서 사는 집도 있고 아무튼 시끌시끌 노래도 부르고 낄낄낄 웃기도 하며 살고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살아요. 네. 우리식군 노인도 없고 아이도 없고 다 벌 수 있잖아요. 서로 기대지 않고 다 나가서 벌면 못 살 것도 없단 말이예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식구들을 부추겼다.

가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 설득당하는 아버지와 아들. 가난하게 살 바에는 단명을 택한 가족. 찢어지게 가난함을 극복하는 대신 탓을 하며 목숨줄을 찢어내는 결론을 지어버린 것에 놀랍고 무서워졌다. 허영과 명예욕이 제 목숨줄에 칼을 들이밀 수 있는건 예나 지금이나 가능한 비극일 수 있다는 점. 곁의 누군가가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생의 의욕을 불태웠더라면 이 동네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사는 것 처럼 그렇게 지지고볶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세상은 응팔의 덕선이집 같이 복작거리며 살부비고 애틋한 관계가 그리 많지 않음을 보여줬다.

불행도 가난도, 동료에 대한 측은한 마음도 돈 한푼 아끼며 연탄 한장 아끼려 했던 그 마음도 누군가에게는 궁상맞음이었다. 하루하루가 걱정과 근심인 삶이 부잣집 아들래미는 꼭 한번 겪어봐야 할만한 가난의 현실 체험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오는 허탈함. 상훈이 바라보던 시선의 온도나 입밖으로 내뱉던 말들이 어머니가 그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상이었음을 생각하면 가난을 핑계로 이뤄지는 사람들 반응이 그들의 죽음을 에스코트하는 저승사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_ 나는 그런 아픔이 부끄러운 나머지 틀니의 아픔으로 삼으려 들었고, 나를 내리누르는 온갖 한국적인 제약의 중압감, 마침내 이 나라를 뜨는 설희 엄마와 견주어 한층 못 견디게 느껴지는 중압감조차 틀니의 중압감으로 착각하려 들었던 것이다.

언제는 가장 편하고 한몸처럼 느껴졌던 틀니가 어느 시점부터 가장 불편하고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느끼는 과정. 내 일부라 여기던 이전과 달리 빼내어 버리니 날아갈듯 편한 현재. 그녀에게 틀니는 본인을 투영하고있었다. 원래 그러했다는 듯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던 일상이었다. 말단 공무원의 아내, 딸아이의 엄마, 또래 아이엄마를 둔 비슷한 처지의 이웃. 딱 여기까지는 윗니 아랫니 맞물리듯 빈 곳 없는 그녀의 삶의 반경이다.

헌데 소식 끊긴 친오빠가 간첩이되어 남파된다는 소식은 갑자기 앓게되는 부어오른 치아와 잇몸처럼 수시로 그녀를 거슬리게한다. 수사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일상, 남편의 승진마저 물건너간 허탈함. 나보다 못한 처지라 여기던 이웃의 애엄마는 아픈 딸을 데리고 남편이 있다는 미국으로의 이민. 어느하나 온전치 못하고 어그러지며 이탈해버린다. 그러니 빳빡하게 고정되어있던 틀니마저 온전함이 거슬리게되는 상황이다.

하고픈건 하나도 안 이뤄지며 다 떠나고 어그러지는 과정 속에서 자신만 온전한데 이 온전함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훌렁 빼내어 속이라도 시원해하며 허탈함도 같이 마주한다. 별거 아닌거 같은데 내 삶에 오니 별거가 되어버리는 처지. 자신이 겪는 고통의 물질이 손바닥 위에 올려진 틀니 정도의 무게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지만 얄짤없이 틀니를 제외한 세상의 무게가 자신이 감내해야만 하는 죄책감으로 받아들이게된다.

내용이 길지 않아서 머리 쓸 일 없겠거니 생각했으나 딴세상 이야기 같지도 않아 다음 소설로 넘어가는 시간이 더디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출간 연도가 기록되어있는데 전부 내가 태어나기 전후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30-40년이 지난 이야기인데 여전하리만큼 세상은 책속의 그들처럼 많이 아프고 지쳐있다. 소설속의 이야기에서 그치길 바랐을텐데 책 밖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가난과 죽음, 타인의 시기와 세상을 향한 원망이 서려있다. 시대상이라 하고싶으나 한 시절로 끝나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여전한 세상에 박완서의 글이 사랑받고있나보다. 남겨둔 글이 몇십년을 지나 지금도 위로받고 있는 현상을 보니 이 시대는 끝끝내 변하지 않을 듯 하고 사람들은 지쳐있으며 위로를 기대하고있다. 보듬는 마음은 갈구하진 않지만 기대하는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오랜 CM송의 한 문장처럼 사사로운 개인사 오픈 없이 찰떡같이 알아주는 단편들이 더 있을거라는 기대감으로 내가 미쳐 읽지 못한 전작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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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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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와 배신, 침묵과 공모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며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속이려 한다고 전했다. 더 나은 삶이 아닌 덜 거짓된 삶을 향한 것에 중점을 두었고 가족, 사랑, 노동, 돈, 계급 등 이러한 삶의 조건이 인물에 씌워졌을 때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사실감 넘치는 주변인이 되어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이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인냥 내 세상에 자연스레 스미게된다.



📖이름 없는 마음_ 굽은 어깨로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며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를 오갔을 현권의 마음. 그 마음만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누나의 시선에서 남동생은 제 한입 건사하지 못하는 모지리로 보여진다. 준희에게 현권은 그런 존재다. 저놈이 어디가서 사람구실이나 할까 싶어하며 전여친에게도 호구잡히는거 같아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인 듯한 챙김과 보살핌같아 저놈을 어찌해야하나 라는 생각만 가득하다. 스스로 살아가는 걸 터득하게 하고는 싶으나 시선 밖으로 나가면 되려 준희가 불안해져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에 대한 해결을 준희의 멋대로 꾸려둔다. 이게 누나의 소임인냥 생각했고 이렇게 해야만 어디가서 밉보이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모든걸 자초한다.

하지만 준희의 마음과는 다르게 현권은 부담과 거추장스러움을 비친다. 이건 누굴 위한 친절이고 누굴 위한 배려의 결과일까. 요청 한 적 없는 선의와 짐짓 예상하고 미리 선수치듯 자초하는 마음은 수요없는 공급이며 결과보단 과정에만 뿌듯해하는 나눔을 통해 정착되지 못한 마음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너 하는 그 일_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내리막을 달려 곤두박질치는 일뿐이었다.

제법 긴 기간 하고있는 공부. 시험이 끝난 뒤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며 생활하는 태은. 같이 살진 않는 엄마의 안부와 함께 이어지는 엄마와의 일터 동행. 태은에게 엄마는 이해하려해도 이해안되는 사람이다. 엄마는 함께사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한번 못 받는 사람이었다. 태은의 친부에게도, 친부가 죽고 만난 아저씨에게도 하대받지만 엄마는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그들을 옹호하는것이 마뜩잖을 뿐이다.

물류센터에서 도망 치듯 엄마도 엄마의 삶에서 도망이라는걸 시도했다면 태은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까. 측은과 못마땅, 울화까지. 엄마가 남자들에게 도망치지 못하는 것, 태은역시 될거라는 기대감으로 가채점과 커트라인 속에 메여있는 과정은 결국 둘다 멈추지 못해서 곤두박질이라도 치고있으니 어쩔 수 없는 그 엄마의 그 딸이라는 결론밖에 없었다.



📖부부생활_ 근데 일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야? 각자의 사정에서 할 일을 하는 거지,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사명감은 무슨.

학원을 운영하는 구영수. 병원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아들인 영수보다 요양보호사였던 진희와 더 오랜 시간 함께한다. 짝이 없던 영수는 어머니가 자신과 진희를 맺어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호감을 넘어 혼인신고까지 하며 함께 남은 생을 이어가기로한다. 사명감이 아니라 제 몫의 일을 했을 뿐인 진희. 영수가 반하게된 타이밍. 어떻게 빠지게 되는지는 각자의 시나리오에 어떻게 끼워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고있었다.



📖부부생활_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 서로의 인생을 완벽히 저당 잡았다는 사실. 네가 나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너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불안한 사실이 주는 안정감. 그 결속을 이뤄낸 성취감으로 구영수는 살아 갈 수 있었다.

학원 운영이 잘 되던시기도 있었고, 요양보호자의 직업을 갖고있는 진희와 맞벌이를 하며 살아가며 집안을 어떻게 돌볼지에대한 여느 부부와 같은 생각와 의견 충돌. 같이 경제활동을 하지만 누구의 소득이 많으냐에 따라 살림살이의 비중을 재게 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소득의 격차는 영수에서 진희쪽으로 넘어가게되는 과정. 어느 집이든 다 있을법한 고민에서 한단계 진화된 그들의 결론. 부부 일심동체가 이 대목에서 나올줄은 몰랐지.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_ 그래서 나는 믿기 좋은 만큼의 진실만 말해야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기억은 내가 갖고 싶은 대로 남겨지고 편집되어진다. 이 왜곡의 과정은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운다. 엄마와 함께 낯선 동네 낯선 집으로 이사를하고 그곳을 꾸리며 살아가면 그래도 행복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하나씩 꾸려간다는 기쁨은 행복을 재정비 한다는 기쁜 착각을 하게하지만 그곳은 결국 함께가 아니라 엄마 좋으라고 꾸려진 세상이었다는 것에 씁쓸함만 남기게한다.

보고 들은 것을 모두 말한다면 그 밤을 몇번이며 복기하고 진술해야한다는 걸 터득한다. 이딴 사건에 덜 휘둘리고 덜 엮이고자 한다면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척 그렇게 자체적인 필터링을 통해 묶어두고 덮어두는게 내 숨구멍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주는 아주 깔깔한 세상의 이치였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것. 이건 백마디 말을 한들 와닿지 않는다. 주변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거울치료가 이뤄져야 좀 더 명확하게 와닿고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려되지 않던 예시 중 하나일 수가 있다는 점은 어떠한 관계이든 예외는 없음을 보여준다. 삶의 방식이 완벽히 다른 누나와 남동생 사이. 잘 알고 지낸다 여기던 대표와 직원, 서로의 삶을 이해못하는 엄마와 딸, 더 좋은 여건에서 살길 바라는 부모와 자식, 평생 다르게 살다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부부 사이. 이들은 가장 가깝고도 가장 잘 알고 있는 서로임을 자부하지만 속내를 알기는 어렵다는 것.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드럽게 안 맞는다는 사실 또한 꽤나 씁쓸하고 텁텁한 결론을 주기도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 모르는 것들이라는 건 심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너무 가까워서 미쳐 보지 못했던 시야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수월하기도 하다. 살짝 멀어져야 보이는 관계도 있다는 것. 너는 내가 아니니 나도 너로 살 수 없다는 걸 잊을 때마다 상기시켜야한다.

그래서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만이라도 알고만 싶어진다. 보여지는 것 만이라도 또렷하게 알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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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 - 살면서 누구나 고민하는 인생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
이근후.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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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의 오래된 책들 중 가장 아끼는 것이기도 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고 싶다'의 저자 이근후 선생. 읽은지 10년도 더 된 책인데,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걱정많은 사람이었나보다.

다시금 내가 이렇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걱정만 하고있는걸 보니 나이 앞자리가 바뀌기 직전의 삶이 시작되었고, 작년도, 그 전년도도 똑같이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던 터라 어떻게든 조언과 질타와 꾸짖음을 받고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바운더리에 사람들이라 해봤자 워낙 교류가 없으니 직장,가족 뿐인 단촐한 인간관계라 타인이자 어른을 통해 아는 말이지만 새롭게 받아들이고 싶어 또 이렇게 이근후 선생에 글을 찾아나선 겪이다.


이번엔 이근후 선생과 이서원 소장의 담화에 내가 끼어들어 귀동냥하는 글이다.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주재로 수개월 걸쳐 매주 수요일마다 나는 대화를 재구성한 글로서 누구나 고민하고 있는 인생에 대한 질문 50개에 대한 각자의 답변들이다.

마음을 헤아리는 관점부터 시작하여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 그냥 세상 살아가는 그 자체에 대한 아득함을, 가족이든 부부관계든, 결국 사람과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결국 모든 근원적 답은 나로 통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내가 어떻게 행복해하고 사랑하며 다스릴 것인가에 대해 같이 고민 해준다.



📖열심히 사는데도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까요(청춘의 슬픔과 해법)_ 우리는 결과가 좋은 걸 소망하잖아요. 그걸 이루기 위해서 선택을 하고요. 선택은 자기딴에는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좌절이나 절망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거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하고. 통찰력이 조금 더 있는 사람은 '내 선택이 잘못됐구나!'라고 생각하죠. '내 맘대로 하긴 했는데, 내 맘대로 한 게 결과가 잘못되었구나!'이것만 알아도 굉장한 거예요.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친다 하더라도 결국 살아야 하는 것. 내일의 해는 뜰 것이고, 드럽고 아니꼬워도 해가 뜨고 있는 이상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제처럼 또 살아야했다. 그게 청춘을 버티는 방식이었고, 나를 무디게 만드는 자기최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그럴수도 있지, 넘어지는 김에 쉬어가고 열번 찍어 안넘어가면 열한번 찍는 이구역 미친자가 되어보자'고 마음먹고 사는척 한다. 그러곤 속으로 '이번에도 글러먹었네, 드럽게 안되네. 내 선택이 뭐 그렇지. 또 망한 업적 하나 추가요.' 라며 해탈+자책의 삶으로 살고있다. 일단 나란놈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누구보다 까탈스럽게 알아 차리는 정신머리는 있으니까 이게 통찰력이다 싶어하며 알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다음엔 이딴 것에 허무한 수고를 하지 않길 바라게된다.


📖가족에게는 왜 말조심을 안 하게 되는 걸까요?(가족을 대하는 법)_ 나에게도 다정하게 대해주는 거죠. 그래서 가족과 남을 바꿔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아요. 가족을 남처럼, 남을 가족처럼. 그러면 가족은 적당한 거리로 멀어져서 말조심을 하게 되고, 남은 적당한 거리로 가까워져서 말을 더 잘하게 되는 겁니다.

나를 잘 아니까, 그래서 더 쉽게 대하고 쉽게 뱉어버리는 과정. 하지만 생각보다 모르는 구석이 많은 조합 일 수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예의를 지키고 한번 더 생각 하며 행동하기. 어떻게 보여질지를 걱정하며 의식하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바운더리를 벗어나 타인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면 그 무드를 계속 유지한채 살아봐도 좋겠다. 적당한 예의와 적당한 긴장감은 나도 그러하고 상대또한 가볍게 여기지 않을거라는 쌍방의 합의와도 같은 것이니까. 그러니 서로 하대하지 말자. 결국 돌고 돌아 그 끝은 나를 향하게 마련이니까.



📖자기만 아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살죠?(자기중심적인 배우자와 사는 법)_ 그 사람에게 당신만 고치면 된다고 탓을 해요. 탓은 미움이지 사랑이 아니잖아요. 탓을 하면 자기중심인 사람은 반성은커녕 더 자기중심으로 들어가 버려요.

자기중심적인 배우자 만큼이나 자기중심적인 본인을 들여다 보는 법. 똑같은 사람 둘이서 각자를 탓하기 보단 타인을 긁어내는 마음. 싸움의 화근.

다행이 나는 유순한 사람이며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이와 살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내가 자기중심적인 이구역 미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상대의 행동에 나를 투영하여 반성하게만든다.

결국 이근후 저자의 이야기는 탓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해주라며 피해를 보는 사람이 가해하는 사람을 맞추라는 말로 번역이 되는데, 이게 오역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자기중심적인 이는 상담도 문제 의식에 대한 자각도 안하는 이 임을 우리가 잊고 있었다. 미워하는 마음 갖게되는 것도 결국 피해를 보고 있다 여기는 사람이며,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결국 내담자였다. 진실로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는 결론일까.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요?(의외로 쉬운 행복의 비결)_ 행복이라는 나무에 작은 것들을 주렁주렁 매달면 돼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즐거워해요. 더러는 나를 따라서 자기 나무에 비슷한 것을 달기도 하고요. 그런 게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지면 좋겠습니다.

행복이 '최소한'이란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다고 믿는 저자. 아침에 눈뜨면 즐겁고, 오늘도 숨을 쉬는 것에 살아있다는 행복을 누리는 것. 아침을 아내가 차려주면 즐겁고 먹으니 맛있고, 그걸 보고있는 차려준 아내는 즐거워하는 삶. 나이가 들면서 즐거운 것들이 줄어든다 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즐거워지는 시선.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매번 새롭고 놀라울 수 있는 마음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뜻을 나이가 들어 더 명확히 알게되었다는 말들 속에서 나는 매번 크고 화려한 것들에만 행복이라 지칭한건 아니었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꿈을 찾게 되는 날이요. 너무 기뻐 하늘 보고 소리를 지르는 날이요. 뭐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라며 노래 제목은 HAPPY이면서 가사는 행복하다는 말을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는 가사가있다. 나는 그러고 살고 있었다. 잘 웃고 잘 지내다가도 어느새 혼자 굴을 파고 들어가 마음의 벽을 치고 불을 끄고 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사람이면서 어떻게 행복의 비결을 순순히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마음이 최소한을 넘어 한줌도 되지 않는, 우울이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이 비결을 보며 내 근원적인 행복의 바닥부터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불현듯 문득문득 아무렇지 않게 살다 이따금씩 생각을 하게 될 때 내가 우울감의 비중보다 행복의 비중을 좀 더 두면서 입꼬리를 의식적으로나마 올려보며 살아본다면 이 비결을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 새겨본다.

살면서 누구나 고민하는 것들엔 기초적인 답변들이 따라 붙는다. 우리는 그걸 도덕적인 범위 내에서 모두 습득하며 자라왔다. 머리로는 잘 알고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직 준비가 안 된것. 알지만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곱씹어 읊어준다. 50년 경력의 정신과 의사와 25년 경력의 상담전문가는 다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의견에 나무라는 것 없이 자분자분 당신들의 사례와 이해하기 쉬운 예시들로 어르고 달래며 곁에서 듣기만하는 나를 구슬리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식을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원했기에 이 책은 상냥했고 다정했다.

그걸 생각하면 아는 이야기이고 당연한 결론인데 이게 맞는지에 대한 의심만 커 갈때 니가 생각하는 그거 맞다며 긴장과 의구심을 풀라는 듯 말해주는 뉘앙스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어지간하면 사회생활 하는게 큰 문제 없이 무난하게 살아내고 있는 이라면 저자의 이야기들에 반박할 이유 없이 그게 맞다며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익히 겪어본 상황과 이미 알고있는 답변이지만 한번 더 상기시키며 니가 생각하는 그 결정이 맞으니 그대로 살아도 된다는 듯 어른이지만 나보다 더 산 어른이 어르고 달래는 글이라며 부담없이 다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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