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나라 이웃나라 -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의 맛깔나는 음식과 생활 이야기
비카쉬 저스틴 쿠니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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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국 22명의 이주민들이 한국에 오게된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도 간절히 생각나는 고향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즐기는 행복한 한끼를 나눌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이해와 공감의 레시피북. 서로를 알아가는 귀한 과정이며 개인의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들려주니 한층 가까워지게되는 대화의 순간. 거기에 한국의 청소년 39명의 재능기부로 이주민들이 전하는 내용을 글과 만화로 담아낸 예쁜 책.

입말로, 서툰 손글씨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은 번역기와 바디랭귀지를 이용하여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려주고파 애썼을 서로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 책에 든 감사한 수고를 내가 너무 편히 읽고있는건 아닌가를 떠올려보게된다.

먼나라 이웃나라보다 좀 더 가까운 뉘앙스. 맛나라 이웃나라의 제목처럼 맛있는걸 보면 나의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고픈 마음이 절로드는 과정.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 먼나라 이웃나라의 언어유희버전으로 책 제목을 맛나라 이웃나라를 택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본다.

요즘은 OTT의 음식관련 방송 뿐만 아니라 배달음식이나 밀키트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대표메뉴를 만날 수 있는데, 내 주변의 그 나라 사람이 알려주는 진짜 로컬 맛의 이야기 처럼 느껴져 그들이 만들어주는 음식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툴지만 차근차근 따라한 내 음식을 그들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분명히 낯설고 차가웠을 타국의 온도. 그럼에도 살아내며 버텨오게 만든 그 음식의 힘을 기대하며 나도 서툴지만 그 맛에 다가가보게된다.



타국의 언어를 이토록 자유롭게 쓴다는 것. 이러한 결과가 있을 만큼 애 써 왔을 이들의 손끝을 생각하면 청소년들이 그려준 만화 만큼이나 소중한 손글씨 레시피 북이다. 이주민이라 말하지 않으면 모를듯한 글씨체와 단어 선택들. 뭉근하게 끓인다던가, 위로 오게끔이라는 단어 선택을 보면서 매체에서 보던 요리선생님 못지 않은 표현력에 감탄하게된다.


카페디저트 메뉴로 아무렇지 않게 선택하던 브라우니였으나 이제는 한국의 약과와도 같은 미국의 소울푸드라고 말하던 빅마마 샤메인 콤프턴의 이야기가 떠오르겠지. 모양이 망가져도 괜찮다고 도시락 통에 담아 공원에서 먹어도 좋다는 말에 용기내어 전용 믹스 가루가 아니라 직접 계량해서 만들어보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그러하듯 바쁜 부모님대신 조부모의 손에 자랐다고 했던 와루니 타차이처럼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소울 푸드는 할머니표 음식이라 했다. 직접 만드는 것도 손녀에게 다정히 가르쳐주셨을 모습을 보면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애정어린 손맛이 이런거구나 싶어지며 이제는 그녀가 자식들에게 손수 만들어 자신의 어린시절의 한끼를 전해주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사랑뿐만 아니라 그 순간을 느끼게하는 맛 또한 내리사랑처럼 전해짐을 느꼈다. 할머니표 팟타이에서 이제는 와루니 타차이표 팟타이까지. 아마 그녀의 아이들은 그 맛으로 태국의 향을 기억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건새우 대신 새우 마른거 1수저라 말했던 레시피에서 음성인식 되는 듯 해서 피식 웃게되는 조리법은 꼭 찾아보길.

다 읽고나니 조경규 만화가가 적어두었던 것 처럼 나는 어떤 음식을 내 고향의 맛이라고 알려주게될까를 생각해봤다. 나 또한 이 책에 레시피를 공개했던 이들처럼 엄마의 맛, 할머니의 손맛을 추억하며 어린시절 행복하게 먹었던 그 한끼에 대한 것들을 알려주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된다.

배달도 맛있고, 오래된 노포의 전통을 이어가는 음식도 분명 맛있지만 세월과 추억의 조미료가 솔솔 얹어져 더욱 풍부한 맛을 내는 어린시절 내가 엄마에게 엄지척을 날리며 가장 행복하게 먹었던 그 맛 그 음식. 어느집이나 다 해 먹을 흔하지만 맛까지 흔하지 않았던 그 집밥을 알려주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게 전수받은 집밥 레시피로 오늘 우리집 식탁을 꾸려볼 즐거운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게 되었다.



먹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감정. 나만 알기 아쉬운 사랑스러운 순간.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부디 지금 딛고있는 한국 땅에서도 그 먹고 사는 기쁨을 살뜰히 챙기면서 이곳에서도 평안함을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된 완독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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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 김창완 에세이
김창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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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내신 동시집을 행복하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창완님의 새로운 책도 기대되네요. 아저씨가 전해주실 위안의 글들을 일고 마음의 평온함을 되찾아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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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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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안겨주는 포근함은 여전히 좋다. 더이상 사랑은 없을 것 같은 나이의 중년이 된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지금 하고있는 이 사랑이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며 안정감있는 평온함을 주기에 청춘의 사랑과는 결이 조금 다를지라도 여전히 좋고 애틋하다.

그러니 그때도, 지금도, 모든 게 처음인 듯 가슴 뭉클하게 설레는 사랑은 나를 살게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픈 마음으로 다가온다.

계절의 여왕인 봄은 세상도 분홍색으로 물들고,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마저도 달콤한 솜사탕처럼 만들어버리니 이왕 이렇게 사랑에 물들어 버렸다면 시인 67인의 사랑 시로 특별한 마음을 잘 키워보길 바라게된다.



국내 최초의 시 큐레이션 앱 '시요일'에서 기획한 다섯 번째 시선집.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시요일 기획위원인 안희연, 최현우 시인이 사랑의 시작을 테마로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은 시 67편을 엄선해 이 한 권에 담아내었다.

인간에게 사랑은 영원한 화두라지. 내가 살아보니 삶에서 사랑은 꼭 필요한 감정이며 사람을 더욱 열심히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더라. 모두에게 보편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각각에게는 너무나 고유하고 유일한 경험이니 이 감정에 젖어들다보면 열병같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구구절절한 글이 아닌 짤막한 시 한편이지만 이 마음이 어떤건지, 왜 그대와 함께할 때엔 이러한 마음이 드는지를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에 나란히 걸어주며 이 길이 맞다고 끄덕여주는 시선이 되어준다. 앓고만 있다가 넘쳐 흐리기만 할 뿐 채 닿지 못한 애절함에 대한 짠하고 안쓰러운 일들도 분명 존재한다.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 아니, 그 전에 마음을 조금씩 밀어넣는 두근거리는 잰걸음부터 화르륵 타오르다 빨리 사그러지기도하는 그 후회까지. 다양한 시인들의 단어들로 사랑을 배우고 이 사랑을 어찌 품어야 할지 그들을 통해 들어보기로 한다.



📖기획의말_ 사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 앞에선 번번히 세상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가 될 밖에요.

알다가도 모를 그 마음이 사랑의 감정과도 같지 않을까. 이 책의 3부작은 사랑이 무르익는 과정이기도하며, 사람이 나이드는 수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감정마저 나이를 먹어 반성하는 마음의 사랑회고의 과정이라 느껴졌다. 1부, 사랑을 시작하는 얼굴. 2부, 당신이라는 기묘한 감정. 3부, 우리가 한 몸이었던 때를 기억해. 를 통해 사랑에 무르익음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감도 느끼며, 마지막엔 원없이 사랑했고 사랑받았으며 사랑에 겨워했으나 결국 하길 잘했다로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대상이 바뀌기도하고, 한 대상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내가 변하기도 했다. 온전히 멈춰놓은 채 그 때를 가둬둘 수도 없는게 사랑이고 마음이며 우리였다. 그러니 매번 새롭다. 글로 배우고 귀동냥으로 익히며 시뮬레이션을 가동해도 옳은건지 계속 뒤돌아보는 마음들 뿐이다. 부디 이 시집을 다 읽고 난다면 이렇게 아쉬운듯 뒤돌게되는 감정이 줄어들길 바란다.




📖얼굴_

눈물을 닦으며 너는 너를 사랑한다

눈물을 닦으며,

나는 네 사랑을 사랑한다

아직 시작되지 않을 때. 나만 그 감정을 키워 나갈 때. 그리고 상대의 작은 움직임에도 혼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될 때. 그 시작의 마음이다. 나의 시선이 오로지 상대에게만 향해 있을 때.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던 그 때. 별거 아닌 움직임에도 혼자 의미를 두고 별의별 생각을 했으며, 그 눈물이 나로 인한 슬픔은 아니나 다시는 그 슬픔의 이유를 만들지 않도록 내가 더 애써봐야겠다 마음을 다잡게되는 밤. 너는 이 밤의 끝이 무사하기만 하면 되고, 나는 이 밤의 끝이 무수히 길어 다시는 이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공부하고 복기하게된다.

첫 사랑이 그랬고, 처음 그 설렘이 그랬으며,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묘한 감정의 시작이 딱 이랬다. 얼굴. 그냥 얼굴만 봐도 좋고 아찔했던 그 찰나.


📖꽃말_ 꽃을 전했으되 꽃말은 전해지지 않은 꽃조차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마음

그냥 지나가는데 예뻐보이길래 샀다는 그 흔한 거짓말. 꽃을 주는 날이라길래로 시작하는 어색한 대화의 물꼬. 나같이 용기도 없고, 패기도 없는 사람을 위한 그런 하루니까. 그 귀한 타이밍을 놓치기 싫어 꽃으로 마음을 덧붙여보는 중. 이걸 받는 그대는 꽃속에 숨겨진 마음과 꽃이 갖고있는 꽃말과 꽃을 앞세워 가려보는 쿵쾅거리는 감정의 요동침을 분명 모를게 뻔하다. 그래도 나는 어쨋든 마음을 다해 모든 진심을 꽃잎 하나하나에 끼워 내민다. 꽃은 전했고, 꽃말은 모를테고, 마음은 더더욱 생각지도 않겠지만 그저 집으로 가져가 테이블위에 올려진 꽃을 보며 내 생각 한 번 쯤이라도 해준다면 꽃은 제 역할을 다 한거다. 티내지 못하는 애틋함이니 꽃은 죄가 없다.



📖사랑과 자비_ 웃고 있는 서로를 보며 우리가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무엇을 보고 또 알았는지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을 보며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마음을 주고받았는지

3부의 시들은 부풀어올라 한껏 키워낸 몸집이 크고 선명한 사랑의 빛깔은 아닌듯 했다. 만개 후 살짝 숨이 죽은 꽃잎 같기도하며, 정오 무렵 강렬한 햇살의 시간을 지나 스르륵 져 버리는 노을진 어스름의 순간. 또 어떤 글은 괜시리 찻잔만 만지작거리며 그때를 떠올리는 공허한 눈빛의 단상이 비춰지기도 했다. 완전히 끝맺음은 아니겠다만 예전 그때와 같을 순 없는걸 알고 아련히 시절 여행을 떠나는 모습들이다. 그렇더라. 사랑은 순간을 살게 하기도 하지만, 존재의 부재가 있더라도 남은 생의 여생을 살게도 만들었다.


이왕이면 내가 하는 이 연애의 감정이 건강하고 단단하며 쉬이 흔들리지 않을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라게된다. 그리만 된다면 나는 이 감정을 지지대 삼아 사는 동안 어떠한 흔들림에도 무던하게 버텨낼 재간이 생길 것 같거든.

당신이 연애라는 긴 레이스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감정과 저러한 일들. 또 요런 고민과 저런 상황들. 그런 시선들과 아득해서 눈을 꼬옥 감아야만 느껴지는 마음의 옅은 감정도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아줬음좋겠다. 마냥 맑은 날도 없지만 평생 우기인 세상도 없고, 시간이 멈추길 바라지만 정말 멈추어 버리는 일시정지도 없으니 이 울컥거리는 것이 사랑임을 직감했다면 이 연애가 이후에도 쭈욱 나의 사랑이며 당신과 계속 유지하고픈 사랑이길 응원해본다. 이 책을 통해 나도 내 사랑을 열심히 지켜 볼 테니 당신들의 연애도 무탈하길 빌어본다. 우리 함께 애쓰자. 이 연애가 고민해도 결국에는 사랑이었다고 확신 할 수 있도록.

📖미디어 창비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았으며 완독 후 기록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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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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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 맛집이라고 불리우는 백온유 저자의 이야기들.

'유원'도 읽었고, 당연히 '페퍼민트'도 완독 후 독서기록까지 남겼기에 자연스레 이 작품도 읽어야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출간일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이 책을 만났다. 앞서 만났던 두 작품과는 다른 관심의 시선이었다. 저자의 작품에는 용서와 화해, 죽음과 돌봄의 문제들을 볼 땐 청소년만 읽기에는 아까운 묵직함이 있었다. 청소년소설 분야에 카테고리가 걸려있지만 성인들도 읽어봤음직한 작품. 그래서 더욱 스스럼없이 작품을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경우 없는 세계'는 작품이 출간 되기 전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를 보고 내가 굳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과연 이 키워드에 공감을 가질만한 단어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며 다음에 시간 될 때 읽지 싶어 미뤄두고 있었다.


내가 공감 못할 것 같던 세계속의 이야기이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왔던 마음이 따끔거리며 아프게 와닿는 것들이다. 가출, 노숙, 소매치기. 떠도는 삶. 갈 곳이 없는 아이들. 그 세계속에서 살았고 어른이 된 인수의 이야기이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청소년인 이호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경우를 떠올리며 이호만큼은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툭툭 얹어진다.


책의 제목이자, 등장인물로 나오는 경우. '경우 없는 세계'는 사전적 의미인 사리나 도리가 없는 세계를 말하지만, 책의 중반에서 나오는 인수와 똑같은 가출 청소년인 경우의 등장으로 사전적 의미만 가진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후반부에는 경우라는 친구가 없는 세상이 됨을 알 수 있다.


📖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좇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채근하고 때리는 것이 익숙한 아버지. 그걸 잠자코 맞기만 하는 어머니. 이건 아닌거 같아 대들어보지만 엄마를 지켰다는 생각보다 두분에게서 받는 냉대를 통해 주인공 인수는 이 집에 굳이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집을 나왔지만 자신을 애타게 찾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그렇게 급하게 세상으로 던져졌으니 당장의 먹고자는 것부터가 녹록치 않다. 도둑 고양이마냥 숨어다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숨어자거나 남의 것을 훔쳐 사는 삶. 어딜가더라도 편하지 않으며 시선이 바삐 움직이며 누가봐도 불안한 모습. 부모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 뿐인데 모든것이 두렵고 무섭다. 그렇다고 또 다시 그 매질의 소굴로 들어가고 싶지 않으니 딱히 선택권이 없는 인수였다.

다양한 르포나 재연프로그램을 통해 익히 봐온 수순으로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팸을 형성하여 살아낸다. 건전하지 못하지만 벌이가 쉬운 분야를 선택하고, 법의 울타리를 벗어난 근로조건이라도 받아만 준다면 수용 할 수 밖에 없는 약체. 나쁜건 알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한다. 때리고 채이는 부모의 곁을 갈 것인가. 의심하고 무시하는 관찰소로 들어갈 것이냐. 떠돌이의 삶에 만족 할 것이냐. 차라리 소년원으로 들어가고싶다고 하는 아이들의 말을 수용 할 것이냐.

내 눈엔 하나같이 제 이야기들만 하며 설움만 터뜨리는 느낌이다. 어느 한명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이가 없다.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서 방관하는 어른. 자신의 잘못됨을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는 아이. 그 속에서 경우만큼은 달랐고, 그래서 더 눈에 띄였으며, 인수나 성연의 눈에는 아니꼬웠을지도 모르겠다. 계속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건 악담 중의 악담이겠지만 얘들도 자신들이 남들에게 그렇게 비춰보임을 알면서도 쉬이 놓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이호를 바라보는 어른의 인수처럼 모든게 시간이 약이니 세월의 흐름만을 기다려야할까.


📖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후회를 곱씹는 일에만 성실히 복무했다. 아무것도 갈구하지 않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에 애착을 가지지 않는 소심한 방식으로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건 경우가 전혀 바라지 않는 방식일 테지.

이호의 방황과 갈등. 그 모든 고민의 날카로움을 똑같이 겪어냈던 인수. 저렇게 이야기해주며 그럴듯한 정답 까지는 아니지만 도와준다는 말로 자신을 붙들어줄 어른, 또는 사회단체가 있었다면 어른의 인수는 지금처럼 헛것이 보이고, 그날의 기억에 붙들리지 않고 살아 낼 여력이 생겨날까. 삶에 애착이라는 것. 살아가고픈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있는 것. 인수의 삶에서 A나 경우의 환영, 또는 알 수 없는 그림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 삶에 재미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점. 아마.... 이호가 인수의 말처럼 학교를 가고, 올바른 형태의 알바를 하며, 으레 그렇듯 또래처럼 사는 걸 본다면 그걸로 대리만족과 함께 그때의 악몽에서 살짝 발을 뺄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

붙잡아두었고 흘려보내지 않은 이호의 찰나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 처럼, 인수의 그 시절에도 고맙다고 할 만한 비빌 언덕을 만났다면 삶이 달라졌겠지를 예견해본다. 이렇게 긍정 회로를 돌려본들 이미 시간은 흘러왔고, 변한건 없었다. 다만 이호를 통해 어린 인수도 함께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학교를 잘 다녀왔는지를 묻는 어른, 오늘은 므슨 일이 없었는지 마음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을 가지는 서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양육자의 사랑과 신뢰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너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말은 칭찬으로 다가올까, 상처로 남을까. 스스로 던진 이 질문의 답을 오래도록 고민했다.

작가의 말에서 턱하니 울대를 쳐 맞은 기분이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니 당연히 살가운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나이의 앞자리가 2로 바뀔 즈음 모두에게 어른 소리를 들으며 성글지만 청년의 수순으로 넘어가는 걸로 알았다. 가출청소년, 매맞는 아이들, 보호받지 못하는 학생들. 그건 사건을 파헤치는 늦은밤 현장르포속 내가 가본적 없는 도시의 아주 특이케이스로만 알았다. 제대로 우물안 개구리로 철모르게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사랑 받고 자란 티가 난다'며 가볍게 입을 놀릴 수 있었다. 그들의 속사정은 알려하고도 하지 않은 채 쉽게쉽게 뱉어냈다.

가출청소년. 선한 인상을 주는 단어는 아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조건이 될 수 밖에 없는 형편과 사정따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을 놓고 봤을 때 우리가 지금껏 가졌던 시선과 잣대로 보는게 맞을까를 되물어본다. 그렇다고 모두가 경우의 입장이라 보고 돕는게 이로울지, 성연같은 아이는 아닐거라고 덮어두는게 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되긴 할지.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선택의 처음엔 어른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 시발점이 되었으리란 생각을 왜 배제해뒀는지. 계속 묻고, 또 그 물음을 두고 다른 관점을 열어 만약을 덧붙여본다.

따뜻한 가정. 나를 예뻐해주는 부모. 딱 그 나이 만큼의 맑음을 갖고 자라는 아이들. 재력이 풍족하진 않으나 감성이 메마르지 않는 환경. 그야말로 즐거운 나의 집. 아끼고 사랑받는 방법을 받는 사랑을 통해 자연스레 습득하며 꽉 찬 마음으로 커갈 수 있는 것. 흔히 말하는 사랑 받아봐서 사랑 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 반듯하게 자랄 수 있는 귀한 울타리. 그걸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왜 그토록 바라는게 많았던건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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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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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다음 페이지를 먼저 훑어 보지 않아도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곤 한다. SF소설의 독파력을 좀 쌓아두었더니 다음 페이지에 보여질 세상의 미래가 보인달까? 그게 당연했으면 싶은 이유는 이후의 이야기가 절망보다는 희망의 방향으로 기울어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두고 김칸비 만화가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왜 인간인가? 인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존을 건 사투,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고립의 끝. 하지만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희망인지 정말인지 모호하다. 우리의 삶이 늘 그렇듯이.'

삶이 항상 해피엔딩이 될 순 없고, 가이드라인에 따라 흘러가듯 유유히 이어지는 방식은 아니다. 어떻게든 버텨내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그 순간을 넘서야하고, 넘어 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힌트 같았다. 그래서인지 다형의 코 앞에 닥쳐온 시련, 혹은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의 순간을 잘 넘겨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사람 사는게 나와 같은 마음만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없고, 나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는 이도 없다. 어디든 대립이 되는 인물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의지와 간절함이 더해지는 느낌도 든다. 이야기의 초반 다형이 터널에 머무를 수 없도록 자극하는 황필규. 전형적인 밉상의 캐릭터이며 자신의 이득은 당연한 것이고, 남들의 희생이 단체생활에 필요한 부분이라 여기는 인물이다. 어찌보면 권력을 등에 지고 자기 살 길은 터 넣고 남들을 쥐어짜는 악역이기도 한데 이 자가 이 책의 말미에도 이리 당당하게 요구하며 다형을 내몰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며 이야기를 따라가도 좋다.

터널로 들어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괴생명체를 피해 해저 터널로 들어와 자진 고립을 감수해야 했던 존재. 짠물이 들어오는 순간 더이상 이 곳도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지만 터널 밖의 세상이 두려움으로 가득한 것. 이건 어찌보면 요즘 사람들이 갖고있는 마음의 빗장 같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본다. 마음을 닫아두고 타인의 자극을 외면 하는 것. 밖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해결 할 수 있진 않을까를 고심하며 어떻게든 마음의 확장을 기대하기보단 점점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그야말로 요즘 사람들의 마음의 문이 터널103이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

무피귀는 학창시절 과학실에서 보았던 인체모형을 떠올리게 했다. 키는 성인 남성의 두 배에 육박했고, 피부가 없는 탓에 근육, 힘줄, 인대 뼈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존재. 눈꺼풀 없이 돌출된 안구. 그것을 움직이는 실타래와 같은 근육의 움직임.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아닌 몰골. 낯선곳, 변화된 환경에 발가벗겨진 채 그대로 방치된 또 다른 인간의 거죽과 동시에 심연 불완전한 마음과도 이어짐을 느꼈다.

다형은 터널 안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무엇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터널 밖을 나섰고, 터널 밖에서 무피귀와 그간 모르고 지내온 같은듯 다른 인간들과 마주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심한다. 그러면서 만난 싱아. 무피귀로 변하기 이전의 그야말로 다형과 같은 모습을 한 아이. 무피귀가 되려는 모체의 상태에서 나왔던 터널 밖의 생존 아이. 싱아를 통해 미리 짐작해보는 이들의 앞날.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로 어린순은 나물로도 먹고, 약재로도 쓰이는 어디서든 잘 자라는 풀. 그리고 6월 경 흰 꽃을 피우는 것에 대한 학명으로 다형은 싱아의 도움으로 꽃을 피울 것이고, 싱아로 인해 어디서든 잘 자라는 것 마냥 어디서든 해결책을 제시 해 줄 것을 이름에 숨겨놓음을 생각해봤다.




준익이 말했던 무피귀.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을 빌미로 이뤄진 연구를 빙자한 인간 병기의 결말. 물리거나 할퀴인 인간이 똑같이 변하는 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했던 말 처럼 사람의 탈을쓰고 악인으로 바뀌고 상대를 해할 수 있는 것은 큰 작심 없이 이룰 수 있는 이기심으로 보였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 만들었고, 자신은 아닐거라 했지만 환경에 휩쓸려 악인이 되는 것은 한순간임을 무피귀와 무피귀를 만들어낸 연구진들을 통해 어쩌면 우리도 반반한 인간의 낯짝을 한 무피귀가 될 수 있음을 내비친 대목이었다.

태관은 아버지의 이야기로 횡설수설하며 자신의 이득을 위해 서슴없는 행보를 이어가다 결국 제 발에 걸려 넘어진 인간의 약은 수를 보여주었다. 가뭄을 탓하라 했고, 운 좋으면 살아남아보라는 말을 통해 극한 상황속에서 협업보다는 개인의 득을 꾀하며 그 값을 톡톡히 치르는 모습이 보인다.

때로는 권선징악이 너무 흔한 결말 같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바라게된다. 현실에서 잘 없는 깔끔한 엔딩이니 이러한 책 속 이야기에서 만이라도 이뤄져 주면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이 이길 수 있는 껀덕지(?)가 있긴 한가보다 싶어지니 태관의 에피소드가 스치는 인물 중 하나이지만 그래도 다형에게 전화위복이 되어주는 듯 해 한시름 덜본다.




똑같이 생긴 사람들만 있는 내륙.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 이뤄낸 결말. 다형의 입가에 지어진 주름. 함께 꾼 악몽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순간.

결국 내가 원했고, 저자가 바라는 이 이야기의 끝이 마지막 문장에 걸려있다. 마음의 꺼풀이 벗겨져있지 않은, 힘줄과 근육의 핏빛 서늘함이 없는 완전히 꽉 채워진 이야기의 끝이지만 어딘가 아쉽다. 다형이 열어낸 터널의 문. 어쩌면 다형의 마음 깊숙이 막혀있던 마음의 빗장까지도 열린게 확실한지. 많은 이들에게 두루두루 쓰여지며 결국 봄의 끝에 꽃을 피우는 식물 싱아처럼 싱아가 보게될 세상의 모습은 어떨지 이야기가 좀 더 이어지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터널103의 문은 같은 외형을 하고 있으나 서로 다른 모습을 감춘 마음의 문과도 같았다. 스멀스멀 들어오는 타인의 인기척에도 벽을 쌓고 살 것인지. 어떻게든 열어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질 다리를 건널지에 대한 것을 나는 다형을 통해 계속 이입하게 되었다. 익숙한 소재이며 충분이 예견 가능한 흐름이지만 그럼에도 궁금하고 살아나주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의 끝엔 나도 이 옹졸한 마음의 문을 열고 넓은 곳에서 유영하고픈 바람이 가득 얹어져있기에 완독 할 수 있었다.


📖창비를 통해 가제본만은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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