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의 언어 - 나의 모어와 바깥의 모국어를 잇는 순간들
유슬기(유손생)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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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북펀딩에 참여한 도서이다. 에세이이자 자서전과도 같은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 그런데 저자의 생의 배경이 남다르다. 모두 겪어본 자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듣는게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기엔 가장 확실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책이 출간되도록 기대하며 펀딩하기도 했다.


나는 농인의 세계를 모른다. 접한 거라곤 EBS 채널이나 리퀘스트 채널을 통해 도움을 요한다는 것만 봐왔지, 그들의 일상이 담긴 것들은 청인이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공유되지 않았다. 그나마 학창시절에 반에 한명씩 보청기를 끼던 아이를 아는 정도? 그마저도 학교를 꾸준히 나오지도 않았고, 다른 아이들과 교류가 되지 못해 매번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전학가는 걸 봤던게 다였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삶인건데 제대로 알려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제서라도 알아놓고 실수없이 대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먼저 시작해 본다.


📖통화버튼_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전화 예절은 내가 청인의 세계에서 제대로 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관문이었다. 나는 그런 배움이 암마 아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예의바른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보다 농인과 청인의 세상은 많이 달랐다. 농인의 부모 손에서 자라지만, 청인의 조부모의 교육도 필요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더 엄했는지도 모르겠다. 행여나 실수하게 될 까봐, 배움의 공백이 티가 날 까봐. 익숙한 농인의 세상보다 더 오랜시간 공유하며 살아야하는 속칭 일반인의 시점에서의 세상이 먼저였던 것. 다행이 잘 따라와 준 저자였고, 기를 쓰고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였기에 할아버지 또한 뭐 하나라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가늠 해 본다. 사사로운 통화예절이라도 처음부터 똑부러지게 가르쳐 놓고 싶은 마음. 어디가서 싫은소리 듣지 않도록 집 안에서부터 채비를 해 두고픈 거였겠지. 이게 할아버지가 갖고 계셨을 마음의 짐이기도 했을거라 간주 해 본다.

📖엄마의 성장통_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글을 썼고 살기 위해 글을 배웠다. 엄마에게는 한국어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었다.

저자의 부모는 후천적이다. 하지만 너무 어릴 때 앓았기에 말과 글을 배우기 이전에 나타난 징후임을 감안하더라도 글은 낯설기만 하다. 또 다른 언어이며 표현 하지만 그 것이 다시 자신의 귀로 돌아오지 않는 외침 일 뿐이다. 그래서 어렵다. 할아버지가 마련 해 둔 엄마의 필살기. 무엇 하나라도 잘 해서 밥 벌어 먹고 사는데에 지장이 없도록 길을 터 주고팠을 피나는 노력. 이야기 후반에 보면 저자가 엄마에게 손편지를 요청하는 부분도 나온다. 모녀는 필담보다는 수화로 이야길 나눴다. 그렇지만 그건 허공에서 사라지는 흔적이었다. 그러니 저자는 더더욱 엄마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반짝이는 능력과 표현이며 그간의 노력이 남들보다 곱절의 고단함도 담겨있을 거라는걸 알기에 엄마의 손글씨는 남달랐다.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_ 수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지만 한국어를 쓰고 소리를 듣는다. 결국 나는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딘가에서 홀로 서 있는 경계인이었다.

집 안에서는 손으로 말을 했고, 집 밖에서는 입으로 뱉어내는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었다. 문장의 구조 또한 다르다. 존대의 의미 또한 다르며 구구절절한 설명이 짤막한 손짓으로 대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당황스럽다. 이 표현이 적절한지, 이 손짓이 의미에 부합하는지. 남들은 둘 중 하나만 해도 되는데 저자는 둘 다 해야 기본이 되는 삶 속에 끼여있다.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본인에겐 결코 당연하지 않는 수고로움인데 알아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도 분명 들었을 것이다. 사춘기보다 더한 심리적 방황과 정체성에 대한 불안함에도 버텨내고 그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책임감으로 보여졌다. 자신은 농인 부모와 청인 세상을 연결 해 주는 매개체이며 자신이 무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면 부모는 존재하나 유리 벽에 갖힌 고립 상태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부모와 조부모가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것을 어릴 적 부터 봐왔고, 그것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상대에 대한 답답함이 때로는 자기 혐오와 위축되는 마음까지 품고 있기에 내가 살아 내려면 내 주변을 둘러싼 여러 세상이 고립 되지 않도록 다 열어제끼는 역할이 필요했기에 이 마음을 오래 유지 할 겨를도 없어보였다. K-장녀의 스트레스와 책임감의 최상위 버전이라 봐야겠다. 이 마음 어찌 달래며 살았나 싶다. 암튼, 장해.


📖결혼식_ 신랑 측 손님들은 짝짝짝 박수를 쳤고 신부측 손님들은 반짝반짝 수어 박수를 쳤다. 두 박수가 식장을 가득 채웠다. 동규가 귓속말로 말했다. "별빛들이 박수를 치네."

배려와 이해 사이에서 가장 큰 환대를 받았을 거라 보여지는 박수세례. 어느 한 명 서운함 없도록 모두가 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들고 즐길 수 있도록 애쓴 신부의 마음이 그대로 눈 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나도 결혼식을 치뤄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져 본 이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 불안한 마음과 잘 해내고픈 욕심,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원없이 축하받고픈 기대감. 그에 앞서 농인 가족들과 지인들이 쭈뼛거리는 것 없이 함께 식의 진행을 이해하고 축하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신부가 참으로 애 많이 썼구나를 생각하게했다. 이정도의 별빛들의 박수는 받을 만 했다. 글로만 봐도 울컥하는데, 저자가 이 날 결혼식 영상을 공개한다면 나는 아마 꺼이꺼이 울지도 몰라.

📖무례_ 가장 큰 바람은 아이가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었지만, 세상이 말하는 건강은 장애가 없는 '정상'적인 아이였다.

무탈 한 것, 어느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도드라지게 티나는 것 없이 무리에서 잘 적응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그게 그저 '건강'이 아니라 그저 '정상'이라는 숨은 뜻이 있음을 저자의 문장 해석으로 한번 더 실감하게 했다. 원해서 얻은 아픔도 없고, 누구의 원망으로 얻게되는 상태도 아닌데 가장 소박한 척 하는 가장 어려운 바람을 갖게 되곤 한다.


📖들을 수 있다는 건_ 들을 수 있다는 건 소리의 유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무음의 세계를 가늠 해 본다. 40년 가까이 소리가 일상인 삶으로 살다가 음소거가 된 상태의 삶.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부르는 애칭도 들을 수 없으며, 드라이브하며 듣는 차안 노래소리,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이모한테 달려오며 이름 불러주는 조카들의 까랑까랑한 외침까지. 어디 그 뿐일까 내가 당신을 부르는 과정, 나의 심경을 표현하는 문장이 사라 질 것이며, 다급한 일이 생겨 목 놓아 외치더라도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익히듯 그렇게 다시금 시작되는 언어의 배움과 다른 표현법. 내가 여기 있다고, 나를 좀 알아봐 달라는 그러한 존재의 확인이며 인식방법이었다. 너무 당연하고 흔해서 익숙함에 등한시 했던 소통의 과정. 비록 음성으로 퍼지는 외침이 아니라 손 끝으로 번져나가는 울림도 있다는 것에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저자는 경계인이라고 했다. 아이와 어른, 지인과 타인, 외부인과 내부자를 오가는, 잠깐이 아니라 한평생을 두 세계의 경계에서 살아가고있는 농인 사회의 청인 자식으로 사는 것. 수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통역과 대변을 쉼없이 해온 사람. 모든게 가능한 만능인으로서의 자랑스러움보다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라며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그건 겸손의 미덕으로 표현하는 낮춤이 아니라 그간 받아온 시선과 배려받지 못한 말들로 인해 설 자리를 확보 받지 못한 손님이 된 그간의 시간을 담아두었다.

집에서는 수어가 모어이고, 바깥에서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일상. 각기 다른 언어는 각기 다른 생활 습관을 만들어냈고, 그 언어들 사이에서 자신이 표현하는 언어는 어디에도 닿지 않는 듯 아쉬워했지만 저자의 손 끝에서 피어난 단어들은 다른 이들을 살게 했다.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듯 너무나 당연하게 살아내는 숨길 같은 것이라 너무 늦게 고마움을 표현했나보다. 멀찍이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만 보아도 고마운데 저자를 통해 세상을 알게된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해 할까. 존재하는 것을 알아주고 외면받지 않도록 귀담아 듣고, 두손에 받아둔 문장 속에서 이러한 세상의 이야기들도 있다는 걸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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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실의 사계절
김효선 지음 / 낮은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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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문 온라인서점 MD인 김효선 저자. 그녀의 데뷔작이다. 엄마 오춘실과 함께 헤엄치며 엄마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을 레인을 넘나들며 한 사람의 일대기와 그 사람의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세상도 함께 기록하고있다.

50년을 쉼 없이 일하다 은퇴한 오춘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김효선. 일과 인관관계에 붙들린 중력의 세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두둥실 물 위로 띄워보는 의미들 속에서 고단하고 지난했던 시간도 오춘실에겐 김효선 덕분에 살 이유를 찾게했고, 그녀 만의 방식으로 버텨왔음을 배우게된다. 어쩌면 무식하리만큼 무던하게 참았고, 또 어떤순간엔 목석같이 버티던 순간들에서 가정을 지켜야했고, 아이를 키워야만 했던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렸던 엄마의 세상을 가늠하며 덕분에 살아있음을 또 한번 느끼게 만든다.

저자 김효선의 나이가 나보다 두어살 더 많은거 같으니 오춘실의 춘추도 나의 엄마와 엇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엄마도 아닌데 울컥하게했고, 짠하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품 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사람. 자식보다 못 배운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었던 시절. 형제들은 다 배우며 살았는데 오직 그녀만 살림밑천이라는 명목아래 학교가 아니라 돈벌이의 전선에 뛰어들어야만했던 어린 소녀. 그 소녀는 그렇게 관절이 닳고, 뼈에 바람이 들 만큼 빨리 소진된 삶을 살아 온 것이다. 허투루 살 시간이 없었고, 요령을 피울 타이밍도 못 찾던 사람. 이제 좀 쉴 나이가 된 정년의 시간에서 딸이 쓰윽 내민 물잡이의 세상으로 쑤욱 빨려들어가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또 다른 인생의 재미를 찾는 것 같아 춘실씨의 세상에 효선씨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 엄마는 다른 사람이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을 봤다. 엄마 말에 귀를 열면 눈이 트였다. 내게도 엄마가 보는 풍경이 보였다.

청소노동자였던 춘실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높이가 달랐다. 깨끗하고 정돈된 장소를 보면 청소 노동자의 고단함이 먼저 떠올랐다. 백화점, 호텔 같은 곳을 보면 먼저 나서서 청소 계획을 세워보고, 인원 배분을 떠올리며 얼마나 빠른 손이 필요했을지를 고심하고있었다. 수영장에선 마스크 끼고 청소하는 분들은 얼마나 더 숨이 찰지 마음쓰여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을 정돈하는 부산스러운 몸놀림. 오랜시간 학교 청소 노동자로 일하다 정년까지 맞이했던(바로 코앞에서 정년퇴직은 못해 그 점은 나도 아쉽다) 사람의 낮은 시선. 아는만큼 보이는 것. 아니까 더 잘 느끼는 감정의 동요. 말 하지 않았다면 예사로 보고 흘렸을 풍경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과 모르는 이들의 부단한 움직임 속에 아무렇지 않은 듯 편히 지내고 있었고, 그게 당연한 삶이라고 여겼음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그 어떠한 것도 당연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엄마의 그 많은 사랑은 대체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 걸까. 엄마는 지나가는 말처럼 흘린다.

아직도 아빠가 귀엽다는 엄마 오춘실. 김효선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 많은 사건을 겪어왔음에도 아직도 아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여전히 예뻐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점. 진짜 사랑이 아니고서야 못 베기는 삶의 굴곡인걸 빤히 아는데도 옆에 끼고 사는 것이 해탈의 마음인지. 모든걸 품어도 뭘 더 못해줘서 안달나는 찐 사랑의 형태인지 헷갈리지만 동시에 새삼스러움과 신기함으로 부러움만 커질 뿐이다.

집안 가장 노릇은 그간의 세월로 가늠 해 보아도 엄마가 아빠의 몫까지 더 했음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능력있는 사람이 가장노릇하면 되긴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면 더 고생하는 쪽에 마음이 기울 수 밖에 없다) 뻑하면 관두고 뻑하면 안가는 사람. 부러질 지언정 휘어지지 못하는 유도리라는게 없는 양반 옆에서 춘실은 빠릿빠릿 하진 못하더라도 굼뜨는 삶은 살지 않았다. 어떻게든 돈을 벌었고, 그와중에 육아도 했고, 가정도 지켜야했다. 그럼에도 원망이나 타박보다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양의 노동으로 빈 자리를 메꾸는 방식을 택한 미련하리만큼 다부진 사람이었다. 당신도 꾀가 부리고 싶었을 것이고, 다 놓고 훨훨 날아가고도 싶었을텐데 두 발 땅에 단단히 붙이고 버티려 했던 사람의 과거를 같이 회상하게 될 때엔 나와 비교하기보다 그냥 천성이 그렇게 사랑이 많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절대 넘볼 수 없는 대단한 사랑 우월주의와 책임 완벽주의 정도? 이건 어떤 마음을 먹어야만 얻어지는지 묻고싶어지는 지점이다.


📖내게도 좋은 선배가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을 뒤에서 보면서 그들의 영법을 배웠다. 잘했다고,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응원해 준 사람들은 엄마이고 선배이고 언니인 여자들이었다. 그들 덕분에 회피해 온 인생을 맨정신으로 마주볼 용기가 생겼다.

나의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일이 힘든 건 배우면 되고 익숙해 지면 되는데, 사람 때문에 힘들면 답없다. 그러면 가차없이 나와라. 너 하나 밥 못 먹이겠냐. 조급해 하지 말아라, 돈 벌데는 많다. 라고 하셨던 엄마의 그 말. 나의 두번째 직장에서의 고단함이 떠올랐다. 저자 역시도 일보단 사람 때문에 힘들어했던 순간이 조금씩 베여있다. 결국 모든 건 자신의 탓으로 돌렸고, 춘실을 쏙 빼닮은 저자역시 타인에게 화살을 돌리기 보단 자신이 약을 먹고 다스리는 것으로 마음을 추스리는 과정도 언뜻언뜻 보인다. 매번 이런 식이다. 한 쪽에서는 사람한테 깎이고 베이며 마음을 다쳤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무한한 애정과 챙김으로 두툼하게 연고를 얹어주며 괜찮다고 따뜻한 손바닥으로 하염없이 쓰다듬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또 우리는 살아내는 거였다.


📖"공구리 친 게 나랑 똑같네"했다. 커다란 나무의 깨진 틈에서 엄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갈라진 마음을 항불안제로 메우고, 엄마는 금 간 뼈를 공구리로 붙인 채로 물에 눕는다. 우리는 회복되지 않은 채로 헤엄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색도 바랠 것이고, 낡아지는 과정을 마주한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많이 쓰던 관절은 닳아서 연골도 사라질 것이고, 버티고 버티던 마음도 다 깎이고 닳아 민둥한 마음만 남아 약한 바람에도 쓰리고 여린 햇살에도 따가움을 느끼게된다. 그래서 덧데는 것이 약이었다. 그래야 또 남은 시간들을 살아내는 거니까. 의학적인 걸로는 수술과 약으로 버티고, 심미적인 걸로는 나와 닮은 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울고 웃으며 지지하며 사는 것이다. 혼자는 위태위태해도 팔짱끼며 걷다보면 또 한 발짝, 두 발짝 걸어지는 거니까. 혼자 깨금발은 위태롭다 할 지언정 2인 3각으로 가면 처음엔 버벅거리더라도 나중엔 구령에 맞춰 힘 있게 땅을 구르며 발을 딛어 낼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나만 유발난게 아님을 오춘실은 공구리친 나무에 이입하여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좋다. 오춘실은 그렇게 자신의 노화와 빨리 써버린 당신의 청춘을 애닳아 하기 보단 어쩌겠냐는 듯한 대수롭지 않은 말로 웃어넘긴다. 그렇게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애썼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지만, 자신을 너무 애처롭게만 보지 않으려 하는 마음이 고맙다. 감정은 번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오춘실의 그 긍정적이고 그러면 그러라지의 유순한 기다림이 더욱 부러워진다.

📖나는 일하다 병들었고 일하며 기뻤다. 책 파는 일은 내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이었다. 엄마도 청소 일을 할 때 힘들고 억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 일을 좋아했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잘 하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었을 것이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멋드러진 이력을 남기고팠을 것이다. 그러다 그렇게 심취한 나에게 빠지게 되겠지. 나 좀 멋있는 녀석이구나 싶은 그런 마음으로 말이지. 돈 위에 두는 것이 보람이라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금액보다 하루하루 무던하게 잘 지내온 날들과 성과로 인해 인정받는 그 뿌듯하고 어깨 펴지는 자부심. 내가 더 쓸모있는 놈이라고 여겨지는 그 순간 덕분에 그렇게 나를 태워가며 일했었나 싶어진다.

지금은...? 지금의 나는? 그래, 지금의 너는? 모르겠다. 약만 복용 안 하는 것이지 그냥 저냥 술에 물 탄듯, 물에 술 탄듯 그렇게 흐리멍텅하게 급여 축내는 놈으로 사는건 아닌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와 연차이다. 분명 일 하는게 재미나던 순간도 있었는데, 쌓여있던 일을 다 처리하고 말끔해진 책상을 바라보며 퇴근하는 기가막히게 뿌듯해하던 날도 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 이 자부심은 어디서 처방받아야하나 고민하게 만든다.

손목, 발목, 골반, 척추 다 부러져본 사람이 이렇게 명랑 할 수 있다는 것. 오랜 노동생활이 일상이 되어 쉬는게 낯설수도 있다는 것. 부끄러운 것이 없지만 하고픈건 많았을 오춘실의 계절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다들 오춘실의 자식놈들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부끄러워 할 일이 없도록 반딱반딱 윤이 나도록 살았지만 당신의 자식놈들은 광이 나지 않고 바스라 질 것 같은 생을 근근히 이어가고 있었음에 반성하게된다. 더 버티지 못했다고 자책하는게 아니다. 누군가와 비교하기보다 오롯하게 나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살면 그뿐이라는 그 마음을 믿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만 살폈던 시절들에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김효선이 오춘실을 보는 만큼 나 또한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이영란여사를 보는 마음은 저자 못지 않음을 자부하게된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들 처럼 살진 못하겠으나 당신이 살아온 시절과 고단했던 순간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는 살겠다 다짐해본다. 잔꾀 부리지 않고 무던히 애써가며 이어달리기를 계속 하고 있다고 말하며 함께 할 다음 계절을 기대해 본다. 부디 몇 번의 계절이 돌고 돌 더라도 함께 깔깔거리며 즐길 수 있는 순간이 무한하길 부질없는 바람인 줄 알지만 바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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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의 언어 - 나의 모어와 바깥의 모국어를 잇는 순간들
유슬기(유손생)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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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쉽사리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와 숨쉬듯 익숙하게 내뱉는 말들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의 순간을 담아낸 책이라 하여 기대감을 품고 처음 펀딩까지 참여해보았습니다. 저도 그들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는 순간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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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도 복제가 되나요 안전가옥 쇼-트 34
윤혜성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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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력이 화려하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공동 각본자의 첫 소설이다. 일단 이야기의 짜임새는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

책 표지와 책 제목의 연관성이 얼마나 짙은지는 모르겠으나 제목으로서 독자를 잡아두는 매력은 확실해 보인다. 아주 매콤한 자극적인 맛의 문장.

그리고 출판사에서 제공한 카드리뷰의 핵심 키워드. 어느날, 죽은 아내에게서 택배가 왔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나의 아내, 나나 그레코바. 상자에 끼어 있던 쪽지 하나가 떨졌다.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 로 시작되는 갈등의 물꼬.

지금의 시대와 딱 어울리는 소재이며, 한 번쯤은 생각 해 볼만한 것들을 구현시켜두었다. 이게 혐오의 끝으로 갈지, 그럼에도 라는 뉘앙스로 권선징악의 전래동화처럼 나쁜 사람이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이 살기 좋은 아주 행복한 세상이 되었습니다로 마무리 될 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다.

혐오라는 단어와 상반되는 이수한. 외적인 비주얼로 보아도 굳이 저러한 단어와 연관지어 질까 싶은 사람이다. 외모와 옷매무새에서 풍겨오는 단정함, 그에게 머룰러있는 향까지. 가족사진을 사무실에 걸어두는 애티튜드를 보아도 바르다는 말만 떠오르는데, 실상을 파고들면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사진의 단란했던 셋과는 다른 현재. 수한은 아내를 떠나보낸지 1년이 되었고, 아들은 외할머니의 곁으로 갔기에 한국에는 오로지 수한 뿐이다. 회사에 알리지도 않았다. 수한의 머릿속은 열두 살의 아들 재이를 되찾아 와야 한다는 양육권 분쟁만으로 가득 차 있다. 변호사인 여동생 지원에게 도움을 받으며 양육권 점수를 높이고자 집중을 하고 있는 중. 아내의 이력 또한 특이하나.리벨라우스라는 나라의 사람, 나나 그레코바. 2년 간의 암 투병 후 사망한 상태. 정확한 의사소통이 어렵고 통역 어플이 있어야만 의중을 알 수 있는 소통에 제약이 있던 둘. 나나의 엄마는 수한 때문에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어쩌면 아들 마저도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진다.

나나의 나라에서 살다가 할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온 아들. 멀찍이서만 볼 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 수한. 양육권을 위해 점수를 높이고자 해외직 파견만이 답이라는 생각에 휩싸일 때 택배가 온다. '너도 너 같은 새끼랑 살아봐'라는 쪽지와 함께 이수한이 마주한 리(RE)수한. 복제인간. 외적,내적 모든 요소를 닮아있는 또 다른 수한. 그리고 기억까지 공유되어있는 내 눈 앞에 있는 나.

몸은 하나인데 처리해야하는 일이 쌓이는 이벤트들 속에서 수한은 리수한에게 역할 분담을 요청한다. 처음엔 부정이었고, 익숙 해 질 즈음부터는 공생의 과정, 그러면서 의존의 감정까지 넘어가고 있는 걸 실감한다.

다른 사건을 조사하다 추형사의 육감으로 이어지는 나나의 헛점 많은 사망. 그리고, 20억.

긴 투병기간엔 장사 없다 하더니 수한과 나나의 사이의 균열은 리수한이 메꾸게되고, 신혼시절의 기억을 공유받아 제작된 리수한은 나나에게 헌신하게된다. 실존의 이수한과는 다르게. 그녀의 죽음에 도모한 리수한. 그리고 자책하는 이수한. 그 과정을 보게된 재이. 이수한과 리수한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이 사건을 통해 복제된 인간에게 심어진 기초자료를 기반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증폭 될 수 있었고, 복제인간임을 인지하지만 실존의 인간 대신 자신이 주체가 되길 바라는 것에게 잘못이 있지만 그 마음 마저도 잘못된 것임을 단박에 선을 그으며 말 할 수 있을까.

주체보다 더 명확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애써 외면했던 순간까지 모두 담아두고있는 또 다른 존재. 그리움을 외면한 이수한이었고, 그리움을 상기시키며 곱씹고 맘껏 그리워 할 수 있었던 리수한.

📖신혼 시절 수한의 뇌가 복제된 리수한은 나나를 살뜰히 보살폈다. 나나가 고통스러워하면 함께 아파했고, 나나와 더 잘 대회하기 위해 리벨라우스어도 익혔다. 나나의 곁에서 나나가 사랑을 느끼도록 그녀를 돌봐주었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은 행복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제된 행복이었다.

나나가 복제 리수한을 만든 주된 이유가 기록된 부분이다. 예전같지 않은 사랑의 깊이에 실존의 수한에게 갈구하는 마음보다 빠른 포기로 이어진 복제의 제작. 긴 투병으로 인해 지쳐있을 사람에게 자극을 했다간 더 멀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만들어낸 껍데기. 그러면서도 사랑받고 있는 느낌에 취해있는게 더욱 슬퍼지는 상황. 복제된 사랑임을 인지하지만 그 행복이 너무 달아서 버리기 싫은 생명. 나나에겐 대화와 공감이 절실했고, 자신을 살리는 감각이었음이 비춰지고 있어 더욱 안쓰러워진다.

모든게 복제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혐오도 당연히 옮겨 심겨질 수 있음은 당연했다. 다만 복제된 것이 주체의 것을 혐오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엔 어떻게 대답해야 할 까를 같이 고민하자며 이 이야길 만들어 낸 듯 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에 자책을 하는 것과 자기 혐오로 넘어가는 과정을 자주 느끼게 된다. 잘 하고픈 마음이 컸을 테지. 과한 마음이 탈이 나서 그간 애써온 마음에 대한 격려와 응원 보다는 질타로 넘어가는 과정. 그러니 수한은 나나를 보내기 직전에 들었던 부정적인 마음에 날을 세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그러한 마음은 한 번쯤은 먹기 마련인데 모자란 남편이라도 되는 냥 깎아 내리다 보니 그 끝은 자기 혐오와 외면이 끝모를 후회로 남아있는 거겠지.

나나가 만들어 둔 리수한은 자신이 이수한에게 못 받은 사랑을 리수한에게 얻어 살고픈 마음도 분명 있었겠지. 그렇지만 주된 제작의 이유는 설사 나나가 세상에 없을 때에도 이수한이 모르는 또 다른 이수한의 감정은 리수한이 품고 있었으니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고, 당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보여주고 싶은 것으로 느껴진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잖아, 어딘가에 쌓여 있어 몰랐을테니까. 그걸 알려주려는 마음에 먹먹해진다. 다만 리수한이 마음을 더 많이 얹어 이수한 앞에 나선 것 뿐이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을 바치기도 하고..."



최근에 읽은 영수와 0수, 그리고 이번 작품 속 이수한과 리수한. 이제 또 어떤 인물들이 책 속에서 복제되고 증식 될지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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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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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두번째 소설집. 이미 아는 단편도 있었고, 새로 접하는 이야기도 있어 알면 아는데로, 모르면 또 새삼 반갑게 10편의 단편을 읽었다. 책 제목과 어울리는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들. 근래에 핫했던 SF장르와는 동떨어진 손원평만의 현실감 꾹꾹 눌러담은 서사. 인물들이나 각각의 장소 또한 내가 사는 세상과 이질감 없이 맞붙어있는 느낌이라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나 또한 이러한 말들을 심심찮게 뱉어낸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해치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끝내는 누군가를 밀어내고 상처 입히게 되는 세계라 말한다. 악인은 없지만 누구도 온전히 결백할 수 없는 세계. 악의는 없다 하지만 호의까지 베풀며 살진 못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가 된다는 말이 속담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선함이 습관이 되면 타인들은 다들 웃는 낯을 앞세워 짓밟고 올라가려는 성향이 다반사였기에 책속의 인물들과 같은 습관을 버릴 수 없음을 보여주고있다.

생존과 자아의 실현, 이야기 속 주체가 아이를 마주 할 때 느끼는 이입감. 뭣 모를거라 생각하지만 다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어린 마음. 내가 너만 했을 때엔 그리 생각하며 살았는데, 적어도 너만은 그러지 않길 바라는 측은한 시선. 과거엔 어쩔 수 없었겠다만 적어도 너희가 살 미래에선 그러지 않아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가득한 모습이 남겨져있다.

때로는 내가 살고 봐야지 너까지 신경써야 겠냐는 듯한 '당신의 손끝'속 효원과 화실 상가 주인 할아버지 손자와의 관계, 그녀가 신경쓰지 않고 알고도 외면하는게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를 이야기 말미에서 얻어낸 '태양 아래 반짝이는'의 이야기속 준이의 상황과 그걸 마주한 나. 관용도 포용도 모든게 풍족해에 할 수 있음을 느끼지만 나까지 외면해서야 되겠나 싶어하며 또 다시 공부방으로 아이를 불러오는 '피아노'의 혜심과 마지막 제자가 될 준용. 이유야 어찌 되었든 부모가 아닌 곳에 마음을 놓아두는걸 택하는 '조망'속 과거 어린시절의 수하와 현재 축제 주최 측 관계자 아이.

현실, 정의, 의무에 대한 건 중요치 않고 일단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상대방을(이야기속 아이를) 밀어내느냐 당겨오느냐로 갈리는 4개의 단편.

가까이 들이밀면 비극 같아 보이지만 현실에선 심심찮게 들려오는 삶의 순응을 빙자한 개선하려 하지 않을 심상들. 금지 된 것+떳떳하지 못함을 그늘삼아 숨어 더욱 더 깔깔한 즐거움을 찾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단편 속 호텔에 숨겨진 여인. 누군가는 필요에 의해 시간을 돈으로 샀고, 누군가는 수고로움을 대신해서 돈을 얻는다. 오픈런 전부터 대기하며 시간을 썼을테고, 추위든 더위든 견디며 꿋꿋하게 기다릴 몸을 썼으니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었다 봐야 하나 싶은 관계성. 수고로움을 대신했을 비용이니 어쩌면 정당했고, 또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그 아이'를 모셔온 정민과 의뢰자의 거래. SNS에 온전한 자신의 삶을 다 드러내는 이가 몇 있을까 싶은 꾸며진 세상에 살고있는 우리. 다들 비슷하지 않아? 라는 듯 동조를 구하고있다. 프레임 속에는 감성 낭낭한 것들로 배열되어있고, 프레임 밖에는 개어지지 않은 빨래, 쌓여있는 설거지, 어질러진 신발장.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여주지 않을 뿐 아니라곤 하지 않았으니 완전히 속였다고 할 수 없으니 거짓의 삶이라 하기도 애매하지. 각색하기 나름이니 원본 훼손은 아니었다. 그러니 SNS에서 좋아요 하트를 누르고 영상에 엄지척을 흔들지 않을까. '모자이크'를 했지만 원본은 존재하니까.


📖당신의 손끝_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아버린 현실이 참혹했다.

돈은 누군가의 꿈이었다. 효원이 그토록 바라던 개인 화실의 밑천이었고, 주영이 일상 속 행복을 찾고자 만든 하루 중 2시간의 자유였다. 할아버지의 유일한 손주녀석의 미래이기도 했다. 각자의 바라던 희망의 값어치였다. 잃은건 효원이 깎아먹은 화실 임대료와 집기류 구입 비용인데 실타래처럼 엮인 이들에게도 기대하던 앞날이 어그러진다. 이러한 원망의 말들도 연대책임처럼 다 같이 나누면 좋겠다만 가장 많은 손해를 본 사람에게 화살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냥 각자가 제일 손해 본 사람이라 여기겠지.


📖유령의 집_ 다 좋은데 볕이 잘 안 들어. 그건 은유가 아니었다. 볕은 우리가 어떻게 해도 누릴 수 없는 무언가였다. 태생이나 운명 같은 것. 그리고 우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엔 행운도 드나들지 않는다.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느꼈을 자연환경이었다. 당장 건물 밖으로만 나가도 온전히 내 몸을 적시고도 남을 햇살이라 여겼으나 이러한 볕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했다. 이를테면 자외선을 차단한 선팅된 창문속 스미는 따뜻한 햇살이라던가, 휴양지의 루프탑 수영장에 반사되는 강렬한 빛이라던가, 사위가 환해서 낮인거 같긴 하지만 거리를 거니는 이들의 발목만 보이는 반지하의 희끄므리한 먼지와 같이 부유하는 빛이 될 수도 있다. 분명 시작점은 같았을 지라도 이리저리 굴절하고 닿기까지의 과정에 따라 변화되는 것. 눈을 감아도 희끄므리하게 비치기도 하는 것이 자신이 기대하는 앞날의 조도와도 닮아있다. 그래서 슬프다. 모두에게 공평하리라 굳게 믿었던 자연들 마저도 배신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자이크_ 제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잘되긴 그른 팔자였다니까요. 그다음부터 제가 한 건 별로 없어요. 사람들이 알아서 달려들어 그 사람들을 가죽까지 벗겨냈죠. 생각보다 너무 쉽고 빨라서 깜짝 놀랐어요.

마녀사냥으로 봐야 할까, 인과 응보라 해야 할까. 실재하는 이름과 얼굴이 아닌 블러처리되거나 아이콘 화 된 이미지를 앞세웠고, 이름이 아닌 허상의 닉네임으로 자신은 철저히 가려둔 채 물어 뜯었다. 내가 뜯기면 그 상처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다른 이를 물어뜯어야했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듯 자폭의 심정이자 남 잘 되는 꼴 못보는 놀부의 심보가 엮여있다. 나중엔 이렇게 말하겠지. '저도 그렇게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를 말하며 피해자인척 억울함을 호소하겠지. 누가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구차함의 끝이다.

📖딸과 깍 사이_ 그런데 누군가 내 친절의 고단함을 알아준다는 게 신기했어요. 내가 아주 헛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 편히 짐을 쌀 수 있었구요.

사회생활을 위한 방패이자 가면과도 같은 것.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과 접대용 상냥함. 다들 그렇게 애쓰고 산다지만 그걸 알아주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일말의 진심은 전해졌구나 싶은 안도감이 든다. 미련 없이 살고자 마음은 먹지만 다들 하나같이 이렇게 열심히 산다. 나쁜 의도가 없다 노래처럼 흥얼거렸지만, 마지막 단편에서는 그래도 좋은 의도로 했습니다로 연결 짓고 싶은 독자만의 욕망가득한 해석이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는 타인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이 아니다. 사과를 하기 위해 말문을 트이는 대화의 시작도 아니다. 상황이 그러했고, 조직 내 시스템이 그러했으며,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해오지 않았냐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치며 나의 잘못은 없는데 어쩌겠냐는 식의 '나도 좀 봐주세요.'를 보이고있다. 되려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듯한 동조를 구하는 과정.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핑계의 말을 뱉어냈고, 얼마나 많은 동의를 구했을까. 내 주변에 부유하고있는 말 중 진심이 있긴 했었나는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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