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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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계획하여 출간한 건 아니지만 '새의 선물'과 함께 '빛의 과거' 그리고 지금의 '시간의 감촉'이 은희경표 시간 3부작으로 불리워지고 있었다. 지나온 시간과 기억, 관계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는 것으로 묶어두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시선, 젊은 날의 기억, 인생의 더 깊은 시간에 머무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럼 나는 시간의 순이 아닌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노년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시간의 감촉부터 읽어보는게 이해와 공감, 순응과 선행학습의 일부가 될 거라는 믿음으로 보았다. 말은 이렇게 허울좋게 하지만 가장 최근 작품이니 익숙한 문장 구사가 이뤄질거라는 생각이 컸다. 책은 총 4부작으로 하여 한동안 교류가 뜸했던 자매 사이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제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간병을하고 고단함을 같이 지켜주어야했고, 자신들을 기점으로 뿌리가 내려진 딸과 손녀를 돌봄에 있어 일어나는 단상들. 손녀와 외할머니, 이모할머니 셋이 함께하는 여행. 그리고 그때 했던 이야기들을 곱씹어가며 남은 생에서 일어날 일들에 관한 대화들을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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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의 몸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다'고 했다. 나란히 함께 할 것 같았던 1월생의 안나와 12월생의 경선. 쌍둥이 같지만 그저 태어난 해가 끝과 끝에 걸려있을 뿐 성격과 외향이 다르다. 나란히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지만 가족사로 인해 찢어져 살게된 둘. 그렇게 갈려진 세상은 평생 나란할 것 같은 둘을 전혀 다른 세상을 꾸리게 만든다. 어쩌면 제일 처음부터 달랐을지도 모르지.

다르게 살아서 서로의 세상을 동경했을 것이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살았으리라. 한 때는 미워했고, 또 한 때엔 부러웠을 각자의 세계. 이제는 정말 달라졌고, 미래를 이야기하기보단 과거를 더듬어보며 시절을 되새기는것으로 각자가 없었던 시절 속 서로를 위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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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관계였다. 자매라는 관계. 심지어 터울이 얼마 안 되니까. 안나와 경선을 보면 그런생각도 든다. 최근에 보았던 '끝나지 않는 노래'속 수선과 봉선도 나이가 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과거 속 그들을 자주 불러들일까? 심지어 그들은 쌍둥이이며, 한부모 가장의 엄마들이었다. 안나와 경선보다 더 애틋한 관계이니 더더욱 끈끈하게 노년을 바라보며 과거를 이야기하겠지. 그렇다면 4살 터울인 나와 언니는 또 어떻게 늙어갈까를 생각하게했다. 안나와 경선처럼 전혀 다른 바운더리를 꾸리고 중년을 보내고 있다. 또 그렇게 교차되기보단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갈래로 더 깊게 파고는 중이다. 그래서 안나와 경선을 보며 나의 노년 미리보기 클립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경선의 세상은 좀 더 많은 굴곡과 갈림길이 있었으리라 짐작하게했다. 가정을 이뤄봤고,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또 작은 생명을 키워내고있다. 경선의 딸인 다은은 남편과 헤어지려마음을 먹는다. 경선은 이미 이혼을 했고, 과거의 배우자는 서류상 남이 된 후 시간이 흘러 생을 마치기도 했다. 그 P라는 존재는 죽고난 후에도 경선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도한다. 어쩌면 P 덕분에 안나 할머니, 아픈 경선 할머니, 세상이 신기한 손녀 다니엘 이렇게 셋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얻어졌으니 마냥 미워 할 수만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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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병과 실수와 약점을 통해서도 교감한다. 고통과 맞닥뜨리는 걸 피해버리면 화해할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갚을 길 없는 빚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안나와 경선은 모친의 죽음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대응을 했었다. 깊어지는 병환에 발길을 끊은 안나였다. 외면한게 아니라 안나는 살려고 그런거라 보였다. 병환에는 답이 없으니까 가타부타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관계에 관해서는 끝없이 질투하게됨을 느낀다. 나이가 든다고 달라지진 않더라는 걸 둘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중요한건 안나에게만 묻곤했다는 경선의 푸념. 용서받고 사랑받으며 거리감이 없었던건 경선이었다던 안나의 서글픈마음까지. 믿음과 의무, 사랑과 용서. 받아보면 당연하고 못받으면 아쉬운 마음. 나이가 적든 많든 그건 어쩔 수 없이 사람이면 받게되는 아쉬운 마음인가보다. 그리고 후회는 늘 늦고, 용서와 바로잡음은 늘 한발 뒤에 있어 제때 이뤄지지 못하더라.


📖안나는 경선과 다니엘이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를 맞대 누른 뒤 손등을 스치고 손바닥에 사인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니엘이 경선에게 새집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나로서는 생소하고, 어쩌면 영영 할 일이 없는 어린 핏줄과의 진지한 약속이며 둘 만의 의식. 시작은 같았을지 모르는 생의 스타트였지만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삶을 살다보니 아주 많이 벌어진 격차이며 다른 풍경의 구간들임을 보여준다.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인데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똑같이 하고자 하더라도 결코 같을 수 없는 관계의 약속같기도 하다.

스쳐 지나갈 장면이겠지만 나 또한 결코 할 수 없는 관계이자 의식이라 안나의 시선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약속이 많아서 당분간은 죽을 수도 없다며 자신처럼 책임감 강한 암환자에게는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기적의 치료법이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할게 많다. 그리고 포기했던 것들 마저도 다시금 해볼만한 여력을 주고있다. 시간은 많고(암환자라고 모두가 타이머를 갖고 있다 절망은 말자) 돈도 있고, 이것저것 다 해준다며 자기가 빨리 크길 바라는 다니엘도 있다. 테이블 위에 놓여지는 수많은 커트러리를 다 쓰는 식사와 망고빙수도 먹어볼 기회, 다니엘이 만들어줄 집, 다니엘이 힘들지 말라고 나의 처음과 너의 처음이 될 아스팔트 도로하며, 해외여행에서 처음으로 다같이 맞춰 입었던 티셔츠를 다시 꺼내 입고 여행할 기회까지.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이것저것 다 해본거 같아도 아직 못해본게 많은 기대될 처음들.

다니엘의 처음 못지 않게 안나와 경선 또한 처음 접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봄직하고 그래서 내일을 기대하게되는건 이제 막 10대가 시작된 다니엘이나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넘어간 둘이나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인다. 그들이 여행 내내 게임이라고 했던 처음에 관한 이야기는 살고싶게 만드는 기폭제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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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나면 이 이야기는 어떤 걸 말하고싶었던걸까를 생각하게한다.

안나가 경선을 챙기는 간병일기, 안나의 일상 기록, 경선과의 추억더듬기, 다니엘과 함께 떠나는 할머니와 해외여행, 나이든 자매가 늦었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 터놓기. 뭐 어떤거든 다 끼워맞추자면 가능한 일상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시대로 비유하자면 정년퇴직한 선생님의 일상 브이로그의 다양한 컨텐츠랄까? 평생을 교사로 살아왔고 이제는 즐겁게 나이들며 그간 돌보지 못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있는 할머니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유튜브와 글로 담아두었습니다. 라는 소제목이 붙겠지. 왕래가 없었던 자매의 간병, 이모 할머니와 함께 학원 라이딩가기, 암환자의 병원 검진 동행, 산책은 중요해, 살면서 버려도 될것과 영원히 곁에두고 싶은 물건들 구분하는 정리의 신... 뭐 이러한 것들의 다양한 컨텐츠가 된 안나의 일상같았다. 그래서 우울하기보단 노년의 세월까지 살아도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있고, 다 알아주지 못한 상대의 감정들이 있었고, 다음을 기약하며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훗날의 내가 해봄직한 것들을 나열하며 좀 더 늙어도 사는게 재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우울한 노년이 아니라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또 저런대로 나이들어가고 이야기가 흘러가며 살아지더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린 특별하고 특이한 순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유순하며 때로는 나른하기도 하지만 멈추진 않는 시간에 살고 있어서 지겨울 틈이 없을 거라는 것. 그러니 달라서 서운 할 필요도 없고, 못 어울릴 일도 없던데 네가 내 나이가 되면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지 않겠냐는 인생 선배의 일상같았다. 밋밋할 순 있겠지만 멀겋게 보이진 않는 어른의 시간. 그래서 지금보다 곱절의 나이즈음? 나도 경선과 안나와 같은 연배가 되었을 그 즈음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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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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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지만 나는 이 작품을 처음 마주한다. 그간 저자의 소설은 열심히 챙겨봤다 생각했는데 근간만 읽었지 초반 작품을 볼 생각도 안했더라. 읽고나니 짠했다. 각각의 시대별로 살아낸 그들이 짠하고 그러한 세상의 흐름이 짠했다. 나 또한 이 시대에 떨어져 두자나 수선과 봉선이었다 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세상이 팍팍하고 퍽퍽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고있는 은하의 세상도 목이 메인다. 2011년 출간 당시 시점으로 보면 고시원을 전전하는 대학생과 복학생, 알바생 그 어디 즈음이니 아마 내 또래이지 싶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엄마들한테 가서 종종 밥은 얻어먹고 오는지. 별거 아닌 안부와 시덥잖은 세상 이야길 하면서 그들의 세상이 안녕한지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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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러한 시대를 잇는 엄마와 엄마의 엄마들 이야길 읽다보면 '나는 이렇게 안 살꺼야!' 라고 외치며 저 혼자 삐죽 삐져나와 돌파구를 찾는 존재들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속에선 그러한 마음이 차오르다 목구멍에서 막혀 표출되지는 못하는 인물이 태반이다. 봉선만은 아니길 바라지만 결국 저의 반쪽과도 같은 수선의 곁으로 돌아온다. 치기어린 반항이 시작이었으나 젊은날의 일탈로 마무리되는 감질나는 기행이 끝난 것 같아 씁쓸하다. 사랑을 갈구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들은 부부간의 정으로 한정짓지 않았다. 받은 사랑이 없었으니 줄 마음도 없었음을 생각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모정을 갈구한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에게 자란 두자는 어리광 대신 제 목숨 건사하기 위해서 집안일과 농사일에만 몰두해야했고 그게 당연해서 새엄마의 사랑보단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어필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쌍둥이 수선과 봉선은 엄마인 두자를 통해 세상을 아는 것이 아니라 저 둘이서 살 부대끼고 살아내면서 세상을 배웠고 눈칫밥을 삼켰다. 엄마의 고생을 보고 자랐기에 저들끼리 의지하며 커갔고,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엄마 목구멍에도 떡을 밀어넣어주었다. 그녀들의 아이들은 아빠보단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컸고,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사촌들끼리 보듬고 위로받았다. 폭닥한 모정을 바라지만 녹록치 않은 삶인걸 알기에 은하와 동하는 자기 상처를 움켜쥐며 살았다. 이유없는 학폭이든 학자금대출과 생활비로 인해 얻어진 쪼그라드는 삶이든 삼켜냈다. 징징거리고 하소연 하기엔 엄마들이 더 가여웠으니까. 그렇게 어두운 놀이터에서, 좁고 갑갑한 고시원에서 서러움을 먹어 없애려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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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여자이고 한 집안의 며느리였음에도 아들을 낳았고 대를 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떵떵거리는 목소리. 딸이라도 낳게되면 몸 추스리기 보단 책잡힐까봐 밭일을 나가는게 당연했고, 도통 사내놈 낳을 기미가 안 보이면 첩이라도 들이는걸 눈 감고 귀 막으며 감내했던 시절. 여자가 교육은 받아서 무엇하냐며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 보다 풀 메고, 살림하며 서방에게 따뜻한 밥 먹이는 것이 최고인줄 아는 삶. 그렇게 낳아지고 방치된 딸들은 엄마의 분신처럼 똑같은 삶을 이어가는게 당연하다 보는 세상의 눈들이 야속하기만하다. 배우고 익히는 것 보다 오빠나 남동생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며 살림에 보태는 수단으로서의 목숨들. 억척스러운 과거의 그녀들 삶에 켜켜이 들어 차 있는 은하의 세상이 교차 할 때마다 시대가 변한들 아까운 청춘은 여전했고 밖으로 나와 틔우지 못하고 이내 스러지고 마는 은하가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한다.


때로는 허상을 그리는 SF소설이나 호러 미스터리보다 시대를 반영한 소설들이 더욱 잔인하고 쓰라리게 다가오기도한다. 드라마나 소설, 그리고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귀동냥으로 얻어낸 것들이 너무 많기에 허구의 것들 보다 더욱 깊에 박히고 오랫동안 그 마음이 머문다. 정권이 변한들 시대가 바뀐들 생각보다 쉬이 바뀌지 않는 가족간의 온도와 대우. 다들 아랫세대들을 향해 자신들이 살아낸 시절보다 먹고 살기 좋아졌고 세상 편해졌다 한들 바뀐 세태에 비해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가장 낮은 계층이자 가장 늦게 바뀌는 집단. 행복의 대물림을 바라진 않지만 고난의 대물림이 되어선 안되는데 시대가 바뀌는 것 처럼 고난의 모양이 같이 바뀌며 여전히 어깨를 짓누르는 듯 해서 마음이 쓰이고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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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하게 피우지 못하고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져버리는 삶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쪼그려 앉아 눈맞춰 줄 생각도 없는 여린 들꽃같은 생이 지천에 널려있는 듯 해 마음이 깔깔해질 뿐이다.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새엄마의 생존여부라도 알고싶어하던 혈혈단신의 두자. 같이 죽자고 하지나 말지 제 모습을 닮아있는 딸들에게 내치지 말고 치맛자락에 숨겨 잠깐이라도 보듬고 눈맞추고 고생했다 미안하다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 더욱 서럽고 외로웠던 수선과 봉선. 감당하기 힘들면 엉엉 울어제끼고 힘들다고 입 밖으로 토해내듯 풀어냈음 덜 애잔했을 이르게 철든 은하와 동하. 그들의 삶에 기생하고 희생을 당연시했고 날이선 말들로 수도 없이 찔러댄 사람들(가족이 아니라 일꾼으로 대하던 시어머니, 바람난 아버지와 남편, 고마운줄 모르던 형제, 재력이 벼슬이었던 학폭의 동급생)

끝나지 않을 노래이며 끝나지 않는 생의 고통 대물림. 말끔히 잘려지지 않을 듯한 생의 고난. 시대가 변함에 있어 형태만 바뀔 뿐이지 형질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생의 고달픔. 태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한들 태어나 살아내는 것에는 행복이 우선시 되는게 당연한 것임에도 욕심이라 여기게되니 뭘 기대하며 살아야될런지 생각은 많은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 내 쉬는 숨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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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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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닐 수 있겠구나, 소설인 척 하는 한 인물의 르포 내지 자서전이 될 수도 있음을 염두해두고 읽게 만들었다.

우범지대에 사는 모범생, 상식과 교양이 없는 명문대생,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장학생, 스펙에 뒤떨어지는 대기업 사원, 좋은 사람을 만나는 운과 현명한 선택으로 투자에 성공까지 거머 쥔 사람. 아르바이트, 과외 교사, 은행 직원의 다양한 직군을 거치는 동안 만나게되는 인물들과 그들을 통해 얻게되는 성찰. 누구는 손절의 아이콘이라 했다. 재이를 두고 가난하게 컸어?의 밈의 주인공이라 봐야 할지, 진흙밭을 제발로 걸어 나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봐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재이의 이야길 듣다보면 과거의 나일지, 지금의 너일지는 자기안의 물음을 반복해본다. 비춰지는 순간마다 뜨끔거리게 하는 재이에게 나는 뭘 기대하고, 뭘 바라는 것인가. 소설인지 나를 염탐하는 이가 써낸 르포인지 결국 끝까지 의심을 해 가며 읽게 만든다. 이건 소설 인 척 하는 누군가의 자서전이자 누군가를 긴 호흡으로 추척하며 써내려간 짠한 삶의 일대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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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건가 싶어하며 사는 사람도 있을테고, 원래 그런게 아닐수 있구나를 깨우치는 사람도 있었다. 전자가 재이의 형제들 내지 달동네 아이들이었다면 후자가 재이였다. 바뀐 환경, 달라진 반친구, 다르게 대해주는 어른들을 통해 또 다른 상냥하고 다정한 관계가 있음을 배웠다. 알려주지 않아 몰랐던 아이의 시야였다. 도움을 받았고, 고마워 할 줄 알았고, 욕설이 없는 상냥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누군가를 돕는 것에 행복을 느낄수 있고, 내 것이 아닌 것에는 감사히 빌려쓰고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축하 받을 만한 일이며, 챙기고 아끼는 것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점. 달라지는 환경과 변화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터득하며 자신의 위치를 옮겼기에 가능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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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가족들과의 갈등이 빚어질 때 빠지지 않는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 읽다보면 쌍둥이는 재이의 또 다른 자아 처럼 여겨졌다. 삶은 매번 갈림길 앞에 있었으며 A와 B중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오는데 안주할 때마다 머무는 선택은 쌍둥이의 몫이고, 변화되는 세상을 택하는 방향은 재이의 몫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렇게 차츰차츰 간극이 벌어지다 성인이 된 후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축하 받는 결혼과 대우받는 배우자. 기대하지 않는 결혼과 분수에 맞지 않는다 여기며 배우자가 될 사람의 직업에 대한 의구심까지 품는 대화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 재이에게는 제 살길 찾아간다고 험한 말 했던 과거는 잊은 채 한 집에서 얽혀 살던 쌍둥이에게는 하대하는 사이. 때로는 천륜이라는 것도 놓아야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스스로 가족애(愛)의 빈곤함을 고른 것이다.


평범의 오류. 다들 그렇게 살지 않냐는 듯한 일반화의 범주 밖. 재이는 그런 기본의 부류 밖의 가정이었다. 집과 부모와 형제가 같이 산다고 하여 모두가 다복한 가정이 아니듯, 정규 교육과정을 다 밟아온 청소년기를 보냈다 한들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범을 이야기 하는 사람 앞에서 평범 이하의 세상을 살아왔다는 확신이 들 때엔 체념을 하게된다. 이들과 나는 다른 부류구나. 섞일 수 없는 삶이구나. 그러니 동경하는 마음이 아니라 별개의 생각과 갈려지는 삶의 목표를 기대하는게 덜 슬프겠다는 답을 찾은 듯 했다. 이제사 살아온 삶의 일대기를 뜯어 고칠 수 없으니 체념이 빠른 답이고 덜 지치는 방향이었다.


확실히 달랐다. 부모를 멀리하는 재이와는 달리 아버지와 함께 분식을 먹으러 올 수 있고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 서열이 아니라 조화를 택한 부녀의 관계성. 돕고자하는 어른의 배려. 그걸 보고 자란 재희의 반듯함. 순하고 선하다는 말의 표본화. 아마 나였어도 재이의 입장이라면 재희가 그립고 부럽지만 곁에 둘 친구로 남기진 않을 듯 하다. 나도 모르게 악의가 싹터 재희를 친구의 시선보다 삶의 이용 수단으로 써 먹으려 눈에 힘을 주게 될 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상대의 선함이 자칫 나의 악의로 물들까봐 미리 차단하는 마음을 재희는 영영 모르겠지.


나에게 부모가 없었다면, 언니가 없었다면,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된 언니들이 없었다면, 대학 동기 언니오빠가 없었다면, 첫 직장에서의 사수가 없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때마다 조언을 구할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떠한 것을 배워갔을까. 참을성, 책임감, 인내심, 배려, 양보, 상냥함, 기다림, 협동. 전부 비슷비슷하게 보일 지라도 각각의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과 행동을 꺼내 사용해야 할 지를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 허둥대지 않고 유연하게 사람들 속에 섞여 유순하게 흘러들어갈지에 대한 타이밍 싸움. 매 순간마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교육을 통한 사회화가 잘 된 아바타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바타여서 슬픈게 아니라 아바타여서 다행이었다. 입력값에 맞춰 출력값이 옳게 도출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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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가족, 변할 마음 조차 없는 관계. 내가 옳다고 바꾸려해서는 안되는 그들의 개념이었다. 그들의 세상에는 그게 맞는 선택지였다. 개선이 될 수 있었다면 아마 진즉 다른 방향으로 시야를 틀었을 것이다. 누가 그러지 않던가,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변할 사람이었음 애초에 바뀌었어야 했다. 변할 마음이 없었고, 달라질 이유를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서로가 답답해하며 자신이 이롭다 여기던 방향으로 바꿀 수 없었다. 차라리 놓아버리는 것, 그게 마음이 편하다는 걸 나이가 들며 달라지는 인간 무리의 다양성에 발 담궈가며 얻은 태도이기도 했다.


나쁜 뜻은 없었다는 것, 심지어 좋은 마음으로 그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지금에서야 두 경우를 다 겪고나니 느끼는 사람의 태도였다. 악의 없는 솔직함과 자기 자리와 상대방의 자리에 대한 이해를 하며 비춰내는 솔직함. 상처를 받는 것은 매번 재이의 입장인데 지금껏 혈육에게 받아온 상처와는 별개의 마음의 생채기가 있다. 당시에는 날을 세우진 않았지만 홀로 받는 마음의 상흔. 서로가 몰라서였고, 서로가 겪지 못했던 삶이라 그런것임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은조 언니와 재희, 고대표에게 마음이 더 가는 이유는 가르쳐주는 마음에 높낮이가 없었고, 때로는 한 발짝 멀리 뒷걸음을 유지한 채 반듯하게 봐주려 애쓰는 시선이 있었다고 느낀다.

모두가 내 맘 같진 않다. 아마 그건 어렸던 재이나 어른의 재이나 똑 같이 느낄 것이다. 다만, 얼마나 덜 상처받고 덜 바라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이젠 알 것이다. 상대의 마음에 대한 방어기제를 적용 할 줄 안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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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알려주는 가족이 있고, 차근차근 일러주는 어른. 보고 따라하고픈 마음이 드는 또래와 닮고 싶다 여겨지는 형제가 있다는 것. 그게 인복이었고, 바른 가정이었고, 옳은 관계성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당연하다 생각하던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어린 재이를 통해 알았고, 어렸던 나를 떠올리며 나 또한 재이였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오로지 주변 환경 탓 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었는지, 어떻게 따라 하려 했던지를 생각하며 모난 시절임에도 그럴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다시 해보자고 하던 수많은 손길의 쓰다듬음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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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되고 싶어 ㅣ 위픽
김화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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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많은 사물 중에 왜 하필 개구리인지 궁금했다. 기대하지 않기와 실망하지 않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도 더해보며 인간관계와 연약한 유대감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이야기속 주인공은 우물안 개구리로 살다가 팔짝 뛰어 오르고 싶었으리라 추측하며 수경, 가은, 완의 대화들을 들어본다. 기대와 실망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사람들에게 치였던 나의 과거를 들춰보며 무감해진 가은과 지금의 나를 나란히 두며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접어 들 수록 나와 가은의 문제인지. 다들 한 곳을 10년 가까이 다니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가은의 행동을 따라가본다.

익숙해진 세상. 어찌어찌 하다보니 살아온 날들의 3분의 1의 시간동안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장소. 익숙함에서 오는 무료함인지 평안함에서 오는 도파민 부족인지. 고여있는 우물탓인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며 아등바등하는 것이 므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 그게 책 속의 가은이었고, 책 바깥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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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이든 완이든 결국 직장에서 뻗어가는 인간 관계에서 얻어진 인맥이었다. 이 곳이 없었다면 교차되는 지점도 없었을테니 아예 모르고 살 인연이라는 것이다. 고로 회사라는 소속감을 벗어난다면 금새 끊기고 마는 고리. 직장 동료 완, 완의 친구인 수경. 회사가 만들어준 일정한 조건을 갖춘 어른들. 같은 지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유난히 반짝이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 그래서 나도 옆에 있으면 빛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들로 통해 얻어지는 나의 발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니 수경을 성향을 동경하고 완의 바뀐 태도에 아쉬움이 큰 것이겠지. 가은은 마주하고 있는 그들에게 오는 에너지를 얻고 싶어보였다. 같이 있으면 닮아질까 하는 기대감이 "나는 상대를 나의 거울로 봤다."는 말로 옮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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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지만 온화해보이고, 평온한 표정에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개구리. 저렇게 앉아있더라도 개구리는 펄쩍 뛸 수 있는 걸 모두가 아니까, 가은은 그걸 바라는 것으로 보였다. 톡톡 건드려 이제 뛰어 보지 않겠냐고 외부의 자극을 주는 것은 가은의 승진 통보일 것이고, 개구리 스스로가 몸을 움직이는 것은 바뀐 직급과 상황으로 인해 이제 직접 움직이고 다른 액션을 취해야하는 가은의 새로운 직무 수행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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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는 결국 수경이었다. 우물은 고여있던 자신의 마음일텐데 이 우물의 권태와 우울은 뛰어 오른다고 사라질까? 여전히 고여있고 머물러 있을텐데 날뛰느라 바빠서 시야에 들어오지 않다 하여도 그 감정과 공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가끔 내 우물에 놀러 와."라는 문장은 결국 고여진 우물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며 감정과 시간의 주기에 따라 더 도드라지거나 더 얕게 보이는 것으로 간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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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가은을 심해에서 꺼내주었던 완도, 지금의 가은을 환기시켜주는 수경도 한 시절이었다. 서로의 우물에 들러 여기가 안전한지 손잡아 끌고 나와야할지 살펴주는 존재. 가정방문하며 우리 애 잘 살고 있는지 기웃거리며 살펴주는 수고로운 눈짓과 행동. 권태로운건 알지만 몸이 반응하는 관계속의 츤데레 기질이겠지.


📖좋은 점은 이제 더 이상 회사에서 이유 없이 긴장하거나 오들오들 떨지 않는 다는 것. 나쁜 점은 무엇에도 설레거나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좋은 점은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은 내게도 만족스러울 일이 거의 없다는 것. 좋은 점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은 아무것도 상관이 없어져서 벅찰 일도 없다는 것. 좋은 점은 예전만큼 근무 시간 내 심경이 일분일초 일희일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업무에 사람에 빈정 상하는 일은 있어서 올라가는 일은 없어도 아래로는 내려간다는 것.

비단 9년차의 수경만 그러할까? 13년차의 나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있으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감정이라는 것을 염두해두고 직장인 나부랭이로 살아야 할 것이다. 잊지말자, 권태는 나의 친구이며 한 달에 한 번 급여 입금받는 날에만 기척없이 사라져 잠깐의 행복을 맛보도록 해 줄테니, 이 관계는 기저에 깔고 둬야하는 마음으로 살아내야 함을 매 순간 새기면 덜 서러울 것으로 보여진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옆자리 동료도 내 뒷통수를 보고 앉아있는 상사또한 똑같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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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심 ㅣ 위픽
전건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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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심', 그리고 '네가 평안해졌으면 좋겠다, 진심이야' 이 두 제목을 놓고 보면 므슨 소리인가 싶다. 미워하는 마음과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 이게 한 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건가?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평안을 바라며 상대를 이해하고 마음을 곱게 먹으라는 건가 싶은 물음표 가득한 표지.

그래서 처음보는 저자의 이름이지만 읽고싶어졌다. 이 얇팍한 책에서 어떠한 마음을 드러내고 어떠한 마음을 먹게 할런지. 그리고 나는 책 속 인물들을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는 깜냥을 지닌 사람일지에 대한 여러가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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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러하 다. 숨 쉬는 것 만으로도 지치는 여름밤. 나이도 어린 직장 상사가 승진길까지 막았다길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밤. 애인에게 직장상사 험담을 하며 한탄과 짜증을 토로할 때 애인 K는 느닷없는 무서운 이야기를 꺼낸다. 실없는 소리 한 적 없는 그가 꺼내는 이야기. 몇 해 전 노숙자 쉼터에서 알바하며 알게된 최씨와의 일화. 도움을 받은 그는 K에게 보답을 하고싶다며 딱 한 사람만 죽여줄 수 있다며 섬뜩하지만 솔깃한 제안을 한다. 마침 그 즈음 K를 힘들게 하던 지도교수가 떠올랐기에 고민 끝에 교수의 이름과 생시, 그리고 K의 손톱을 건낸 후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일화를 늘어놓는다. 대신 상대가 죽으면 그걸 사주한 사람에게 중요한 무언가도 같이 잃게 됨을 알렸는데, 그럼에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걸 사주하게 된 이후의 삶. 농담이라 하기엔 너무 또렷하고, SNS에 떠도는 괴담이라 하기엔 너무 흔해빠진 것 같은 K의 말들. 무고를 바라고 이후의 삶까지 말했고, 이제 K는 연인에게 제안한다. 너도 이름을 적을래?


📖앙심이라는 게 얼마나 사소한 일에서 싹트는지 너도 잘 알겠지? 그리고 그렇게 한번 싹을 틔운 원한은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 내면을 잠식해나간다는 걸, 너도 알 거야. 그러니 됐어. 그 앙심을 채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해.

미워하는 마음을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을까? 미움의 깊이와 정도만 다를 뿐이지 싫어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감정을 적립해가는 인간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 미워 죽겠다 싶고, 너죽고 나죽자 싶은 분노에 찬 적도 있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싶은 한탄과 포기의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살기를 띄며 어찌 저런게 사람이다 싶을 때도 있는데 결국 우리는 그러다 제 풀에 지쳐 이러한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사람이 밉다고 모두가 찔러 죽이는 일도 없고, 흠씬 두들겨 패며 앙갚음 하는 사건사고는 그리 흔하지 않다는 걸 봐도 우리는 제법 화를 잘 누르는 누름돌을 지니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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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도 이러한 일이 있었던게 20대 초반이지 않던가. 지금의 나로서는 K의 제안에 주저함보다는 되려 종이를 다시 밀어주며 딱히 쓸데가 없다고 말하게 될 듯 하다.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다. 나이가 들면 미워하는 마음에게까지 쓸 에너지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저런것도 아무렇지 않게 사는데 내가 왜 고민하나 싶어하며 흐린눈으로 눈엣가시의 인간을 못본척 하게된다. 그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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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도 혈기 왕성하던 시절이라면 K의 말에 솔깃해서 건네받은 종이를 한참동안 만지작거리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지 싶다. 타인을 향한 살기가 간절한 마음으로 타인을 뚫어버리고, 남겨진 살기가 나를 치고 간다 한들 일단 뵈는게 있을까? 미워하는 이가 눈물 흘리는 꼴을 보는 쾌감이 더 크게 느껴 질 터이니 K와 같은 수순을 밟을 수도 있겠다. 이른바 너 죽고 나 죽자 모드의 전투 상태라는 거겠지. 등가교환에 대한 성찰이든 미워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해하는 심상 중 하나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당신은 그 마음을 여전히 품고 살런지, 아니면 저런 놈은 그냥 저리 살다 죽게 냅둬야지 라는 느슨한 방임의 마음으로 살 것인지는 각자의 연령과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 질 것으로 보인다.

죽이고 싶은 마음을 유지하며 분노를 안고 산다면 매 순간이 지옥일 것이고, 최씨가 했던 것 처럼 K가 건넨 종이에 이름을 써서 준다면 죽였다는 마음에 불안을 안고 사는 것 또한 매 순간 지옥에 사는 것은 동일하다고 보여진다. 이왕 지옥방에 떨어진거 저 자를 없애는게 맞을까, 나를 태워내며 소멸하는게 나을까. 이도 저도 아닌 지금 나처럼 지랄 발광을 하든 미쳐 날뛰든 등 돌리며 안보면 그만이다 싶은 상태로 외면하는 삶을 살 것인지. 그건 뭐 당신들 선택에 달렸겠지. 일단 K가 준 종이는 받고서 생각해보자. 건네받은 종이가 있다는 것, 그걸 쥐고 있는 것 만으로도 뭔가 죽이고픈 놈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건 확실하니 덜 서럽고 덜 짜증 날 수는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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