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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능동적
노연경 지음 / 필름(Feelm) / 2024년 11월
평점 :
허구의 무엇 말고, 허상의 존재 말고, 그냥 나처럼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비슷한 생각을 하며 골머리를 앓아가지만 그래도 어쩌겠냐며 살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무던하게 살아내는 사람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양 팔을 뻗었을 때 들어오는 익숙한 곳들의 사람들 말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때때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비슷한 시절의 추억을 안고 살아내는 사람의 덤덤한 한마디가 간절했다. 이 마음은 단지 찬 바람이 옷 깃에 스미듯 찬 기운이 마음을 훑어내는 계절 탓을 해본다. 누군가의 이야기, 누군가의 속앓이를 같이 공유하며 당신만 그런게 아니고 나도 그러했다고 전해보고파진다. 그러니 우리 같이 뭉친 마음을 정성스레 보듬어보며 내 몫의 행복을 손 안으로 쓸어보았음 한다.
📖누구로 살겠는가_ 그래서 나는 2인자가 되길 선택했다.
내 스스로 날아오를 생각을 하기보단, 누군가를 도와 그들이 잘 되길 도와주는 것이 내 천성에 맞는 것이라 믿어 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이 어딨어?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지! 라는 생각? 그런거 애시당초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다. 저자가 그렇고, 나도 그렇다.
90년대에 나온 노래 임상아님의 '뮤지컬'이라는 노래의 가사같은 그런 사람?(미안하다. 내가 80년대 생이라서 비유 할 수있는 노래가 이것 만한게 없었다〒▽〒) 그건 진짜 일부였다. 내 인생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도 있지만 나로서는 조연도 제법 괜찮은 역할이라 믿고싶다. 주연만 있음 뭐해. 조연도 있어야 극이 살아나지! 저자는 쌍둥이 언니가 주인공이고 자신은 2인자가 되는 당연한 삶을 그렸다. 일찍 재능을 발견했고, 그 재능으로 빨리 날아오르는 혈육이니 당연히 비교되고 움츠러드는 것. 그런데 세상은 무조건 주인공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옴니버스의 영화처럼 한 단락에는 주인공이 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 주인공 친구1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재미난 생이고, 신기한 삶이다. 이번에 저자가 2인자로 극을 배정받은 거라 치자. 이 옴니버스가 한바퀴 다 돌아 갈 때 즈음 언젠가 주인공도 될 수 있을테니 조급해 하지 않았음 싶다.
📖직업에 대하여_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내 직업이 곧 나인 건 아니에요.
직업은 직업이고, 나는 나예요.
그래서 내 행복이 직업에 달려있진 않아요.
어릴 때 장래희망을 쓰면 미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말 보다 직업군을 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전문직종을 지칭하는 선생님, 간호사, 경찰, 아나운서로 적어 제출하다보면 직업이 나요, 내가 곧 직업군에 스미는 사람으로 되어져있었다. 나는 없고, 직업으로 불리우는 사람. 장래희망은 장래에 바라는 희망 뿐이었고, 지금 30대 후반의 나는 직업에 얹혀가는 삶으로 살고 있다. 직장인, 배 만드는 사람, 과장, 회사원. 그렇게 24시간 중 잠을 자는 시간을 뺀 시간의 대부분을 직업에 할애하는 사람이 되어 10년 넘게 살다보니 내 행복은 직업에 매달려 가고 있었다. 쉬는 날 행복하고, 월급 받는 날 기분좋고, 연봉 계약하면 뿌듯하고, 샌드위치 휴무로 얻어지는 날은 마냥 즐거웠다. 직업에 질질 끌려다니는 행복. 괜찮을까? 생각보다 큰 불만 없이 살곤 있는데, 이게 익숙해져 그런거 같아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다. 꽉 채워진 직업이란 존재. 그 틈새에 끼워진 행복에 마냥 즐거워하는 나. 아직은 괜찮은거 같은데, 어차피 직업에 매달려있는게 내 행복의 끈이라면 내 년의 나도, 내 후년의 나도 큰 굴곡 없이 괜찮은 상태이면 좋겠다.
📖소중한 조각을 찾으러 가는 거야_ 아빠는 네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으니 너를 다 이해하지 못해. 그래서 혹시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무서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니 꼭 말해줬으면 좋겠어.
책의 뒷면을 보면 추천사에 울컥하는 부분이 있다. 김상현 저자는 익히 아는 유명인이니 그러하겠다 싶고, 일러스트레이터 노선경은 저자의 쌍둥이언니이며 책을 출간한 작가라 가능하겠다만 중간에 있는 노상범이라는 사람의 추천사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노연경의 아빠이며 이 책에 제법 많은 지분은 보유하고있는 저자의 최측근이다. '한번 사는 인생, 다소 막 살아줄 필요가 있다'는 말과 '알아서 해라.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는 언뜻 들으면 무심한 사람의 한마디 같지만 이 말을 할 순간엔 어떠한 조언과 위로도 와 닿지 않을거라는 딸의 복잡한 마음을 알기에 무심하게 말하며 지금의 상황도 별일 아니라는 듯 그리 여겨주었음 하는 간절함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보듬고 키웠지만 네가 아니니 너의 온전한 마음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진득하니 껴안고 가고싶은 삶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재촉보다는 기다림을 택했고, 다그치기보단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그게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저자는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지 않은 듯 했다. 다행이다. 노연경에게 노상범이 있어서.
📖가족들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_ 같이 벚꽃 내리는 것을 볼 날이 30번도 채 남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치열하게 사는 동안에 가족들은 조금씩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무겁고 외면하고픈 순간이지만 미리 해놔야 하는 마지막 선택지였다. 가족들과 죽음을 이야기 함에 있어 우리는 제대로 대화의 끝을 본 적이 있었을까? 죽음은 멀리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발치에 있기도 했고, 그 수순이 찰나로 다가오기도 했다. 당신들의 진심을 오롯이 받들고 원하는 엔딩에 맞춰주고 싶다면 미리미리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화하는게 맞더라. 나의 부모도 저자의 부모처럼 나무가 되고 싶어 하셨다. 갑갑하니까 산에서 세상 내려다보고 계절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너머의 생을 기대하셨다. 우스개소리로 그거 비싸대. 한 그루도 아니고 두 그루 심어야하고 사시사철 관리하고 오래 관리해주는 사람 고용하려면 내가 돈 많이 벌어야하니 서둘러 갈 생각은 말라며 허락 없이 먼저 가지 마시라 웃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슬픈거 알지만 미리 슬퍼 말자 싶은 훗날의 이야기들. 그래도 꼭 해야 하고 내가 마무리하고픈 당신들의 마지막 문장.
📖우선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만 하고_ 그럼에도 서로 보살피는 것.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저자는 사람에게 많이 데였던 시절이 있다. 그래서 멈추는 순간도 많았고, 그래서 남들보다 살짝 더디게 굴러가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무서울 수도 있겠단 생각을 어렴풋이 해본다. 때론 타인의 애살있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고, 걱정을 안고 바라보는 시선을 갈망하는 사람도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시선의 온도차는 달라졌고, 삶의 방식에 따라 바라는 시선의 깊이도 다름을 느낀다.
'너 괜찮아?'라는 물음에는 따뜻하고 말캉한 기운이 스민다. 괜찮냐는 물음은 많이 신경쓰고 있고, 많이 궁금하다는 말이 더 앞에 나서게 되지만 묵음으로 처리되어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묻고 싶은게 넘쳐나지만 일단 괜찮은거지? 라는 것으로 담백하게 의중을 띄워주길 바라게된다. 사람이 미워지고 모든걸 잘라내고픈 만큼 진절머리 나더라도 내 사정거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정중하게 묻는 안부는 내치지 말고 담백하게 답해주길 바란다. 서로 보살피며 사는 것, 나만 살기보단 당신도 살아주며 이 세상 심심하지 않게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너른 자의 관심이니 요정도의 관심에는 아무런 경계 없이 스르륵 넘어가주길 바라게된다.
📖요령 없는 삶_ 언제는 인생 조졌다더니 꽃 한 송이를 두고 사진을 찍어대며 좋다고 실실 웃고 있다. 바보에게 무슨 요령이 있을까. 그냥 요령 없이 살자.
사는게 내 맘같이 않아 여러모로 재미나다.(표정은 멍하고, 목소리만 호탕하게 웃으며 재미난 척을 해본다) 요령 없이 살면 눈 앞에 보이는 것들 먼저 해결해야만 길이 보이고 숨통이 트여진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채 내가 무얼 해왔는지도 기억 못하도록 급하게 살아가는 벅찬 삶. 헌데 그러한 순간에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고 마음을 뉘어놓고 한숨 돌려도 될만한 구석들이 있다. 마음을 비우고자 갔던 석달간의 발리행은 돌아와서 보이는 작고 귀여운 통장 잔고를 안겨줬다. 다시 현생을 살고자 돈 대신 몸을 써가며 보냈던 통학시간. 그때 본 구름들과 꽃들은 요령없이 산 덕에 거저 얻은 산물이었다. 지하철에 버스에 몸을 싣어둔 채 끌려가는 거였음 또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으니까. 남들이 열심히 달릴 때 저자는 숨고르기를 했고, 그러다 또 벅찬 숨에 목구멍이 죄여와 두번의 휴학을 택했다. 남들이 살면서 쉬어가는 타이밍을 당겨 쓴 것이라고 해두자. 요령없이 쉬어가는 두번의 텀을 당겨와 길게 쉬었으니 이제 요령없이 진득하고 무심하게 정속주행하면 되는거다. 그러면 되는거지 별거 있겠어?
마음이 아픈 적도 있고, 그게 몸으로 드러나는 순간도 겪은 저자의 이야기. 나만 이런가, 내가 유난스러운건가 싶어하며 숨기고 살았던 시절같다. 헌데 살다보니 이러한 마음의 딱지 한두개는 다들 안고 살더라. 긁어 부스럼도 내어보았고, 아물 즈음에 다시 쥐어 뜯어서 더 큰 상처를 내고 그 과정을 받복해서 굳은살로 두고두고 보게될 내 아픈 시절의 표식같기도 한 과정들. 숨긴다 한들 겪어냈던 일이고, 감춘다 한들 그것 마저도 내 삶의 일부였다. 그래서 저자도 이렇게 에세이를 내면서 내가 이랬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살고 있네요. 라며 헛웃음으로 편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과정으로 넘어 온 것 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엔 저자의 글이 그랬다. 바닥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 두 발을 딛고 한 달음에 쑤욱 올라와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몸짓처럼 문장마다 발돋움한 물보라가 잔잔히 퍼져갔다. 진득한 성장통 같기도 했고, 마음의 터널이 유달리 긴 사람이기도 했다. 깊이는 알지 못하겠지만 나의 성정과 닮은 구석이 많아 단숨에 읽고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고쳐볼까 싶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